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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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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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옛 노트들을 정리하다가 노트 사이에 낀 낡은 종이 몇 장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제가 28세 무렵, 첫 직장인 <뿌리깊은 나무>의 응시서류에 첨부했던 '자기 소개서' 초고더군요.
낙서장처럼 지저분하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글을 보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정서를 해서 보낸 최종 원고는 사라졌지만, 기억을 더듬어 초고를 약간 다듬어 정리해 봤습니다.
제 청춘의 '구직'에 대한 꿈과 열망을 엿볼 수 있는 글이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록으로 남깁니다.
마지막 문장 이후는 생각이 나지 않아 미완으로 남겨둡니다.

 



바람이 많고 황폐한 땅에 나무가 한 그루 자라는데, 아직 줄기는 가늘고 가지는 연약하나 뿌리가 깊어 가히 앞날의 무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강물이 샘에서 시작하듯 나무 또한 그 뿌리에서 모든 것이 시작하며, 새벽빛이 맑으면 그날의 태양이 밝고, 샘이 깊으면 강물이 마르지 않듯이, 나무 또한 뿌리가 깊을수록 땅 위의 수확이 풍성합니다.

그러나 뿌리는 땅속에 있어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다만 그 솟아나온 가지나 잎을 보아 뿌리의 깊이를 측량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한계인지라 사람들은 치밀하게 따지고 재고 시험해 보나 결국 얻는 건 그릇된 판단과 뒤바뀐 지식, 그리고 오해입니다.

물론 나무는 바람과 추위를 이기고 우람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터이지만 그 전에 나무에게 필요한 건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자기 뿌리의 깊이를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따뜻한 보살핌입니다. 그것이 있음으로서 나무는 더 빨리, 더 높이 자라는 것입니다.

옛 말에 천리마를 구하려는 사람은 천리마의 뼈를 천 냥에 샀다 했습니다. 또 큰 인물을 얻으려는 어떤 사람은 닭소리만 잘 내는 사람도 그를 밑에 두어 후히 대접했다 했습니다.

저는 감히 천리마나 큰 인물이라고 자만하지 못하나 천리마의 뼈나 닭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 천리마나 큰 인물을 끌어들이는 전초의 한몫을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저의 뿌리가 다른 나무보다 깊다고 믿고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성장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사에서 추구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저는 존경과 대결의 자세로 지켜보아 왔습니다. 존경이란 제가 어려서부터 간직하고 키워오던 많은 꿈들을 그곳에서 저보다 먼저 그것도 감탄할만하게 눈앞에 펼쳐 놨다는데 대한 존경이고, 대결이란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허점을 찾아내려는, 그리하여 내 꿈에 대한 반성의 거름으로 삼고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려는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그동안 공부했던 것은 독어과 출신답지 않게 한국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문화의 모든 형태와 본질, 특히 한국 문화의 원형을 찾으려 참으로 잡다한 것들을 공부했고 약간의 결실도 있었습니다.

그 대신 상식과 어학 실력은 남보다 뒤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구직의 문턱에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지만 저의 약점을 솔직히 밝혀드리는 것은 저의 장점이 결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뿌리깊은 나무>사의 이념과 그 사업 내용이 제가 참으로 하려 했던 것, 하고 싶던 것들이어서 제 능력이 미치는 한 온힘을 다해 결점을 복구할 결심이 섰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는 주로 문학 방면에서 활동을 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방송과 연극 활동을 하면서 한국학에 몰두하여 예술, 종교, 철학 등 여러 가지를 조금씩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쁨으로 삼는 것은 이러한 개개의 지식과 활동보다 공부한 모든 것을 종합하여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것입니다......(미완)


이 자기소개서를 보낸 뒤 서류심사에 합격한 저는 100여명의 응모자 중 2명을 뽑는 2차 심사의 좁은 관문을 통과해서 근무하던 중, 심각한 '연극병(?)'이 발병하는 통에 1년 뒤에 정든 직장을 떠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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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10.02.05 08:05 address edit/delete reply

    기자가 되기 위해서 준비된 생활을 한분 같은 이력서를 보고 합격 시켰겠습니다.^6
    참 세월이 빠릅니다.어느새 30년이 넘게 흘러 가고 있어요.^^

  3. Favicon of http://blog.daum.net/pssyyt BlogIcon 무터킨더 2010.02.05 08:10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렇게 문학적인 자기소개서는 처음 보았습니다.
    뽑지 않을 수가 없었겠네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19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때는 문학에 심취해 있던 때라
      괜히 폼을 잡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4.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10.02.05 08:26 address edit/delete reply

    이야....정말 귀중한 자료입니다. ^^
    수없이 연습했던 흔적도 보입니다.
    소중히 간직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19 신고 address edit/delete

      첫 직장 얻으려고
      고치고 또 고치고 했던 것 같습니다.

  5. 임현철 2010.02.05 09:14 address edit/delete reply

    젊은 날의 꿈이 아름답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20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 꿈을 아직도 꾸고 있는 바보랍니다.

  6. Favicon of http://yureka01.tistory.com BlogIcon yureka01 2010.02.05 09:27 address edit/delete reply

    어릴때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책을 본적이 있었습니다.어렸을때라 내용은 기억 나지 않지만 글이 빼곡히 들어 있던 책이었었지요..
    아 그곳이었군요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21 신고 address edit/delete

      한글 전용에 독특한 디자인의 잡지였지요.

  7. Favicon of http://blog.daum.net/cola1018 BlogIcon 바람될래 2010.02.05 09:31 address edit/delete reply

    자기소개서도 몬가가 달라요..^^
    100명중에 2명뽑는 들어가기 힘든직장을 그만둘정도로
    연극이좋아했던 김명곤님의 용기에
    저도 하고싶은것이 있는데 못하고있는 제 용기에
    힘을 넣고싶슴돠...^^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21 신고 address edit/delete

      저처럼 함부로 직장을 그만 두면 위험하니까
      지혜롭게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하세요.

  8. Favicon of http://muye24ki.tistory.com/ BlogIcon 이상한 2010.02.05 09:37 address edit/delete reply

    ^^
    추진 력이 대단 하시내요 자기소개서는 수필집에 한부분 인 느낌이 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22 신고 address edit/delete

      그땐 좀 패기만만했던 것 같습니다.~~

  9. Favicon of https://careernote.co.kr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10.02.05 10:0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와, 정말 명필이십니당^^ㅎ
    천리마와 뼈다귀 조차 높은 가격에 사서 천리마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옛 문헌이 떠오르네요^^
    선생님의 자기소개서는 요즘의 학생들에게 귀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출처를 밝힌 다음에 잘 활용토록 하겠습니다^^ㅎ
    윤허해주소서^^ㅎ

    참, 전성철 변호사의 자기소개서도 트랙백으로 남겨뒀습니다^^

    늘 건강도 잘 챙기셔용^^*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23 신고 address edit/delete

      트랙백 걸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진 자기소개서더군요.~

  10. Favicon of http://converts-ahmd.blogspot.com/ BlogIcon ahmd 2010.02.05 10:41 address edit/delete reply

    ((( 사귀게 된 와 함께 이슬람 )))

    http://acquainted-with-islam.blogspot.com/

  11. 2010.02.05 13:34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12. Favicon of http://lovtea.tistory.com/ BlogIcon 러브티 2010.02.05 13:48 address edit/delete reply

    우왕 진짜 안뽑을 수가 없는 자기소개서네요.
    취업 준비생들은 필히 봐야 할 자기소개서인 것 같아요.^^

  13. Favicon of https://falconsketch.tistory.com BlogIcon 팰콘스케치 2010.02.05 20:01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와우!
    카리스마가 절절 넘치는 자기소개서네요~!

  14. Favicon of http://code0jj.tistory.com/ BlogIcon 수수꽃다리(라일락) 2010.02.05 22:49 address edit/delete reply

    정말 28세의 청년다운 패기와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이 그대로 나타나 있군요.
    누가 서류심사를 해도 당장 뽑겠는걸요?ㅎㅎ
    물론 뽑히셨지만.......
    대단한 자기소개서 입니다.
    직장을 구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표본이 되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26 신고 address edit/delete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런지 자신은 없지만
      합격 못했으면 소개하기도 민망했겠지요.

  15. Favicon of https://leebok.tistory.com BlogIcon 빨간來福 2010.02.06 04:0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와! 정말 대단한 자기소개서네요. 문장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 위 생수는 무슨의미로 쓰셨을까요?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27 신고 address edit/delete

      왜 생수를 썼는지 저도 모르겠네요.
      글쓰다 생각 안나면 엉뚱한 낙서를 하는 버릇이라서...

  16. Favicon of https://www.likewind.net BlogIcon 바람처럼~ 2010.02.07 02:20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와~ 자기소개서 진짜 최고네요
    저도 뼈와 닭소리 내는 사람이 될까요?
    좋은 귀감이 되는것 같습니다
    딱 지금 제 나이가 28살인데... ㅠ_ㅠ
    이제 취업이라는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08 07:15 신고 address edit/delete

      28세...이제부터 시작이군요.
      취업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17.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10.02.08 07:55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아~정말 멋진 자기소개선데요. ^^
    정말 명문이십니다...제가 면접관이었어도 뽑지 않곤 못 견뎠을 것 같네요...

  18.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9 17:43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50:1의 관문일지라도 선생님의 자소서를 읽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네요! ㄷㄷㄷ
    저도 앞으로 자소서를 작성할 일이 많을텐데,
    진심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자소서 작성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ㅎ
    다가오는 설, 항상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10 10:00 신고 address edit/delete

      앞으로 작성하실 자소서를 통해
      멋진 직장과 미래의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19. Favicon of https://maehok.tistory.com BlogIcon 숭학당 2010.02.09 19:04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직접 쓰신 내용을 함께 보여 주시니 '실감'납니다. 요즘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20대에게 하나의 전범이 아닐까 하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10 10:01 신고 address edit/delete

      지극히 제 개인적인 사례지만
      젊은이들에게 혹 도움이 된다면
      그지없이 기쁘겠군요.

  20. Favicon of https://safewoman.tistory.com BlogIcon 안전맨 2010.02.10 11:56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장관님의(아^^: 아직 입에 붙어있습니다. ㅎㅎ) 지금 취업을 앞둔 구직자분들에게도 아주 도움이 되는 문장과 글입니다.^^
    제가 취업컨설턴트로 일을 하기에~ 수십년전이지만 너무나 좋은 문장이라 감히 담아가서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평소에 호심탄회하신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트랙백 걸어둡니다.^^

    • Favicon of https://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10.02.11 16:48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 자소서를 전문가의 눈으로
      분석해 놓으신 글 잘 읽었습니다.
      혹 젊은 취업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쁨으로 여기겠습니다.

  21. Favicon of http://fazer-um-bolo.jogosloucos.com.br BlogIcon jogos de bolo 2011.07.20 17:35 address edit/delete reply

    우왕 진짜 안뽑을 수가 없는 자기소개서네요.
    취업 준비생들은 필히 봐야 할 자기소개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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