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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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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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10.10.29
    법정스님이 산속에서 ‘사철가’를 불렀다니 (12)
  2. 2010.05.31
    고집스럽고 튼튼한 땅의 소리, 강도근 명창 (6)
  3. 2010.05.23
    목은 꺾였어도 최고의 공력, 박봉술 명창 (6)
  4. 2010.05.18
    4대째 이어지는 외곬수 고집, 정권진 명창 (8)
  5. 2010.05.13
    '서편제'에 특별출연한 김무규 단소 명인 (11)
  6. 2010.04.24
    소릿길을 받쳐준 '고수' 한평생, 김득수 명인 (8)
  7. 2009.09.25
    내가 생각하는 판소리 이야기 (34)
  8. 2009.09.04
    「서편제」의 영감을 준「조선창극사」 (24)
  9. 2009.08.30
    지리산의 겨울, 판소리와의 기이한 인연. (23)
  10. 2009.08.26
    '쑥대머리' 임방울, 노전대통령 노제의 '추억' (28)
  11. 2009.08.18
    내가 만난 최고의 관객 DJ를 추모하며 (91)
  12. 2009.07.29
    이청준님, '당신의 천국'에서 잘 계신지요? (32)
  13. 2009.06.06
    '서편제'와 '동편제', 통합의 소리판이 그립다. (19)
  14. 2009.05.21
    나는 언제쯤 <서편제> 족쇄에서 벗어날까? (41)
  15. 2009.05.05
    장관 껍데기 훌훌 벗고 광대로 돌아와보니 (24)
  16. 2009.05.03
    50대 후반의 컴맹인 내가 블로거가 되다니 (49)

요즘 지방에 다닐 일이 많다보니 고속도로 휴게실의 할인서점에서 4,000원이나 5,000원에 좋은 책을 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얼마 전에도 법정스님의 산문집 <오두막 편지>를 발견하곤 얼른 샀습니다. 하얀 책 표지에 까만 글씨, 붓선으로만 그려진 조촐한 공양 그릇 하나, 마치 스님의 편지 한묶음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 전기도 들지 않는 깊은 오두막에서 스님은 개울물을 길어다 밥을 해먹고 장작을 패서 불을 지피고 차를 달입니다. 그리고 예불하고 참선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세상을 향해 편지를 썼습니다. 단순하고 충만한 삶을 산 스님이 순수한 정신과 영혼의 언어로 쓴 편지들은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두막의 일상을 그릴 때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우리 사회에 쓴소리를 던질 때는 열정적이고 서슬이 퍼렇고 패기가 넘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어조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예불을 마치고 뜰에 나가 새벽달을 바라보았다. 중천에 떠있는 열여드레 달이 둘레에 무수한 별들을 거느리고 있다. 잎이 져버린 돌배나무 그림자가 수묵으로 그린 그림처럼 뜰 가에 번진다. 달빛이 그려 놓은 그림이라 나뭇가지들이 실체보다도 부드럽고 푸근하다.



스님은 이처럼 아름답고 소박한 오두막 생활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킵니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속에 발을 담고 살아가는 우리의 눈을 자연과 우주로 넓혀 줍니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스승의 모습이 글 속에 오롯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님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노래 부르는 스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별밤 아래서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를 불렀다. 곁에 들을 사람이 없으니 마음 놓고 18번, 19번을 죄다 쏟아 놓았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즉흥적으로 작사, 작곡을 해서 부른다. 그날 있었던 일을 오페라 가수처럼 노래로 부르고 있으면 아주 즐거워진다. 반주는 시냇물 소리가 알아서 해준다......<뜰에 해바라기가 피었네> 중


이어서 스님이 ‘오두막이 들썩거리도록’ 창을 부르곤 했다는 대목에선 추임새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나서 한때는 입버릇처럼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불렀다. 한참을 부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퍼져서 목소리가 촉촉이 젖을 때도 있었다......



별빛 쏟아지는 산속의 암자에서 독경이나 염불이 아닌 유행가나 창을 목이 터져라 불러대며,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저는 너무도 스님이 그리워졌습니다. 이런 줄 진작 알았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불원천리 찾아가서라도 스님과 마주 앉아 밤새도록 판소리를 부르다 올 걸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아직도 법정스님의 글을 그리워 할까요? 바로 이런 스님의 인간적인 빛과 향기가 우리를 감동시키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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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maisan2 BlogIcon 표고아빠 2010.10.29 07:17 address edit/delete reply

    법정 스님 생전에 저희 누님께서 찾아뵙고
    손수 만드셨다는 차를 한줌 얻어 오셔서 함께 나눠 먹었던 기억이 참 깊이 나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10.30 15:48 신고 address edit/delete

      누님이 스님과 귀한 인연을 맺으셨군요. 부럽네요.

  2. Favicon of https://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여강여호 2010.10.29 07:3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반주는 시냇물 소리가 알아서 해준다.....너무 멋있는 표현이네요....법정 스님이기에 가능한

  3. Favicon of https://easygoing39.tistory.com BlogIcon 카타리나^^ 2010.10.29 08: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다시 한번 법정스님의 글을 읽고 싶어지게 하시네요
    이 가을 한권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10.30 15:49 신고 address edit/delete

      가을에 읽으면 더욱 정취가 나는 글들이더군요.

  4. Favicon of https://yemundang.tistory.com BlogIcon 예문당 2010.10.29 09:4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법정스님의 다른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책 표지도 단아하고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저도 법정 스님의 책을 한권 읽고 싶어집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10.30 15:5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다른 글들 찾아 읽고 있답니다.

  5. Favicon of http://momentor.blog.me BlogIcon 엄마멘토 2010.10.29 14:00 address edit/delete reply

    사철가 가사를 아는 입장에서 상상해 보니...그 노래를 부르며 슬퍼지셨다는 고백을 보게 되니....
    역시 법정 스님은 참으로 솔직한 분이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삶에 초연하신 것 같은 스님이셨는데, 이토록 인생에 대해 감정적인 생각을 하실 수 있었던 분이었군요.
    영화 '서편제'를 보셨다는 대목에서...김명곤 선생님은 더더욱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10.30 15:5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우연히 읽고서 깜짝 놀랐어요. 도 닦는 스님께서 인간적인 감성이 그리도 풍부하신 줄 알고 더욱 존경심이 일더군요.

  6. Favicon of http://blog.daum.net/badcook BlogIcon 작은물결 2010.10.30 00:35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랫만에 뵙습니다.. 법정 스님 글을 읽다 보니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군요.
    잘 읽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10.30 15:53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랫만이네요. 그 분의 글에는 그림과 시와 자연의 향기가 어른거리더군요.




전라북도 남원 땅이라고 하면 누구나 춘향이를 떠올리거나 판소리를 떠올릴 것입니다.

실제로 남원군은 국악의 본거지라 할 만큼 수많은 명인명창을 길러냈습니다.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에서 태어나 판소리의 중시조로 일컬어지며 ‘가왕’이란 칭호로써 판소리계 최고 명창으로 떠받들어지는 송흥록 명창,
그의 아들 송우룡 명창,
송우룡의 아들로써 일제시대 판소리계의 왕자로서 일세를 울리다 간 송만갑 명창,
남원군 수지면에서 태어나 송만갑과 함께 일제시대에 이름을 떨친 유성준 명창,
유성준과 송만갑의 제자인 김정문 명창,
남원시에서 1900년에 태어나 여자 명창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간 이화중선 명창과 그의 동생 이중선 명창,
운봉면 화수리에서 1915년에 태어나 최고의 여자 명창 중 한 명으로 활약했으며 저의 스승이기도 한 박초월 명창 등등.......


모두가 남원 땅에서 태어난 명창들입니다.

남원에 있는 광한루. 출처 : http://www.lsphoto.co.kr/%3Fdocument_srl%3D616

이밖에도 많은 명인명창들이 일제시대인 1921년에 광한루 안에 세워진 <남원권번>에서 판소리나 시조나 가야금이나 춤 등을 배우고 가르치며 활동했습니다.

남원권번은 그후 일본 경찰의 강압으로 광한루 밖으로 쫒겨 나 민가에서 국악교습소 노릇을 해오다가, 1977년 11월에 광한루 건너 요천 곁의 금암산 기슭에 아담한 한옥을 세워 <남원국악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새롭게 증축된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kor/ti/e...6cat2%3D

강도근 명창은 1973년에 남원국악원 창악 강사로 자리를 잡은 뒤, 1996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오로지 이곳에서 제자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살아 온 남원 판소리계의 기둥입니다.

1918년에 남원시 향교동에서 강원종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일에 재미를 붙이며 열심히 땅을 가는 농부였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틈틈이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농부가나 판소리 가락을 흥얼거리면 주위에서 ‘얼씨구 절씨구’ 하며 목이 좋고 재주가 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그 재주를 썩히기 아까우니 정식으로 소리공부를 하라고 주위에서 자꾸 권하는 통에 17살이 되었을 무렵, 주천면에 살고 있던 김정문 명창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김정문 명창의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2년쯤 공부를 했습니다.

“한 2년 공부허다가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어. 젊은 나이에 심장마빈가 뭔가로 돌아가셨어. 그래 집에 돌아와 있다가 20살쯤 되었을 때 서울에 올라가서 조선 성악 연구회에 갔지.
그곳에서 송만갑 선생님헌티 소리공부를 했지. 김정문 선생이 그 양반 제자였기 땜시로 나도 당연히 그 양반한티 배워야 헌다고 생각헌 거여. 그런디 그때 선생님이 일흔 일곱 살인가 되셨으니 몸이 불편하셔서 잘 안 나와. 그런디 공부헌지 얼마 안돼서 선생님이 또 돌아가셨어.
그래서 구레 사는 박만조씨가 수십 년 동안 송만갑 선생님허고 사귀면서 그 사설이나 가락을 알고 계시기 땜시 그분한티 찾아가서 조금 배우고, 전라도 광양 땅에 이진영씨가 송만갑 선생한티 공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서 조금 배웠어. 아무튼지 죽어도 동편 소리가 좋다허고 동편만 찾었으니께.”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은 동편 소리는 송흥록으로부터 시작해서 송우룡과 송만갑을 거쳐 내려오는 송씨 집안의 소리로 그들이 전라도의 동쪽 지방인 구례나 남원에서 살았기 때문에 ‘동편제’라고 불리는 소릿제입니다. ‘서편제’가 장단의 변화가 많고 섬세하고 기교가 풍부한데 견주어서, 동편제는 장단이 똑똑 떨어지고 웅장하고 단순 소박한 것을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열심으로 공부를 하는 판인디, 어느날 갑자기 목소리가 변했어. 장가 가기 전이라 전부터 나를 좋아하던 여자하고 딱 하룻밤 잤는디, 그 이튿날 소리를 해보닝께 뒤통수에 무거운 돌을 매단 것 같고 목이 갈려서 독아지 깨지는 소리가 나.”

여자하고 딱 하룻밤 잔 것 때문에 목이 상했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남자 명창들이 젊었을 때 목이 상해서 고생한 경험을 얘기하는데, 그 원인이 거의 여자 아니면 술인 것으로 보아 젊은 시절에 정력을 함부로 낭비하는 것이 소리하는 데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남자는 사춘기를 벗어나면 어떻든 목이 갈려서 소리가 변하게 되어 있어. 그렇게 갈라져서 안 나오기가 십 년이 가. 그 재난을 이기고 뚫고 올라오지를 못해. 목이 안 나오니 생활은 안돼. 애는 터지고 부아가 나서 견딜 수가 없으니 술이나 퍼 먹고 좌절해 버려. 어렸을 때 명창 소리 들은 것 다 소용없고, 남들이 비웃기나 허고, 앞날은 암담허고.....나는 이십 년간 그 고생을 견뎠어. 없어진 소리를 되찾을라고 말도 못헐 고생을 혔지.”

그는 지리산 밑에 있는 쌍계사나 순천의 선암사나 남원산성 같은 곳에 가서 죽어라고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전 같은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창극 단체에도 잠깐 몸을 담았는데 인기 있는 선배 명창들의 뒷바라지나 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울적한 세월을 2년쯤 보낸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버렸습니다. 그 뒤 해방이 되고서도 여기 저기 창극단에 끼어 공연을 하곤 했지만, 일만 끝나면 부지런히 공향에 내려오곤 했습니다.

“창극단을 따라 다니면서도 농사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본시 농사꾼이라 일허는 것이 좋아. 남들은 일허기 싫어서 소리헌답시고 건달처럼 지내는디 나는 밭에서 지게 지고 하루 종일 일허고 나면 몸이 개운허고 기분이 좋아. 그렁게 판소리허는 사람들도 모두 다 알아. 저 사람은 소리허는 것보다 농사를 더 좋아허는 사람이다 그렇게 알아 버려.”

이렇듯 생활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명창이기 때문에 그의 판소리는 건강한 생활에서 오는 소박함과 강인함이 특징입니다.

“나는 서울 사람들허고 판이 달러. 그 사람들은 창이면 창, 연극이면 연극으로 먹고 살아야것다 허고 나선 사람들이지만 나는 내 손으로 농사지어서 먹고 살어. 그것이 나는 좋아. 서울 사람들이 촌놈이라고 비웃어도 나는 오히려 그 사람들을 비웃네. 나는 돈을 싸줌서 서울서 살라고 혀도 못 살어. 그리고 서울 가면 사람이 버려. 옛날에도 멀쩡한 청년들이 소리헌다고 서울 가서는 게집질에 술에 아편에 몸버린 사람 많았어. 그러니 우리는 촌에서 농사 짓고 사는 게 마음 편하고 좋아.”

이렇듯 도도하게 땅을 지키며 소리를 다듬어 온 그는 차츰차츰 목소리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 비로소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구사하고 몇 시간을 계속해서 소리해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는 ‘득음’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약간 쉰 듯한 수리성인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단단하며 고음이 강하고 튼튼합니다. 특히 그의 음질은 옛날 송만갑 명창의 음질을 많이 닮았고, 기교를 부리지 않고 통성으로 뽑아 냄으로써 동편제 소리의 특성을 가장 잘 전해 준다고 평가받습니다.

어쨌든 그는 서울 사는 소리꾼에게서는 보기 드문 고집과 힘을 지니고 있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오로지 돈과 출세와 인기와 명예를 멀리 떠난 그의 튼튼한 생활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그 전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논에서 살았는디 나이가 등게 그것도 맘대로 안돼. 인제는 일허는 것이 힘이 들어. 거기다가 여기 국악원에 애들이 워낙 많어. 그애들 가르치다가 하루해가 다 가버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찾아 오는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그의 목은 하루도 쉴 날이 없었습니다.

국민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하루에 쉰 명쯤 되는 제자들은 그의 덕으로 전국에서 벌어지는 학생 국악경연대회는 모조리 휩쓸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갖춘 ‘무서운 아이들’로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국악에 끼친 공로로 ‘한국국악협회 공로상’(1981), ‘남원시민의상 문화상’(1985), ‘KBS국악대상’(1986), ‘자랑스러운 전북인의 상 대상’(1988) 등을 수상하였으며 1988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의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는 30여 년 동안에 수백 명의 문하생을 길러냈습니다. 안숙선, 오갑순, 성우향, 김정숙, 한농선, 홍성덕, 강정흥, 전인삼 등 명창과 많은 국악인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습니다. 고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꼬박 학생과 마주 앉아 직접 북장단을 치면서 목청을 돋구고, 소리 하나하나를 일일이 교정해주었습니다

“서울서는 소리 가르치는디 5만 원도 받고 10만 원도 받는다고 허는디 그것 몹쓸 일이여. 소리공부 허는 학생치고 부잣집 애들이 없는디 누가 그렇게 많은 돈을 내고 공부를 허것어. 여그서도 국악원을 운영허느라고 7,8천 원씩 받고 있지만 소리는 돈 안 받고 가르쳐야 돼. 선생 먹고 살 것은 정부에서 보조해 주고, 제자들은 무료로 정성껏 길러내야 앞으로 국악이 발전허게 돼.”

앞으로 남원에서 명창이 나오게 된다면 이는 오로지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소리는 돈 안 받고 가르쳐야 된다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다가 돌아가신 고집스럽고 꿋꿋한 스승의 덕일 것입니다.

강도근 명창의 후계자 전인삼 명창. 출처 : http://www.postech.ac.kr/k/student/cult...ex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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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rtofdie.tistory.com BlogIcon 탁발 2010.05.31 08: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내 고향 남원의 긍지를 새삼 갖게 됩니다. ^^
    한편으로는 남원의 소리 이력이
    수많은 구전소설 중에서 남원의 춘향이 이야기가
    끝까지 살아남는 판소리 바디로 전해지게 된 배경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6.01 14:28 신고 address edit/delete

      남원은 예술과 음악과 사랑의 고장인 듯 합니다.
      앞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전통문화콘텐츠의 보물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요.

  2.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10.05.31 09:3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남원이 명창을 길러내는 이유가 많았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6.01 14:28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땅의 정기가
      명창을 길러냈나 봅니다.

  3. 쇠여울 2010.06.08 13:29 address edit/delete reply

    여수에 있는 여도라고 하는 사립초등학교에 있을 때 동료인 조영희 선생이 이 강도근 선생에게서 사사하고 있었고 덕분에 남원에 가서 직접 뵙고 소리도 들어보았고 나중엔 직접 이 학교에 와서 공연도 해 주셨지요. 그리고 몇 년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서편제를 많이 듣다보니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 동편제 소리를 하고 있으면 웬지 답답하다는 느낌이 옵니다. 어른의 웅장함이 없이 끊어지는 소리가 나오니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만 제 느낌이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6.09 08:11 신고 address edit/delete

      맞습니다. 동편 소리는 어린이들이 맛을 내기에는 쉽지 않지요. 그대신 소리의 뼈대는 튼튼하게 세워지겠지요.




 '명인명창 이야기'는 네티즌들에게는 낯선 분들이 많고, 내용도 생소한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그래도 어디엔가 있을 '우리 문화 지킴이'들을 위하여 지금 아니면 언제 그 소중한 분들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스피어에 남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연재 중입니다. 오늘은 목은 껶였어도 소릿길을 빛낸 박봉술 명창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새벽 3,4시, 옆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는 어린 아들의 입에 아버지가 앵두사탕을 슬며시 넣어 주며 흔들어 깨웁니다.

“봉술아, 봉술아!”
“.....예!”
“잠이 깨냐?”
“예!”
“그럼 아버지 따라 해봐라. 둥둥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둥둥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소년은 어렴풋한 잠결에 앵두사탕을 빨아 먹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판소리를 부릅니다. 자신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차세대 명창으로 승승장구하던 아들 박봉래가  33세의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뜨자, 박만조씨는 이제 막 10살을 넘은 막내 아들 봉술에게 자신이 직접 판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21년에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중방리에서 박만조씨의 5형제 중 막내로 태어 난 박봉술 소년은 이렇듯 아버지의 판소리에 대한 집념 때문에 소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그의 부친은 오래 전부터 판소리에 심취해 있었는데, 특히 송만갑 명창과 교분이 두터워서 그에게 판소리를 직접 배우기도 하고, 큰아들인 박봉래를 그의 제자로 집어넣어 소리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 꿈이 꺾이자, 형에게 판소리를 배우던 막내아들에게 당신의 꿈을 걸어보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동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던 봉술 소년은 차츰 판소리에 재미를 붙여 낮에도 열심히 소리공부를 했습니다. 그 뒤 ‘꽃기운이 올라’ 소리에 힘도 생기고 소릿길에 눈이 뜨이자, 명창이 되어 일세를 울리려는 욕망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하여 16
살에 서울로 상경한 봉술 소년은 드디어 <조선성악연구회>에서 꿈에도 그리던 송만갑 명창을 만나 그에게 소리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송만갑 명창은 구한말과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이 나라 방방곡곡에 이름을 드날린 최고의 명창입니다. 박봉술 명창의 회고에 따르면 ‘송 명창 사진만 보아도 오갈이 들어서 소리 못하는 명창이 많을’ 정도로 뛰어난 명창이었습니다.

“우리 선생이 소리만 허시면 그 자그마한 몸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쇳소리 같은 '철성'이 몸으로 파고든단 말이여. 그러면 등골이 오싹오싹혀지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들 못허게 헌단 말여.
그리고 이 대목이 좋으면 저 대목이 좋고, 저 대목이 좋으면 이 대목이 좋고 해서 마디마디 소리가 좋고, 또 어떻게나 '상청'이 잘 나는지 상청을 질러대면 앵벌 날아가는 소리가 에--엥 에--엥 허고 나와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단 말여.
거그다 또 같은 노래를 헐 때마다 달리 혀. 말하자면 즉흥적으로 작곡도 허고 편곡도 허는 거지. 그런디 그것이 또 이렇게 불러도 좋고 저렇게 불러도 좋아. 수만 번을 불러서 소리를 뚜르르 꿰고 있으니 그런 재주가 나오는 거지. 우리 선생님이 그만큼 공력이 좋았어.”

박봉술은 “나는 평생에 우리 송선생님 한 분한테만 소리를 배웠다”고 말할 만큼 송만갑 명창의 소릿제를 많이 물려받은 명창입니다.

송만갑 명창(좌)과 박봉술 명창(우). 출처 : http://news.d.paran.com/snews/newsview2...r%3D2009

그렇듯 소년 명창으로서 귀여움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밤에는 ‘놀음’ 다녔습니다. 놀음이란 요샛말로 밤무대를 뛴다는 말인데 그때의 이름난 요정인 명월관, 식도원, 국일관과 같은 곳에 불려가서 판소리를 하면 어른 명창의 절반 값인 5원이 출연료인 ‘소리채’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목이 ‘괄리기’ 시작했습니다.

변성기가 되어 목이 잘 쉬고 고음이 나지 않고 소리가 탁해지는 것을 목이 괄린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소리를 잠시 쉬거나 성대를 보살펴가며 연습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고향으로 내려 와 지리산의 쌍계사에서 백일 공부를 혼자 시작한 것이 평생의 탈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무리한 나머지 안타깝게도 목이 ‘꺾이고’ 만 것입니다.

예전과 같은 맑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탁한 음색으로 변하고, 고음은 꽉 잠겨서 나오지 않으니 
그는 울적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왓습니다. 그 다음 해에 타고 난 목청과 애간장을 녹이는 목구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임방울 명창을 따라 일본 순회공연에 참가했지만, 목이 꺾인 그는 보잘 것 없는 단역을 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석 달쯤 순회공연을 한 뒤에 다시 고향에 돌아 오기도 하는 동안 해방이 되고 창극단들이 ‘비온 뒤 대나무 순 열리 듯’ 자꾸자꾸 생겨 이 단체 저 단체 따라 다니며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고 고생도 ‘직사하게’ 했습니다.

그럭저럭 결혼도 하고 전라남도 순천시로 이사해서 살게 되었는데,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여순반란사건’을 겪게 되었습니다. 

1948년 4월 3일에 제주도에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4·3사태가 확산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국군 제14연대를 급파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할 수 없다고 반발하며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단'과 '조국통일' 등의 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켜 일대 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반란군의 검문에 걸렸는데, 손을 내밀어보라고 해서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느닷없이 뺨을 때리면서 “이거 개놈의 새끼 아니냐?”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손이 하얗고 못이 안 박혀 있으니 일 안 하고 놀고먹는 반동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저, 저는 소리 허는 사람입니다“
“소리가 뭐냐?”
“창이요.”
“창? 창이 뭐냐?”
“노래요.”
“노래? 그럼 노래 한번 해봐라”
"(두 손을 하늘로 올린 채 벌벌 떨면서) 둥둥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오, 그게 소리구나. 너 그럼 이승만 찬양하고 김일성 나쁘다고 노래 안 했냐?”
“아뇨. 나는 춘향가, 흥보가 이런 노래만 부르요.”
“그럼 우리 김일성 수령 동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봐라.”
“나는 그런 거 부를 줄 모르요. 그저 옛날 선생님한테 배운 노래만 겨우 부를 줄 아요.”

그 말을 들은 반란군은 허허 웃더니 공중에다 대고 총을 한 발 쏜 다음 어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당원들이 수시로 찾아 와서 공산당에 가입해서 소리로 활약하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섭고 싫어서 못 마시는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게 취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은 편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도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취한 척 하며 드러누워 버리곤 했습니다. 그 '술' 덕분에 어지러운 시절을 죽지 않고 간신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순천에 국악원이 생기자 소리선생으로 지내면서 점차 술이 늘어갔습니다. 남모를 괴로움이 그를 점점 술꾼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소리를 안 알어줘. 바디는 좋고 공력은 있다고들 하지만 목이 꺾였응께 알어주는 사람이 드물어. 기껏 힘들여서 소리허고 나면 오천 원, 만 원씩 던져주니 오장이 상허고 울화가 나서 에잇 잡것, 나도 먹을 것이나 실컷 먹고 시간이나 때우자 허고 같이 앉어서 술을 먹어 버려”

이런 저런 울화가 쌓여 나중에는 ‘술이 봉 걸리 박’이란 별명까지 얻을 만큼 '술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때는 공부에 정진하려고 술을 끊어보기도 했습니다.

“한 삼 년 끊어 봤제. 그런디 술을 안 먹고 조심을 혀봐도 별것이 없어. 영양실조만 걸려”

그래서 차라리 ‘영양가 있는’ 안주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게 몸에도 좋고 정신에도 좋을 것 같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틈틈이 소리꾼으로서 활동을 하였지만 쟁쟁한 명창들의 그늘에 가려 그의 소리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러다가는 평생의 공부가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 '이를 갈고' 성공해보자고 결심한 끝에 1970년에 혼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열심히
제자를 가르치고 공연 활동도 활발하게 한 보람이 있어 드디어 52살 되던 해인 1973년에 판소리 「적벽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는 판소리에서 무엇보다 '공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창이었습니다.


'공력'이란 소리를 짜나가는 솜씨를 일컫는 말입니다. 목청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소리의 흐름과 가사 내용이 조화를 이루고, 가지고 나가는 소릿길에 무궁무진한 변화가 있고, 장단의 이음새가 자유자재하여 천변만화, 조화무궁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공력이 높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목청이 좋고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구사하여도, 변화가 없이 무미건조하게 소리를 하면 공력이 없다고하여 높이 쳐주질 않습니다.

“옛날 명창들 소리를 들으면 가지고 나가다가 느닷없이 신기허고 묘헌 소리가 나온단 말여. 헌디 요즘은 그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그것도 그럴 것이 요즘은 문화재 전수에 지나치게 많은 비중이 주어져서 스승에게 배운 그대로 하지 않고 가사 하나 장단 하나만 바꾸어도 큰일 나는 줄로 알고 있으니,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이 살아나지 않고 비슷비슷한 ‘복사 소리’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요즘 학자나 이론가들이 동편제니 서편제니 나누는디 나는 그런 거 안 따지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허고 서편제는 애원성이 많고 끝을 길게 끌고 허는 특징들이 있다고들 허지만, 그런 것들이 서로 오고가며 배우고 가르치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뚜렷하게 구별 지을 특성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괜스리 파벌만 생기고.
옛날에는 누구한테 배웠든지 간에 그 사람이 소리 잘 허먼 알아줬고 선생님한티 배운 것도 자기가 자꾸 고쳐감서 자기에 맞는 소리로 짰던 것이지 요새처럼 그렇게 빡빡허게 허들 안했어”

그의 소리를 처음 들어 보는 사람들은 안으로 꽉 잠겨서 탁한 음색이 나오고, 고음으로 올라갈 때는 가늘게 뽑는 가성인 ‘암성’으로 들릴 듯 말듯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왜 그를 명창이라고 하는지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자꾸 듣게 되면, 저음인 ‘하성’의 웅장함과 걸걸함, 그리고 소리를 질질 끌거나 잔 멋을 부리지 않고 곧 ‘소리에 꼬리를 달지 않고’ 씩씩하고 꿋꿋하고 거뜬거뜬하게 몰고 나가는 남성다운 소릿길, 그리고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하게 구사하는 장단의 변화, 들으면 들을수록 감칠맛이 나고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그의 소리에 점점 끌려 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의 소리가 나라에서 제일 공력이 많은 소리라고 감탄을 하게 됩니다.



비록 '목이 꺾여' 한세상을 울린 명창은 못 되고 말았지만 어느 명창보다 소리 연륜이 깊고 공력 높은 스승에게서 갈고 닦은 덕에 누구에게도 공력이 뒤떨어지지 않던 그는, 후학에 대한 안타까움을 남긴 채 1989년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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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10.05.23 08:5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소리를 짜나가는 솜씨를 공력이라 하는 것도 배우고, 무엇보다 모르고 있었던 박봉술 명창님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처음 듣는 존함이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25 06:22 신고 address edit/delete

      명인명창 중에는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많답니다.
      유명한 명창은 그들대로
      이름이 나지 않은 분들은 그들대로
      소중한 분들이지요.

  2. Favicon of https://muye24ki.tistory.com BlogIcon 무예인 2010.05.24 09:1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소리에 공력이라...
    많이 배우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25 06:22 신고 address edit/delete

      소리만이 아니라 무예, 서예, 춤.....
      모든 분야에도 적용되는 말인 듯 합니다.

  3. 쇠여울 2010.06.08 13:40 address edit/delete reply

    여기까지 읽고 나니 조금 의문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기간제 교사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주일이나 한달 간격으로 아이들을 맡고 있는데 아이들의 노래가 갈수록 밑으로 잠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성(머리속으로 내는 소리)에 대한 얄팍한 지식으로 아이들을 가끔 이끌어 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비성 정도만 되어도 고음을 무리없이 소화해 내는 것을 보지요. 그런데 여기서 보는 상성이 그런 정도 되는 아닌가요? 아님 전혀 다른 소리방법인가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6.09 08:1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잘 모르겠지만 고음에서 통성으로 내지르는 방법이 아니라 두성과 비성을 이용하여 가성을 쓰는 발성이 암성 아닐까요? 어린 시절에 무조건 지르는 발성을 연습하다가 성대가 상하는 소리꾼들을 많이 봤는데 우리 소리의 발성 훈련도 조금은 인체 생리학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판소리의 대표적 유파로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습니다.

동편제는 섬진강의 동쪽 지방인 구례, 곡성, 남원 등에 전해 오던 소릿제로 송흥록- 송광록-송우룡- 송만갑 등으로 내려오는 '송씨 가문'의 판소리를 원조로 치죠. 이 소릿제가 최고의 세력을 뽐내며 인기상승 중이던 구한말, 섬진강의 서쪽 지방인 보성에 박유전 명창이 '혜성같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소릿제는 송씨 가문의 소리와 너무도 달랐지만, 인기가 하늘을 찌를만큼 높다보니 애호가와 제자들 사이에 서로 자기네 소리가 최고라는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라도 판소리가 '동편제', '서편제'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성읍 대야리 강산마을 송정강 기슭에 있는 박유전 명창 예적비(오른쪽).
출처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l_no%3D2

박유전 명창은 1834년에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보성군 대야리 강산(岡山)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얼굴이 빡빡 얽고 눈이 하나밖에 없어 누가 봐도 못생긴 얼굴이었다는데, 그런 그가 판소리만 하면 그 못생긴 얼굴이 '꽃으로 보일만큼' 매력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는 저음인 '하성(下聲)'이 장군 소리와 같이 우렁차고, 소리가 둥글둥글하여 거름진 땅과 같이 기름지고, 우조나 계면조와 같은 운율의 흐름이 뚜렷하고, 소리의 높낮음과 빠르고 느림과 맑고 탁함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이 정연한 소리를 했습니다.

그 무렵 수많은 판소리 광대의 최고 후원자였던 대원군은 특히 그의 소리를 좋아해서 "박유전의 소리가 강산(江山)에서 천하제일"이라고 추켜 세우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의 호를 박 명창의 고향마을 이름과 자신의 칭찬을 합쳐 '강산'이라고 지어줬답니다.

그래서 그의 소릿제를 '서편제'라고도 하고, '강산제(江山制, 岡山制)'라고도 하게 된 겁니다. 운현궁의 사랑채에 기거하며 대원군의 총애를 받던 그는 무과(武科)에 급제해서 선달 벼슬도 받고, 한쪽 눈을 가릴 수 있는 '오수경(둥그런 검은 안경)'과 '금토시(최고급 팔목가리개)'까지 하사 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대원군의 지극한 총애를 받던 그는 민비에게 권력을 빼앗긴 대원군이 중국으로 망명하자 민비 일파의 보복을 피해 남으로 내려오다가, 전라남도 나주에서 정재근을 만나 그의 사랑채에 숨어 살게 되었습니다. 

정재근에게 판소리를 기르치면서 지내던 중, 대원군이 다시 득세를 하자 정재근의 일곱 살 난 조카 정응민도 함께 데리고 한양에 올라갔습니다. 어린 정응민은 운현궁 사랑채에서 판소리를 배우며,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고향에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대원군이 죽고 한일합방이 되자 박유전 명창은 “나라 잃은 가객이 살아서 뭐하느냐”라고 탄식하며 노래부르기를 그치고, 사골로 내려가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음식을 전폐한 채 한 겨울에 굶어 죽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 오기도 하는 '충성과 절개의 명창'입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정응민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리에 돌아 온 뒤, 광대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채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나라 잃은 가객'에 대한 스승의 정신을 잊지 못한 그는 세상 출입을 끊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제자를 삼아 소리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정응민 명창 사진과 그를 기린 벽소 이영민의 시.
출처 :
http://www.pansoricenter.org/skin_104/5...ndex.php

정권진 명창은 바로 이 고집스런 '농사꾼 명창'인 정응민 명창의 외아들입니다. 

1927년 10월 15일에 태어난 어린 권진은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판소리에 남달리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서당에 다닐 무렵에는 아버지의 제자들이 부르는 웬만한 판소리는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을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판소리 부르는 것을 엄하게 금지했습니다.

“명창이 되려면 수십 년을 공을 쌓아야 되는디, 그 공을 학문하는 데에 쓰면 몸도 편하고 훨씬 많은 일을 할텐디, 대우도 못 받고 고되기만 한 판소리를 허면 죽을란다”

이런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판소리 근처만 빙빙 돌며 애를 태워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아버지의 친구들이 “언제까지나 일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민족혼은 판소리밖에 없으니 독립되면 판소리가 빛을 볼 것이다. 아들도 애국자 만들려면 판소리를 가르쳐라” 하며 갖은 말로 권유하는 통에 간신히 허락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열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에 부산 동래 권번에 소리선생으로 있던 아버지의 수제자 박기채에게 소리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정응민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던 제자로는 김연수, 정광수, 김준섭과 같은 쟁쟁한 소리꾼들이 있었는데 박기채는 그 중에서도 정응민이 가장 아끼던 제자였습니다.

부산에서 낮에는 양복점 점원 노릇을 하고, 밤에는 소리 공부하기를 4,5년쯤 하던 정권진은 열아홉살이 되던 해에 고향에서 장복순과 혼인을 했습니다. 혼
인한 지 한 달 만에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선언한 뒤, 강진에 있는 고성사라는 절에서 공부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내가 판소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 년 기한을 잡고 절에 독공을 하러 들어가니 만일 기다릴 수가 없다면 떠나도 좋소”

집과 절을 오가며 판소리 공부를 하는 동안 해방이 되고 6.25전쟁이 터졌지만,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의 아내는 군산이나 대구나 대전 국악원과 같은 곳에 창악 강사로 초청되어 떠돌아다니는 남편을 한결같이 기다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에 국립 창극단이 설립되자 초창기 단원이 되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창
극단에서 1년쯤 지낸 뒤, 창극단을 그만 두고 국악예술학교의 창악 강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공연 활동도 계속한 그는 1964년에 「심청가」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 명창보다 가사 내용에 대한 이해가 밝고 판소리에 대한 이론이 정연한 명창이었습니다.

그것은 박유전의 강산제 판소리를 3대를 이어 수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유전 명창은 대원군과 교분을 맺으며 지내는 동안 많은 양반 선비들과 벼슬아치들을 만났을 것이고, 그들의 도움으로 가사 내용과 창악 이론에 안목을 높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강산제의 문파에 전해 내려오는 <광대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대명창이 되는 길은 '정심', '정음', '사채'에 달려 있다 하겠다.
'정심'이란 바르고 맑은 마음이니, 그 나라 음악을 듣고 그 나라 정치를 알아 볼 수 있듯이 가객의 소리를 듣고 가객의 인격을 알아 볼 수 있다. 심청가를 부르는 가객이 심청가를 청중에게 권하면서 자신이 불효를 하면 열기가 없는 죽은 소리요, 자신이 효를 행하면 생명감이 있고 기가 충만하고 진수가 담겨 참된 소리가 되는 법이니 소리 이전에 자신의 인격과 참다운 사람됨을 권하고자 한다. 
'정음'이란 소리를 엄격하게 성심것 하여 득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된다는 말이고,
'사채'란 품위 단정한 동작 곧 너름새이니 사채가 무게 있고 민첩하고 발 하나를 떼어도 정중함이 있어야 하며, 사방으로 이유없이 활보한다든가, 쓸데없이 부채질을 자주 한다든가, 난잡한 태도를 보여 품격이 떨어지면 올바른 사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강산제 판소리의 사설은 고상하고 점잖은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육담이나 음담패설이나 욕설은 없애거나 극히 절제해서 사용하고, 인물 묘사도 우아하고 장중함을 그 기본으로 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적벽가」에 나오는 조조가 다른 명창들의 '적벽가'에는 간사하고 교활하게 그려져 있는데 반해, '강산제 적벽가'에는 위엄 있는 장수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음악표현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슬픔을 강조한다든가, 무절제하게 웃음을 유발시킨다든가, 간사스러운 성음을 내는 것을 극히 싫어하여 대장부의 꿋꿋하고 웅장한 성음을 주장하고, 우조와 계면조와 같은 선율의 차이를 분명히 하며, 장단의 부침새가 정교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합니다.

이는 모두가 강산 박유전이 지녔던 소리의 장점이 모두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강산제 판소리의 '바른 마음'과 '바른 소리'와 '바른 몸가짐'에 대한 주장과, 그 소리의 대장부다운 기상과, 그 사설의 품위 있고 단정한 표현과, 그 장단의 정교하고 변화무쌍한 부침새는 다른 소리제가 따를 수 없는 품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강산제 소리제의 후계자인 정권진 명창의 판소리에 대한 남다른 고집과 안목은 이 소리제를 올바로 전수하는 데에 단단한 받침목이 되었습니다.



“요새 소리 좀 한다는 후배나 제자들더러 공부를 더 하라고 허며 돈이 있어야 공부허네, 처 자식을 벌어 먹여야 공부허네, 뒷받침이 없네, 하며 갖은 핑계를 대는디, 그 모두가 구실에 지나지 않어. 오로지 일심으로 공부에만 전념허면 지금 인심으로도 후원자가 생겨나서 처자식 굶어죽게 안 만들어”

그는 무엇보다도 공부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명창입니다. 그래서 타고난 목청이나 재능만 가지고 한몫 벌어 보려고 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도 대성하지 못한 미숙한 소리꾼으로 여겼던 그는 소리꾼들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강조 했습니다.

“잘 살고 배부르고 인기가 있으면 참다운 소리를 해치는 법이여. 학자가 배가 고파야 참다운 글을 쓰고, 정치가가 배가 고파야 참다운 정치를 하고, 병들어서 병원 생활을 해 봐야 환자의 괴로움을 알듯이 소리하는 사람도 고생을 하고 만고풍상을 겪은 뒤에야 겨우 뭔가 이루어지는 법이여.
판소리라는 게 전봇대와 같이 큰 뜻을 세우고 전력을 다해서 공부해 봤자 바늘 만큼밖에 이루어지지 못 허는 법인디, 하물며 놀고 마시고 각시질이나 하고 인기나 좇아 흘러다니다 보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법이지”

이는 그가 가난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연마하여 깨달은 결론이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쳐오는 진실함이 있습니다.

“옛적에 소리의 왕이라고 불렸던 명창 송흥록은 자기 소리를 알아주던 영의정 김병희가 죽으니 그를 따라 함흥에서 절사하시고, 강산 선생님도 자기 소리를 아끼던 대원군이 돌아가시자 그를 따라 순사하셨어.
이와 같이 참된 소리꾼은 부귀공명을 탐하지 않고 지조와 절개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돈만 주면 아무데나 가서 막 소리를 해대. 요즈음이 아니라 일제 때에도 권번 제도를 만들어가지고 기생방에서 소리를 하게 했어. 말하자면 민족예술을 화류계화시킨 거지.
예전에는 판소리에 삼강오륜이 있다 하여 명창들이 감찰이니 오위장이니 벼슬을 하며 정치의 도구로 쓰였는디 일제 때부터 놀고 먹고 ‘에야라 놀아라’ 식의 소리로 변한 거지. 그러니 소리꾼들의 생활도 무절제하고 방탕할 수밖에 없었지. 그러나 지금은 그러면 안돼. 지조와 절개를 가지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사명을 소리꾼들이 짊어지고 나가야 돼.”

1986년에 세상을 뜬 그의 판소리에 대한 외곬수 고집을 정회천과 정회석 두 아들이 4대째 이어가고 있으니, '보성소리' 집안의 고집이 대단히 소중하고 값진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군요.


4대째 판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정회석 명창. 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3D158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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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로노토포스 2010.05.18 06:01 address edit/delete reply

    모르고 살던 부분에 대해,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시면 '명인열전' 같은 형태로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왔으면 하는 배램도 있구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9 16:07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딘가에서 우리 것에 대해 열정을 지닌
      지킴이들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2.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10.05.18 06:1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고집으로 한 길을 걸으시는 분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s://artofdie.tistory.com BlogIcon 탁발 2010.05.18 06:2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정회석의 소리 참 좋죠.
    그리고 4대를 잇는 명창집안에게 장관재직 시 좋은 일 하신 것도 기억나는군요.
    그런데 명가 지정이 그 이후로 계속되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
    좋은 일이고 마땅한 일인데...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9 16:09 신고 address edit/delete

      명창명가의 소중한 지킴을 위한
      지원이 점점 끊어지는 듯 하여 안타깝네요.

  4.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10.05.18 09:3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언젠 명창의 창소리 한번들어야 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9 16:09 신고 address edit/delete

      편안한 때 실컷 들어보시면
      뭔가 가슴을 울려줄 겁니다.




 '명인명창 이야기'는 네티즌들에게는 낯선 분들이 많고, 내용도 생소한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그래도 어디엔가 있을 미래의 '우리 문화 지킴이'들을 위하여 지금 아니면 언제 그 소중한 분들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스피어에 남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연재 중입니다. 오늘은 저와의 인연으로 「서편제」에 특별출연한 김무규 명인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영화「서편제」
에서 여주인공인 송화가 눈이 먼 후, 제가 맡은 역인 아버지 유봉과 함께 호젓한 산길을 걷다가 어느 퇴락한 기와집에 잠시 머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집의 주인이 하얀 한복을 입고 정자에 앉아 거문고를 켜고, 유봉이 그 앞에서 구음을 부릅니다. 바로 그 장면에 나왔던 거문고 연주의 주인공이 김무규 명인입니다.


이 분은 저하고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병이 걸려 휴학을 하고 지리산 '상선암'이란 암자에서 잠시 휴양하고 지내던 겨울날입니다. 그해 여름에 판소리를 처음 듣고 한창 판소리에 열이 올라있던 제 귀에 구례에 산다는 '단소 명인'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암자에서 만난 친구 2명과 함께 지체없이 그 명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구례읍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산길을 물어물어 걸어 간 끝에, '절골' 마을에 사는 김무규 명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고풍스러운 기와집을 찾아가니
호리호리한 명인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그는 꿀 한통을 드리며 단소를 배우러 왔다는 '산 청년'들에게 “이 어려운걸 뭐 하러 배우려 하느냐?”하시면서도 먼 길을 걸어 온 정성이 갸륵했던지 다음에 한번 찾아오라고 허락을 하셨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찾아가니 집 뒤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대를 잘라 단소 세 자루를 만들어 놓으셨다가 선물로 주며, 단소 부는 법의 기초부터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명인에게 단소를 배우던 이 방에서 촬영한 <서편제>의 한 장면.

그 분은 제가 판소리에 관심이 있는 걸 아시고는 김소희 명창이 여름이면 제자들과 함께 자기 집에 연습을 하러 오기도 한다고 하시며, 명창들과 관련된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아쉽게도 그 분에게 몇 번 밖에 단소를 배우지 못하고, 몇 달 뒤에 복학해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연은 끊어지지 않아 나중에 그 분의 이력을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도 쓰고,  「서편제」를 통해 제가 반했던 기와집과 대숲이 멋지게 등장하고, 새하얀 한복을 입고 거문고를 치는 그 분의 모습도 영상에 담을 수 있었으니 기이한 인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무규 명인은 광대 출신이 아니라, 양반 집안에다가 천석꾼 부자집의 도련님이었습니다. 

삼백 년쯤 전에 이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된 그의 선조는 근면하고 검소하여 점차로 재산을 늘렸는데 그의 고조할아버지인 김영국은 진사 벼슬을 받아 집안을 일으켰고, 증조할아버지도 진사 벼슬을 받아 양반 집안으로서의 가통을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천석꾼 소리를 들을 만큼 재산이 불어났고, 그의 아버지 김형석은 가문의 영예를 더욱 떨치려고 옛집을 헐어 버리고 풍취 있고 우아한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와 함께 풍류객들을 불러들여 사랑채나 행랑채에다 재우고 밥을 먹이고 대접을 후히 하며 풍류를 즐겼습니다. 그래서 그가 태어난 1908년 무렵의 그의 집에는 이름을 날리던 쟁쟁한 음악인들이 쉴새없이 드나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려서부터 그의 주위에서는 거문고, 단소, 판소리, 시조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음악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아버지가 가야금 배우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금세 흉내내기도 하고 단소나 거문고도 몰래몰래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그에게 정식으로 스승을 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국악은 취미삼아 듣는 것이고 외아들인 그의 갈 길을 오로지 학문의 길로 정해져 있음은 온 집안이 잘 알고 있었고, 또 스스로도 국악인이 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구례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올라가 배제중학과 중동중학교에서 중등 과정을 마쳤습니다. 16살에는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에 사는 황묘숙이라는 두 살 위의 처녀에게 장가를 갔습니다. 황묘숙은 매천 황 현의 손녀입니다. 황현은 조선조 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 하니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절개 곧은 선비입니다.

매천 황현의 초상화.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00290148

새 짐승도 슬피 울고 산과 바다도 통곡하네
무궁화 강산이 무너지고 말았으니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역사를 돌이켜보니
인간으로서 선비 노릇 하기가 참으로 어려웁구나

그는 처가 쪽의 항일 사상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집에서 틈틈이 한문 공부를 하기도 하며 지내다가, 26살이 되었을 때에 다시 서울에 올라와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명륜전문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유학을 가서 제대로 한학을 공부하려던 그의 꿈은 선친이 눈병에 걸려서 앞을 못 보게 되는 통에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집에 내려와 쉬게 되었는데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데 서 오는 절망감 때문에 몸이 많이 약해졌고, 또 일본 사람들의 행패가 갈수록 심해지는 통에 바깥에 나가기도 싫고 해서 집안에 틀어박혀 실의와 우울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를 위로하기 위해 선친이 그에게 단소를 배워 보라 권하며 추산 전용선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전용선은 전추산으로 더 알려진 단소의 명인으로 전라북도 고부 사람입니다. 1888년에 태어나 스무 살 무렵부터 단소를 배우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정악 단소를 익히고 다음에 단소 산조를 창안한 사람으로 1965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단소로는 전무후무한 명인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날던 새도 멈추고, 울던 짐승도 울음을 그치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도 귀를 기울여 듣는' 전설적인 명인이라고 합니다.

추산 전용선의 음반. 출처 :  http://www.gugakcd.pe.kr/music_detail.a...RCD-1362

그런데 몸도 약한데다가 성격도 급하고 까다로워서 여간해서는 제자를 가르치지 않고 또 가르치다가도 제자가 조금만 못 따라하면 화를 버럭 내고 때려치우고 마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러한 그가 김무규만은 남달리 사랑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꼭 십 년 간을 그 집을 왕래하며 정성을 기울여 가락을 전해 주었습니다. 김무규도 어려서부터 음악에 젖어 있던 터인데다, 일제 말기의 암담한 시절을 뜻 둘 데 없이 불우하게 보내느니 음악에나 마음 붙이고 살아보자 하며 열심히 불었습니다.

단소는 '단소 소리가 제대로 나면 절반 공부는 마친 셈'이라고 할 만큼 제 소리 내기가 어려운 악기입니다. 그러나 제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상영산, 중영산 같은 가락을 배우기 시작하면 그 맑고 청아한 음색에 반해서 사정없이 빠져 들게 됩니다.

그 역시 한동안 단소에 미쳐서 <영산회상>, <청성곡>, <굿거리> 등 스승이 지닌 가락을 차근차근 배워 나갔습니다. 그러는 틈틈이 서울에 올라가 종로 수송동에 있던 정악 전습소에서 거문고, 가야금, 양금, 해적, 세피리와 어우러져 '줄 풍류' 즐기기도 하고, 단소 독주로 이름을 높이기도 하고, 거문고의 대가인 우당 김윤덕에게 거문고 가락을 전해 받기도 하고, 또 조선성악역수회에 놀러 가서 명고수인 한성준에게 북가락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의 단소 솜씨가 점점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면서부터 단소 연주자로 나설 기회도 많았고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요청을 모두 물리치고 시골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평생 야인이 되어 밭이나 갈다가 늙어서 죽겠노라고 호까지 '백경(白耕)'으로 지은 터라 스스로 '피리 부는 광대' 행세하기 꺼려 해서 무대에서나 '노는' 자리에서 단소 부는 것을 삼가 왔습니다. 그는 울적한 심사를 단소나 거문고로 달래거나, 활터에 나가 활을 쏘거나, 조선어학회 회원이 되어 국어 공부와 역사 공부에 정신을 쏟기도 하며 일제의 어두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한 세월이 십 년이 흘러 해방이 되자 그는 구례중학교에 몸을 담고 국어와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십 년쯤 교직 생활을 하며 교장까지 하다가 자유당 말기에는 정치 바람이 들어 민의원에 나섰다가 빚만 몽땅 지고 가산을 탕진했습니다. 민주공화당 때에도 국회의원 하려다가 돈만 날렸습니다.

그런 데에 쏟은 노력에 견주어서 기대했던 결실은 너무 보잘것없이 나이만 예순이 가까워 오니 정치 바람 타서 쏘다닌 게 모두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는 자각과 함께,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단소를 추켜들고 잊어버린 가락을 다시 찾고 잃었던 '짐' 찾았습니다.

"단소 부는 데에는 짐이 첫째지, 입김 말이여. 이 짐이 좋아서 일점 때가 없이 맑은 소리가 쟁반에서 옥구슬이 굴러가듯이 흘러 나와야 되는 법이여."

그 '짐'을 찾은 덕에 1985년에는 구례향제 줄풍류 단소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습니다. 그후로 그는 매일같이 십 리 길을 걸어 읍내 문화원에 들러 향토지를 쓰고, 학교에서 단소를 가르치고, 때때로 활터인 봉덕정에 들러 활을 쏘며 지냈습니다. 

80년대 후반 무렵, 제가 잡지 <음악동아>의 요청으로 그를 다시 찾았을 때 그의 집은 흥청대던 옛 자취는 모두 사라지고 퇴색한 건물의 곳곳에 먼지가 올라앉고 기와 지붕과 뜨락의 돌 위에는 푸른 이끼가 끼어 있는 쓸쓸한 고옥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연주 한 곡을 부탁하자 그는 소나무가 바라다 보이는 대청마루에 오랜만에 단소를 손에 들고 나타났습니다. 세월을 느끼게 하는 누르스름하게 변색한 두루마기를 단정히 차려 입고 정좌한 그는, 단소를 입에 대고 몇 번 짐을 넣어 다스려 본 뒤에 즐겨 부는 곡인 <청성곡>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http://www.inilnet.com/bbs/zboard.php%3...o%3D1099

끊어질 듯 이어지다가 잔잔히 스러지고, 잦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처연하게 솟아올라 한없이 맑게 뻗어 나가다가 툭 떨어져 떨고, 다시 잔잔히 이어지는 가락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앉았노라니, 그 가락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어디선지 맑은 물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는 눈을 지긋이 내리감고 취한 듯 단소를 불고 있었고, 그러한 주인의 주름진 얼굴을 햇빛이 내려쪼이는 대청 마루 끝에 앉은 고양이 한 마리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집의 풍경과 그의 모습에 반한 저는 「서편제」를 찍던 1991년에 임권택 감독님에게 그 집을 소개했고, 그는 마지막 거문고 연주 모습을 영상에 남긴 채 199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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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3 07:08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10.05.13 07: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은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절골.. 제가 근무한 부대 뒷쪽 행군코스 이름이 절골이었습니다 ^^*
    물론 같은 지명 다른 장소이었지만, 그 풍경이 고스란히 떠올랐어요 ㅎㅎ

    두번째는 황현
    어렸을 때, 인물백과사전에서 제 이름을 찾아오면 당시에는 보기 드문 안경을 착용하신
    매천 황 현님이 나오셨어요 ^^*
    선생님 글에서 접하니 더욱 반갑네요! ㅎㅎ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5 06:58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러고보니 동명이인이네요.
      먼 친척 아닐까요?ㅎㅎ
      절골이란 지명도 인연이 있다니
      단소와도 특별한 인연이 닿을지 모르겠네요.

  3. Favicon of https://muye24ki.tistory.com BlogIcon 무예인 2010.05.13 07:4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
    국악열전 잘보고 있어요

  4. Favicon of http://yureka01.tistory.com BlogIcon yureka01 2010.05.13 08:58 address edit/delete reply

    어쩌면 삶의 애환이 우리나라 가락속에 녹아든 이유가 다 있었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5 06:56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가락 속에는 수백년
      수천년을 이어온 선조들의
      삶과 영혼이 녹아 있지요.

  5. Favicon of http://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2010.05.13 09:06 address edit/delete reply

    가슴을 후비는 듯 애절한 단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혼이 담긴 예술이 무엇인가 보여주는 듯한 글 마음에 담아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5 06:55 신고 address edit/delete

      단소소리는 플류트 소리와 달리
      우리 가슴을 후비는 '무엇'이 있지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momentor BlogIcon 엄마멘토 2010.05.13 09:38 address edit/delete reply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이런 글 선생님 아니면 볼 수 없는 글입니다.

    그 장면 자체를 김무규 명인 집에서 촬영하셨던 것이군요.
    그렇잖아도 어제 둘째딸이 단소를 꺼내 한참 놀았는데..아기라서 불기는 커녕 여기저기 막대기처럼 휘둘렀지만요.
    이 글을 읽으니 오늘 다시 악보를 꺼내서 세령산을 불고 싶어집니다.
    저는 '짐'이 없어서 악보 보고 겨우 부는 수준이지만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5 06:54 신고 address edit/delete

      벌써 아기가 단소를 가지고 노는군요.
      엄마 덕에 국악의 선율에 흠뻑 젖으며
      자라날 아기가 사랑스럽네요.




그동안 명인명창에 대한 이야기를  띄엄띄엄 올렸는데 앞으로는 좀더 자주 전에 제가 발표했던 명인명창에 대한 글들을 손질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그래서 '명인명창 이야기'라는 카테고리도 만들었습니다. 
아마 네티즌들에게는 생소한 분들이 많고, 내용도 그리 흥미롭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어디엔가 있을 미래의 '우리 문화 지킴이'들을 위하여 지금 아니면 언제 그 소중한 분들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스피어에 남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 끝에 시작합니다. 오늘은 지난 번에 소개한 박동진 명창과 단짝이 되어 북 치는 '고수(鼓手)' 이름을 날린 김득수 명인입니다. 

“이 쌔려 죽일 놈아, 북 좀 잘 쳐라.”
“그렇지!”
“눈 구녁을 쑥 뺄 놈이 대답은 잘 허는구나.”
“암먼.”
“정신 똑바로 차려, 이 발꼬락을 지질 놈아.”
“좋다!”

누가 들으면 당장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멱살을 잡고 덤벼들 욕설에 고수가 “그렇지!”, “좋다!”, “얼씨구!", "암먼!” 하면서 넉살좋게 받아내는 일이 소리판에서는 곧잘 벌어집니다.

욕 잘 하고 음담패설 잘 하고 재담 잘 하는 소리꾼한테는 고수가 곧잘 재담의 희생물이 되는데, 어떤 고수는 소리꾼이 자기에게 욕을 하거나 재담으로 놀리는 것을 싫어하여 대꾸를 안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득수 명인은 소리꾼과 재담을 나누는 것을 즐겨했던 고수입니다. 특히 그의 오랜 벗으로 평생을 소리판에서 함께 지내온 박동진 명창과 소리판을 벌일 때에는 두 사람의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집니다.

“아이구, 저 놈이 발뒤꿈치에 감기가 걸려서 북을 잘 칠랑가 모르겠네.”
“소리만 잘혀 봐, 북이 저절로 쳐지지”
“오냐, 내 아들놈아”
“그렇지!”

이런 재담 덕분에 소리판은 생기가 넘치고 훨씬 재미있어집니다. 이것은 그가 재담을 꾸미고 받아넘기는 솜씨가 뛰어난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수는 소리꾼을 받쳐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예술관에 철저한 탓이기도 합니다. 

“북은 장단을 정확하게 짚어서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소리를 받쳐주어야 하는 법이여. 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야하는 것 처럼 북이 장단과 추임새로 소릿길을 닦아 주어야 혀.
소리가 나가다가 구렁에 빠질라고 허면 얼씨구 하고 추어주어서 빨리 지나가게 허고, 슬플 때는 북가락도 줄이고 추임새로 슬프게 분위기를 맞춰서 넣어 주고, 소리가 웅장할 때에는 북소리도 크고 추임새도 크게 하게 하고, 바쁘게 주워 섬길 때는 또 그런 분위기를 내주어야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중들이 즐거워하도록 분위기를 잡아 주는 것이 중요혀. 그래서 나는 기회만 있으면 소리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한테 소리를 잘하고 못 하고는 청중들한테 달렸다고 허지. 소리꾼이 소리 잘 하도록 실컷 추어주고 받쳐줘라. 그래서 일고수 이명창이 아니라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란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이여.”

위에 소개한 말의 앞부분은 「서편제」에서 유봉이 아들에게 북을 가르치면서 호통을 치는 대사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렇듯 그가 철저하게 소리꾼을 받쳐주는 고수의 역할을 주장하게 된 데에는 본래 북보다 소리를 먼저 배운 그의 경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서 김행원의 7형제 중 다섯째 아들로 1917년 7월 17일에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취미로 말도 기르고 진돗개를 길러 사냥을 즐기던 그의 부친은 정초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북, 장고, 징, 꽹과리로 풍물을 칠 때에나, 모를 심으면서 상사 소리를 할 때에는 언제나 으뜸가는 북잽이로 나설 만큼 북춤 추는 솜씨가 뛰어났고 판소리 북도 곧잘 치던 멋쟁이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집 뒤에는 조선시대 음악인들의 모임 장소라 할 수 있는 '신청(神廳)'이 있어서 노래 소리와 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집안과 마을의 음악적인 분위기에 흠씬 젖어서 자란 그는 진도보통학교에 다니던 일곱 살 무렵부터 채두인이라는 진도 소리꾼에게 남도민요와 육자배기와 판소리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시골의 명창에게 깊은 판소리를 배우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열세 살 무렵에 집을 떠나 전남 목포에 있는 권번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소리 선생으로 있던 오수암이란 젊은 명창에게 귀동냥으로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광군 법성포에 있는 명월관의 초빙을 받아 그곳의 여자들에게 소리를 가르쳐 주는 강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니까 귀엽고 예쁘고 목이 좋아서 소리도 듣기 좋으닝게 여자들한티 인기가 대단혔지. 그 덕에 한참 동안 요정 소리 선생으로 떠돌아 다닌 세월이 시작됐어.”

그곳에서 3년쯤 지난 뒤에 부산으로 가서 김광월이라는 여자 명창을 수양누이 삼아 그의 집에서 지내다가, 경북 경주군 감포읍의 달성관이라는 요정 주인에게 붙잡혀  그곳에서 2년간 소리선생 노릇을 했습니다.

그 뒤 울산 권번에 6개월쯤 있다가 경주 권번에서 1년쯤 지낼 적에 그곳에서 가야금을 가르치던 박상근의 권유로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박상근 씨는 가야금의 인간 문화재이신 성금연의 스승인데 참말로 가야금 잘 타신 명인이었어. 그 박상근 선생님하고 김천에 있는 명월관에 들렀지. 박동진이가 그곳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있길래 같이 가자고 해서 셋이 상경을 했어.”

스물을 갓 지난 두 젊은 소리꾼은 ‘조선 성악 연구소’의 대명창 선생 밑에서 공부를 하며 명창에의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선생님들이 창극 단체를 꾸며 일 년 동안 조선 팔도와 만주 지방을 순회 공연 다닐 때에는 함께 따라다니며 무대 경험과 소리의 기량을 한껏 넓혀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풍성함은 잠시뿐이었고 곧이어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젊은이들은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고, 순사의 검문 검색은 나날이 심해지는 불안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때 징병 안 갈라고 죽을 고생했어. 공연을 해도 작품을 일본말로 해야 돼. <흥보전>을 할 때에는 흥보자식들이 일본에 충성하러 즐겁게 군대에 간다는 내용을 넣어야 했어. 그러다가 창극단에서 나와 연극 단체를 따라 다니기도 했지.”

징병에 끌려 갈 위험이 닥치자 박동진 명창과 함께 경남 도운과 위문단에 끼여서 공연을 다니던 중에 부산에서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쉴 새 없이 팔도를 떠돌아 다니느라 결혼할 엄두조차 못 내다가 해방되기 한 해 전 스물여덟 살에 늦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색시와 신혼 생활의 재미도 채 나누지 않고 해방이 되자마자 목포로 가서 ‘진도 창극단’을 만들어 면면촌촌을 다니며 판소리와 민요와 토막창극을 들려 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김연수 명창이 창극단을 만들자 그곳에 가담했다가 그 단체가 해산된 후 김소희, 박후성 명창과 함께 ‘국극협단’을 창설하여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단체를 따라다니며 정처없이 떠도니 집안을 돌볼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 번번이 아내가 떠났어. 자식이 오 남매가 있는데 다 어미가 달라. 내가 스스로 지은 죄가 있으니 떠난 사람을 원망을 안 혀. 그때에는 아무튼 창극 단체 꾸미고 운영하는 데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응게.”

광주에서 단체를 재조직하려고 뛰어다니다가 실패하여 방황하고 있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서 김연수 명창과 손을 잡고 단체를 만들어 다시 떠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구서 임춘앵 여성 국극단하고 경합이 붙어 동아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판인데 사람이 수없이 몰려와서 대만원을 이뤘어. 이제 그동안 진 빚을 갚을 수가 있겠다고 좋아하는 판인데 하루 공연하고 나니 그 이튿날 새벽에 6.25가 터져버렸어. 단원들하고 거지 생활이 시작됐지.”

대구에서 김해극장으로 옮겨서 피난민 위안 공연을 할 때, 낙동강 작전으로 함안 지방의 17만 인구가 김해로 피난을 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통해 거처할 방마저 구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비어 있는 어느 장삿집에서 여배우들과 함께 물장사를 하며 어려운 피난 생활을 보낸 그는 전쟁이 끝나자 단원들을 데리고 부산을 거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단체 만들어 다닌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여. 작품을 만드는 일도 어렵고, 극장 잡고 사람 모으는 일도 어렵고, 허가 받고 지방 돌아다니는 일도 어려워. 그 중에서 지방 건달이나 한량들 텃세 막아내는 일이 가장 어려워. 어딜 가나 단체가 가면 괜히 시비 걸고 여배우들 집적거리는 건달들이 있는디 그런 사람들하고 싸움이 벌어지면 으레 내가 도맡아 나섰지.”

그는 한창 때에 양손에 칼을 들고 팬티바람으로 수십 명하고 싸운 전력으로 ‘진도 쌍칼’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건달 세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때는 사람 좋고 너그럽다가도 국악인을 천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만 만나면 무섭게 돌변해서 '박치기로 받아 버리고 사정없이 쥐어패는' 통에 국악계에서는 의협심과 인정으로 뭉친 사나이라는 칭송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의협심은 70년대에 국악협회가 뇌물과 공금 횡령과 기생 수출로 벌집 쑤셔 놓은 꼴이 되었을 때 여지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는 권력자들의 위세에 눌려 바른 말을 못 하던 국악인들의 대변자가 되어 이사장과 간부들을 몰아내고 협회를 혁신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소리꾼을 뒷받침하는 단체의 기획이나 고수 노릇을 많이 하고 벌어들인 신망의 덕도 또한 컸습니다.

“난 본래 소리꾼으로 출발했는디 소리꾼으로 대성 못 허고 고수로 돌았지. 그것은 소리공부할 때에 한성준, 정원섭, 김재선 같은 북의 대가들에게 북을 함께 배운 받침이 있어서 단체에서 소리꾼보다 고수 노릇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은 북으로 인간 문화재가 되어 버렸지.”

한성준은 일제시대에 승무와 북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고, 정원섭 역시 판소리와 북에 통달했던 사람이고, 김재선 역시 북의 대가로 일세를 날린 사람입니다. 이들과 함께 공연을 다니며 배운 실력으로 어느덧 그는 북 치는 데에 아무도 따르지 못할 솜씨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소리하는 데에 잘 하고 못 하고 고비가 있듯이 북치는 데에도 잘 치고 못 치는 고비가 있어. 그저 또박또박 장단만 짚어서는 맛이 안 나. 고수는 반주자와 지휘자를 겸해서 소리가 험한 길로 가면 좋은 길로 가게 인도하고, 빠르면 느리게, 느리면 빠르게 음양을 맞추어 줄 줄 아는 데에서 제 솜씨가 나오는 거여.
소리도 마찬가지여. 선생에게 배운 대로 또박또박 박자 음정만 맞추는 건 진열장 소리여. 흉내 소리지. 거기서 넓힐 수도 좁힐 수도 없어. 옛날 선생들은 안 그랬어. 자유자재여. 흥이 안 나면 별 거 아니다가도 한번 흥이 나면 손님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어쩔 줄을 모르고,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떨려서 소리듣고 나면 온몽이 아플 정도여.
똑같은 음식도 간을 맞추는 데 따라 다르듯이 똑같은 선생한테 배운 소리도 제가 간을 넣어야 맛이 나는 거여. 선생을 뛰어 넘고 푹 솟아야 진짜 명창이여. 옛말에도 서당서 공부 잘 헌 놈은 붓장사 허고 공부 못 헌 놈은 영의정 헌다고 했어. 글만 많이 알아서 융통성없는 놈보다 흡글을 됫글로 말글로 섬글로 노적글로 풀어먹을 줄 아는 놈이 성공헌다는 말이지. 말허자면 창의성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여. 그런디 요새는 문화재 보호니 뭐니 해서 그런 창의성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었어.”

획일적인 문화재 전수 정책을 비판하는 그의 말투는 날카롭고 매서우면서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배어 있어 듣는 사람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 장단 하나도 바꾸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전통의 보존이라는 문제와 예술적 창의력과 개성을 살려 새로운 시대의 전통예술을 창작하는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지는 우리 국악계 전체가 안고 있는 숙제인 것입니다.

국립국악원 자문위원, 한국 국악협회 이사로서 국악계의 든든한 대들보로 활동하던 그는 제자들과 자식들과 그를 좋아하여 끊임없이 찾아오는 후배들에 둘러싸여 외롭지 않은 말년을 지내다가 1990년 5월 21일에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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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4 09:22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6 06:50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분들의 삶은 모두 한편의 드라마랍니다.
      자주자주 올릴께요.

  2. 명창들 2010.04.24 10:27 address edit/delete reply

    연재 잘 봤습니다. 늘 그렇듯이 재미지게 글 잘 쓰시고, 내용도 참 좋습니다. 다음은 어떤 분을 소개할지 기대가 됩니다. ^^

    사진 한 장이 살짝 아쉽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6 06:53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쉽게도 이 분에 대한 사진을 구하지 못했어요.
      검색에도 나오지 않구요.
      좀더 연재할 분들은 열심히 찾아서 사진 올리도록 할께요.

  3.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10.04.24 13:0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리 문화 지킴이들을 위한 기록을 꾸준히 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우선 감사합니다.
    정말 이런 좋은 자료들 찾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입니다.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배우려는 후학들에게 좋은 자료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글 박동진 명창님애 대한 글 읽고 너무 반가웠어요.
    김득수 명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새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6 06:54 신고 address edit/delete

      관심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우리 문화 지킴이가 되어주세요.

  4. Favicon of https://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여강여호 2010.04.25 11:3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리 것을 지켜나가는 이런 분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6 06:55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런 분들을 사랑하는 분들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몬스터님으로부터 릴레이 바통을 받았습니다. 릴레이의 주제는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이고, 몬스터님은 저에게 <판소리>라는 주제로 바통을 넘기셨습니다. 몬스터님의 릴레이 글은http://culturemon.tistory.com/187 에 실려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판소리 이야기

저는 6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책 아래 온 국민이 <새마을 노래>를 합창하던 시절입니다. 새마을 노래의 2절을 아시나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초가집을 시멘트집으로, 기와 지붕은 스레트 지붕으로, 황토길은 아스팔트길로 바꾸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옛날 것, 초가집, 풍물, 굿....이런 것들은 비생산적이고 비능률적이고, 비효율적인 유산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근대화의 열풍 속에서 전통은 무너뜨리고 부셔버려야 하는 대상이었던 겁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저는 70년대에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저는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뮤지컬 영화나 오페라 아리아나 이태리 민요에 열광하고, 서양의 고전 음악을 좋아했고, 독일에 유학 가길 희망했던 독문학도였습니다.

그러다가 1973년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판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시골 국악원에서 여자 명창이 아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어느 곳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베토벤의 열광적인 숭배자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오페라 팬이었고, 누이들도 교회의 성가대나 학교의 합창반이었습니다. 그런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저도 이탈리아 민요나 오페라 아리아나 가곡을 즐겨 불렀습니다.

이런 제게 판소리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판소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혼자 국악 음반을 듣고 책을 보며 공부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말, 서울 종로의 단성사를 지나가다 ‘박초월 국악학원’을 발견하고 무작정 쳐들어갔습니다. 처음 배웠던 노래가 <진도 아리랑>이었는데, 제가 노래만 부르면 학생들이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선생님이 나중에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제가 판소리를 소프라노로 노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벨칸토 창법'으로 판소리를 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서구예술을 동경했고, 서구예술을 공부했고, 서구예술에 심취했던 제가 판소리를 배우면서부터 인생관도 바뀌고 삶의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저는 제 고향을 싫어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난의 흔적이 너무나 많은 그 곳을 떠나 서울로 가겠다는 일념으로 진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누추한 한국을 빨리 떠나 독일에 갈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판소리에 빠지면서부터 거꾸로 전라도 말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전라도 말이 얼마나 다양한 표현과 영롱한 문학적 향기가 있는지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향의 땅에 대해서도 다시 알게 되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핏줄에 대한 애정 곧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사랑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전
통이란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았던 삶의 자취이고 향기인 것입니다. 

또 저는 한 동안 판소리를 배우면서도 판소리가 과연 음악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지 오랫동안 의문을 품었습니다. 저는 마리오 란자나 프렝코 코렐리나 스테파뇨 같은 오페라 가수들이 세계에서 최고로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태리에서 오페라단이 왔는데, TV에서 그 사람들의 리허설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주고받는 게 노래가 아니라 말이더군요. 

그때까지 저는 오페라는 목에 힘주고 벨칸토 창법으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태리 사람들은 자기 나라 말 가지고 자연스럽게 주고받다가 오페라를 부르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페라가 그랬듯이 판소리는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다가 노래가 되었다는 것. 판소리는 우리말을 그 중에서도 전라도 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성악이고, 오페라는 이태리의 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성악이니 무엇이 더 아름다운지 가릴 수가 없다는 걸 그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걸 깨달으면서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에 대한 눈, 우리 전통을 보는 눈, 모든 것들이 새롭게 뜨인 겁니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자기 세계를 찾고 싶어 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찾으려고 하는 젊은이에게 전통은 억압적이고, 벗어나고 싶고, 파괴하고 싶은 대상으로 다가 옵니다.

그 테마가 「서편제」에 들어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판소리에 환멸을 느낀 젊은 아들이 소리꾼 유봉에게 대들다가 두들겨 맞고 가출을 합니다. 유봉은 하나 남은 의붓 딸의 눈을 멀게 만들지요.

겉으로는 소리의 명창 만들려고, 한을 심어주려고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도망 못가게 하려고, 전통에다가 묶어 두려고 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송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의 희생자입니다. 판소리에 집착하는 아버지 때문에 눈까지 멀고 모든 인생이 망가진 비극적 여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중요한 대사가 나옵니다. 

유봉 : 송화야, 내가 네 눈을 멀게 했다. 알고 있었냐?
송화 : 알고 있었어요.
유봉 : 나를 용서해 줄 것이냐?

이 질문에 송화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용서를 한 거지요. 이게 「서편제」의 중요한 테마입니다.

젊은이는 전통을 파괴하고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전통과 화해하는 것, 전통을 용서하는 것, 또 전통을 그리워 하는 것입니다.

「서편제」이야기는 도망갔던 의붓아들이 그의 누이를 찾아서 헤매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자기가 버렸던 전통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회상기입니다. 



전통은 바로 고향입니다.

우리의 영혼, 우리의 정서, 우리의 사고가 돌아가서 쉴 수 있는 곳. 쉬었다가 다시 또 새로운 힘을 찾아서 영감을 찾아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전통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무시했습니다. 그대신 남의 나라 전통은 너무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클래식 음악, 발레.....서양의 전통예술들을 배우느라 엄청난 돈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에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의 것을 열심히 배우면 배울수록, 자기 것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부작용도 점점 커진다는 데 있습니다. 

판소리가 유럽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게 10여년 전입니다. '아비뇽 페스티발'이나 '파리 음악 축제'와 같은 유명 축제에 판소리가 소개된 뒤로, 유럽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판소리팬이 많이 생겼습니다. 

몇 년 전 프랑스에 갔을 때, 판소리를 좋아하는 프랑스 예술가들 몇몇에게 왜 판소리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전 세계에 이런 놀라운 예술이 없다는 겁니다. 한 인간이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동안 노래를 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라는 겁니다.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이 된 데에는 그런 유럽 판소리 팬들의 영향력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보물을 무시하는 동안 오히려 외국인들이 우리 전통의 가치를 더 깊이 알기 시작한 겁니다.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한 나라의 집단적 무의식은 유전이 된다.”고 말했다. 즉, 우리 핏속에 이어져 내려 온 무의식이 바로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전통이란, 또 판소리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또 창조의 열정에 불타게 하는 소중한 원천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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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tsori.net BlogIcon Boramirang 2009.09.25 06:26 address edit/delete reply

    귀한 판소리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다음뷰에서 판소리 이야기를 자주 접했으면 좋겠네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05 신고 address edit/delete

      보다 많은 분들이 판소리와 전통에 관심을 보이면
      다음 뷰에도 자주 보이겠지요.

  2.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09.09.25 07: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서양, 일본음악은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면서
    정작 우리의 소리인 판소리는 낯설고 신기해하는 사람들.
    저 또한 그런 사람이네요. 부끄럽습니다....

  3. 2009.09.25 07:27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07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랫만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4.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9.25 07: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선배님 덕분에 판소리가 글이 너무 좋아집니다.
    매번 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너무 잘 읽게되요 ㅎ 우리의 문화를 이렇게 볼 수 있으니 말이죠 ^^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07 신고 address edit/delete

      판소리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니 반가운 얘기네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5. Favicon of http://blog.daum.net/pssyyt BlogIcon 무터킨더 2009.09.25 08:01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때 독일로 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행 대신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시게 된 것이....
    그래서 또 오늘 이렇게 훌륭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겠지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09 신고 address edit/delete

      독일 안 가고 판소리 배운 게
      잘된 일인지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답니다.

  6.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25 08: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고등학교 때 가까운 친구 두명이 창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도 배워보겠다고 친구한테 가르쳐달라고 해봤는데 하루 이틀 해서는 안되는게 창이더라구요. ㅎㅎ
    그리고 저희 친정아버지께서는 소리를 배우신다고 한동안 판소리를 많이 틀으셔서 저도 어려서부터 우리가락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우리가락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전수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10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가락과 친근한 경험을 많이 가지고 계시군요.
      앞으로 더욱 깊은 인연을 맺기 바랍니다.

  7.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9.25 08:31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도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정도로
    삶의 열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11 신고 address edit/delete

      따뜻한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8. 샹큼fany 2009.09.25 08:48 address edit/delete reply

    '꿈꾸는 퉁소쟁이'를 아직도 감명깊게 읽었던 책들중 하나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당시 노제를 감독하신 후기를 읽은 계기로 제게 아주 소중한 블로그가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글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12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래 전에 나온 책을 아직도 가지고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좋은 글 쓰도록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9.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9.25 08:5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도 전통의 세계를 펼쳐 주시는 선생님글 아주 잘읽었습니다.
    판소리에 대한 계기가 있었군요......블로그를 통해서 보는 선생님의 살았던이야기 너무 제미있습니다.^^
    오늘도 늘 건강하시고 주말이네요.좋은 시간 되시구요.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13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 이야기를 언제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10. Favicon of https://culturemon.tistory.com BlogIcon .몬스터 2009.09.25 09: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릴레이 글 제안 받아주셔서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학때 풍물동아리를 했지만, 아직도 우리 문화에 그리 익숙하진 않은 편입니다.
    특히 판소리는 작년에 영화 <소리아이>를 보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었구요.
    그런데 그 때 영화를 보면서 꼬마 아이들의 판소리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새삼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아직도 미약합니다만)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것을 파괴했던 과정이 이런 문화에도 적용되었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살짝 놀라는 지점이기도 하구요.
    우리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니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글 잘읽고 갑니다.
    앞으로 종종 들려 댓글도 남기고 갈게요^^ (방문은 항상 하고 있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5 11:15 신고 address edit/delete

      몬스터님 덕분에 릴레이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앞으로 우리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11. 바보 2009.09.25 15:53 address edit/delete reply

    전통이란 계승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팬도 중요하지요. 한국에 남아있는 전통이란 것은 제대로 전승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21세기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을 촌스럽다는 관념속에 묻어버리기 때문이 아닌지요?

    그 촌스럽다는 고국을 떠나 타국에 살고 있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입이고 두번째는 귀입니다.
    제가 일본에서도 농사를 짓는 것은 알타리무와 열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이 들어도 봄부터 가을까지 이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있습니다. 10살이전에 익혀진 입맛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한국말만은 못합니다. 어제 모대학에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만, 2시간 넘게 질문공세를 받고 나올 때는 철판얼굴의 저도 위가 아파오더군요. 역시 외국어는 어렵습니다.
    얼마전 오사카에서 우연히 풍물놀이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도 반가워서 달려갔더니 조선사람들이 모여서 한마당을 하고 있더군요. 일부는 고국의 말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은 세계 어딜가나 사람을 끌게하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촌스럽건 자랑스럽건 모두가 우리의 업보이고 우리가 안고가야할 재산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경제논리나 정치논리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손님이 없다고 장사를 접을 수 없듯이, 관객이 없다고 판을 깰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7 11:34 신고 address edit/delete

      전통은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 안고 가야할
      업보인지도 모릅니다.

  12. Favicon of http://amesprit.tistory.com BlogIcon SAGESSE 2009.09.25 18:1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자신을 숨쉬게 하고, 활기있게 만들어 주고, 창조의 열정에 불타오르게 한 소중한 원천이 되는 것이 전통이요, 판소리란 말씀 아주 새기고 갑니다... 거의 모두가 처음에는 벨칸토 창법에서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ㅋ 편안 저녁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7 11:36 신고 address edit/delete

      벨칸토에서 판소리로 한걸음씩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전통인지도 모릅니다.

  13.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09.25 18:1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판소리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서편제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14. Favicon of http://code0jj.tistory.com/ BlogIcon 수수꽃다리(라일락) 2009.09.25 21:59 address edit/delete reply

    판소리와 우리의 전통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우리것이 최고여~~"라는 광고멘트가 떠오르는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7 11:37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것을 좋아하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15. 곤이엄마 2009.09.25 22:48 address edit/delete reply

    전 판소리를 접한게 TV에서 였습니다 오정숙씨의 소리는 언제들어도 개운한 느낌이어서 좋았는데 친정에서 가까운곳에 판소리 교육하는곳이 있어서 국민학생이던 조카의 친구가 가끔와서 오늘 배운 소리라며 사랑가를 불러 주었습니다 어찌나 듣기 좋던지... 실제 공연하는 곳에서 오정숙님의 소리를 들을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서편제는 우리 판소리의 품격을 높여주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7 11:38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정숙 명창의 소리는 저도 무척 좋아했답니다.

  16. Favicon of https://falconsketch.tistory.com BlogIcon 팰콘스케치 2009.09.26 18:5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판소리던 국악이던 자꾸 접해야 몸에 뵈는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 자꾸 접하다보니 우리소리가 좋아지더라고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7 11: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접하면 접할수록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게
      우리 소리인 듯 합니다.

  17. Favicon of http://link2u.textcube.com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09.29 09:52 address edit/delete reply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우선은 자신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조선이 무너지면서 우리는 일제의 지배를 받는 어두운 시기를 그리고 해방 후 6.25로 인하여 모든게 잿더미가 된 시기를 지나왔죠. 자신감과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고 우리보다 강한 이들을 닮고 따라하며 어떻게든 살아남는게 중요했죠. 그러다보니 우리것은 모자란 것이 돼 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한가지는 학교 교육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의 자신감은 많이 올라왔지만 여전히 국악은 생활속에서 접하기 어렵습니다. 그 간 우리가 잊고 지낸 세월이 제법 긴지라 현재 수요가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 잊은 것을 살려내는 역할을 해 줄 제 1선에 있는 곳이 학교인데 학교의 교육이라는 것이 시험을 보기 위한 몇 가지 이론 - 궁상각치우, 무슨무슨 장단, 이 작품의 기원과 뜻은 어쩌고... - 를 보고 들어 외우는 것이 전부죠. 듣고 겪고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가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좋아하긴 어렵지요.

    • Favicon of http://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29 23:28 address edit/delete

      전적으로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평소 저의 생각과 너무도 일치하는군요.





판소리에 심취해 있던 대학 3학년 시절, 인사동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정노식의「조선창극사」를 샀습니다.



그때는 우연히 보고 샀는데, 알고보니 판소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필독서인지라 지금까지 제 인생의 반려가 되어 준 소중한 책입니다. 

저자인 정노식은 누구일까요?

정노식(1891년~1965년) :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문학부를 졸업했으며,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여하여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 창립에 관여했다.

1946년 12월 남조선노동당 중앙본부 중앙위원으로 있다가, 1948년 월북해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노동당 중앙검사위원, 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부위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 〈조선창극사〉(1940)가 있는데, 이는 최초의 본격적인 판소리 저술로 꼽힌다. 〈조선창극사〉는 총 89명의 창자와 고수 1명, 그리고 신재효에 관한 약전(略傳) 등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송만갑·이동백·전도성·김창룡·정정렬 등의 구술을 기록했고, 그밖에 판소리 관계 문헌, 조(調), 대가닥(制), 판소리의 기원 등에 관한 견해도 실려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그 당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한 독립운동가였던 저자는 어찌된 인연인지 몰라도 판소리와의 열렬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분노와 애정을 동반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머릿말에서 광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조선 사람이 광대의 소리는 좋아하면서
광대의 인격은 천대 멸시하는 현실에 분개하고.....
광대소리야말로 조선인의 심상이 들어 있는 소리요,
광대들이야말로 당당한 예술가이어늘 천대를 받아 왔으니
이제야말로 그 관념을 시정하여서
광대의 예술가적 가치와 사회적 위치를 모두 인식할 때다.


기생, 광대에 대한 편견이 시퍼렇던 일제초기에 일본유학을 갔다 온 지식인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와 비슷한 신분의 학자들이 광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예를 들어볼까요?

조선후기 실학의 대가이며, 수많은 후학들에게 존경받는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정조에게 보낸 상소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광대가 봄과 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과 겨울이면 추수를 바라고 농촌으로 쏠리는데,
특히 창촌에서는 사당, 창기, 주파, 화랑, 악공 등의 잡류들을 엄금해야 합니다.


정노식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일제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소개된 육당 최남선의 말씀입니다.


조선조의 재인, 광대들은
적극적으로 특별한 권장을 입지 못하고
무식, 무기력한 예인들이
사회 최하층적 지위에서 구차히 존속하다 보니까
거기 쇠잔이 있을 뿐이고 발달이 없으며
저락이 거듭될 뿐이지 향상을 볼 수 없음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조건 하에 있다 보니까
수천년을 하루같이 몸을 놀리는 기술과 우스개 놀이 쯤에 그치고
드디어 '다른 데만한'(필자 주 : 서양을 말합니다.) 
순희곡적 생장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루바삐 그 방법을 개량하여
서구의 예술을 익히면
외국 사람들에게도 조소를 면하리라.


 


이러한 편견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그 시대에, 광대들에 대한 천대와 멸시에 분개한 저자는 무한한 애정을 담아 이 책을 쓴 것입니다.

그는 판소리 광대들을 찾아 여러 지방으로 여행도 하고, 생존한 광대나 나이 든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채집했습니다.

1940년에 출간된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판소리와 관련된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와 기록, 판소리의 유래, 창법의 음악적 특징, '동편제'와 '서편제'의 유래 등이 설명됩니다.

후반부에서는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명창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로맨스,
소리 공부를 반대하는 집안과의 목숨을 건 투쟁,
광대라고 천대하는 사회의 편견에 대한 반항,
소리 공부를 하는 동안의 눈물겨운 고생,
명창들의 출신과 판소리에 입문하게 된 사연,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은 내용,
특기로 잘했다는 대목에 대한 소개 등......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들을 잔뜩 풀어놓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대부분이 명창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현장감이 풍부하고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그 후에 씌어진 판소리에 대한 많은 연구 서적들은 거의 모두 이 책의 내용을 기초로 수정 보완된 것들이기 때문에, 판소리에 대한 자료가 필요할 때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서편제」의 시나리오를 쓸 무렵, 제 머리 속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명창들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그 이야기들이 시나리오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특히 다 쓰러져가는 움막에서 소리꾼 유봉이 <옥중가>에 나오는 '귀곡성'을 가르치다가, 자기 딸 송화에게 얘기하는 다음 대사는 전적으로 이 책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옛날 송 흥록이란 명창은 이 귀신소리를 어찌나 잘 불렀는지 밤에 이 대목을 하니까 바람이 불어서 촛불이 꺼졌단다.....


삼십여년이 넘는 세월을 제 서가에서 함께 살아 온 이 책은, 지금도 제게 명창의 혼령들과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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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4 07:36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37 신고 address edit/delete

      따뜻한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2.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9.04 09:1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책이 선생님 인생의 항로를 밝혔나 봅니다......오늘도 건강하시고...의미있는 하루 되시구요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3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의 인생에서 의미있는 책 중 하나이지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3. 바보 2009.09.04 09:46 address edit/delete reply

    전통예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영화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편제가 나오기 전에는 판소리의 발성은 좋지 않고, 서양의 발성법을 따라야 한다니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쏙 들어갔습니다.
    왕의 남자라는 영화덕에 전통놀이, 풍물, 국악, 사물놀이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개념이 깨졌습니다.
    북한이 세계서커스대회에서 우승을 하거나 한국의 외줄타기하시는 분이 일본에서 열린 외줄타기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도 하면 된다라는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문제는 판을 짜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시즈오카시가 매년 11월초에 여는 大道芸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하면 그러한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순수한 시민들의 자유참가와 상인들의 협조로 이루어지는 이 대회는, 광대들이 실력을 길거리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판입니다.
    옆나라에 좋은 예도 많으니, 좋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한국의 광대들도 설자리가 많이 생기지 않을런지요?
    전통광대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언젠가 오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전통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나 에니메이션이 많이 나올수록 우리의 생활과 가까워질거라고 생각합니다.

  4.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9.04 11:04 address edit/delete reply

    저 스스로도 서편제 영화를 보기전까지는 티비에 국악이나 창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곤 했었습니다. ㅡ.ㅡ
    그런 점에서 보면 바보님의 말씀처럼 영화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40 신고 address edit/delete

      대부분의 대중들에게 국악이나 전통은 너무나 낯선 것이지요.
      저는 그걸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 롤링스톤즈 2009.09.04 13:56 address edit/delete reply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천시되던 광대문화에서 예술적 가치를 꿰뚫어 본
    정노식 선생의 지각이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읽어볼랍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41 신고 address edit/delete

      책을 읽으시면
      제 글에서 느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리실 겁니다.

  6. Favicon of http://pentax.isloco.com BlogIcon 아아망 2009.09.04 15:29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의 글을 읽고 문득 생각나서 서편제 OST를 듣고 있습니다. 막 옥중가가 나오네요 ^^
    서편제가 개봉했을 때 너무 어려서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씁니다만 "소리길"은 좋아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소리길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42 신고 address edit/delete

      옥중가, 소릿길,,,언젠가 그 얘기 보따리도 털어 놓을께요.

  7. Favicon of http://www.indianabobs.com BlogIcon 인디아나밥스 2009.09.04 15: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과거에 우리의 예술가들을 조금만 더 대우해주고 존중해주었더라면 5천년 역사의 문화가 정말 찬란하게 발전하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노식 선생은 정말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십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44 신고 address edit/delete

      너무 오랫동안 예술가들을 천인 계급으로 방치해 놓았으니 예술의 발전이 더딜 수 밖에 없었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8. Favicon of https://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2009.09.04 16:3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영감이 어우러져 그 멋진 서편제가 완성된 것이로군요....
    정노식 선생님은 처음 들어보지만 이 글만으로도 존경심이 생깁니다...
    잘 보고 갑니다...오늘도 행복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45 신고 address edit/delete

      많은 사람들의 영감과 경험과 기가 모일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9. Favicon of https://lilac02.tistory.com BlogIcon 孤雲詩仙 2009.09.04 16:4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송흥록 명창에 관한 선생님의 글 생각이 나는군요.
    선생님의 판소리에 대한 많은 이해는 '조선창극사'가 큰 역활을 하였나봅니다.
    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군요..^^
    사진과 책을 견주는 논리는 철회하겠습니다.ㅎㅎㅎ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46 신고 address edit/delete

      책이 가진 역할이 있고, 사진이 가진 역할이 있겠지요.
      책과 사진...모두 소중한 콘텐츠입니다.

  10.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9.04 21: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조선창극사가 서편제의 모티브가 된 셈이군요.
    정노식 송흥록 등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소중한 판소리의 역사를 깨우치게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5 08:49 신고 address edit/delete

      모든 창작품의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자료와 정보와 경험이 녹아 들어가듯, 서편제의 뒤에도 수많은 국악의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숨어 있습니다.

  11.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09.09.05 20:4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주말 잘 보내셨어요?
    며칠전 뉴스를 보다가 산업대에서 전통문화 강의를 하신다는 반가운 기사를 보았답니다 ㅎㅎ
    평소 전통문화에 무지하였는데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어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6 06:37 신고 address edit/delete

      소식 들으셨군요.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전통문화를 소개하자는 취지로 개설된 강좌의
      개강식에서 특강을 한답니다.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갔으면 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12. Favicon of http://heraus.pe.kr BlogIcon heraus 2009.09.06 10:10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본 걸로 기억합니다. 영화가 표현하는 삶의 애환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제가 아직 어렸기에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그저 남들이 열광하니까 열광했던 것 같고요.. 판소리에 대해서는 좋아서 열광했습니다. 영화보고 나서 OST 테입을 사서 계속 듣고 다녔습니다. 한 1년 넘게 그런 것 같아요. 한참 심취했을 때는 OST에 나오는 부분은 판소리도 단가도 아리랑도 제법 따라 부르기도 했고요.. (남들 앞에서 불러본 적은 없지만요. ^^) 그렇게 좋아서 들었으니 '송홍록 명창'이 등장하는 대사도 기억이 납니다. 그게 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거였군요. 선생님께 직접 뒷이야기를 들으니 참 재미있네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9.06 14:00 신고 address edit/delete

      청소년기에 서편제를 좋아하셨군요.
      좋은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하시길 빕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두 달쯤 당진의 가을바다를 서성이던 저는 겨울이 되자, L의 하숙집을 떠나 지리산으로 갔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죽을 때 죽더라도 지리산 <상선암(上禪庵)>에서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상선암은 구례읍 부근에 있는 <천은사(泉隱寺)>의 부속 암자인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독서모임인 고전독서회의 여름 수련회를 갔던 곳입니다.

폐허가 된 절간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쁜 여학생들과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구들장이 여기저기 망가진 절의 방에 누워, 깨어진 기와지붕 위로 반짝반짝 빛나던 별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지샜던 추억이 너무도 그리워 무작정 그곳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옷가지와 책 몇 권이 든 가방을 들고 구례에서 버스 타고 천은사에서 내린 다음, 눈 쌓인 지리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상선암까지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기어' 올라갔습니다.

말끔하게 새 단장이 된 암자까지 숨이 턱에 차서 간신히 다다른 저는, 툇마루에 앉는 순간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상선암>의 최근 모습. 정면의 툇마루가 기절했던 곳이고, 오른쪽 뒤꼍에 제가 묵었던 골방이 있습니다.

깨어나 보니 따뜻한 방안에 이불까지 덮고 누워 있더군요. 머리맡에 두 청년이 앉아 있다가 제가 눈을 뜨자 한 청년이 급히 물그릇을 주며 “이거 꿀물이니 드시쇼!” 하는 것이었습니다. 

꿀물을 먹고 나니 또 한 청년이 “몸을 바로 누워 보쇼!”하면서 온몸 여기저기 지압을 해 주었습니다.

꿀물 준 W는 벌을 치는 청년이었고, 지압을 해준 H는 중국무술인 십팔기의 고단자였습니다. W는 벌통을 상선암 근처에 풀어 놓고 있었고, H는 무술 수련한다고 암자에 묵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암자에는 스님은 안 계시고 중년의 '여보살'이 관리하고 있었고, 김씨라 불리는 늙은 ‘불목하니’ 영감님이 나무, 청소, 불때기와 같은 잔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사정을 들은 그들은 저를 따뜻하게 거두어주었습니다. 마침 보살님의 아들이 고등학교 시험을 볼 때라 저는 가끔씩 아들 공부를 가르치며, 공짜로 몇 달 동안 맛있는 절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국 무술의 소림권, 무당권, 태극권, 팔괘장, 내공, 외공, 단전호흡, 장풍, 팔단금법 등의 현란한 세계를 알려 주는 H의 말에 푹 빠졌습니다. 

저는 그 전부터 무협소설과 무협영화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특히 김용이나 와룡생 같은 작가들이 펼쳐 주는 무림의 세계는 제게 황홀하기 그지없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여 주었습니다.

그 중 지금도 잊지 못하는 최고의 무협영화는 「유성호접검(流星胡蝶劍)」이었습니다. 김용과 더불어 무협소설의 대표 작가인 고룡의 원작 소설을 각색해 만든 그 영화는 음모와 배신, 그리고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이 정교하게 얽혀 있는 무협영화의 고전입니다.

대학 1학년 방학인지 2학년 방학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친구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무협영화가 짜장면이라면 「유성호접검」은 탕수육이다!”고 감탄하며, 중국집에서 빼갈을 실컷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고룡의 작품 중에 「초류향」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풍류와 여자와 도박을 즐기는 무림고수 초류향과, 냉정하고 현실적인 희빙안, 고독하고 말이 없는 살수 일점홍 등이 중원과 사막을 종횡하며 대마두(大魔頭)와 벌이는 서사적 이야기는 저를 사정없이 매혹시켰습니다.

이렇듯 무림과 무공에 대한 사전 준비가 되어 있던 터라, 저는 말솜씨 좋은 H가 들려주는 무술과 관련된 과장된 경험과 온갖 무술가, 도사들의 이야기에 도취하였습니다.

또 그가 스승의 비밀 금고에서 훔쳐내어 몰래 베꼈다며 비밀스럽게 보여주는 <내공비급(內功秘及)>을 베끼며, 언젠가 나도 ‘장풍’을 날리는 무림의 고수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키웠습니다.

암자의 골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하고, 향을 피우고, 밤에는 암자 마당에서 H가 가르쳐주는 소림권의 기초 동작들을 익혔습니다.

십팔기를 가르쳐 준 H와 구례읍의 사진관에서 찍은 기념 사진.

그런데 거기서 판소리와의 기이한 인연이 또 이어졌습니다. 처자도 없이 상선암에서 산지 몇 년이 된 불목하니 김씨 할아버지가 북도 잘 치고 젊었을 때 판소리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김제국악원에서 처음으로 판소리를 들은 뒤 자나깨나 판소리에 심취해 있던 저에게, 그 소식은 귀에 번쩍 뜨이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 판소리 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해서 우리 셋은 할아버지 방에 모였습니다. 할아버지 방에는 이부자리 한 채와 옷 몇 가지, 그리고 낡은 북 하나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풍년초' 담배 잎을 종이에 말며 말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구식 노래는 배워서 뭐 할라고 그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할아버지는 중머리 북 장단도 가르쳐 주고, 심청가 한대목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맑은 공기에 따뜻한 절밥을 배부르게 먹고, 벌꿀과 로얄젤리도 가끔씩 얻어먹고, 친구들과 더덕을 캔다고 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단전호흡과 기공으로 몸보신을 하니 몸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처음 올 때는 죽을 힘을 다해 기어 올라왔던 산길을, 나중에는 천은사에서 상선암까지 단숨에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우리는 고래고래 판소리를 불러댔습니다.

그러던 중 구례에 단소의 명인이 살고 계시다는 소문을 들은 우리는 지체 없이 그 분을 찾아나섰습니다. 구례읍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산길을 물어물어 걸어 간 끝에, 절골 마을에 사는 김무규 명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대단한 고대광실이었을 퇴락한 기와집에 살고 계셨던 김무규 명인은 단소와 북과 거문고의 명인이셨습니다.

그러나 지주이며 양반댁 엘리트 출신이고, 그의 부인 역시 한말의 대학자이며 일본의 침략에 항거해 자결하신 매천 황현의 손녀이실 만큼 명문가의 자제라는 지위 때문인지 직업적인 연주 생활은 안 하신 분입니다.

백경 김무규 명인(1908~1994)의 연주 모습.

다만 그의 단소는 전설적인 단소의 명인인 전추산에게 배웠기 때문에 매우 귀한 가락으로 평가 받습니다.

호리호리하고 깐깐하게 생긴 명인은 가지고 간 꿀 한통을 드리며 단소를 배우러 왔다는 산 청년들에게 퉁명스럽게 첫마디를 꺼내셨습니다.

“이 어려운걸 뭐 하러 배우려 하는가?”

그러면서도 먼 길을 걸어 온 정성이 갸륵했던지, 다음에 한번 찾아오라고 허락을 하셨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찾아가니 집 뒤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대를 잘라 단소 세 자루를 만들어 놓으셨다가 선물로 주며, 단소 부는 법의 기초부터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판소리에 관심이 있는 걸 아시고 김소희 명창이 여름이면 제자들과 함께 자기 집에 연습을 하러 오기도 한다고 하시며, 명창들과 관련된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아쉽게도 그 분에게 몇 번 밖에 단소를 배우지 못하고, 몇 달 뒤에 복학해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연은 끊어지지 않아 나중에 어느 잡지에 그 분의 이력을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도 쓰고, 인간문화재가 되신 뒤 「서편제」 촬영할 때 그 분을 임권택 감독에게 소개해서 절골의 퇴락한 기와집과 대숲이 멋지게 등장하고, 새하얀 한복을 입고 거문고를 치는 그 분의 모습도 영상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지 얼마 뒤에 돌아가셨으니, 아마 「서편제」가 그 분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필름이 되었을 겁니다.

판소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김제국악원의 여자명창과 지리산 상선암의 불목하니와 구례의 김무규 명인이 차례로 제 인생에 등장하더니 마침내 다음해 겨울에 박초월 명창과의 만남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상상도 하지 않았던 판소리와의 인연이 마치 누군가의 연출로 한 장면 한 장면 이어지듯, 제 인생의 무대에 펼쳐진 것입니다. 전 지금도 그 기이한 인연에 신기해하며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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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cansurvive.tistory.com BlogIcon 흰소를타고 2009.08.30 17: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김용, 와룡생! 기억이 새록새록...^^
    저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무협소설에 푹 빠졌던 기억이...
    판소리를 듣지 못하셨으면 지금은 무술 고수가 되셨을 수도 이었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07 신고 address edit/delete

      판소리를 안했으면 무림의 고수가 되어 이연걸이나 성룡과 영화를 찍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ㅎ

  2. 2009.08.30 17:36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25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동안 포스팅을 게을리 한 탓에 어제는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종일 벌을 섰더니 어깨가 묵직하군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momentor BlogIcon 엄마멘토 2009.08.30 17:59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소중한 기록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연'이라는 말이 정말로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에 비하면 저는 정말 '세속적'인 이유로 우리음악을 접하게 된 케이스인데요. 물론 결국에는 우리음악의 매력에 퐁당 빠져들었으니 처음의 이유가 그리 중요하진 않겠지만...그래도 가끔은, 조금 더 멋진(?!) 사연으로 우리음악을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아쉬울 때도 있어요.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방황(?)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선생님 덕분에 저도 조만간 우리음악에 빠진 사연을 공개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27 신고 address edit/delete

      누구에게나 삶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지요. 언젠가 국악에 빠지신 이야기, 국악인으로서 느끼셨던 이야기 꼭 들려주세요.

  4. 바보 2009.08.30 18:23 address edit/delete reply

    요즈음의 글은 마치 용비어천가를 읽는 느낌입니다. 판소리와의 질긴 인연이라고 할까, 남도사람으로서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서편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운명을 느끼게 됩니다.
    말이 길어져서 여기에는 남기지는 못하지만 저희집에도 증조할아버지께서 강원도 인제에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용비어천가와 같은 기구한 이야기가 있지요. 여기에 당나귀와 곰과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데,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이 거짓말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는 우리집안이 특별한 내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나름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집사람에게 하면, 반응이 쌩~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流星胡蝶劍이란 영화...저도 본적이 있습니다만, 그것도 저의 대학 2/3학년이었던 80년/81년에 아세아극장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저도 무술영화에 푹빠졌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 영화와는 버젼이 다른 영화인지요?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바보 2009.08.30 19:43 address edit/delete

      93년도에 流星胡蝶劍의 새로운 버젼인 新流星胡蝶劍(왕조위, 왕조현주연)이 나올정도이니, 그 영화의 훌륭함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저는 외국에 있어서 이 영화를 보질 못했군요. 선생님이 대학시절에 보신 流星胡蝶劍을 포함한다면 流星胡蝶劍은 적어도 3번은 영화화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이영화를본 것은 1981년이 맞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의 삶도 평범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언젠가는 용비어천가가 되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성호접검>을 본 것은 1972년 경이고 그 뒤에도 원작 영화를 여러번 봤습니다. 물론 <신유성호접검>도 봤지만 원작의 감흥을 따르지 못하더군요.

  5.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8.30 20: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기이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인생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무협소설과 암자 그리고 판소리가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35 신고 address edit/delete

      맞습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인연의 연속인 듯 합니다. 탐진강님과의 인연으로 제가 블로그를 하게 될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6. Favicon of http://code0jj.tistory.com/ BlogIcon 수수꽃다리(라일락) 2009.08.30 21:33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이 판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적 만남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졌군요.
    운명....그 기이함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일인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인생, 운명, 인연...모두 동그라미 'ㅇ'자로 시작되는 기이한 글자들이군요.

  7. 곤이엄마 2009.08.30 22:46 address edit/delete reply

    젊은시절의 선생님을 뵈니 새롭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분들이 계시다니...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42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이구,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8.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09.08.31 07:26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구레에 가서 사진관에서 여러 번 폼을 ㅈ납으실때 모습이 떠 올라서 웃깁니다.
    그러나 기록을 잘 남긴 것 같습니다.
    이글들은 한꺼번에 모아서 책으로 출간하셔야 하겠습니다.
    문학을 하셔서 글을 쓰시는 방법이 다른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44 신고 address edit/delete

      사진 찍을 때, 비틀거리는 폼 잡느라고 고생한 걸 눈치채셨군요.
      제 글을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s://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2009.08.31 09:0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와 십팔기이 고수셨군요...ㅎㅎ.....저도 한 때는 자칭 고수였는데...무협지에 미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그리고 운명적이 만남이 이어지는 판소리와의 인연이 정말 기이하네요..잘 보고 갑니다....행복한 한 주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말로만 고수이지 실은 몇 달 발차기 배운 실력 밖에 안됩답니다. 그러나 전 지금도 무협지와 무협영화 팬이랍니다.

  10.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8.31 10: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경륜이 있으셔서인지....뭍어둔이야기가 너무 많은 듯합니다..불로그 아니었으면 어디에다 풀어 놓으셧을지 ..

    흐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12:55 신고 address edit/delete

      보잘 것 없는 제 삶의 넋두리도 포근히 받아주니
      블로그가 좋긴 좋습니다.

  11. 롤링스톤즈 2009.08.31 15:43 address edit/delete reply

    영화가 따로 없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면 언젠가 다시 또 만나게 된다는 곡절 많은 러브스토리처럼 선생님과 판소리, 그리고 여러 명인들과의 인연은 꼭 뗄래야 뗄 수 없는, 딱 연인과 같은 운명이로군요. 우연히 길 모퉁이를 돌아서도 천하 명창을 만나시고, 죽을 작심을 하고 산에 가서도 명인들을 만나셨으니...지리산과 암자, 무술고단자와 불목하니, 그리고 단소명인... 어쩜 지어낸 이야기처럼 그토록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에피소드마다 운치가 있는지요.
    실리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청년의 천진난만함을 하늘이 어여삐 여기어 보살펴 주신 것 같습니다.
    단소 명인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신비로운 전설을 목도하는 듯한 기분마저 드는 군요. 나중에 영화 출연까지 하게 된 인연이 되시고...
    선생님 살아오신 이야기가 돈키호테의 무용담처럼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31 20:15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쩌면 그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를 일으킨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우연한 상황에서 차례차례 만난 인연들은 저를 변화로 유도하기 위한 운명의 포석이었을까요? 오로지 예술만을 간절히 원하던 그 시절, 저는 뭔가에 씌인 동키호테였나 봅니다.




오늘은 '판소리계 최고의 로맨티스트' 임방울 명창(1904년~1961년)을 소개하겠습니다.

임방울 명창은 을사보호 조약을 맺기 1년 전인 1904년에, 전남 광산군 수성마을에서 아버지 임경학씨와 어머니 김나주씨의 팔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세습 예술가 집안이었고, 본 이름은 승근인데 방울 같은 소리를 내며 크라고 방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릴 때 외삼촌이자 국창이라 불리던 서편제의 김창환 명창에게 기초를 닦았고, 자라면서 여러 명창들에게 배운 뒤, 15세 무렵에는 동편제의 유성준 명창에게 소리공부를 했습니다.

유성준 명창은 성질이 급하고 괴퍅해서 어린 임방울은 기다란 담뱃대로 머리통을 수도 없이 얻어 맞았다고 합니다. 같이 공부하던 여자애들을 맨발로 북 위에 한 시간씩 세워두기도 했다니, 제가 연기했던 「서편제」의 유봉보다 더 지독한 선생님이었나 봅니다.

임방울은 목소리가 맑고 청아하면서도 슬픈 느낌을 주고, 고음과 저음이 시원시원하게 터져나오고, 어떠한 경우에도 목이 쉬지 않을 정도로 좋은 성대를 타고 났습니다.

그런데 변성기를 맞아 소리가 마음대로 나오지 않자 골방에 틀어박혀 문을 걸어 잠그고 연습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이 무렵의 임방울 명창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그가 무덤가에서 하루종일 소리공부를 하는데 원하는 소리가 죽어도 안나오자 "마마(천연두)에 걸리면 목이 트인다는데 마마나 걸려라!"하고 소원을 빌었더니 과연 천연두에 걸려서 소리가 트이고, 그 대신 얼굴이 얽었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이처럼 소리 공부에 전력을 기울인 뒤, 그는 대명창이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스물을 갓 넘은 1925년 9월, '조선명창연주회'가 매일신보사 주최로 열렸습니다. 명창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관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먼저 그의 외삼촌인 김창환 명창과 당대 최고의 명창인 송만갑 명창, 이동백 명창, 정정렬 명창들이 특별출연으로 무대에 올라 소리를 했습니다.

그뒤를 이어 무릎 위로 올라간 짧은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땅딸막한 키에, 약간 얽은 데다가 별로 잘생기지 않은 얼굴의 임방울이 무대에 나타났습니다. 초라한 행색의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판소리 「춘향가」 중 <옥중가(獄中歌)>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寂寞獄房)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이 노래는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다 곤장을 맞고 옥에 갇힌 춘향이가 한양으로 떠나 간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목에 칼을 쓰고 산발한 머리가 마치 쑥대처럼 생겼고, 얼굴은 창백하게 귀신처럼 생겼다고  해서 '쑥대머리 귀신형용'이란 충격적인 가사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참혹한 지경에서도 일편단심 사랑하는 님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이 너무도 절실하게 묘사된 명곡입니다. 오페라로 치면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이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같은 대표적인 아리아인 것입니다.


뱃속에서 바로 소리를 뽑아서 내는 통성에 약간 쉰듯 칼칼하게 터져나오는 수리성을 섞어, 춘향이의 비통처절한 심정을 애절하게 토해내는 임방울의 판소리는 단박에 청중을 휘어잡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춘향이의 심정이 절망적인 시대의 정서와 어울어지면서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불후의 명곡이 된 <쑥대머리>인 것입니다.


 
그 공연 이후 임방울은 하루 아침에 명창의 반열에 올랐고, 콜럼비아 레코드나 빅터 레코드나 OK 레코드와 같은 유명 음반사가 앞다투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의 출세작 <쑥대머리>가 실린 음반은 한반도와 만주와 일본까지 불티나게 팔려나가, 각 음반사마다 12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세웠습니다. 

그후 1930년 전국명창대회에서 장원의 영광을 차지한 임방울은 본격적인 소리꾼으로 나서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공연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즈음, 광주의 기관장들이 환영파티를 열어 준 '송학원'이라는 요릿집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임방울이 소년시절에 광주의 부잣집에서 고용살이를 했는데, 그 집에 동갑내기의 아름다운 딸이 있었습니다. 소녀와 소년은 철부지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부모가 반대하는 통에 소년은 그 집을 떠나야 했고, 소녀는 어느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후 소녀의 결혼 생활은 실패로 끝났고, 광주에서 송학원이란 요릿집을 차리고 예명을 김산호주로 지은 소녀는 광주 유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여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날, 그 자리에서, 명창이 되어 돌아 온 임방울과 여주인 김산호주가 십여년도 훨씬 흐른 뒤에 해후를 한 겁니다. 그동안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두 연인은 곧바로 불같은 사랑을 불태웠습니다.

임방울은 2년 간 송학원의 내실에 숨어 살며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세상에서는 임방울이 잠적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전속계약을 한 OK 레코드 회사에서는 그의 행방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습니다. 

미색이 빼어났던 김산호주는 천하명창 임방울을 2년 동안 송학원의 내실에 숨겨 놓은 채, 사랑의 포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임방울은 자신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토록 기름졌던 목소리가 탁해지고, 고음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고, 소리를 조금만 질러도 땀이 뻘뻘 나는 것이었습니다.

대경실색한 그는 어느 날, 산호주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지리산으로 떠나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는 지리산 토굴에 숨어 살며 소리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임방울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미칠듯한 그리움과 슬픔에 빠진 산호주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천지사방을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임방울의 행방을 알아 낸 산호주는 임방울이 소리공부를 하는 토굴 앞에서 만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임방울은 끝내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깊은 절망에 빠져 집으로 돌아 온 산호주는 임방울을 애타게 그리다가 병이 깊어져, 마침내 30세도 안된 꽃 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산호주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임방울은 죽어가는 애인을 가슴에 껴안고 슬피 울며 즉석에서 자신의 비통한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것이 바로 <추억>이라는 노래입니다.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향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럇든가

그리쉽게 가럇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임을 하직코 가셨지만
세상에 있는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 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 보리오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전생에 무슨 함의로
이 세상에 알게 되어서

각도각골 방방곡곡 다니던 일을
곽 속에 들어서도 나는 못잊겄네

원명이 그뿐이었든가
이리 급작스리 황천객이 되얏는가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어데를 가고서 못오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을 보고지고



이 노래가 바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울광장 '노제' 때 안숙선 명창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제가 판소리를 배우던 젊은 시절, 이 노래에 얽힌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오다가, 사랑하던 노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국민들의 마음을 이 노래에 실어 보내드렸던 것입니다.

이후 박초월 명창 등과 <동일 창극단>을 만들어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하며 최고의 명창으로 대중들을 울리고 웃기던 임방울 명창은 1961년 공연 도중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5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상 처음 국악예술인장으로 치러진 임방울 명창의 장례식에는 200여 명의 여류 명창들이 소복을 입고 길을 가며 상여소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행렬 끝에 100여 명의 거지가 눈물을 흘리며 따라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공연 때마다 거지들은 무료로 관람시켰던 임방울 명창에 대한 추모의 표시였습니다.


10여세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서편제'와 '동편제'를 모두 사사받아 자신의 고유한 가풍을 수립한 전설적 명창 임방울. 

민족사의 흐름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이자, 판소리 역사에서 가장 시련과 수난이 많았던 일제 침략기에 민초들의 한을 노래한 명창 임방울.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같은 선배 가객들처럼 조선시대의 벼슬 하나 지낸 바 없고, 후배 명창들처럼 인간문화재로 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불운한 시대의 진정한 광대 임방울. 

평생 양복 입기를 싫어하며 흰색 한복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수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소외된 민초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던 아름다운 가객 임방울.

공연 때 마이크 쓰기를 꺼려 했고, 입에 발린 공치사나 돈 받기를 외면했으며, 번돈은 불우한 이웃에게 아낌없이 써버려 유족에게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은 풍류남아 임방울.

조선왕조가 저물어가는 때에 태어나 민족사의 혼란 속에서 유랑의 생애를 마친 임방울은 우리의 비극적 시대를 대표하는 명창이었습니다.


그의 출생지인 광주시 광산구 송정공원에 세워진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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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8.26 06:4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진정한 소리꾼이시고,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신 분이네요..
    그의 생이 너무도 존경스러워 집니다.

    선배님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37 신고 address edit/delete

      진정한 광대이고 풍류남아였지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2. 2009.08.26 07:30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43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제는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joyjoy 2009.08.26 08:44 address edit/delete reply

    유명하신 분이란 건 알았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44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분에게는 사랑이야기 말고도
      숨은 에피소드가 참 많답니다.

  4. 바보 2009.08.26 09:26 address edit/delete reply

    조금 더 편한 삶이 있었는데...
    21세기에 살고 있는 바쁜 우리들에게은
    상상에만 머무는 바보같은 일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긴 작품과 풍문만으로는 인물의 크기를 알 수가 없지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45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래요. 아름다운 바보이셨습니다.

  5. 이시대 진정한 2009.08.26 09:44 address edit/delete reply

    진리와 소통하는 사람은 편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해 모두 저렇게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슬픈 사랑도 눈물이 나고 인간답게 산 아름다운 삶도 눈물겹네요.
    노무현 대통령이 보고잡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46 신고 address edit/delete

      진실하고 아름답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6. 2009.08.26 10:35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47 신고 address edit/delete

      미루었던 숙제 잘 처리하시고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7. 곤이엄마 2009.08.26 12:53 address edit/delete reply

    일단은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던 분들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수 있겠습니까..선생님 덕분에 한분한분 알아가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드는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52 신고 address edit/delete

      낯선 국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기쁩니다. 차근차근 소개해 나갈께요.

  8. Favicon of https://lilac02.tistory.com BlogIcon 孤雲詩仙 2009.08.26 15:2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또 한분의 명창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역시 임방울 명창께서도 애절한 사랑은 있으셨네요.
    그러나 사랑도 소리에 대한 열정을 앞서지는 못했군요.
    하고자 하는 열정과 높은 경지앞에선 위대한 사랑도 약해지나봅니다.
    '쑥대머리'....
    기억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52 신고 address edit/delete

      인간미와 열정이 남달랐던 분입니다.

  9. Favicon of http://www.indianabobs.com BlogIcon 인디아나밥스 2009.08.26 16:4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지역 방송국을 통해 임방울 명창의 이야기를 몇 번 들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54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 분에 대한 에피소드는 참 많이 전해 옵니다.

  10.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09.08.26 16:48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 덕분에 국악에 대한 공부와 상식이 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닌 서울 중앙여고는 고1 필수로 가야금을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손가락이 부르튼 기억뿐이지만 질높은 교육을 했던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55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런 여고가 있었다니 놀랍군요.
      정말 좋은 학교를 다니셨네요. 요즘 그런 학교가 줄어들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11. Favicon of http://lukeson.blogi.kr/tt BlogIcon H. Son 2009.08.26 17:19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 글 읽을때 마다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집니다.

    오늘도 글 잘 읽었습니다.

  12. Favicon of http://leedam.tistory.com BlogIcon leedam 2009.08.26 21: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13. 역사학도 2009.08.27 23:21 address edit/delete reply

    그전에도 한번씩 몰래 보고 갔었는데..
    이제야 인사글 올립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글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예술인은 역시뭔가 다른듯합니다.ㅋ
    앞으로도 계쏙 좋은 글 부탁드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57 신고 address edit/delete

      방문에 감사하고, 인사글에도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14. 롤링스톤즈 2009.08.28 10:34 address edit/delete reply

    노제 때, 안 명창님의 노래를 들으며 아예 널브러져 앉아 울었지요. 그 노래가 죽은 연인을 보내면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곡이라니... 임방울 명창의 내공도 내공이시지만, 그 사랑의 애달픔이 진정 뼈져리게 느껴집니다.
    임방울 명창... 예술에 있어서도, 당신 삶에 있어서도 흐트러짐 없이 격조있게 살다가신 분이시군요. 그 소리 한 번 목전에서 들어봤으면 싶습니다.

    지난 5월, 7개월 된 제 아기들 이유식을 먹이며 그 분의 영결식을 지켜보구 있었지요. 추모곡으로 '아리랑'이 해금 연주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제비새끼처럼 한 술 두 술 받아먹던 쌍둥이 큰 아기가 입술을 삐죽삐죽 내밀더니 닭똥같은 눈물을 죽죽 흘리지 않겠어요. 이거 왜 이러나 싶어하는데 곧바로 작은 아기도 그러면서 끄윽끄윽 흐느껴요. 해금 연주를 듣고 구슬퍼서 그러는 거더군요. TV를 끄면 괜찮다가도 다시 켜니 또 훌쩍거리구...
    평소 아기들 방에 음악을 틀어놓거든요. 음악소릴 아는 지 모르는 지 녀석들은 늘 항상 그 속에서 먹구 자구 생활하는데요. 그 무수한 음악들 속에서도 단 한 번 반응한 적 없던 놈들이 '아리랑'에 울더군요.(실은, 모르겠습니다. 아기들이 아리랑에 운 건지, 그 분의 통한스런 죽음에 운 건지. 후자 쪽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비약하는 것이 될 듯 싶어서요)참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더군요. 이유식 먹이느냐고 가뜩이나 아픈 가슴 억누르고 있던 참인데 그 낌에 저도 퍼질러 앉아 질펀 울어버렸지 뭡니까.

    곧이은 노제까지 딸들과 시청하는데, 이번엔 딸들은 울음을 그쳤는데 제가 통곡하고 말았지요.
    그 가슴을 후벼파던 안숙선님의 노래... '앞산도 첩첩허고~' 제가 선생님의 블로그를 처음 찾게 된 연유도 그 노래에 있었답니다. 그 잊지못할 노래의 곡명을 검색하다보니 이렇게 선생님 블로그까지 찾아들게 되었지요. 일전에 쓰신 글에서 이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나중에 들려 주신다고 하시더니 드디어 오늘 듣게 되는 군요.
    예술은 사람의 본능적 감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이성이 없는 아기들도 울고 웃고 하는 걸 보면요. 임방울 명창의 예술과 생애가,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부자와 거지들의 마음에도 두루 통했던 걸 보면요.
    風流 男兒 ... 그 분의 생이 한 편의 서사시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51 신고 address edit/delete

      노제 때의 슬픔이 남다르셨다는 글을 보니 저도 가슴이 아파오는군요. 해금소리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도 놀랍구요.
      제 블로그와의 인연이 된 노래의 사연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음악과 그 분의 삶에 대한 사랑, 소중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전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이 땅을 빛낸 또 하나의 큰 별이 떨어지셨습니다.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고인의 못다 이룬 꿈이 아쉽습니다. 
고인의 서거를 애도하며 저와의 개인적인 추억, 특히 문화예술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잊지 못할 일화 한가지를 소개합니다.  
 

 

그 만남은 1993년의 겨울 어느날, <예술극장 한마당>이라는 허름한 소극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 고인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갔다가 돌아와 '아시아-태평양 재단' 일에 전념하고 계실 때입니다. 

저는 극단아리랑의 대표겸 연출가로서 활동하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서편제」의 주연배우로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무렵입니다.

제가 창단공연으로 막을 올린 「아리랑」을 원안으로 하여, 권호웅 후배가 연출한「아리랑2」라는 작품을 공연하고 있을 때입니다.

뜻밖에도 '아시아-태평양 재단'으로부터 DJ께서 우리 공연을 보고 싶어 하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서편제」 영화를 관람하신 뒤 제가 극단아리랑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잊지 않고 계시다가, 연극 공연 소식을 듣고 연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1993년 11월 4일 일요일, 국회의원 10여명을 대동하고 공연시간인 3시가 되기 조금 전에 오신 DJ는 초대하겠다는 저의 호의를 무시(?)하고 굳이 티켓을 사서 관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소극장으로 들어가겠다고 우기셨습니다. 

제가 대표를 겸하고 있던 <예술극장 한마당>은 대학로에서 성북동으로 들어가는 혜화동 골목 길가 허름한 건물의 지하에 세들어 있던 100여석 정도의 소극장으로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고, 어두컴컴하고, 주차장도 없고, 좌석은 좁고 기다랗게 이어져 있는 초라한 곳이었습니다.

젊은 관객들이야 소극장이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오지만, 이미 대통령 후보까지 지내신 정계의 거물을 그런 누추한 장소에 모시자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함께 오신 의원님들도 그 당시 난다긴다 하는 거물 정치인들인지라 소극장의 꼴이 그토록 험악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다들 잘못 왔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짓고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생각해도 와주신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다리까지 불편하신 분이 그런 비좁은 의자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연극을 보신다는 것은 또다른 고문(?)과 같이 무리한 일이라, 죄송하다는 얘기를 하고 다음에 좋은 극장에서 공연할 때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DJ께서는 웃으시면서 그런 걱정하지 말고 공연이나 잘하라고 하시며 의원들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할 수 없이 두 분만 앉을 수 있게 허름한 간이의자를 부리나케 준비하여 특별석(?)을 마련했습니다.

이희호여사의 손을 잡고 두 시간 동안 즐겁게 공연을 감상하신 DJ는 수고하는 단원들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대학로의 소박한 고깃집에서 단원들과 국회의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DJ는 식사가 나오기 전에 관람하신 공연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감상도 얘기하시다가, 느닷없이 모 국회의원을 향해 이렇게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DJ : 어이, OOO의원!
모의원 :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예!
DJ : 자네 지금까정 연극 맻편이나 봤능가?
모의원 : (더듬거리며) 아...예....아직 한편도....
DJ : 이 사람아, 정치허는 사람이 연극도 안보고 댕기믄 쓰겄능가?
모의원 : 죄송합니다. 바빠서....
DJ : 아무리 바뻐도 연극을 자주 보러 댕기소.
모의원 : (앉으며) 예, 알겠습니다!
DJ : 서편제까지 허신 김대표가 여그 이렇게 열악한 소극장에서 연극으 열정을 불태우는디 정치인들이 적극 관심을 가지고 지원도 허고 그려야 된단 말이시.
의원들 : 맞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해프닝에 모두들 웃으며 연극과 정치 얘기로 화기애애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습니다. 그뒤 DJ께서는 금일봉과 함께 극단아리랑 의 후원회원으로 가입하여 우리들을 한껏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뒤 그 분과의 인연은 국립극장장과  대통령으로도 이어졌습니다만, 제 가슴 속에는 제가 연극에 열정을 불태우던 시절에 허름한 소극장을 찾아주신 고인의 영상이 너무도 뚜렷이 박혀 있습니다. 


누추한 골목길의 초라한 소극장에서 돈도 되지 않는 민족극을 하겠다고 땀을 흘리는 무명배우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하신 애정어린 관객,

초대 안하면 공연장에 오지도 않는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문화의식을 앞장 서서 깨뜨려주신 선구적 관객,

당당히 표를 사서 관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입장해 주신 겸손한 관객,

추운 겨울 날의 오후를 소극장에서 함께 보낸 DJ는 제가 이제껏 만난 최고의 관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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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8.19 14:38 address edit/delete reply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하셨던 분이셨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d 2009.08.19 14:44 address edit/delete reply

    너무나 익숙하고, 오랜 시간 옆에 있다보니, 그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치네요.
    너무 슬픈 하루입니다.

  4. 노랑사랑 2009.08.19 15:15 address edit/delete reply

    누추하고 초라한 극장안에서의 최고의 관객, 노무현님의 서민 정신 , 그것과 다르지 않네요. 좋은 추억 있으셔서 그래도 행복하시겟네요. 더욱더 분발해서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1 신고 address edit/delete

      서민적이고 예술에 대한 애정도 깊으신 분이셨죠.

  5. Favicon of https://islandlim.tistory.com BlogIcon 임현철 2009.08.19 16:0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한 잔 나할 수가 없군요. 오늘 밤에는 그를 추모하며...
    트랙백 남깁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1 신고 address edit/delete

      멀리서 한 잔 함께 나누겠습니다.

  6. Favicon of http://djodl@hanmail.net BlogIcon 해와달 2009.08.19 17:58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도 한잔하렵니다...
    연세병원에 계신다기에 찾아뵈려 했는데
    이리 서둘러 가시니........부디 영면하시길..바라고 또 바랍니다...
    우리 국민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님을 존경하고 또 사랑한다는거
    꼭 알고 간직하고 떠나세요.....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3 신고 address edit/delete

      멀리서 한 잔하며 함께 명복을 빌겠습니다.

  7. rlagmltjs 2009.08.19 20:03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슬프지만 자랑스럽습니다
    그분이 살았던 시대에 살았고 그분을 존경할 수 있어서........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4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긍지 저도 함께 나누겠습니다.

  8. 수수꽃다리 2009.08.19 20:07 address edit/delete reply

    가슴이 저립니다. 두고두고 그 분의 높은 뜻을 마음 속에 기리겠습니다.

  9. Favicon of http://blog.daum.net/sunup-ok BlogIcon O.M.S 2009.08.19 23:09 address edit/delete reply

    인생이 덧없고 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나긴 듯한 삶보다 짧은 순간인 죽음을 통해 더 크고 깊은 생각에
    빠져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진한 한숨 내쉬어 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5 신고 address edit/delete

      삶과 죽음이 백지장 한 장 차이인데...
      한숨 쉬며 명복을 빕니다.

  10. Favicon of https://lilac02.tistory.com BlogIcon 孤雲詩仙 2009.08.20 01:1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영욕의 세월을 잊으시고 편히 잠드시길....

    근데 위에 저와 같은 닉을 쓰시는 분이 계시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6 신고 address edit/delete

      함께 명복을 빕니다. 같은 닉네임이 있어서
      저도 놀랐습니다.

  11. Favicon of https://apsan.tistory.com BlogIcon 앞산꼭지 2009.08.20 01: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재밌는 일화네요.
    약간은 DJ 주변의 풍경도 읽을 수 있는 것이 말입니다.
    하여간 DJ의 또다른 모습을 본 듯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그 아리랑이란 공연이 더 궁금해지네요.....ㅎㅎ.

    제가 이렇게 과문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8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리랑은 일제 시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소재로 한 연극이랍니다.

  12. Favicon of http://cgy6910@hanmail.net BlogIcon 꿈꾸는 나날 2009.08.20 03:32 address edit/delete reply

    2009년!
    참 힘들고 어려운 나날의 연속입니다.
    눈물이 마를 날을 주지를않는 2009년.
    어리석었던 대한국민들에게 주는 ,
    깊은 가르침이겠지요?
    잔인한 2009년이 진정
    대한민국국민의 정신이 옳곧게
    깨어나는 원년이 되어지기를
    빌고 또 빕니다.
    그래야만
    이 눈물의 값어치가 남게되는거겠지요.
    노무현,김대중!!!
    두 대통령님께서 남겨주신
    이 눈물이 진정
    대한민국 국민을 일깨워주시는
    힘으로 남게되기를 빌고 또 빕니다.

    우리 두분 대통령님!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제 어깨가
    무거워짐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49 신고 address edit/delete

      두 분 대통령님의 영면을 함께 빕니다.

  13. 자작자수 2009.08.20 04:52 address edit/delete reply

    저 역시 어린시절부터 "김대중은 빨갱이다"는 말을 듣고 자랐으며, 중학교 시절 광주학살에 참가한 소대장의 무용담을 그저 재미로 듣고 자랐습니다.

    그 후 대학을 다니고 진실을 알아가면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에 세뇌되어 '불편한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분이 꿈에도 염원하시던 '민주주의'는 점점 더 후퇴하고 있고, 그 분이 평생의 소원으로 삼으시던 '민족의 통일'은 점점 더 요원해지는 현실에서 그 분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정신적 은사가 사라진 느낌입니다.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큰 소리로 우시던 그 순간이 지금 대한민국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부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 우리 국민들을 보살펴주시길 기원합니다.

    민주주의가 만개한 통일된 조국에서 그 분이 떠나셨다면............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두 분 모두 평화롭게 영면하고 계실 겁니다.

  14. Favicon of http://heraus.pe.kr BlogIcon heraus 2009.08.20 07:33 address edit/delete reply

    왜 이렇게들 날짜를 몰아서 돌아가시는지...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50 신고 address edit/delete

      슬픔이 너무 급하게 들이닥치는군요.

  15. Favicon of https://careernote.co.kr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09.08.20 07:4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그의 인생이 그러하셨죠.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준 故김대중 前대통령의 삼가 명복을 기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0 18:52 신고 address edit/delete

      합리적이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그 분의 명복을 빕니다.

  16. 2009.08.21 16:41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1 17:44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분의 진정성과 그 분을 위해 기도했던 님의 진정성이 담뿍 담긴 글 감사합니다.
      그 분의 못 다 이룬 뜻 우리가 이어가야 하겠지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17. 갈매기 2009.08.21 23:07 address edit/delete reply

    목포가 고향인 제게도 많은 추억이 서려있습니다.. 제가 어릴때 받았던 세퍼트강아지 한마리와... 그 후 32살때 어느 행사에서 제게 청하신 따뜻한 그분의 손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왜 우린 진실이란 단어를 외면하고 지켜내질 못했을까요? 저만 알면 진실이 되는게 아니라 지켜내는 힘이 필요할 때인것 같습니다. 그분의 따뜻함이 그리운 밤입니다.... ㅠㅠ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2 09:1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따뜻하고 아버지같은 분이셨지요.

  18. 탱자꽃 2009.08.21 23:42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런 글을 왜 이제야 발표를 하시는 겁니까
    이제라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언론도 주둥이 다물고 있고
    그 누구도 입다물고 있었던 일들을
    왜 돌아가신 후에야 다들 입을 여냐고요
    그 사이 경상도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욕을 해대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진작에 좀 알려주시지 그랬습니까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2 09:13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리 급히 가실 줄 알았으면 서둘러 글을 쓸 걸 하고 저도 후회한답니다.

  19. 노다메 2009.08.22 01:02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기어이 눈물을 주시는군요.
    저도 앞으로 더많이 연극 관람할께요.

    극장에서 뵈요~

  20. Favicon of http://blog.naver.com/momentor BlogIcon 엄마멘토 2009.08.22 09:59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눈물이 나오는군요. 여러 모로 삶이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제가 선생님을 뵈었을 때가 김대중 대통령님 재임 중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상기됩니다. 선배들이 사회 정의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아무 걱정 없이 즐거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지요. 그 당시에는 그게 그분의 덕이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큰 별 두 분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너무나 명확하게 알게 되니 죄송스럽기도 하고...그러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2 12:13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가 인터뷰를 통해 만난 게
      그 분 재임 중이었다는 회상에
      묘한 슬픔이 밀려오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함께 빌어봅니다.

  21. Favicon of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362 BlogIcon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2010.08.17 18:04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 같은 날 의미있는 글이라 링크걸어요.

    6.15선언 이행했다면 DJ 비전인 ‘사실상 통일’ 이뤘을 것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362




 

2008년 7월 31일에 폐암으로 작고하신 이청준 선생님의 1주기가 다가오는군요.  

이청준(李淸俊, 1939-2008) 님은 전남 장흥 출생으로, 1960년 광주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1966년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셨습니다.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퇴원(退院)' 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셨지요. 그후 <사상계>,  <여원> 등 출판계에 종사하다가 그만둔 후 전업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하셨고,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셨으며. 이후 <이어도>, <잔인한 도시>, <살아 있는 늪> 등으로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창작집으로는 <별을 보여드립니다>(1971), <소문의 벽>(1972), <조율사>(1973), <가면의 꿈>(1975), <자서전들 쓰십시다>(1977), <예언자>(1977), <남도 사람>(1978), <살아있는 늪>(1980),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1981), <시간의 문>(1982), <비화밀교>(1985), <따뜻한 강>(1986) 등이 있고 장편으로는 <당신들의 천국>(1976), <춤추는 사제>(1979), <자유의 문>(1989), <인간인>(1991) 등이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문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선생님을 그리며, 1년 전에 <세계일보>에 기고했던 추모의 글을 손질해서 올립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92년 7월 말, 임권택 감독님으로부터「서편제」의 각색과 출연 제의를 받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됐지요.

그날부터 저는「남도사람」이라는 연작소설집 속에 실린「서편제」,「소리의 빛」,「선학동 나그네」등의 단편들을 꼼꼼히 읽고, 각색을 위해 선생님과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한 세대를 풍미한 작가로서의 선생님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각색자와 원작자와의 만남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작자의 문학적 명성이 크고 높을수록 각색자는 더 큰 짐을 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술자리에서 각색에 대한 저의 고민을 얘기 듣고 나서, 선생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니 김 선생이 하고 싶은 대로 각색하시오. 그 대신 우리 막걸리나 자주 마십시다.”

그 후로 선생님의 고향인 장흥에도 함께 방문하여 치매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님을 뵙기도 하고, 편하게 술잔을 나누는 자리도 여러 번 있었지만, 선생님은 단 한 번도 각색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에 있는 이청준님의 고향집.

저는 은발을 쓸어 올리고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은근하게 좌중을 유도하시는 선생님의 인품에 반했습니다. 또 가느다란 담배가 입에서 떠나지 않고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멋진 은발과 어울려 묘한 매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얀 연기가 선생님의 수명을 앗아간 원흉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생님의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식견은 저를 능가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도 독문학을 전공했다는 걸 알고 “우째 이런 일이!”하고 놀라며, 판소리와 독문학으로 이어진 우리의 인연을 신기해하고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그 뒤 저하고는「조만득씨」라는 중편소설을 각색, 연출한「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그 연극을 할 때도 선생님은 즉석에서 허락하시고, 각색에 대해 저에게 무조건 일임하시고, 공연을 보시고 진심으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게다가「서편제」는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저에게 안겨 주더니,「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는 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었으니 선생님과의 인연은 저의 인생에 영광의 빛을 더해 주었습니다.



「서편제」 이전에도 몇 작품이 영화화되었지만, 「서편제」 이후에 선생님의 소설들은 더욱 활발하게 영화화되었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축제」.



「서편제」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천년학」.



「벌레이야기」란 원작 소설을 소재로 한 「밀양」.



그밖에도 수많은 감독과 연출가, 작가들에게 영감과 명예를 안겨 주신 선생님.

그러나 그런 화려한 빛의 그늘에 침잠하여 '창작의 고통은 천형'이라고 하신 선생님의 그 웅숭깊은 부끄러움, 고통, 죄의식, 낯설음은 우리를 엄숙한 내면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한 번 읽으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우리 영혼의 주위를 맴도는 선생님 작품의 마력은 바로 그 깊은 내면의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것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작품집인「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서문에서 "이런 자리 마련한 것이 부끄럽고, 소설을 욕심낸 것이 부끄럽고, 내 몸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해 부끄럽고, 이웃에 대해 부끄럽다."고 하셨지요.

그 말씀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자신에 대해 너무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너무도 이웃친지들의 소중함을 모르며 살고 있는 제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질책이셨습니다.

또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의 인터뷰에서 신화와 영혼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도 하셨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와 소치 허유가 어우러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남겨 놓으신 문학의 화두는 과연 누가 짊어지고 갈까요?

어느 누가 선생님이 차지했던 한국문학의 별자리를 이어갈까요? 어느 누가 선생님이 목숨을 걸고 사랑한 우리말의 순교자가 될까요?

소설보다 힘들게 암과 싸우다가 돌아가신 선생님, '당신의 천국'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1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을 추모하며 선생님이 「서편제」에서 제일 좋아하셨던 <이 산 저 산>의 가사를 바칩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구나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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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7.29 06:4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청준님의 작품들이 정말 대단하네요.. 그 많은 작품을 남기시고
    천국에 가신 것 같습니다. 행복하실 것 같아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사랑하니 말이죠..
    선배님 오늘 하루도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18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청준님은 화제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었지만 날이 갈수록 빛이 나는 보석과 같은 작가입니다. 행복한 나날 되세요.

  2. 탐진강 2009.07.29 07:56 address edit/delete reply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간미 넘치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진정한 문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1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셨지요.

  3. Favicon of https://careernote.co.kr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09.07.29 09:0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대단한 작품들을 만들어내신 분이군요.
    '창작의 고통은 천형'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창작인으로서 고통을 모두 지고 살아간 모습이 느껴집니다.
    이제는 부디 하늘에서 편히 쉬시면서 평온하게 지낼 수 있길 빕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0 신고 address edit/delete

      창작의 천형을 벗으셨으니 이젠 평안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4.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7.29 09:0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 잘 읽었습니다. 한국 영화계에도 간접적 영향을 끼치신 분이군요.
    분명 천국에서 잘 지내시겠죠.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1 신고 address edit/delete

      연화, 연극 등에 많은 영감과 소재를 제공해 주신 분이지요.

  5.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7.29 09: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어릴때 이청준님 글 많이 접한때가 있었습니다..김명곤선생님께서도 고인과 남다른 추억이있어서 많이 애닯은느낌이 글속에서 전해지는군요...

    이시대에 문인으로 산다는게 참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침..오늘도 좋은 글 ...매우 잘 읽고 가슴에 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점점 책을 보지 않게 되어 가는 이 시대에 직업문인의 길은 간다는 것은 정말 수도승과 같은 의지가 없으면 힘든 일인 듯 합니다.

  6. Favicon of https://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2009.07.29 09:4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청준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으셨군요....벌써 1주기라니 ...글 속에 느껴지는 이청준 선생님의 면모가 참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4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따뜻하고 겸손하신 분이었지요.

  7. Favicon of http://www.indianabobs.com BlogIcon 인디아나밥스 2009.07.29 10: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밀양의 원작이 故이청준 작가님의 소설 '벌레이야기'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예전에 영화 '축제'를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아 원작 '축제'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7월 31일이 故이청준 작가님 1주년이군요. 故이청준 작가님께서 남기신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5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청준님의 소설 하나하나는 은근하게 빛나는 야광석 같답니다.

  8. Favicon of http://hyoya.tistory.com BlogIcon 빛으로™ 2009.07.29 11:5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잘 모르는 분이지만 윗 글을 읽어보니 영화사에도 공헌을 많이 하신분이네요
    부디 좋은곳으로 가셨기를 바래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6 신고 address edit/delete

      영화사, 문학사, 연극사에도 길이 남을 분이시지요.

  9. Favicon of http://blog.daum.net/code0jj BlogIcon 라일락 2009.07.29 22:05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군요.
    좋은 족적을 남기셨으니 아마도 천국에서 편히 쉬시리라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마 고통의 짐을 내려 놓고 편히 쉬고 계실 겁니다.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momentor BlogIcon 엄마멘토 2009.07.30 02:06 address edit/delete reply

    3박 4일 간 휴가를 다녀와서 그동안 밀린(!) 포스팅 다 읽고...이 글에만 덧글을 답니다.
    고 이청준 선생님께서 판소리를 좋아하신다는 이야기야 당연히 영화 서편제 때부터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역시 그 식견이 대단하셨군요.
    '이산 저산'은 저도 많이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사실 저는 단가로 더 많이 들었었거든요. (제가 한 때 안숙선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방송의 보조작가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방송에서도 워낙 많이 부르셨지요.) 제가 아직 나이는 많이 어리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와 닿는 가사이기도 하고요. 소리길도 참 마음에 들어요.

    대문호께서 소설과 영화가 다르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 주시고, 각색에 일체 관여하지 않으셨다는 이야기를 실제 함께 일하셨던 분의 글을 통해 알게 되니.... 더더욱 고인의 넓고 깊은 마음가짐을 느끼게 되어서 고개가 숙여지네요. 1주기를 진심으로 추모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2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 글에만 덧글의 은총을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국악 관련 방송 작가로서 일하셨으니 감회가 남다르시겠군요. 정말 관대하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함께 명복을 빕니다.

  11. Favicon of https://chiwoonara.tistory.com BlogIcon 붉은방패 2009.07.30 14:5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영화 축제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한 장례절차가 축제라는 역설적인 제목에 어쩜 그리 잘 어울리는지..
    선배님 덕분에 요즘은 글 다운 글을 참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0 20:30 신고 address edit/delete

      축제는 참으로 깊이 있고 의미심장한 좋은 영화입니다. 행복한 나날 되세요.

  12. Favicon of http://blog.naver.com/frankie88 BlogIcon 프랭키 2009.07.31 01:57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영화 <축제>를 가장 좋아합니다. 두고두고 보아도 참으로 대단한 작품이에요. 소설도 훌륭하고, 영화는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이산저산'은 서편제 OST를 마르고 닳도록 들으면서 외울정도로 듣고 또 들었던 대목입니다. 선생님, 그 대목에서 정말 좋았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31 09: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축제를 무척 좋아합니다. 소설, 영화 모두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지요. 이산저산도 좋아하신다니 기쁘네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13. 바보 2009.07.31 23:31 address edit/delete reply

    79년도 대학에 입학하니 선배들이 무조건 읽어야할 책 리스트를 마련해주였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당신들의 천국"이었죠. 고등학교까지 수험준비하느랴 제대로 된 책을 읽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 두꺼운 책을 과연 읽어낼까 걱정도 있었지만, 작품 그자체가 내는 마력에 끌려서 며칠밤을 새면서 다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한 독서 습관은 그이후에도 지속되어,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방학이 되면 1-2주일간은 독서폐인이 되곤 했습니다. 고 이청준선생은 저의 젊음의 한가운데 계셨던 셈이지요. 오랜만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01 22:5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이청준 선생에게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들은 우리 젊음을 성찰과 사색으로 이끌었지요.

  14. Favicon of http://elcarim1.tistory.com BlogIcon 난나  2009.08.02 23:0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청준선생님. 정말 존경하는 분이시고, 생전에 꼭 한번 만나뵙고 싶었던 분이셨어요. 선생님과의 소중한 인연에 대한 글 잘 보고 갑니다.

    작년 여름이니.. 벌써 1주기네요. 1주기를 진심으로 추모하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04 19:24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청준 선생님의 글을 사랑하신 분이군요. 함께 추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5. 주명희 2009.08.08 22:50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이청준 선생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소설이며, 산문이며, 동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을 읽고 글 속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의 소설은 거의 다 읽을 정도로...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난 누구 소설을 읽어야 하나.....
    이청준 선생님의 소설은 제 삶의 가치관을 바꿨습니다.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저는 삶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혼자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겠다고요....
    소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
    이청준 선생님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분은 이 땅에 없지만 저는 그분은 제 가슴속에
    뜨겁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명곤님 정말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09 06:15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분의 열렬한 팬이셨군요. 안타까우시겠습니다. 저도 함께 애도할께요. 하지만 그 분의 글은 남았으니 그 분의 글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요.

  16. 남도사랑 2009.08.22 00:46 address edit/delete reply

    작가의 1주기가 다가와서 그런지 어제오늘 남도사랑이란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책방에서 찾아볼 생각입니다.인터넷이 참 좋습니다.제가 이렇게 님의 글에 댓글을 달게 되다니요.서편제 천년학.축제 다 재미있게 보았어요.천년학은 팀원들끼리 단체관람할때 추천했다가 몇명의 원성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2 09:16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청준님의 작품을 함께 사랑해주시고 추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년학은 저도 좀 아쉬웠답니다.





영화 <서편제>가 세상에 나온 후,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서편제와 동편제가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상식이 '서편제는 전라도 판소리이고, 동편제는 경상도 판소리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잘못된 상식입니다. 

'동편제'와 '서편제' 모두 전라도에서 불리던 판소리의 유파입니다. 
판소리는 예부터 선생님에 따라서 가사의 내용이나 곡의 흐름이 다르고,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제자라 할지라도 조금씩 고쳐 나가기 때문에 명창마다 그 내용이 다릅니다. 이것을 ‘유파’라고 하기도 하고, 무슨무슨 ‘제’라고도 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두 유파가 전라도 땅을 가로 질러 흐르는 섬진강의 동쪽 지방에서 주로 전해왔던 ‘동편제’와, 섬진강의 서쪽 지방에서 주로 전해 왔던 ‘서편제’인 것입니다.

섬진강의 동쪽 지방에는 '동편제'가, 서쪽 지방에는 '서편제'가 전해져 왔다. 

'동편제'는 씩씩하며 음의 꾸밈이 적은데, '가왕(歌王)'이라고 불리운 송흥록을 시작으로 해서 그의 동생인 송광록, 송광록의 아들인 송우룡으로 이어지는 송씨 집안의 판소리 법통을 말합니다. 그들은 섬진강의 동쪽 지방인 구례, 곡성, 남원  쪽에서 주로 활동을 했습니다.


운봉면 화수리 비전마을에 있는 송흥록 명창 생가 앞 동상.

송흥록 명창 (1801년~1863년)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 출생. 8명창의 한 사람으로 가왕()의 칭호를 받았다. 판소리의 중시조()로서 모든 가조(調)를 집대성하는 한편, 매부인 김성옥()이 시작한 진양조를 자신의 노래에 도입, 완성하였다. 그의 창법은 발성초()가 극히 신중하였고, 웅건·청담한 창법을 가진 동편제(便)를 이룩하였다. 특히 《춘향가》 중의 〈옥중가()〉와 《변강쇠타령》 《적벽가()》 등을 잘 불렀다. -두산 백과사전

‘서편제’는 섬세하고 음의 꾸밈이 많은 판소리인데, 박유전 명창이 송씨 집안의 판소리와 대조적인 창법으로 만든 소리제입니다.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박유전은 목청이 뛰어나게 고왔던 명창인데, 그 무렵에 천하를 호령하던 대원군의 아낌을 받아서 벼슬까지 하고 그의 사랑채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명성황후와의 권력 다툼에서 권력을 뺏긴 대원군이 중국으로 도망가자, 명성황후의 복수를 피해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갖은 고생 끝에 대원군이 다시 권세를 잡자, 박유전 명창도 한양으로 올라와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원군이 죽고 한일합방이 되자, 전라도 어느 땅에 숨어 살다가 한겨울에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전남 보성군 보성읍 보성공원에 있는 박유전 명창 추모비.

박유전 명창 (1835년~1906년)
전북 순창() 출생. 헌종 ·철종 ·고종 3조()에 걸쳐 살았고, 특히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무과()에 급제까지 하였다. 음색이 청아하였으며, 서편제(西便)에서 갈라진 강산제(/)를 창시하고 뒤에 제자 이날치()에게 그 창법을 전수하였다. 《춘향가》 중 <이별가>에 뛰어났으며, 독특한 창법을 구사하였다. -두산백과사전

그 분이 섬진강의 서쪽 지방인 보성, 강진, 해남 쪽에서 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례쪽 판소리를 ‘동편제’라 하고 보성쪽 판소리를 ‘서편제’라고 부르기 시작한 겁니다.

일제시대가 시작되기 전인 조선 말기에 ‘동편제’와 ‘서편제’는 서로 심하게 싸웠습니다. 스승들은 상대의 판소리를 깎아내리고 자기 판소리가 최고라고 우겼으며, 제자들도 편을 갈라서 서로 자기 스승이 최고라고 다투었습니다.

만약 '동편제' 스승에게 판소리를 배운 제자가 '서편제'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울려면 파문을 각오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판에 두 파의 싸움을 멈추게 한 풍운의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송만갑이란 명창입니다.

송만갑 명창은 송흥록 명창의 손자이고, 송우룡 명창의 아들이니 완전히 ‘동편제’의 정통파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는 일곱 살 무렵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소리를 배웠습니다. 그는 판소리의 천재 소년이라서 이미 열 살 무렵부터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서편제’ 소리에도 관심이 많아서 아버지 몰래 박유전 명창의 창법을 자기 소리에다 섞었습니다. 집안의 전통적 음악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이루려고 노력한 거지요.

그러나 집안 어른들은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라고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만갑이 놈을 잡아들여라!”

아버지를 비롯해서 집안의 어른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모두들 판소리를 하거나 북을 치는 광대들이었지요. 송만갑은 화가 잔뜩 난 집안 어른들 앞에 꿇어 앉았습니다.

“네 이놈, 만갑아!”
“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제가 무슨 죄를 졌습니까?”
“집안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네 멋대로 소리를 해?”
“저는 제멋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네 놈이 서편 소리를 하는 걸 들은 사람이 있는데도?”
“서편 소리에도 좋은 대목이 있어서 조금 섞어 부른 겁니다.”
“그게 집안의 전통을 무너뜨린 게 아니고 무엇이냐?”
“저는 동편이니 서편이니 가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무엇이?”
“시대가 변했습니다. 소리꾼은 옷감 장수와 같아서 비단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비단을 주고, 무명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무명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저 놈의 목을 작두로 베어라!”

아버지는 길길이 화를 내며 만갑이를 죽이겠다고 서슬이 퍼랬습니다. 그러자 집안 어른들이 판소리 재주가 아까우니 죽이지는 말자고 아버지를 말렸습니다. 결국 집안 어른들은 송만갑을 파문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고, 그 후 송만갑은 다시는 집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집 세고 자신감에 넘치던 송만갑은 그 뒤로 집을 떠나 조선팔도를 떠돌면서 판소리를 했습니다. 그 통에 더욱 유명해지고, 그의 판소리는 널리 퍼졌습니다.

그는 드디어 일제시대에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창이 되었습니다. 송만갑 명창은 마음이 관대하고 제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점점 명창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며 편을 가르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때부터 '동편제' 명창과 '서편제' 명창이 서로 싸우지 않고 교류를 하게 됩니다.
 


송만갑 명창 (1865년~1939년)
전남 구례 출생. 명창 우룡()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배워 10세 때 벌써 그 자질을 인정받았다. 창법은 종조() 흥록(祿)의 전통적 법제()에서는 많이 벗어났으나 통속()과 평이()를 신조로 한 동편(便)의 명창으로 알려졌다. 어전()에서 판소리를 불러 감찰()을 제수받았다. 192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설립,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김정문() ·김광순() ·박녹주() ·박초월() 등의 제자들을 배출시켰다. 또 《춘향가》 《심청가》를 창극화했으며, 특히 《춘향가》 중에서도 <농부가()>를 잘 불렀다.  -두산백과사전

그는 국악인들의 전국적 모임인 <조선성악연구회>라는 단체의 수장으로서, 파벌과 유파를 초월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1939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우리 국악계는 그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대척을 하고 있는 유파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상대와 싸웁니다.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고, 조롱하고, 파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합니다. 극과 극의 원리주의에 입각한 검투사가 칭송 받습니다. 대화와 타협은 기회주의의 처신으로 배척됩니다. 증오와 분노와 저주의 에너지가 한반도의 하늘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시절이 이러하니 송만갑 명창의 통합과 화합과 관용의 리더쉽이 더욱 그립습니다.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 유봉이 죽기 전에 송화에게 남긴 유언과 같은 대사를 되새겨 봅니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허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없고 서편제도 없고 득음(得音)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동편과 서편을 아우르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처럼 통합의 소리판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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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09.06.06 07: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동편제에 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
    하하~ 이제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지인들에게 유식한척 하면서 알려줘야겠습니다 후훗~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1 신고 address edit/delete

      영화 서편제 때문에 동편제는 서운한 게 많았을 테니 많이 홍보해 주세요.

  2.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6.06 08:1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탯줄은 하나였고, 소리도 하나였다는 소리같네요..
    같은 정신을 가졌던 사람이 혼돈에 빠져서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런것 같네요..
    다시 이 모든것을 아우르는 하나 됨이 필요할텐데 걱정이에요..
    선배님 덕분에 동편제와 서편제의 개념을 알았네요..
    그리고 인물과 정신까지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 그리고 황금펜 베스트 블로거 되신 것 정말 정말 감축드려요 ^^
    오늘 행복함 가득하시길 바래요~ 선배님 사랑해요 감사해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3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모두 근원을 찾으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황금펜촉의 기쁨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3. Favicon of http://lblog.daum.net/esplanade12 BlogIcon Angella 2009.06.06 11:44 address edit/delete reply

    판소리"서편제"와 "동편제"의 통합뿐만이 아니라
    Consilience統攝의 Minder가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 봅니다.
    김명곤선생님을 좋아하는 저희들이
    "우리가 좋아하는 김명곤"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이기두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6 신고 address edit/delete

      고립된 한 개체로서가 아니라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의 네트워크와 통섭을 지향하는 현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4. Favicon of http://songcine.tistory.com/ BlogIcon 송씨네 2009.06.06 12:08 address edit/delete reply

    파벌싸움이 국악계에도 존재했군요.
    외국에서도 흔히 힙팝음악하면 동부니 서부니 그렇게 나누어져서 싸우고 심지어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악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내요.

    김명곤 님의 이야기로 들어보니 유익했습니다.
    그나저러러나 서편제 때 뵈었던 모습이 그립기도 하내요.
    임권택 감독님의 천년학 때는 장관직에 계셨을 때라서 출연을 못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영화를 주로 보는 편이라서 말이죠. 다른 무대에서 뵙는 것도 좋겠지만 스크린에서도 자주 오셨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8 신고 address edit/delete

      힙합에도 그런 대립이 있군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연기로 대중들과 만날 날을 꿈꾸고 있답니다.

  5. Favicon of http://blog.daum.net/sunup-ok BlogIcon O.M.S 2009.06.06 12:36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지막 줄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이토록 깊은 이야기를 하셨나봅니다.
    잘 몰랐던 송만갑이라는 위인을 알게 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그런분의 후손이라는것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과 위안을 얻어 봅니다.

    김명곤님의 글의 모태는 이분되어 있는 관념이나 현상들이 하나로 거듭나기 바라는
    소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대한 그 기도와도 같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그저 어서어서 모두가 한을 넘어서게 되기를, 그래서 득음의 경지만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__)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모든 대립 속에는 합일을 지향하는 근원이 숨어 있지요. 언제나 그 근원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6. Favicon of https://cansurvive.tistory.com BlogIcon 흰소를타고 2009.06.06 12:4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동편제와 서편제의 이야기를 통한 그 통합의 이야기가 인상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곧 송만갑 명창과 같은 분이 나타나시겠지요 ^^
    좋은 주말과 현충일 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51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사회의 곳곳에 송만갑 명창과 같은 통합의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길 기원합니다.

  7. 꿈꾸는 나날 2009.06.07 03:54 address edit/delete reply

    고백합니다.
    판소리의 정서는 좋아하는데...
    솔직히 말씀 드려서, 잘 모르겠어요.
    제 귓구멍이 막혀서인지, 사설의 내용을 잘 못듣겠더라구요.
    하긴.. 요즘 가요의 가사도 잘 듣질못하니....
    제가 조금 더 나이 먹으면,
    들릴까요??
    듣고 또 듣고 해야 들릴거란 생각은 있지만,
    반복학습이 어렵네요. 제가 게으른 탓이겠죠?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7 09:15 신고 address edit/delete

      판소리의 가사에 한문이 많고 옛말들이고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쓰인 탓이지 님의 탓이 아닙니다. 그저 가락을 따라 좋아하다 보면 천자문 익히듯이 하나하나 익혀 가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8. Favicon of https://pko0202.tistory.com BlogIcon 곤이엄마 2009.06.08 16:1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직 나이 이야기를 하기엔 멋적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것이 더 편해지는건 어쩔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인걸로 생각됩니다...
    들으면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을...^^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9 16: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전통 예술은 고향의 맛과 멋을 느끼게 해준답니다.

  9. 2009.06.13 23:08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14 05: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고치도록 하지요.

  10. 바보 2009.09.04 12:08 address edit/delete reply

    무엇이든 하나밖에 없으면 퇴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파의 피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지만, 그러한 경쟁을 통하여 무엇이든 발전해 왔습니다. 동편과 서편이 갈라지고 서로 비난을 한만큼 서로 발전을 했고, 그것을 통합하려는 사람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영화를 만드신다면 동편제란 영화도 좋을 것 같군요. 남성적임과 여성적임, 거문고와 가야금, 거침과 섬세함, 록큰롤과 뽕짝.. 이러한 조합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블로깅을 해보니 무엇보다 댓글이나 방명록이나 프로필 위젯 등을 통한 블로거들과의 소통이 재미있더군요.

대부분 <김명곤의 세상이야기>라는 타이틀의 제 이름을 보고서 "설마!" 하고 들어왔다가 "아, 그 사람이!"하면서 글을 남기고 가시곤 합니다. 

간혹 저를 민족극을 하던 연극 배우나 <바보선언>의 영화 배우, <뿌리깊은 나무> 잡지사의 기자, 또는 국립극장장이나 장관으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서편제>의 소리꾼 배우로 더 많이 기억하고 글을 남겨 주십니다.

이렇듯 제 인생에서 <서편제>와의 인연은 너무도 강력해서 마치 족쇄처럼 저의 발을 묶어 놓습니다.  




 <서편제(西便制)>가 개봉된 1993년은 한국 영화사상 초유의 ‘1백만 관객 돌파’로 일대 사건이 벌어진 해였습니다.

지금은 전국 동시 개봉으로 상영 시스템이 바뀌고 천만 관객이 흔해져서 빛바랜 숫자가 되고 말았지만, 한 개의 개봉관에서 2·30만 명만 들어도 흥행 성공이라고 했던 그 무렵에 <단성사> 한 극장에서의 100만이란 숫자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도 흥행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한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였으니 그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개봉하기 전 해인 92년 7월 말, 연극 관계 일로 분주한 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나 임권택 감독인데 의논할  일이 있으니 좀 봅시다.'

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동숭동의 한 카페에 나갔습니다.

김 선생님이 각색과 주연을 하면 나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만둘 것이오. 이청준 선생의 원작 소설인 <서편제>를 판소리 영화로 만들거요.”

"제가 지금까지 끊임없이 꿈꾸었던 일이니 만사를 제쳐놓고 하겠습니다”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언젠가 판소리를 영상으로 담아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살던 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감독님과 전남 해남의 대흥사 아랫마을에 있는 유선여관에 머무르며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해남에서 한 달 반 가량 지난 뒤, 서울에 올라 온 저는 본격적인 각색 작업에 들어 가 얼마 뒤에 시나리오의 초고를 만들었습니다.


원작자인 이청춘 선생님은 제가 각색하는 동안 단 한 마디도 간섭을 하지 않으시고, 원작과 각색은 다른 것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오히려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는 각색과 출연뿐만이 아니라 배우 선정의 문제, 판소리의 녹음과 선곡, 가사 수정 등 음악에 관련된 모든 일에 자문을 겸했고, 헌팅에서부터 촬영의 전 과정, 편집, 녹음, 믹싱까지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서편제>는 어느 작품보다도 저의 개인적 체험과 정서가 짙게 베인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유봉이라는 인물 속에는 제가 연극을 하고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고통과 좌절감 그리고 처절한 집념 같은 것이 군데군데 배어 있어 때로는 저를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애정과 정열, 이것이 제가 <서편제>에 참여하는 동안에 느꼈던 감정이었다면 이 작품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한창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그때 어느 영화사 제작부장과 나눈 대화 한 토막.

"선배님, 서편제라는 거 한다면서요?”
“응”
“그 영화 죽었다 깨나도 흥행이 안 됩니다!”
“왜?”
“첫째, 김명곤, 오정해를 누가 압니까?”
“그 말은 맞다. 나는 흥행 안 되는 배우고,
오정해는 판소리만 했던 신인배우이니까 흥행이 안되겠다.”
“둘째, 전통 가지고 영화해서 된 게 있습니까?
「씨받이」, 「물레야 물레야」, 「피막」.
외국영화제에 가서 상은 받을지 몰라도 흥행은 안됩니다. 
내 손에 장 지집니다.
흥행될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뽕」, 「어우동」, 여자들이 촛불 아래서 은은하게 
속곳 ,속속곳을 막 벗어줘야지 전통 가지고 흥행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바깥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이 영화의 작업에 참여한 모든 스탭과 출연진들은 “판소리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며 판소리를 흥얼거리고 신이 나서 일들을 했습니다.



영화가 개봉되자 뜻밖에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그 여파로 판소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판소리의 유파에 ‘서편제’도 있고, ‘동편제’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찾아오는 관객의 다양함,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계각층의 찬사, 언론과 방송의 엄청난 보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파급되는 국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

정말 ‘서편제 신드롬’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열풍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저 역시 그 열풍에 휩쓸려 몇 년간을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영화평론가협회 남우주연상,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 등 생각지도 못했던 상복도 터졌습니다.



그 뒤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을 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저의 이름 뒤에는 <서편제>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은 저를 장관보다 <서편제>의 아버지 유봉으로 더 많이 기억하시고, 친근감을 표현해 주십니다.

영화 한 편이 평생 그 사람의 인생을 따라 다니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일 겁니다.

저는 그 동안 여러 편의 영화와 연극을 하며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대부분이 <서편제>에 가려지고, 여지껏 <서편제>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한탄할 일입니다. 

저는 언제쯤이나 <서편제>의 족쇄에서 벗어날까요? 



하지만 그 족쇄는 저를 행복하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제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조여 줄 족쇄 아닐까요?

그런 족쇄를 평생 만나지 못하는 인생도 수두룩한데, 혹시 제가 복에 겨워 투정부리는 것 아닐까요?

맞아요! 제가 복에 겨워 잠깐 투정을 부린 겁니다. 

<서편제>는 제 기나긴 판소리 사랑의 결실을 맺게해 준 소중한 작품입니다. 제가 꾸던 많은 꿈들을 하나씩 이루어 갈 토대가 되어 준 귀중한 작품입니다. 앞으로 <서편제>를 뛰어 넘는 새로운 작품을 하라는 '꿈 너머 꿈'을 제시해 준 보물같은 작품입니다. 

<서편제>의 소리를 부를 수 있게 가르쳐주신 박초월 선생님,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원작 소설을 쓰신 이청준 선생님 제 투정을 들으시면 얼마나 서운하시겠어요?

잠깐 투정을 한 죄로 아깝게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신 두 분의 영전에  "이 산 저 산"  단가를 바칩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구나
      나도 어제는 청춘이더니
      오늘 백발 한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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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book-mania.tistory.com BlogIcon 취비(翠琵) 2009.05.22 00:3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는 너무 감동적이었던 작품이라 지금도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고는 해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8:59 신고 address edit/delete

      고마워요! 그 말씀 들으니 행복해요.^^

  3.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5.22 00:4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의 감동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특별한 이미지를 기억하기에 서편제의 족쇄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듯 합니다.^^ 그러한 업보 아니 그 행복을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시면 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01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고마운 업보를 짊어지고 열심히 살께요.~~

  4. Favicon of http://mahabanya.com BlogIcon mahabanya 2009.05.22 02:29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잌후 프로필 위젯 추천에 떠서 왔는데 서편제의 그분이시군요. RSS등록하고 갑니다. 글은 천천히 읽어보고 댓글도 종종 남기겠습니다.

  5. 정유진 2009.05.22 07:16 address edit/delete reply

    사진에도 올라와 있지만..... 길을 걷다가 소리를 하는 장면.....
    압권이었죠.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 바람에 책까지 사서 읽게 되었는데... 아, 정말 감동 그 자체..
    ^____^ 족쇄일 수도 있겠지만, 훈장으로 여기셔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족쇄이며 훈장으로 알고 소중히 간직할께요.^^

  6.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5.22 07:3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선배님 글 항상 좋답니다.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는 의미있는 기쁨을 줍니다.
    서편제란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소리에 많은 관심을 가졌죠..
    그 일 만으로도 선배님께서는 많은 역할을 하셨죠..
    앞으로도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날 거 같아요.. 왜냐하면 깊음이 있으니까요..
    서편제란 단어 자체가 선배님 이름과 같은 것이니 행복일 것 같아요 ^^
    저는 살면서 이런 작품 하나 하지도 못하는 아주 작은 먼지 조각이니
    그저 부럽답니다 ㅎ
    선배님 오늘 하루도 행복함 가득하시길 빌어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05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사해요. 바람나그네님도 언젠가 그런 족쇄를 찰 날이 올 거라 믿어요.

  7. Favicon of https://regteddy.tistory.com BlogIcon Reg Teddy 2009.05.22 10:5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중학교때 봤던 서편제의 감동은 서른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합니다...

    선생님께서 이런 역사적인 드라마에 한 자리를 맡으셨다는 것은 두고두고 언급될 한 획인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06 신고 address edit/delete

      와, 거의 이십 년이 넘은 영화를 기억해 주시니....고마워요.^^

  8. Favicon of https://pko0202.tistory.com BlogIcon 곤이엄마 2009.05.22 12:0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하지만 저흰 서편제 없는 선생님은 상상할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판소리가 가깝게 느낄수 있게 했던 작품인데요...
    저도 서울에 있을때 국립 국악원에 일반인들도 돈을 내면 소리를 배울수 있었던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걸배우고 싶어했던것도. 그게다 서편제의 영향인데요... 선생님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11 신고 address edit/delete

      말씀을 들으니 더 자랑스럽게 느껴지네요. 국악이 우리 생활 속에서 사랑 받고 즐기게 되는 그 날이 오길 빌며....

  9. Favicon of https://yesbe.tistory.com BlogIcon 예스비™ 2009.05.22 14:2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는 한국영화는 거기서 거기야 하던 제 의식을 바꾸워 준 영화였었는데...
    왠지 한국영화는 어떤 한계점이 있는것 같아, 돈주고 영화관에 가서 보는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서편제를 보고 나의 왜곡된 생각을 접게 되었지요.
    한국영화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몇편의 영화들 중 아버지의 영화가 있다는 것은 정말 영광이 아닐까요?
    아버지가 부러워요~후훗^^v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12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든든하네요. 고마워요. 행복한 주말되세요.^^

  10. Favicon of https://labstal.tistory.com BlogIcon 뷰라 2009.05.22 14:3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은 선생님 그 자체로도 서편제의 아버지 유봉으로도 빛나십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13 신고 address edit/delete

      폭싹 찌그러진 줄 알았는데 말씀 들으니 번쩍 광이 나는 것 같네요. 감사해요!^^

  11. Favicon of https://easysun.tistory.com BlogIcon easysun 2009.05.22 16:0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어쩌면 선생님께서 (김명곤님이라고 블로그 스타일로 부르고 싶으나 모두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니 대세를 따릅니다) 그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 것이 아닐까요? 저는 '장관님'으로 기억합니다만.. 선생님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걸 기억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족쇄일수도 있어요. 그러니 더 이상 족쇄가 아닌 것이죠^^ 글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20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러고보니...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그런 면도 있겠죠?^^

  12. Favicon of http://blog.daum.net/esplanade12 BlogIcon Angella 2009.05.22 18:30 address edit/delete reply

    다녀갑니다,,,,,

  13. Favicon of http://daeil.tistory.com BlogIcon 벗님 2009.05.22 20:4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마 서편제를 뛰어넘는 작품을 하시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편제가 하나의 큰 산이 된 것처럼, 새로운 산을 쌓아올려야하시겠지요.
    우리 어머님도 서편제만큼 즐거워하셨던 영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다시금, 그런 아름다운 영화를 만나고 싶어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22:25 신고 address edit/delete

      새로운 산을 쌓아가는 일은 정말 어려운 도전이지요. 하지만 흙은 한 덩이 두 덩이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산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바램으로 살아간답니다.^^

  14. Favicon of http://cansurvive.co.kr BlogIcon 흰소를타고 2009.05.22 21:08 address edit/delete reply

    어렸을때 보고 말씀대로 '서편제'와 '동편제'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서편제와 같은 거대한 족쇄라면 꼭 하나쯤 차보고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22:25 신고 address edit/delete

      흰소를 타고 님에게도 언젠가 그런 족쇄가
      꼭 찾아 올 겁니다.^^

  15. Favicon of http://fivelove.tistory.com BlogIcon fivelove 2009.05.22 23:24 address edit/delete reply

    한국적인것의 의미를 잃어가는 요즘. 다시 한번 그 고마움을 상기시켜주는 글이었습니다. 그 족쇄 정말 멋있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5 21: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족쇄를 멋있게 봐주시니 고마워요.^^

  16. Favicon of http://bloglady.tistory.com BlogIcon 도라에몽 2009.05.23 17:02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 제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인생의 대명사를 찾는거랍니다.
    그만큼 나를 던질만한 무언가를 아직 못찾았어요...
    김명곤 = 서편제 ...
    제가 기억하는 돈내고 본 첫 한국영화네요.
    선생님 역사의 다음 페이지를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썩썩하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5 21:06 신고 address edit/delete

      다음의 제 인생 한 페이지는 뭐가 펼쳐질까요? 저도 그게 궁금하답니다.^^

  17. 김유진 2009.05.25 15:41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 영화를 개봉 첫날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을 재 입장해서 보았고 이틀뒤에 가서 또 보았고, 그때만 해도 비디오나 DVD가 반년 후에나 나오던 때?였기에...그렇게 해서 일주일 동안 다섯차례 보았던...그리고 바로 테이프를 구입해서 김철수님의 신디사이저 음반으로 녹음된 <천년학> 오정해씨의 앳딘 목소리 <진도 아리랑> 등등 OST를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는지..행복한 족쇄의 열쇠가 저에게 있다면,,^^;; 절대 풀어드리지 않을렵니다. 김명곤 전문화부장관님..오늘 노무현님을 다시 한번 기리면서 그 분의 <사람> 보시는 <혜안>에 다시 한 번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앞으로 훌륭한 인품에서우러나는 <글의 향기>를 맡으려 자주 오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5 21:07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 글을 꼼꼼히 읽어주시고 뎃글을 달아주시니 고맙고 힘이 나네요.^^

  18. 김정환 2009.05.31 15:27 address edit/delete reply

    지금 장관하신 모씨와 너무 차이가 나시는 정말 진정한 예술인인 김명곤선생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인데 저희 외할머니께서 그당시 80이 넘으신 연세에도 서편제를 10번 가까이 보셔서 저는 정말 기억이 생생합니다.
    영화에서 눈멀게 하는 그장면에서 울컥 화도 났지만 그만큼 연기에 몰입하셨고 지금 이글에서 보니 연기말고도 깊숙이 참여하신것 보니 더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의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놓고 좋은글 많이 보겠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7 09:11 신고 address edit/delete

      서편제 이후 거의 15년이 넘은 세월이 흘렀네요. 그래도 여전히 기억해주시는 분들 덕에 보람을 느낍니다. 블로그 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주 들러 주세요.

  19. 꿈꾸는 나날 2009.06.07 04:11 address edit/delete reply

    ㅋㅋ
    죄송하지만, 님은
    평생 영화 서편제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실것같아요.
    제 가슴속의 님의 모습이
    그렇게 각인 되어버렸으니...
    그때의 모습이 너무 강렬했었습니다.
    ( 저 만의 느낌일까요?)
    하지만, 이젠
    멋진 장관님으로 도
    기억하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보면,
    어느순간, 유봉님이 아닌
    명곤님으로 각인되어지겠죠.
    ( 그 시발점이 시작되어진것 같아요.)
    이번의 노제!!
    참 강렬했습니다.
    유봉이 아닌,
    김! 명! 곤! 이란
    이름 석자
    제 가슴에 고이
    모셔 두었습니다.
    님의 발걸음 좇아가며
    지켜보겠습니다...
    앗! 죄송.
    대왕 세종은 안보았습니다.
    kbs 여서....
    무더워질 여름 날, 강건하시기를
    빌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7 09:13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렇게 깊이 가슴속에 각인되셨다니 기쁩니다. 노제도 마음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20. Favicon of http://cgy6910@hanmail.net BlogIcon 꿈꾸는 나날 2009.08.20 03:37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산저산..... 저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죄송하지만, 서편제!!
    제 마음속의 한켠을 차지하고있는 영화!!
    그리고 김 명 곤!! 입니다.
    경인방송에 출연하셨을때의 그 미소가 그립습니다.
    천년의 학을 보며 , 김명곤님 안게심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님 계셨으면, 훨씬 좋았을텐데요.....
    언제나 항상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2 19:03 신고 address edit/delete

      경인방송의 즐거운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셨네요. 감사해요!

  21. Favicon of http://www.ralphlaurenoutletukxx.com/ BlogIcon ralph lauren sale 2013.04.23 23:24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대만 보이네요 그대만 들리네요





문화관광부 장관 직을 그만 둔지도 어느 덧 2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TV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연기자로, 연극 <밀키웨이>에서는 극작과 연출가로, 최근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위원장으로서 즐겁고 바쁘게 살고 있다.
 

내가「대왕 세종」에 출연하고 있을 때, 모 일간지에 동정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한동안 여기저기서 화제가 됐다.


김명곤 씨 “장관 껍데기 훌훌~ 다시 광대로”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 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김명곤(55·사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KBS 1TV 사극 ‘대왕 세종’(극본 윤선주·연출 김성근)에서 배우로 복귀한다. 1999년 자신이 연출한 연극 ‘유랑의 노래’에 출연한 지 8년 만이다.

그는 그동안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연기와 멀어졌다.김 전 장관은 ‘대왕 세종’에서 고려 황실의 후예로 조선 왕조의 전복을 꿈꾸는 옥환 역을 맡았다. 옥환은 어린 세종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로 초반 30회까지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가 대하 사극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일보 2007년 10월 6일자 기사 중 일부)

나는 대학교 다닐 때만해도 광대라고 하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코에 빨간 공을 붙인 서양의 삐에로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줄타기하는 광대를 처음 보았는데 그 광대가 줄에 올라서서 “이 줄타기가 옛날에는 화랑의 기예였소!.” 하길래 깜짝 놀랐다. "화랑이라면 신라 시대의 무사 집단인데 줄타기를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광대에 관한 기록을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그윽하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며 유교, 불교, 도교의 3교를 포함한 것으로 민중을 교화하는 것이다.

신라 시대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쓴 글이다. 이 글을 바탕으로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는 이렇게 썼다.
 

선가(仙家)는 신라의 국선 곧 '화랑'으로 보며, 그 시원은 삼한의 소도(蘇塗)의 제관으로 고구려의 '조의선인(鳥衣仙人)'이다.

이런 글들을 보니 고대사회에서 예술가들은 하늘에 국가적 제사를 지낼 때는 제관으로서 활동했고, 그들의 신분은 왕족이나 귀족에 속하는 상류계급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화랑들과 함께 예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천민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광대”라는 말은 고려시대에 서역에서 들어 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인데, 예술가를 지칭하는 단어인 광대가 화랭이, 재인 등의 용어와 뒤섞이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광대들은 기생, 무당, 중, 백정 등과 함께 천민계급으로 살아야 했다. 이들은 사대부나 평민들과 한 동네에서 살지도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자기들끼리 기예를 전수하면서,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를 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광대들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런 상소문을 썼다.

광대가 봄·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과 겨울이면 추수를 바라고 농촌으로 쏠리는데, 특히 창촌에서는 사당, 창기, 주파, 화랑, 악공들의 잡류들을 엄금해야 합니다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왕의 남자>는 이 무렵의 떠돌이 남사당 광대패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실학사상이 일어나고 평민 가사, 탈춤, 판소리 등의 가치를 양반들 중의 몇몇이 언급하게 되면서 광대들의 가치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고종과 대원군이 권력을 쥐었던 무렵에는 광대들이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잔치에 초대받고, 심지어 명인, 명창, 국창 등의 이름으로 궁궐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기예를 선보이며 많은 돈을 벌고 신분의 상승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후 광대들은 또 다시 천대받게 된다. 그 상황은 일제시대의 학자인 육당 최남선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조의 재인, 광대들은 적극적으로 특별한 권장을 입지 못하고, '무식무기력한 예인'들이 사회 최하층적 지위에서 구차히 존재하다 보니까 거기 쇠잔이 있을 뿐이지 발달이 없으며 저락이 거듭될 뿐이지 향상을 볼 수 없음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조건 하에 있다 보니까 '수 천 년을 하루같이' '몸을 놀리는 기술'과 '우스개 놀이'쯤에 그치고 드디어 다른 데 만한 순희곡적 생장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명 풍화에는 조금도 유익한 바가 없으니 이는 연희를 실시하는 자가 학문이 없어 '동양의 부패한 풍습'만 알 뿐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했던 <서편제>는 이 무렵의 떠돌이 판소리 광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나는 대학시절에 오페라나 이태리 민요나 가곡이나 뮤지컬이나 비틀즈 등의 서구음악의 열광적 팬이었고, 괴테나 세익스피어나 입센이나 도스토에프스키 등의 서구문학(독문학)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우연히 판소리를 알게 된 후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고향인 전주를 무지 싫어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흔적이 너무나 짙은 그 곳을 어서 떠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진학공부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한국을 빨리 떠나 독일로 유학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인간문화재인 박초월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전라도 말이 그렇게 다양한 표현과 영롱한 문학적 향기가 있는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핏줄에 대한 애정 곧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조상과 조국에 대한 사랑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전통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이 아니다. 전통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았던 삶의 내용과 형식 곧 그 분들의 삶의 자취이고 향기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세월이 지나면 전통의 계승자가 될 것이며, 언젠가는 전통 그 자체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에게 전통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또 창조의 열정에 불타게 하는 소중한 원천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무식무기력’한 광대들에게서 내 예술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나는 ‘수천 년을 하루같이’ ‘동양의 부패한 풍습'을 몸으로 전해 온 그들의 예술에 매혹 당하고 심취하고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들의 ‘몸을 놀리는 기술’ 속에서 삶의 깊은 애환과 감동을 보았고, 그들의 ‘우스개 놀이’ 속에서 예술적 창조의 편린을 보았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애인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 종족의 일원이 되고자 ‘광대’라는 말을 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연기, 연출, 극작, 경영, 행정에다가 연극, 영화, 국악, 방송 등 여러 분야에 간여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당신의 정체는 뭔가? 아마도 이게 그들의 질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나는 그 모든 것을 추구하는 광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럼 당신은 어떤 광대가 되고 싶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책에 나오는 발렌친 카그다예프라는 브리야트 족의 샤먼과 저자와의 대화로 대신하고자 한다.

질문 : 당신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답변 : 훌륭한, 혹은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좋은 샤먼이 되고 싶고,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샤먼이 지녀야 할 미덕이다.

반면 모든 악과 문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남을,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베풀어 주는 것이 사랑의 첩경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현자와 성자들이 설파했던 조화와 사랑, 이것의 실천자로서의 샤먼 곧 ‘무당’의 역할에 대한 바이칼 샤먼의 지혜로운 말이 ‘광대정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광대란 '넓은 광(廣), 큰 대(大)'라는 말 뜻 그대로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 아닐까?

 

TRACKBACK 1 AND COMMENT 24
  1. Favicon of http://blue-paper.tistory.com BlogIcon blue paper 2009.05.06 13:22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태백산맥>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셨던 김명곤 님의 연기가 아직 기억에 남네요 ^^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 연기 많이 보여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무대에서, 화면에서 좋은 연기 보일 수 있길 저도 기원합니다.

  2. Favicon of http://blog.daum. 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09.05.06 13:30 address edit/delete reply

    김명곤님을 기억하는 것은 [서편제]에서 오정해의 스승으로 기억이 너무 강해서 장관을 하신것과 그외 직책은 신문에서 그냥 스쳐 읽었습니다.
    이순재선생님이 정치를 그만두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배우들 보다 더 많은 작품에 출연을 하고 그리고 존경을 받는 것이 참 좋습니다.
    저는 작품으로 김명곤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오정해씨가 김영임씨처럼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능 토크쇼에만 나오기에는 재능이 너무 아쉽습니다.
    우리 나라 영화계에는 존경받는 분이 너무 적습니다.
    이제 배우는 청소년이 바라는 우상을 떠나서 직접되고 싶은 직업 1위가 됏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계속 변화하신 김명곤님의 모습이 기대됍니다.
    전주는 제가 살고 싶은 도시 중에 하나 입니다. 시민들이 말소리가 조용하고,친절하고 음식은 전국 최고의 솜씨입니다.
    전북대에서 2주간 지나면서 (책 판매일입니다) 전주의 소박함과 양반 기질을 체험하고 왔습니다.
    댓글이 좀 길었습니다.
    봄날이 지나 갑니다. 행복하고 보람된 결과 계시길 기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2 신고 address edit/delete

      요즘은 소리축제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전주에 갑니다. 고향이지만 전주는 갈수록 매력을 느끼게 하는 도시랍니다.

  3. Favicon of https://magwi.tistory.com BlogIcon MAGWI 2009.05.06 17:0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넓을 광, 큰 대, 광활한 영혼을 가진 예술가...
    광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만드네요.
    좋아하셨던 비틀즈도 All You Need is Love 라고 했는데요.
    광대정신이라는 말도 인상깊네요.
    뜻깊은글 새겨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4 신고 address edit/delete

      비틀즈는 위대한 광대입니다. All you need is Love 한 번 들어봐야겠네요.

  4.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5.06 22: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인 것 같습니다.
    광대정신으로 세상을 넓고 크게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문화예술계에도 존경받는 분이 있다는 것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7 신고 address edit/delete

      광대정신은 비단 예술가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분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게 제 평소 생각입니다.

  5. lkjlkj 2009.05.07 06:15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그에 글을 쓰시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손수 댓글도 달아주고 계시는군요. 늦었지만, 개설을 축하드립니다.
    한가지 염려 스러운것은, 인터넷에는 일부 못된 악플을 다는 사람들
    도 존재 한다는 사실이지요. 때로는 평온한 블로그가 어떤 이슈로
    인해서 벌집 쑤셔 놓은것처럼 난장판이 될수도 있습니다.
    욕설과 인신공격 댓글에는 노련한 기자들도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라 하지요. 전에 어느 대기자께서 인터넷에 고정 칼럼을 쓰셨는데
    , 아침마다 자신의 칼럼에 달린 댓글을 보고 한숨만 푹푹 쉬고, 괴로워
    하는걸 보고, 같은 동료 기자가 노기자를 위해서 댓글을 정화 해달라는
    글을 적기도 했었답니다.

    물론 다양한 분야에 경험이 많으신 김명곤 선생님이 이에 대처하시는
    법을 잘 아시겠지만, 그런 악성 댓글에 너무 괘념치 마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니면 제대로 혼내주셔도 괜찮습니다 ^^
    실제로 소설가 이외수씨나 스포츠 기자 민훈기씨는
    악성 댓글러를 고소한적이 있었죠.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10:2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악플에 대한 염려와 배려 감사합니다. 아직까지는 경험이 없지만 적절하게 대처하겠습니다.

  6. Favicon of http://blog.daum.net/esplande12 BlogIcon Angella 2009.05.08 10:00 address edit/delete reply

    김명곤씨를 처음 뵌 건 월간지 <뿌리깊은나무>에서 였어요.
    한창기씨가 발행인이었구, 김형윤씨가 편집장으루 계시던 뿌리깊은나무,,,
    중학생이던 시절, 제가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길 바라셨던
    우리 국사담당선생님께서 제게 선물루 주신 책이 <숨어사는외톨박이>라는 책이었어요. 단행본 2권으루 된 책. 그리구, 이미 폐간된지 오래된 <뿌리깊은나무>를 구해 읽어보라구 하셨어요.
    헌책방을 다 뒤지구 뒤져서 그리구 1년이나 걸려서 <뿌리깊은나무> 60여권을 다 구할수 있었구, 다 읽었어요.
    <뿌리깊은나무>의 기자였던 김명곤님을 거기서 뵈었었어요.
    <숨어사는외톨박이>엔 선생님이 쓴 "쇠거간-소에 얹혀사는 팔자"라는 글이 있었지요,,,*^^*
    <숨어사는외톨박이>란 책은 아직두 제 서재에 있는 책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49 신고 address edit/delete

      뿌리깊은 나무-오랜만에 그리운 이름을 들어보네요. 세세한 기억에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s://yesbe.tistory.com BlogIcon 예스비™ 2009.05.11 17:4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광대란 것에 이런 뜻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저도 미술인으로써 어찌보면 광대나 다를바 없는데...
    역시 많이보고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11 19: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노래 부르는 사람은 소리 광대, 춤 추는 사람은 춤 광대,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 광대겠지요. 예전에는 환쟁이라고 비하했지만 지금은 어엿한 미술인 또는 화가로서 예술의 중요한 인재이신 거죠.

  8.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5.12 10:23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서편제의 진도아리랑은 가끔 듣지만, 블로그는 오늘 처음 방문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12 14:18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사합니다. 서편제 듣듯이 가끔 찾아주세요.

  9. 2009.05.12 17:00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17 13:21 신고 address edit/delete

      실비단 안개님의 차 향기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음악이 잘 어울리는 사이트더군요. 저작권 문제는 궤념치 마시고 즐겨서 쓰시기 바랍니다.

  10. 김유진 2009.05.25 16:04 address edit/delete reply

    광대 중에서도 <외줄타는 광대> 인생이라는 줄에 걸리어 이리저리 흔들흔들 아슬아슬하게 줄을 용케 타면서 추락도 솟구침도 자유로이 구사하는 기술을 가진, 시대의 부정부패도 그 우스광스러운 몸짓과 언어로 무장한 서슬퍼런 칼날로 베어버리는..광대..제가 참 좋아하는 광대입니다.
    더불어 <샤먼>에 대한 이해도 <잡속무당>으로 전락해서 <무당>의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버린 현대에서 그 근본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심에 참 감사드립니다. 신라에 화랑이 있었다면,고구려에는 조의선사, 백제에는 싸울애비가 있었지요. 진정 우리 민족의 풍류를 제대로 물려받고 펼쳐주시는 김명곤님 사랑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5 21:16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민족의 전통에 대해 사랑이 깊으신 분이군요. 저도 사랑해요!

  11. 가비 2009.05.29 12:26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 서편제, 어렷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봤었는데.. 지금은 두 분다 돌아가셨지만, 굉장히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군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12. 꿈꾸는 나날 2009.06.05 04:03 address edit/delete reply

    전 서편제에서 `이산저산`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서편제 방송해주더군요.
    이산저산 장면, 제 핸드폰에 동영상으로 찍어놓고 종종 보고있습니다.
    감사!!!!!
    전주에서 개봉 첫 날 보았었습니다.
    obs방송에 출연하셨을때도 반가웠었습니다.
    역시나 동영상 촬영...
    광대로 돌아오셨으니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5 08:58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이구, 부끄러운 범죄 기록을 가지고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겨우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문서나 작성하고, 메일이나 교환하던 수준의 컴맹이다. 게임도 못하고, 채팅도 못하고, 사진 올리기도 못하는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려 10만 명이 넘게 방문한 베스트 글 "김명곤 전 장관, 백지영 노래 듣고 눈물 흘리다"의 필자인 탐진강님의 전적인 권유와 가르침과 후원으로 시작한 도전이다. 한 달 반쯤 전, 참으로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님과의 인연이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게 해 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미니 홈피와 블로그의 차이점도 몰랐던 내게 블로그의 세계를 가르쳐주고, 그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고, 블로그의 개설과 글쓰기와 사진 올리기의 세세한 방법을 가르쳐 준 님께 감사 또 감사 드린다.

나는 지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나 혼자 수필을 쓰거나,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쓰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를 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현상이다. 

지금 내가 두드리는 이 글이 발행 키를 누르는 즉시 수많은 미지의 블로거들에게 읽히고, 누군가가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내 올 거라고 생각하니 흥분도 되고 마구마구 설레인다.


사춘기 때 연애 편지를 쓰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설레임을 50대 후반의  이 나이에 다시 느끼다니!

앞으로 이 광대한 블로그의 신천지에서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지만, 초보 탐험가의 순진한 열정으로 조심스레 새로움의 첫발걸음을 내딛는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워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구상 시인의 ‘새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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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거인정원거주자 2009.05.03 14:27 address edit/delete reply

    장관출신자 모임없습니까? 유인촌 장관 좀 어떻게 좀... ㅋ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07 신고 address edit/delete

      장관 출신 모임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어서 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아쉽군요. 꾸벅---

  3. Favicon of https://yesbe.tistory.com BlogIcon 예스비™ 2009.05.03 15:4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안녕하세요. 꾸벅~(__) 저도 같은 새내기 입니다.
    지난달 11일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꾸준히 포스팅을 하고 있지요.
    저보다 인생 선배이시니 많은 가르침 부탁드려요.
    곧 40을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감히 아버지라 불러도 될까요? ㅋㅋ
    블로그 세계에 첫 발을 내딛으신 걸 정말 축하 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블로그를 하시면 좋으련만...
    아무리 가르쳐 드리려 해도... 하지 않으려 하시니 조금 속상하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15 신고 address edit/delete

      새내기끼리 어려움 함께 나누며 격려하기로 해요. 어머님께 제 블로그 보여드리고 함께 하시자고 말씀드려보세요. 첫발 떼기까지가 어렵지 떼고 나니까 너무 짜릿하네요.

  4. Favicon of https://moga52.tistory.com BlogIcon 모과 2009.05.03 16:1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와 같은 나이십니다.
    저도 55세에 컴맹에서 시작해서 3년동안 300여편의 글을 썼습니다.
    주로 일상의 관한 기록과 45년동안 사랑한 책과 한국영화, 영화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러그로 인해서 저의 성실성과 독함이 인정 돼서 남자들도 퇴직하는55세의 나이에 직장에 발령을 받는 기쁜일도 겪었습니다.
    김명곤님은 제게 서편제의 명배우로 강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책과 영화를 광적일 정도로 좋아하다 보니 ..취미도 직업이 됐습니다.
    장수사회에서 58세는 중년입니다. 세상과의 소통과 젊은 세대의 이슈와 생각을 알고싶어서 블러그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세대의 세상을 자연스레 알고 두 아들과 대화가 부드렇고 좋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또 다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블러그는 제게
    참 좋은 친구이자 선생입니다.
    김명곤님의 글을 통해서 한국 문화의 색다른 면을 알고 싶고 긍정적인 발전을 기대합니다.
    블러그 개설을 축하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1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와 동갑이시자 블러그 선배시군요. 저와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그토록 많은 글을 올리셨다니 빨리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많은 의견 나누었으면 합니다.

  5. 2009.05.03 16:50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17 신고 address edit/delete

      김팀장님 글도 읽어보았고,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우리 힘을 모아 전주 세계소리 축제 성공시켜 봅시다. 화이팅! 얼씨구!

  6. Favicon of http://www.indianabobs.com BlogIcon 인디아나밥스 2009.05.03 17: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예전에 영화 서편제나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기억되는 김명곤님께서
    블로그를 하신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더욱이 첫글이
    블로거 뉴스 베스트에 오르다니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김명곤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에 대한 기대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을듯 합니다. 앞으로 따뜻한 글 매서운 글로 자주 만나뵀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21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첫글이 베스트에 올라 한편 깜짝 놀라고 한편 기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음 글 걱정이 태산입니다. 한걸음 한 걸음 열심히 걸어가겠습니다.

  7. Favicon of http://www.sis.pe.kr BlogIcon 엔시스 2009.05.03 17:10 address edit/delete reply

    우선 블로그개설을 축하드립니다,. 서편제에서 열연한 기억이 생생하고 한동안 근황을 모르다가 문광부장관까지 하시기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노하우와 지식을 블로그에 풀어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신 것입니다..앞으로 많은기대를 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23 신고 address edit/delete

      블로그를 통해 이렇게 빨리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8. 들꽃p 2009.05.03 17:38 address edit/delete reply

    50대 후반의 컴맹인 내가 블로거가 되다니...란 타이틀에 궁금해져 콕 눌렀는데... 유명한 분을 이렇게 블로그에서 만나 뵙게 되다니... ㅎ

    블로그 개설을 축하 드립니다.
    왠지 잔뜩 기대 됩니다요.ㅎ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52 신고 address edit/delete

      블로그 안에서는 들꽃p님보다 유명하지 않은 새내기에 불과합니다. 자주 들러 많은 가르침을 주세요.

  9. Favicon of https://cansurvive.tistory.com BlogIcon 흰소를타고 2009.05.03 17: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축하드립니다 ^^
    블로고스피어에서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이디명을 보고 '에이... 설마' 했지만 제가 아는 그 성함이 맞네요 ^^
    저도 60일차 초보입니다 ㅎㅎ

    근데 탐진강님은 여기서도 거론이 되시는군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54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사합니다. 탐진강님은 블로그 전도사라 할만큼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다바쳐 블로그를 통한 소통의 확산에 매진하고 계십니다. 저도 그 은혜를 입은 한 사람입니다.

  10. Favicon of https://birke.tistory.com BlogIcon 비르케 2009.05.03 17: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그 개설 축하드립니다!!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인 블로그에서 아는 분도 만나게 되는 군요.
    그것도 제게는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기분좋아지는 영화,
    서편제에 나왔던 김명곤님이라니... 앞으로 많은 활동 기대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3 17:56 신고 address edit/delete

      서편제를 기분 좋게 떠올리신다니 저도 기분이 좋군요. 앞으로 자주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11. Favicon of https://chobouser.tistory.com BlogIcon 초보유저 2009.05.03 20:0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그 개설 축하드립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고 축하를 해드렸네요 ^^

    앞으로 자주자주 뵙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4 03:40 신고 address edit/delete

      힘이 부쩍 나네요. 자주자주 들려주세요. 화이팅^^

  12. Favicon of https://magwi.tistory.com BlogIcon MAGWI 2009.05.04 01:2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이 거대한 소통의 바다에 내딛을 수 있는 배를 띄우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블로그에 이렇게 댓글을 달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앞으로 좋은 글들 많이 나누어 주시어
    저같은 20대 젊은 학생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십사 여쭈어 올립니다.
    앞으로 자주 들리겠습니다.
    김명곤의 세상 이야기,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4 03:43 신고 address edit/delete

      20대 학생이시라니 더욱 반갑고 환영합니다. 젊은 세대의 생각, 의견 궁굼한 게 많으니 자주 들러 많은 의견 나누기로 해요.

  13. 자연지기 2009.05.04 09:05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그 개설 환영합니다.
    나이 여부를 떠나서 미지에 새계로 발을 딛는 모습은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특히 나이 드신 분의 그런 모습은 빛나게 보이더라고요.
    유익한 블로그가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4 16:29 신고 address edit/delete

      격려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작,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4. 2009.05.04 10:26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4 16:33 신고 address edit/delete

      개설을 해놓고 보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고 그동안 모아 놓은 글이나 자료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군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헤엄쳐 보겠습니다.

  15. 2009.05.04 10:48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4 16:40 신고 address edit/delete

      요사이 마음 고생이 심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네. 세옹지마라는 말도 있듯이 때로는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세월도 소중하다고 보네. 나는 여러가지 새로운 일들이 하나하나 서서히 펼쳐지는 기쁨을 만끽하며 살고 있네. 숨가쁜 삶의 흐름 속에서 휴식하며 충전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새삼 느끼는 요즘일세.

  16. Favicon of http://heartbit.tistory.com BlogIcon 하트비트 2009.05.04 11: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그... 그 무한한 매력의 세계로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4 16:42 신고 address edit/delete

      첫글을 올린지 하루가 되었는데 정말 새로운 인연들과의 대화가 이렇게 재미있고 매력적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17. 정운현 2009.05.07 10:20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거敎'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저로서
    이번에 새로 블로거가 되심을 환영합니다.
    그간의 경험과 연륜을 블로그를 통해 나누고
    또 그를 통해 즐거움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들러 제 나름의 즐거움을 찾도록 하겟습니다.

    제 블로그는요,

    http://tamin.kr/
    http://blog.ohmynews.com/jeongwh59/

    2개입니다. 구경오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10:25 신고 address edit/delete

      초보자를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블로그 전도사가 되도록 열심히 소통하겠습니다.

  18. Favicon of http://www.ringblog.net BlogIcon 그만 2009.05.13 16:42 address edit/delete reply

    환영합니다. 자칭 블로그 전도사(?)랍니다. ㅋㅋ.. 서편제를 보면서 이상하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는데 이렇게 블로그에서 김명곤님을 뵙다니요. 블로그에는 더 많은 '인생 읽어주는 분들'이 필요하답니다. 그래서 더 뜨겁게 환영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17 17:49 신고 address edit/delete

      반갑습니다. 제가 초보라서 님의 글을 늦게 보게 되었네요. 저도 요즘은 블로그 예찬론자가 되었답니다. 서편제로 맺은 인연 블로그에서 자주 뵈어요.^^

  19. 김유진 2009.05.25 16:26 address edit/delete reply

    김명곤님을 노무현 전대통령님이 주신 선물 중 하나로 여기게 됨은 왠일인지..(노무현 전대통령님 추모를 위해 들린 다음에서 님의 블로그글을 발견 읽게 되었으니..노무현 전대통령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아물려 님에게 블로그의 세계로 인도하신 탐진강님께도 무한 축복이 내려지시길..^^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5 21:21 신고 address edit/delete

      노무현님은 김유진님을 저에게 선물로 주셨군요. 인생은 아름다운 선물의 이어짐입니다.^^

  20. Favicon of https://neodol.tistory.com BlogIcon 너돌양 2009.11.27 21:4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결국 탐진강님이 큰일을 하신거군요 ㅎㅎㅎㅎ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11.28 22:59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를 유혹해서 블로그의 덫에 빠뜨렸지요.

  21. BlogIcon neva masquerade 2013.01.31 00:29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 기사! 이 정말 심각하게 읽을 수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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