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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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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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9.06
    천둥 같은 목소리로 '우르릉천둥이 말하다' (6)
  2. 2010.08.27
    4대강을 위한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연설' (14)
  3. 2009.11.07
    마음속 두 마리 늑대, 어떤 늑대가 이기나? (44)
  4. 2009.10.20
    콜럼부스의 '무기징역'과 오바바의 '평화상' (31)
  5. 2009.09.17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 닉 부이치치 (39)
태풍 ‘곤파스’는 강풍으로 우리를 떨게 하더니 ‘말로’는 천둥과 번개로 떨게 하네요.

마침 「우르릉 천둥이 말하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어 천둥소리 들으며 읽었습니다.


늑대와 함께 춤을, 주먹 쥐고 일어서, 수다쟁이, 푸른천둥, 곰이 노래해, 까만물고기, 꼬리의 뿌리, 붉은매, 빗속을 걷다, 흰사슴, 까마귀왕, 미친곰, 푸른늑대, 어디로 갈지 몰라, 겁 안나, 독수리 날개를 펴는 자, 우르릉천둥.....

이름 짓기에는 세계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인디언입니다. 하기야 제 이름 '명곤(明坤)'도 풀어 쓰면 ‘밝은 땅’이니 우리 이름도 인디언식으로 풀어 쓰면 재미있는 이름이 많을 듯 합니다.

'우르릉천둥(Rolling Stone)' 평생을 인디언 치유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인디언 치유자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힘과 인디언 부족의 비밀을 전수하는 주술사이자 의사이며 영적 스승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치유자가 되기 위해 걸었던 길, 기도로 악령을 막는 법, 약초요법, 인디언들의 역사, 업보에 관한 이야기, 인디언들이 겪어야 했던 정치적 현실과 미래에 대한 예언 등 그의 영적인 삶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우르릉천둥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함께 살아가고 함께 일하고 함께 노래하며 '어머니 지구'와 '아버지 태양'과 '할머니 달'을 모시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인디언 말살 행위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인디언 문화파괴에 의해 인디언 문화는 죽어가고 인디언 정신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르릉천둥은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 어떻게 환경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 평화, 단순한 삶, 자유, 조화와 균형, 어머니 대지....이것은 우르릉천둥을 포함한 모든 인디언들의 독특한 세계관이자 우주관입니다.

이러한 인디언들의 영적인 삶은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미국의 히피 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전, 반권력, 반공해, 반체제, 자연보호, 생태 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으며, 그런 분위기를 타고 우르릉천둥은 영적인 스승으로서 미국의 젊은이들 특히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영화배우 존 보이트,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전 세계 히피들에게 영향을 끼친 록 그룹 '고마운 죽음(Greateful Dead)' 등이 우르릉 천둥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특히 록 음악의 대부 격이었던 밥 딜런은 우르릉천둥을 만난 후, 히피들의 대부이자 시인인 알렌 긴스버그나 존 바에즈 등과 함께 2년에 걸쳐 '우르릉천둥 리뷰(Roolling Stones Review' 콘서트 투어를 미국 전역에서 가지기도 했습니다. 비틀즈에 맞선 전설적인 팝 그룹 '롤링 스토운즈(Rolling Stones)'도 우르릉천둥을 정신적으로 숭배했다고 합니다.

'백인의 자식들이 인디언 옷을 입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긴 머리를 하고, 구슬을 달고, 머리띠를 할 것이다. 인디언들은 처음으로 진정한 백인 친구를 얻게 될 것이다' 라는 호피족의 예언처럼 히피 운동 이후 인디언과 백인들과의 영적 만남이 활발해졌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구르는천둥」이라는 제목으로 동일인에 대한 책이 나왔더군요. 칼 메닝거 재단의 연구원인 더글라스 보이드가 1971년 캔자스 주의 작은 숲 모임에서 구르는천둥을 처음 만나 그의 놀라운 치유의 힘과 깊은 영성에 감동 받아 쓴 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르는천둥’ 보다 ‘우르릉천둥’이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드네요.

인간이 한 장소를 더럽히면 그 더러움은 전체로 퍼진다.
마치 암세포가 온몸으로 번지는 것과 같다.
대지는 지금 병들어 있다.
인간들이 대지를 너무도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큰 자연 재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현상은 대지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대지 위에 세워진 많은 것들은 대지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체에 침투한 병균처럼 대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이물질들이다.
당신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대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로 크게 몸을 뒤흔들 것이다.

개발론자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 합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와 균형은 무너지고, 오늘날의 지구는 온갖 환경 재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들은 개발이라는 '욕망의 문명'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입니다.

우르릉천둥의 예언에 따르면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자연 재앙이 일어나고, 현대 사회는 붕괴될 것입니다.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곡물은 자라지 않을 것이며, 기아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 예언의 징후들은 지금 지구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르릉천둥의 예언은 사람들이 이기심을 극복하고 모든 생명체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렇게 바뀝니다.

사람들은 마음과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 지구 위에서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아지면 그때는 평화가 올 것이다.
영적인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사물들을 올바른 질서 속으로 되돌려놓으면 그때 예언은 바뀔 수 있다.

우르릉천둥의 모습. 출처 :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40500026

우르릉천둥은 1997년 1월 영혼들의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그의 40년 동반자였던 사랑스런 아내 ‘얼룩새끼사슴’이 저 세상으로 떠나자 그는 슬픔을 못이겨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술은 그의 당뇨병과 심장병을 악화시켰습니다. 그의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얻고자 그가 살고 있던 오두막으로 찾아왔습니다.

그중에 우르릉천둥이 죽기 전까지 몇 년 동안, 그의 아내로서 동반자로서 함께 한 ‘카르멘 해뜨는 포프’가 수년 동안 그의 구술을 받아 펴낸 책이 바로 「우르릉천둥이 말하다」입니다. 이 책은 천둥 같은 목소리로 진정한 삶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인디언의 영혼과 그의 삶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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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디언 지도자로 세알트(Sealth 1786년~ 1866년), 일명 '시애틀'이란 이름의 추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용감한 전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두와미시 족과 스콰미쉬 족의 연합 대추장으로서 크게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세알트 추장의 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_blog/rss/rssList....Page%3D4

1854년, 미국대통령 피어스에 의해 파견된 백인 대표자들이 그에게 15만 불에 6천만 평에 달하는 땅의 권리를 넘기는 조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물론 서명을 안 하면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태세였습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수많은 동족이 희생될 것을 염려한 그는 몇날 밤을 고민한 끝에 조약서에 서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명하기 전에 그는 백인들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을 두와미시 족의 언어를 배운 헨리 A. 스미스라는 백인의사가 기록했습니다. 그 연설문은 오랫동안 원문이 공개되지 않은 채 부분 부분 공개되다가, 1976년의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한 '고문서 비밀해제'로 120년 만에 햇볕을 보게 됩니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연설문은 그동안 녹색평론, 법정 스님, 류시화 시인 등에 의해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명문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마치 요즘의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천둥과 같은 외침으로 들려옵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zephyrakim/22

나와 함께 온,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이 사람들은 나의 부족이며 나는 그들의 추장이다.

우리는 왜 이곳에 왔는가? 연어떼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올해의 첫 연어떼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연어는 우리의 주된 식량이기 때문에 연어떼가 일찌감치 큰 무리를 지어 강의 위쪽으로 거슬러오는 걸 보는 일만큼 우리에게 즐거운 건 없다.

그 숫자를 보고서 우리는 다가오는 겨울에 식량이 풍부할 것인가를 미리 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더없이 기쁜 까닭은 그 때문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어떼가 햇살에 반짝이며 춤추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이 우리를 찾아올 것을 짐작한다.

우리가 무리를 이루어 몰려왔다고 해서 전투를 벌이려고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 나는 당신들이 우리의 땅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당신들과 우리는 모두가 이 대지의 아들들이며, 어느 한 사람 뜻 없이 만들어진 사람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

'워싱턴의 대추장(미국대통령 피어스를 말함)'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냈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그의 부족은 숫자가 많다. 그들은 초원을 뒤덮은 풀과 같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적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에 드문드문 서 있는 들판의 나무들과 같다.

백인 대추장은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는 제의를 하며 우리에게는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따사로움을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인디언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인디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안개가 달아나듯이 인디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들은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백인들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들은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 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인디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인디언은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 연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인디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인디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 주는 온갖 생명과 신령스러운 기운을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들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대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들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 만이 시작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 있어서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나날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있지도 않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이 땅에 살았거나 숲 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 살아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 가는 존재이다. 자기네 하나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인디언에게나 백인에게나 똑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인디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그대들은 불태워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들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차고, 풀이 우거진 언덕이 '말하는 쇠줄'(전화선)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숲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인디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연어떼를 보았으니 이제 나와 나의 부족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꿈인지 모른다. 당신들 백인들에게 밀려, 살아남기 위해 고통 받아야 할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연어떼의 반짝이는 춤을 나의 부족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출처 : http://seerdeborah.blogspot.com/2010/08..._17.html

당시 피어스 대통령은 인디언들의 마음을 달래는 제스츄어였는지 그 지역을 세알트 추장의 이름을 백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고친 '시애틀Seattl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으로 우리에게도 친근한 시애틀은 이렇듯 신성한 땅과 부족의 몰락을 앞두고 '잠못 이뤘던' 세알트 추장과, 정든 고향을 떠나 보호지역으로 들어가게 된 인디언들의 슬픔이 담겨져 있는 도시입니다.

시애틀에 있는 세알트 추장의 동상. 출처 : http://www.necrosant.net/zbxe/25349

세알트의 연설문은 원본이 환경론자들에 의해 여러번 개작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고, 그가 백인에게 이용당한 지도자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 의혹이나 평가에도 불구하고, 연설문의 내용 자체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세알트 추장이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 대지, 강, 연어, 새, 사슴들 모두 지금의 시애틀에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시애틀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인디언들의 땅과 삶은 철저히 수탈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이렇듯 백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무시 당했던 그의 연설문은 지금도 여전히 지구촌 곳곳의 수많은 개발론자과 건설론자들의 손에 의해 무참히 갈기갈기 찢기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그가 강과 물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강바닥을 파헤치는 덤프트럭과 크레인의 굉음에 묻혀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어머니 대지 위를 흐르는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제들의 외침은 철저히 무시되고 짓밟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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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인생의 경구를 담은 메일을 보내는 친지들이 몇 분 계시는데, 그 중에는 감동적인 내용의 글도 종종 눈에 띕니다. 아래의 글은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던 '공항에서 생긴 일'이란 글인데, 묵혀두기엔 너무 아까운 글이라 소개합니다. 아쉬운 점은 이 글의 출처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혹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공항에서 생긴 일

어느 여인이 곧 이륙할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 한 권과 과자 한 봉지를 구입한 후, 역시 탑승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앉아 있는 탁자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여인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팔을 뻗어 탁자 한 가운데 있는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하나 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곁눈질로 보니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자신의 과자를 하나 집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렇게 뻔뻔한 남자가 있다니!"
 
그녀는 계속 책을 읽는 척하면서 과자를 또 하나 집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도 과자를 하나 더 집었습니다. 여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의 과자에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스럽게 손을 댄단 말인가!"

이런 상황은 과자가 마지막 하나 남을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여인이 그 마지막 과자를 집기 전에 남자는 과자를 가져다가 반으로 쪼개더니 한 쪽을 여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여인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어쩜 이런 남자가 다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남자는 탑승시간이 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여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는 여자에게 '즐거운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는 돌아섰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여인은 남자를 쫓아가서 왜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를 먹었는지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가 탈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여인은 화를 누르고 뒤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읽고 있던 책을 넣기 위해 가방을 여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에 손을 댄 사람은 옆자리 남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뻔뻔하다고 욕하고 어이없어한 행동을 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이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둘 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과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한 두 사람의 마음가짐은 너무 달랐습니다.

여인은 자기 것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먹는 상대가 뻔뻔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겉으로는 안그런 척 했지만 여인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그 마음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반면에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인사까지 건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여인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여러분이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떤 마음을 가졌을 까요?

이 질문과 관련해서 체로키 인디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쳤다. 꽃과 나무, 강물, 바위,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모든 사물을 손자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 했다. 어느 날 손자는 늑대 한 마리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할아버지 뒤로 얼른 숨었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얘야, 늑대도 대자연이 키우는 귀한 생명이란다. 결코 너를 함부로 해치지 않을테니 걱정 말아라."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마음 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단다. 한 마리는 사랑과 평화의 늑대이고, 또 한 마리는 욕심과 미움의 늑대란다.그래서 두 마리 늑대는 늘 싸움을 하지."

그러자 어린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둘이 싸우면 어느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네가 날마다 먹이를 주고 키우는 늑대가 이길 것이다."

잠시 침묵한 뒤에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손자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자연이 모든 생명을 선하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키우듯이 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도 그렇게 키워야 한단다."                

『인디언 설화』중에서


여러분은 마음속에 어떤 늑대를 키우고 계시나요?

출처 : http://bluejazz54.egloos.com/tag/착한늑대/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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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둘째 월요일인 10월 12일은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날을 기념한 '콜럼부스 날(Columbus day)'입니다.

출처 : 뉴욕의 콜럼부스 날 퍼레이드 http://blog.empas.com/jdyi8589/6169554

미국과 중남미 대륙의 백인들은 이 날을 건국의 날로 여기며 대대적인 기념 축제를 벌여왔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날은 땅과 생명을 빼앗기기 시작한 비극의 날이기도 합니다.

요 몇년 사이에 너무 뒤늦기는 했지만, 미국과 중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콜럼부스 날을 재조명하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콜럼부스 날, 중남미 각국에서는 원주민 수만 명이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파나마에서는 원주민들이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국경을 수 시간 동안 폐쇄한 데 이어, 스페인 대사관 앞에서 과거 정복자들의 만행을 규탄했습니다. 또 원주민들과 환경운동가, 농민, 학생 등 수천 명이 시위를 벌이며 토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고 원주민 자치권을 무시한 정부의 에너지 개발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냈습니다.

콜롬비아 남서부 지역에서도 원주민 등 2만 5천여 명이 콜롬비아 정부가 원주민 공동체를 무시하고 있다고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시에서도 마야 인디오 등이 '원주민의 존엄과 저항의 날'을 기념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정부의 광산정책에 항의하던 시위대 가운데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습니다. 

원주민들의 이런 움직임에 발맞추어 지난 2002년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콜럼부스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었습니다. 올해 베네수엘라 의회는 특별회기를 열어 남미 전역에서 콜럼부스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기념하도록 제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원주민들은 이 날을 차라리 "우리 인디언들이 백인을 처음 발견한 날"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콜럼부스 날 축제장에서 인디언 학살을 잊지말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출처 : 뉴욕의 콜럼부스 날 퍼레이드 http://blog.empas.com/jdyi8589/6169554

이러한 갈등과 비극은 콜럼부스가 1492년 서인도 제도에 도착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항해일지(Dario)>의 한 귀절에 이미 그 비극의 씨앗이 적혀 있습니다.

50명의 남자만 있으면 원주민 모두를 노예로 만들어서, 그들이 가진 황금을 전부 빼앗아버릴 수 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댄 브룩(Dan Brook) 교수는 인터넷 잡지 '카운터 펀치(www. counterpunch.org)'에 쓴 <학살을 경축하며(Celebrating Genocide!)>란 글에서 백인들의 원주민 학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백인들은 “야만적인” 타이노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수많은 원주민들을 고문하고, 노동을 착취하고, 그들의 부를 약탈해서 유럽으로 가는 배에 실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남성들의 손을 도끼로 자르고, 여성들의 젖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임신한 배를 갈라내고, 아기를 공중에 던져서 땅에 떨어뜨리거나, 칼이라는 이름의 그 이상한 빛이 나는 물체에 꽂아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기독교, 문명화,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졌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착취당했고, 원주민 대부분이 잔인한 폭력, 과도한 노동,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해버려, 종족이 전멸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콜럼부스 날로부터 시작된 인디언 수탈의 역사가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곳은 사우스 다코타입니다. '수우' 인디언의 본거지인 사우스 다코타는 1890년 인디언보호구역 내의 '운디드 니'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약 300여명의 원주민들이 학살당함으로써 원주민의 저항이 종말을 고했던 곳입니다.


 

백인들은 고유한 생활방식을 가진 우리를 자기네처럼 살게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백인들에게 인디언처럼 살라고 했더라면 그들도 반발했을 것이다. 왜 바꿔 생각하지 못하는가. (샌태 수우족의 추장 ‘큰 독수리’)
백인이란 종족은 둑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는 봄 홍수와 같다. (수우족 대추장 '앉은소')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중에서



아직도 콜럼부스 날을 국가적 연례행사로 치뤄야 하는 미국인들의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1492년의 콜럼부스 날로부터 시작해 최소 6천만 명에서 최대 1억 명까지 학살되었다고 주장하는 원주민들에게 미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자는 입법부의 노력이 있긴 하나, 공식사과에 따른 엄청난 배상이 개입되어 있는 사안인지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콜럼부스 재평가가 들불처럼 일고 있는 이때, 콜럼부스가 발견한 신대륙의 땅에서 대통령이 된 오바마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군요. 과연 오바마는 미대륙 원주민들의 시위와 저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콜럼부스를 피고로 해서 모의재판을 열었는데, 그 결과는 "스페인 왕실을 빙자하여 절도를 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콜럼부스를 건국의 아버지이며, 위대한 탐험가이며, 개척의 영웅으로 가르치던 미국의 학교에서 원주민 수탈과 살륙의 실상을 숨김없이 가르친 결과라고 합니다. 

500년 넘게 추앙받아온 인물의 재평가와 추락에 대해 세계 평화의 높은 비전을 가졌다는 오바마는 과연 어떤 입장일까요? 오바마 정부의 관리 아래 앞으로 개최될 콜럼부스 날은 어떤 항해를 하게 될까요?

당분간 미국의 어린이들과 시민들, 그리고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는 국제사회의 이런 질문에 대해 혼란스런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콜럼부스는 위대한 탐험가인가, 아니면 탐욕스런 침략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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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닉 부이치치(Nick Vujicic)입니다.
나는 전세계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구요.
낚시, 골프, 수영도 좋아합니다.
난 내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이 말을 하는 주인공의 커다란 얼굴이 점점 멀어지며
화면이 풀샷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의 몸을 보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팔과 다리가 없는 자그마한 머리와 몸뚱이가 의자 위에 동그마니 앉아 있는 것 아닙니까?



올해 27세의 호주인인 그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인 '해표지증'으로 팔다리가 없습니다. 마치 오리발처럼 튀어나온 자그마한 왼쪽 발이 그가 가진 사지의 전부입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절망에 빠져 세상 사람 모두를 원망했다고 합니다. 철이 든 8살 무렵에 이미 살아갈 의미나 학교에 가야 할 의미를 잃은 채, 신에 대한 분노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절망 속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와 똑같이 사랑하고 가르치고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도록 강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장애인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인 학교에 보냈으며, 각종 운동과 컴퓨터를 가르치며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이런 부모님의 사랑과 가르침 덕분에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과 절망과 원망 그 모든 것들을 떨쳐내고 훌륭하게 학교를 마쳤으며, 대학에서 회계학과 재무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현재 '행복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전 세계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이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보고 삶에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정상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신체의 일부분이 없을뿐이라고 생각하며, 단 한개뿐인 다리를 가지고 글을 쓰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수영도 하고 드럼도 칩니다. 최근에는 골프도 배워서 입으로 골프채를 물고 골프를 즐깁니다.  

그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자신의 몸을 일부러 연단 위에 넘어뜨려 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길을 가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어요.
이렇게 넘어지면 어떻게 하죠?
여러분 모두 알다시피 다시 일어나야죠?
왜냐하면 이렇게 넘어진 상태로는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가끔 살다보면 당신이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여러분! 저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넘어져 있고, 제게는 팔도 없고 다리도 없거든요. 제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백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려고 노력할 거에요.
만약에 백 번 모두 실패하고 제가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면, 저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실패해도 다시 시도한다면, 그리고 또 다시 시도한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에요.
어떻게 이겨내는 것인가가 중요한 거죠.
강인하게 이겨낼 건가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살다보면 누구나 넘어집니다. 때때로 실패하고 좌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때 일어서는 걸 포기한다면, 남은 인생 모두를 포기하는 겁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지는 것도, 절망을 딛고 희망속에서 일어서는 것도 모두 우리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그의 동영상을 보는 동안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이야기합니다.

“얘야,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인데 그 놈이 가진 것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의 주인에게 먹이를 받은 놈이 이기지.


닉 부이치치가 자기 마음에게 주었던 착한 먹이에 비해 저는 제 마음에게 얼마나 악한 먹이를 많이 주었는지 돌이켜보며, 부끄러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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