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블로그 이미지
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 2,639,115Total hit
  • 9Today hit
  • 79Yesterday hit


'수수꽃다리'를 아십니까?
 

수수꽃다리(용담목 물푸레나무과 낙엽관목) 
이     명 : 조선정향. 개똥나무. 해이라크
분 포 지 : 한국특산종


우리나라 야산에 흔하게 피어나던 라일락 계통의 이 야생화는 한 미국인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1947년 뉴햄프셔대학 교수이자 미 군정청 소속의 식물 채집가였던 엘윈 미더 교수는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며 한국의 식물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북한산 백운대 근처에서 수수꽃다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씨앗 12개를 채집하여 미국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는 오랫동안의 연구 끝에 7개의 씨앗을 성공적으로 싹 틔우고, 그것을 실내 관상용으로 품종 개량한 끝에 아주 아름다운 라일락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던 중, 한국에서 자신의 일을 잘 도왔던 미스김을 떠올려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미스김 라일락'은 꽃의 색과 향이 강하고 키가 작아 정원수로 적합하여 미국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전세계로 수출되었습니다. 지금도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합니다. 물론 그는 돈방석에 올랐고, 그 부는 아들 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우리는 그 꽃을 미국에서 역수입을 했고, 미스김 라일락의 원종인 수수꽃다리는 멸종위기에 처해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원예 연구소의 「국내 종자 산업과 로열티 지급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자(種子)회사들이 외환위기 이후 대거 다국적 기업에 팔려나가 고추, 무, 배추 같은 채소나 장미, 국화, 카네이션, 포인세티아 같은 꽃들이 판매될 때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 채소와 꽃 업계가 1년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1,0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전세계가 종자전쟁으로 분주하던 때, 남이 개량한 꽃을 사서 즐길 줄만 알았지 우리가 보유한 종자의 개발에는 무관심했던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종자전쟁이 문화 분야에서도 진행 중입니다.

몇 년전, 제가 국립극장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직접 체험한 흥미있는 사건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어느날, '파리 음악축제'의 음악감독이라고 하는 50대의 뚱뚱한 프랑스 여인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 축제는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사회당의 문화부 장관인 자크 랑이 만든 축제로 100만 명의 가수들이 공연하고, 1000만 명의 청중들이 참여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입니다.

지금은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정권이 집권 중이고, 우파 여성 문화부 장관인 크리스틴 알바넬이 올해 행사의 총괄을 맡았는데, 좌파정권때 시작되어 우파정권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발전된 문화행정의 성공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축제입니다. 

그 축제의 음악감독이 다음 해에 '한국의 판소리 특집' 공연을 하고 싶다고 국립극장에 찾아 왔길래, 판소리 공연의 진행과 명창의 선정에 관해 오랜 시간 많은 자문을 해주었습니다.

그이는 판소리 다섯 바탕의 완창을 원형 그대로 공연하는데 있어서 전문적인 식견과 탁월한 기획력으로 1년간 치밀하게 준비하여 크게 성공시켰습니다.



파리 음악축제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축제인지라 그곳에서의 호평은 우리의 판소리를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고, 참가했던 명창들도 외국인들의 열렬한 반응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뒤 들려 온 소식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파리 음악축제 음악감독이 판소리 다섯 바탕의 가사를 모두 번역하여 자막 처리하는데 한국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문화부에서 지원을 했는데, 그 번역의 저작권을 파리 음악축제가 소유하게 되어 그 후에 링컨 센터나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파리 음악축제에서 공연된 판소리를 초청할 때 그쪽에 저작료를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기획자나 예술감독이 판소리 가사번역의 저작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며, 정부 돈으로 번역하고 저작권은 자신이 가져갈 줄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그런데 저들은 자기 토종 문화종자의 관리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한 제3세계의 토종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파는 데에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경험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피어나는 야생화가 원예산업의 기본 재산이 되는 것처럼 전통예술, 전통문화는 문화산업의 무한한 기초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재산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는지 지금 우리는 너무도 무지한 상태에 있습니다. 아니 그런 게 재산이 되는지 어떤지 조차도 모르고 있고, 재산이 될만한 게 뭐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세계적 종자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생명공학적 기법을 활용해서 품질개량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으로 치열해지고 있는 ‘문화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문화의 씨앗에 대한 품질개량이 시급합니다. 문화의 씨앗은 바로 전통예술, 기초예술입니다. 이 문화씨앗의 품질개량에는 막대한 돈과 시간이 투입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악 음원 사업'이란 게 있습니다. 우리 국악을 악기별로, 장단별로, 선율별로 음원을 만들어 컴퓨터 자료화하는 작업입니다.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개인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방대한 사업입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원이 있더라도 단발적이고 형식적인 지원에 그치고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재를 털어 가면서 사명감에 불타 10년이 넘게 지난한 작업을 해 오고 있는 몇 사람의 개인들 손에 맡겨져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 사업이 성공하면 핸드폰이나 컴퓨터, 신디사이저 등 수많은 매체에서 사용할 가능성은 무한대일 것이며 막대한 수익도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그런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은 눈을 씻고 찾을래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지요.

요즘 ‘신화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가 기폭제가 된 신화 전쟁은 세계 각국의 신화를 대상으로 한 소재 발굴 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헐리우드나 디즈니의 제작자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인디안 신화, 게르만 신화, 북구 신화, 아랍 신화, 중국 신화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신화도 영화, 에니메이션, 방송드라마를 통해 점점 다양한 소재 발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신화와 연관성이 높은 일본, 만주, 몽고, 베트남, 중국, 알타이, 티베트 등지의 신화와 설화를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영상, 문학, 방송, 에니메이션, 공연예술, 음악 등의 다양한 창작으로 문화콘텐츠화하는 사업은 어떠할까요?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우리 문화 산업의 재산을 엄청나게 불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꿈같은 넋두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문화전쟁에서의 최강자는 당연히 미국입니다. 헐리우드나 디즈니나 팝 음악 등 강력한 대중문화의 힘으로 전 세계를 재패하고 있는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우리 문화 영토를 확보하려면 문화의 품질개량이 시급합니다. 영화나 방송이나 음반과 같은 매체들은 때마침 불어 닥친 한류의 바람을 타고 품질개량과 재산 관리에 돌입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설화, 신화, 국악, 무용, 음식, 건축, 공예, 의상과 같은 문화의 씨앗들도 품질개량과 재산관리에 돌입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32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06)
예술이야기 (55)
세상이야기 (52)
나의 이야기 (57)
책이야기 (50)
신화이야기 (6)
문화이야기 (46)
명인명창이야기 (40)

CALENDAR

«   2019/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