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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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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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19
    내 인생의 '연출가'는 바로 '나' (38)
  2. 2009.06.04
    어느 배우의 혼란과 교수들의 시국선언 (72)
  3. 2009.05.05
    장관 껍데기 훌훌 벗고 광대로 돌아와보니 (24)

전 가끔 한 인간이 자기 인생을 가꾸어 가는 과정이, 한 작품을 창조해 가는 연출가의 작업 과정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뭐가 닮았는지 제 나름대로 분류해 봤습니다.


첫째, 인생의 미래를 설계한다.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대본이 있어야 하고, 연출의 역할 중 첫번째는 대본에 대한 해석입니다. 연출의 해석에 따라 똑 같은 작품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되기 때문에, 연출은 대본을 분석하고 수정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연출가의 손질을 기다리고 있는 <햄릿> 대본.

대본을 인생의 미래 설계도나 계획서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 인생을 분석하고 수정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는 게 인생의 연출가로서 첫번째 할 일입니다.


둘째, 인생의 연기를 연출한다.

대본에 담긴 이야기는 배우들의 대사와 동작을 통해 표현됩니다. 배우는 종이 위에 씌어진 글씨들을 자신의 영혼 속에 새겨 넣고, 자신의 육체를 통해 남에게 보여 주며, 극중 인물과 자기 내면 세계와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인물의 성격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배역에 몰두한 배우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배우들 개개인의 연기를 객관적인 눈으로 평가하고, 훈련시키는 연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극단 아리랑에서 필자가 연출한 연극 <인동초>의 한 장면.


우리 인간 역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아들과 딸의 역할에서부터 학생, 친구, 직장인, 나중에는 부모, 스승의 역할로 쉴새없이 변신해 가면서 살아갑니다.

자기 인생의 여러 배역을 객관적인 눈으로 평가하고 훈련하는 연출가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그 사람의 인생은 점점 성숙해 나갈 것입니다.


셋째, 인생의 갈등을 조정한다.

무대에서 빛을 받는 배우의 뒤에는 기획, 홍보, 무대감독, 장치, 조명, 의상, 음향, 소품, 장신구, 분장, 음악, 무용 등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스탭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작품 전체의 흐름보다는 자신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수많은 기술자와 예술가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통합해 나가는 사령탑이 바로 연출입니다.

저마다 자신이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면서 일을 진행하려면, 연출은 그들보다 특출한 능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고 남의 능력을 뽑아 내는 기법에 대해 능숙해야 합니다.

따라서 연출에게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그들이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설득력과 인력, 기술, 장비, 시설 등 배우와 스탭들의 능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연습 중에는 공연에 대한 긴장이 누적되고, 모두들 자신의 예술적 능력과 평가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대인 관계의 혼란으로 인한 애증이 교차되고, 육체적 피로로 인한 심리적 불안 상태가 점점 심해집니다. 

불평 불만의 말들이 오고가기도 하고, 연출의 지시에 대해 반대하기도 하고, 무표정한 냉소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험담, 의도적인 태만, 적의에 찬 시선 등이 연습장의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때로는 심리적 압박감에 의한 병이나 육체적 사고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고비를 넘어 공연을 앞두면 모든 참가자가 초긴장 상태에 이릅니다.

이런 심리상태에 쌓인 무리들을 이끌고 몇 달간의 연습과 공연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연출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연출 또한 공연이 다가 올수록 과도한 심리적 흥분 상태에 있게 되기 때문에 감정의 표출이 과격해집니다. 이성적이고 부드러운 성격의 연출가도 때로는 고함, 폭언, 욕설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난관을 끌고 가는 힘은 연출의 예술적 목표입니다. 연출은 오로지 작품에 대한 자신의 목표를 되새겨 가면서, 자신의 창의성과 예술적 영감이 성공하기를 빌며 하루하루 불안한 행군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가 연출한 국립극장의 뮤지컬 <우루왕>의 연습 장면.

우리 인생 역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주변에 있는 가족, 친척, 친지, 스승, 선배, 후배, 동료 등 수많은 인간들과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 중에 나만을 위해 주고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 틈새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나 마찰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꿈을 현실화하는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서로의 능력을 교류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때로는 연인처럼 주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때로는 폭군처럼 몰아쳐야 되고, 때로는 재판관처럼 냉혹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추진해야 하며, 일이 잘못 풀려 나갈 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외로운 사색에 잠겨야 합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자신의 스트레스는 혼자 해결하고, 남들을 보살펴야 하는 무거운 책무가 두 어깨에 지어집니다.

이때 자신의 인생을 연출적 입장에서 끌고 가려면 사람과의 친화력이나 카리스마와 같은 여러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강철같은 의지력과 무사와 같은 투지로 여러 역경을 헤쳐 나가야 자신이 계획한 인생의 꿈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넷째,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책임진다.

마지막으로 막이 열리고 작품이 관객과 만났을 때 연출가는 배심원 앞에 선 피고와 같은 입장이 됩니다. 관객들의 눈빛, 짤막하게 내 뱉는 감상평, 평론가나 기자들의 논평 등등이 예사롭지 않게 그의 귀를 파고 듭니다.

공연이 성공하면 그 동안 쌓인 모든 불만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서로 껴안고 술을 마시고, 치하의 말들과 존경과 사랑의 눈빛이 오고 가고, 공연이 일찍 끝나게 됨을 아쉬워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서 함께 일하기를 다짐합니다.

그러나 공연이 관객이나 평론가들의 무관심과 혹평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면 모두들 힘겨운 공연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차가운 눈빛과 의례적인 치사, 겉돌고 맥 빠진 대화, 공연의 실패에 대한 서로간의 책임 전가, 그 동안 쌓인 불만의 과격한 표출로 이어집니다.

이때 공연 실패의 제일 큰 책임은 연출에게 돌아가는 게 일반적 경향입니다. 반대로 성공의 공은 저마다 제 몫을 나누기 싫어하기 때문에, 배우들과 여러 스탭들의 공을 빼고 나면 연출에게 돌아오는 몫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쉐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한국판으로 각색한 <우루왕>의 공연 장면.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고 그의 인생에 대해 존경의 말을 건네는 경우와, 아무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고 그의 인생에 대해 비웃음의 말이 오고 가는 경우는 정반대의 결과를 안겨 줄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객관적이고 폭 넓은 시야로 자신의 인생 계획을 분석하고 수정하며,
다양한 인생 배역을 소화해 내기 위해 엄격하고 치열한 연습과 훈련을 자신에게 요구하며,
자기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조화롭게 처리해 내며,
삶의 목표를 분명히 세워서 신념과 의지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인생의 연출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트랙백 1 AND COMMENT 38

연기 경력 10년쯤 된 어느 중견배우를 만났는데,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가 한 말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 연극을 시작한 신인 배우 시절, 저는 독재적인 연출가에게 연기를 배웠습니다. 그는 연습 내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욕설을 하고, 때로는 손찌검도 했습니다. 어느 여배우는 지시한 연기를 제대로 못한다고 발길에 배를 채이기도 했고, 어느 남자 배우는 연출이 던진 재떨이에 맞아 눈자위의 살이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은 그가 시키는대로 움직일 뿐,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거나 연출의 지시에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불호령과 함께 배역을 그만 둘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연습장은 언제나 숨막히는 긴장과 폭발할 것 같은 불만 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연출가 밑에서 몇 년 동안 극단 생활을 한 뒤, 다른 연출가의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출가는 정반대로 민주적인 연출가였습니다. 배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연기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고, 배우의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도 매우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로 설명하며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연출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기에 혼란이 생기고, 연출가의 그런 태도가 자신감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연출가를 무시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연기에 대한 긴장도 해이해졌습니다.

연기란 배우 자신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연기를 완성해 간다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저는 지금 독재적 연출가와 민주적 연출가 사이에서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의 고민을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그 배우와 흡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기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고, 내면은 스스로의 힘으로 키워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역시 내부의 창조적 힘으로 스스로 굴러 갈 때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사회를 민주적으로 가꾸어 나가겠다는 욕구보다 강력한 지도자의 독재적 리더쉽에 의지하는 욕구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한 욕구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때마침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124명이 6월 3일에 서울대 신양인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언문을 발표했군요.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고 밝힌 단체 회원 20여 명이 고성을 지르며 단상으로 몰려들고, 그 중 한 회원은 시국선언문을 찢어 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소란으로 기자회견은 잠시 중단됐고, 학생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동안 고성과 삿대질로 참가 교수들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울대에 이어서 중앙대 등 전국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참여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환경운동연합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도 시국모임을 갖고 입장을 발표했다고 하니 그러한 충돌과 혼란은 앞으로 더욱 뜨겁게 우리 사회를 달구어 나갈 듯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민주사회를 가꾸어 나가기 위해 "80년대의 뼈아픈 진통"을 또다시 겪고 있는 것 아닐까요?

TRACKBACK 7 AND COMMENT 72

문화관광부 장관 직을 그만 둔지도 어느 덧 2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TV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연기자로, 연극 <밀키웨이>에서는 극작과 연출가로, 최근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위원장으로서 즐겁고 바쁘게 살고 있다.
 

내가「대왕 세종」에 출연하고 있을 때, 모 일간지에 동정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한동안 여기저기서 화제가 됐다.


김명곤 씨 “장관 껍데기 훌훌~ 다시 광대로”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 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김명곤(55·사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KBS 1TV 사극 ‘대왕 세종’(극본 윤선주·연출 김성근)에서 배우로 복귀한다. 1999년 자신이 연출한 연극 ‘유랑의 노래’에 출연한 지 8년 만이다.

그는 그동안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연기와 멀어졌다.김 전 장관은 ‘대왕 세종’에서 고려 황실의 후예로 조선 왕조의 전복을 꿈꾸는 옥환 역을 맡았다. 옥환은 어린 세종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로 초반 30회까지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가 대하 사극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일보 2007년 10월 6일자 기사 중 일부)

나는 대학교 다닐 때만해도 광대라고 하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코에 빨간 공을 붙인 서양의 삐에로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줄타기하는 광대를 처음 보았는데 그 광대가 줄에 올라서서 “이 줄타기가 옛날에는 화랑의 기예였소!.” 하길래 깜짝 놀랐다. "화랑이라면 신라 시대의 무사 집단인데 줄타기를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광대에 관한 기록을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그윽하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며 유교, 불교, 도교의 3교를 포함한 것으로 민중을 교화하는 것이다.

신라 시대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쓴 글이다. 이 글을 바탕으로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는 이렇게 썼다.
 

선가(仙家)는 신라의 국선 곧 '화랑'으로 보며, 그 시원은 삼한의 소도(蘇塗)의 제관으로 고구려의 '조의선인(鳥衣仙人)'이다.

이런 글들을 보니 고대사회에서 예술가들은 하늘에 국가적 제사를 지낼 때는 제관으로서 활동했고, 그들의 신분은 왕족이나 귀족에 속하는 상류계급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화랑들과 함께 예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천민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광대”라는 말은 고려시대에 서역에서 들어 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인데, 예술가를 지칭하는 단어인 광대가 화랭이, 재인 등의 용어와 뒤섞이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광대들은 기생, 무당, 중, 백정 등과 함께 천민계급으로 살아야 했다. 이들은 사대부나 평민들과 한 동네에서 살지도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자기들끼리 기예를 전수하면서,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를 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광대들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런 상소문을 썼다.

광대가 봄·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과 겨울이면 추수를 바라고 농촌으로 쏠리는데, 특히 창촌에서는 사당, 창기, 주파, 화랑, 악공들의 잡류들을 엄금해야 합니다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왕의 남자>는 이 무렵의 떠돌이 남사당 광대패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실학사상이 일어나고 평민 가사, 탈춤, 판소리 등의 가치를 양반들 중의 몇몇이 언급하게 되면서 광대들의 가치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고종과 대원군이 권력을 쥐었던 무렵에는 광대들이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잔치에 초대받고, 심지어 명인, 명창, 국창 등의 이름으로 궁궐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기예를 선보이며 많은 돈을 벌고 신분의 상승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후 광대들은 또 다시 천대받게 된다. 그 상황은 일제시대의 학자인 육당 최남선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조의 재인, 광대들은 적극적으로 특별한 권장을 입지 못하고, '무식무기력한 예인'들이 사회 최하층적 지위에서 구차히 존재하다 보니까 거기 쇠잔이 있을 뿐이지 발달이 없으며 저락이 거듭될 뿐이지 향상을 볼 수 없음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조건 하에 있다 보니까 '수 천 년을 하루같이' '몸을 놀리는 기술'과 '우스개 놀이'쯤에 그치고 드디어 다른 데 만한 순희곡적 생장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명 풍화에는 조금도 유익한 바가 없으니 이는 연희를 실시하는 자가 학문이 없어 '동양의 부패한 풍습'만 알 뿐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했던 <서편제>는 이 무렵의 떠돌이 판소리 광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나는 대학시절에 오페라나 이태리 민요나 가곡이나 뮤지컬이나 비틀즈 등의 서구음악의 열광적 팬이었고, 괴테나 세익스피어나 입센이나 도스토에프스키 등의 서구문학(독문학)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우연히 판소리를 알게 된 후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고향인 전주를 무지 싫어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흔적이 너무나 짙은 그 곳을 어서 떠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진학공부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한국을 빨리 떠나 독일로 유학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인간문화재인 박초월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전라도 말이 그렇게 다양한 표현과 영롱한 문학적 향기가 있는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핏줄에 대한 애정 곧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조상과 조국에 대한 사랑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전통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이 아니다. 전통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았던 삶의 내용과 형식 곧 그 분들의 삶의 자취이고 향기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세월이 지나면 전통의 계승자가 될 것이며, 언젠가는 전통 그 자체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에게 전통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또 창조의 열정에 불타게 하는 소중한 원천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무식무기력’한 광대들에게서 내 예술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나는 ‘수천 년을 하루같이’ ‘동양의 부패한 풍습'을 몸으로 전해 온 그들의 예술에 매혹 당하고 심취하고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들의 ‘몸을 놀리는 기술’ 속에서 삶의 깊은 애환과 감동을 보았고, 그들의 ‘우스개 놀이’ 속에서 예술적 창조의 편린을 보았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애인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 종족의 일원이 되고자 ‘광대’라는 말을 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연기, 연출, 극작, 경영, 행정에다가 연극, 영화, 국악, 방송 등 여러 분야에 간여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당신의 정체는 뭔가? 아마도 이게 그들의 질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나는 그 모든 것을 추구하는 광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럼 당신은 어떤 광대가 되고 싶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책에 나오는 발렌친 카그다예프라는 브리야트 족의 샤먼과 저자와의 대화로 대신하고자 한다.

질문 : 당신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답변 : 훌륭한, 혹은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좋은 샤먼이 되고 싶고,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샤먼이 지녀야 할 미덕이다.

반면 모든 악과 문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남을,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베풀어 주는 것이 사랑의 첩경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현자와 성자들이 설파했던 조화와 사랑, 이것의 실천자로서의 샤먼 곧 ‘무당’의 역할에 대한 바이칼 샤먼의 지혜로운 말이 ‘광대정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광대란 '넓은 광(廣), 큰 대(大)'라는 말 뜻 그대로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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