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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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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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1.08
    블로그, '총맞은 것처럼' 과의 신기한 인연 (46)
  2. 2009.07.03
    늦게 배운 블로깅에 날새는 줄 모릅니다. (35)
  3. 2009.05.22
    <총 맞은 것처럼>에 얽힌 블로그와의 인연 (16)
  4. 2009.05.03
    50대 후반의 컴맹인 내가 블로거가 되다니 (49)
블로그라는 새로운 세계는 때로 저에게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맺어주기도 합니다.

그 중 저의 일과 관련해서 너무도 신기하게 맺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총맞은 것처럼>의 작곡가 방시혁입니다. 

전 그와 만나기 전의 이야기를 2009년 5월 22일에 <'총맞은 것처럼'에 얽힌 블로그와의 인연http://dreamnet21.tistory.com/17>이란 제목으로 올렸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작년 3월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올라오다가 금강 휴게소에서 백지영씨가 부른 <총맞은 것처럼>을 듣고 감전이 된 듯한 전율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들었다... 


후배 소개로 파워 블로거인 탐진강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 사연을 얘기했는데, 다음 날 <김명곤 전 장관, 백지영 노래 듣고 눈물 흘리다>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려 조회수 10만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 뒤 탐진강님 덕에 나도 블로그를 개설하고,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사연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 이유' 때문에 그 노래의 작곡가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음악하는 후배를 통해 작곡가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저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로서는 대중가요 작곡가에게 평생 처음 거는 전화였습니다.

방 : 여보세요!
나 : 아, 저....김명곤이란 사람인데요....
방 : 누구시라구요?
나 : 김....명곤이요....
방 : 네?...아, 장관님? 야, 정말 그 분이세요?
나 : 맞아요. 내가 그 사람이예요.
방 : 제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셨다면서요?
나 :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방 : 저도 블로그 하거든요!
나 : 아, 그래요? 반가워요!
방 : 와, 정말 반갑습니다!
나 : 나 정말 그 노래에 반했어요. 가수도 잘 불렀지만 작사, 작곡, 편곡, 연주...모두 정말 가슴에 와닿았어요!
방 : 감사합니다!
나 : 내가 전화한 이유는....
방 : 네!
나 : 내가 지금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는데...
방 : 뮤지컬이요?
나 : 쉐익스피어의 <햄릿>을 우리나라 배경으로 바꾸고 오필려를 주인공으로 해서 '여성적 시각으로 뒤집어본 햄릿'이랄까...그런 작품인데....
방 : 아, 예!
나 : <총맞은 것처럼>을 듣는 순간 너무도 그 작품하고 잘 맞는 노래라서 음악적 모티브를 좀 사용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예요.....
방 : 저, 근데 그 뮤지컬 작곡자는 누구인가요?
나 : 작곡자 없어요. 지금은 나 혼자 대본 쓰는 단계인데 그 노래로부터 받은 영감을 사용하려면 허락이 필요해서...
방 : 저 외람되지만, 그 작곡 제가 맡으면 않될까요?
나 : 예?....아직 제작자도 없고, 제작이 언제될지 기약도 없는데....
방 : 언제 되셔고 좋고 제작이 안되셔도 좋아요. 제가 한 번 하면 안될까요?
나 : 일단 한 번 만나서 얘기를 하도록 하죠.

그런데 만나보니 그의 어머님은 제가 어릴 때 살던 전주 고향집의 옆집에 살던 분이었고, 그의 외삼촌은 저와 초등학 때부터 절친했던 후배이고, 그는 서울대 미학과를 나온 대학 후배이기도 하더군요.
 
출처 :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90329130510731

우리는 신기한 인연에 기뻐하며 바로 의기투합해서 작품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방 작곡가는 뮤지컬을 처음 해보는 것이니 공부가 필요하다며 뮤지컬도 열심히 보러 다니고 뮤지컬을 전공한 음악학도와 함께 공부도 하며 차근차근 작곡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뜻밖에도 재능 있고 열정에 가득 찬 작곡가를 만난 저는 작품을 계속 수정해가며 그가 '감'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난 해 11월쯤, 그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선생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봤는데 너무 감동이었어요. 이제 '감'이 온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구체적인 제작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든 게 막막하고 제작의 가능성이 1%도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작과 투자는 쉽게 되는 게 아니라 작곡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1년 뒤 공연을 할지 2년 뒤 할지도 알 수가 없겠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처음에 한 말을 다시 한 번 다짐하듯이 반복했습니다.

가요계 일로 돈은 충분히 벌고 있으니까 보상이나 작곡료는 걱정 안하셔도 돼요. 
제작이 어려워서 공연이 안되어도 제가 맡은 작곡은 꼭 할께요.
전 오로지 선생님과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제가 하겠다고 한 일에 대해선 책임을 질께요.  

전 그의 말에 용기백배했습니다. 인기와 돈으로 얽혀진 걸로만 알았던 대중가요계에 이처럼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인 신뢰와 예술에의 열정으로 뭉쳐진 인재가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되자 갑자기 일이 너무도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작품을 공연하기에 딱 맞는 극장으로 점 찍어 놓았던 모 극장의 대표는 제 얘기만 듣고서 선뜻 극장 사용을 약속해 주었고, 제가 가장 같이 하고 싶었던 국내 최고의 뮤지컬 제작사 대표 역시 제 얘기를 듣는 순간 제작을 책임지겠다고 선뜻 약속을 했습니다. 이 분들과의 인연과 만남은 다음에 또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요.

올 연말쯤에 막을 올릴 때까지 해야할 일도 산더미이고, 헤쳐나가야 할 파도와 암초도 수없이 많겠지만 전 지금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블로그로 이어진 한 젊은 작곡가와의 인연'이 마치 신의 축복처럼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됩니다. 

예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키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뮤지컬을 최선을 다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워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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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탐인 정운현의 역사와의 대화 http://tamin.kr/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정운현님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고 답변한 글이 그 분의 블로그에 올랐습니다.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블로그에 관한 인터뷰는 처음이라 기념 삼아 퍼왔습니다. 답변 내용은 바뀐 게 없고, 그 분이 쓴 글이나 질문 내용, 사진이나 편집 등은 그 분 블로그에 실린 그대로 입니다.


우리 옛 속담에 '늦게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흔히 늦게 시작했지만 어떤 일에 푹 빠져 지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죠.
이 말 속엔 부정적인 뉘앙스도 없진 않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더러는 사랑을, 더러는 취미를 이렇게 시작하는 분들이 없지 않죠^^  

가로늦게 블로그를 시작한 후 요즘 블로그에 푹 빠져지내는 어떤 이가 있습니다.
그것도 2, 30대 청년도 아니고, 또 이름없는 무명거사도 아닙니다.  
예상을 깨고 전례없는 대히트를 친 '서편제'의 주연배우로는 물론이요,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등 문화계 고위관료를 지낸 유명인사입니다.
김명곤(57)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김명곤의 세상이야기'(http://dreamnet21.tistory.com/)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입니다. 지난 5월 3일 첫 글을 올렸으니 시작한 지 아직 채 두 달도 되지 않습니다.
6월 30일 현재 41건의 글을 올렸으니 3일에 2편 씩 쓴 셈입니다.
초보블로거 치고는 대단한 열정입니다. 미쳐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글도 좋습니다. 화려한 경력과 연륜의 무게가 묻어나고 있습니다.
초보 치고는 방문자도 많고, 댓글도 재밌습니다. 한마디로 시끌시끌합니다.

처음 이 블로그의 등장한 후 저는 예의주시를 해왔었죠. 잘 할까? 하면서요.
오프라인의 명사들이라고 해서 온라인에서 꼭 안착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조기에 안착을 하고 그 열정 또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지난주말에 이메일로 인터뷰 질문지를 보냈더니 오늘 아침 답장이 왔군요.        
답변도 시원시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블로그를 하고싶답니다.

그럼, 그와의 문답 한번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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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시기의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


- 먼저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주요 경력과 가족사항, 그리고 취미나 관심사 등을 자유롭게 소개해 주십시오.

" 자기 소개를 해 본 지가 오래되니 무척 쑥스럽군요. 고향은 전주구요. 연극과 판소리에 미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탓에 아리랑 극단의 대표도 하고, <서편제> 출연과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문학과 음악과 공연 예술과 영상 예술을 두루두루 좋아합니다. 남들이 취미로 하는 일들을 직업으로 삼아 살고 있는 행복한 사나이입니다."

-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이왕이면 이것도 좀 자세하게 소개해주시길^^

"우선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아서 9월 23일부터 27일 사이에 전주에서 열리는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구요. 강연을 하러 전국을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햄릿>의 한국판 뮤지컬 대본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 뜯기도 하지요. 참, 요즘은 무엇보다 블로그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
무주 구름샘 마을의 딱따구리 가족들도 잘 있나요?
"지난 번에 가서 사진 찍고 온 뒤로 못 가봤는데요, 마을 아저씨 얘기로는 잘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정말 보고 싶습니다."

- 밖에 나가면 요즘 호칭을 뭐라고 부릅니까? 아직도 ‘김 장관’이라고도 부릅니까?

"사람마다 다릅니다. 장관, 선생님, 선배, 친구야, 아저씨, 오빠...."

- 문화부장관 시절을 회고할 때 가장 잘 한 것과 가장 아쉬운 것 하나씩을 소개한다면요.

"가장 잘 한 것은 사라져버렸던 전통예술과를 새로 만들고 전통예술진흥 정책 발표하고 예산 만들어 낸 것을 꼽고 싶구요. 가장 아쉬운 것은 '바다이야기' 사건 처리하느라 초반전에 진을 너무 많이 소모한 점을 꼽고 싶네요."

- 참여정부에서 각료를 지내셨는데, 노무현 대통령과의 개인적 일화나 기억 같은 게 있으면 한두 가지 소개해주세요.

"전 그 분의 정치활동과는 인연이 없이 옆에서 지켜만 보는 입장이었습니다. 제가 국립극장장을 하던 어느 일요일, 갑자기 부부동반하셔서 극장에서 창극을 보시고 저녁에 청와대에서 만찬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식사 내내 판소리와 풍물과 민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지요. 그러고서 얼마 뒤 극장장 임기가 끝나 연극 연습을 하고 있는 데,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서 장관 제의를 받은 겁니다. 주변에 정치 동료도 많고 입각을 꿈꾸는 측근들도 많았을 텐데 오로지 자신의 판단만으로 저에게 장관직을 제안하신 그 분의 결단은 두고두고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때 ‘노제’ 총감독을 맡으셨는데요, 블로그에 쓰신 ‘뒷얘기’를 보니 좀 씁쓸합니다. 혹 더 보탤 얘기가 있으시면 몇 자 언급해주세요.

"전 국립극장장을 할 때 광복 60주년 기념 행사 총감독과 APEC세계정상회의 개막공연 총감독등을 해봤기 때문에 행사 관련 관료들의 비협조와 문제점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이 있었습니다. 참여정부의 행사를 할 때도 힘들었는데, 정권이 바뀌었으니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겠죠. 어쨌든 모든 난관을 뚫고 노제가 큰 탈없이 진행된 점 모든 분들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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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 '노제' 총감독을 맡아 크레인을 올라 타고서 노제 시작에 앞서 "해동조선 대한민국 제 16대 노무현 대통령 복~복~복~"을 외치는 초혼 의식을 하고 있는 김 전 장관


- 장관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행정가라고 생각합니다. 후임 유인촌 장관도 같은 연극배우 출신인데요, 예술인 출신들의 입각을 어떻게 보세요?

"예술인들이 정치인이나 행정가보다 현장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과 인맥이 풍부한 점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장점이 단점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현장의 나무들에 빠져 숲을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예술가 중에 경영과 행정력과 리더쉽을 두루 갖춘 인재가 나와서 장관직을 수행한다면 더 말 할 나위가 없겠죠."

- 대학에서는 독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연극 쪽으로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졌나요?

"독어과 2학년 시절에 우연히 서울 사대 연극반 연습하는 걸 구경하러 갔다가 연극의 덫에 빠져버린 겁니다."

- ‘서편제’ 이후 전통문화를 테마로 한 대작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그런 작품을 하겠다는 제작자나 투자자가 없구요, 액션이나 멜로나 코믹 같은 장르 영화에 비해 아직 장르가 형성되지 않은 테마를 다룰 수 있는 작가가 부족하구요, 임권택 감독님처럼 오랫동안 전통에 천착한 감독도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 가슴속에서 슬픔이 솟구치는군요."

- 평소 글을 많이 쓰십니까? 그간 주로 어디에, 어떤 성격의 글을 쓰셨나요?

"연극하기 전엔 열렬한 문학지망생이었습니다. 그동안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열심히 썼구요. 연극으로 벌이가 없을 땐 국악이나 전통문화 관련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구요, 신문, 잡지 등에서 청탁을 받아 간간이 글을 쓰곤 했습니다."

- 기존에 쓰시던 글과 블로그 문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호흡이 짧아지고 흐름을 중요시 하게 되더군요. 지나치게 문학적 수사를 꾸미거나 현학 취미의 문장도 줄어지구요."

- 대박을 낸 번역서도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죠.

"직장을 그만 두고 벌이가 없을 때 모 출판사 선배의 요청으로 이태리 소설가의 <돈 까밀로와 빼뽀네>라는 연작 소설의 영문판을 번역했는데 출판사가 그 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물론 저에게는 가장 싸게 책정된 번역료 말고는 국물도 없었지요."

-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에 꽂히신 것 같은데, 그 노래의 무엇 때문에 눈물까지 흘리셨나요? 혹 가사 중의 ‘구멍난 가슴’ 같은 사연이라도 있으신지???

"그 노래는 백지영씨나 작곡자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오로지 노래만으로 제 가슴에 들어 와 꽂힌 케이스입니다. 제 개인적 사연과 연관이 되었다기 보다는 대화체의 가사, 짧은 호흡, 시작하는 것 같지 않게 시작했다가 끝나는 것 같지 않게 끝나는 독특한 곡의 흐름, 백지영씨의 음색과 가창력, 하다못해 반주의 적절한 울림까지 모든 것이 제 가슴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 노래 관련된 블로그의 글 덕분에 작곡가인 방시혁씨를 만나 둘이서 의기투합하여 뮤지컬 작업까지 하게 됐으니 저하고는 참으로 기이한 인연으로 맺어진 노래입니다."

- 블로그는 “탐진강님의 전적인 권유와 가르침과 후원으로 시작한 도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는 블로그를 전연 모르셨나요?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차이점도 몰랐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저에게 탐진강님이 직접 등록을 해주시고 블로그의 기초를 모두 전수해 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겁니다."

- 직접 해보시니까 블로그 글쓰기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이 살아 숨쉬고, 나도 모르는 공간에서 살아 떠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블로그의 가장 큰 매력인 듯 합니다."

- 블로그 글쓰기를 두고 “나 혼자 수필을 쓰거나,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쓰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를 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현상”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인가요?

"미지의 블로거들이나 네티즌들에게 내 글을 띄운다는 설레임,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내 글을 읽고 보내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는 기쁨, 그들과의 따뜻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의 행복감...등등 많은 현상들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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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서편제' 중의 한 장면. 맨 앞이 김 전 장관이다


- 하루 일과 중에서 블로그 글쓰기는 우선순위 몇 번째 정도인가요?

"일 없는 날은 첫 번째, 일 할 땐 두 번째, 작품 쓸 땐 세 번째."

- 블로그의 글감은 주로 어디서 찾습니까?

"책, 신문, 인터넷, 운전 중, 친구와의 술자리, 아이들과의 대화, 때론 꿈속에서도..."

- <'존나'라는 단어는 욕일까, 욕이 아닐까?>라는 글은 어떤 상황에서 착안하신 건가요?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다가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소재를 얻고, 몇 가지 글에서 자료를 얻어서 쓴 겁니다."

- 블로그를 시작한 지 보름만에 올린 <50대 후반의 컴맹인 내가 블로깅을 해보니>라는 글에서 "늦었지만 시작하기 너무 잘했고, 너무 즐겁다"고 하셨는데, 그 즐거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십시오.

"전 본래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남의 청탁 없이, 아무 제약 없이,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안 쓰고, 내 맘에 맞게 디자인하고 편집한 글을 올린다는 게 너무도 즐겁습니다."

- 블로그 하시는 걸 두고 주변 지인들은 뭐라고 하십니까?

"부러워하고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제 또래 지인들 중에 블로그가 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조금 외롭습니다."

- 주변분들 가운데는 블로그 하시는 걸 부러워는 하면서 막상 자신들은 시작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글쓰기의 어려움, 또는 글쓰기의 두려움 아닐까요?"

- 블로그 하시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주무시나 본데요, 하루에 블로그에 얼마나 시간을 쏟으시나요?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자판 솜씨도 서툴러서 모든 게 느리다보니 어느 땐 서너 시간이 휙 지나가더군요."

- 사진은 남의 것이 많아 보이는데요, 사진 찍는 솜씨는 어떠세요?

"사진, 동영상, 음악 파일...모든 게 서툴러서 부끄럽습니다. 후배들한테 하나하나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오른쪽에 보면 ‘링크(link)'가 적지 않던데요, 얼마나 자주 들르세요?

"자주 들러야겠다는 생각에 링크해 놨는데 미안하게도 자주 못들립니다. 이웃 여러분, 미안해요! 사랑해요!"

- 블로그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소통’을 꼽으시던데요, ‘소통’을 해봤더니 어떻던가요?

"너무도 다양한 세계를 가꾸고 계신 블로거들과의 소통은 저를 자꾸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줍니다. 그들과의 소통은 저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 댓글에 답글을 거의 다 다시던데요, 재밌나요, 아니면 그거 귀찮나요?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지나가다 욕설을 하거나 무성의한 댓글을 남기는 분에게까지 답글을 남기기는 힘들더군요."

- 블로그는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 끝으로, 긴 질문에 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트랙백 1 AND COMMENT 35

제가 블로그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고, 새로운 사람들과 신기한 인연을 맺게 해 준 대중가요 한 곡이 있습니다. 바로 <총 맞은 것처럼>입니다.

두어 달쯤 전 일입니다. 지방에서 일을 보고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올라오다가 금강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화장실을 가려고 발길을 옮기는데, 소음을 뚫고 웬 여자가수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감전이 된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그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다른 노래로 바뀌었을 때, 저는 음반 파는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그 노래가 무슨 노래지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요."
"백지영이 누구지요?"
"아이구, 백지영도 몰라요? 이거 요새 한창 뜨는 노래유."


저는 그 노래가 담긴 CD음반 한 장을 샀습니다. 케이스 안에는  두 장의 CD가 들어 있었는데 모두 합쳐 40여곡의 최신 가요가 들어 있는 불법 음반이더군요. 

저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총 맞은 것처럼>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것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집까지 오는 두 시간 내내 아무리 멈추려 해도, 가슴을 진정하고 따라 불러보려 해도, 자꾸만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는 작게도 틀어보고, 차 전체가 꽝꽝 울리게 크게도 틀어보고, 가사만 들어보기도 하고, 반주만 들어보기도 하고, 노래만 들어보기도 하고, 울면서 불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전 아내와 딸에게 소리쳤습니다. 

"아빠가 새로 노래 하나 발견했다!" 
"무슨 노래?"
"총 맞은 것처럼!"

그러자 대학교 다니는 딸이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거 요새 매주 1위 하는 노래야."
"그래?....근데 그 가수 정말 노래 잘하던데....백지영이 누구냐?"
"아빠 정말 백지영 몰라? 비디오 사건의 주인공?"


아, 저는 그때서야 '백지영이 그 백지영이구나!' 하고 알아챘습니다. 하지만 그 스캔들은 저에게 하나도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저를 그렇게 가슴 깊이 슬프게 만든 노래에 대한 열광은 가수의 스캔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요.

아무튼 그날 이후 저는 그 노래를 열심히 배웠고, 노래방에서도 몇 번 불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노래를 잘 불러서 놀래킨 것이 아닙니다.  

"서편제의 김명곤이?"
"저 나이에?"   




한참 그 노래에 빠져 있을 때 파워 블로거인 탐진강님이 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탐진강님은 그 사연을 블로그에 올려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블로그가 뭔지 잘 몰랐던 때라, 홈페이지에 올리려나 보다 생각하고 그러라고 했습니다. 탐진강님은 핸드폰을 꺼내어 제 얼굴을 찍고, 식탁 위의 삼겹살과 소주병들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탐진강님은 다음 날 <김명곤 전 장관, 백지영 노래 듣고 눈물 흘리다.>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려 10만 명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읍니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연을 알고 물어보는 통에 파워블로거의 위력을 알게 되었지요. 

그 뒤 탐진강님을 만나 블로그에 대한 진지하고 열정에 찬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블로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5월 3일에 탐진강님의 도움으로 블로그를 개설하고, 지금은 매일 잠을 설치며 블로깅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 인연은 작곡가 방시혁씨와의 만남으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궁금하시죠? 그 사연은 다음에 이야기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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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문서나 작성하고, 메일이나 교환하던 수준의 컴맹이다. 게임도 못하고, 채팅도 못하고, 사진 올리기도 못하는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려 10만 명이 넘게 방문한 베스트 글 "김명곤 전 장관, 백지영 노래 듣고 눈물 흘리다"의 필자인 탐진강님의 전적인 권유와 가르침과 후원으로 시작한 도전이다. 한 달 반쯤 전, 참으로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님과의 인연이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게 해 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미니 홈피와 블로그의 차이점도 몰랐던 내게 블로그의 세계를 가르쳐주고, 그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고, 블로그의 개설과 글쓰기와 사진 올리기의 세세한 방법을 가르쳐 준 님께 감사 또 감사 드린다.

나는 지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나 혼자 수필을 쓰거나,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쓰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를 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현상이다. 

지금 내가 두드리는 이 글이 발행 키를 누르는 즉시 수많은 미지의 블로거들에게 읽히고, 누군가가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내 올 거라고 생각하니 흥분도 되고 마구마구 설레인다.


사춘기 때 연애 편지를 쓰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설레임을 50대 후반의  이 나이에 다시 느끼다니!

앞으로 이 광대한 블로그의 신천지에서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지만, 초보 탐험가의 순진한 열정으로 조심스레 새로움의 첫발걸음을 내딛는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워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구상 시인의 ‘새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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