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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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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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아내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 가던 중,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을 들은 저는 충격과 비통함 속에 모임 약속을 취소하고 급히 볼일을 마친 뒤에, 저녁 늦게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뉴스 속보를 보며 급히 조의를 표하는 글 한 편을 블로그에 올리고 잠깐 눈을 붙인 저는, 새벽 6시에 슬픔과 눈물로 기운이 쭉 빠져 있는 아내와 함께 봉하마을로 차를 몰았습니다.

11시쯤 도착하니 이미 조문객들의 행렬로 차량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근 길가에 차를 대고 사람들 틈에 끼어 봉하마을의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조문객들과 함께 국화꽃 한 송이씩을 바친 저희 부부는 장례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아 내빈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송기인 신부님을 비롯하여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지근거리에서 후원했던 분들과, 함께 국정을 수행했던 분들이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간간이 장례절차나 시신의 안장 문제 등을 논의 했습니다.

저는 몇 분과 함께 조문객을 맞이하는 상주가 되어 1시부터 2시까지 분향소 옆에서 문상객들을 맞이했습니다. 

국화꽃 한 송이나 꽃다발이나 담배 한 갑을 바치면서 묵념을 하고 절을 하기도 하고 오열을 하기도 하는 수많은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비는 동안, 저에게도 고인과의 추억이 밀려오고 한편으로는 죽음까지 이르게 된 고인의 고통이 몰려와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가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인이 남긴 유서의 내용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며 저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온 이후 20여 일 동안 고인은 하루 한끼 식사에 하루종일 말없이 방안에서만 지냈다고 합니다.

유서에 씌여진 내용처럼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자신이 짊어지고 갈 '운명'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고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같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자책감과,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는 절망감, '남에게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여생을 도저히 더 지고 갈 수 없다는 암담함 속에서 고인이 다다른 결론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고인을 그토록 고통에 빠뜨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이미 마음 속에서 지워진 듯 보입니다.

박연차의 진술만을 토대로 지나치게 가혹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수사 과정에 드러난 사실들을 낱낱이 까발린 검찰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도 않은 가족들의 사생활이며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매일같이 경쟁적으로 보도해 온 언론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자살하라고까지 폭언을 퍼붓고 끊임없이 독설과 조롱을 일삼았던 보수 논객들이나 언론의 사설에 대해서도, 그 모든 사람들의 뿌리깊은 복수심과 증오에 대해서도, 고인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용서의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새벽 바람을 맞으며 부엉이바위에 서 있는 동안 고인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오갔을까요?

밤을 하얗게 세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바위 위에 선 고인이 경호원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였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은 새벽 밭일을 나온 농부였거나, 건강을 위해 등산을 나온 평범한 주민이었겠지요. 아니면 가족을 위해 절에 새벽기도하러 가는 아낙네였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결심한 마지막 순간까지 고인의 눈에 보인 것은 나무도, 구름도, 새도, 바람도 아닌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고인의 홈페이지 제목처럼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일생을 바쳐 온 고인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사람'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아마 고인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염원을 가슴 깊이 품었을 것입니다. 


고인의 유언대로 시신은 '화장'을 해서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고' 안장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인의 시신과 함께 고인이 우리에게 남긴 "사람"에 대한 사랑과 비전 함께 우리 가슴 속에 묻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영혼이 사랑과 평화 속에 저 하늘의 별로 승천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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