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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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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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가 세상에 나온 후,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서편제와 동편제가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상식이 '서편제는 전라도 판소리이고, 동편제는 경상도 판소리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잘못된 상식입니다. 

'동편제'와 '서편제' 모두 전라도에서 불리던 판소리의 유파입니다. 
판소리는 예부터 선생님에 따라서 가사의 내용이나 곡의 흐름이 다르고,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제자라 할지라도 조금씩 고쳐 나가기 때문에 명창마다 그 내용이 다릅니다. 이것을 ‘유파’라고 하기도 하고, 무슨무슨 ‘제’라고도 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두 유파가 전라도 땅을 가로 질러 흐르는 섬진강의 동쪽 지방에서 주로 전해왔던 ‘동편제’와, 섬진강의 서쪽 지방에서 주로 전해 왔던 ‘서편제’인 것입니다.

섬진강의 동쪽 지방에는 '동편제'가, 서쪽 지방에는 '서편제'가 전해져 왔다. 

'동편제'는 씩씩하며 음의 꾸밈이 적은데, '가왕(歌王)'이라고 불리운 송흥록을 시작으로 해서 그의 동생인 송광록, 송광록의 아들인 송우룡으로 이어지는 송씨 집안의 판소리 법통을 말합니다. 그들은 섬진강의 동쪽 지방인 구례, 곡성, 남원  쪽에서 주로 활동을 했습니다.


운봉면 화수리 비전마을에 있는 송흥록 명창 생가 앞 동상.

송흥록 명창 (1801년~1863년)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 출생. 8명창의 한 사람으로 가왕()의 칭호를 받았다. 판소리의 중시조()로서 모든 가조(調)를 집대성하는 한편, 매부인 김성옥()이 시작한 진양조를 자신의 노래에 도입, 완성하였다. 그의 창법은 발성초()가 극히 신중하였고, 웅건·청담한 창법을 가진 동편제(便)를 이룩하였다. 특히 《춘향가》 중의 〈옥중가()〉와 《변강쇠타령》 《적벽가()》 등을 잘 불렀다. -두산 백과사전

‘서편제’는 섬세하고 음의 꾸밈이 많은 판소리인데, 박유전 명창이 송씨 집안의 판소리와 대조적인 창법으로 만든 소리제입니다.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박유전은 목청이 뛰어나게 고왔던 명창인데, 그 무렵에 천하를 호령하던 대원군의 아낌을 받아서 벼슬까지 하고 그의 사랑채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명성황후와의 권력 다툼에서 권력을 뺏긴 대원군이 중국으로 도망가자, 명성황후의 복수를 피해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갖은 고생 끝에 대원군이 다시 권세를 잡자, 박유전 명창도 한양으로 올라와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원군이 죽고 한일합방이 되자, 전라도 어느 땅에 숨어 살다가 한겨울에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전남 보성군 보성읍 보성공원에 있는 박유전 명창 추모비.

박유전 명창 (1835년~1906년)
전북 순창() 출생. 헌종 ·철종 ·고종 3조()에 걸쳐 살았고, 특히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무과()에 급제까지 하였다. 음색이 청아하였으며, 서편제(西便)에서 갈라진 강산제(/)를 창시하고 뒤에 제자 이날치()에게 그 창법을 전수하였다. 《춘향가》 중 <이별가>에 뛰어났으며, 독특한 창법을 구사하였다. -두산백과사전

그 분이 섬진강의 서쪽 지방인 보성, 강진, 해남 쪽에서 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례쪽 판소리를 ‘동편제’라 하고 보성쪽 판소리를 ‘서편제’라고 부르기 시작한 겁니다.

일제시대가 시작되기 전인 조선 말기에 ‘동편제’와 ‘서편제’는 서로 심하게 싸웠습니다. 스승들은 상대의 판소리를 깎아내리고 자기 판소리가 최고라고 우겼으며, 제자들도 편을 갈라서 서로 자기 스승이 최고라고 다투었습니다.

만약 '동편제' 스승에게 판소리를 배운 제자가 '서편제'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울려면 파문을 각오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판에 두 파의 싸움을 멈추게 한 풍운의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송만갑이란 명창입니다.

송만갑 명창은 송흥록 명창의 손자이고, 송우룡 명창의 아들이니 완전히 ‘동편제’의 정통파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는 일곱 살 무렵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소리를 배웠습니다. 그는 판소리의 천재 소년이라서 이미 열 살 무렵부터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서편제’ 소리에도 관심이 많아서 아버지 몰래 박유전 명창의 창법을 자기 소리에다 섞었습니다. 집안의 전통적 음악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이루려고 노력한 거지요.

그러나 집안 어른들은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라고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만갑이 놈을 잡아들여라!”

아버지를 비롯해서 집안의 어른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모두들 판소리를 하거나 북을 치는 광대들이었지요. 송만갑은 화가 잔뜩 난 집안 어른들 앞에 꿇어 앉았습니다.

“네 이놈, 만갑아!”
“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제가 무슨 죄를 졌습니까?”
“집안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네 멋대로 소리를 해?”
“저는 제멋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네 놈이 서편 소리를 하는 걸 들은 사람이 있는데도?”
“서편 소리에도 좋은 대목이 있어서 조금 섞어 부른 겁니다.”
“그게 집안의 전통을 무너뜨린 게 아니고 무엇이냐?”
“저는 동편이니 서편이니 가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무엇이?”
“시대가 변했습니다. 소리꾼은 옷감 장수와 같아서 비단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비단을 주고, 무명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무명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저 놈의 목을 작두로 베어라!”

아버지는 길길이 화를 내며 만갑이를 죽이겠다고 서슬이 퍼랬습니다. 그러자 집안 어른들이 판소리 재주가 아까우니 죽이지는 말자고 아버지를 말렸습니다. 결국 집안 어른들은 송만갑을 파문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고, 그 후 송만갑은 다시는 집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집 세고 자신감에 넘치던 송만갑은 그 뒤로 집을 떠나 조선팔도를 떠돌면서 판소리를 했습니다. 그 통에 더욱 유명해지고, 그의 판소리는 널리 퍼졌습니다.

그는 드디어 일제시대에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창이 되었습니다. 송만갑 명창은 마음이 관대하고 제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점점 명창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며 편을 가르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때부터 '동편제' 명창과 '서편제' 명창이 서로 싸우지 않고 교류를 하게 됩니다.
 


송만갑 명창 (1865년~1939년)
전남 구례 출생. 명창 우룡()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배워 10세 때 벌써 그 자질을 인정받았다. 창법은 종조() 흥록(祿)의 전통적 법제()에서는 많이 벗어났으나 통속()과 평이()를 신조로 한 동편(便)의 명창으로 알려졌다. 어전()에서 판소리를 불러 감찰()을 제수받았다. 192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설립,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김정문() ·김광순() ·박녹주() ·박초월() 등의 제자들을 배출시켰다. 또 《춘향가》 《심청가》를 창극화했으며, 특히 《춘향가》 중에서도 <농부가()>를 잘 불렀다.  -두산백과사전

그는 국악인들의 전국적 모임인 <조선성악연구회>라는 단체의 수장으로서, 파벌과 유파를 초월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1939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우리 국악계는 그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대척을 하고 있는 유파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상대와 싸웁니다.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고, 조롱하고, 파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합니다. 극과 극의 원리주의에 입각한 검투사가 칭송 받습니다. 대화와 타협은 기회주의의 처신으로 배척됩니다. 증오와 분노와 저주의 에너지가 한반도의 하늘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시절이 이러하니 송만갑 명창의 통합과 화합과 관용의 리더쉽이 더욱 그립습니다.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 유봉이 죽기 전에 송화에게 남긴 유언과 같은 대사를 되새겨 봅니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허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없고 서편제도 없고 득음(得音)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동편과 서편을 아우르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처럼 통합의 소리판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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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09.06.06 07:1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동편제에 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
    하하~ 이제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지인들에게 유식한척 하면서 알려줘야겠습니다 후훗~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1 신고 address edit/delete

      영화 서편제 때문에 동편제는 서운한 게 많았을 테니 많이 홍보해 주세요.

  2.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6.06 08:1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탯줄은 하나였고, 소리도 하나였다는 소리같네요..
    같은 정신을 가졌던 사람이 혼돈에 빠져서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런것 같네요..
    다시 이 모든것을 아우르는 하나 됨이 필요할텐데 걱정이에요..
    선배님 덕분에 동편제와 서편제의 개념을 알았네요..
    그리고 인물과 정신까지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 그리고 황금펜 베스트 블로거 되신 것 정말 정말 감축드려요 ^^
    오늘 행복함 가득하시길 바래요~ 선배님 사랑해요 감사해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3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모두 근원을 찾으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황금펜촉의 기쁨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3. Favicon of http://lblog.daum.net/esplanade12 BlogIcon Angella 2009.06.06 11:44 address edit/delete reply

    판소리"서편제"와 "동편제"의 통합뿐만이 아니라
    Consilience統攝의 Minder가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 봅니다.
    김명곤선생님을 좋아하는 저희들이
    "우리가 좋아하는 김명곤"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이기두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6 신고 address edit/delete

      고립된 한 개체로서가 아니라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의 네트워크와 통섭을 지향하는 현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4. Favicon of http://songcine.tistory.com/ BlogIcon 송씨네 2009.06.06 12:08 address edit/delete reply

    파벌싸움이 국악계에도 존재했군요.
    외국에서도 흔히 힙팝음악하면 동부니 서부니 그렇게 나누어져서 싸우고 심지어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악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내요.

    김명곤 님의 이야기로 들어보니 유익했습니다.
    그나저러러나 서편제 때 뵈었던 모습이 그립기도 하내요.
    임권택 감독님의 천년학 때는 장관직에 계셨을 때라서 출연을 못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영화를 주로 보는 편이라서 말이죠. 다른 무대에서 뵙는 것도 좋겠지만 스크린에서도 자주 오셨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48 신고 address edit/delete

      힙합에도 그런 대립이 있군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연기로 대중들과 만날 날을 꿈꾸고 있답니다.

  5. Favicon of http://blog.daum.net/sunup-ok BlogIcon O.M.S 2009.06.06 12:36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지막 줄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이토록 깊은 이야기를 하셨나봅니다.
    잘 몰랐던 송만갑이라는 위인을 알게 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그런분의 후손이라는것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과 위안을 얻어 봅니다.

    김명곤님의 글의 모태는 이분되어 있는 관념이나 현상들이 하나로 거듭나기 바라는
    소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대한 그 기도와도 같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그저 어서어서 모두가 한을 넘어서게 되기를, 그래서 득음의 경지만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__)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50 신고 address edit/delete

      모든 대립 속에는 합일을 지향하는 근원이 숨어 있지요. 언제나 그 근원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6. Favicon of https://cansurvive.tistory.com BlogIcon 흰소를타고 2009.06.06 12:4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동편제와 서편제의 이야기를 통한 그 통합의 이야기가 인상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곧 송만갑 명창과 같은 분이 나타나시겠지요 ^^
    좋은 주말과 현충일 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6 22:51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사회의 곳곳에 송만갑 명창과 같은 통합의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길 기원합니다.

  7. 꿈꾸는 나날 2009.06.07 03:54 address edit/delete reply

    고백합니다.
    판소리의 정서는 좋아하는데...
    솔직히 말씀 드려서, 잘 모르겠어요.
    제 귓구멍이 막혀서인지, 사설의 내용을 잘 못듣겠더라구요.
    하긴.. 요즘 가요의 가사도 잘 듣질못하니....
    제가 조금 더 나이 먹으면,
    들릴까요??
    듣고 또 듣고 해야 들릴거란 생각은 있지만,
    반복학습이 어렵네요. 제가 게으른 탓이겠죠?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7 09:15 신고 address edit/delete

      판소리의 가사에 한문이 많고 옛말들이고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쓰인 탓이지 님의 탓이 아닙니다. 그저 가락을 따라 좋아하다 보면 천자문 익히듯이 하나하나 익혀 가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8. Favicon of https://pko0202.tistory.com BlogIcon 곤이엄마 2009.06.08 16:1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직 나이 이야기를 하기엔 멋적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것이 더 편해지는건 어쩔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인걸로 생각됩니다...
    들으면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을...^^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09 16:47 신고 address edit/delete

      우리 전통 예술은 고향의 맛과 멋을 느끼게 해준답니다.

  9. 2009.06.13 23:08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6.14 05:39 신고 address edit/delete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고치도록 하지요.

  10. 바보 2009.09.04 12:08 address edit/delete reply

    무엇이든 하나밖에 없으면 퇴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파의 피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지만, 그러한 경쟁을 통하여 무엇이든 발전해 왔습니다. 동편과 서편이 갈라지고 서로 비난을 한만큼 서로 발전을 했고, 그것을 통합하려는 사람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영화를 만드신다면 동편제란 영화도 좋을 것 같군요. 남성적임과 여성적임, 거문고와 가야금, 거침과 섬세함, 록큰롤과 뽕짝.. 이러한 조합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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