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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28)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성악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의 누이들과 남동생도 모두 피아노나 키타를 치거나, 합창반이나 성가대를 하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어떤 날은 때 아닌 가족 노래자랑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잔잔한 바다 위로/ 저 배는 떠나가며/ 노래를 부르니/ 나폴리라네----”로 시작하는 이태리 가곡 <먼 산타루치아>나 우리 가곡 <나물 캐는 처녀>를 자주 부르셨습니다.
평상시의 퉁명스럽고 거친 목소리가 노래를 부를 때면 아버지답지 않게 가늘게 떨리고 부드러운 가성으로 흘러나오는 게 신기해서, 저는 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사에 나오는 '나물 캐는 처녀'가 아버지와 굉장히 친했던 어떤 여자인 것만 같은 상상에 빠지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알듯 말듯 미소를 짓고 눈을 가늘게 뜨고 ‘처녀’니 ‘어여쁘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오직 그 노래를 부를 때뿐이어서 특별하고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나면 아버지는 다시 무뚝뚝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와 함께 저의 즐거움도, 상상 속의 여자도 사라져버리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회상할 때마다 저는 이렇듯 두 가지의 상반되는 기억들, 부드러움과 거칠음, 밝은 미소와 침울한 표정, 상냥함과 무뚝뚝함, 따뜻함과 차가움, 침묵과 고함 속에서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버지를 닮아가는 저의 기질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 혼란은 더욱 더 커지기만 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세계가 있는 법이겠지만, 아버지의 기질과 사고는 남다른 것이어서 어린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출생과 어린 시절의 성장에 얽힌 불우한 환경이 큰 원인이 아닐까 짐작은 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렸을 때의 아버지는 칭찬에 무척 인색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반장이었고,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학생이었는데 유독 아버지한테는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서운함을 모두 가시게 해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입니다. 밤늦게까지 다음날 아침 자습시간에 제출할 산수 숙제를 하다가 피곤에 지쳐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호랑이 같은 분으로 학생들이 거의 매일 매를 맞고 지낼 때인지라, 저는 매 맞는 꿈에 가위 눌리다가 벌떡 일어나 부랴부랴 학교에 갔습니다. 숙제 검사를 할 때 비참한 심정으로 공책을 펼치는데, 세상에......뜻밖에 산수 숙제가 고스란히 풀어져 있는 게 아닙니까?
독특한 필체 때문에 아버지께서 밤에 대신 풀어놓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고, 저에게 깊은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 다니러 집을 떠나 있을 동안에는 아버지와 수시로 편지를 교환했습니다. 편지에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자상한 관심,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의 철학을 전수해 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배려가 담뿍 실려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지금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의타심 없이 자기 창의력에 충실할 것)
청년은 고독하다
고독이야말로 오늘날 청년에게 주어진
유일하고 가능한 상태인 것이다.(특권)
고독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투쟁인 것이다.
소신대로, 솔직하게, 생각한대로 해보는 것이다.
청년이란 것은 해보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고쳐 시작하고, 무한히 투쟁할 수 있다.
다시 고쳐 또 해도 기성인과는 달라서 흉이 없고,
오히려 칭찬 받는 시기이다.
자기에게 성실하고 대담함이 있어라.
교활하고 비굴함은 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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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마 뒤에, 아버지 역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충격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매일 막걸리를 과도하게 드시다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입이 비뚤어지고 눈은 초점을 잃고 말도 잊었지만, 다행히 침을 맞고 한방으로 치료한 효과가 좋아 차츰 회복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한번 파괴된 정신은 옛날 같지 않았습니다. 육체도 갑자기 늙고 쇠약해지셨습니다. 아버지를 돌봐주고 손톱도 깎아주고 말동무도 되어 주던 착한 누이동생이 시집을 간 뒤로, 살던 집을 떠나 경기도 삼송리의 단칸 셋방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연극 연습을 한다고 아침에 나가 밤중에 돌아 오기는 했지만, 생활비와 약값 걱정으로 제 어깨에는 천근 짐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일입니다.
저녁 식사를 차려드리려고 부리나케 집에 들어서는 참인데, 집 옆 공터에 아버지가 연탄재 한 장을 두 손에 들고 서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무심코 집옆의 가로등 근처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잠옷바람으로 연탄재를 버리려고 나오신 것인데, 잡초가 듬성듬성 나 있는 공터의 뒤쪽 구석에 있는 쓰레기장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는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두 손으로 연탄재 한 장을 들고서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집 대문 근처에 가져다 놓았다가, 아니라고 생각되셨는지 다시 집어서 부엌 쪽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좁은 공터를 맴 돌며 한참을 헤맨 끝에, 드디어 쓰레기장의 연탄재더미 위에 가까스로 올려놓으셨습니다.
5분이 흘렀는지 10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저는 가로등 뒤에 몸을 숨기고 아버지를 도와주지 않은 채, 끝까지 그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저는 중풍 걸린 노인이 연탄재 버리는 장면의 연기와 동선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극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를 위해 불편하신 몸으로 하루 종일 방과 부엌과 공터를 서성이며 연탄불을 갈고 밥상을 차려 놓으셨던 아버지에게 그따위 대응으로 일관한 제 불효가 뼈에 사무칩니다.
예술에 대한 자신의 고민에 겨워서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던 이기적인 아들을 아버지는 왜 그리도 사랑하셨는지....
이따금 골방에서 한 이불을 덮어쓰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때 그렇게도 행복해 하시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면, 핏줄을 타고 흐르는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이 지금까지 아버지와 저를 연결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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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이후로 그 여성은 시댁에 갈 때마다 거울을 보며 '나는 천사야, 나는 천사야!" 혼잣말을 하며 갔다는 겁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동안에도 시부모들은 그녀를 천사 대하듯 사랑해 주었고, 그녀도 시댁 식구들에게 천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군요.
그 사연을 듣는 동안 제 머릿속에 아버지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자주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 오시곤 했습니다.
아버지 얘기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아버지가 하는 말을 미소를 띠며 열심히 듣습니다.
어머니 '찬양(?)'을 마친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마누라, 우리 뽀뽀 한 번 할까?” 하며 부끄러워 뿌리치는 어머니를 붙잡고선 입을 한 번 맞춘 다음, 기분 좋게 코를 골며 잠이 드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술에 만취해 들어 온 남편에 대해 조금 전까지 품었던 불만이 스르르 사라지고, 어김없이 아버지를 멋있고 훌륭한 사나이로 생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식들이나 주변의 일가친척들이 돈 못 버는 아버지 흉을 보면, 아버지 편을 들어가며 그 양반은 언젠가 꼭 훌륭한 일을 하실 분이라고 변호까지 하시곤 했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로부터 천사라 찬양을 받고,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천사라 찬양을 받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또 한 남성이 한 여성을 천사라 생각하는 일도 아름답지만, 한 여성이 한 남성을 천사라 생각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만 찬양할 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살아 숨 쉬는 수많은 사람들을 천사로 찬양하며 산다면, 이 사회는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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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딸 아리에게! (42) | 2009.10.04 |
어느덧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새벽 창문을 통해 코끝을 시리게 합니다. 이런 날이면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다닌 강과 호수들이 생각납니다.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낚시와 족보 연구에 몰두하셨는데 그 동
그래도 저는 아버지와 함께 걷는 시골길이나 산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정답고 부드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아버지는 저에게 참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중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는 아버지가 제일 존경한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의 중시조 김일손 할아버지 얘기였습니다. 무도한 연산군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역적으로 참수 당한 강직한 선비.
아마도 아버지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다가 뜻을 펴지 못하고 불우하게 돌아가신 그 분에 대해 깊은 정신적 동질감을 느끼고, 제가 그 분의 뜻을 이어 받는 선비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세월을 낚는 동안 주변의 숲속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물속의 고기들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잡은 고기를 물속에 놓아주기도 하며 놀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허약해서 따가운 햇볕을 오랫동안 견디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하루종일 아버지 옆에 앉아 있던 제가 저녁에 일어서다가 기절하여 쓰러지는 통에, 20리나 되는 길을 낚시도구를 손에 든 채 저를 업고 돌아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낚시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니, 저를 미소짓게 하는 추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 우리 옆집에 전북대 국문학과 C교수님 댁이 이사왔습니다.
그 집에 아름다운 딸이 두 명 있었는데, 저보다 한두 살 어린 두 자매가 제 눈에는 그 집 울타리에 핀 장미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두 자매는 저에게 말도 한번 걸지 않을 만큼 도도했고, 저 또한 말한 번 걸지 못할 만큼 내성적이었습니다.
아버지와 교수님은 서로 친하셔서 바둑도 두고 낚시질도 함께 가시곤 했는데, 한번은 그 집 두 딸과 저까지 데리고 낚시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가기 전부터 가슴이 설레어 어쩔 줄을 몰랐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심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가슴에 꼭꼭 숨겨 놓았습니다.
낚시터에 가는 동안 소녀들과 저는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 때문이었겠지만 그때는 소녀들이 화난 것처럼 보여, 저는 전전긍긍하며 소녀들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낚시터에 도착해서 아버지와 교수님이 낚싯대를 펼쳐 놓고 의자에 앉아 물을 바라보자, 소녀들은 금새 지루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루함을 견딜 수 없게 되자, 언니가 드디어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산에 놀러 가자!"
그러자 교수님께서 저더러 데리고 놀다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소녀들을 데리고 호수 뒤에 있는 야산에 올라갔습니다.
소녀들이 힘들어하면 손을 잡아 올려주기도 하고, 꽃 꺾어달라면 꺾어주기도 하고, 산 아래 개울에 가서 송사리 잡아 달라면 어항을 들고 잡아주며, 하루종일 소녀들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저는 공주에게 처음 시중을 드는 하인처럼 쩔쩔 매면서도 너무 즐거웠습니다.
아버지하고 둘이서만 다닐 땐 느끼지 못했던 꽃향기와,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팔랑거리는 머리카락과, 앙증맞은 손의 감촉....그 모든 것들이 저를 황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매정한 두 소녀는 낚시에서 돌아 온 뒤, 다시 예전처럼 도도해졌습니다.
저한테 옆집의 소녀들은 너무 신비롭고 예쁜 공주같은 존재들이라서 탱자나무 울타리너머 바라만 볼 뿐,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졸업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아름다운 시절’은 오로지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살아남아 저를 슬프게 합니다.
제 기억 속의 논과, 강과, 호수와, 감나무와, 물고기와, 풀꽃과, 새들은 너무 아름다워 슬픕니다.
그리고 저의 눈에 비치는 추억의 땅과 하늘은 너무 맑고 깨끗하여 눈부십니다.
어느 날 문득 스모그로 부옇게 끼인 서울의 하늘을 떠나, 또 살벌한 경쟁의 싸움터를 떠나 제 안의 참 모습을 만나보려 할 때, 고향의 추억은 강물의 속삭임처럼, 소녀들의 웃음소리처럼 다가 와 저를 슬프게 그리고 황홀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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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참가자들이 모두 들어오고 한참이 지난후에 릭과 딕이 들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적같은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룬 아버지와 아들을 위해 환호화 눈물속에 기립 박수로 맞아주었습니다. 그뒤 그들은 지금까지 200회가 넘는 단축 3종 경기(1.5Km 수영, 40Km 사이클, 10Km 마라톤), 60차례가 넘는 마라톤 완주, 6000Km의 미대륙 횡단과 같은 기적을 이루어 내며 전세계 수많은 서포터들과 네티즌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을 받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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