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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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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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5.20
    두 동강난 5·18, '임을 위한 행진곡'의 운명은? (16)
  2. 2009.07.30
    공권력에 포위된 40분...난 피가 말랐다. (31)
  3. 2009.06.11
    '악수'를 둘 것이냐, '정석'을 둘 것이냐? (26)
  4. 2009.06.04
    어느 배우의 혼란과 교수들의 시국선언 (72)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이 정부 개최 7년 만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국가보훈처가 기념식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기로 한 데 따른 반발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국가보훈처 주관의 '5.18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망월동 구 묘역'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치른 것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기념식.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32449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은 기념식.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82141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 열사와, 1979년 겨울에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을 다룬 노래굿 「넋풀이」에서 처음 불려졌습니다.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에서 가사를 따와 황석영씨가 가사를 쓰고, 광주지역 작곡가였던 김종률씨가 작곡을 했지요. 그 뒤, 1982년에 제작된 음반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80년대 군부 독재의 살벌했던 시절, 이 노래는 거리에서 술집에서 무대에서 광장에서 젊은이들과 시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고, '새 날'을 향해 흔들리지 않게 '맹세'를 다져주고, '깨어나서' 외치게 해주었습니다.

그후 민주화운동은 물론이고 각종 시민사회단체나 노동단체나 학생단체의 집회에서 '민중의례'의 일부로서 널리 불리며 애국가 만큼이나 많이 합창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 집회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랬던 이 노래가 이제는 찬밥 신세가 되어가나 봅니다.

국가보훈처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에서도 최근에 공무원 노조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포함된 민중의례를 하지 못하도록 각 지자체에 공문을 내려보냈으며, 공무원 노조의 5·18 성지순례를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기념사도 총리 명의로 축소되었습니다. 5.18단체들은 정부가 5·18민주화운동을 홀대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한 평생 나가자’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으며,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할 사람이 또한 얼마나 되겠으며, ‘깨어나서’ ‘뜨거운 함성’을 외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동안 5·18은 그 용어에서부터 역사적 굴곡을 겪어 왔습니다. 

80년대 초에는 '광주사태', '광주반란' 등의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민과 학생들은 '광주 민중 항쟁' 혹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란 용어를 썼지만 군부의 무서운 통제와 억압 때문에 지하에서나 은밀하게 사용되던 용어였습니다. 그 말을 쓰던 사람들은 수배되거나, 감옥에 가거나, 갖은 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총을 든 공수부대원이 도망치던 시민을 쫓아 곤봉으로 내리치고 군홧발로 밟고 있다. | 5·18기념재단 제공

지금 우리는 5·18을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광주 민중항쟁'이나 '광주 성역화' 등의 용어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고,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도 2004년부터 정부가 직접 주관해 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주와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상처가 되어가는 역사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30년 동안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추진해 왔던 각계의 노력도 두 동강이 났습니다.

이제 이 노래와 더불어 5·18은 급속도로 우리 사회의 찬밥 신세가 되어 갈 것입니다. 아마 내년 행사는 행사의 규모나 예산이나 참여폭도 줄어들 것이고, 해가 지날수록 우리 사회에서 점점 그 의미가 축소될 것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뒤로 돌아가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갈까요? 노래 하나를 부르지 않으려고 행사를 두 동강 낸 정부의 옹졸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앞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운명은 어찌 될까요?
트랙백 1 AND COMMENT 16

어제 오마이뉴스의 '광장을 열어라' 특별 기획 시리즈 제1탄으로 저의 글이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겨서 소개합니다. 


 
MB 정부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침해와 광장공포증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서울광장 경찰버스 봉쇄가 이어지고 있고, 서울시는 문화행사 이외에는 사용 제한을 내걸었습니다.  광장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민사회와 야당은 광장의 위기에 맞서 주민직접발의라는 직접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찾아오는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광장을 열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을 진행합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공동 기획, 광장을 열어라 ①]

우리에게는 본디 '광장'이란 게 없었다. 우리말 중 광장과 가장 가까운 단어로는 '마당'을 꼽을 수 있겠다. 마을의 공터 마당이든, 장터 마당이든, 커다란 대갓집의 앞마당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 마당에서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다양한 삶의 행위들이 펼쳐졌다. 

씨뿌리기나 김매기나 추수를 끝낸 민초들은 마당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축제를 벌였다. 낮에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기며 풍물을 치기도 하고, 밤이 되면 횃불을 켜고 모여 앉아 밤을 새워 신명난 굿판을 벌였다.
 
우리의 전통예술인 탈춤, 풍물, 판소리, 남사당놀이 등은 마당에서 민초들과 함께 어울리던 마당의 예술이었고, 마당의 놀이였다. 마당에 모인 민초들은 함께 울고 웃으며 고단한 삶을 잠시 위로하고 휴식하며, 새로운 노동의 활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마당은 때로 양반이나 지배 권력에게 위협적인 장소로 돌변하기도 했다. 수탈과 억압이 행해질 때는 분노한 민초들이 마당에 모여 학정과 비리를 성토하기도 하고, 때로는 떼를 지어 관아로 행진하기도 했다. 민란이나 동학혁명과 같은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이루어질 때는 '사발통문'을 돌려 삽시간에 수많은 군중들이 농기구와 죽창과 횃불을 들고 모여들기도 했다.

이렇듯 마당은 우리 민초들의 삶의 공간이요, 축제의 공간이요, 대화와 토론의 공간이요, 저항과 혁명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초석이 된 공간, 광장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릴 예정인 서울광장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노란색 모자에 노란색 풍선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이러한 마당의 의미를 근대화를 통해 서구적 개념과 섞어서 되살려낸 공간이 '광장'이다. 2500여년 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아고라(agora)'에 모여 토론하고 집회를 하던 것이 광장문화의 시작이었다. 아고라는 본래 시민들의 집회를 뜻하는 단어였는데, 집회가 열리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로마 시대에는 '포럼(forum)'이 아고라의 역할을 했다.

이 아고라야말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공간이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시민들과 귀족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조금씩 발전되었다. 귀족들은 왕정을 물리치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었지만, 그들 또한 시민들에게 억압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시민들은 그 권력에 대한 저항을 아고라에서의 대화나 토론이나 시위 등을 통해서 이루어냈다.

세계의 유서 깊은 도시에는 어김없이 아고라의 전통을 이어 받은 광장이 있다. 그리고 그 광장들은 억압적 권력과 시민들의 저항의 역사로 얼룩져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벌어진 몇 광장의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의 '콩코드 광장'은 본래 이름이 '루이15세 광장'이었는데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루이 15세의 동상을 철거하고 단두대를 세운 뒤,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와 혁명지도자인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등 1000여명을 처형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의 '붉은 광장'은 본래 이름이 '아름다운 광장'이었는데 사회주의 혁명 후 시위, 처형, 폭동, 연설의 주무대가 되었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체코의 '바츨라프 광장'은 1968년에 구 소련군이 시위대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여 수많은 시민을 학살한 '프라하의 봄'의 비극을 안고 있다.

중국의 '텐안먼(천안문) 광장'은 1919년의 5.4운동과 1976년의 4.5운동의 발상지로 중국 역사상 가장 주요한 국민적 운동이 벌어진 곳이었으나, 1989년의 대규모 민주화시위 도중 진압군의 발포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광장들은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아픔을 씻어내고 지금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세계적 이벤트나 축제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역사의 무게를 가진 '서울광장'




2006년 월드컵 당시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서울광장 거리응원단이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리의 '서울광장'도 그 광장들 못지않게 만만치 않은 역사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서울광장이 2004년 현재의 모습으로 고쳐지기 전에는 '시청 앞 광장'이라 불렸고, 그 이전에는 '대한문 앞 광장'이라 불렸다.

1897년 무렵, 러시아공사관으로 도망했다가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펼쳐보려고 대한문 앞을 중심으로 방사선형 도로를 만들고 앞쪽에 광장을 설치했다.

이 대한문 앞 광장에서 고종을 옹호하는 시위가 열렸고, 일제 강점기에는 애국지사들의 3.1만세 운동이 열렸다.

그 뒤 4.19혁명이나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 광장은 국민들의 의사를 표출하는 공간으로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의 물결이 시청 앞 광장을 뒤덮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대규모 거리응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와 함께 수많은 문화행사들이 계속 펼쳐지면서, 서울광장은 우리나라 광장문화의 상징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최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서울광장의 개방을 둘러싸고 시민들과 당국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다가 '노제(路祭)'를 계기로 잠시 개방된 적이 있다.
 
40분 동안 피가 말랐던 기억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릴 예정인 서울광장을 경찰이 개방하기로 약속한 오전7시를 넘기고도 차량을 철수하지 않고 봉쇄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제가 열리던 5월 29일 오전 7시,
 
노제총감독이었던 나는 서울광장에 있었다. 그런데 7시에 경찰차량을 철수시키기로 약속한 경찰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시위진압차로 철통같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약속을 지킬 것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상부의 지시가 없기 때문에 철수할 수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음향기재와 의상과 소품과 대형 북을 실은 차량들과 크레인 등이 경찰차에 막혀 광장 주변에 진을 치고 있었고, 스탭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발을 동동 굴러댔다. 11시에 시작하기로 한 노제를 치르려면 음향 테스트와 가수와 무용수와 배우들의 연습과 영상테스트 등을 한 번쯤은 해야 하는데, 만약 계속 철수가 늦어지면 행사가 엉망이 되어 대실패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임자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철수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상부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행자부나 경찰청의 책임자를 수배해서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동안, 대한문 앞길에 시민들과 차량이 몰려들더니 광장을 막은 경찰들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노래를 틀기도 하고, 마이크로 경찰이 물러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대한문 앞길이 항의하는 시민들의 인파로 뒤덮이자, 마침내 경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이 7시 40분이었다. 모두들 초긴장 상태에서 최선을 다한 끝에 노제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그 40분 동안의 피말리는 긴장과 분노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공권력에 포위된 텅 빈 광장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니다. 정부는 서울광장에서 벌이는 대규모 집회나 행사를 불허할 뿐 아니라, 졸속으로 만든 조례를 통해 광장문화를 축소시키거나 없애버리려 시도하고 있다.

민심의 용광로이며, 소통의 광장이며, 신명의 놀이터였던 서울광장은 점점 서울의 고립된 섬으로 변해 가고 있다. 시위진압차에 둘러 싸여 시민들과 격리된 서울광장에게 묻고 싶다.

서울광장, 너는 누구냐?

트랙백 1 AND COMMENT 31


바둑은 흑과 백으로 나뉜 두 사람이 땅따먹기 전투를 하는 놀이입니다. 이 전투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수순이 바로 ‘정석(定石)’입니다. 


하지만 정석에만 매달리면 다양하게 변화하는 전투 상황에서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에, 때로는 정석을 벗어난 '묘수(妙手)'를 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석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채 묘수를 두다보면, 그게 오히려 ‘악수(惡手)’가 되어 큰 낭패를 보곤 합니다.

요즘 정부에서 두고 있는 수를 보노라면, 묘수를 둔다는 게 악수로 변해 형세를 망치고 있는 바둑 꼴이 떠오릅니다.

그 중 요즘 가장 많이 쓰는 수가 ‘팔짱끼기'입니다. 

대학교수, 문인들, 종교계의 원로들, 변호사들. 대학생들이 줄줄이 시국선언을 통해 국정쇄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국선언의 물결은 갈수록 번져나가 이제는 트위터를 통한 블로거들의 시국선언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시국선언들에 비해 블로거들의 시국선언은 소개가 덜 되었기 때문에 여기 소개합니다. 블로거들 답게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 첫 번재 항목에 들어갔군요.

1.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 대한민국 헌법 21조는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현행 법과 제도를 오남용함으로써 침해 또는 억압하고 있다. 이에 온라인 상에서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발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법적 제재를 최소화할 것을 요구한다.

2. [집회 시위의 자유] 대한민국 헌법 21조는 집회 시위 및 결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불법 폭력 집회로의 변질을 명분으로 사전적-포괄적으로 봉쇄하는 등 기본권을 심대히 침해하고 있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대의절차의 왜곡을 보완하는 국민적 기본권인 만큼 폭넓게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3. [경제 민주화]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은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의 민주화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부의 불평등을 공고화하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구제, 보호를 외면해왔다. 이에 이명박 정부가 87년 민주화 운동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경제 민주화 조항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며 경제정책의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하지만 당국은 팔짱을 낀 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있습니다. 추모 정국에 편승해 정치 공세에 나서고 있지만, 조금 지나면 곧 잠잠해질 거라고 내다보고 팔짱끼기로 대응하는 듯 합니다.

그 다음 잘 두는 수가 '원천봉쇄'입니다.

시청 앞 서울광장은 삶과 문화의 공간이자, 시민 민주주의의 상징 공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곳이 원천봉쇄를 외치는 공권력과 시민들이 맞부딪치는 살벌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천봉쇄는 번번이 거대한 시민들의 민주화 물결에 밀려 후퇴하기도 합니다. 어제의 서울 광장은 하루종일 시민과 공권력이 밀고 밀리는 전투장으로 변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 간 수는 '맞불놓기'입니다. 

시국선언에 반대하는 교수들, 종교계 원로들, 시민단체들의 '시국선언을 반대하는 시국선언'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 각자가 자신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민주사회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 선언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견해라기보다는 시국선언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 성격이 강합니다. 마치 <시국선언 OK 목장의 결투>라도 벌이고 있는 형세입니다.


이 불행한 국론 분열, 때늦은 이념 대결의 형세를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묘수' 둘려다 '악수'를 두는 '실수'를 그만 두고, 원칙에 입각한 '정석'을 두어야 합니다.

그 중 가장 시급한 수가 '소통의 정석'입니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국민의 뜻을 충분히 살피고 미처 살피지 못한 채 잘못된 정책이 결정됐으면 바로 잡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치의 정석일텐데, 말로만 ‘소통’하겠다고 떠들면서 소통을 가로막는 악수만 두는 통에 온 나라의 공장과 학교와 광장에서 시민들과 공권력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마침 22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신 읽은 기념사를 통해 대통령 자신이 이 문제를 언급하셨더군요.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을 받들어 힘 있게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제발 그 말이 입에 발린 겉치레 말로 끝나지 않기를 저 수많은 촛불들과 함께 기원합니다.

그 다음 최후에 둘 수는 '민주주의 정석'입니다.

언론기사에 따르면, 그 기념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가 피력되었더군요. 

- 민주항쟁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뿌리내려 민주주의의 제도적, 외형적 틀은 갖추어져 있지만, 운용과 의식은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민주주의는 합리적인 절차와 제도, 그 자체이며 계속 보완하고 소중히 키워가야 할 가치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독선적인 주장이 아니라 개방적인 토론이, 극단적인 투쟁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화가 존중받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합리적인 절차와 제도, 그 자체이며 계속 보완하고 소중히 키워가야 할 가치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독선적인 주장이 아니라 개방적인 토론이, 극단적인 투쟁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화가 존중받는 것이다.

참으로 탁월한 견해이기는 합니다만, 그 모든 말을 그대로 대통령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사람들의 의견도 있더군요. 그 주장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집회, 결사 및 표현의 자유가 무력을 앞세운 공권력에 의해 원천봉쇄 당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검찰이, 최근 퇴임한 임채진 전 검찰청장의 고백대로 정권의 주문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정부 기관과 정책 연구기관들은 정부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해 일언반구 못한 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책들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심에는 등을 돌린 채,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위한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하려 하고 있다.
-신문·방송법을 국민여론을 심사숙고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민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사례들을 분석해 볼 때, MB정권 집권 이래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자, 이제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악수를 계속 둘 것이냐, 정석을 둘 것이냐? 

그 선택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의 빛으로 빛날 수도 있고, 절망의 어둠에 잠길 수도 있습니다. 부디 '팔짱끼기', '원천봉쇄', '맞불놓기'의 악수를 그치고, '소통'과 '민주주의'의 정석을 두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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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력 10년쯤 된 어느 중견배우를 만났는데,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가 한 말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 연극을 시작한 신인 배우 시절, 저는 독재적인 연출가에게 연기를 배웠습니다. 그는 연습 내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욕설을 하고, 때로는 손찌검도 했습니다. 어느 여배우는 지시한 연기를 제대로 못한다고 발길에 배를 채이기도 했고, 어느 남자 배우는 연출이 던진 재떨이에 맞아 눈자위의 살이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은 그가 시키는대로 움직일 뿐,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거나 연출의 지시에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불호령과 함께 배역을 그만 둘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연습장은 언제나 숨막히는 긴장과 폭발할 것 같은 불만 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연출가 밑에서 몇 년 동안 극단 생활을 한 뒤, 다른 연출가의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출가는 정반대로 민주적인 연출가였습니다. 배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연기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고, 배우의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도 매우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로 설명하며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연출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기에 혼란이 생기고, 연출가의 그런 태도가 자신감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연출가를 무시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연기에 대한 긴장도 해이해졌습니다.

연기란 배우 자신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연기를 완성해 간다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저는 지금 독재적 연출가와 민주적 연출가 사이에서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의 고민을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그 배우와 흡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기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고, 내면은 스스로의 힘으로 키워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역시 내부의 창조적 힘으로 스스로 굴러 갈 때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사회를 민주적으로 가꾸어 나가겠다는 욕구보다 강력한 지도자의 독재적 리더쉽에 의지하는 욕구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한 욕구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때마침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124명이 6월 3일에 서울대 신양인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언문을 발표했군요.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고 밝힌 단체 회원 20여 명이 고성을 지르며 단상으로 몰려들고, 그 중 한 회원은 시국선언문을 찢어 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소란으로 기자회견은 잠시 중단됐고, 학생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동안 고성과 삿대질로 참가 교수들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울대에 이어서 중앙대 등 전국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참여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환경운동연합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도 시국모임을 갖고 입장을 발표했다고 하니 그러한 충돌과 혼란은 앞으로 더욱 뜨겁게 우리 사회를 달구어 나갈 듯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민주사회를 가꾸어 나가기 위해 "80년대의 뼈아픈 진통"을 또다시 겪고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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