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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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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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의 몸 속에 우연히 들어온 작은 모래알이 진주가 되듯이, 제 가슴속에서 진주처럼 자라고 있는 모래알 같은 추억이 있습니다.

판소리에 빠져 지내던 대학 졸업반 무렵, 어느 유명한 여성 무용수의 공연을 보러 친구와 함께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에 갔습니다. 무용 자체에 대한 흥미도 있었지만, 사실은 포스터에 찍힌 무용수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저 한 번 춤 추는 모습만이라도 보려고 무작정 찾아간 것입니다.

티켓을 살 돈도 없었던 저는 친구와 함께 공연장 잔디밭 근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저와 친구는 거지처럼 가난한 고학생이었기 때문에 돈을 내고 티켓을 살 형편이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무렵에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무조건 극장에 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고 왔습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들어가기도 하고, 약속한 사람이 안와서 티켓이 남은 손님에게 다가가 티켓을 구걸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내원을 구워 삶아서 무료 입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날도 어떤 수가 나겠지 하는 당당한(?) 계획을 가지고 일단 근처 잔디밭에서 정황을 살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어깨에 자그마한 가방을 맨 노신사 한 분이 "아이, 덥다!"하면서 우리 곁 잔디밭에 앉았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판소리에 빠져 있는 대학생이고, 무용 공연을 보러왔는데 티켓이 없어서 못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오늘 공연하는 무용수가 자기 제자라고 하며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습니다.

친구와 저는 그 분을 따라 무대 뒤로 들어가서 리허설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마지막 마무리 안무를 하시며, 우리에게 공연이 끝나고 나서 함께 술 한 잔을 하지고 청했습니다.
 
우리는 판소리 명창에게 우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그 분의 꼬임과, 처음 보는 무용인들과의 만남에 잔뜩 흥미가 생겨 장충동의 족발집에서 여러 한국무용인들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질펀하고 재미있는 술자리는 새벽녘까지 계속되었고, 술에 만취한 그 분과 그 분의 젊은 제자, 그리고 친구와 저 네 사람은 장충동 근처의 여관에 방 두개를 잡았습니다. 그 분은 굳이 저와 함께 자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친구는 그 분의 제자와 방을 쓰고, 전 그 분과 한 방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분이 저에게 성적인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거절했으나, 술에 만취한 그 분은 밤새도록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거절하자 그이는 토라져 있다가 날이 밝자 술이 깬 목소리로 자신의 등을 꼬집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등을 꼬집어 주자 그 분은 금새 기분을 풀고 좋아하면서, 옛날 남사당에 삐리로 들어 갔을 때 늙은 남사당 스승들이 등을 꼬집어 달라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꼬집어 드렸는데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니 남이 등 꼬집어 주는 게 너무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판소리와 전통예술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많은 저에 대해 칭찬을 해주시며, 제가 묻는대로 자신의 살아 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남사당패에 들어가 '삐리(나이 어린 단원)'로 생활하면서 겪었던 기구한 이야기와,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피나는 수련을 통해 대가의 반열에 이르기까지 그 분이 겪었던 삶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저는 노예술가의 삶에 깊은 공감을 느꼈고, 그 분의 진한 외로움을 함께 느꼈고, 그 분의 성적인 취향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남사당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자료를 모으며, 언젠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극으로 꾸며 보겠다는 꿈을 키워왔습니다.

남사당이란?

남사당패가 언제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몇몇 문헌에 의하면 이미 신라 이전에 유랑 예인 집단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을뿐입니다. 유랑예인 중 대표적인 것이 남사당패로서 이것은 1900년대 초까지 떠돌이 예인들의 대명사였습니다.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중심으로 하여 독신 남자들만으로 구성된 남색사회로, 몇 해 전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화제의 영화 『왕의 남자』에 소개된 남사당 광대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남사당패의 생활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그들은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을 위한 놀이판을 벌이고, 며칠 뒤면 짐을 싸들고 다른 마을을 향해 또다시 길을 떠나는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또 남자들만으로 구성되었으니 여성의 역할도 소화해야 되는 환경 속에서,
풍물과 버나돌리기와 꼭두각시 놀이와 탈춤과 땅재주넘기와 줄타기와 같은 어려운 기예들을 혹독한 훈련과정을 통해 익혀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천민으로 취급을 받으며 세속적이고 사회적인 삶에서 거세되고 추방되는 삶을 살았으며, 남색과 도박, 아편, 술, 싸움질 등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함께 하면서도 광대로서의 삶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좌절과 환멸로 점철된 그들의 삶을 지켜준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천민의 신분으로 겪어야만 하는 멸시와 굴욕을 이겨내며 유랑의 길을 떠났던, 그리고 굶주림과 방랑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기예를 이어올 수 있었던 그들의 생명력은 무엇으로부터 나온 것일까요?

전 지금까지도 삼십여 년 전의 젊은 시절, 장충동의 허름한 여관 방에서 남사당 출신 명인과의 하룻밤을 보내며 품었던 그 질문의 해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그 질문의 해답을 찾는 날, 제 가슴속에서는 아름다운 진주 한 알이 탄생될 것입니다.  

    

    남사당(男寺黨)/ 노 천 명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같은 머리를 땋아 내리는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된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 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지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TRACKBACK 1 AND COMMENT 21
    1. Favicon of https://yesbe.tistory.com BlogIcon 예스비™ 2009.07.01 06: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버지~벌써 첫 포스팅을 ㄷㄷㄷ;;;
      막 일어나서 7월 인사하러 왔는데... 정말 부지런 하세요.
      오랜만에 학창시절 외웠던 남사당 싯구절도 잘 보고 갑니다.
      7월 한달도 계획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고, 갈수록 날씨가 더워집니다.
      건강 조심 하시고, 제 부탁 꼭 들어 주셔야해요~ㅋㅋ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06:36 신고 address edit/delete

        따님도 무척 부지런하네요. 첫 댓글 고마워요. 편견타파릴레이를 위해서 따님글에 있는 릴레이 소개 배너와 주자들의 명단을 복사하려고 했는데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되지요?

      • Favicon of https://yesbe.tistory.com BlogIcon 예스비™ 2009.07.01 07:1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가 마우스 우클릭 방지를 해놔서...
        아버지,제 댓글에 소스 복사해서 답글로 올려 놨어요.
        그대로 가져다가 붙여 넣기 하시면 되요.
        제거까지 완성 시켜서 해놨으니까 그대로 쓰시면 될거에요^^&

    2.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7.01 06:4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남사당에 대해서 이해가 더욱 잘 되네요..
      남사당의 삶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가 이해가 가요..
      선배님의 자세하고 배려 깊은 글에 감동 받고 가요..
      거기에다가 시까지 너무 가슴에 와 닿아요..
      7월도 시작이 되었는데 오늘 하루도 행복함 가득하시구요..
      건강하고 행복한 7월 열어가세요 ^^
      오후에 와서 두 번은 더 읽어야 겠어요 ㅎ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18:52 신고 address edit/delete

        남사당은 저에게 아련한 그리움과 슬픔을 줍니다. 7월 한 달도 멋지게 보내세요.

    3. Favicon of http://blog.daum.net/esplanade12 BlogIcon Angella 2009.07.01 08:26 address edit/delete reply

      7월입니다.
      다녀갑니다.
      상큼한 나날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18:54 신고 address edit/delete

        7월의 첫날이네요. 오늘은 웬일인지 바람도 상쾌하게 부니 츌발이 좋네요.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되세요.

    4. Favicon of http://vates.egloos.com/ BlogIcon 소서차실지기 2009.07.01 09:16 address edit/delete reply

      역시 글은 경륜이 쓰게 해준다 !! 확인하고 갑니다.

      역시 예는 도와 어느 정도는 가깝지만, 또 근본적으로 거리가 있다 !! 확인하고 갑니다.

      노인이 주착이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18:54 신고 address edit/delete

        하하,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분이세요.

    5. Favicon of https://chiwoonara.tistory.com BlogIcon 붉은방패 2009.07.01 10: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인용하신 노천명 시인님의 <남사당>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팔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받아보는 것은 참 오랜 만인것 같습니다.
      덕분에 마음 한 구석이 꽉 차는 그런 기분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18:55 신고 address edit/delete

        노천명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여류시인인데 아깝게도 요절하셨어요.

    6. Favicon of https://cincinnati.tistory.com BlogIcon 유 레 카 2009.07.01 10:3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도 좋은 말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시길 바래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18:59 신고 address edit/delete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나날되세요.^^

    7.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7.01 10:3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애환이 담긴 남사당의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인생의 추억과 경험담도 좋은 소재인 듯 합니다.
      힘찬 하루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19:01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가 겪은 일들이 평범한 삶이 아니다보니 가끔씩 꺼내는 옛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기억을 더듬어 가끔 꺼내어 볼까 합니다.

    8. Favicon of http://www.indianabobs.com BlogIcon 인디아나밥스 2009.07.01 20:5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남사당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선생님 글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왠지 남사당의 서글픔이 느껴져 가슴이 짠해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23:05 신고 address edit/delete

        남사당처럼 슬프고도 독특한 삶을 산 사람들은 흔하지 않지요.

    9. 곤이엄마 2009.07.01 21:41 address edit/delete reply

      한사람은 완전히 이해하기란 참 어렵죠...
      인상으로인한 선입견도 무시 못하구요
      하지만 돌아서서 내가 왜 그사람은 오해했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 좁은 시야가 부끄러울때가 많이 있죠...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1 23:06 신고 address edit/delete

        인간이란 알면 알수록 신비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10. 자작자수 2009.07.03 18:06 address edit/delete reply

      블로그가 깔끔하게 변했네요. 얼마전에 '암자'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다가 김명곤님이 출연한 부분을 보았습니다. 생각난 김에 들러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남사당은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어릴적 매년 찾아 오던 '동춘서커스단'의 구슬픈 트럼펫소리는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재주, 남을 눈물나게 하는 재주, 남을 신명나게 하는 재주도 귀한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7.04 00:49 신고 address edit/delete

        암자를 보셨군요. 반갑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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