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러쉬'란 말이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이 쓴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라는 책에 나오는 단어다. 전세계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지칠 줄 모르고 예술계로 뛰어드는 현상이 마치 금광을 찾아 몰려드는 '골드러쉬'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만든 말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왜 가난한 것일까? 그것은 예술계가 오로지 1등만이 존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토마토를 100박스 담은 사람은 99박스를 담은 사람보다 1%의 돈을 더 많이 받지만, 육상선수 A가 B보다 1% 빠르면 A는 1%만큼 상금을 받는 게 아니라 모든 상금을 혼자 독차지한다. 이러한 승자독식 현상과 함께 예술가들이 가난한 이유로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선입견, 비금전적인 보상 추구, 위험감수 성향, 자만심과 자기기만 등을 들고 있다. 또 예술가 공급과잉 현상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한다. 승자독식이 가져오는 장밋빛 환상에 이끌려서 젊은 예술가들이 과잉공급되고, 그 결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대거 배출된다. 예술지망생들은 자신이 앞으로 돈을 얼마나 벌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화려한 행운만을 믿으며 발을 디디게 된다. 이러한 예술지망생들을 부추기는 예술학교의 설립과 국가의 지원은 예술가 과잉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메세나라는 부호가 있었다. 그는 막대한 재산으로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오늘날 예술을 후원하는 많은 정부와 기업들이 이러한 메세나의 정신을 이어 받아 예술가들을 후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후원의 혜택은 극소수의 선택 받은 예술가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계의 승자독식을 심화시킨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 더 이상 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예술가들의 경쟁을 왜곡시키며 예술계의 빈곤현상을 심화시킨다.
그렇다면 정부의 지원을 중단해야 할까? 과연 예술이 국민의 세금인 국고를 통해 지원해야 할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또 그 지원은 과연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많은 논란거리를 담고 있다.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의 견해도 다르고, 예술애호가와 예술에 관심이 없는 대중들의 견해가 다르고, 정부의 정책도 미국의 정책과 유럽의 정책과 우리나라의 정책이 서로 너무 다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늘려왔다. 그러나 MB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지원이 줄어들거나 중지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4대강 사업 때문에 문화쪽 예산은 대폭 줄었다. 예술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반갑지 않은 흐름이다.
이 흐름에 대해 예술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예술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예술가가 시장에 적응해 자신의 작품들을 다변화해서 수입의 구조를 다양화시킬 수 있다면,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술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거라는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저자의 결론은 무책임하고 희망은 일방적이다. 시장에 맡겨 살아남는 예술도 있지만 살아남지 못할 예술도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장에 맡겨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시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 수명이 다한 예술로 취급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 중에는 우리가 꼭 간직해야할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지닌 것들도 많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소수민족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데, 사용자가 없거나 줄어들고 있는 언어는 사라지게 내버려둬야 할까? 자, 예술이 스스로 밥 먹고 살 게 시장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과, 예술을 후원하고 지원해 예술을 키워내야 한다는 주장, 어느 쪽이 옳을까? 정답은 없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나 기업이나 정부나 개인들의 선택에 따라 그 추가 좌우로 이동할 뿐이다.
(이 글은 4월 18일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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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번안한 연극 '아버지' 연출을 하느라 매일 대학로의 연습장에서 산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은 이순재, 전무송 선생을 비롯해 40, 50대의 중년 배우들과 20,30대의 젊은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다보니 연습장에서 마치 대가족의 일상과 같은 풍경이 가끔 벌어진다. 젊은 배우들은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싶은데 어른들이 계시니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또 어른들이 연습 시간보다 30, 40분 일찍 와서 대본을 보고 준비를 하시니 모두들 연습실에 일찍 오는 경쟁이 벌어진다.
어쩌다 이야기판이 벌어져서 두 분의 젊은 시절 얘기가 나오면 모두들 빙 둘러 앉아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 얘기들이 젊은 배우들에게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다. 60년대나 70년대가 주무대이니 겨우 40, 50년 전의 일인데도 그 시절의 연극 풍경에 대해 너무도 신기해하고 낯설어한다. 그 중 젊은 배우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배고픔'에 대한 얘기다. 차비가 없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터벅터벅 걸어서 연습장에 갔다는 얘기, 안주 사먹을 돈이 없어 '카바이트 깡소주'를 마셨던 얘기, 흥행이 안 된 공연을 끝낸 뒤 출연료를 한 푼도 못 받고 울었던 얘기 등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얘기다. 어느 날 두 분과 비슷한 시기에 연극을 했던 원로 연극인이 오셔서 '호랑이 담배 먹던' 얘기를 한참 하시다가 그토록 힘겨운 환경 속에서 연극의 열정을 불태운 원동력이 '외로움'이었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모두들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왜 연극을 하는지 저마다 사연이 다르고 굶주림에 대한 느낌도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지만 '외로움'이란 단어는 세대를 뛰어 넘어 공감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그런데 이 외롭고 배고픈 연극인들이 대학로의 주인공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젊은 배우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가난한 연극쟁이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그때 대학로의 주인공은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고 마로니에 공원이나 소극장 근처에서 밤새워 예술을 논하던 열정에 가득 찬 연극인들과 그들을 사랑하던 관객들이었다. 그런데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의 대학로 주인공은 상가와 음식점과 카페의 주인들과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손님들인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해가는 대학로의 화려함 속에서 연극인들은 소외감과 초라함을 느끼며 연습실과 극장을 들락거린다. 소극장을 운영하는 연극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학로를 떠나 임대료가 조금 싼 성대 입구나 혜화동이나 성북동 쪽으로 옮긴다. 그래서 요즘은 그쪽으로 소극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극장이 들어선 곳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뒤따르게 되는 법이니 몇 십 년 뒤에는 그쪽도 번화한 상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또 임대료가 오를 것이고 가난한 연극인들은 싼 곳을 찾아 그 곳을 떠날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파리의 몽마르뜨 거리나 뉴욕의 소호에서도 벌어졌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거나 연극을 하는 곳에 관객들이 몰리면 상가가 형성되고, 그 거리가 번화해지면 가난한 예술가는 떠난다. 이 현상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토론토대 비즈니스 및 창조학과 교수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와 창조계급>이란 책에서 도시의 경제 발전과 화가, 연극인, 시인, 음악가, 디자이너, 영화인, 연예인 등 보헤미안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보헤미안 지수'라고 명명했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 140인 중에 들 정도로 왕성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는 그의 연구는 가난한 보헤미안인 연극인들에게도 희망을 던져준다. 자신들의 예술 활동이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잘 살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자긍심도 선사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말의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과연 60, 70년대 선배 연극인들의 외로움과 배고픔이 오늘의 대학로를 만든 원동력일까. 아직도 대학로의 주인공은 연극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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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한류열풍에 도전하는 역풍도 만만치 않게 불고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의 일방적인 문화수출을 경계하는 여론과 함께 ‘반한류’ 또는 ‘염한류’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각국의 민족주의자나 극우세력과 결합돼 심각한 도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며칠 전부터 K팝 문화에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비판하는 글이 해외 인터넷에 올라 전 세계로 논란이 번지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불만도 높아져서 인기자체에도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 난 기획사들이 완성도가 떨어지는 K팝 공연을 무리하게 공급하면서 신뢰도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K팝과 한류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금의 K팝 열풍은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돌 가수 외에 폭넓은 연령층의 가수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한복, 한식, 국악 등 전통 문화와의 접목을 통해 다양성을 확대하고 문학, 동양철학, 클래식 등 순수문화와의 연계도 필요하다. 그와 함께 일방적 돈벌이의 수단으로 대상국의 팬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세계시민의 넓은 안목으로 한류를 통해 그들의 삶과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확고히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창의적 인재 양성’을 꼽고 싶다.
한류가 대변하는 문화산업은 창조력을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되는 미래 성장산업이다. 미국은 헐리우드와 디즈니와 팝송 등의 세계적 스타들을 앞세워 지구촌 문화산업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영국은 블레어 총리 시절에 주창된 ‘창조산업’이란 문화정책으로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 문명 중심국가’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일본 또한 아시아 문화의 주도권 싸움에서 중국에 뒤질세라 창조적 콘텐츠 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자신들의 문화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뭐니뭐니 해도 창조적 환경 제공과 인재 양성이다.
우리나라도 뒤늦게나마 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반적 인식은 ‘한류가 얼마나 돈을 벌었는가?’ 하는 경제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산업과 한류를 일으키는 기초 원동력인 창조력의 개발에 대해서는 지원도 투자도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도시와 창조계급>의 저자인 미국의 리쳐드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의 경제성장과 창조적 인재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헤미안 지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화가, 작가, 음악가, 연극인, 영화인, 디자이너와 같은 보헤미안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도시가 발전한다는 그의 이론은 창조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조력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공통의 관심 속에서 정성을 다해 꾸준히 숙성시킬 때 제조되는 포도주와 같은 것이다. 한류열풍을 지속시키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갈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창조적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이 글은 3월 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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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석방 판결로 인한 몸살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화성인 판결'이니 뭐니 하며 재판부를 비판했고, 보수 단체 회원들은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집을 향해 계란을 집어 던져 불만을 표출했다. 사법부만 몸살을 앓는 게 아니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는 악역으로 묘사된 검사가 나온다.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악의 무리'인 조폭들을 잡아들였던 검사들은 자신들을 조폭보다 더 악질적으로 그린 영화에 대해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판사, 검찰, 경찰 등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직업군이다. 그런데 그 동안 권력의 높다란 성채에 싸여 있던 이들의 권위가 여지없이 깨어지고 조롱 받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에도 재판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나뉘는 집단들이 그들의 권위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떠나 대규모로 불만을 터뜨린 경우는 많지 않았던 듯하다. 그리고 사법부 내부에서 서로 분열된 목소리를 내거나, 검찰이 사법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참다 못한 대법원은 1월 27일 '최근 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발표했다. 먼저 영화 '부러진 화살'은 "기본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라고 규정한 뒤, 최근의 사태들에 대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법관들 역시 "건전한 비평을 넘어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법부과 검경 조직에 대한 불신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 불신의 씨앗은 그들 스스로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부와 검경 조직이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정권과 독재정권을 지내오는 동안 권력의 편에서 법의 잣대를 휘둘러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수많은 시국사건과 인권 관련 재판에서 정의와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판결들로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해 온 것은 아직까지 사법부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데 법률가에 대한 불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인 듯하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법이란 것은 불치의 병처럼 유전되어 가지. 시대에서 시대로 승계되며,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동안에 합리가 불합리로 바뀌고, 어진 정치가 변하여 폭정이 되기도 한다"고 조롱했고, 셰익스피어는 <헨리6세>의 2부 4막 2장에서 "모든 법률가는 죽여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류의 조롱과 불신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최근 국민들이 사법부나 검경 조직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법률적 결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률가들 스스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거나 유감스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도전하는지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법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정성'이란 원칙에서 벗어나 그 동안 자신들이 범해 온 잘못된 관행과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 엄격한 칼을 들이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더욱 깊어가는 조롱과 불신의 늪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2월 1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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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2011년 3분기 기준 6.7%인데, 이는 '실질실업자'인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가 빠진 수치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15.4%로 늘어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작년 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실업자는 32만4000명이지만 '실질실업자'는 110만1000명이다. 100만이 넘는 청년실업자의 울분과 불안은 우리 사회에 어둡고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나꼼수’ 류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요즘 여야 할 것 없이 청년 인재를 영입하려 애쓰는 것도 이 기세와 무관하지 않다. 4월 총선에서 2030세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얄팍한 ‘꼼수’로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을 하고 싶은 청년들의 분노 어린 외침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1월 30일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는데, 그 회의에서도 청년실업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 정상들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 친화적 재정건전화’ 성명을 채택하고, 기업이나 노조 등과 협력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교육이나 직업 훈련을 제공하거나 창업을 돕는 방안을 추진하고, 10인 이하 영세기업에 대해 세금감면과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몇 년 전부터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고, 청년실업자는 너무도 쉽게 늘고 있다. 이를 타개할 길은 기존의 비좁은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한 모델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이 교육과 코칭과 사무실 임대와 최대 1억 원의 사업비 지원까지 패키지 형태로 묶어 지난해 3월에 문을 연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들 수 있다. 올해부터는 기존의 경기도 안산시 외에 전라남도 광주와 경상남도 경산·창원에도 설립한다는데 문제는 졸업 후의 창업 성공에 있다. 241명의 1기생들 중에서 창업의 성공 모델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가 사관학교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듯하다. 창업 정책의 성공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현재 한국의 청년들 사이에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나 교사 등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깊어지는 현상을 들 수 있다. 그런 청년들에게 위험과 모험에 가득 찬 창업에 인생을 걸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청년들의 부모나 주변에서도 창업보다는 취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훨씬 우세하다.
지난 해 말에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과 소규모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동안 한국 경제는 소수의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는 점을 취약점으로 지적했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인력과 자본이 모두 대기업에만 집중돼선 곤란하며 혁신적인 소규모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 더 많은 상상력, 더 큰 세계화이며 미래의 유망산업을 발굴하고, 이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에만 목매달지 말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창업에도 도전하기를 바라는 건 무망한 일인가? 취업과 창업 사이의 엄청난 간극은 언제나 좁혀질 것인가?
(*이 글은 2월 3일자 한국일보 '김명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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