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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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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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변 사람들하고 메일이나 핸드폰 메시지로 소식을 주고 받다보니 직접 펜을 들어 편지를 쓴지 까마득히 오래 되었네요.

그러다보니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아 볼 일도 거의 없어졌군요. 지난 주말 문득 손으로 쓴 편지들이 보고 싶어 오랫만에 먼지 쌓인 박스를 꺼내어 낡은 편지뭉치들을 훑어봤습니다. 

대학생 때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다보니 누이들에게 받은 편지들이 많았고, 특히 아버님은 사나흘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방학 때나 휴학을 하고 집으로 내려와 있을 때 친구들이 보낸 편지나 엽서도 많이 남아 있고, 아내하고 연애를 하거나 신혼 시절에 주고 받은 편지들도 한아름 쌓여 있더군요. 

청춘의 외로움과 즐거움과 불안을 함께 나눈 많은 사연들을 읽으며 한숨도 쉬었다가 울다가 웃다가 멍하니 추억에 잠겼다가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가신 어머님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딱 2통만 남아 있더군요.



첫번째 편지는 1971년 1월, 제가 대학 시험 보려고 서울 친척집에 올라와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그 무렵 우리 식구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경남 진해에 사는 이모집에 잠시 몸을 의탁하며 요양을 하고 계실 때입니다.

명곤이 보아라.

너의 편지 반가히 받았다.
며칠 전에 집으로 너에게와 아버지께 편지했는데 못 보고 서울에 왔구나.
사대를 지원한 것은 잘했다.
어디든지 너의 실력이 당할만한 데 보는 것이 좋은 일이다. 
이번 시험에 합격할만 해야지.
꼭 합격해야지.
시험 잘 보아라.
아버지께서도 편지가 와서 너는 형님네 집에 있을 줄 알고 그리 편지낼까 했었는데 외삼촌 집으로 갔구나.
아무래도 낯이 익으니까.
아이들도 너의 친동생과 같지.
살림이 망하니까 아이들(우리 누이와 형제들)도 불쌍하지. 딱하구나.
시험이 끝나면 형님 집에도 가보련.
시험 잘 보고 합격을 바란다. 
이곳 이모집도 다 편안하시고 아기도 참 귀여웁다. 
oo이(사촌동생)도 잘 뛰어 놀고.
난 오래 쉴까 생각했더니 우리집 가고파서 곧 내려가야겠다.
24일 경에나 가야겠다.
oo이(세째누이)도 26일날 간다고 했어.
아들 편지를 처음 받아보니 참 반갑구나.
다음 전주에서 만나자.

1.16 엄마씀


다음 편지는 1971. 3. 16이라고 봉투에 적혀 있는 걸로 봐서 입학 2달 뒤 첫 하숙집에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군요.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 와 아버님과 함께 동생들을 보살피며 지내고 계실 때입니다.

아들 보아라.

너의 편지 자세한 모든 것, 자세한 곤란과 모든 자질구레한 곤란을 다 이기고 나가겠다 하는 결심을 듣고 어머니는 한껏 마음이 놓인다.
그래야지.
아버지가 다녀오셔서 또 자세한 이야기는 들었다마는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라.
너의 생활이 퍽으나 유쾌하고 희망에 차 있고, 기대를 갖고 있는 너이니까 곤란을 이겨나가고 열심히 공부해라. 
너는 모든 곤란을 이기고 열심히 나가리라고 너를 믿는다. 
나의 몸은 항상 그만하다. 걱정말어라.
교복 입고 조그마한 사진 하나 찍어서 보내라. 
하숙집 음식이 너의 입맛이 잘 맞아서 잘 밥을 먹느냐. 
음식에 주의도 하고 학교에서 가까와서 점심도 와서 먹게 되겠다.
한 방에 있는 학생도 매우 착실하고 얌전하다면서. 참 잘했다.
나는 참 기쁘다.
벌써 아들이 커서 서울 가 공부를 하고 이렇게 편지를 쓰니 매우 즐거웁구나.
따뜻한 봄이 되면 서울에 가 보겠다.
oo이(여동생)도 학교를 넣든지 기술을 가르치든지 해야할텐데 그대로 있다. 
oo이(남동생)도 요새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다음에 미루고 이만 쓰겠다.
할 말은 많은데.....         



유일하게 남은 2통의 어머니 편지를 읽는 동안 마치 조용조용하고 잔잔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맞춤법이 맞지 않는 글자들마저도 어머니의 손길인 듯 다정하기만 했습니다. 집을 떠난 아들에게 난생 처음 편지를 쓰면서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고 가슴 설레이셨을까요?


전 이 편지들을 읽는 동안 어머니의 편지를 공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왜냐구요? 좀 더 자주 어머니에게 편지 쓰지 못한 불효가 뼈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아들 딸들에게 저처럼 후회하지 말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자주 육필로 편지를 쓰라고 권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형제, 자매, 친구, 선배, 스승 등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수십 년 뒤에  수많은 추억과 웃음과 눈물과 사랑을 전해 줄 편지를 자주 쓰라고 권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살아 숨쉬는 손길이 스며 든 편지로 좀더 자주, 좀더 많이 사랑을 나누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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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10.03.25 07:19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부모님의 마음 한 자락 한자락 모두가 표현이 된 글이라서
    놀라워요..

    보는 저는 왜 눈물이 나려는 것일까요..

    선배님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07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을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은
      누구나 통하는 것 같아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2. 바보 2010.03.25 07:37 address edit/delete reply

    용케도 이런 것들이 남아 있군요.
    저흰 수없이 이사다니면서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성북구 공릉동.... 서대문구 녹번동.... 아주 예전의 행정지역이름입니다.
    옛시절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효도전화라도 해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09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아깝게 사라진 편지나 노트들이 많이 있는데
      다행히 남아 있는 것들도 조금 있네요.
      효도전화 하실 부모님이 계시다니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네요.

  3. vifam 2010.03.25 08:21 address edit/delete reply

    방금 야간하고 집에와서 어머니와 사소한것때문에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면 안되는데 속이 답답해고 미칠것 같아서...

    얼마전 우연히 불교티비 나의 어머니프로를 봤습니다. 광대아저씨가 궁금해져서
    책4권두 얼마전 봤구요 저에게는 어려운 책인것 같구 중고책이라 먼저 보신분이
    밑줄친 글이 많아서 무슨 교재(비가비광대)인듯 했습니다.
    영화도 어렵게 구해서 보구요 연극은 앞으로 볼수 있을까요?
    전 방안 투소쟁이인데 바깥으로 나갈려니 무척 힘이들고 두렵기만 합니다.
    저 언제까지나 꿈꾸는 방안투소쟁이로 머물면 어떻하죠?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13 신고 address edit/delete

      구하기 힘든 책과 비디오를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연말쯤에는 뮤지컬 무대를 만들 계획입니다.
      방안퉁소 열심히 불다 보면
      언젠간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기고
      멋지게 바깥 세상과도 어울릴 수 있을 거예요.

  4. Favicon of https://muye24ki.tistory.com BlogIcon 무예인 2010.03.25 08:2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
    부모님의 연예편지 읽는데 엄청 재미 있더라고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13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의 연애 편지가 있다니...
      부럽네요.

  5.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10.03.25 08:3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부모님께 받은 편지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데....
    그런데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읽었는데 요즘은 눈물이 납니다.
    별 말씀 아니었는데도 한구절 한구절이 다 와닿고...
    어머니의 편지때문에 저도 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14 신고 address edit/delete

      나이들수록 부모님의 마음이
      가슴에 와닿나 봅니다.

  6. Favicon of http://yureka01.tistory.com BlogIcon yureka01 2010.03.25 09:32 address edit/delete reply

    아 그러고 보니 편지 써본지가 너무 까마득하네요..

  7.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10.03.25 10:21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눈물이....ㅠㅜ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15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 생각하시는 마음
      전해지네요....

  8. Favicon of http://yakdol.tistory.com BlogIcon 양철지붕 2010.03.25 14:59 address edit/delete reply

    이 글 읽고 사무실에 나가서 안 피던 담배까지 피고 왔습니다.
    저도 어머니, 아버님 편지 딱 1통을 갖고 있는데 이글을 읽고 눈물이 납니다.

    늘 자주 찾아와서 글을 읽기는 했는데 글을 남기기는 처음입니다.
    행복하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17 신고 address edit/delete

      부모님 생각하시는 마음이
      뭉클 전해지네요.
      딱 1통씩만 가지고 계시다니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자주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9. Favicon of http://sulfur.pe.kr BlogIcon 미자 2010.03.25 23:14 address edit/delete reply

    글씨가 엄마랑 똑같아요. 신기하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04 신고 address edit/delete

      글씨가 똑같다니 저도 신기하네요.

  10. Favicon of http://blog.daum.net/cola1018 BlogIcon 바람될래 2010.03.26 13:51 address edit/delete reply

    건강하실때 옆에서 보살펴드려야하는데
    그렇지 못함이 항상 미안하고 죄송하죠..ㅡㅡ
    엄마보다는 자식을 먼저 챙기게되고 어쩔수없는
    불효를 가끔 하게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04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도 지내보니 나중에 후회하면서도
      부모님껜 언제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살아가게 되더군요.

  11. Favicon of https://leebok.tistory.com BlogIcon 빨간來福 2010.03.27 03:2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제가 다 눈물이 납니다. 워낙 어릴때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형누나는 받은 편지를 보관하고 있더군요. 어찌나 부럽던지....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3.28 07:02 신고 address edit/delete

      아버님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셨군요.
      애석한 마음 전합니다.

  12. 김수연 2010.03.29 11:29 address edit/delete reply

    눈물이 나오네요. 얼마전 친정 엄마와 사이가 좀 좋지 않았는데, 후회되네요. 살아게실때 정말 잘해야 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와요. 편지 잘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02 07:40 신고 address edit/delete

      엄마와 딸은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가장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줄 수 있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13. Favicon of https://safewoman.tistory.com BlogIcon 안전맨 2010.03.31 19:4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오늘 어머니와 언니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참 좋다.. 라고 생각했답니다. 역시 어머님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그리움이면서 힘을 주는 단어 그 자체같네요^^ 편지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02 07:41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리움과 사랑의 대상이
      살아 계시다는 건 대단한 행복이랍니다.

  14. Favicon of https://moafarm.tistory.com BlogIcon 투덜이농부 2010.04.02 01:4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후아..

    어머님

    언제나 가슴에 그늘을 제공해주시는 분..

    위대한 여자

    누구보다 뜨거운 사람.. 엄마

    좋은글 읽고 ..반성하고 돌아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4.02 07:41 신고 address edit/delete

      어머니라는 단어는
      정말 위대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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