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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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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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참성단(塹星壇)'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있는 참성단.

저는 그동안 마니산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친구가 마니산 중턱의 어느 암자에 꼭 소개하고 싶은 '여도사' 있다고 해서 바람도 쐴 겸 가게 되었습니다. 

강화군 온수리의 좁은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산골 입구에서 차를 내려 진달래가 소담하게 피어 있는 산을 올라갔습니다. 


봄내음이 상큼한 산길을 친구와 함께 반시간쯤 걷다보니 산중턱에 부스러진 기왓장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폐허가 나타나더군요. 
 


폐허 아랫쪽에 '천제암 궁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예전에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기와 제물 등을 준비하던 '제궁터'라고 합니다. 고려 무렵에 세워졌을 거라고 추정을 하지만 정확한 건립 연대와 역사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불에 타서 사라진 이 유적지를 몇 년 전에 군에서 터만 조금 다듬어 놓고 안내판 하나 달랑 세워 놓았다고 합니다. 


제궁터 옆에 작은 철문으로 보호한 우물이 있더군요. 철문을 열고 물을 마셨습니다. 물맛이 시원하고 깨끗하더군요.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곳 사람들은 그 우물이 단군 시대부터 있었고, 5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말한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우물터 위 약간 가파른 산길을 10여미터 올라가니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벽을 한 조그마한 움집이 나타났습니다. 


집의 뒷 마당에 서서 주위를 살피다보니 이상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바위가 눈에 띄더군요. 마치 윷놀이판처럼 생긴 이 무늬는 바로 이곳이 한반도의 배꼽에 해당하는 곳을 알리는 표식이라고 합니다. 그 말도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집의 앞쪽으로 돌아서니 한 중년 부인이 저희를 맞이합니다. 바로 그 분이 친구가 소개하고 싶어 한 여도사 '송월(松月) 법사'입니다.    

저희를 반갑게 맞이 한 부인은 자신이 기거하는 비좁은 골방에서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열정에 가득차서 이야기하는 그녀에게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인천에서 남편과 함께 활발하게 건설 관계 사업을 하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기독교 신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0여년 전부터 시름시름 몸이 아팠답니다.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한약과 기도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병이 낫지 않았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사람이 귀신에 씌인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길래 영적 능력이 깊다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안수기도도 여러차례 받고, 도가 높다는 스님을 초청해서 법회도 열고,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서 굿도 여러 차례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이 몸은 점점 더 말라가고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마다 꿈에 산속의 폐허와 쓰러져 가는 움집과  할아버지와 관세음보살 같은 이미지들이 나타나고, "너는 그 곳을 찾아 가야 산다!"는 환청이 자꾸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그동안 꿈 속에 나타난 폐허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녔답니다. 그러던 중 마니산 참성단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 오다가 자신도 모르게 발길에 끌려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그 폐허와 움집이 바로 꿈속에 보이던 그곳이었답니다. 

그 움집은 본래 산림보호원들이 잠시 머물기 위해서 지은 가건물이었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버려져 있던 곳이었답니다. 그런데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찬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방 2개와 부엌이 있는데, 작은 방 안에 한 번도 쓰지 않고 비닐로 곱게 포장해 놓은 자개장롱과 경대 등이 세워져 있더랍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개장롱과 경대는 이곳에서 수도하던 '도사'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분 역시 이곳에서 홀로 수도하며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자기가 죽은 후 이곳을 '단군 성지' 일으킬 여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며 자개 장롱과 경대를 미리 사 놓고, 그 속에 자신이 그려 놓은 단군 성지의 조감도와 편지 등을 남겨 놓았다는 겁니다. 

장롱과 경대는 방안에 있으니 제 눈으로 확인을 했지만, 그 도사가 남겨줬다는 유품을 보여 달라고 하기는 예의에 어긋난 것 같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부인이 허황된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전 그저 놀라서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할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움집에 오자마자 너무도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져서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놀라서 반대했지만 그곳에서 살아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그녀의 완강한 고집에 양보했답니다. 남편은 한동안 인천에서 오고가며 그녀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가져다 주었답니다.   

그녀는 폐허가 된 움집을 가꾸며 혼자 살았답니다. 인적 없는 산속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로지 꿈속의 신령들과 교류하며 참성단에 오르고, 그들이 꿈속에서 가르쳐 주는대로 기도하고 먹고 자며 지내는 동안 그녀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건강해지기 시작했답니다. 대꼬챙이처럼 말랐던 몸에 살집이 붓고, 혈색도 돌아왔답니다.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 씩씩하고, 목소리도 우렁찹니다. 

그래도 산 아래 마을에서는 그녀를 미친 여자나 무당이나 귀신 들린 마녀 취급을 하며 멀리 했답니다. 그런데 점차로 무당처럼 점을 치거나 굿을 하거나 돈을 받지도 않고, 그저 순수하게 단군신을 모시고 지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부터 지금은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녀가 꿈속에 본 이미지를 토대로 하여 제작되었다는 단군 영정.

그녀는 그곳에서 홀로 지낸 지 10년이 되어 간다고 합니다. 

그녀의 꿈은 움집 아래쪽에 있는 '천제암 궁지' 폐허를 복원하여 '단군 성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재 관리를 담당한 군청을 수도 없이 찾아가서 나라에서 복원해주기를 청했지만, 예산타령만할 뿐 진척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그녀는 문화재청이나 군청에 하소연하는 걸 포기하고 자기가 스스로 그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남은 여생을 신의 뜻을 받들어 단군 성지를 만드는 것이라며, 단군 영정을 모시는 이 방에서 일심으로 기도를 하며 지냅니다. 


그녀는 자기는 종교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당도 아니고, 단군교도 아니고, 증산교도 아니고, 사이비 교주도 아니라고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무당이나 스님이나 도사들이 간간이 기도를 하러 이곳을 찾아오지만 그녀는 그들과도 별로 교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잡귀잡신에 들려서 허무맹랑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사술을 부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저는 참으로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직접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미화하지도 않았고, 신격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저 신들이 시키는대로 신들의 뜻을 받들고 사는 무식한 여자라고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현상에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현상이나 무턱대고 믿을만큼 영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경험하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한 신비스러운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상식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송월 법사와 헤어져 산을 내려오는 내내 과연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의문에 휩싸였습니다. 친구는 그녀가 이루려고 하는 단군 성지의 꿈을 알리고 싶어서 나를 소개한 거였지만 저는 아직 그녀가 모신다는 단군신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습니다.

과연 5천 년전의 단군은 어떤 존재이었기에 저처럼 한 여성을 10년 동안이나 이 산속에 잡아두고 있는 걸까요? 만약 그 여성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단군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되길 원하는 걸까요?
 

움집에서 바라 본 마니산 참성단.

이처럼 많은 의문을 간직한 채 돌아 온 저의 귀에는 헤어질 때 들려 준 그녀의 말이 아직도 맴돌고 있습니다.

"신령들하고 노는 건 차라리 쉬운데, 인간들하고 지내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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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ureka01.tistory.com BlogIcon yureka01 2010.05.10 10:11 address edit/delete reply

    마지막 구절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 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2 09:45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에게도 많은 울림을 던져 준 말이었습니다.

  2. Favicon of http://blog.daum.net/cola1018 BlogIcon 바람될래 2010.05.10 10:24 address edit/delete reply

    강화에 다녀오셨군요..
    마니산은 가끔 올라가면 한눈에 강화가 눈에 들어오죠..
    기구한 운명을 가졌다고해야할까요..
    글을 읽으니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2 09:44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래요. 자신도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살아오신 듯 합니다.

  3. 정운현 2010.05.10 11:25 address edit/delete reply

    4, 5년 전에 저도 마니산엘 찾은 적이 있습니다만,
    문제의 그런 집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역시 영적 세계에 관심은 많지만
    그 분의 얘기를 뭐라고 판단하긴 어렵군요.

    우리가 그 분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예단하는 건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2 09:46 신고 address edit/delete

      마니산 봉우리쪽이 아니고
      중턱 부근이라 못 찾으신 듯 합니다.
      저도 아직 그 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예단을 못하고 있습니다.

  4. 바보 2010.05.10 15:58 address edit/delete reply

    한반도에 이러한 神代文字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역시 이러한 문자가 있었다는 것이 신대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게 되는군요. 아마도 설총의 이두가 있기 전에 사용되던 글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신대문자에 관한 연구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각지의 돌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한자가 일본에 들어오기 전에 가나대신에 사용되던 문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는 한글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가짜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일본말을 읽을 수 있다면 神代文字에 관한 기술이 있는 곳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http://www.marino.ne.jp/~rendaico/gengogakuin/gengokenkyu/mojishico/kamiyomojico.htm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2 09:42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무늬를 신대문자로 볼 수도 있나요?
      좀더 공부해 보겠습니다.

    • 바보 2010.05.12 16:24 address edit/delete

      이것이 신대문자라는 자신은 없지만
      일본의 雨宮龍神社에 있는 바위에 적혀 있는 문자와 같은 모양을 알 수 있습니다.
      http://f.hatena.ne.jp/awamomo/20090126105005
      이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음독인지는 모르지만, 호쯔마문자로 보면 '나'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5. Favicon of https://muye24ki.tistory.com BlogIcon 무예인 2010.05.10 18:1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 잘보고 갑니다.

  6. Favicon of https://moafarm.tistory.com BlogIcon 투덜이농부 2010.05.10 22:4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도인같은 사고보다는

    숙명을 만나신듯 하네요..

    세상은 발달되었지만 성숙하지 못해..

    어쩌면 그세상속에 지내는것보다는 신들과 ? 지내시는것이 속편하실것 같습니다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마지막 문구 보는데 성철스님이 하신말씀이 생각이 나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2 09:40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분은 속세하고 어울리기보다
      산속에서 신령들과 지내는 게 더
      편하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을 이해하려면 세속의 눈을 벗어나야겠더군요.

  7. Favicon of https://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여강여호 2010.05.11 16:5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여도사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시리게 하네요..."신령들하고 노는 건 차라리 쉬운데, 인간들하고 지내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2 09:36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지금까지 제 머릿속을 맴돌고 있답니다..

  8. Favicon of http://baedonghak.com BlogIcon easthawk 2010.05.15 09:30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이유없이 몸이 아팠을때. 마니산에 간혹 가곤 했는데.

    왠지 영험한 기운이 있는거 같더라구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이 글 보니. 다시 가서 마음에 힘 좀 불어 넣고 오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5.17 07:16 신고 address edit/delete

      마니산의 기운과 통하시나 봅니다.
      좋은 기운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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