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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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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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0.12.27
    '인디언의 복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며 (13)
  2. 2010.11.25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14)
  3. 2009.12.31
    블로그와 함께 한 2009년을 보내며... (32)
  4. 2009.12.18
    사랑신 '비너스'는 왜 조개에서 태어났을까? (33)
  5. 2009.11.07
    마음속 두 마리 늑대, 어떤 늑대가 이기나? (44)
  6. 2009.10.30
    '전생여행', 사실일까? 환타지일까? (46)
  7. 2009.09.21
    황금이냐, 동전 한닢이냐? (53)
  8. 2009.07.13
    나의 연극 인생을 지켜 준 '수호천사' (23)
  9. 2009.06.17
    내 소년 시절을 지배한 만화 <라이파이> (16)
  10. 2009.06.07
    애꾸눈 왕의 초상화는 어떻게 그렸을까? (26)
  11. 2009.05.18
    50대 후반의 컴맹인 내가 블로깅을 해보니 (60)
  12. 2009.05.05
    장관 껍데기 훌훌 벗고 광대로 돌아와보니 (24)
2010년 한해를 보내는 송년 선물로 「인디언의 복음」이란 책에 소개된 '인디언 12계명' 가운데 마지막 계명을 보내 드립니다.

네 인생을 사랑하고 완성하라.
네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라.
너의 힘과 아름다움을 기뻐하라.

이 아름다운 '복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은 「시튼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1860년∼1946년)입니다. 



그는 뛰어난 화가였으며, 소설가였고, 동물연구가였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시튼은 그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해 온타리오에 자리를 잡자, 어려서부터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혹되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동물소설인 「늑대왕 로보의 전설」은 그가 추격한 전설적인 늑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튼은 늑대를 가장 영리하고 숭고한 창조물로 생각한 끝에 자신의 별명을 '검은 늑대'라고 지은 뒤,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물연구와 인디언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 문명은 실패작이다.
논리적으로 결론을 어떻게 내리든지 그 문명은 한 사람의 백만장자와 백만 명의 거지를 만든다.
그 문명의 재앙 아래 완전한 만족은 없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여태 보아온 것 중에 가장 영웅적이고, 가장 신체적으로 완벽하며, 가장 영적인 문명을 지닌 사람들을 대표하여 말한다.
우리는 백인들에게 인디언의 메시지, 즉 인간됨의 교리를 내어놓는다.

이처럼 과격한(?) 관점에서 씌여진「인디언의 복음」은 백인들이 야만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한 인디언들의 삶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가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인디언들은 자연의 영들과 교감하며 지극히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교의 신을 섬기는 백인 선교사들에게 배타적이지 않았습니다. 한 백인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난 인디언 추장 ‘붉은저고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형제여, 우리는 당신네 종교가 당신들의 선조들에게 주어졌고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해졌다고 들었다. 우리 또한 우리의 선조들에게 주어져서 그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전해진 종교가 있다. 우리는 그 방식대로 예배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받은 모든 은총에 감사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가 되라고 가르치며, 종교를 두고 다투지 말라고 가르친다. --중략--
형제여,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말살하거나 그것을 빼앗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를 원할 따름이다.

그러나 추장의 답변을 듣고난 선교사가 했다는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종교와 마귀의 역사 사이에는 어떠한 교제도 있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손도 잡을 수 없다.

선교사의 눈에 비친 인디언은 우상과 마귀 숭배에 물든 미개한 원시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디언이 지상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임을 이해했던 시튼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인디언의 전설, 민담, 노래 등 방대한 자료를 동원했습니다. 그가 소개하는 인디언들의 영적 생활은 무척 고결하고 이타적입니다. 시튼은 ‘이들의 종교는 신학보다 더 건전했고, 이들의 정치는 정치학보다 더 성숙했다’고 탄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디언들의 삶의 철학과 태도입니다.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여긴 인디언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자기 몸의 일부이자 형제자매였습니다.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자연을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심지어는 사냥감에게도 형제애를 지녔습니다. 자신이 사냥한 들소나 사슴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의 노래는 참으로 진실하고 경건합니다.

작은 형제여, 너를 죽여야만 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네 고기가 필요하단다. 내 아이들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고 울고 있단다. 작은 형제여, 용서해다오. 너의 용기와 힘 그리고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마.

한편 시튼은 인디언의 용맹성도 최고로 꼽았는데, 그가 쓴 위대한 전사와 추장들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검은 매', '미친 말', '앉은 소', '제로니모'.....이 영웅적 전사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험난한 황야를 달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신성한 영혼과 대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시튼은 이 책에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백인의 문명은 실패다.
명명백백하게 돈에 대한 광기가 그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는 이같은 것이 인디언들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튼의 말과는 달리 인디언의 문명은 자취를 감췄고, 그들을 정복했던 백인의 문명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튼의 경고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는 것은 그가 백인 문명을 향해 던졌던 질문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인디언을 정복하기 위해 사용한 탐욕과 배타와 파괴의 어두운 이념들이 아직도 우리의 삶 곳곳에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둠에 대해 사랑과 용서의 밝은 메시지를 전하는 '인디언의 복음'이 아직도 우리 가슴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위대한 영이여,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의 음성과 인도를 느끼게 하옵소서.
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제가 바른 사람이 되게 하시고,
언제나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저의 적이 약하고 비틀거리면 그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소서.
그가 항복하면 그를 약하고 곤궁한 형제로 도와줄 마음이 들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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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Hellen Nearing)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을 읽었습니다.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미국 뉴저지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예술을 사랑하고 신비주의 성향을 지닌 부모 슬하에서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음악과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헬렌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을 안고 열여섯 살에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젊은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 무르티와 만나게 된 헬렌은 그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유럽과 인도, 호주를 오가면서 6년 동안 이어진 그들의 열렬하면서도 정신적인 사랑은 크리슈나의 동생이 죽은 뒤 서서히 빛을 잃게 됩니다. 그 뒤 크리슈나 무르티는 '세계의 영적 교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고, 헬렌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다가 스물네 살인 1928년, 운명의 남자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을 만납니다.

스코트 니어링은 부유한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반전과 사회주의 운동의 기수로서 당시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지식인이었습니다. 대학교수였던 그는 대학에서 거듭 해직되고, 가정적으로도 부인과 이혼하기 직전이었고, 스물한 살이나 나이가 많은 중년의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완벽한 이상형을 발견한 것입니다.
 

군중보다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면 지도자가 된다. 두 발짝 앞서면 방해꾼이 된다. 세 발짝 나가면 미친 사람으로 의심을 받는다.-스코트 니어링 



군중보다 세 발짝 쯤 앞에 나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고립되었던 스코트는 헬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1932년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한 뒤,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낡은 농가로 이주하여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돌집을 짓는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이며, 교육자이자 생태주의자인 스코트는 스스로의 생각을 삶으로 실천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은 헬렌이 본 스코트의 모습입니다.

그이는 여러 면을 지니고 있었으며, 상반되는 자질로 가득 찼다. 그이는 이상주의자였으나 강인하고 실천하는 일꾼, 곧 실천하는 이상주의자였다. 또 타고난 종교인이었으나, 어떤 교회의 구성원도 아니었고 어떤 종교집단에도 소속 되지 않았다. 학식 있는 사람이었으나 땅벌레 같은 농사꾼이었고, 공적인 인물이었으나 은둔자로서 행복해 했고, 명망 있고 우렁찬 웅변가였으나 일상의 대화에서는 말수가 적었다. 그이는 음악을 이해하거나 느끼는 데는 무디었지만 언제나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연주하는 내 뒤에 있었다. 학문적인 주제에 관해 간결하고 사실에 바탕을 둔 글을 썼으나, 일상생활에서는 웃음을 머금게 하는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이는 위대하고 포용력이 있는 영혼이었다.-헬렌 니어링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했고 겨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는 여행을 떠나고 강연을 하고 저술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엘리트였지만 문명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고, 사회에 대한 비판과 인생에 대한 성찰 등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데도 충실한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중 최소한의 시간만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명상과 여행 등 자신의 내면을 가꾸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을 이용해 일을 했으며, 게으름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식사 또한 통밀빵과 생과일, 소금을 안 친 팝콘처럼 가능한 조리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고, 육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방식은 건강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반세기 동안 병없이 건강하게 생활한 그들의 몸 자체가 증거가 되었습니다. 

삶의 매 순간을 명료한 의식과 치열한 각성 속에서 살아갔던 그들의 사랑은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화로운 삶'을 평생 실천한 그들의 삶은 전세계적으로 귀농과 채식 붐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루어 낸 업적보다도 삶을 대하는 그들의 진지성, 그 태도에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스코트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 되던 해에,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곡기를 끊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헬렌 니어링은 스코트의 침상에 앉아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그이에게 중얼거렸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구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마치 동양 어느 고승의 죽음과도 같은 모습으로 남편이 떠난 뒤, 헬렌은 하늘에 있는 스코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스코트,
우리는 50년 동안 사랑과 동지애 속에서 같이 살아왔습니다. 결혼 생활은 결코 그 사랑의 본질이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관심과 목표와 행동이 일치하는 두 사람으로서 함께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면서 또한 함께 해온 많은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지적이고 훈련된 당신의 소양은 나보다 훨씬 위였고, 기술은 더 뛰어났으며, 경험도 더 넓었지만, 우리는 만나서 당신이 나의 부족한 능력을 뛰어넘도록 이끌어준 이해와 협력의 바탕 위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비로운 작용으로 평등하게 되었고, 우리로 하나의 삶을 살았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영원히 당신에게 최상의 찬사를 보냅니다.


헬렌은 이 책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몇 년 후인 87세 무렵에 썼는데, 그들이 쓴 다른 책들과 달리 평생을 함께 한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녀의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글들은 그들의 사랑을 한층 아름답고 숭고하게 만들어줍니다. 그 사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둘 중 누구도 상대방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마주 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쳐다 보는 데에 있다"고 말한 생텍쥐베리의 말을 이들은 평생에 걸쳐 실천했습니다.



헬렌 니어링은 남편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지만, 불행히도 그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92세가 된 1995년 9월 17일, 차 사고로 인해 그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명예와 돈과 권력과 수많은 욕망을 쫓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의 삶은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산업주의 체계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스코트와 헬렌이 평생을 함께 한 ‘땅에 뿌리박은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 그들이 실천한 삶의 방식과 죽음에 대한 태도, 남녀의 경계를 뛰어 넘은 동반자적 사랑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이 문명의 산소호흡기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금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채식주의, 명상, 자연, 노동 등의 단어는 제가 참으로 좋아하고 꿈꾸는 말들이지만 막상 몸으로 실천하기에 너무나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이 책은 제가 얼마나 많은 현대 문명의 이기들과 욕망과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채찍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헬렌 특유의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따뜻함과 명랑함으로 저의 몸과 영혼을 어루만져 줍니다.

저는 이 책을 닫으며 죽어가는 스코트의 머리맡에서 헬렌이 불러 주었다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옛노래를 소리내어 읊조리는 것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대해 경의를 표했습니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하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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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기축년이 저물어 갑니다. 

출처 : http://: pleasedontstare.wordpress.com/.../

올해는 저에게 '블로그스피어'라는 새로운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으로 행복한 한 해가 되었습니다.

겨우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문서작성이나 하고 메일이나 교환하던 수준의 컴맹이었던 제가 파워블로거인 '탐진강'님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5월 3일 첫 블로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블로그과의 인연이 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웃블로거들과의 소통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열심히 쓰다보니 자격도 부족한 사람이 블로그 관련 강연도 하게 되고, 연말이 되면서 '티스토리 우수 블로거'로 선정되기도 하고, '다음 우수 블로거 심사위원장' 맡아서 심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블로그 세계에 한 발 다가 선 느낌이었습니다만, 초보 블로거치고는 참으로 과분한 격려가 쏟아진 듯 합니다.
 
제가 처음 '블로깅의 즐거움' 대한 글을 썼을 때 몇몇 분이 '블로깅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한동안은 그 말이 잘 들어오지 않더니 이제 그 말의 깊은 뜻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블로깅에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 희망과 좌절....등등 인생의 쓴맛과 단맛과 신맛과 짠맛과 매운맛이 다 들어 있더군요. 

때로는 무척 고독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정신과 육체의 에너지를 심하게 소진시키기도 하는 이 블로깅을 꾸준히 하는 힘은 오로지 블로깅에 대한 '믿음' '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블로거들에게 밤늦게 글을 쓰게 하고, 사진을 찍게 하고, 하루종일 무엇을 쓸지 머리를 쉬지 못하게 만들고, 열정으로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이 있더군요.
 
바로 이웃 블로거들과의 소통, 격려, 감사, 사랑, 우정....그것들이 있기에 수많은 블로거들이 꾸준히 블로깅을 하고 계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블로거 이웃들이 보내주신 관심과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저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새해 행복과 희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다음 우수 블로거 심사위원장의 인사말' 중 블로그스피어에 대한 저의 소망을 담은 부분을 올해의 마지막 인사로 대신합니다.  


(중략)

.......그런 토론을 통해 저는 블로그스피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묵직한 무게감이 많은 블로거가 주목을 받다가, 전문성이 돋보이는 블로거가 주목을 받는 흐름에서 좀 더 삶에 밀착되고 대중적인 블로거가 주목 받는 흐름을 보이더군요.

이런 흐름을 타고 미래에는 또 어떤 블로거들이 주목을 받게 될지 흥미로운 숙제가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제 바램은 미래에는 대중성이 떨어지는 분야들도 좀 더 주목 받는 블로그스피어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각 분야에서 인기가 있거나 대중성이 높은 종목에 지나치게 많은 블로거가 분포해 있고,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적은 분야는 블로거의 수도 적고 내용도 아직 풍성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조회수나 인기도에서 뒤질 수 밖에 없는 문화분야와 대중성이 높은 연예분야를 한 카테고리에 넣고 단순 비교하는 것에 대해 분리를 고려해 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콘텐츠로서의 중요성에 비해 비상업적이고 비대중적이라는 이유로 기존의 매체에서 소외된 창작, 학술, 예술, 전통과 같은 분야에 좀 더 많은 블로거들이 참여하고 이들의 블로그가 사랑 받고 높이 평가 받는 흐름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블로그스피어가 얼마나 풍성해지겠습니까?

당선되신 모든 블로거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이들 한 분 한 분은 정말 소중한 콘텐츠를 가꾸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당선되지 못하신 블로거들, 또 후보에 오르지 못하셨더라도 성실하게 자신의 블로그를 가꾸어 가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사랑과 격려를 보냅니다.

블로거 여러분과 Daum View의 운영진 여러분, 2010년에는 더욱 발전하시고 하시는 일들, 꿈꾸시는 모든 일들에 희망과 축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출처 : http:// tourtalker.joins.com/Myfriday/qna_view.asp?Q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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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은 '비너스'입니다. 

이 여신의 탄생에 관한 그림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입니다.   

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의 <비너스의 탄생>

전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왜 비너스가 조개 속에서 탄생했다고 설정했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신화가 '진주조개'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꿀 때 가장 선호하는 것은 보석입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나 금이나 에메랄드 같은 대분분의 보석은 땅속에서 생깁니다. 땅속이 아닌 바닷속에서 탄생한 보석은 진주가 유일할 겁니다. 진주는 대부분의 광물성 보석과는 달리 조개라는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보석입니다.

'비너스의 탄생'은 '진주의 탄생'을 의인화한 것 아닐까요?

꿈 해몽 책에도 '조개꿈'은 여성, 재물, 집, 일감, 사업장 등을 상징한다고 되어 있군요.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는 꿈은 진리나 보물을 얻는 만사형통 꿈이고, 조개를 많이 잡는 꿈은 태몽일 경우에는 여자아이를 낳기 쉬우며 미혼모일 경우에는 혼담이 오고 남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보여주게 된다고 풀이합니다. 



조개 속에서 어떻게 진주가 만들어질까요?

조개의 껍질 바로 밑에는 외투막이라는 막이 있습니다. 조개껍질과 외투막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조개는 껍질을 만드는 체액을 분비해서 이물질을 감싸버립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겹 한겹 쌓이고 두꺼워지면서 마침내 진주가 됩니다. 진주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콘키오린이라는 단백질과 탄산칼슘의 층이 수백겹 이상 차곡차곡 쌓여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leering.egloos.com/1532749

이처럼 진주는 상처 난 조개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렇다고 상처 난 모든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체액을 잘 분비하지 못하는 조개는 썩어버리고 맙니다. 진주를 만드는 조개가 될지 썩어가는 조개가 될지는 조개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바다 속에 조개 하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조개는 이웃에 사는 조개를 만나 하소연을 했습니다.

"내 몸 속에 아주 귀찮은 것이 있어.
무겁고 둥글게 생겼는데 아주 귀찮고 불편해."

그러자 이웃에 사는 조개는
아주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아주 건강해.
몸 속에 아무것도 이상한 것이 없지. 나는 정말 건강해."
"좋겠다. 난 정말 이 둥글고 무거운 것 때문에 살 수가 없어."

그때 이웃에 사는 게 한 마리가 지나가다
조개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곤 건강하다고 자랑하는 조개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건강하지? 물론 그럴 거야.
하지만 네 이웃이 참아내고 있는 그 고통스런 것은 정말 진귀한 진주란다."

그렇습니다 그 조개가 간직하고 있는 고통은 바로 진주입니다
아름답고 진귀한 진주를 간직하려면 그만큼의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삽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고통을 주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과 행복은 고통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보석을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보물이란
고통스럽지만 함께 해야 할 바로 그 사랑입니다.
 

진주 이야기 / 칼릴지브란 <아름다운 생각> 중에서  


참된 사랑은 고통스러운 순간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바닷속을 통과하면서 사랑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체액을 짜내는 사람만이 진주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체액을 짜내지 못하거나 고통을 뱉어버리면 그 사랑은 썩어버리거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됩니다.

비너스가 조개에서 탄생했다는 신화는 바로 '고통이란 사랑을 완성해 가는 신의 축복'이라는 이야기의 상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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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인생의 경구를 담은 메일을 보내는 친지들이 몇 분 계시는데, 그 중에는 감동적인 내용의 글도 종종 눈에 띕니다. 아래의 글은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던 '공항에서 생긴 일'이란 글인데, 묵혀두기엔 너무 아까운 글이라 소개합니다. 아쉬운 점은 이 글의 출처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혹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공항에서 생긴 일

어느 여인이 곧 이륙할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 한 권과 과자 한 봉지를 구입한 후, 역시 탑승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앉아 있는 탁자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여인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팔을 뻗어 탁자 한 가운데 있는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하나 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곁눈질로 보니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자신의 과자를 하나 집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렇게 뻔뻔한 남자가 있다니!"
 
그녀는 계속 책을 읽는 척하면서 과자를 또 하나 집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도 과자를 하나 더 집었습니다. 여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의 과자에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스럽게 손을 댄단 말인가!"

이런 상황은 과자가 마지막 하나 남을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여인이 그 마지막 과자를 집기 전에 남자는 과자를 가져다가 반으로 쪼개더니 한 쪽을 여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여인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어쩜 이런 남자가 다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남자는 탑승시간이 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여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는 여자에게 '즐거운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는 돌아섰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여인은 남자를 쫓아가서 왜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를 먹었는지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가 탈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여인은 화를 누르고 뒤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읽고 있던 책을 넣기 위해 가방을 여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에 손을 댄 사람은 옆자리 남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뻔뻔하다고 욕하고 어이없어한 행동을 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이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둘 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과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한 두 사람의 마음가짐은 너무 달랐습니다.

여인은 자기 것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먹는 상대가 뻔뻔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겉으로는 안그런 척 했지만 여인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그 마음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반면에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인사까지 건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여인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여러분이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떤 마음을 가졌을 까요?

이 질문과 관련해서 체로키 인디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쳤다. 꽃과 나무, 강물, 바위,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모든 사물을 손자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 했다. 어느 날 손자는 늑대 한 마리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할아버지 뒤로 얼른 숨었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얘야, 늑대도 대자연이 키우는 귀한 생명이란다. 결코 너를 함부로 해치지 않을테니 걱정 말아라."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마음 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단다. 한 마리는 사랑과 평화의 늑대이고, 또 한 마리는 욕심과 미움의 늑대란다.그래서 두 마리 늑대는 늘 싸움을 하지."

그러자 어린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둘이 싸우면 어느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네가 날마다 먹이를 주고 키우는 늑대가 이길 것이다."

잠시 침묵한 뒤에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손자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자연이 모든 생명을 선하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키우듯이 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도 그렇게 키워야 한단다."                

『인디언 설화』중에서


여러분은 마음속에 어떤 늑대를 키우고 계시나요?

출처 : http://bluejazz54.egloos.com/tag/착한늑대/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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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 번도 '전생'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 TV에서 연예인들이 최면을 통해 전생담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은 있지만,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꾸며진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또 사후의 세계나, 영의 세계, 불가사의한 심령 현상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책들도 여러 권 읽었지만, 그저 환상적인 소설책 정도의 흥미로 대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전생여행」이란 책은 소설책이라고 치부하기 힘든 어려운 숙제를 저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영우님은 신비가나 영매나 소설가가 아니라 신경정신과 전문의이며, 의학·심리학 박사이며, 미국임상최면학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Hypnosis)의 교육자문위원(Approved consultant)이며, 공인 최면치료사(Certified Hypnotherapist)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원종진(가명)이라는 환자를 '전생퇴행' 시키면서 알게 된 전생담과 영들과의 대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내용들은 진료 기록과 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정신과 의사의 환자 관찰 기록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주저되는 내용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조선시대 비구니에서부터 중세 스페인에서 전쟁터에 끌려간 농부 호세,
인도의 거지, 고구려의 귀족,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아프리카의 전사, 이집트의 귀족, 프랑스의 수녀 등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으로 왕래하며 전개되는 한 청년의 전생이야기는 마치 환타지 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과연 이 이야기들은 사실일까?
아니면 황당무계한 거짓말일까?
아니면 환자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수많은 세계사적, 지리적 지식들이 총동원된 환타지일까? 
거짓말이거나 꾸며진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한 세부적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만약 사실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이렇듯 복잡한 전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전생은 무엇일까?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의문에 휩싸이게 되고, 자신의 전생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원종진은 전생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전생의 자신과 어떤 관계였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 내용들은 저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겨 주었습니다. 그동안 제 곁을 스쳐 간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저와 만남을 이루고 있는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원종진은 마침내 영적 존재들이 들려 주는 지혜의 목소리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중 저의 가슴에 파문을 던진 내용은 바로 '지혜의 목소리'라고 일컬어지는 고급영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희생, 인내, 진실, 사랑 등 아주 흔한 단어이면서도 실천하기 어렵고 잊고 살기 쉬운 말들에 대한 예지의 말들은 세속에 찌든 저의 가슴에 따뜻하게 스며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해 '지혜의 목소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부모들은 자녀가 더 잘되거나 더 성취하기를 원할까요?
왜 사람들도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세상에서 말하는 출세를 하려고 합니까?
그것을 얻을수록 자신의 존재기반이 확고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우주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본질적인 힘은 얻을 수 없습니다.
우주의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뛰어 넘어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인간의 영혼은 끝없는 윤회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최면을 통해 누구나 전생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저는 알 지 못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질문에 대해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없는 게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내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지와 같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이 책에 실린 전생담과 영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숙제를 던져줄 것이라는 것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abcgo/636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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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저마다 일에 쫒겨서 가정을 돌보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왔습니다. 

법조인. 출판인, 교수 등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 모두들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출장을 가러 집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집을 잊는다. 
일거리를 집에까지 가지고 가서 밤을 새우기도 하다보니 아내가 불평을 한다.
일요일이나 휴일에도 아이들과 놀아 줄 여유가 없다....... 

 
저마다 한 마디씩 고민스럽다는 투로 얘기를 하지만 그 속에는 은근히 자기가 얼마나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과시하려는 태도도 엿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의 가장 선배격인 60대의 대학교수 선배가 불쑥 이런 얘기를 꺼냈습니다. 

누가 황금 한 덩이와 100원 짜리 동전 하나를 놓고서, 둘 중에 아무거나 골라 잡으라고 하면 무엇을 잡겠나?



 
모두들 질문의 의도를 의심스러워 하며 대답이 없자, 선배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누구나 황금을 택하겠지?
그런데 만약 자네들이 강도에게 쫒겨서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하세.
핸드폰 밧데리도 꺼졌는데, 마침 공중전화가 있어서 구조를 요청해야 될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황금과 동전 한닢 중 무엇을 택하겠나? 
 
모두들 물론 동전 한닢을 택하겠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자네들은 아내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황금이 팔요하다고 생각하지?
내가 말하는 황금이란 돈만이 아니라 권력, 명예, 성취감 등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의 통칭일세. 인간이면, 그리고 남자라면 누구나 그것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
그리고 자네 아내들도 그것을 열렬히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안그런가?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는 학문, 곧 학계에서의 업적을 이루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살았네.
밤낮으로 책을 읽고, 강의하고, 논문을 쓰고, 새로운 이론을 생각하며 지내다보니 어느덧 저서도 여러 권 생기고, 학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지.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잃어버린 것이 있었네.
바로 아내의 사랑이었지.
아내도 나의 성공을 도와주고 기뻐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아내는 나에게 바친 자신의 희생, 잃어버린 자기의 인생,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 성공한 남편을 보면서 느끼는 극심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리며 남모르게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낸 거야.
그러는 사이에 점점 나에 대한 사랑도 식은거지.
내가 그걸 깨달았을 때는 우리 가정은 파탄 일보 직전까지 이른 상태였네. 
 
우리는 모두 숙연히 그의 얘기를 경청했습니다.  

그때 어느 선배가 나에게 황금과 동전 한닢의 비유를 가르쳐줬네.
아내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황금이 아니라 동전 한닢으로 전화를 걸어주는 작은 사랑이라는 충고를 곁들여서 말이야. 




우리는 그제서야 그가 말하는 비유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사랑을 잃었을 때 나는 그게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지.
학문보다도, 교수라는 직업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그때 비로소 처음 안 거야. 
나는 다시 시작했지. 동전 한 닢의 사랑을 말이야. 
그 다음은 자네들이 미루어 짐작하게. 

우리는 저마다 선배의 말이 지닌 깊은 의미에 감탄하며 동전 한닢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습니다. 자그마한 칭찬의 말, 감사의 표현, 사랑의 속삭임, 애정 어린 태도, 작은 선물, 부드러운 말, 따뜻한 포옹....여성지나 주간지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평범한 일들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일에 쪼들려서라기보다는 무관심과 이기심 때문이라는 데에도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일과 인생에 대해서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랫만에 솔직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자리인데다 저마다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인지라 자리는 길어졌고, 우리는 오랫만에 인생을 돌이켜보는 흐뭇함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자정이 넘어 사람들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비틀거리며 작별을 고하고 나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부터는 아내에게 잘해 줘야지.

이런 저의 다짐에 대견스러워 하며 초인종을 누른 저는, 문을 여는 아내의 화난 얼굴을 보는 순간 이마를 탁 쳤습니다.
 
아차차차.....늦게 들어 간다고 전화하는 걸 깜빡 잊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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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려서부터 음악이나 문학이나 미술 등 예술에 심취하는 취향이 너무도 강했습니다.

그런 저를 아버지는 엄하게 대하셨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저에 대한 애정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동안 저에게 꾸지람이나 욕설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입가에 떠도는 따뜻한 미소가 어머니의 전매 특허였습니다.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연극에 미쳐 술독에 빠져 지내고, 방탕한(?) 생활 끝에 병에 걸려 집에 돌아왔을 때도 부모님은 한 마디도 나무라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셨습니다.

또 휴양하던 병자가 판소리에 미쳐서 노래를 불러대니 참다못한 옆집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댁의 아드님이 무당될려고 저런 괴상한 노래를 부르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런대도 어머니는 빙긋 웃으시며 “우리 아들이 노래부르는 걸 좋아해요.” 하실 뿐이었습니다. 제가 기분이 나빠 한동안 판소리를 안 부르니까 어느 날 어머니는 “너 왜 무당 소리 안하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 소리가 듣기 좋아요?”하고 물으니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하는 소리니 듣기 좋지.”하고 빙긋 웃으셨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배화여고 독어교사를 하던 중「뻐꾹 뻑 뻐꾹」이란 연극에서 거지노인 역을 했는데, 그게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보여드린 제 무대 연기였습니다.



공연을 보시고 돌아간 어머니께 어땠냐고 물으니까 “응, 영락없이 네 아버지 같더라. 그런데 네 이모가 거지 노릇은 다음에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하며 웃으셨습니다.

아들이 대학 교수가 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는 제가 직장마저 그만 둔 뒤 연극을 하겠다고 하자 처음엔 실망하셨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이해를 하고 신문에 연극이나 국악 기사가 나면 오려 두었다가 제 책상에 슬며시 놓아주시곤 했습니다. 

주변의 일가친척들이 오히려 왜 아들을 말리지 않느냐고 어머니를 비난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대답은 언제나 똑 같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야지요.”

부모님은 그렇게 아들을 믿은 대가로 혹독한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힘들게 사시다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결혼하는 모습도 보지 못하시고, 「서편제」로 유명해지는 기쁨도 누리지 못하시고, 무명 배우의 부모로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두 분 다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제가 돈벌이도 안 되고 독재 정권 밑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진보적 연극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심하게 반대했더라면, 저는 연극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언제나 저를 믿어주고, 든든한 후원자로서 존재하셨습니다. 전 두 분이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저의 '수호천사'가 되어 지켜주고 계실거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예술의 황량한 들판에서 버텨온 것은 오로지 부모님의 믿음과 사랑 덕분입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큰 ‘빽’이 되는지 실감합니다. 좌절하고 불안하고 절망에 빠질 때마다 저를 지탱해주는 것은 저 세상에서도 저를 응원하는 '수호천사'가 계시다는 든든함입니다.

왜 저의 부모님은 언제나 제 편이었을까요?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통에 그걸 여쭤보지 못한 게 한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부모님에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연극을 한다고 부모님을 실망시켰을 때 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잃지 않으셨느냐고.

언젠가는 제 꿈에 나타나 가르쳐주시겠지요.

그 가르침을 이어 받아 저도 우리 아이들의 ‘빽’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저 세상에 가서도 아이들과 이 세상의 수많은 외롭고 소외 당한 이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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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만화 보는 것을 ‘무지무지’ 좋아했습니다.

집 근처에 골방 만화방이 있었는데, 그 주인이 창백한 얼굴을 가진 17, 8세쯤 된 소아마비 청년이었습니다. 5원에 13권이나 10원에 25권을 빌려서 옆에 쌓아 놓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쥐오줌 자국이 누렇게 낀 골방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만화를 보는 순간은 너무도 황홀했습니다.

그때 많은 만화를 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열광했던 김산호 작가의 「라이파이」는 어린 시절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검은 테가 있는 안경을 쓰고 머리에 'ㄹ'자가 새겨진 반달 모양의 두건을 쓰고 날씬한 몸에 멋진 의상을 입은 라이파이.


태백산맥의 깊은 산속 동굴에 비밀기지를 두고 윤박사가 설계한 멋진 비행선인 제비기를 타고 다니는 라이파이.



제비기를 운전하는 아름다운 제비양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악당들과 싸우고, 광선총과  긴 밧줄로 황홀한 모험을 벌이는 라이파이의 이야기는 어린 저를 흠뻑 도취시켰습니다.



 


1959년부터 1962년까지 4부작 총 42권으로 발간되었는데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피너 3세와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등 여러 시리즈가 있었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녹의여왕과 라이파이>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인카의 후예로 지구를 멸망시키려 하는 악녀로서 라이파이와 숙명의 대결을 벌이는 왕녀지만 예쁜 얼굴의 그녀를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녀에게 사정없이 매혹당한 저는 한 편 한 편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라이파이의 모습을 흉내 내서 머리에 두건을 쓰고, 마분지로 검은 테 안경을 만들어 쓰고, 보자기로 망토를 만들어 쓰고, 아버지가 벽장에 감추어 넣은 일본도를 몰래 꺼내어 들고 외치곤 했습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가 왔다. 칼을 받아라!”

제가 서투른 칼질로 달려들면 누나들은 기겁하며 도망가곤 했습니다. 그래도 착한 저의 누나들은 보자기로 제 머리를 정성스럽게 씌워 주기도 하고, 망토의 매듭을 예쁘게 묶어주곤 했습니다.

저는 또 라이파이처럼 하늘을 날고 싶어서 동네 앞 개울에 있는 다리에서 뛰어 내리기 훈련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날은 오지 않고, 괜한 발목만 삐어 절뚝거리고 다니곤 했습니다.

또 스케치 북에다 온통 라이파이의 모습과, ‘제비기’와, 그의 파트너이자 애인인 ‘제비양’의 모습을 그려서 부모님께 보여드리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기하게 보시면서 “잘 그린다! 멋있다!”하며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라이파이는 저에게 단순한 만화가 아니었습니다. 저의 친구이고, 사랑이고, 희망이고, 미래였습니다. 또한 저 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의 어린아이들에게는 그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세대를 아우를 수 있을만큼 끝없는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입니다.

 「황금박쥐」나 「배트맨」이나「스파이더 맨」과 같은 만화들은 영화나 에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만들어져 전세계 관객들을 도취시키고 있습니다. 



전「라이파이」도 언젠가는 전 세계 어린이와 성인들을 도취시키는 캐릭터로 화려하게 부활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부활의 몸짓에 저도 한몫할 수 있기 위해 열심히 꿈을 꾸는 중입니다.  



 

김산호 선생

본명: 김철수, 호 : 만몽(卍夢)


1939년 만주 출생. 부산과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극장 간판을 그리며 학비를 벌었다. 1957년 서라벌 예대 입학, 같은 해 잡지 만화세계에 독립 투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 
1959년 본격적으로 김산호라는 필명으로 라이파이 시리즈를 발표하게 된다. 이 만화의 폭팔적인 인기로 산호는 당시 최고의 인기만화작가 중 한사람이 된다.
 20대 초반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그는  성공된 미래와 부를 버리고 미국으로 새로운 도전을 떠나게 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한국의 전설을 소개한 동양적인 만화로 한국적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현재 한국에 돌아온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연구, 후진양성,작품활동 등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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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선물> 네 번째 이야기 : 제가 들었거나, 여기저기 떠돌거나, 책에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제 가슴에 남은 소중한 이야기들을 크게 윤색하지 않고 소개하는 선물 가게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읽고 가세요. 

옛날에 애꾸눈 왕이 살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애꾸눈이 아니라 아름다운 용모와 샛별 같은 두 눈을 가진 멋쟁이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기강이 너무 문란하자 왕은 엄명을 내렸습니다.

"누구든지 국법을 어기면 그 자의 한 눈을 뽑아 기강을 바로 세우라!"

그런데 아뿔싸! 첫번째로 국법을 어긴사람은 다름아닌 왕이 가장 사랑하는 왕자였습니다. 왕자를 그냥 두자니 국법을 어기게 되고, 왕자의 두 눈을 뽑자니 아비로서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은 왕자의 눈을 대신하여 자신의 한쪽 눈을 뽑게 했답니다!

모든 백성들은 왕의 준법정신과 자식사랑에 감탄해마지 않았고, 그 이후로 국법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왕 자신은 한쪽 눈알이 빠지고 그 근처가 흉물스럽게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 때문에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았습니다. 이윽고 늙어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왕은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신하들은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가를 초청해 왕의 얼굴을 그리게 했습니다. 화가의 솜씨는 너무도 훌륭해 주름살 한 줄 수염 한 올 어느 것 하나 왕의 얼굴과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그림을 본 왕은 한숨을 쉬며 그림을 찢었습니다. 

너무도 흉한 자신의 한쪽 눈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란 신하들은 또 다른 유명한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두 번째 화가는 빠진 눈알에 아름다운 눈동자를 그려 넣었고, 일그러진 부분을 깨끗한 피부로 바꾸어 그렸습니다. 참으로 준수하게 그려진 초상화를 본 신하들은 기뻐하며 왕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림을 찢었습니다. 

그건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신하들은 왕의 마음에 들 화가를 찾을 수 없어 전국에 공모를 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아무도 지망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시골의 어느 무명 화가가 자원을 했습니다. 며칠 뒤, 그가 그린 그림을 본 왕은 참으로 기뻐하며 많은 상을 내렸습니다.

무명 화가는 왕의 얼굴을 어떻게 그렸을까요? 

그는 왕의 정상적인 한쪽 얼굴만을 옆모습으로 그렸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그리는 화가입니다. 우리가 그릴 모델은 바로 우리 자신의 영혼입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애꾸눈 왕의 얼굴처럼 아름다움과 추함, 어둠과 빛, 행복과 불행, 고통과 환희, 희망과 절망, 사랑과 미움, 슬픔과 기쁨,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 그림 중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그림을 선택하면 추악함과 아름다움, 행복과 불행, 선과 악이 서로 함께 존재하며 대립할 것입니다. 

두번째 그림을 선택하면 위선과 거짓이 진실을 가릴 것입니다.

세번째 그림을 선택하면 어둠보다 빛이, 절망보다 희망이, 미움보다 사랑이 앞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십니까?

혹시 아무도 그리려 하지 않는 추악하고, 어둡고,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미움에 가득 찬 옆모습만을 그리려 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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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의 컴맹인 내가 블로그를 하다니>를 쓴 게 5월 3일 이니 블로깅을 한지 딱 보름이 되네요. 

<김명곤 전 장관, 백지영 노래 듣고 눈물 흘리다>를 쓴 블로그 전도사 탐진강님의 지도 편달 아래 지금껏 블로깅을 해 본 소감은....

한마디로 "늦었지만 시작하기 너무 잘했고, 너무 즐겁다."입니다.

지난 보름 동안 밤잠을 설쳐 가며, 서투른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들겨 가며, 머리에 쥐 나게 뭘 쓸까 고민해 가며, 사진 하나 올리는 데 한 시간씩 투자해 가며, 위젯이란 단어 이름도 몰랐던 제가 세 개의 위젯을 혼자서 끙끙 대고 달아 보며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이건 오로지 저의 개인적인 소감이니 동의하실 부분도 있겠고, 그렇지 않을 부분도 있을 겁니다. 

<블로깅이 나를 즐겁게 해 주는 다섯 가지 이유>

1. 글쓰기의 새로운 즐거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 등의 청탁에 의해서 글을 써 왔지 제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이렇게 글을 부지런히 써보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 전의 글쓰기에서는 반응을 체크할 길이 없었습니다. 몇몇 지인이나 팬으로부터 오는 반응 외에는 누가, 얼마나, 어떻게 읽었는지 체크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에서는...다 아시다시피....조회수, 믹스업, 댓글, 트랙백, 프로필 위젯.....반응이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저의 글이 살아서 움직이는 흐름 속에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2. 새로운 이웃과의 즐거운 소통 생겼습니다.

블로그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귀한 분들과 인연이 생겼고, 그 분들과소통을 하는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서툴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소통이지만, 소중하게 가꾸고 싶은 이웃들입니다.

탐진강님, MAGWI님, okgosu님, sky~~님, 곤이엄마님, 도라에몽님, 머니야 머니야님, 모과님, 바람나그네님, 뷰라님, 실비단안개님, 쏭군님, 예스비님, 인디아나 밥스님, 캔디님, 흰 소를 타고님, 솔소리님, 들꽃p님.....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저의 글을 읽어주고, 자주 방문해 주셔서 큰 격려가 됩니다.

저 역시 자주 들리지는 못하지만 그 분들의 글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옵니다. 블로그를 통해 이렇게 많은 분들과 삶의 한 부분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3. 무한한 정보의 바다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검색하고 이미지나 동영상을 검색하다가, 어떤 때는 글쓰기도 잊어버린 채 정보의 바다를 떠돌곤 합니다.
 
그리고 무한히 전개되는 새로운 정보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 봅니다. 

그러면서 이런 정보의 바다에 나도 <김명곤의 세상이야기>라는 돛단배 한 조각을 띄울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어 더욱 열심히 노를 저어 갑니다. 


4. 하루하루를 알차게 사는 즐거움 줍니다.

매일 쓰지는 못해도 언제나 머릿속이 소재 찾기와 쓸 글에 대한 계획으로 분주합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위원장과, 강연과, 공연 계획과, 잡다한 일상 생활로 분주하지만 요즘 저를 제일 집중시키는 것은 블로그입니다. 마치 저의 일기장이라도 되는 듯, 분신이라도 되는 듯, 저의 머릿속을 떠날 줄 모릅니다.

이런 열정이 얼마나 갈 지 알 수가 없지만, 지금은 무조건 그 열정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5. 미래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그동안 경험한 많은 일들과, 그동안 써왔던 시, 수필, 희곡, 시나리오 등을 정리하는 한편, 앞으로 써야할 글들과 앞으로 해야 할 새로운 일들로 인해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장차 제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공간으로서 블로그가 큰 역할을 해 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아직 보름 밖에 안된 초보가 블로그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냐고 비웃을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사랑의 느낌은 초보자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거라고 가볍게 웃어 주세요. 

다만 한 가지, 블로그가 나를 힘들게 하는 나쁜 점....잠을 못 자게 한다는 것!

일찌기 '머니야 머니야'님이 블로그에 너무 집중하면 건강을 해치니 조심하라고 가르침을 주었는데 그 가르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상사병에 걸리니 앞으로는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렵니다. 

블로그, 사랑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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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 장관 직을 그만 둔지도 어느 덧 2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TV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연기자로, 연극 <밀키웨이>에서는 극작과 연출가로, 최근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위원장으로서 즐겁고 바쁘게 살고 있다.
 

내가「대왕 세종」에 출연하고 있을 때, 모 일간지에 동정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한동안 여기저기서 화제가 됐다.


김명곤 씨 “장관 껍데기 훌훌~ 다시 광대로”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 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김명곤(55·사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KBS 1TV 사극 ‘대왕 세종’(극본 윤선주·연출 김성근)에서 배우로 복귀한다. 1999년 자신이 연출한 연극 ‘유랑의 노래’에 출연한 지 8년 만이다.

그는 그동안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연기와 멀어졌다.김 전 장관은 ‘대왕 세종’에서 고려 황실의 후예로 조선 왕조의 전복을 꿈꾸는 옥환 역을 맡았다. 옥환은 어린 세종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로 초반 30회까지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가 대하 사극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일보 2007년 10월 6일자 기사 중 일부)

나는 대학교 다닐 때만해도 광대라고 하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코에 빨간 공을 붙인 서양의 삐에로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줄타기하는 광대를 처음 보았는데 그 광대가 줄에 올라서서 “이 줄타기가 옛날에는 화랑의 기예였소!.” 하길래 깜짝 놀랐다. "화랑이라면 신라 시대의 무사 집단인데 줄타기를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광대에 관한 기록을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그윽하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며 유교, 불교, 도교의 3교를 포함한 것으로 민중을 교화하는 것이다.

신라 시대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쓴 글이다. 이 글을 바탕으로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는 이렇게 썼다.
 

선가(仙家)는 신라의 국선 곧 '화랑'으로 보며, 그 시원은 삼한의 소도(蘇塗)의 제관으로 고구려의 '조의선인(鳥衣仙人)'이다.

이런 글들을 보니 고대사회에서 예술가들은 하늘에 국가적 제사를 지낼 때는 제관으로서 활동했고, 그들의 신분은 왕족이나 귀족에 속하는 상류계급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화랑들과 함께 예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천민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광대”라는 말은 고려시대에 서역에서 들어 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인데, 예술가를 지칭하는 단어인 광대가 화랭이, 재인 등의 용어와 뒤섞이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광대들은 기생, 무당, 중, 백정 등과 함께 천민계급으로 살아야 했다. 이들은 사대부나 평민들과 한 동네에서 살지도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자기들끼리 기예를 전수하면서,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를 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광대들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런 상소문을 썼다.

광대가 봄·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과 겨울이면 추수를 바라고 농촌으로 쏠리는데, 특히 창촌에서는 사당, 창기, 주파, 화랑, 악공들의 잡류들을 엄금해야 합니다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왕의 남자>는 이 무렵의 떠돌이 남사당 광대패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실학사상이 일어나고 평민 가사, 탈춤, 판소리 등의 가치를 양반들 중의 몇몇이 언급하게 되면서 광대들의 가치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고종과 대원군이 권력을 쥐었던 무렵에는 광대들이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잔치에 초대받고, 심지어 명인, 명창, 국창 등의 이름으로 궁궐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기예를 선보이며 많은 돈을 벌고 신분의 상승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후 광대들은 또 다시 천대받게 된다. 그 상황은 일제시대의 학자인 육당 최남선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조의 재인, 광대들은 적극적으로 특별한 권장을 입지 못하고, '무식무기력한 예인'들이 사회 최하층적 지위에서 구차히 존재하다 보니까 거기 쇠잔이 있을 뿐이지 발달이 없으며 저락이 거듭될 뿐이지 향상을 볼 수 없음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조건 하에 있다 보니까 '수 천 년을 하루같이' '몸을 놀리는 기술'과 '우스개 놀이'쯤에 그치고 드디어 다른 데 만한 순희곡적 생장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명 풍화에는 조금도 유익한 바가 없으니 이는 연희를 실시하는 자가 학문이 없어 '동양의 부패한 풍습'만 알 뿐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했던 <서편제>는 이 무렵의 떠돌이 판소리 광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나는 대학시절에 오페라나 이태리 민요나 가곡이나 뮤지컬이나 비틀즈 등의 서구음악의 열광적 팬이었고, 괴테나 세익스피어나 입센이나 도스토에프스키 등의 서구문학(독문학)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우연히 판소리를 알게 된 후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고향인 전주를 무지 싫어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흔적이 너무나 짙은 그 곳을 어서 떠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진학공부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한국을 빨리 떠나 독일로 유학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인간문화재인 박초월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전라도 말이 그렇게 다양한 표현과 영롱한 문학적 향기가 있는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핏줄에 대한 애정 곧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조상과 조국에 대한 사랑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전통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이 아니다. 전통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았던 삶의 내용과 형식 곧 그 분들의 삶의 자취이고 향기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세월이 지나면 전통의 계승자가 될 것이며, 언젠가는 전통 그 자체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에게 전통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또 창조의 열정에 불타게 하는 소중한 원천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무식무기력’한 광대들에게서 내 예술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나는 ‘수천 년을 하루같이’ ‘동양의 부패한 풍습'을 몸으로 전해 온 그들의 예술에 매혹 당하고 심취하고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들의 ‘몸을 놀리는 기술’ 속에서 삶의 깊은 애환과 감동을 보았고, 그들의 ‘우스개 놀이’ 속에서 예술적 창조의 편린을 보았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애인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 종족의 일원이 되고자 ‘광대’라는 말을 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연기, 연출, 극작, 경영, 행정에다가 연극, 영화, 국악, 방송 등 여러 분야에 간여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당신의 정체는 뭔가? 아마도 이게 그들의 질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나는 그 모든 것을 추구하는 광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럼 당신은 어떤 광대가 되고 싶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책에 나오는 발렌친 카그다예프라는 브리야트 족의 샤먼과 저자와의 대화로 대신하고자 한다.

질문 : 당신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답변 : 훌륭한, 혹은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좋은 샤먼이 되고 싶고,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샤먼이 지녀야 할 미덕이다.

반면 모든 악과 문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남을,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베풀어 주는 것이 사랑의 첩경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현자와 성자들이 설파했던 조화와 사랑, 이것의 실천자로서의 샤먼 곧 ‘무당’의 역할에 대한 바이칼 샤먼의 지혜로운 말이 ‘광대정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광대란 '넓은 광(廣), 큰 대(大)'라는 말 뜻 그대로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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