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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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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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12
    얇은 사 하얀 고깔 춤추는 나비, 이매방 명인 (6)
  2. 2009.12.06
    신명나고 웅장한 "광대의 노래" 공연했어요. (34)

조지훈 시인의 <승무>는 전 국민이 애송하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훠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이 시에서 표현한 대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을 나비처럼 곱게 차려 입고 그 위에 장삼을 입고 가사를 걸치고 길다란 소매를 허공에 뿌리며 추는 승무는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종교적인 경건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출처 : http://juruby86.egloos.com/

우리나라 명무 중 승무와 살풀이춤의 대가로 꼽히는 이매방 명인은 자신의 승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을 하다가 그 사랑이 깨져서 중이 되었는디, 수도를 하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나고 속세가 그리워 가슴 속에 왼갖 번뇌가 떠오른단 말이지요. 그래서 그걸 참다 못해 그 울분, 한 이런 것을 춤이나 북을 두드리는 것으로 해소할라고 추는 춤이 바로 승무라.”

불교적인 용어로 멋있게 설명하자면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기원하는 수도승의 내면 세계를 묘사한 춤이라는 말이 되겠지만, 그런 어려운 말보다 그의 말이 훨씬 현실감이 있어 보입니다.

이것은 그가 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뒤,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승무를 비롯한 전통 무용에 젖어 살아왔고, 특히 승무에서의 북춤은 제일인자라고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그 춤에 뼛속 깊이 통달해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출처 : http://www.ibulgyo.com/news/read.asp%3F...%3D88236

“소리나 춤이나 타고 나야지 억지로 하면 안돼요. 관중이 천 명이고 만 명이고 간에 그 사람들을 잡았다 놨다 험서 관중들 오장을 속속들이 후벼 놓고 울려 놔야 명창이니 명무니 하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명창이 되고 명무가 될 수 있나요?”

스스로 자신의 춤이 명무라고 자부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춤추는 머시마'로 놀림을 당하면서도 한눈 팔지 않고 춤 속에서만 살아 온 자기 인생에 대한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말이기 때문에 설득력을 지닙니다.

“세 살 때부터 누님들처럼 머리 땋고, 쪽 찌고, 머리 틀고, 치마 저고리 입고, 거울 앞에서 춤을 췄다니까 말해서 뭘 해요. 자라면서 남자애들하고는 안 놀고 맨 여자애들하고 소꿉장난하고 놀았어요. 주위에서는 이씨 가문에 만고에 없는 굿쟁이가 나올랑갑다 하면서 걱정들을 했지요.”

과연 주위에서 걱정한 대로 그는 일곱 살에 아버지 몰래 전라남도 목포 권번에서 이대조 명인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대조 선생이 사실은 우리 할아버지예요. 우리 집안이 할아버지대까지 무업을 해 오다가 아버지께서 무업을 끊고 일체 자식들에게 그 일을 못 하게 했는데, 내가 다시 그 업을 이어받은 거지요. 그러니 피는 못 속이나 봐요.”

할아버지에게서 춤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허튼춤’을 배운 뒤에 광주에 와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는 광주 권번에서 박영구 명인에게 승무와 북을 배우고 이창조 명인에게 검무를 배웠습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3Dat007

“요새 와서 알게 된 건데 승무로 치면 내가 5대째라는 거예요. 맨 처음 승무를 창시한 분이 신방초 선생이고, 그 다음 이정선 선생, 그 다음이 김금옥 선생이고, 김금옥 선생의 제자로 한성준 선생과 박영구 선생이 있는데 한성준 선생 밑에서 한영숙 씨가 나오고, 박영구 선생 밑에서 내가 나왔다는 거지요."

승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뒤인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그밖에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주장이 있어 확실하게 단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신방초 명인이 승무의 창시자라는 설은 문헌의 고증이 없으니 다만 원로 무용인들 사이에 전해 오는 계보를 추정해 올라갈 때 제일 ‘웃어른’으로 꼽히는 명인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게 무난할 듯합니다.

어쨌든 그러한 계보를 거쳐 전해진 승무를 그는 박영구 명인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배웠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기가 막히게 춤을 추시고 소리북도 잘 치시는 멋쟁이였어요. 그런데 발을 약간 절어요. 그래도 춤추면 발을 저는지 몰라...
우리 선생님이 북을 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물레를 타다가도 어깨춤을 절로 추곤 했으니께. 그 북가락을 내가 배우는디 참 배우는 방법이 옛날 식이라. 선생님이 북도 내주지를 않아서 함부로 칠 수도 없고, 감나무 가지 꺾어서 만든 북채를 가지고 입으로 몇 가락 배운 것을 돌담에서 혼자 돌을 두드림서 연습을 혀.
그러자니 손등이 벗겨지고 굳은 살이 박혀요. 다른 기생들은 힘들다고 다 집어치웠는데 나는 끝까지 버텼어. 선생님 눈치 봐서 기분 좋을 때 한 가락씩 사흘에 한 번 열흘에 한 번 그렇게 동냥하다시피 가락을 배웠어요. 요새 사람들이 들으면 야만적이고 원시적이라고 허지만 그렇게 배운 거라서 쉽게 잊혀지지 않아요.”

그렇게 '야만적이고 원시적으로' 배운 그의 북은 그 가락의 다양함이나 기교의 뛰어남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승무를 출 때는 누구나 ‘천수북’이라고 불리는 북을 앞에 놓고 북채 두 개로 ‘구래’라고 불리는 가죽 부분과 ‘변죽’이라 불리는 북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북춤을 춥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북춤 속에 엄청난 가락의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박영구 명인과 함께 서울에서 활동했던 명무 한성준은 승무나 학춤뿐만 아니라 소리북 잘 치기로도 당내에 따를 자가 없었지만 그의 북춤가락도 박영구 명인에 견주면 '재산이 많지 않다.'고 평가됩니다.

북춤의 ‘구정놀이’ 라고 부르는 여러 가락과, ‘세산조시’라고 부르는 휘모리의 여러 가락들은 농악 장단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풍물의 꽹과리 가락이나 장구 가락 그리고 북가락 등을 북채 두 개로 두드릴 수 있게 변화시킨 가락들이 대부분입니다. 거기에다 이매방 명인은 ‘엇머리’ 장단을 새로 창작하여 '재산'을 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북춤을 한번 보고 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북 가락은 싱거워서 들을 맛이 안 난다고 할 만큼 사람의 속을 울리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북춤 추는 시간이 삼 분에서 오 분 사이인데 남이 볼 때는 시원하고 쉬운 것 같아도 거기에다 엇붙임, 잉엇거리 같은 어려운 기교를 마스터 하려면 십 년 공부는 해야 돼요.”

그 역시 그 어려운 공부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공업학교 건축과에 다닐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열네 살에 명창 임방울이 주최한 명인 명창 대회에서 승무를 춘 뒤로 학교에서나 주위에서 ‘춤추는 머시마’라고 놀려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춤만 추었습니다.

그런 일과 함께 그의 성격은 더욱 더 여성화되어 갔고, 그 기질은 평생 동안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한국 춤은 여자가 추어야 제 맛이 나고, 남자가 추더라도 여성적인 태도가 우러나야 그 맛이 제대로 난다.” 고 하며 여성화된 춤의 미학에 대해서 확고한 지론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탈춤이나 농악을 출 때의 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 그것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승무나 살풀이를 추는 남자 춤꾼들의 거의 모두가 여성화되어 있고 여성화되지 않은 춤꾼이라도 씩씩하고 활발한 남성적 정서보다 부드럽고 연약한 여성적 정서를 위주로 춤을 추는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우리 무용계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히기도 합니다.

“한국 춤은 덜렁이 왈가닥은 못 춰요. 성격이 차분하고, 얌전하고. 어딘가 애원이 깃들어 있고, 눈에 색이 흐르고, 그 눈에 변덕이 죽이 끓듯 하면서 온갖 감정을 나타내고, 슬프고, 아름답고, 어여쁘고, 수심이 가득 차고, 곱게 빗은 머리에서 머리카락 한 오라기가 살짜기 흘러 내려오듯이 교태가 있어야 그 춤이 제 맛이 나는 디 덜렁이 왈가닥이 어떻게 그 춤을 추어요?
장삼을 날리면서 그늘을 저어서 한을 만들어내고 고깔을 좌우로 놀려서 온갖 하소연을 해야 하는디, 요새 춤추는 사람들 보면 구르고 넘어지고 몸부림치고 가랑이 쩍쩍 벌리고 궁둥이 흔들어대니 그게 춤이에요? 지랄 염병하는 것이제.”

출처 : http://kr.blog.yahoo.com/siesindnochjung/2095

‘욕 대장’, ‘직사포’, ‘깡패’, '따발총‘이라는 많은 별명에 어울리게 그는 눈에 거슬리는 춤에 대해 매섭고 혹독한 비평을 큰 소리로 얘기했습니다.

문제야 어떻든지간에 그는 더욱 더 여성화되어 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을 따라 북경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 최근에 첸 카이거 감독이 만든 <매란방>이란 영화로 한국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중국의 전설적인 무용수 '매란방'에게 무용을 잠깐 배웠습니다. 그 뒤로 그는 매란방처럼 되는 것을 평생의 소망으로 삼을 만큼 깊이 빠졌습니다.

“매란방하면 우는 아기도 그친다던 유명한 무용가인데 남자에요. 기가 막힌 미남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여자 역할만 맡아서 여자 춤을 추면 여자고 남자고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버린다니까요. 오죽하면 일본 천황이 반해서 자기 앞에서 춤을 추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했으니까요. 중국 평민들은 얼굴도 볼 수 없고, 그 사람이 공연하면 황제 귀족들만 와요.”

해방이 된 뒤에 목포 권번의 무용선생으로 있던 시절,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아 기생들한데 “뚜드려 맞기도” 많이 하다가 악극단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창공’이라는 단체를 따라다니며 밴드반주에 맞춰서 승무를 추기도 했습니다.

그뒤 광주 국악원으로 자리를 옮기고서는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 공작반의 무용단 단장이 되어 전남 일주 순회공연을 하기도 하고, 임방울이 만든 단체를 따라다니며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6.25 직후에는 육군 군예대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부산 유지들의 권유를 받아 부산 국악원의 무용강사 노릇을 하는 따위로 쉴 새 없이 떠돌아 다니며 춤을 췄습니다.

그러면서 북을 하나 놓고 치는 전통적인 '외고' 형식을 나름대로 바꾸어 보기도 했습니다.

1948년에 임방울이 목포역전 가설극장에서 명인 명창 대회를 열었을 때는 북을 셋 놓고 치는 '3고'를 선보였고, 1953년에 전라북도 군산에서 국악원 주최로 명인 명창 대회가 열렸을 때에는 '9고'를 선보였습니다. 1954년에는 서울 계림극장에서 ‘삼성 여성 국극단’의 창극에 특별 출연하여 '7고'를 선보였으며, 1955년에는 광주극장에서 ‘이매방 무용 발표회’를 열어 '5고'를 선보였습니다.

국립무용단의 북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00354725

“요새 사방에서 북춤들을 많이 추는데 그게 어디서 나왔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런데 내가 만들어 놨으니까 하는 얘긴데, 외고나 삼고는 예술적인 가치가 충분히 있어요. 하지만 오고나 칠고, 구고, 십일고로 넘어가면 예술적인 면보다는 쇼적인 면이 강해요.”

젊어서 쇼무대에 나섰더라면 떼돈을 벌었을 터이지만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본격 무대에서만 춤을 춰 왔다고 자부하는 그는 그뒤로도 서울과 부산을 왔다갔다 하면서 무용 발표회를 열고, 외국을 수없이 들락거리며 해외 공연을 하고, 국내의 중요한 무용 공연에는 어김없이 출연하면서 그 명성을 높여 이제는 웬만한 춤의 문외한도 승무와 이매방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그러나 재운은 신통치 않아서 궁색한 살림살이밖에 남은 게 없다는 그이지만 돈과 처세에 무능한 자신의 성격을 별로 탓하는 기색도 없습니다.

“어느 기자가 어떤 무용과 교수 집에 한번 갔다가 뒤로 넘어지게 놀랐대요. 그 집이 대통령 집보다도 더 으리으리하고 궁궐 같았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집에 와서 보고는 또 한번 놀랐대요. 그 집에 비해서 너무 초라하고 가난해서 그랬대요. 그래도 나는 웃어요. 어수룩한 예능계에서 남 등쳐먹고 돈 벌어서 살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무용심사다 대학 입학이다 할 때 엄청난 돈이 왔다갔다 하고 나도 그럴려면 그럴 수 있어요. 허지만 난 못 해요. 그게 어디 예술가입니까. 사기꾼 날강도지.”

울분만 끓어오르면 술을 마시고 직사포처럼 거침없이 바른 말을 해대는 성격 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고 몸도 많이 상한 그는 그 좋아하던 술을 딱 끊어버렸습니다. 술을 끊으니 성격도 변해서 남의 욕도 덜하게 되고, 제자들 가르칠 때에도 예전처럼 무섭고 사납게 굴지 않고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타고난 성격 탓으로 신식 문물보다는 옛 것을 더 좋아하는 그는 노래도 판소리나 육자배기를 좋아합니다. 신식 노래라고 해야 겨우 고복수, 황금심, 이미자의 노래를 들을 정도이고, 요새 노래에는 아예 귀도 열지 않습니다.

“춤도 그래요. 원형과 기본을 버려서는 안돼요. 아무리 창작도 좋지만 어떻게 한국 춤의 기본이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뀌고, 자연스러운 동작이 태권도 같은 현대 무용으로 변합니까? 창작을 하더래도 원형을 지켜 가면서 조금씩 해야지... 요새 젊은 무용가들의 춤을 보면 이게 춤인지 지랄발광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에요.”

이렇듯 고직식하다 싶을 정도로 옛것을 고수하는 그의 고집도 요새 와서는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너무 바뀌어서 도무지 그의 고집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새 대학생들은 승무 추면 다 졸아요. 승무에서 염불 장단이 제일 멋있고 춤도 맛이 진진한 법인데, 염불 장단만 나오면 다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북을 치면 그때야 박수가 나와요. 요새는 뭐든지 빠르고 미친 놈처럼 흔들어대야 좋아하니 원춤대로 추다가 손님 다 가 버리고 나 혼자 추면 뭐 해요?”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도 춤 추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는 그런 걱정과 한을 오로지 춤을 추며 풀어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쓸쓸해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얇은 사 하이얀 고깔'로 춤을 출 때 왜 그토록 격렬하고 격정적이며 때로는 가슴이 저리도록 애닯고 슬픈 울림을 주는지 조금은 알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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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세계소리측제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공연을 지난 금요일(12월 4일) 밤에 마쳤습니다. 행사 준비와 마무리, 뒷풀이로 이어지는 강행군에 녹초가 되었다가 이제야 기운을 차리고 블로그 앞에 앉았습니다.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2000석의 객석을 모두 채워주셨고, 공연 내내 뜨거운 박수와 추임새와 환성으로 출연진들과 하나가 되어 극장 안을 달구어 주셨습니다. 

공연이 끝나고도 많은 분들이 격려와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시니 그동안의 노고와 피로가 싹가겨지는군요. 특히 근래에 이렇게 최고의 명인명창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연한 건 처음있는 일이라 눈과 귀가 호강했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80세가 넘으신 이매방명인이나 김백봉 명인의 출연과, 93세의 이은관 명인의 공연에는 입을 쩍 벌리며 뜨거운 박수로 그 분들의 건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공연을 위해 몸을 바쳐 열심히 뛰어준 소리축제 직원들과 무대의 스탭과 예술가들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다른 공연 같으면 감상평을 써야 겠지만, 제가 공연 당사자인지라 저와 김태균씨가 공동으로 쓴 대본과 함께 공연 사진을 소개하는 것으로 공연 소개를 대신할까 합니다. 

이 대본에는 광대예술에 대한 저의 평소 생각이 녹아 들어 있답니다. 


 
2009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열림의식


전북도립무용단의 열림무용.

축문

해동조선 대한민국 빛나는 땅 온고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기축년 십이월 나흘 날, 천하광대 모두 모여 송년소리나눔 한판을 벌이는데, 바로 “광대의노래”라.

이 공연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 명인명창 온고을로 모이고, 온고을 사람들 이 자리에 모여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이는 판이니 그 아니 장관이랴.

소리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광대의 혼 길이 기려 광대의 길 밝히려 함이니 동리 신재효 선생의 “광대가” 뜻을 이어 오늘 천하광대의 역사가 살아있으니 그 정성 그 뜻 어찌 아니 고마운가.

그 뜻을 이어 받아 소리로 풍류를 나누고 소리로 생명을 나누고 사람의 뜻을 밝혀 세계로 통하는 민족의 혼을 일으켜 세우는 신광대판을 열어 보자 함이라.

소리는 하늘에서 나는 것. 하늘의 뜻을 받아 땅에서 자라는 생명과 같으니 온 고을 온 세상 그런 소리를 나누면 평화가 넘치는 판이 절로 이루어지나니

온 고을의 생명 넘치는 판을 위해 여기 모인 지극정성 모두 모아 평화와 상생 위한 큰 판으로, 세계를 울리는 천하의 판으로 펼쳐지기를 소원하옵고,

여기 오신 모든 분들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고, 새해에는 운수대통하고 만사형통하길 비옵고 또 비옵나이다.

무용단들과 함께 한 저의 축문 낭독 장면.

 

<서장> 부르자, 새생명 부활하는 광대의 노래를

<합창>

오 오라 천둥처럼
오 오라 벼락 치는 소리로
광대여 오라
광대여 오라
생명의 광대여 부활 광대여

앞산도 들썩 뒷산도 들썩인다
천하가 춤을 춘다.
천하강산 광대여 바람처럼 일어나
천둥소리로 오라.
벼락소리로 오라.

부르자, 새생명 부활하는 광대의 노래를
광대여 오라. 광대여 오라

여기는 소리가 생명으로 잉태하는 곳
여기는 소리가 세계를 살리는 판
산 광대 죽은 광대 모두 모여 살판을 만들어라

부르자, 광대의 노래를
온 고을에 퍼지는 온 세상의 소리
빛이 되어 퍼진다. 생명이 되어 퍼진다
대명천지 신명천지 광대판을 열어라

200여명이 넘는 경기도립국악단, 전북도립창극단, 익산 시립합창단, 대구그랜드에코오페라 합창단의 대합창 장면. 작곡 김대성님, 지휘 김재영님. 


<제1> 광대가

<사회>
우리 나라 광대 내력 풀어보면
단군 왕검 명을 받아 하늘의 뜻을 세상에 밝히고
국선 풍류 천하를 세우고 화랑정신 광대 정신으로 펼쳐지니
광대가를
들어보자
저 멀리 조선시대 전라북도 고창 사람 동리 신재효 선생
"광대가"
에서
말하기를

맛깔스러운 도창과 재담으로 공연을 재미있게 끌고 간 남상일 명창.

<합창>
인간의 부귀영화, 일장춘몽 가소롭다.
유유한 생사이별 뉘 아니 한탄하리.
거려천지(居廬天地) 우리 행락, 광대행세 좋을시고.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 그 다음은 득음(得音)이요,
다음은 너름새라.

<사회>
렇지 광대라 하는 것 인물,사설,득음,너름새라 하였으니 그 내력을 곰곰이 따져 보는데, 이러한 내력을 천하명창 송순섭 명창, 김일구 명창, 조상현 명창...아구메 떨리는 거...떡 하니 등장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더라 얼씨구 그 내력 한번 들어보자 얼씨구~

<송순섭 명창>
너름새라 하는 것은 구성지고 맵시있고, 경각에 천태만상,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 좌상의 풍류호걸
구경하는 남녀노소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이 구성 이 맵시가, 어찌 아니 어려우랴

                 송순섭 명창.

<김일구 명창>
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김일구 명창.

<조상현 명창>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
칠보단장 미부인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조상현 명창.

<합창>
인물은 천생이라 변통할 수 없거니와,
원원한 이 속판이, 소리 하는 법례로다

<판소리 합창>
영산초장(靈山初章) 다스름
은은한 청계수가
얼음
밑에 흐르
구슬러
내는 목이, 순풍에 배 노니는 듯,
차차로 돌리는 목, 봉회노전(峰回路轉) 기이하다.
도도와 올리는 목, 만장봉이 솟구듯,
툭툭 굴러 내리는 목, 폭포수가 솟치는듯,
장단고저 변화무궁, 이리 농락 저리 농락,
아니리 짜는 말이, 아리따운 제비말과 공교한 앵무소리,
중머리 중허리며, 허성(虛聲)이며 진양조를,
달아 두고 놓아두고, 거니다가 들치다가,
청청하게 도는 목이, 단산(丹山)에 봉의 울음
청원하게 뜨는 목이, 청천에 학의 울음
원성 흐르는 목, 황영(皇英)의 비파소리.
무수 농락변화(弄樂變化), 불시에 튀는 목이, 벽력이 부딪는 듯,
음아질타(音啞叱咤) 호령소리, 태산이 흔들흔들
어느덧 변화하여, 낙목한천 찬 바람이, 슬하게 부는 소리.
왕소군(王昭君)의 출새곡(出塞曲)과 척부인(戚夫人)의 황곡가(黃鵠歌)라.
좌상이 실색하고, 구경군이 낙루하니,
이러한 광대노릇, 그 아니 어려우랴.


<제2장> 오늘 광대, 광대 놀음

<사회>
이러한 광대노릇 그 아니 어려우랴 하였거늘, 세월을 탓하랴 세상을 탓하랴, 무심한 시절 탓에, 그 광대들 바람처럼 가버렸. 늙어늙어 가는 인생 어이타 부질없다 누구를 탓할소냐. 가고 오면 온다 기약 없이 무심한 세월 절로 가는구나 ~바람 바람 바람아 불어와라 신광대바람 들어와라 오늘 광대 여기 살아 새로운 길을 여니 어절씨구. 오늘광대 나가신다~ 광대 놀음 벌여보자~ 천하의 명인명창 다 모였으니 그 아니 별의 무대랴. 악기는 악기로 춤은 춤으로 소리는 소리로 놀아보니 산해진미 따로 없다. 장단 잡아 펼쳐 놓고 악기소리 졸졸졸 물처럼 흘러가고 즉흥 춤에 모아진 흥 바람타고 절로 난다. 좋~다.

즉흥에 즉흥이라 우리나라 최고의 명인모여 시나위 한자락 펼쳐보니 대금에 이생강 명인, 피리에 이종대 명인, 해금에 김영재 명인, 가야금에 임경주 명인, 거문고에 김무길 명인, 아쟁에 백대성 명인, 아이구 힘들어라 아이구 대단한 거...장고 허봉수 명인.징에 이호용 명인 대령이요.

시나위 명인들의 연주 장면.

아니 이번엔 무엇이뇨. 부채꽃이 피니 부채춤이로다. 한국 춤의 대모 김백봉 명무와 제자 안병현 명무의 부채춤이 펼쳐지는구나~
 
                 김백봉 명인의 부채춤.

다음은 승무인데 “얇은 사 하얀 고깔~ 고이 접어 나빌래라‘ 펼쳐지니 그 아니 아름다운 춤이라 하지 않으랴. 묵직한 대풍류에 얹어 승무 펼쳐지니 승무의 지존 이매방 명무와 최창덕 명무의 무대구나~

이매방 명인의 승무. 리허설 장면.


<합창>
소리로다 소리로다. 경기민요소리로다
소리로다 소리로다. 서도민요소리로다
민요란 무엇이냐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한과 신명의 소리
민요란 무엇이냐
픙자와 해학이 있는 일과 놀이의 소리
어절시구 흥이 난다.

<사회>
슬퍼도 좋고 기뻐도 좋은 소리 민요로 나가보니. 경서도 명창들의 소리 판이로다. 경기는 얼씨구, 서도는 절씨구하니 경기민요는 이춘희명창, 이호연 명창, 이선영 명창이고 서도민요는 이은관 명창에 박성현, 김영빈, 전옥희 명창이로구나. 자 왔구나 왔나 아니 무엇이 왔나 경서도 소리가 왔구나 왔소이다.

왼쪽부터 이선영, 이춘희, 이호연 명창의 경기민요 공연.  노래가락, 청춘가, 창부타령.


93세의 이은관 명창과 제자들의 서도민요 공연 장면. 배뱅이굿, 신방아타령,농사타령--

<합창>
경기 서도 지나 남도로다. 호남가 한자락에 절로 멋이 드니.
부채를 높이 들어 소리 한 자락 메겨보니 두둥실 소리세상 펼쳐진다.
남도라 풍류고장, 판소리 광대 모두 모여 남도민요로 흥을 낸다.
흥흥흥 남도 신명타령이요.

<사회>
남도민요에는 판소리 명창 박송희 명창 조순애 명창, 성우향명창, 김영자 명창, 정순임 명창 대령이요.얼씨구 절씨구! 

왼쪽부터 김영자, 성우향, 박송희, 조순애, 정순임 명창의 남도민요. 육자배기, 잦은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제3장> 신광대가 

<사회>
아따 뻑적지근 하구만 잉, 경기에 서도, 남도창에 춤까지 말여, 으메 그야말로 별일세 별이여, 별이 뜨니 세상도 밝아지고 우리 소리판도 밝아 지네요, 안 그럽니까? 자 그럼 옛 광대, 오늘 광대 보았으니 이제 신광대판 한판 벌여보니 바로 이렇더라

<합창>
옛 선생 이르기를
광대라 하는 것 그 아니 어려우랴하시거늘

광대란 하늘에서 나는 것
원원한 그 속판 타고 난대로
광대라 하는 것은 천지의 입이요
광대라 하는 것은 인간의 손발이라
광대소리는 사람으로 통하는 천지의 소리

찌그러지고 갈라진 세상
막히고 토라진 것들
갈아 업고 휘둘러치며
세상을 깨우친다.
그 광대 누구인가.

<사회>
자고로 광대는 소리로 사람을 살리고 소리로 세상을 개벽하는데, 세상을 살리는 소리. 그것이 광대의 소리인데. 풍류있고 사람과 생명을 위하고 민족을 일으켜 세우니 그것이 바로 바로 신광대. 신광대가 일어나 소리판을 펼쳐내면 세상이 뜰썩 들썩 얼씨구 신광대 내력 어디 한번 들어보자

<합창>
광대의 제일치레는 풍류. 천하를 조화하고 생동하게 하는 소리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어찌 아니 새로우랴

<독창>
풍류라 하는 것은
하늘의 명을 받아 소리로 천하의 뜻 받드는 것
소리로 풍류에 들면 천지가 요동치니
하늘처럼 풍요롭고 바람처럼 변화롭고
햇살처럼 따스하고 물처럼 여울진다
소리로 푸는 풍류,아니 새로우랴

<합창>
광대의 다음치레는 생명, 세상 살리고 보듬어 주는 자연의 소리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그 아니 새로우랴

<독창>
생명이라 하는 것은 자연의 뜻.
피고 지는 조화 속에 생명은 절로 피니
노래하라 생명을, 찬미하라 자연을
생명을 위하면 광대정신 절로 사니
소리로 푸는 생명, 그도 또한 어렵구나

<합창>
광대의 다음치레는 인간
생노병사 고달픈 인간의 삶을 풀어주는 소리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그 아니 새로우랴

<독창>
인간이라 하는 것은 천하의 중심이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풀어주는 소리
삶과 죽음, 병들고 지친 사람들의 고된 삶을 소리로 풀어주니
광대는 그런 것, 그도 또한 어렵구나

<합창>
광대의 다음치레는 소리, 민족의 혼을 일깨운다.
쇠망치소리로 일깨운다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그 아니 새로우랴

<독창>
소리라 하는 것 광대의 기상이니 천생의 그 소리로 득음을 이루나니
소리가 제일이면 천하강산 휘잡는다. 호랑이 기상으로 민족혼을 소리하니
광대소리 절로 민족의 혼 일깨운다.
신광대가 일어난다. 세상이 절로 살고 이 민족 절로 산다

<사회>
그렇지 신광대란 
그런 것이여. 신광대 일어나면 천하가 움직이니 신광대여 놀아라 저 세상 끝자락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져라. 놀아라 광대여 얼씨구 새로운 생명 새로운 소리로 신광대판을 열어라


<종장> 광대여 일어나 천하를 움직여라

<합창>
놀아라 놀아 신광대여 헌 소리 주고 새소리 받아라
놀아라 놀아 신명나게 강강술래 강강술래
역사가 돌고 세계가 돈다 돌아라 돌아
우리 속에 세계가 있네. 우리 소리 민족의 소리 민족의 소리는 세계소리
열린다 열려 어서가자
광대여 일어나 천하를 움직여라
새로운 생명, 새로운 세상 동트게 하라
새로운 소리로 신광대판을 열어라
부르자, 새생명 부활하는 광대의 노래를
온세상을 소리로 연다
온 고을 빛나는 신광대판이로다
광대여 새날을 열어라 새소리를 열어라
역사의 숨결 몰아 거침없는 사자후로
민족의 혼을 깨워 세계를 호령하고
온누리 온세상 새소리로 누비어라


뒷풀이

모든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어울어져서 "진도 아리랑"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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