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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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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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08.21
    퇴계와 두향의 사랑, 사실일까 허구일까? (11)
  2. 2010.06.14
    나를 '광대'라 부르지 마라, 정광수 명창 (2)
  3. 2010.05.28
    너무도 아름다운 비련의 주인공, 무희 '이진' (11)
  4. 2010.04.22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박동진 명창 (24)
  5. 2009.08.25
    연극·연예지망생에게 '희망'의 선물을 주자. (24)
  6. 2009.08.22
    맹렬 기생과 가왕 송흥록의 사랑이야기 (26)
  7. 2009.08.12
    「봄봄」김유정의 혈서 '녹주, 너를 사랑한다!' (38)
  8. 2009.07.13
    나의 연극 인생을 지켜 준 '수호천사' (23)
  9. 2009.07.02
    [편견타파 릴레이] 우리가 기생이냐? (24)
  10. 2009.05.05
    장관 껍데기 훌훌 벗고 광대로 돌아와보니 (24)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천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일 정도로 우리 국민 들이 성인처럼 존경하는 학자입니다.

출처 : http://ask.nate.com/qna/view.html%3Fn%3D5881801

그의 초상화나 글들은 매우 엄격하고 진지하고 학문에 몰두한 선비의 기풍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퇴계의 전혀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바로  단양 신선봉 아래 '두향묘' 전해 오는 퇴계와 두향과의 사랑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퇴계는 평생 두 번 결혼을 했습니다. 21세 때 김해 허씨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세 아들을 낳은 후 결혼 6년 만에 산후풍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번째 아내 권씨와 재혼했지만, 그녀 역시 퇴계가 46세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두 아내를 잃고 홀아비가 된 퇴계는 1548년 1월 단양군수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둘째 아들 채(寀)가 또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48세였던 퇴계는 계속되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명기 두향과 만나게 됩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두향은 어려서 일찍 부모을 잃고 단양고을 퇴기인 수양모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녀는 열세 살 에 '기적(妓籍)'에 올려졌으며, 열여섯 살에 황초시란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석 달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어쩔 수 없이 다시 기생이 되어 단양 관기로 활동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녀는 용모가 빼어나고, 거문고를 잘 탔고, 시와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왔을 때 이팔청춘 16세에 남편과 사별한 미모의 기생과, 두 아내와 사별한 채 아들까지 잃어 슬픔에 젖어 있던 48세의 홀아비가 만난 것입니다.

소설가 정비석 씨가 쓴「명기열전(名妓列傳)」에는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적 상상을 덧붙여 애절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슬픔과 비탄에 젖은 채 묵묵히 시를 쓰고 글을 읽는 퇴계를 두향은 마음속으로 사모하게 됩니다. 두향은 사랑의 정표로 여러 가지 선물을 드렸으나 퇴계는 번번히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두향은 포기하지 않고 선생께서 무엇을 가장 좋아하시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매화를 무척 사랑해서 매화를 읊은 시가 수십 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전국을 수소문해서 희다 못해 푸른 빛이 나는 최상품의 백매화를 구했습니다. 그 매화를 선생께 드리니, 선생께서도 "매화야 못 받을 것 없지." 하시며 동헌 뜰 앞에 심고 즐겼습니다.

그후 퇴계는 두향의 재능을 어여삐 여겨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의 정은 점점 깊어지고, 마침내 사랑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매화를 통해 맺어진 두 사람의 사랑은 각별하였습니다. 

출처 : http://blog.ohmynews.com/songpoet/150126

두향과 퇴계는 경치가 빼어난 강선대를 즐겨 유람했습니다. 총명하고 거문고와 시와 그림에 조예가 있던 두향은 퇴계와의 교분을 통해 그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고매한 영혼의 소유자로 성숙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열 달도 안되어 끝나고 맙니다. 넷째 형인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형제가 같은 도에서 근무하는 것을 피하는 제도 때문에 퇴계가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된 것입니다.

두향으로서는 청천의 벽력이었습니다. 짧은 사랑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말없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구나.”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 한 수를 썼습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그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습니다.

퇴계가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 한 개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퇴계는 평생 동안 그 매화를 가까이 두고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습니다.

1570년 퇴계가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도 자신의 죽음보다 매화의 목마름을 염려할 정도로 매화 사랑이 깊었습니다. 제자 이덕홍은 이렇게 전합니다.

"초여드렛날 아침, 선생은 일어나자마자 제자들에게 `매화에 물을 주라'고 말씀하였다. 오후가 되자 맑은 날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흰눈이 수북이 내렸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일으켜 앉히자 선생은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곧 구름이 걷히고 눈도 그쳤다."

한편 퇴계가 단양을 떠나자, 두향은 ‘퇴적계(退籍屆)’를 제출했습니다. 신임 사또에게 ‘이황을 사모하는 몸으로 기생을 계속할 수 없다’며 기적에서 이름을 없애달라고 간청해 기생을 면했습니다.

그 뒤 두향은 퇴계와 자주 갔던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강 언덕에 초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며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퇴계의 죽음 소식을 들은 두향은 도산서원까지 달려가 멀리서 절을 한 후 돌아왔습니다. 그후 두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이렇게 유언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무덤을 강선대 위에 만들어주오. 내가 퇴계선생을 모시고 자주 시문을 논하던 곳이라오."

너무도 일찍 생을 마감한 그녀는 강선대 가까이에 묻혔고, 그로부터 단양 기생들은 강선대에 오르면 반드시 두향의 무덤에 술 한 잔을 올리고 놀았다고 전합니다.

퇴계와 두향의 추억이 어린 강선대는 충주댐을 만들 때 수몰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두향묘'는 그녀를 기리는 사람들에 의해 1984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장됐습니다.
 

두향의 무덤. 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6page%3D

그런데 과연 이 사랑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조선 후기 문장가인 이광려가 두향묘의 정경을 읊은 한시에 그녀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두향은 실존인물로 보입니다. 

외로운 무덤 길가에 누웠는데
물가 모래밭에 붉은 꽃 그림자 어리어 있으라
두향의 이름 잊혀 질 때라야 강선대 바위도 없어지겠지

하지만 퇴계와 두향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밝힌 문헌은 아직까지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1977년 단양군이 펴낸 「단양군지」는 강선대를 소개하면서 '명기 두향의 묘가 있다'고 했을 뿐입니다.

퇴계와 두향의 관계가 처음 언급된 것은 위에 소개한대로 1970년대 후반에 씌여진 정비석의 소설 「명기열전」이었습니다. 정씨는 퇴계 문중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두향편'을 엮었다고 합니다.

그후 퇴계학연구원이 1980년에 낸 「퇴계일화선」에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는 다름 아닌 정비석 씨였습니다.

문헌을 통해 퇴계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퇴계가 두향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 이유로 다음의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듭니다.

첫째, 퇴계가 단양군수로 갔던 1548년은 퇴계 생애 중 정치적으로 위험한 시기였다는 겁니다. 그보다 3년 전에 일어난 을사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한 퇴계가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들을 피해 지방으로 피한 때라는 겁니다.

둘째, 퇴계가 단양에 도착한 다음 달에 둘째 아들이 죽고, 고을의 행정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텐데 그런 한가한 사랑을 할 여유가 있었겠느냐는 겁니다.

셋째, 퇴계가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근거로 듭니다. 1541년 관서 지방에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 평양에 머물렀을 때, 평안도 관찰사가 유명한 기생을 시켜 접대하려 했는데도 끝내 거부했다는 기록이 전해 올 정도로 여색에 대해 담백했던 퇴계가 그리 쉽게 사랑에 빠졌겠느냐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퇴계와 두향의 러브스토리는 오로지 소설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비석 씨가 어떤 증언을 토대로 소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어도, 두향이 실존인물이고 퇴계와 단양에서 만났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위험하고 아들의 죽음까지 겹쳤다면 퇴계는 정신적으로 무척 불안하고 외로웠을 겁니다. 슬픔에 지치고 세파에 시달린 중년 선비의 외로운 모습은 젊은 여인의 가슴 속에 모성애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켰을 겁니다.

또 다른 고을 수령들처럼 여색을 탐하지도 않고, 기생이라고 하여 함부로 대하거나 성희롱을 하지도 않고, 정성을 다해 민정을 살피고 학문에 정진하는 그의 모습은 그녀의 마음 속에 존경과 사랑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을 겁니다. 

그리하여 두향이 먼저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시했을 것이고, 매화를 통해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던 퇴계도 두향에게 깊은 정을 느꼈을 겁니다. 두향과 헤어진 후 평생 홀로 살며 벼슬과 학문에만 몰두한 퇴계의 행적을 볼 때, 퇴계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글을 통해 노출시킬 수 없었고 매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아무리 성인처럼 추앙 받는 학자나 성직자라 할지라도 정신적 교감을 기초로 한 이성과의 사랑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런 위인의 인간적인 체취를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단양군 단성면에서는 1979년부터 매년 <두향제>를 열고 있습니다. 두향제를 주관하는 쪽에서는 퇴계와 두향의 사랑이야기는 단양에서 있었던 실제 역사가 분명하다는 입장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사실인지 허구인지는 두향의 무덤 아래 출렁이는 충주호 물결만이 알고 있을 테지만, 저는 외로운 두향의 무덤에 술 한 잔 올리며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을 기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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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동주 2010.08.21 09:20 address edit/delete reply

    퇴계선생님의 깊은 슬픔이 있었군요..........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8.22 13:44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분에게도 인간적인 괴뇌가 있었겠지요.

  2. 바우 2010.08.21 09:31 address edit/delete reply

    퇴계선생님은 두번 결혼하신 분입니다. 힘들다고 해서 이성을 거부하진 않습니다. 전 사실쪽에 더 비중을 두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서 들어왔는데 글쓰신 분이 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8.22 13:45 신고 address edit/delete

      반갑습니다. 님의 견해가 맞을 수도 있겠지요.

  3. 바보 2010.08.22 21:41 address edit/delete reply

    중고등학교시절 가슴두근두근거리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명기열전을 읽은 적이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바뀌어 이글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글이 나오는 군요. 퇴계선생의 러브스토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저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대학시절 구라를 풀기에 딱좋은 주제여서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면서 (우리는 이것을 데카메론의 밤이라고 했지요) 몇번 써먹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좋은 이야기였다고 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8.24 06:2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구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소설이었지요.

  4. Favicon of http://nae0a.com BlogIcon 내영아 2010.08.23 20:58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랜 외로움 끝에 만난 인연인데, 그렇게 헤어지셨군요.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8.24 06:26 신고 address edit/delete

      퇴계선생의 또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지요.

  5. Favicon of http://www.naver.com BlogIcon 이종원 2014.11.13 17:53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종원 개새꺄 뒤저어 씨발로다 씨발

    • Favicon of http://www.naver.com BlogIcon 이종원 2014.11.13 17:53 address edit/delete

      이종원 개새꺄 일로와 새꺄 일로와 일로와 새꺄

  6. 멋진이야기 2016.02.08 14:01 address edit/delete reply

    퇴계 이황선생님은 아내를 둘씩이나 잃었는데 그중 두번째로 맞이한 권씨부인은 알다시피 요새 말하자면 지적장애인내지 발달장애인이었다는거 모르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황선생님은 권씨부인을 나무라지않고 사랑으로 대했으니 요새봐도 본받을만한 남편이시죠~!!!! *^^******




정광수 명창은 자신이 소리 광대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안 친척들이나 친구들 앞에서도 여간해서는 판소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국악인의 최고 명예인 인간문화재가 되고, 광대가 전통예능인으로 우대 받는 세상에 살면서도 예전의 천대와 편견을 잊지 못했던 탓입니다.
 

출처 : http://www.ncktpa.go.kr/html/jsp/ncktpa...5A6%25AC

그러나 그가 1909년 7월 28일에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을 때만 해도 판소리 광대가 되는 것은 천민의 신분을 벗어나 출세와 돈과 명예가 보장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잘만하면 임금 앞에서 소리도 하고 벼슬도 받을 수 있는 '화려한 직업'이었습니다.

그 역시도 그의 스승인 김창환 명창을 통해서 출세의 꿈을 키웠습니다.

“우리집이 나주군 봉산면 복룡리에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정창업 명창이시고, 아버님도 소리를 좋아하셔서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즐겨 듣곤 했지. 17살 됐을 때에 아버님이 김창환 선생님 댁에 보내 거기서 먹고 자면서 배우게 됐지."
 
정광수 명창은 자신이 다산 정약용의 방계 7대손이고, 철종과 고종 연간에 어전광대로 활동한 서편소리의 대가 정창업 명창의 손자라는 것을 자랑으로 꼽습니다. 어려서 ‘천자문’과 ‘사략(史略)’을 뗀 뒤, 김창환 명창의 제자로 판소리의 길에 들어선 것도 그가 평생 자랑하는 일입니다.

김창환 명창은 고종 황제 앞에서 판소리를 하여 정3품의 명예벼슬인 당상관직을 받고 돈도 많이 번 뒤, 전남 나주군 삼도면 양화리의 절골이라는 곳에 넓은 터를 잡아 풍족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풍신이 잘 생기시고, 행실이 분명하고, 효자시고, 인격이 갖추어진 분이셨어. 소리로 말하자면 송만갑 명창은 강한 상청으로 음이 높아 귀에 쟁쟁 울리고 정확하여 축음기에도 잘 받는 소리였는디, 우리 선생님은 음의 폭이 넓고 굵고 후령음이 무서웠지.
특히 우리 선생님은 늘상 인격을 강조하셔서 성악은 인간이 되어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고종 황제를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 동네 뒷산에 사당을 지어서 그분 영정을 모셔놓고 날마다 올라갔다 내려 오셨어. 그 분 밑에서 5년쯤 배웠지.”

그러다가 어느덧 스물두세 살이 되어 ‘꽃기운’이 펄펄 살아나는 청춘이 되었습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그 무렵에는 풍신이 좋았어. 몸집이 두텁고 점잖고 또 예쁜 구석도 있어서 어른들이 귀여워했지. 그러니 나도 자연히 벌렁거리는 마음이 생겨. 남들이 하도 잘 생기고 소리 잘한다고 추어대니까 정말 그런 줄 알고 으스댔지. 그러다가 목포에 있는 권번에 성악 강사로 가게 됐지. 말하자면 첫 취직인 셈이여.”

목포 권번의 강사를 하며 지내는 동안, 재기발랄한 젊은 기생들 틈에서 잘 생기고 소리 잘하는 젊은 총각이 선생님 노릇을 하려니 그 속이 온전할 리가 없었습니다.

“안되겠어. 여자들 속에서 연애나 하고 공부는 못 허고 가르치기만 하니 실력이 줄어. 그리고 여자들이 어찌 극성스럽게 구는지 내 개인 시간을 온통 빼앗아 가고, 이 여자 저 여자가 나를 사이에 두고 싸움을 벌이는 통에 골치가 아파서 못 있겄어. 그래서 그만 두고 나와 삼성암이란 암자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지.”

수많은 여성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암자에서 먹고 자면서 2년 동안 스승도 없이 그야말로 죽자사자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무리한 연습으로 몸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암자 뒤에 있는 절벽에서 하루종일 소리를 지르면 목이 잠겨. 어찌나 목이 잠기는지 스님한테 밥 달라는 소리도 못혔어. 그래도 구슬땀을 흘리면서 소리를 지르면 소리가 살살 터져나와. 그 소리를 '지름상성'이라고 혀. 한없이 높은 소리가, 자기도 생전에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어디에선가 튀어나와. 그 소리에 미쳐. 제 소리에 제가 반해 가지고 아침부터 절벽 끝에 있는 석대에 올라가서 소리허고 점심 먹고 또 허고......
그러기를 일년쯤 하니까 소리는 좋아졌는디 몸에 이상이 왔어. 힘만 조금 쓰면 창자가 나올라고 혀. 탈장기가 생긴 거지. 겁 없이 무식하게 힘을 썼으니 뱃속이 온전할 리가 있을 거여. 그 후유증 때문에 많이 고생을 혔어.”

방법이야 어떻든 지독한 공부 덕분에 그의 소리 기량은 한껏 늘었고, 탈장도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는 순천 권번에서 성악 강사를 하다가 유성준 명창에게 더 공부를 하려고 진주로 갔습니다.

유성준 명창은 순천에 살던 장자백 명창의 제자로 소리제가 좋고 공력이 있어서 독특한 실력을 인정 받던 명창이었습니다. 특히 「수궁가」를 잘해서 많은 제자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전세방 하나 얻어 놓고 봄, 여름 동안 공부를 하는디 기초가 있어 놓으니까 번쩍번쩍 공부가 잘 돼. 그래서 <수궁가>, <적벽가>를 다 떼고 집에 돌아오는데 선생님이 정이 들어서 우시는 거여. 선생님뿐만 아니라 그 진주 권번의 수많은 기생 중에서도 우는 사람 많었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울린 그는 29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서울로 올라와 ‘조선 성악 연구회’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소리 실력을 인정 받아 바로 경성 방송국에 가서 녹음을 하고, 공부하면서 공연다니는 생활을 3,4년 하던 끝에 신의주에서 해방을 맞게 된 그는 본가가 있는 장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스무살 때에 장흥 사는 안삼차라는 장흥 사는 처녀에게 장가든 뒤로 소리 공부한다 소리 선생한다 하며 잠시도 집에 붙어 있질 않았지만, 아내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살림을 꾸려 나갔습니다. 그 뒤 광주 권번에 일자리가 생기자, 아예 광주로 살림을 옮겨 그곳에서 3년쯤 지내다가 6.25전쟁을 맞았습니다.

"가족들 데리고 피난 다니느라 죽을 고생했지. 수복되고 다시 광주에 가서 가르치고 있다가 이듬해에 광주 국악원을 창립했고, 2년 뒤에 불화가 생겨서 민속예술원을 따로 만들어 강사 노릇을 했지. 그 일에 발목이 잡혀서 20년을 광주에서 살다보니, 이럭저럭 광주가 제2의 고향이 되고 말았어"

정든 광주에서 20년쯤 지내던 그는 결국 동료들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서울로 올라왔고, 1964년에는 판소리 「수궁가」의 인간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소리라는 것, 즉 음악에는 예의 체통이 있어. 칠정과 희로애락을 살리고 인의예지를 살리는 것이 소리니 함부로 곡조를 내두르고 허망히 하면 안될 것이여. 목성음으로만 듣기 좋게 흥얼거리고 놀기 좋게 불러도 안 되며, 법통과 격식에 맞게 정중히 해야 될 것이여.”

이렇듯 고상한 음악관을 가지게 된 탓에 그는 아무데서나 소리를 하지 않았고, 소리꾼으로서의 활동도 그리 활발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소리 광대 된 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은 아니여. 다만 세상에서 처신하며 살아가려니 꺼리는 게 많아서 그러는 거여. 내가 아무리 내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사람들이 안 알어주는디 어쩔 것이여. 그리서 난 누가 날 광대라고 부르는 걸 싫어혀. 집안이나 종친회에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

이처럼 광대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이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에 정중한 처신으로 항거하며 지내던 그는 2003년 11월 2일,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 지정받기 닷새 전에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지금은 광대를 천대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의 광대들에 비해 초라한 대접을 받는 전통 광대들의 현실을 볼 때, 그의 항거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나름대로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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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ko0202.tistory.com BlogIcon 곤이엄마 2010.06.14 18:2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 너무 오랜만에 들려봅니다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쓰시는군요
    너무 좋습니다
    저두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일어난 변화들입니다
    제 능력을 너머서는 일들을 제가 요사이 하고 있습니다
    그일들을 하느라 일일이 블로그를 다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농사도 열심히 짓고 있구요
    남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있어서 요사이 행복한 곤이엄마입니다
    선생님 더운 여름 늘건강 조심하시구요
    앞으로는 자주 오도록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6.15 06:49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랫만에 반갑습니다. 여전히 열심히 지내시는군요. 블로그로 새로운 일을 하신다니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구한말에 너무도 아름다운 이유로 비련의 주인공인 된 궁중무희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진(Li-Tsin)'. 그녀의 빼어난 미모와 우아한 무용에 반한 젊은 프랑스 외교관이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 데서부터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신경숙의 소설 <리진>에 실린 김동성 화백의 리진 초상.
출처 :
http://likecho.tistory.com/entry/%25EC%...580%2599

그녀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 외교관(3대 공사인 빅토르 콜랭 드 프랑시로 밝혀 짐)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진과 사랑에 빠진 3대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프랑시(1853~1922).
출처 :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3D12999

"나는 그녀와 결혼할 겁니다. 이진의 마음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이 이단(異端)의 나라에서 그녀는 한 여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녀는 천사로서 대우받을 권리를 가질 것입니다."

이렇듯 이진에게 사정없이 매혹 당한 그는 본국에서 소환 명령이 오자, 고종에게 자신의 사랑을 얘기하고 그녀를 '기증' 받아 프랑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정교사를 들여 프랑스 말을 가르치고, 프랑스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놀라운 재능으로 새로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외로운 외국 생활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에 빠졌고, 몸이 쇠약해져갔습니다. 

김동성 화백의 삽화. 출처 : http://likecho.tistory.com/entry/%25EC%...580%2599

"서양의 습한 안개가 동양의 따뜻한 햇볕에 그을은 그녀의 이마에 검은 빛을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자, 옛날의 생활로 돌아 간 빅토르 콜랭은 '여신'처럼 숭배하고 '천사'처럼 떠받들던 이진에게 소홀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한국의 규방을 복원해 줄 정도로 관심을 잃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다시 한국에 파견되어 이진과 함께 조선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오자마자 이진에게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어느 고관이 궁중에 소속된 노비인 그녀의 신분을 앞세워 기생들의 조직인 '교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펼쳐진 무희로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얇은 금조각을 삼키고" 스스로 생명을 끊어버렸습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거의 10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05년 무렵에 2대 프랑스 공사로 조선에서 근무했던 끌라르 보띠에(Madame Claire Vautier)와 이뽀리트 프랑땡(Hippolyte Frandin) 두 사람이 쓴 「한국에서(En Coree)」 라는 수필집을 프랑스 리옹3대학의 이진명 교수가 번역해서 재불한인 잡지인 <한인>에 1979년 4월호에 소개했고, 그 책을 다시 불문학자인 김상희 부산대 교수와 국문학자인 김성언 서울대 교수가 번역해서「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 」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 무렵에 출간했습니다. 


49장으로 나눠서 여러가지 한국의 풍물을 소개한 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 중 <35장 궁중의 기생들과 한 한국 여인의 비극>이라는 짧막한 글에 위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글에서는 이진의 빛나고 깊은 눈을 '영혼의 꽃(Fleur d'Ame)'이라고 부를 만큼 그녀를 찬미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5년에 부산대학교에 강연을 갔다가 번역자인 김상희 교수에게서 그 책을 선물로 받고, 오랫동안 이 이야기에 심취했습니다. 

프랑스 공사와 결혼한 조선의 궁중무희, 그녀의 프랑스 생활, 귀환, 자살.......오페라 「나비부인」과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뭔가 다르고, 일제시대도 아닌 구한말에 예술가적 영혼을 지닌 한 여인이 프랑스 파리에서 겪었을 많은 사건과 혼란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몇 가지 의문점도 발견되었습니다.

첫째, 이진이라는 궁중무희의 존재를 증명해 줄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천민 계급인 기생이니 호적도 있을리가 없겠지만 프랑스 공사와 결혼을 했다면 당시 궁중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을 것이고, '이왕직 아악부'나 '교방부' 등 음악이나 무용을 담당했던 궁내의 광대나 기생에 대한 기록도 있을 법한데 아직까지 그녀에 대한 국내의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그녀와 결혼했다는 프랑스 공사의 이름과 그의 출생지나 외교관으로서의 근무 기록은 어느 정도 밝혀졌는데, 그녀와의 결혼 여부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이진은 그와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요? 애인? 동거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세째, 그녀가 귀국한 뒤 다시 궁안으로 들어갈 때, 왜 그 빅토르 콜랭은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 책에 씌인대로 '사악한 제도에 한 번 저항해보지도 않고 비겁하게도 그녀를 포기'해 버린 것인가? 그녀는 버림 받은 슬픔 때문에 자결한 것인가? 아니면 신분의 족쇄에 얽혀 비참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항거로 생을 끊은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비밀스러운 안개에 싸여 있는 아름다운 무희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런 의문점 때문에 저에게 더욱 흥미진진한 상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을 하며 지내고 있던 중, 놀랍게도 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이 나오더군요.

김탁환씨의 「리심(파리의 조선 궁녀)」와 신경숙씨의 「리진」이 거의 동시에 출간된 것입니다.
 


두 분 소설가도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이야기는 이미 뛰어 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품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그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과연 똑 같은 자료를 가지고 씌어졌지만, 두 소설의 구성이나 스토리나 분위기는 너무도 다르더군요. 또 제가 구상했던 이야기와도 너무도 달랐습니다.  

짤막하지만 흥미롭고 상상을 자극하는 '춤 추는 여인'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진. 출생도 알 수 없고 생존 여부도 확인되지 않지만, 수많은 남성들의 찬미 속에 비극적으로 죽어 간 여인. 그녀의 삶은 여전히 저에게 한없는 상상의 날개를 달아줍니다. 저는 여전히 '영혼의 꽃' 이진에게 매료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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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8 10:07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31 06:51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술과 얽혀 있는 사랑이야기라서
      저한테는 특히 흥미롭게 다가오더군요.

  2. 나는 2010.05.28 21:46 address edit/delete reply

    핑클 이진이 더 좋아^^

  3. 지나던 2010.05.29 00:27 address edit/delete reply

    예전에 김 영애씨가 이진 역을 맡아 tv에서 드라마 형식으로 했었던거 본 기억이 나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31 06:52 신고 address edit/delete

      드라마도 있었다는데
      저는 보지 못했어요.

  4. Favicon of https://moafarm.tistory.com BlogIcon 투덜이농부 2010.05.29 23:3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처음듣는 이야기네요
    실화라면 이진이라는 무희..에게는 너무가혹한 세상이었을것 같아요..

    팔려가듯 시집가고..
    말도통하지 않는나라 에 살아야 했을테고

    다시 돌아와.. 변하지않는 조국과 현실

    쩝;;

  5. Favicon of https://muye24ki.tistory.com BlogIcon 무예인 2010.05.30 21:2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와 처음 듣는이야기 이런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31 06:55 신고 address edit/delete

      묻혀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답니다.

  6. 2010.06.19 01:16 address edit/delete reply

    KBS 역사 스페셜같은데서 작년에 방송해준던 내용이 있었는데
    사실이니까 다큐로 나왔겠죠????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외에 새롭게 이야기를 구성하신
    뮤지컬로 만나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6.19 07:28 신고 address edit/delete

      몇 가지 자료로 보면 실화인 듯 합니다. 하지만 뮤지컬은 좀더 많은 이야기를 창작해야겠지요? 지금 한창 고생 중이랍니다.




그동안 송흥록 명창, 박초월 명창, 임방울 명창, 박녹주 명창 등 명인명창에 대한 이야기를  띄엄띄엄 올렸는데 앞으로는 좀더 자주 전에 제가 발표했던 명인명창에 대한 글들을 손질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그래서 '명인명창 이야기'라는 카테고리도 만들었습니다. 
아마 네티즌들에게는 생소한 분들이 많고, 내용도 그리 흥미롭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어디엔가 있을 미래의 '우리 문화 지킴이'들을 위하여 지금 아니면 언제 그 소중한 분들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 끝에 시작합니다. 첫번째 타자는 대중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으로 박동진 명창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아마 판소리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이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겁니다. 박동진이라는 노명창이 CF 광고에 나와서 한 대사지요. "또 제비 후리러 나간다~"하는 소리 대목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모두가 박동진 명창의 광고 속의 멘트가 히트한 결과 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처음부터 판소리계의 스타로 활동한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50세가 넘어서야 명창으로 이름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06/asp/ce...21203303

그 놀라운 집념과 열정의 이야기를 펼쳐 볼까 합니다. 
 
1968년에 국립국악원 강당에서 박동진이라는 소리꾼이 <흥보가>를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완창한다고 하자 국악계에서는 ‘참 별일이 났다’고 수군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동진이라는 소리꾼은 그때까지만 해도 김연수, 임방울, 김소희, 박초월과 같은 쟁쟁한 명창들의 그늘에 가려 별로 이름을 내밀지 못하던 소리꾼인데다가, 그런 소리꾼이 소리 한바탕을 완창으로 부른다는 것은 보통 무모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5시간을 쉬지 않고 불러 젖히는 데다가, 그 소리목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힘이 있고,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구사하였으며, 몸짓과 대사가 구성지고 익살맞고 재미있어서 5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리자 그 소리판을 구경한 관객들과 소리꾼들과 기자들이 모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이듬해에 <춘향가> 한바탕을 그 당시 명동에 있었던 국립극장에서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부르자 소리 솜씨는 제쳐 두고라도 어떻게 한 인간이 8시간이나 계속해서 소리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얘기로 온 장안이 시끌시끌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박동진이라는 소리꾼은 쟁쟁한 판소리 명창들의 대열에 끼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완창 소리꾼으로 이름이 높아졌습니다. 그 뒤 많은 소리꾼들이 그의 성공에 힘입어 완창 판소리 발표회를 가짐으로써 완창 발표가 마치 유행처럼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소리꾼들은 일생에 한두 번 하기도 어려운 완창 소리판을 그 뒤로도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씩 쉬지 않고 열었던 그의 정열과 집념은 무섭고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어려운 일을 이를 악물고 해낸 데에는 그의 실패와 좌절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1916년 7월 12일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무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대에 몇 백 석을 거두며 부유하게 살던 그의 집안은 이미 아버지 대에 가세가 기울어 그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 겪는 배고픔과 설움을 일찍부터 체험해야 했습니다.

여덟살이 될 때까지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익힌 그는 충남 대덕군 진잠면에 있는 진잠 보통학교를 4년 만에 어렵게 졸업한 뒤 대전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는 학비를 대기가 힘에 부쳤지만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뒤 면서기라도 해서 집안 살림을 도와줄 것을 기대한 그의 아버지는 꼬박꼬박 학비와 하숙비를 대주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닌 지 4년이 되어 졸업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그의 앞날을 확 바꿔 놓고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대전극장이 들어 선 자리에 <협률사>라는 단체가 들어와서 소리판을 연다기에 무심코 구경을 갔다가 그만 넋을 빼앗긴 것입니다.

조선 천지를 들썩이게 하던 이동백, 이화중선, 이중선, 장판개, 김창룡과 같은 최고의 명창들이 벌이는 소리판에서 넋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목석같은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소년 박동진은 온 몸이 달아오르고, 등에 소름이 끼치고, 귓전이 간질거리고, 오금이 저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린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펴놓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소년은 며칠 동안 학교 공부도 집어치우고 무대에 서서 소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다가 한숨을 쉬며 신세를 한탄한 끝에, 그예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소리를 배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마침 이동백 명창의 고수로 따라다니던 지동백씨가 연기군에 산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지동근은 판소리로 이름을 날릴 만할 때에 목이 나빠져서 판소리를 그만 두고 땅재주를 하거나 북을 치면서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지동근은 자기는 판소리를 가르칠 수 없다며 “청양군 정산면 백공리에 가면 손병두라는 사람이 있는데 바탕소리는 못하지만 토막소리는 맛있게 잘 한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집에 돌아 와 부모님께 자기의 결심을 여쭸습니다.

짐작한대로 아버지는 노발대발하고 매를 때리고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습니다. “몇 달 있으면 졸업인데 무슨 미친 병이 들어서 광대짓을 하려느냐”고 펄펄 뛰며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때가 18살 되던 해 여름이었습니다. 물어물어 손병두씨 집을 찾아가서 나무도 하고 꼴도 베어 주며 머슴살이를 하다시피 일 년을 지내며 소리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랑가'나 '옥중가' 같은 토막소리를 반 년쯤 배우고 나니 손병두씨도 가르칠 밑천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을 눈치 채고 선생 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손 선생의 부친인 손필모씨가 청양군 청장면에 있는 미륵당이라는 집에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집은 행세깨나 하는 양반 집안이었는데 인사를 마치고 술상이 들어온 뒤, 주인 영감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들, 손주, 며느리들이 저마다 가야금, 거문고, 피리, 젓대, 양금, 해금 등을 끼고 앉아 '풍류'를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풍류 가락에 넋을 잃고 연주가 끝났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앉아 있는데 손필모씨가 “이놈이 내 아들 제자인데 소질이 있는가 없는가 봐 주시요”하고 소개를 했습니다.

장구를 치던 주인 영감은 “어디 한 번 소리를 들어 보자”면서 북을 가지고 앉았습니다. 그래 겁을 바짝 내며 손병두에게 배운 소리를 하고나니 영감이 “네가 소질이 있기는 있는데 명창이 되려면 지금 선생으로는 안 된다. 이 집은 선배 대명창들이 한 번씩 다녀가셨던 집이다. 서울에 가면 정정렬 명창이 있는데 그 분이 <춘향가>는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러니 그 분한테 배우도록 해라”하며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길로 손병두 선생을 떠나 정정렬 명창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는데 일이 안 되려는지 도중에 서울 못 갈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터벅터벅 걸어서 유성까지 나왔을 때 마침 공주의 부자인 김 갑순이 궁술대회를 열고 기생들을 데리고 노는데, 저녁에 천막을 쳐 놓고 사당패들이 소리판을 벌이는 걸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구경꾼들 틈에 끼어 소리를 듣는데 이미 소릿길을 조금 안 그의 귀에 사당패의 장바닥 소리가 가소롭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자청해서 무대로 올라가 소리를 한 마디 했더니 “야, 그거 투가리보다 장맛이다”하며 “재청이요, 산청이요” 한 것이 오청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끝내고 잠을 자려는데 느닷없이 곱게 차려 입은 중년 여인이 찾아와서 “아까 소리한 학생이 누고? 니 우리 방에 온나”하지 않겠습니까? 그 여자를 따라 여관으로 가니 의젓한 중년 신사가 앉아 있다가 “내 김천 서 치과의사하는 사람인데 너 김천 가서 기생 선생할래?”하며 이 말 저 말 얘기를 했습니다. 들어보니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생겨 두말없이 그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올라가려다가 거꾸로 내려가게 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그는 중년 여인이 경영하는 진양옥이란 선술집에서 손님 앞에서 소리하며 하룻밤에 50전도 벌고 1원도 벌면서 몇 달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명월관이라는 요릿집에서 기생들 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하여 꽃같은 기생 스무 명쯤을 모아 놓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소리를 배우지도 못하고 토막 소리 몇 대목 가지고 밥벌이하면서 누구를 가르치는 일이 항시 마음에 걸리던 차에 공주 대제암에서 정정렬 명창이 소리를 가르친다는 얘기를 듣고 대번에 기차를 타고 절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스승 운이 없으려는지 조상선, 김여란, 김초앵과 같은 쟁쟁한 신인 명창 12명이 한 시간씩 꼬박 열두 시간 동안 선생님을 붙잡아 놓고 있는 통에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름이면 절간 아무데서나 잠을 자며 귀동냥이라도 할 텐데 엄동설한에 그럴 수도 없고 해서 다시 대구 봉산동에 와서 술집 기생들의 소리선생을 하며 지냈습니다.

얼굴도 “빤질빤질하게” 잘 생긴데다가 소리 잘 하고 멋이 있는 젊은 총각이 젊은 여자들 틈에서 지내다보니 “만사가 맨숭맨숭하기만 할 수는 없어서” 가끔씩 연애 사건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대두에서는 대구 경찰서 고등계 형사의 조카인 일본 여자 대학생과 연애를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모진 매를 맞고 갖은 협박을 당한 끝에 강제로 쫒겨나다시피 경주 권번으로 옮겼습니다. 또 경주에서는 얼굴 예쁘고 인기 있던 기생 김난윤의 짝사랑에 말려들어 호되게 곤경을 치루는 등, 여자들 등쌀에 시달렷습니다.

결국 그는 그 생활을 청산해야겠다는 결심 끝에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는 있었구만. 그런디 그것이 좋은 것이 아녀. 젊은 놈 신세 망치기 딱 좋은 것이라. 더욱이 소리 공부하는 사람은 여색을 조심해야 돼. 지동근씨가 나헌티 헌 말이 있네. 젊어서 여자를 알면 소리를 망치게 되니 여자 보기를 원수 보듯이 해야 한다고 하셨어. 성공만 하면 여자는 줄줄이 따라오는 법이니 성공할 때까지 절대 여자를 가까이 말라고 말이여. 그런디 한창 기운이 좋을 적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는가. 서울 와서도 맨 연애만 허고 다녔지”

22살에 서울에 와서 조선 성악 연구회에 다니며 꿈에 그리던 정정렬 명창에게 소리공부도 하고 명월관, 식도원 같은 요리집에서 소리를 하며 돈도 벌었습니다. 노명창들을 모시고 북만주, 신의주, 상해, 무창, 북경, 남경, 서주까지 공연을 다녔습니다. 또 김창진, 조학진 같은 명창에게 소리공부를 하며 몇 해를 보내는 동안 그의 앞에는 소리꾼으로서 밝은 미래와 성공이 열리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거침없이 돈도 쓰고 한껏 멋을 부리고 신식 여학생들과 뻔질나게 연애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5살이 되던 해에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목이 안 나와. 고음이 안 나오고, 숨이 짧아지고, 소리가 갈라지고, 허리도 아프고, 소리 기운이 싹 없어져 버렸어. 한약도 써 보고 목을 쑥으로 떠보기도 하며 별별 짓을 다 했지만 소용이 없어. 목이 그 지경이 되니 무대에 서면 집어치우라고 소리지르니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고, 무엇보다 내 인생이 이것으로 끝이구나 생각하니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나”

그러던 차에 고향 집에서 옥천에 사는 색시와 혼인을 하라는 전갈이 오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대뜸 혼인을 해버렸습니다. 실의에 잠긴 마음을 그렇게 해서라도 달래보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그에게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도리어 무거운 짐만 짊어지게 했습니다.

그는 그 짐에서 벗어나고 잃어버린 목도 찾을 겸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소리공부를 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가정을 돌보지 않게 되어 아내는 집을 떠나게 되고, 그 아내에게서 낳은 자식마저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불러들인 불행이지만 자신으로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 더욱 더 실의와 좌절 속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해방이 되고 그의 나이 30살이 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는 해방 뒤에 생긴 여성창극 단체인 <햇님국극단>에 들어 갔습니다.

그 단체에는 박초월, 김소희, 박귀희, 조금앵, 김경애와 같이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던 여자 명창들이 있었는데 그는 그 단체에서 고수도 하고, 무대감독도 하고, 작곡도 하며 그들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 뒤 김연수 명창이 이끄는 <우리 국악단>에서도 무대 뒷일을 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때의 쓰라린 경험과 명창들의 그늘에 가려 그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며 느꼈던 열등감, 무대감독을 하며 익힌 무대 경험들이 '재기'를 위한 밑거름이 될 줄이야 그 당시는 아무도, 그 스스로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기에는 숨은 공신이 있었습니다. 

함께 창극단의 스탭 일을 하던 중 사랑을 하게 되어 마지막까지 해로한 둘째부인 변기씨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없었던들 그의 재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1962년에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들어 간 그는 남들은 전성기를 지나서 활동을 마무리 짓는 나이에 골방에 틀어박혀 아침 여섯시부터 정오까지 꼼짝 않고 소리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부인은 그 뒷바라지를 지성스럽게 했을뿐더러 돈 못 벌어 온다고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또 소리공부하다가 절망에 빠진 그가 소리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극구 말리며 다른 생각 말고 소리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러한 아내의 내조 덕분에 그는 10여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로지 소리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만 52살이 된 1968년에 <흥보가> 5시간 완창 발표회를 갖고, 1969년에 <춘향가> 8시간 완창발표회를 한 다음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를 차례차례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뒤에 그는 계속해서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강를매화전>과 같이 가사와 곡을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진 노래들을 다시 가사를 찾고 곡을 붙여서 발표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된 그는 1970년에 주태익이라는 극작가가 판소리 사설체로 쓴 <예수전>에 곡을 붙여 5시간 동안 불렀고, 그 뒤 <팔려 간 요셉>이라는 노래도 창작해서 전국 교회를 돌며 신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또 1973년에는 <이순신전>을 불러 창작 판소리에 대한 국악계와 일반인들 사이에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407031

“십 년 동안 목숨을 걸어 놓고 공부를 헌 결과여. 내가 젊어서 못된 짓을 많이 혀서 목을 버려 놓았응게 목만 다시 찾으면 죽어도 원이 없다 허고 일심으로 공부를 허니까 목이 다시 찾아 와. 그래도 고음이 예전처럼 안 나와서 나 혼자 연구를 혔지. 처음에 '암성'으로 가늘게 내다가 점점 기운을 넣어서 '통성'으로 내는 거여. 옛날 임방울 명창도 이런 말씀을 허셨지. 소리를 많이 허면 가느다란 '실목'이 나오느니라. 그것을 많이 허면 그 목이 차차 굵어져서 통성이 되는디 그 단계가 어려운 것이니라. 허셨는디 내가 혀 보닝게 정말 어려워요. 실목을 통성으로 변화시키기가 소리공부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여. 그 단계를 통과혀야만 득음을 혔다고 헐 수가 있는거지”

그 어려운 단계를 통과한 명창에 대한 예우로 나라에서는 1973년에 판소리 <적벽가>의 인간문화재로 그를 지정했습니다.

그는 그 뒤 국립창극단의 단원이 되고, 1978년에는 단장이 되어 1981년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창극단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는 더 바빠져서 남들은 은퇴할 나이까지 각종 판소리 관련 교육이나 수없이 밀려오는 초청 공연, 방송 출연, 음반 취입, 게다가 광고 출연까지 젊은이 못지 않게 분주하게 보내다가 87세인 2003년에 세상을 떴습니다.

인생의 후반기인 50세에 재기해서 30년의 전성기를 보낸 그는 깊은 고난의 길을 걸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서운 집념과 미래에 대한 도전, 그리고 열정으로 충만한 노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뜬 '대기만성' 형의 명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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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ousa.tistory.com BlogIcon 미국얄개 2010.04.22 07:0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욕쟁이 할아버지라고 불렀던 생각이 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55 신고 address edit/delete

      욕을 판소리로 승화시킨 분이지요.
      욕쟁이 할아버지가 그립네요.

  2. Favicon of https://artofdie.tistory.com BlogIcon 탁발 2010.04.22 07:0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박동진 명창의 남산 국악원 시절 짜장면 일화는 참 흥미롭죠.
    덕분에 오늘 박명창의 소리를 오래오래 듣게 되겠네요.
    먼저 임방울의 추억부터 듣고 시작해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54 신고 address edit/delete

      국악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으시군요.
      감사하고 주주 들러주세요.

  3.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10.04.22 07:14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옛날 광고에 나오셨던 모습이 선합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합니다.
    건강관리 잘 하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53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우리 것을 심어준
      광고였지요.

  4.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10.04.22 07:39 address edit/delete reply

    박동진 명창님을 통해서 인생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누구나 굴독잇는 인생을 살다 가는 사실과 아내의 역할의 중요함도 역시 깨닫습니다.
    또한권의 명서의 탄생이 예감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52 신고 address edit/delete

      역시 여성의 입장에서 콕 집어주셨네요.
      부인의 내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5. Favicon of https://muye24ki.tistory.com BlogIcon 무예인 2010.04.22 07:4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공주를 지나가다보니 박동진 명창님이 운영하시는 무화제 전수원 표시가 있더라구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52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분의 고향인 공주에 기념관과 동상이 서 있답니다.

  6. Favicon of http://yureka01.tistory.com BlogIcon yureka01 2010.04.22 08:49 address edit/delete reply

    명창이 되기 위한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인지 명창은 그저 있는건 아니었나 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51 신고 address edit/delete

      명인명창들 한 분 한 분의 사연은 정말
      구구절절 장편 소설이더군요.

  7.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10.04.22 09:1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박동진 명창님은 제가, 아니 우리에게 우리 소리에 대한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키신 분이시지요.
    가슴에 늘 남는 분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50 신고 address edit/delete

      언제나 한복에 갓을 쓰고 소리를 하시고
      우리 것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일으켜주신 분이죠.

  8. we 2010.04.22 09:22 address edit/delete reply

    제 기억속에는 늘 욕을 시원스럽게 하시는 할아버지셨네요 그리고 가장 어른다운 어른이셨던것 같아요.. 생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것 자체가 제겐 영광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49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주 구성지고 재미있게 욕을 하셨던 분이지요.
      욕도 이 분의 입을 통하면 예술이 되더군요.

  9. Favicon of http://blog.daum.net/cola1018 BlogIcon 바람될래 2010.04.22 09:44 address edit/delete reply

    예전의 이분의 창을 들은적이있었는데
    감동 그 자체였죠..
    그리고 나서 국악에 빠져 가야금 아쟁 그리고 판소리까지.. ^^
    우리나라의 소리가 좋다는걸 그때 알았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48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 분과 그런 좋은 추억을 가지고 계시군요.

  10.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10.04.22 11:57 address edit/delete reply

    제비 몰러 나간~다 하시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오래전에 돌아가셨군요 ㅠㅜ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마 저 세상에서도 제비 몰고 계시지 않을까요.
      정말 그 분이 그립습니다.

  11. Favicon of http://blog.daum.net/hallo-jihan BlogIcon 김지한 2010.04.22 18:32 address edit/delete reply

    눈팅만 하다가 오늘 처음 글 남겨봅니다! ^^

    예전에 어렸을 때 기회가 있어서 박동진 명창의 소리를 직접 접한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어린 나이에 들었지만 벅찬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져야 할텐데 오히려 더욱 사라지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무튼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자주 댓글 남기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46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렸을 때 들은 판소리 한 가락이
      삶의 소중한 양분이 되기도 한답니다.
      그런 기회가 더욱 많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12. 김정훈 2010.04.22 23:54 address edit/delete reply

    이번 글도 그렇고.. 서편제의 영향인지, 저는 전 장관님께서 '국악과'를 나오신줄 알았습니다. 찾아보니 서울대 독어과를 나오셨더군요.. 아.. 문화적 충격..!!

    아무튼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24 06:45 신고 address edit/delete

      많은 분들이 제가 국악인인 줄 아시지요.
      서편제 덕분에 '오해(?)'가 많답니다.




저는 가끔 연극이나 국악이나 연예계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을 만나 일종의 상담을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연극배우 지망생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대부분 꿈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마음을호소
하더군요. 그들의 말을 듣는 동안 저의 지망생 시절이 오버랩되더군요.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6,70년대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검사, 판사, 의사, 교사 같은 “사”자 직업이 최고 인기였습니다.

그 무렵에는 연극이나 연예계를 지망하는 학생은 아예 말을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집에서는 불호령이 떨어질테고, 친구나 선생님들로부터도 '날라리'나 '딴따라'라는 비웃음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김이석의
「실비명」이란 소설은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예술을 좋아하는 딸과 이를 반대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력거꾼인 아버지는 딸이 의사가 되기를 원하지만, 춤과 노래에 미친 딸은 요정에서 춤을 추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아버지는 딸을 강제로 간호사를 시키지만,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딸은 몸이 병들어 간다.
 
초췌하게 변한 딸의 모습을 본 아버지가 병원 일을 그만 두게 한 뒤 인력거에 딸을 태우고 오다가 차에 치어 죽게 되고, 몇 년 뒤에 결국 기생이 된 딸은 다시는 인력거를 타지 않는다.




그렇게 천대받고 무시 당하던 이 직업이, 요즘 들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상한가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를 타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연극영화과나 방송 연예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육환경이 대단히 열악합니다.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극장이나 연습실이나 기자재 등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고, 공연예술계나 연예계와 긴밀한 네트워크도 되어 있지 않은 학교에서 불충분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해마다 수없이 배출되고 있지만, 취업에 대한 전망은 매우 비관적입니다.

그래서 요즘 각 대학의 연극·영화·연예 관련 학과들이 젊은이들의 허영과 무모한 꿈을 부추겨 수많은 실업자를 길러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공연예술계나 연예계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매우 불안정한 직종입니다.

이 직업에는 타고난 재능과, 그 재능을 길러 줄 스승이나 선배, 그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는 주변 여건, 그리고 오랫동안의 불안한 생활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의지와 신념이 필수적입니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전국 각지에서 뛰어난 실력과 재능을 갖춘 지망생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한정된 고용력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는 더 많아질 전망입니다.

어느 누구나 스타로서 성공하기 전에는 눈물어린 고통의 시간을 겪는 법입니다.

두 시간의 화려한 조명을 받기 위해서는 이백 시간 또는 이천 시간의 고통스러운 연습과 훈련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 직업을 택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불나비처럼 잠깐 동안의 빛나는 순간만을 보고, 그 뒤의 어두운 생활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빨리 스타가 될 수 있는 가수나 영화배우나 텔런트나 모델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반면, 오랜 수련이 필요한 연극이나 무용이나 음악 등 공연 예술의 지망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연 예술들이야말로 연예인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입니다. 발성과 화술, 몸짓 표현의 기본에 대한 철저한 훈련, 무대에 대한 이해, 예술가로서의 철학과 자세, 예술관, 드높은 이상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기초예술을 통해 길러지고 그걸 응용해서 영화, 가요, 에니메이션, 방송 등의 대중 예술에 적절히 활용되는 게 기본입니다.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듯이 기초가 튼튼해야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하는 법입니다.

연예계든 공연예술계든 취업의 문은 아주 좁고 지망자는 너무 많아 경쟁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하려는 예술지망자들의 의지는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비정한 경쟁에서는 필연코 탈락자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 '좁은 문'의 경쟁에서 탈락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울한 인생을 사는 일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의 뒤에는 반드시 가족과 친지들의 갈등과 고통이 숨어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훨씬 그들을 이해하고 후원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지만, 아직도 자기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이 길을 가겠다고 할 때 대부분의 가족들은 불안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작품활동을 할 기회를 못 가진 지망생일지라도, 언젠가 그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스타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 스타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초기에는 탈락과 실업의 아픔을 겪으며 한 발 한 발 높은 산을 오른 것입니다.

해마다 늘어가는 예술지망생들에게는 그들의 꿈을 이해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들의 간절한 꿈이 꽃을 피우길 빌며, 쇼펜하우어의 <희망에 대하여>라는 글을 선물합니다.

 

희망은 마치 독수리의 눈빛과도 같다.

항상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먼 곳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이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것이다.

행운은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을 따른다.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마라.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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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wlalsdl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8.25 06:57 address edit/delete reply

    피나는 노력과 아픔이 있기에
    멋진 배우가 되는것 같네요~
    가끔 괜찮은 배우가 생활고에 포기하는 모습들 보면
    짠하기도 해요...
    배우지망생들 홧팅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03 신고 address edit/delete

      외로운 그들에게 큰 힘이 될 화이팅이십니다.

  2.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8.25 07: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항상 현실이든, 미래든 막막함을 느낄 때 많이 주저 앉는 것 같아요..
    저도 현실의 힘듬 때문에 희망을 잃은 것이 그만두게 된 이유같아요..

    선배님의 글이 많은 노력을 하는 미래 주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05 신고 address edit/delete

      희망-
      현실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묘약입니다.
      행복하고 희망 찬 하루되세요.^^

  3.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5 07: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아는 선배도 고교시절 백일장을 휩쓸며 다니다가 어느 순간 연극에 빠지셔서 희곡만을 쓰시던데. 참 힘들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늘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사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작아지더군요. 그런데 가끔 그들에게 '그걸 어떻게 먹고사냐'는 힘빠지는 소리를 하는 분들도 있죠. 정작 도와주지도 못할 거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참 자신의 말에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읽어주고 봐주면서 격려와 질책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 말이죠.
    특히 연예, 연극, 공연 쪽은 다른 직종보다 더한 듯해서, 대학로에 무수히 생겨나는 고시원에 입실한 분의 절반 이상이 그쪽 계통이라는 것을 봐도 그렇고요. '해운대'에 출연했던 이민기 씨도 무명시절 고시원에서 생활했다고 하시더군요.
    모두들 힘내셨으면 합니다. 화이팅!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07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자신의 일에 걸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 가치를 진정으로 알아주고 격려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격려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4.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8.25 07:21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건강관리 잘 하셔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09 신고 address edit/delete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 더위가 지나면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겠지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5. Favicon of https://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2009.08.25 09: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어느 분야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아픕니다...일전에 아들이 고시원에 있을 때에도 각 분야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쪽방 고시촌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곤 마음이 무척 아리더군요....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선배님의 글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오늘도 좋은 글 마음에 담아 갑니다....행복한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1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젊은 시절에 풍요로운 환경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도전한 사람이 남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보내는 것 같습니다.

  6.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09.08.25 11: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연극, 연예지망생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어릴때부터 준비를 하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거 같습니다.
    그러기에 어린 나이에 큰 상처와 실패를 맛볼 수도 있을텐데.
    그 것을 좌절이 아닌 경험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또래의 친구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먼저 경험하였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ㅎ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12 신고 address edit/delete

      남들보다 일찍 좌절을 겪고 그걸 극복한 사람이라면
      남은 인생을 훨씬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7. 임현철 2009.08.25 11:22 address edit/delete reply

    예전에는 연극이 우선이었는데 요즘은 천지차이가 됐다지요?
    묵묵히 단전 호흡으로 다져진 연기들이 빛을 발할 때가 오겠지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13 신고 address edit/delete

      연극의 힘이 많이 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기초를 다지는 중요성은 더욱 절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8.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8.25 12: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기초가 탄탄하게 다져진 배우는 언젠가는 연기력을 인정 받더군요..또 그렇게 되야 하구요.....
    잠시의 인기에 연연하여 예능에 치닫는 배우보면 좀 안타갑더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13:14 신고 address edit/delete

      청년을 넘어서 중년과 노년까지 빛을 발하는 배우는 연기의 기초를 단단히 다진 사람들이지요.

  9. 바보 2009.08.25 18:50 address edit/delete reply

    사람 생긴 것이야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것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갈고 닦는 것은 본인의 노력에 의하여 결정되지요. 하루아침에 번쩍거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시인이 되던 과학자가 되던 연기자 이름 있는 불로거가 되던 끊임없는 내공쌓기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5 20:56 신고 address edit/delete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살아갈수록 실감하게 됩니다.
      님의 말씀처럼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진리지요.

  10. Favicon of https://lilac02.tistory.com BlogIcon 孤雲詩仙 2009.08.25 22:4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리나라 공연예술계가 재능있고 의지와 신념이 강한 젊은이들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저는 연예나 공연예술계의 현수준을 잘 모르겠습니다만,아무튼 더욱더 발전하여 우리나라가 문화적 선진국으로 거듭나길 기원해봅니다.
    아마도 김명곤님이 계셔서 최소한 공연예술계만큼은 든든할 듯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6 16:36 신고 address edit/delete

      갈수록 재능 있고 신념도 있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희망을 가져도 좋을 듯 합니다.

  11. 곤이엄마 2009.08.26 13:03 address edit/delete reply

    맞는 이야기 입니다..
    보이는 부분보다 훨씬어려운점이 많다는걸 알고 극복하고 이길줄 아는 이들이 성공하길...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6 16:38 신고 address edit/delete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과 꿈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되어야겠습니다.

  12. Favicon of http://heraus.pe.kr BlogIcon heraus 2009.08.28 10:17 address edit/delete reply

    기획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스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美를 일깨워주는 예술인들이 좀더 존경받고 좀더 대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인들이 존경받고 대접받는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아름다움을 지향한다는 뜻이고, 그만큼 아름다운 사회라는 뜻일 테니까요.. 너무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8 10:34 신고 address edit/delete

      요즘은 예술가도 상업성으로 평가하는 풍조가
      점점 만연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판소리는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서민들뿐만 아니라 양반들까지 포함해서 폭넓은 대중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의 판소리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주는 시 한편을 소개해 볼까요? 18세기에 살았던 시인인 신위가 판소리 공연을 보고서 쓴 시입니다.

이따금 환호하는 외마디 소리
넓은 뜰엔 구경꾼이 구름같이 몰렸네
이 밤에 부질없이 횃불 걱정 마오
반달이 구름 끝에 걸려 있으니

요즘 인기가수의 야간공연 장면 같지 않아요? 그 무렵에 이름을 날리던 명창 중에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황해천 여덟 명을 뽑아서 ‘8명창’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난다긴다 하는 8명창보다 더 대단한 우춘대 명창을 찬양하여 쓴 시가 있는데 소개해 볼까요? 신위보다 약간 후배인 송만재라는 시인이 쓴 시입니다.

장안에 이름 높은 가객 우춘대
오늘에 누가 능히 그 소리를 잇나
술자리에서 한 곡 빼면 비단이 천 필
권삼득과 모흥갑은 아직 어린애

서민들은 비단 한 필 구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술자리에서 부른 노래 한곡에 비단 천 필이란 출연료를 받았다니 대단한 슈퍼스타였나 봅니다. 이처럼 판소리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의 명창들은 그야말로 탄탄한 인기가도를 누리며 고액의 출연료를 받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평양감사 부임도> 중 명창 모흥갑의 판소리 공연 장면.

수많은 명창들 중에서도 명창 중의 명창으로 꼽히는 사람이 ‘가왕(歌王)' 송흥록입니다.

‘가왕’은 요즘의 ‘가수왕’과 같은 말입니다. '판소리의 중시조', '동편제의 비조' 등으로도 추앙 받는 송흥록 명창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송흥록은 1780년쯤에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에서 태어나, 스무 살 무렵에 이미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그의 노래를 들으려고 아우성이었답니다.

한번은 대구감영에서「춘향가」를 불렀는데, 모두들 그의 노래에 감동해서 감격어린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예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기로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맹렬이란 기생만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송흥록은 그 기생을 눈 여겨 보았다가 이튿날 그녀의 집에 찾아 갔습니다. 술상을 앞에 놓고 방에 앉아 있으니, 한복을 예쁘게 차려 입은 맹렬이가 들어왔습니다.

맹렬 : 무슨 일로 오셨나요?
송흥록 : 왜 어젯밤에 내 노래를 듣고 한마디 말이 없었소?
맹렬 : 할 말이 없어서요.
송흥록 : 남의 노래를 듣고 할 말이 없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소?
맹령 : 꼭 말을 해야 하나요?
송흥록 : 꼭 듣고 싶소.

송흥록이 안달을 하며 보채니까 맹렬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맹렬 : 송선생님이 명창은 명창이지만 아직도 부족한 대목이 있어요.
송흥록 : 그게 뭐요?
맹렬 : 귀곡성이 많이 부족해요.

‘귀곡성(鬼哭聲)’은 춘향이가 옥에 갇혀 있는 어느 날 밤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으스스 부니 온갖 귀신들이 나와서 춘향이에게 달려드는 대목에 나오는 귀신소리입니다.

송흥록 : 귀곡성 어떤 점이 부족하오?
맹령 : 그걸 제가 어찌 알아요? 어쨌든 선생님 소리는 귀신소리는 아니예요.

맹렬이는 매몰차게 말을 하고 송흥록을 떠나 보냈습니다. 송흥록은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가서 노래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는 귀곡성을 제대로 하려고 죽을 힘을 다해 연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웬 소년이 찾아왔습니다.

소년 : 송명창님!
송흥록 : 이 밤중에 누구냐?
소년 : 어떤 높은 어르신들이 송명창님을 모셔 오랍니다.
송흥록 : 왜 나를 찾느냐?
소년 : 송명창님의 판소리를 듣고 싶으시답니다.
송흥록 : 그 분들이 계시는 곳이 어디냐?
소년 : 저를 따라 오십시요.

송흥록은 소년을 따라서 대나무 숲이 우거진 어느 기와집에 갔습니다. 집안에는 수염이 하얀 노인 세 분이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 : 송명창 왔는가?
송흥록 : 예.
노인 : 우리들이 심심해서 자네 노래를 듣고자 불렀네.
송흥록 : 어느 대목을 원하십니까?
노인 :「춘향가」중 ‘옥중가’를 해보게.

송흥록은 높은 어르신들 앞이라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나니까 노인들이 말했습니다.

노인 : 자네 노래가 다 좋은 데 귀곡성이 틀렸네.
송흥록 : 어떤 점이 틀렸습니까?
노인 : 가르쳐 줄 테니 따라 해보게.

송흥록은 노인들이 가르치는대로 따라 불렀습니다. 밤새도록 힘들게 노래 연습을 하고 났더니, 노인들이 그만하면 됐으니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송흥록은 술을 몇 잔 얻어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밝아 깨어보니 어느 무덤가에 누워 있지 않겠어요? 무덤가에서 밤새 연습하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던 겁니다. 그는 꿈속에서 노인들에게 배웠던 노래를 기억하여 그 유명한 ‘귀곡성’을 만들었습니다.

그 뒤에 다시 대구에 가서 판소리를 했습니다. 송흥록 명창은 노래를 하면서 맹렬이의 얼굴만 바라 봤습니다. 드디어 ‘귀곡성’을 하는 대목이 되었지요.

밤은 적적 깊었는데
사람 자취 고요하고
밤새 소리는 부웃 부웃
물소리는 주루루루루루루루루
도깨비는 휫휫
바람은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
번개 천둥이 치고
궂은 비는 퍼붓는데
귀신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이히이히이히이히이히

송흥록 명창은 온 힘을 다바쳐 ‘귀곡성’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으시시한 바람이 불어와서 촛불이 한꺼번에 꺼지고, 하늘 한쪽에서 귀신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신이 들린 소리라고 소리치며 열광적으로 박수를 쳐댔습니다. 맹렬이도 넋을 잃은 사람처럼 송흥록의 입만 쳐다보고 무어라 하여야 좋을지 모르는 모양이었습니다.
 

비전마을 송흥록 생가 앞에 서있는 송흥록의 동상.

그날 밤, 맹렬이가 송흥록의 방에 찾아와 문을 두드렸습니다.

맹렬 : 송명창님, 송명창님!
송흥록 : 누구요?

송흥록은 자다 말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습니다. 맹렬이가 봇짐을 들고 방 밖에 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송흥록 : 아니, 맹렬이 아니요?
맹렬 : 선생님, 이제 진짜 명창이 되셨어요.
송흥록 : 모두가 그대 덕분이요.
맹렬 : 그동안 저를 생각하셨나요?
송흥록 : 소리 공부하는 동안 그대 생각만 했소.
맹렬 : 저도 그 동안 선생님 생각 뿐이었어요.
송흥록 : 고맙소.
맹렬 : 우리 당장 떠나요.
송흥록 : 뭐요?
맹렬 : 시간이 없어요. 어서 짐을 싸세요.

사랑에 눈이 먼 두 사람은 그날 밤으로 대구를 떠나 송흥록의 고향인 운봉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예전에는 관청에 춤도 추고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는 기생이 딸려 있었는데 그들을 ‘관기’라고 불렀습니다. 관기는 마음대로 결혼할 수도 없고 허락 없이 그 곳을 떠나서도 안되는데, 관기였던 맹렬이는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도망 친 겁니다.

보기 드물게 정열이 넘치고 용기 있는 여성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맹렬이란 이름만큼이나 성격이 불 같아 화를 잘 내고 질투심도 많아서 남편이 공연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짜가 하루만 지나도 난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진주에서 송흥록을 초청해서 스므 날쯤 갔다 올 예정으로 떠났는데, 여러 사고가 생겨서 이삼 일 늦게 되었답니다. 송흥록은 그 사연을 자세히 적어 사람을 시켜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화가 난 맹렬이는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봇짐을 싸가지고 집을 나갔습니다.

심부름꾼 : 송명창님!

심부름꾼이 허겁지겁 돌아와서 송명창을 불렀습니다.

송흥록 : 그래, 편지는 전했느냐?
심부름꾼 : 아이구, 말도 마십쇼.
송흥록 : 무슨 소리냐?
심부름꾼 : 제가 가니까 마침 짐을 들고 어디 가시려다가 저와 만났어요.
송흥록 : 그래서?
심부름꾼 : 송명창님 심부름으로 왔다고 하면서 늦으시는 사연을 이 편지에 적어 보냈습니다. 하니까----
송흥록 : 하니까---
심부름꾼 : '그 놈의 거짓말 편지 읽으면 뭐해?’ 하면서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으시고---
송흥록 : 뜯어보지도 않았다구?
맹렬 :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고 송명창에게 전하라’고 하시고는 휭 하니 집을 나가시더라고요.
송흥록 : 아이구, 이거 큰일 났구나!

송흥록은 깜짝 놀라 모든 일을 다 제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가보니 정말 맹렬이는 간 곳이 없고 빈집뿐이었습니다. 송흥록은 몇날며칠 맹렬이를 찾아 헤맨 끝에 진주고을을 다스리는 병사인 이경하를 모시는 수청기생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진주로 갔습니다. 송흥록이 왔다는 말을 듣고 진주병사가 송흥록을 불러 들였습니다.

진주병사 : 네가 명창이라고?
송흥록 :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줍니다.
진주병사 : 그럼 나하고 내기를 해 보겠느냐?
송흥록 : 어떤 내기를---?
진주병사 : 내 앞에서 판소리를 하는데, 나를 한 번 웃게 하고 또 한 번 울게 하면 상을 줄 것이나, 만일 그렇지 못하면 너의 목숨을 바쳐라.

그제서야 송흥록은 맹렬이 병사에게 가르쳐 준 내기인 줄 알아챘습니다.

송흥록 :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주병사 : 그대신 소리는 수궁가를 하여라.
송흥록 : ‘수궁가를? 아이고, 큰일 났구나.’

「수궁가」는 판소리 중에서도 울리고 웃기는 대목이 별로 없는 빡빡한 소리이니 송흥록은 속으로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드디어 소리판이 열렸습니다. 송흥록이 아무리 웃기려고 온갖 어리광을 다하여도 병사의 얼굴은 화가 난 듯 점점 굳어져만 갔습니다. 송흥록은 느닷없이 병사 앞으로 달려들어 “아저씨, 왜 안 웃으시오? 나를 죽이고 싶어 그러시오?”했더니 병사가 '픽!' 하고 웃었습니다.

송흥록은 그것을 보고 “우리 아저씨가 웃기는 하였다마는 또 어떻게 우는 꼴을 보나”하더니 토끼가 용궁에서 죽게 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통곡하는 대목을 불렀습니다. 어찌나 슬프게 부르던지 모든 사람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병사도 슬픔을 참지 못해 돌아앉아서 슬쩍 수건을 눈에 대었습니다.

소리판을 마친 뒤 병사가 물었습니다.

진주병사 : 그래, 무슨 상을 원하느냐?
송흥록 : 맹렬이를 원하옵니다.
진주병사 : 맹렬이를?

병사가 맹렬이를 바라보니까 맹렬이가 송흥록과의 관계를 숨김없이 말했습니다. 맘씨 좋은 병사는 껄껄 웃으면서 둘이서 다시 살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기구한 사연으로 재결합을 하였건만, 또다시 사랑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인기스타인 송흥록이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느라 수시로 집을 비우는 데다가 여성들의 인기도 한 몸에 받았을테니 맹렬이가 화낼만도 하지 않았나 추측해보지만,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사랑싸움의 진상(?)은 알 길이 없습니다.

맹렬이도 한 성질하는 여성이었지만, 송흥록도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었나봅니다. 그러다보니 싸우는 일이 잦아지고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큰 싸움을 한 끝에 맹렬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송흥록은 바로 쫒아가서 화해를 하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말은 못하고 속에서는 더욱 더 화가 나고 슬픔이 밀려들었습니다. 맹렬이와 영영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온갖 감정이 불길처럼 끓어올라 노래가 터져 나왔습니다.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네 이년 잘 가거라
날 버리고 네가 가면
내가 너를 잊을소냐

어쩌고 하면서 슬프고, 외롭고, 사랑스럽고 하는 온갖 감정을 노래로 불렀습니다. 맹렬이는 문밖에서 듣고 있다가, 그만 봇짐을 내던지고 다시 돌아와 부등켜안고 울면서 화해했답니다.

정말 멋진 사랑 이야기지요? 그 두 분이 백년해로 했는지,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일제시대에 정노식이 쓴 『조선 창극사』라는 책에는 판소리 명창들에 얽힌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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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22 07:1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재밌는 이야기네요~
    저렇게 사랑을 하시는 분들은 헤어지기 힘든것 같더라구요
    미운정 고운정에 흠뻑 젖어서 ^^
    덕분에 재밌게 읽고~많은 생각을 하며 갑니다~ㅎ

    벌써 주말이에요~
    다른 날보다 좀더 여유롭게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 봅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13 신고 address edit/delete

      세상의 많은 부부들도 미운 정 고운 정에 얽혀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이분들의 정은 좀더 뜨겁고 깊은 것이겠지요.
      휴일 즐겁게 지내세요.

  2.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8.22 07:2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항상 선배님의 판소리 글을 읽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네요..
    조선창극사 사서 읽어 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ㅎ

    즐거운 주말, 행복하고 멋지게 보내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14 신고 address edit/delete

      조선창극사-읽으시면 후회 안할 거예요.

  3.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2 08:5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비단 천 필을 받은 우춘대 명창은 정말 톱스타였겠군요. 그나저나 송흥록 명창은 사랑과 함께 소리가 더욱 좋아진 것 같네요. 아마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소리에도 묻어나왔겠죠. 물론 그 전부터 뛰어난 명창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나저나 맹렬이는....참--- 송흥록 명창이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15 신고 address edit/delete

      사랑의 힘은 인간의 능력을 한껏 드높여 주나 봅니다.

  4.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8.22 09:0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도 재미 있어서 단숨에 읽어 내렸습니다.
    역시나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라는게 드라마의 영원한 주제 인가 봅니다.

    뜻깊은 휴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16 신고 address edit/delete

      사랑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주제이지요.
      휴일 행복하게 지내세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omentor BlogIcon 엄마멘토 2009.08.22 09:52 address edit/delete reply

    책의 내용을 훨씬 재미있고 감칠맛 나게 재구성 해주셔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가왕 송흥록이 녹음기술이 없던 시대에 태어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죠. 그 귀곡성은 대체 어땠을지...너무너무 궁금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1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그 분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한스럽습니다.
      너무도 이름답고 훌륭한 유산들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6. 바보 2009.08.22 10:05 address edit/delete reply

    작은 딸아이가 동방신기의 열렬한 팬이죠. 동방신기의 가사를 읽기 위해서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하고 지금은 다른 팬들을 위해 읽는 법과 뜻을 정리해서 주곤합니다. 외국에 있으면서 그렇게 가르치려고 해도 안되었던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한 동방신기를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가수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19 신고 address edit/delete

      따님이 동방신기의 팬이군요.
      예나 지금이나 노래의 힘은 위대한 듯 합니다.

  7. 자작자수 2009.08.22 10:56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침에 읽을 거리를 찾다가 들렸습니다. 얼마전 '암자'라는 프로그램에 나오신 것을 봤는데, 인간극장에서 잠시 또 나오시더군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가야랑이라는 쌍둥이 자매를 인터넷으로 접하다가 방송이 나오길래 관심있게 봤습니다. 도중에 전주축제준비하시는 모습이 잠깐 나왔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명곤님도 좋은 글로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것을 보면 역시 명창이신 모양입니다.

    혹시 '맹렬하다'라는 단어가 저 '맹렬'이라는 여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20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의 범죄 기록을 많이 보셨네요.ㅎㅎㅎ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맹렬이란 단어가 맹렬이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자신이 없네요.

  8. 미루나무그늘 2009.08.22 11:45 address edit/delete reply

    제 오빠이름이 '명렬'ㅎ
    성격한번 불같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맹렬씨..
    사랑은 질투가 없으면 사랑이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란 생각을 이즈음 합니다.
    명창들의 사연속엔 꼭 이토록 강한 사랑이야기가 들어가는군요.
    잘 알지는 못하는 분야이나 어깨 들썩여지는 부분이고 보면 우리네 정서는 역시
    국악이지 싶습니다.
    잘 읽고갑니다. 건강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22 신고 address edit/delete

      국악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의외로 강렬하고 감동적인 얘기들이 많이 있답니다.

  9.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2 13:3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0. Favicon of https://lilac02.tistory.com BlogIcon 孤雲詩仙 2009.08.22 21:3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또 한편의 재밌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역시 사랑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경지에 다다를 수 없나봅니다.
    명창들의 소리가 이제는 낯설지 않을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23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제 명창들의 노래를 직접 즐겨 보세요. 행복한 휴일되세요.^^

  11. 곤이엄마 2009.08.23 08:00 address edit/delete reply

    ㅎㅎㅎ 정말 불꽃같은 사랑이네요...^^
    전 명창이 어떤건지 잘모르지먄 어떤소리를 들으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분이 있읍니다 귀가 시원해지면서 마음까지 덩달아 편안해지는 소리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 그분 성함이 생각은 안나도 자그마한 체구에 야무져보이는 분이셨는데 안타깝게도 그분 성함이 생각이 안나는군요 .. 다시 듣고 싶은데.. 아 오정숙님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0:24 신고 address edit/delete

      오정숙 명창도 한 시대를 울리고 웃기던 분이었지요.
      행복한 휴일되세요^^

  12. 롤링스톤즈 2009.08.23 13:14 address edit/delete reply

    우리 전통문화에 영화나 소설이 될 만한 에피소드가 참으로 많군요.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는 할머니처럼 선생님의 구성진 이야기는 격식이 없고 참 다정스럽습니다.

    어느 기고가께선 현대 젊은이들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르는 세대라고 말씀하시던데,
    우리 세대야말로 사실은 그 어느 세대보다 더 감동받고 싶어하고 분노의 감정이 있는, 하지만 거대한 문화홍수와 구닥다리스런 교육제도하에 분별력을 잃어버린 한편으론 가엾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듭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된 사회에서 많은 득을 누리고 성장했고 그래서 문화적 수준은 높아졌지만, 반면 정체성의 상실도 있었다고 봅니다. 내가 어디서 왔고 누구인지는 모르는 거지요.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해 알려주는 교육자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분노해야 될 명백한 사건 앞에서 분노할 줄 모르고, 한데 뭉쳐 기뻐 날뛰는 상황에도 무던하기만한 부류들의 수가 적지않음을 동시대를 사는 젊은이로써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당장 제 또래들만 해도 그래요.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감동하거나 분노할 줄을 모르는 거지요. 어느 땐 그 무리 속에서 위기의식마저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젊은이들인데 왜 심장이 뜨겁지 않겠으며, 어찌 젊은 눈빛이 무던하기만 하겠습니까...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알맹이없는 교육제도 안에서 깎이고 닳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밖을 나서면 뭔가 세련되고 신명나는 문화들이 넘쳐나는데 학교 담장안에서는 아직도 구닥다리스런 주입식 교육에 머물러 있으니, 교육제도 안과 밖의 이질감이 그들로 하여금 혼돈을 가져다 주는 것이지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들, 그들을 자랑스럽게 또는 분노하게 할 수 있는 역사가 교과서에 실리고, 그들의 불타는 심장을 부채질 해주는 교육이 있었더라도 그들이 분노와 열정 앞에 면역성이 생겼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에게 애정이 없는, 진정성 없는 교육제도가 그들의 진정성마저 앗아간 거지요.

    쏟아지는 문화의 홍수속에서 정체성과 주체의식을 길러주는 것, 인성교육과 더불어 우리 교육의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렇듯 재미있고 신명나는 우리의 전통이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로 하여금 물려지고 보존되어 질 것이고, 나아가 더이상의 탈정치화도 막을 수 있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교과서, 들려주는 선생님,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으면 싶습니다.

    선생님의 글, 매번 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답니다. 읽으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새로운 열정에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 소리가 과거엔 그리 호황을 누렸는데 지금은 낡고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저만큼 밀려나 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터져서 선생님께 두서없이 떠들어댔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3 13:45 신고 address edit/delete

      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엄청나게 화려한 서구의 문물과 구닥다리 주입식 교육 제도 속에서 시들어가는 우리 젊은이들..그들을 울게 하고 웃게 하고 분노케 하고 열광케 하는 올바른 문화콘텐츠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남은 인생 저의 부족한 능력을 그 일에 몸바쳐 일하겠다는 저의 꿈에 큰 힘을 주신 글 감사합니다.

  13. marine11 2009.10.08 20:09 address edit/delete reply

    국어 교사를 희망하는 학생입니다.
    작년에 구비문학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이 판소리 명창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글 속의 송흥록부터 현재 살아계신 분들까지요
    송흥록의 자손들이 그 이후로 가업을 이었고
    송흥록의 명성을 따르진 못 하지만 명창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새삼 그 자손들이 맹렬이와 송흥록의 핏줄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네요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10.08 20:29 신고 address edit/delete

      송흥록, 송우룡, 송만갑 등은 송씨 집안에서 배출한 동편제의 명창들입니다.
      그 분들이 맹렬의 자손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뭔가 관계는 있지 않겠나 싶군요.






며칠 전에 올린 <평생 인연 맺어진 첫 직장「뿌리깊은 나무」>란 글 중에 박록주 명창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를 소개했었습니다.

그때 이미 80세가 넘은 나이로 병마와 싸우고 계셨던 노명창은 제자의 발표 무대에 격려사를 하기 위해 제자들의 부축을 받고 무대 위로 올라섰습니다.

“내가 소리를 한지 한 60년이 되어 가는데, 이제 조금 귀가 뚫리려 하니까 숨도 차고 곧 골로 갑니다.”

하시더니 지팡이를 짚고 앞줄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죽 바라보면서 농담을 했습니다.

“내가 어려서 소리할 때 자주 오셨던 저 분들도, 인제 나와 함께 골로 가게 생겼네요.”

그러자 앞에 앉은 노인 몇 분이 “얼씨구!”하면서 소리쳤습니다.

“지금 내가 숨도 차고 목도 안 나오고 해서 소리를 하러 나온 건 아니지마는, 우리 제자 길을 닦아주기 위해서 잠깐 단가 한 마디 하고 내려갑니다.”

관객의 박수와 함께 노명창의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백발이 섧고 섧다
백발이 섧고 섧네
나도 어제 청춘이더니
오늘 백발 한심하다



그 이야기를 쓰면서 박록주 명창에 대해 따로 포스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박록주 명창은 남달리 비극적인 개인사와, 『봄봄』, 『동백꽃』의 작가인 김유정이 격정적인 사랑을 바친 여인으로서 유명한 일화를 남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박록주(朴綠珠) 명창은 1905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 박중근은 집안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노름과 술로 세월을 보낸 한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12세 때, 고향에 판소리나 춤이나 줄타기 등의 갖가지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순회 공연단체인 <협률사>가 들어왔습니다. 

박록주의 부친이 그 공연 중 판소리 명창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돈도 제일 많이 버는 것을 보고서, 평소 목소리가 우렁차고 노래를 잘 부르는 박록주를 명창으로 길러 돈벌이시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손에 억지로 이끌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박기홍 명창의 문하에 들어가서 소리 공부를 한
 박록주는 얼마 뒤부터 경상도 곳곳에 불려다니며 판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생기는 족족 그의 부친이 놀음값과 술값으로 써버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다시 부친의 손에 끌려 대구로 가서 기생 수업을 받습니다. 당시 그녀는 소녀 명창으로 이름이 알려져서 하룻밤 초청료로 10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쌀 한 가마니가 50전 할 때의 일이니 대단한 수입이었죠. 

그 뒤 17세 되던 1921년에 원산 명창대회에서 만난 남백우와 혼인을 하여 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독립지사였다는 남백우는 박록주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대의 목소리는 만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며 그녀를 놓아주었다고 합니다.

1922년, 박록주는 서울로 가서 당대 최고의 명창인 송만갑에게 판소리를 배웠습니다. 그 이후 눈부신 활동을 하며 전성기를 보내던 1928년 봄, 그녀는 '운명의 스토커' 김유정을 만나게 됩니다.
 



김유정이 박록주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의 휘문고등학교인 휘문고보 4학년 때였습니다. 그들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박록주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유정은 박록주의 공연에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사랑을 호소하는 편지를 띄웠으나 번번이 무시되었습니다. 그러자 김유정의 연정은 점점 불타 오르기 시적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집에 찾아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호소하였습니다.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혈서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패기와 열정에 넘치는 구애이기는 하였으나, 제가 보기에도 정상을 넘어 선 그의 구애 방식은 여성의 사랑을 얻기엔 너무도 일방적이고 서투른 것이었다고 보여집니다.

게다가 김유정보다 3살이나 나이도 많고 기생 신분이었던 박록주는 끝끝내 그의 사랑을 거절합니다. 박록주 명창은 늘그막의 인터뷰에서 막무가내로 집에 찾아 와서 사랑을 고백하는 김유정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무슨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편지질이오?
학생이 기생과 무슨 연애를 하자는 말이오?
학생이 이러면 나도 가슴이 아프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

(박록주 명창의 회상기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에서)



김유정은 1908년 지금의 강원도 춘천군 신동면 증리인 실레마을에서 부친 김춘식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내노라 하는 부농이었지만 유정이
7살 되던 해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뜨고, 그 2년 뒤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가장이 된 형은 잦은 난봉과 가정 폭력을 서슴지 않아 잡안의 재산은 탕진되고, 유정은 갈 곳도 없어 삼촌에게 얹혀 지내게 되는데,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던 청춘 시절에 박록주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하루도 빼지 않고 보낸 그의 편지는 되돌려지거나 찢어지거나 불태워지고, 사랑을 얻지 못한 그는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집니다.

1929년 3월, 휘문고보를 졸업한 김유정은 연희 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지만 두 달 여만에 제명 당하고 맙니다. 그 무렵에도 그는 박록주에게 계속 연애편지를 보내고, 끈질긴 구애를 계속합니다.

김유정은 혈서와 협박과 애원으로 가득한 거의 스토커에 가까운 열렬한 구애를 3년 동안이나 계속합니다. 그러나 박록주는 끝끝내 김유정을 차갑게 대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당시의 조선극장 지배인 신모씨와 사랑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1929년 3월, 박록주는 여전히 자신을 갈취하며 괴롭히는 부친에 대한 원망과, 자신을 배신한 신씨와의 애정관계를 비관하여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김유정 못지 않게 박록주도 외로움과 격정에 시달리는 성격이었던 모양입니다. 

박록주가 자살에서 깨어나니 김유정이 병실에서 머릿맡을 지키고 있었다는군요. 그렇다고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1930년 여름, 마침내 김유정은 박록주의 사랑을 얻는 것을 포기하고 실레마을로 돌아옵니다. 얼마 뒤 1931년에 박록주는 경제적으로 그녀를 후원하는 김종익과 재혼하였습니다.

사랑을 잃은 김유정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한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폐결핵 등의 병을 얻은 뒤, 병과 가난에 시달리며 
소설쓰기에 매진합니다. 

드디어 1935년 『따라지 목숨』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1등으로 당선되고 『노다지』가 중앙일보에 가작으로 당선된 뒤
,『봄봄』,『금따는 콩밭』,『만무방』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1936년에도『동백꽃』,『봄과 따라지』,『슬픈 이야기』등을 연이어 발표하여 뛰어난 소설가로 유명해지고, 이상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 교류도 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19
37년 3월 29일 김유정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삼십여 편의 작품을 남겨 놓은 채, 아내도 없고 슬하의 자식도 없이 홀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박록주는 해방 후 김소희, 박귀희 등의 여류 명창들과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6. 25 때는 월북을 강요 당하기도 했으며, 전쟁통에 한쪽 눈을 실명하여 그 뒤로 검은 안경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녀는 음반 취입이나 무대 공연 등으로 많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돈이 생기면 모두 써버리는 성격 탓에,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
늑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렬했던 그녀의 눈빛도 차츰 빛을 잃어갔습니다. 

남편도 없고 슬하의 자식도 없이 외롭고 가난하게 살며
셋방을 전전하던 박록주는 1979년 면목동의 단칸방에서 홀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유정이 죽은 뒤 남겨진 일기장에는 '녹주, 너를 사랑한다!' 혈서가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김유정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자신을 잊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은 박록주 명창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아마 내가 그이에게 너무 박절하게 대했던 벌을 늦게 받아서 평생 가난하고 기를 거 없이 살았지 않았나 싶소.

그이가 그렇게 훌륭한 소설가인줄 알았더라면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게 해 줄 것을 그랬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의 한 여인에 대한 집요한 짝사랑!

이승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홀로 쓸쓸하게' 세상을 뜬 두 분의 죽음은 너무도 닮았습니다. 아마도 저승에서 뒤늦은 사랑을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고 계시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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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8.12 06: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두 분의 애뜻한 그리움은 저 세상에서 아름답게 그려질 것 같네요..
    선배님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29 신고 address edit/delete

      두 분의 사랑을 우리 함께 빌어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2.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2 07:43 address edit/delete reply

    김유정은 소설가로서 소설같은 사랑과 삶을 살다 갔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29 신고 address edit/delete

      너무도 짧고 불꽃 같은 삶이었지요.

  3. Favicon of https://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2009.08.12 09:1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늘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특히 박록주에 관한 세세한 부분은 오늘 처음 알게 된듯 합니다.... 절절함이 느껴지는 글 잘 보고 갑니다...행복한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34 신고 address edit/delete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쉬운, 너무도 열렬한 사랑이야기입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4.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8.12 09:3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오늘 글이 강한 내용이었군요...이루지못한 사랑.....

    너무 절감하게 봤답니다..

    이거 새로운 글 올라올때마다 선생님글 빠지고 있습니다..^^

    비 많이 온다는데...건강하시고..다음에 또 무슨 글이 올라올까 기대 잔득하고 갑니다.감사해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35 신고 address edit/delete

      폭우가 쏟아지더니 오늘은 너무도 맑은 날씨네요. 마치 김유정의 사랑처럼 격정적인 날씨군요.

  5. 아이린 2009.08.12 10:18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글 잘 봤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김유정의 고향은 '중리'가 아니라 '증리' 입니다.. 마을이 떡시루처럼 생겼다 하여 '떡시루 증' 자를 쓴 것 이구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36 신고 address edit/delete

      떡시루 증..이었군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바로 수정했습니다.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momentor BlogIcon 엄마멘토 2009.08.12 10:40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는 대강은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이렇게 유려한 문체로 정리해 주시니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입니다.
    사실 박록주 명창은 당시에 소녀시대보다 더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분인데, 연하의 문학청년이 쉽사리 눈에 들지 않았을 거라고 감히 짐작만 해 봅니다만....
    두 분이 맺어졌다면 서로의 예술혼이 어우러져 더 멋진 작품과 노래들이 나오지 않았을까....세기의 커플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운 생각을 감출 수는 없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37 신고 address edit/delete

      당대 인기 최고의 여류 명창이었으니 가난한 문학청년이 눈에 안들어왔겠지요. 두 분의 맺어지지 못한 사랑이 안타깝습니다.

  7. 삼각도형 2009.08.12 10:48 address edit/delete reply

    재밌게 잘읽었어요. 옛날에도 그렇게 열정적인 사랑이 있었네요
    김유정의 소설은 다 읽었었는데, 그분께 그런 사랑의 깊은 한이 있는줄은 몰랐네요.
    금지된 사랑이 더 절절하고 아름답기도하죠. 두분다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전에는 오히려 요즘보다 더 열렬하고 지독한 사랑을 하셨던 것 같아요.

  8. 어중이 2009.08.12 10:52 address edit/delete reply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 분입니다. 그 짧은 연배에 그런 글들을 쓰시다니..이분 처럼 자신의 소설에 자신의 삶과 혼을 담아내신 분도 다시 없을듯..생애에 격하게 짝사랑 한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분이 이분이셨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 바로 그 사랑이 박록주 명창이었답니다.

  9. Favicon of https://blue-paper.tistory.com BlogIcon blue paper 2009.08.12 11:2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역시 대문인은 사랑도 남다르시네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0 신고 address edit/delete

      너무도 격렬하고 짧은 사랑이었지요.

  10. 롤링스톤즈 2009.08.12 11:33 address edit/delete reply

    두 분 모두, 어쩜 저리 소설같은 생을 살다 가셨을까요.
    김유정님께서 첫 눈에 반한 여자에게 혈서까지 바치는, 무모하리만큼 강렬한 애정공세를 하셨다는 사실이 상당히 의외적으로 느껴져요.
    세월을 돌이켜보며 넋두리하는 늙은 여류명창의 독백이, 이 젊은 가슴에도 기가 막히게 울려오네요.
    가난과 전쟁에 청춘을 저당잡히고도 분연 바지런히 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삶은 누구랄 것 없이 참 감명깊어요. 그 한 뭉텅이가 주옥같은 소리와 소설을 낳고 역사를 이루었으니 어찌 불우했다고만 할 수 있겠어요.
    박록주 명창과 소설가 김유정의 이야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워낙 첫 눈에 반할 만큼 미인이시로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는 돌아가시기 전의 늙은 모습만 보고도 반했으니, 롤링스톤즈님도 그 시대 살으셨더라면 박록주 명창에게 사정없이 반했을 겁니다. 그 분들의 삶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느낌을 던져 줍니다.

  1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2 14:4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짝사랑이란 집착할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쉽군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3 신고 address edit/delete

      누구나 짝사랑, 첫사랑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나나봐요.

  12. 고동현 2009.08.12 15:17 address edit/delete reply

    재밋게 읽었습니다.. 마지막부분 감동적이네요 손이라도 잡아볼걸..ㅠㅠ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5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말씀 속에 손도 못 잡고 그토록 사랑을 바친 김유정의 슬픔이 묻어 있네요.

  13. Favicon of http://www.indianabobs.com BlogIcon 인디아나밥스 2009.08.12 21:4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소설가 김유정 선생과 박록주 명창의 이루어지지 못한 애절한 사랑이야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학창시절에 읽은 '봄봄' 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29살에 요절한 김유정 선생의 재능과 슬픈 외사랑이 안타깝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5 신고 address edit/delete

      봄봄, 동백꽃 정말 주옥 같은 작품들이지요.

  14. 바보 2009.08.12 22:05 address edit/delete reply

    참으로 한국다운 사랑이야기군요. 문학학생과 명창과의 관계...
    이런 이야기는 진작에 소설화해서 영화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서편제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6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에게 좋은 자극을 주시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 이야기를 뮤지컬이나 영화로 만들 구상을 하는 중입니다.

  15. Favicon of https://lilac02.tistory.com BlogIcon 孤雲詩仙 2009.08.12 23:5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김유정님의 박록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주 애절했군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랬던가요?
    인연맺기는 쉬우나 사랑은 사람의 의지대로 되는게 아닌가봐요.
    예나 지금이나 애절한 사랑은 우리 삶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이루어지지 않는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계속되겠지요?

  16. Favicon of http://http://blog.daum.net/hillsidefarm BlogIcon 양연순 2009.08.13 06:13 address edit/delete reply

    반갑습니다^^*!
    김유정님과 박록주님의 인연은 기구하기도 하네요!
    전문블로거를 뵈니 기쁘기도 하고
    제 자신이 한없이 밉기도 하구 그렇습니다!
    컴공부 더해야지 싶은데...
    농사일을 소홀이 해서는 안된답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 하는 두번째 일 이라서 열심히 해 보고자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3 10:49 신고 address edit/delete

      농사에 땀 흘리고 계시는군요. 컴퓨터와 블로그도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17. O.M.S 2009.08.14 00:17 address edit/delete reply

    ㅇㅇ!!!
    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는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땅파다가 뜻밖의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예요...
    인고의 세월이 가져다 귀한 작품과 함께 그 뒷이야기를 이리 들어보니 너무나도
    새삼스럽게 생각되어집니다. 그들의 사랑 성사여부와 상관없이 한시대를 자신들의 열정에 심취하여 올인해서 살아낸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한결같이 사랑하신 김유정님이나 한결같이 마다하신 박록주님이나 모두들 대단하신 분들같습니다...

    덧붙여 선생님의 이야기보따리는 아라비안나이트보다도 더 많은 날들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4 07:12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 이야기보따리를 좋아해주시니 기쁘네요.
      앞으로도 하나씩 하나씩 풀어 볼께요.

  18. Favicon of http://blog2.cctday.co.kr BlogIcon 황금깃털 2009.08.14 01:01 address edit/delete reply

    드라마틱한 삶이 었군요.
    명창과 작가의 삶도 삶이지만
    선생님의 통해 듣는 이야기가 아주 맛깔납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연상돼
    마치 옆에서 이야기 해주시는듯한 착각이 듭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4 07:13 신고 address edit/delete

      요즘 저도 블로그를 텅해
      이야기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19. 미루나무그늘 2009.08.22 11:39 address edit/delete reply

    가끔 도둑고양이처럼 선생님의 글들을 읽습니다.
    워낙 유명한 사랑이야기인지라 저도 알고는 있었지만 세세하게는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입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명창과 작가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더 애닮은거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진정한 연애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고들 하는데 이런 사랑이야기가 넘 좋은 거 보면 저도 별 수 없이 이젠 중년인가봅니다. 어수선한 시절입니다. 건강하세요. 언제고 다시 도둑고양이처럼 다녀가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22 12:15 신고 address edit/delete

      잘 알고 계신 이야기였군요.
      예나 지금이나 열정적인 사랑은 남을 감동시키나 봅니다.
      소리없이 다녀 가셔도 다녀 가신 자취를 느끼도록 하겠습니다. 발자욱을 남겨주시면 더욱 좋구요.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이나 문학이나 미술 등 예술에 심취하는 취향이 너무도 강했습니다.

그런 저를 아버지는 엄하게 대하셨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저에 대한 애정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동안 저에게 꾸지람이나 욕설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입가에 떠도는 따뜻한 미소가 어머니의 전매 특허였습니다.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연극에 미쳐 술독에 빠져 지내고, 방탕한(?) 생활 끝에 병에 걸려 집에 돌아왔을 때도 부모님은 한 마디도 나무라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셨습니다.

또 휴양하던 병자가 판소리에 미쳐서 노래를 불러대니 참다못한 옆집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댁의 아드님이 무당될려고 저런 괴상한 노래를 부르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런대도 어머니는 빙긋 웃으시며 “우리 아들이 노래부르는 걸 좋아해요.” 하실 뿐이었습니다. 제가 기분이 나빠 한동안 판소리를 안 부르니까 어느 날 어머니는 “너 왜 무당 소리 안하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 소리가 듣기 좋아요?”하고 물으니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하는 소리니 듣기 좋지.”하고 빙긋 웃으셨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배화여고 독어교사를 하던 중「뻐꾹 뻑 뻐꾹」이란 연극에서 거지노인 역을 했는데, 그게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보여드린 제 무대 연기였습니다.



공연을 보시고 돌아간 어머니께 어땠냐고 물으니까 “응, 영락없이 네 아버지 같더라. 그런데 네 이모가 거지 노릇은 다음에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하며 웃으셨습니다.

아들이 대학 교수가 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는 제가 직장마저 그만 둔 뒤 연극을 하겠다고 하자 처음엔 실망하셨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이해를 하고 신문에 연극이나 국악 기사가 나면 오려 두었다가 제 책상에 슬며시 놓아주시곤 했습니다. 

주변의 일가친척들이 오히려 왜 아들을 말리지 않느냐고 어머니를 비난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대답은 언제나 똑 같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야지요.”

부모님은 그렇게 아들을 믿은 대가로 혹독한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힘들게 사시다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결혼하는 모습도 보지 못하시고, 「서편제」로 유명해지는 기쁨도 누리지 못하시고, 무명 배우의 부모로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두 분 다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제가 돈벌이도 안 되고 독재 정권 밑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진보적 연극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심하게 반대했더라면, 저는 연극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언제나 저를 믿어주고, 든든한 후원자로서 존재하셨습니다. 전 두 분이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저의 '수호천사'가 되어 지켜주고 계실거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예술의 황량한 들판에서 버텨온 것은 오로지 부모님의 믿음과 사랑 덕분입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큰 ‘빽’이 되는지 실감합니다. 좌절하고 불안하고 절망에 빠질 때마다 저를 지탱해주는 것은 저 세상에서도 저를 응원하는 '수호천사'가 계시다는 든든함입니다.

왜 저의 부모님은 언제나 제 편이었을까요?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통에 그걸 여쭤보지 못한 게 한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부모님에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연극을 한다고 부모님을 실망시켰을 때 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잃지 않으셨느냐고.

언젠가는 제 꿈에 나타나 가르쳐주시겠지요.

그 가르침을 이어 받아 저도 우리 아이들의 ‘빽’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저 세상에 가서도 아이들과 이 세상의 수많은 외롭고 소외 당한 이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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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7.13 07:37 address edit/delete reply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희생...
    당신들께 돌려드릴 도리가 없어,
    자식에게 돌려주는 것도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0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의 사랑은 갚을 길이 없으니 그걸 자식에게 돌려 줄 길밖에 없겠지요?

  2. Favicon of http://blog.daum.net/pssyyt BlogIcon 무터킨더 2009.07.13 08:27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도 감동 만땅입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주신 님의 수호천사,
    그런 부모님이 있었기에 오늘의
    김명곤님이 있었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1 신고 address edit/delete

      모든 부모님이 저마다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겠지만 제게 부모님은 너무도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3. Favicon of https://chiwoonara.tistory.com BlogIcon 붉은방패 2009.07.13 09:4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제 어머님하고는 좀 많이 다르시네요^^
    전 어렸을 때 어머님께 무지하게 맞고 자랐습니다. 욕도 많이 들었지요.저희 어머님이 좀 다혈질 이시기도 했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무지하게 개구장이 였었거든요.
    초등학교 때에는 토요일 오후 비가오는데도 전주교대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책가방을 잃어 버려서 집에서 쫒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머님도 나이를 드셔서 기운이 많이 없으신데,전 그게 더 서글픕니다.
    예전처럼 저에게 욕도 하시고 빗자루를 드시는 모습이 좀더 오래 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2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붉은 방패님의 부모님도 저희 부모님 못지 않게 아들을 사랑하셨나 봅니다.

  4. Favicon of https://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2009.07.13 09:5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부모님...아버지....어머니...라는 말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지난 주말에도 고향의 팔순 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하루하루 야위시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아침 이글을 보니 눈물이 나려합니다....그렇게 믿어주시던 수호천사께서 모두 일찍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부모님의 믿음과 사랑에 보답한 님의 진솔함에 마음 젖어 갑니다...행복한 한주 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4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더군요.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고 더 찾아뵈는 게 보답하는 길이지요.

  5.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7.13 11:0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아침에도 너무 좋은글 읽었습니다..
    저도 제 딸래미에게 수호천사가 될수 있을지..항상 고민스럽네요..
    어떻게 하면 ....재대로 그리고 바르게 커서 ..원하는 삶을 살수 있게 해줄 것인가....덜컥 겁부터나는군요.
    즐거운 한주 되시구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제 아이들에게 사랑을 제대로 베풀지 못해 늘 부끄럽답니다.

  6. Favicon of http://blue-paper.tistory.com BlogIcon blue paper 2009.07.13 11:11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께서도 많은 분들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주시길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정말 그럴 수 있도록 매일매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7. 미인 2009.07.13 18:03 address edit/delete reply

    김명곤 선생님..

    언니가 배화여고 3학년일 때 새로 오신 독어 선생님이 연출하신다는 연극을 보러 갔어요. 언니는 불어반이고 고3이라 선생님한테 배울 일이 없었지만 워낙 독어선생님이 인기가 있어 저까지도 성함을 알고 있었죠. 우리 읍내.. 연극의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공연 뒤 학생들이 선생님을 불러내자 잠깐 나오셔서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 하고 들어가시는 약간은 초췌하고 약간은 낭만적인 모습이 아, 정말 수많은 여학생들 마음을 사로잡는 듯하더군요. 그 이후 대학 와서 선생님이 공연하시는 연극은 많이 찾아가 보았어요. 어떤 땐 문앞에 계시기도 했는데 가서 인사를 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옆눈으로 살짝 훔쳐보고 말곤 했지요.

    우연히 알게 된 블로그에 와서 여러 글을 읽어보았는데, 정말 글이 따뜻하고 너무나 좋습니다. 먼 발치에서 뵈었던 선생님은 무표정하시고 좀 차가워 보여서 접근할 수 없었는데 말입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6 신고 address edit/delete

      배화여고와의 인연이 있으시군요. 반갑습니다. 제 젊은 시절의 모습을 님의 글을 통해 보니 무척 새롭게 느껴지네요.

  8. Favicon of http://momentor.pe.kr BlogIcon 엄마멘토 2009.07.14 00:30 address edit/delete reply

    어린 나이지만 저도 부모랍시고 눈시울이 붉어지네요...역시 최고의 부모는 아이에게 든든한 '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었다니....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서편제로 유명해지신 것도 그렇지만, 그 시절 부모님이시라면 뭐니뭐니해도 아드님 장관 된 것이 엄청난 자랑거리였을텐데 말이지요. (특히나 참여정부의 장관이라면요. ^^)
    아마 선생님 부모님께는 아드님이 천사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제나 기쁨을 안겨주는 천사이기에 싫은 소리 하나 안 하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것이라 믿어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7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 한쪽이 시려 옵니다. 제가 부모님께 천사였을 수도 있다는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9. Favicon of http://blog.daum.net/sunup-ok BlogIcon O.M.S 2009.07.14 01:05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음 짠하네요.....대단하신 부모님이십니다. 제가 엄마가 되고보니 예사로 보아지지 않고 자꾸 비교가 되어져 마음 무거워지네요...
    제겐 아들이 되려 제 수호천사가 되지 싶어 못내 부끄럽습니다..

    저도 엄마를 여읜지 이제 2년여가 되어가고 있어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렇게 일찍, 좋은 모습도 다 보이지 못하고 보내드린 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아플지 너무도 선연(鮮然)합니다..

    가셨어도 여전히 님의 수호천사가 되어주시고 계신게 분명합니다.
    먼 장관님으로 지나버릴 수 있었는데 이렇게 친근한 이웃이 되도록 지켜 주신분도
    다 부모님이신거 같아 특별한 감사를 올려야할 것 같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08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머님 여의신 지 2년밖에 안되니 얼마나 마음 한 구석이 시리겠어요. 그 사랑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수 밖에요.

  10. Favicon of https://lalawin.com BlogIcon 라라윈 2009.07.14 01:5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남들이 뭐라 하든... 자녀가 하는 일을 사랑으로 지켜봐주시는 부모님의 사랑만큼
    든든한 빽이 없는 것 같아요.....
    든든한 수호천사로 훌륭한 선생님을 키워내신 부모님의 이야기에 정말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저도 배화여고를 나왔는데...
    순간 배화여고에서 선생님을 하셨다는 말씀에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08:10 신고 address edit/delete

      배화여고와의 인연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잠시지만 제 청춘을 함께 보낸 소녀들과 어머님의 죽음이 함께 한 시절이니까요.

  11. 곤이엄마 2009.07.14 22:51 address edit/delete reply

    제가 부모된 입장에서 봄 부모님은 우리에게 걱정을 하신것이지 실망은 안하셨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영원히요..우리에게 부모님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수 있었겠습니까...진정한 수호천사.. 부모님이 더욱 뵙고 싶군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14 23:05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은 자신의 삷보다도 자식들의 삶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는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저도 부모님이 보고 싶어지는군요. 꿈 속에서 만나 볼 수 있을까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sunup-ok BlogIcon O.M.S 2009.07.15 11:13 address edit/delete

      댓글을 보다보니,,자음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순간 마음이 확하고 짠해오네요...

      자신이 아닌 자식을 최우선으로 하시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께 은혜를 갚지도 못하고 그런 부모가 되어주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면목이 없을뿐이네요...




바람나그네님과 예스비™님으로부터 릴레이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추천 감사드립니다.

[편견타파 릴레이]
1. 자신의 직종이나 전공 때문에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를 써주세요.
2. 다음 주자 3분께 바톤을 넘겨주세요.
3. 마감기한은 7월 31일까지 입니다.




몇 년 전에 어느 도의 국악원 단원들이 고위관료들의 술자리나 잔치 자리에 수시로 불려 가 노래를 부른 사례를 폭로하며 “우리가 기생이냐?”고 공개적으로 항의한 일이 있었습니다.

때아닌 “기생 논쟁”에 많은 분들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관료들의 구시대적인 관행을 꾸짖었습니다. 그 일은 곧 마무리되어 잠잠해졌지만, 봉건사회의 천민 계급이었던 기생이나 광대들의 예술혼으로 이어져 온 전통 예술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이 사회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의 판소리 스승인 고 박초월 명창은 고향이 남원군 운봉면인데 전라도 쪽에서 공연 초청이 오면 다른 때보다 유난히 신경이 예민해지고 가기 싫어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서울에서는 인간문화재로 “선생님” 대접을 받고 있는데, 고향에만 가면 술자리에서 “초월이, 소리 한마디 해봐”하는 노인 팬들의 무례함에 속이 상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평소에도 술자리에서 함부로 소리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신신 당부하셨습니다. 그 가르침 때문에 저 역시 술자리에서 소리하는 일을 조심스럽게 여기게 되었지만, 지금껏 지내오는 동안 그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서편제> 이후 여러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소리 한 마디 청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아 곤혹스러운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노래를 청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분위기와 예의가 필요한 법인데, 너무도 쉽게 소리 한 마디를 요구할 때마다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곤 했습니다.  저같은 아마추어가 그럴진대 국악에 몸담고 정진하는 예술가들은 그런 경우를 얼마나 많이 겪겠어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성악가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청하기보다 판소리 명창에게 소리 한마디 청하는 걸 더 쉽게 생각합니다. 한술 더 떠서 민요나 판소리나 한국춤은 술자리에서 해야 진짜 맛이 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기생 점고를 통해 국악인을 희롱하는 변학도의 풍류 취향이 남아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도 종종 눈에 띕니다. 이런 시대 착오적인 풍류객들이 종종 예술가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어느 국악 콩쿨에서 입상한 젊은 여자 명창은 입상 축하 회식 자리에서 또 다시 판소리를 부르게 하고, 술시중까지 요구하는 주최사 사장님의 추태에 수치심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국악하는 여성이나 여가수나 여탈렌트나 여배우들을 술자리의 여흥을 돋우는 도우미나 하룻밤 잠자리 시중을 드는 고급 화류계 여성처럼 함부로 대하는 남성들의 편견 섞인 말이나 행동을 보면 저는 분노가 밀려 오곤 합니다. 장자연님의 자살에 대해 너무 마음이 아픈 것도 그런 편견이 젊은 여성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줬는지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전통 예술은 현대 대중 예술의 위세에 눌려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자기 나라의 전통 예술을 지켜 내기 위해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일본의 가부키나 중국의 경극, 인도의 전통극들은 일찍이 정부와 기업의 지원 아래 유럽이나 미국의 예술계에서 동양의 우수한 예술로 인정받고, 지금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또 유럽 각국도 미국 대중 문화에 대항해서 자국의 전통 예술을 살려 내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부유한 애호가들에 둘러싸인 서양의 전통 예술가들에 비해 소박한 촌로와 서민들에게 둘러싸인 이 나라 전통 예술의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  

많은 분들이 전통을 사랑하고 키워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생활에서 전통은 아직도 편견 속에서 소홀하게 취급당하고 있으며, 때로는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수많은 전통 예술인들은 슬픔을 느끼면서도 오로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힘겨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스타 가수들이나 스타 탤런트들이 받는 것과 같은 고액의 개런티도 아니고,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을 두배 세배 올려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편견없는 사랑과 관심입니다. 그들이 예술가로서 진정한 자부심을 느끼고, 예술가로서 성장할 희망을 갖도록 마음을 써 주는 주변의 깊은 배려인 것입니다.


 
 예스비™님을 통해 바톤이 넘어온 경로

 1. 라라윈님 : 독서릴레이 + 새 릴레이 시작, 편견타파 릴레이

 2. 해피아름드리님 : 편견을 버리세요~~편견타파 릴레이...

 3. 검도쉐프님 : [편견타파 릴레이] 편견을 버리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4. 용짱님 : [편견타파 릴레이] 용짱은 된장남?

 5. 생각하는 사람님 : [편견타파 릴레이]생각이 없는 생각하는사람?

 6. White Rain님 : [편견타파 릴레이]남자가 팩하면 별난 사람?

 7. 코로돼지님 : [편견타파 릴레이] 고양이 키우면 유산해?

 8. 영웅전쟁님 : [편견타파 릴레이] 왼손잡이의 편견에서 벗어나자

 9. 아이미슈님 : [편견타파 릴레이]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여자라고 어리다고 냅다 반말부터?

 10. leebok님 :  [편견타파릴레이]수학을 잘해야 과학자가 될수 있나요?

 11. 미국얄개님 :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은 바로 자기자신

 12. 예스비™님 : 편견타파 릴레이_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면서?
 



 
 바람나그네님을 통해 바톤이 넘어온 경로

 1. 라라윈님 : 독서릴레이 + 새 릴레이 시작, 편견타파 릴레이

 2. 해피아름드리님 : 편견을 버리세요~~편견타파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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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용짱님 : [편견타파 릴레이] 용짱은 된장남?

 5. 생각하는 사람님 : [편견타파 릴레이]생각이 없는 생각하는사람?

 6. 라이너스님 : 비싼 카메라 든 사람은 정말 사진을 잘 찍을까? [편견 타파 릴레이]

 7. 펨께님 : [편견타파 릴레이] 편견은 무지다.

 8. 바람나그네님 : [편견타파 릴레이] 편견은 배척을 낳는다.


 


제가 바톤을 넘기고 싶은 분을 3분씩 추천합니다.

바람나그네님 쪽
1. 쏭군님 : 저한테 독서릴레이 바톤을 주셨으니 빚을 갚아야죠?
2. 뷰라님 : 방송계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황금촉.
3. 정운현님 : 역사와 우리 사회에 대한 편견을 께뜨려주시는 분. 

예스비™님쪽
1. 곤이엄마님 : 시골 생활에 대한 도시인들의 편견을 깨뜨려 주시는 분.
2. 붉은방패님 :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분.
3. heraus님 : '생각은 자유'라는 소신으로 글을 쓰시는 분. 


 

TRACKBACK 8 AND COMMENT 24
  1. Favicon of https://labstal.tistory.com BlogIcon 뷰라 2009.07.02 06:1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앗 선생님 저 이미 바통을 받아서 썼답니다 ㅠ
    어떻게 해야하는지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2 06:59 신고 address edit/delete

      미안! 제가 확인도 안하고 추천을 했군요. 지금 다시 다른 분을 추천하자니 그 분에게 미안하고...그럼 전에 쓰신 글을 한 번 더 올려주시면 어떨까요? 아니면 2분만 추천하는 걸로 하든지 할께요. 모든 게 제 불찰입니다.

  2. Favicon of https://waarheid.tistory.com BlogIcon femke 2009.07.02 06:3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예술인에 대한 글 잘 읽었읍니다.

  3.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7.02 06: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앗 선배님 너무 좋은 글 입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이런 편견의 시각으로 조롱을 하는 사회군요..
    저도 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의 일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열이 올랐지만 지금도 글을 보며 부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예술을 하는 사람을 예술가로 대해주지 않고, 자신의 사적인 욕심에
    이용하는 사람은 정말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정말 반드시 고쳐져야 할 편견 같아요..!!
    뻔뻔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성격 나올 뻔 했어요 ;;

    선배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10 신고 address edit/delete

      님의 덕에 편견타파 릴레이에 참여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전통예술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4.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7.02 06:57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여자 연예인들의 사건(?)들을 대하며 이건 아닌데 - 했는데,
    전통 예술에 종사하는 분들도 고충이 있군요.

    문화 예술인 여러분 모두 자부심을 가지시고,
    건강하셔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14 신고 address edit/delete

      님의 응원에 감사합니다. 예술가들에게 사랑을!

  5.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7.02 07:59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봤습니다.
    저도 살짝 트랙백 엮어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14 신고 address edit/delete

      치과의사에 대한 편견을 다룬 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6.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7.02 09:2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편견타파 릴레이가 어디서 부터 시작한 것인지 추적은 해보지 않았지만 이 릴레이 너무 좋더군요.몰랐던 부분, 오해 했던 부분.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왜곡되게 알고 있었던 부분등등 여러 불로거 님을통하여 깨트릴 수 있다는 취지에 대공감 하였습니다.
    저도 숙제 한번 했거든요 ...^^
    우리 전통에 대해선 진짜 우리 전통을 무개념으로 살았는데.(우리가 우리것을 모르는데 진짜 우리께 맞나 의심도 되고..)이글과 포스팅글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혀끝에 대보는 맛이겟지만 )한번쯤 각성되는 느낌 아주 잘 보고 있어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16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이 릴레이에 참여하신 분들의 글을 통해 몰랐던 분야에 대한 편견을 많이 시정할 수 있었습니다. 참 좋은 릴레이더군요.

  7. Favicon of http://momentor.pe.kr BlogIcon 엄마멘토 2009.07.02 10:11 address edit/delete reply

    선생님의 글로 편견이 타파되면 정말 좋겠어요.
    제가 국악고등학교를 나왔는데...부전공 악기인 거문고를 들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닐 때면 온갖 이상한 말들이 뒤에서 나오는 걸 들어야 했지요. 가야금 전공하는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도 '전통문화'를 놓지 않고 단단히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지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17 신고 address edit/delete

      국악을 전공하셨으니 그 분들의 애환을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아시겠군요. 정말 국악인들이 편견없이 예술에 몰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 Favicon of https://moneyamoneya.tistory.com BlogIcon 머니야 머니야 2009.07.02 10:4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우핫..김명곤님 릴레이 받으셨군요..ㅋㅋㅋㅋ
    이웃을 돌아다니면서...김명곤님께 편견타파 릴레이 바톤을 넘기는 분들을 꽤 많이 본것 같아요....
    인기 넘 좋으신거 아니세요? ㅎㅎ
    날이 너무 더운데 건강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20 신고 address edit/delete

      독서 릴레이하고 편견타파 릴레이 두 번 참가했는데, 한 주제에 관한 블로거끼리의 각기 다른 견해를 볼 수도 있고, 여러 블로그들의 생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어서 참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즐거운 나날되세요^^

  9. Favicon of https://yesbe.tistory.com BlogIcon 예스비™ 2009.07.02 12: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버지, 시간내서 릴레이 받아주신 것 너무 감사해요.
    고향이 전주라서 그런지, 전통 문화는 친숙한 편이지요.
    정말 공감 가는 내용이네요.
    더군다나 고위층에서 이런다니...정말 어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화도 나고 그렇네요.
    편견릴레이 글 읽으면서 정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걸 느끼네요.
    아버지,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22 신고 address edit/delete

      릴레이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전통예술에 대한 아픔도 함께 나누게 되었고, 다른 분들의 글을 통해 나의 편견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따님의 하루하루, 행복하길 빌어요.

  10. Favicon of https://chiwoonara.tistory.com BlogIcon 붉은방패 2009.07.02 12: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었지요 ^^ 잔치집에 소리를 하러 갔는데 옆에와서 술을 따르라는...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정말 사람들이 예술,예술인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천박했던 것 같습니다.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모든 것에 너무 귀천을 따졌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전 걱정입니다 ㅜ.ㅜ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24 신고 address edit/delete

      예전에는 술집에서 소리꾼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서편제의 그런 일은 아주 흔했지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멋진 글 쓰실 거라 믿습니다.

  11. Favicon of https://pko0202.tistory.com BlogIcon 곤이엄마 2009.07.02 14:3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ㅎㅎ 선생님 전 정확한 의도를 몰라서 그냥 제이야기를 썻는데요..--;;;
    담에 시골 생활에 대해 쓰도록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친정에서 가까운 곳에 국악인 오갑순씨의 연구소가 있어서 어린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창도 배우고 춤에 북에 많은걸 배우고 난 젊은 아가씨들이 일본으로 가서 공연을 하고 돈을 버는걸 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80년대와 90년대초였지요
    그걸보며 느낀게 국악인이 제대루 대접받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상황을 아는 저로썬 위의 상황이 이해가 갑니다.....
    아이들이 맨처음 배워온 창으로 사랑가를 앞에서 부르고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뭘할까.....
    보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28 신고 address edit/delete

      외모나 겉모습에 대한 편견은 영혼의 참모습을 왜곡시키지요. 좋은 글 감사하구요. 오갑순님은 저도 아는 분인데 그쪽에서 활동하셨군요.

  12. Favicon of https://cansurvive.tistory.com BlogIcon 흰소를타고 2009.07.02 16:52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하... 지금도 저런 일이 일어나는군요 --;;
    정말 이번기회에 다른 분야와 직종의 고충과 편견을 많이 알게된것 같습니다
    기생으로 취급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

    다음 주자 분들도 친숙한 분들이 많이 보여서 기대가 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3 09:31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이 릴레이를 통해서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의 애로사항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참 좋은 릴레이입니다.





문화관광부 장관 직을 그만 둔지도 어느 덧 2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TV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연기자로, 연극 <밀키웨이>에서는 극작과 연출가로, 최근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위원장으로서 즐겁고 바쁘게 살고 있다.
 

내가「대왕 세종」에 출연하고 있을 때, 모 일간지에 동정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한동안 여기저기서 화제가 됐다.


김명곤 씨 “장관 껍데기 훌훌~ 다시 광대로”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 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김명곤(55·사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KBS 1TV 사극 ‘대왕 세종’(극본 윤선주·연출 김성근)에서 배우로 복귀한다. 1999년 자신이 연출한 연극 ‘유랑의 노래’에 출연한 지 8년 만이다.

그는 그동안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연기와 멀어졌다.김 전 장관은 ‘대왕 세종’에서 고려 황실의 후예로 조선 왕조의 전복을 꿈꾸는 옥환 역을 맡았다. 옥환은 어린 세종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로 초반 30회까지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가 대하 사극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일보 2007년 10월 6일자 기사 중 일부)

나는 대학교 다닐 때만해도 광대라고 하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코에 빨간 공을 붙인 서양의 삐에로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줄타기하는 광대를 처음 보았는데 그 광대가 줄에 올라서서 “이 줄타기가 옛날에는 화랑의 기예였소!.” 하길래 깜짝 놀랐다. "화랑이라면 신라 시대의 무사 집단인데 줄타기를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광대에 관한 기록을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그윽하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며 유교, 불교, 도교의 3교를 포함한 것으로 민중을 교화하는 것이다.

신라 시대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쓴 글이다. 이 글을 바탕으로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는 이렇게 썼다.
 

선가(仙家)는 신라의 국선 곧 '화랑'으로 보며, 그 시원은 삼한의 소도(蘇塗)의 제관으로 고구려의 '조의선인(鳥衣仙人)'이다.

이런 글들을 보니 고대사회에서 예술가들은 하늘에 국가적 제사를 지낼 때는 제관으로서 활동했고, 그들의 신분은 왕족이나 귀족에 속하는 상류계급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화랑들과 함께 예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천민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광대”라는 말은 고려시대에 서역에서 들어 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인데, 예술가를 지칭하는 단어인 광대가 화랭이, 재인 등의 용어와 뒤섞이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광대들은 기생, 무당, 중, 백정 등과 함께 천민계급으로 살아야 했다. 이들은 사대부나 평민들과 한 동네에서 살지도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자기들끼리 기예를 전수하면서,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를 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광대들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런 상소문을 썼다.

광대가 봄·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과 겨울이면 추수를 바라고 농촌으로 쏠리는데, 특히 창촌에서는 사당, 창기, 주파, 화랑, 악공들의 잡류들을 엄금해야 합니다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왕의 남자>는 이 무렵의 떠돌이 남사당 광대패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실학사상이 일어나고 평민 가사, 탈춤, 판소리 등의 가치를 양반들 중의 몇몇이 언급하게 되면서 광대들의 가치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고종과 대원군이 권력을 쥐었던 무렵에는 광대들이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잔치에 초대받고, 심지어 명인, 명창, 국창 등의 이름으로 궁궐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기예를 선보이며 많은 돈을 벌고 신분의 상승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후 광대들은 또 다시 천대받게 된다. 그 상황은 일제시대의 학자인 육당 최남선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조의 재인, 광대들은 적극적으로 특별한 권장을 입지 못하고, '무식무기력한 예인'들이 사회 최하층적 지위에서 구차히 존재하다 보니까 거기 쇠잔이 있을 뿐이지 발달이 없으며 저락이 거듭될 뿐이지 향상을 볼 수 없음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조건 하에 있다 보니까 '수 천 년을 하루같이' '몸을 놀리는 기술'과 '우스개 놀이'쯤에 그치고 드디어 다른 데 만한 순희곡적 생장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명 풍화에는 조금도 유익한 바가 없으니 이는 연희를 실시하는 자가 학문이 없어 '동양의 부패한 풍습'만 알 뿐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했던 <서편제>는 이 무렵의 떠돌이 판소리 광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나는 대학시절에 오페라나 이태리 민요나 가곡이나 뮤지컬이나 비틀즈 등의 서구음악의 열광적 팬이었고, 괴테나 세익스피어나 입센이나 도스토에프스키 등의 서구문학(독문학)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우연히 판소리를 알게 된 후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고향인 전주를 무지 싫어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흔적이 너무나 짙은 그 곳을 어서 떠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진학공부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한국을 빨리 떠나 독일로 유학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인간문화재인 박초월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전라도 말이 그렇게 다양한 표현과 영롱한 문학적 향기가 있는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핏줄에 대한 애정 곧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조상과 조국에 대한 사랑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전통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이 아니다. 전통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았던 삶의 내용과 형식 곧 그 분들의 삶의 자취이고 향기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세월이 지나면 전통의 계승자가 될 것이며, 언젠가는 전통 그 자체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에게 전통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또 창조의 열정에 불타게 하는 소중한 원천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무식무기력’한 광대들에게서 내 예술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나는 ‘수천 년을 하루같이’ ‘동양의 부패한 풍습'을 몸으로 전해 온 그들의 예술에 매혹 당하고 심취하고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들의 ‘몸을 놀리는 기술’ 속에서 삶의 깊은 애환과 감동을 보았고, 그들의 ‘우스개 놀이’ 속에서 예술적 창조의 편린을 보았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애인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 종족의 일원이 되고자 ‘광대’라는 말을 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연기, 연출, 극작, 경영, 행정에다가 연극, 영화, 국악, 방송 등 여러 분야에 간여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당신의 정체는 뭔가? 아마도 이게 그들의 질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나는 그 모든 것을 추구하는 광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럼 당신은 어떤 광대가 되고 싶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책에 나오는 발렌친 카그다예프라는 브리야트 족의 샤먼과 저자와의 대화로 대신하고자 한다.

질문 : 당신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답변 : 훌륭한, 혹은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좋은 샤먼이 되고 싶고,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샤먼이 지녀야 할 미덕이다.

반면 모든 악과 문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남을,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베풀어 주는 것이 사랑의 첩경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현자와 성자들이 설파했던 조화와 사랑, 이것의 실천자로서의 샤먼 곧 ‘무당’의 역할에 대한 바이칼 샤먼의 지혜로운 말이 ‘광대정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광대란 '넓은 광(廣), 큰 대(大)'라는 말 뜻 그대로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 아닐까?

 

TRACKBACK 1 AND COMMENT 24
  1. Favicon of http://blue-paper.tistory.com BlogIcon blue paper 2009.05.06 13:22 address edit/delete reply

    <서편제>,<태백산맥>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셨던 김명곤 님의 연기가 아직 기억에 남네요 ^^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 연기 많이 보여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무대에서, 화면에서 좋은 연기 보일 수 있길 저도 기원합니다.

  2. Favicon of http://blog.daum. 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09.05.06 13:30 address edit/delete reply

    김명곤님을 기억하는 것은 [서편제]에서 오정해의 스승으로 기억이 너무 강해서 장관을 하신것과 그외 직책은 신문에서 그냥 스쳐 읽었습니다.
    이순재선생님이 정치를 그만두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배우들 보다 더 많은 작품에 출연을 하고 그리고 존경을 받는 것이 참 좋습니다.
    저는 작품으로 김명곤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오정해씨가 김영임씨처럼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능 토크쇼에만 나오기에는 재능이 너무 아쉽습니다.
    우리 나라 영화계에는 존경받는 분이 너무 적습니다.
    이제 배우는 청소년이 바라는 우상을 떠나서 직접되고 싶은 직업 1위가 됏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계속 변화하신 김명곤님의 모습이 기대됍니다.
    전주는 제가 살고 싶은 도시 중에 하나 입니다. 시민들이 말소리가 조용하고,친절하고 음식은 전국 최고의 솜씨입니다.
    전북대에서 2주간 지나면서 (책 판매일입니다) 전주의 소박함과 양반 기질을 체험하고 왔습니다.
    댓글이 좀 길었습니다.
    봄날이 지나 갑니다. 행복하고 보람된 결과 계시길 기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2 신고 address edit/delete

      요즘은 소리축제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전주에 갑니다. 고향이지만 전주는 갈수록 매력을 느끼게 하는 도시랍니다.

  3. Favicon of https://magwi.tistory.com BlogIcon MAGWI 2009.05.06 17:0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넓을 광, 큰 대, 광활한 영혼을 가진 예술가...
    광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만드네요.
    좋아하셨던 비틀즈도 All You Need is Love 라고 했는데요.
    광대정신이라는 말도 인상깊네요.
    뜻깊은글 새겨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4 신고 address edit/delete

      비틀즈는 위대한 광대입니다. All you need is Love 한 번 들어봐야겠네요.

  4.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5.06 22:4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인 것 같습니다.
    광대정신으로 세상을 넓고 크게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문화예술계에도 존경받는 분이 있다는 것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57 신고 address edit/delete

      광대정신은 비단 예술가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분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게 제 평소 생각입니다.

  5. lkjlkj 2009.05.07 06:15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그에 글을 쓰시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손수 댓글도 달아주고 계시는군요. 늦었지만, 개설을 축하드립니다.
    한가지 염려 스러운것은, 인터넷에는 일부 못된 악플을 다는 사람들
    도 존재 한다는 사실이지요. 때로는 평온한 블로그가 어떤 이슈로
    인해서 벌집 쑤셔 놓은것처럼 난장판이 될수도 있습니다.
    욕설과 인신공격 댓글에는 노련한 기자들도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라 하지요. 전에 어느 대기자께서 인터넷에 고정 칼럼을 쓰셨는데
    , 아침마다 자신의 칼럼에 달린 댓글을 보고 한숨만 푹푹 쉬고, 괴로워
    하는걸 보고, 같은 동료 기자가 노기자를 위해서 댓글을 정화 해달라는
    글을 적기도 했었답니다.

    물론 다양한 분야에 경험이 많으신 김명곤 선생님이 이에 대처하시는
    법을 잘 아시겠지만, 그런 악성 댓글에 너무 괘념치 마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니면 제대로 혼내주셔도 괜찮습니다 ^^
    실제로 소설가 이외수씨나 스포츠 기자 민훈기씨는
    악성 댓글러를 고소한적이 있었죠.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10:27 신고 address edit/delete

      악플에 대한 염려와 배려 감사합니다. 아직까지는 경험이 없지만 적절하게 대처하겠습니다.

  6. Favicon of http://blog.daum.net/esplande12 BlogIcon Angella 2009.05.08 10:00 address edit/delete reply

    김명곤씨를 처음 뵌 건 월간지 <뿌리깊은나무>에서 였어요.
    한창기씨가 발행인이었구, 김형윤씨가 편집장으루 계시던 뿌리깊은나무,,,
    중학생이던 시절, 제가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길 바라셨던
    우리 국사담당선생님께서 제게 선물루 주신 책이 <숨어사는외톨박이>라는 책이었어요. 단행본 2권으루 된 책. 그리구, 이미 폐간된지 오래된 <뿌리깊은나무>를 구해 읽어보라구 하셨어요.
    헌책방을 다 뒤지구 뒤져서 그리구 1년이나 걸려서 <뿌리깊은나무> 60여권을 다 구할수 있었구, 다 읽었어요.
    <뿌리깊은나무>의 기자였던 김명곤님을 거기서 뵈었었어요.
    <숨어사는외톨박이>엔 선생님이 쓴 "쇠거간-소에 얹혀사는 팔자"라는 글이 있었지요,,,*^^*
    <숨어사는외톨박이>란 책은 아직두 제 서재에 있는 책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07 05:49 신고 address edit/delete

      뿌리깊은 나무-오랜만에 그리운 이름을 들어보네요. 세세한 기억에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s://yesbe.tistory.com BlogIcon 예스비™ 2009.05.11 17:4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광대란 것에 이런 뜻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저도 미술인으로써 어찌보면 광대나 다를바 없는데...
    역시 많이보고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11 19: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노래 부르는 사람은 소리 광대, 춤 추는 사람은 춤 광대,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 광대겠지요. 예전에는 환쟁이라고 비하했지만 지금은 어엿한 미술인 또는 화가로서 예술의 중요한 인재이신 거죠.

  8.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5.12 10:23 address edit/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서편제의 진도아리랑은 가끔 듣지만, 블로그는 오늘 처음 방문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12 14:18 신고 address edit/delete

      감사합니다. 서편제 듣듯이 가끔 찾아주세요.

  9. 2009.05.12 17:00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17 13:21 신고 address edit/delete

      실비단 안개님의 차 향기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음악이 잘 어울리는 사이트더군요. 저작권 문제는 궤념치 마시고 즐겨서 쓰시기 바랍니다.

  10. 김유진 2009.05.25 16:04 address edit/delete reply

    광대 중에서도 <외줄타는 광대> 인생이라는 줄에 걸리어 이리저리 흔들흔들 아슬아슬하게 줄을 용케 타면서 추락도 솟구침도 자유로이 구사하는 기술을 가진, 시대의 부정부패도 그 우스광스러운 몸짓과 언어로 무장한 서슬퍼런 칼날로 베어버리는..광대..제가 참 좋아하는 광대입니다.
    더불어 <샤먼>에 대한 이해도 <잡속무당>으로 전락해서 <무당>의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버린 현대에서 그 근본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심에 참 감사드립니다. 신라에 화랑이 있었다면,고구려에는 조의선사, 백제에는 싸울애비가 있었지요. 진정 우리 민족의 풍류를 제대로 물려받고 펼쳐주시는 김명곤님 사랑합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5.25 21:16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민족의 전통에 대해 사랑이 깊으신 분이군요. 저도 사랑해요!

  11. 가비 2009.05.29 12:26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 서편제, 어렷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봤었는데.. 지금은 두 분다 돌아가셨지만, 굉장히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군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12. 꿈꾸는 나날 2009.06.05 04:03 address edit/delete reply

    전 서편제에서 `이산저산`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서편제 방송해주더군요.
    이산저산 장면, 제 핸드폰에 동영상으로 찍어놓고 종종 보고있습니다.
    감사!!!!!
    전주에서 개봉 첫 날 보았었습니다.
    obs방송에 출연하셨을때도 반가웠었습니다.
    역시나 동영상 촬영...
    광대로 돌아오셨으니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5 08:58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이구, 부끄러운 범죄 기록을 가지고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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