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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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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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1.08
    블로그, '총맞은 것처럼' 과의 신기한 인연 (46)
  2. 2010.01.06
    왜 기업의 CEO들이 노래를 부를까? (22)
  3. 2009.11.18
    해외명품 바람, 국내명품 바람 어디로부나? (30)
  4. 2009.09.01
    부서진 영혼들의 외침, '스프링 어웨이크닝' (21)
  5. 2009.07.23
    타락한 동양의 아름다운 전통, 접대문화. (32)
  6. 2009.05.05
    장관 껍데기 훌훌 벗고 광대로 돌아와보니 (24)
블로그라는 새로운 세계는 때로 저에게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맺어주기도 합니다.

그 중 저의 일과 관련해서 너무도 신기하게 맺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총맞은 것처럼>의 작곡가 방시혁입니다. 

전 그와 만나기 전의 이야기를 2009년 5월 22일에 <'총맞은 것처럼'에 얽힌 블로그와의 인연http://dreamnet21.tistory.com/17>이란 제목으로 올렸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작년 3월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올라오다가 금강 휴게소에서 백지영씨가 부른 <총맞은 것처럼>을 듣고 감전이 된 듯한 전율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들었다... 


후배 소개로 파워 블로거인 탐진강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 사연을 얘기했는데, 다음 날 <김명곤 전 장관, 백지영 노래 듣고 눈물 흘리다>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려 조회수 10만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 뒤 탐진강님 덕에 나도 블로그를 개설하고,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사연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 이유' 때문에 그 노래의 작곡가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음악하는 후배를 통해 작곡가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저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로서는 대중가요 작곡가에게 평생 처음 거는 전화였습니다.

방 : 여보세요!
나 : 아, 저....김명곤이란 사람인데요....
방 : 누구시라구요?
나 : 김....명곤이요....
방 : 네?...아, 장관님? 야, 정말 그 분이세요?
나 : 맞아요. 내가 그 사람이예요.
방 : 제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셨다면서요?
나 :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방 : 저도 블로그 하거든요!
나 : 아, 그래요? 반가워요!
방 : 와, 정말 반갑습니다!
나 : 나 정말 그 노래에 반했어요. 가수도 잘 불렀지만 작사, 작곡, 편곡, 연주...모두 정말 가슴에 와닿았어요!
방 : 감사합니다!
나 : 내가 전화한 이유는....
방 : 네!
나 : 내가 지금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는데...
방 : 뮤지컬이요?
나 : 쉐익스피어의 <햄릿>을 우리나라 배경으로 바꾸고 오필려를 주인공으로 해서 '여성적 시각으로 뒤집어본 햄릿'이랄까...그런 작품인데....
방 : 아, 예!
나 : <총맞은 것처럼>을 듣는 순간 너무도 그 작품하고 잘 맞는 노래라서 음악적 모티브를 좀 사용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예요.....
방 : 저, 근데 그 뮤지컬 작곡자는 누구인가요?
나 : 작곡자 없어요. 지금은 나 혼자 대본 쓰는 단계인데 그 노래로부터 받은 영감을 사용하려면 허락이 필요해서...
방 : 저 외람되지만, 그 작곡 제가 맡으면 않될까요?
나 : 예?....아직 제작자도 없고, 제작이 언제될지 기약도 없는데....
방 : 언제 되셔고 좋고 제작이 안되셔도 좋아요. 제가 한 번 하면 안될까요?
나 : 일단 한 번 만나서 얘기를 하도록 하죠.

그런데 만나보니 그의 어머님은 제가 어릴 때 살던 전주 고향집의 옆집에 살던 분이었고, 그의 외삼촌은 저와 초등학 때부터 절친했던 후배이고, 그는 서울대 미학과를 나온 대학 후배이기도 하더군요.
 
출처 :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90329130510731

우리는 신기한 인연에 기뻐하며 바로 의기투합해서 작품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방 작곡가는 뮤지컬을 처음 해보는 것이니 공부가 필요하다며 뮤지컬도 열심히 보러 다니고 뮤지컬을 전공한 음악학도와 함께 공부도 하며 차근차근 작곡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뜻밖에도 재능 있고 열정에 가득 찬 작곡가를 만난 저는 작품을 계속 수정해가며 그가 '감'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난 해 11월쯤, 그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선생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봤는데 너무 감동이었어요. 이제 '감'이 온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구체적인 제작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든 게 막막하고 제작의 가능성이 1%도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작과 투자는 쉽게 되는 게 아니라 작곡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1년 뒤 공연을 할지 2년 뒤 할지도 알 수가 없겠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처음에 한 말을 다시 한 번 다짐하듯이 반복했습니다.

가요계 일로 돈은 충분히 벌고 있으니까 보상이나 작곡료는 걱정 안하셔도 돼요. 
제작이 어려워서 공연이 안되어도 제가 맡은 작곡은 꼭 할께요.
전 오로지 선생님과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제가 하겠다고 한 일에 대해선 책임을 질께요.  

전 그의 말에 용기백배했습니다. 인기와 돈으로 얽혀진 걸로만 알았던 대중가요계에 이처럼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인 신뢰와 예술에의 열정으로 뭉쳐진 인재가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되자 갑자기 일이 너무도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작품을 공연하기에 딱 맞는 극장으로 점 찍어 놓았던 모 극장의 대표는 제 얘기만 듣고서 선뜻 극장 사용을 약속해 주었고, 제가 가장 같이 하고 싶었던 국내 최고의 뮤지컬 제작사 대표 역시 제 얘기를 듣는 순간 제작을 책임지겠다고 선뜻 약속을 했습니다. 이 분들과의 인연과 만남은 다음에 또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요.

올 연말쯤에 막을 올릴 때까지 해야할 일도 산더미이고, 헤쳐나가야 할 파도와 암초도 수없이 많겠지만 전 지금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블로그로 이어진 한 젊은 작곡가와의 인연'이 마치 신의 축복처럼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됩니다. 

예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키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뮤지컬을 최선을 다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워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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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CEO들이 음악회에서 노래를 하거나, 사진이나 그림 전시회를 하거나, 독서 모임에서 시낭송을 하거나, 연극에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띕니다. 

그리고 기업 직원이나 공무원들의 교육이나 연수 프로그램에도 영화보기나 뮤지컬 감상하기나 연극 만들기나 여러가지 예술활동이 포함되는 추세라고 합니다.

출처 : http://anews.kb.icross.co.kr/anews/read.php?idx=279537

창조력과 표현력과 자기 개발 능력을 키우는데 예술활동이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증거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예술활동이란 특수한 재능을 부여받은 특수한 사람들의 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예술가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름 속의 신선이나 선녀 같은 존재-성공한 예술가인 경우- 이거나, 떠돌이 보헤미안이나 백수건달 같은 존재-실패한 예술가인 경우-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서 예술활동은 더이상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키워 나가고, 그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가꾸고 있습니다. 

전 세계 블로그스피어에서 활동하는 수천만 명의 블로거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작가가 아니지만 엄청난 양의 글을 쓰고, 미술가가 아니지만 사진이나 그림이나 에니메이션을 만들고, 영화감독이 아니지만 동영상을 제작하고, 평론가가 아니지만 책이나 공연이나 영화나 TV의 리뷰를 올립니다.

블로그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활동들은 예술활동과 참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술의 대중화', '예술의 민주화' 광법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공간인 블로그스피어는 그래서 저에게 많은 자극과 도전과 흥미를 일깨워줍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술활동에 목말라할까요?

저는 그 현상을 한마디로 '현실 끌어올리기'라고 이름 짓고 싶습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꿈과 이상을 지향합니다. 꿈과 이상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욕구...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탈출해서 예술에 몸을 담그는 이유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나 커서 두 세계의 조화를 이루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엄청난 혼돈 속에서 창작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작품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도 없고, 창작 작업에 관여하는 사람은 그 작품에 깊이 빠져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지고, 오로지 믿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확신과 열정뿐입니다.

이러한 창작의 꿈꾸기 과정에 현실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이 경영인데
예술이 경영의 논리에 압도되어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돈이 벌리든 말든 가족이 굶든 말든 오로지 예술에만 빠져 산다는 것도 현대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예술은 '감성과 직관에 의한 창작의 산물'이며, 경영은 '이론과 논리에 의한 비즈니스의 산물'이라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말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며 한편으로는 틀린 말입니다. 창작의 꿈꾸기 속에도 혼돈의 늪을 빠져 나오려는 논리적인 투쟁이 있으며, 경영의 비즈니스 속에도 논리가 따르지 못하는 감성과 직관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술적 감성과 직관이란 창작과 관련된 복잡하고 섬세하고 까다로운 제작 과정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컨트롤 해낼 수 있는 그러한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와 결합이 될 때 커다란 힘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적 감성과 경영적 논리의 적절한 배합과 조절'......

이것이 수많은 CEO들이 노래를 부르고, 수많은 비즈니스맨들이 뮤지컬을 보고, 수많은 블로거들이 블로깅을 하는 이유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뮤지컬 「캐츠」와 「미스 사이공」을 세계적으로 성공시켜 젊은 나이에 명성을 떨친 트레버 넌이란 연출가가 있습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ontentsView.d...

그가 영국 국립극장장으로 선임되어 혁신의 돌풍을 일으키며 성공적인 임기를 마친 뒤, 예술가가 극장장으로서 경영을 해보니 어떻더냐고 물어보는 기자에게 이런 재미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극장을 경영하는 것은
높은 절벽의 양쪽 끝에 놓여진 '외줄'
'외발 자전거'로 타고 가면서
한 손으로는 '접시 세 개' 돌리며 가는 것과 같더군요.

국립극장장이나 장관을 하던 시절, 저 역시 예술가의 입장에서 경영자의 입장으로 바뀌다보니 이 말이 너무도 가슴에 와닿아서 종종 인용하곤 했습니다. 

이 말을 제나름대로 해석해 본다면
양 절벽은 ‘예술’과 ‘경영’, 또는 ‘이상’과 ‘현실’’ 절벽입니다.
외발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 '시련''역경' 극복해야 합니다. 
줄을 타고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균형감각’ 필요합니다.
그리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접시 세 개를 한 손으로 돌릴 만큼 뛰어난 '엔터테이너의 기량'을 발휘해야 합니다.

예술과 경영, 이상과 현실의 외줄타기.....

출처 : http://: www.swingwalking.com/technote/board.php?board...

오늘날의 수많은 블로거들과 직장인들과 비즈니스맨들과 경영자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 중의 하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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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명품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군요.

전 '루저의 난' 사태를 통해 요즘 여대생들 사이에서 명품 가방 열풍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외국여성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정작 명품의 고장인 이태리나 프랑스 여대생들은 명품 가방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그런 가방을 가지고 학교에 오는 학생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군요. 영국이나 독일 등 다른 나라 여성들도 여대생이 그런 비싼 명품을 사고 그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그 프로그램에 나온 여대생들이 캠퍼스 퀸들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니 평범한 여대생들 사이에서도 명품에 대한 선호가 장난이 아니라는군요. 사귀는 여학생에게 명품을 사주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로 돈을 타내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장기를 판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은밀하게 엄마들 사이에서 떠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가방뿐이겠습니까? 구두, 신발, 옷, 화장품, 시계, 지갑, 심지어 차까지 해외명품에 대한 무분별한 선호는 도를 넘어서고 있는 듯 합니다.

출처 : http://k.daum.net/qna/view.html?qid=0CXag

그 유행은 공연예술계에까지 파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요즘 공연 예술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화제는 뭐니뭐니해도 해외명품 공연물의 수입 증가일 것입니다.

<오페라의 유령>, <캐츠>, <레 미제라블>, <맘마미아>등을 필두로 뮤지컬 열풍이 포문을 연 후로 해외 공연물의 수입은 클래식과 오페라로 이어지며 기세 좋게 흥행 가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공연들이 흥행에 성공할까요? 관객들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왜 관객들이 몰려들까요? 세계적 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예술가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세계 공연 시장을 통해 작품성과 관객 동원력이 입증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몇십만원의 티켓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공연들이 들어오면서 일어난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일 겁니다.

영화처럼 마음대로 유통이 되지 않는 공연 예술의 특성상 해외명품 공연 작품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입으로 전해 듣고 책으로만 소개됐던 유명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은 대단히 깊은 예술적 감흥을 주어 때로는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그 공연으로 받은 예술적 정서가 자신도 모르게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가 우리나라 예술계에 가져다 준 효과는 어떠한 것일까요? 무엇보다 예술의 편식 현상이 심화되어 균형 잡힌 예술 관객층의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명품 의류나 화장품을 써 본 사람이 태국이나 아프리카의 제품을 좋아하거나 국산품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편식이 심화될 때 나타날 가장 심각한 현상은 전통 예술이나 순수 창작품들에게 닥치는 위기일 것입니다. 

유명 공연들로부터 자극 받아 예술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 이상으로 급속도로 고급화, 서구화되어 가는 관객들의 예술적 취향 때문에 전통 예술이나 창작 예술이 설 자리는 점점 위축되어 갈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동네에 초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 동네 상점들이 문을 닫아야하는 위기가 생기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지방 문예회관의 운영자를 만났는데 그가 대단히 흥미 있는 얘기를 하더군요. 

문예회관이 설립된 뒤로 주민들의 문화 향상을 위해서 서울의 유명 공연들을 열심히 초대했답니다. 그랬더니 눈이 높아진 주민들로부터 지방 예술가들의 작품이 외면당하고, 그들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가 냉랭해져서 생계를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는 겁니다.

극장의 수입을 올리는 일과 지역의 문화 예술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운영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번민하는 경영자의 고민이 어찌 그만의 고민이겠습니까?

지금 세계 문화계의 가장 중요한 현안 과제는 거대 자본과 인력이 집중되어 있는 강대국의 일방적 문화 흐름에서 어떻게 하면 다양한 종족의 다양한 문화를 키워 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과제를 안고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예술가들은 거액의 돈을 주고 유치한 해외명품 공연은 매진의 환호성 속에서 열광적 찬사를 받는 반면, 전통예술이나 창작예술들은 썰렁한 객석과 차가운 반응 속에서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 경계경보가 울리고 있는 해외명품 바람, 어찌해야 할까요?

가방이든 공연물이든 자유로운 수입의 물꼬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죠. 제일 좋은 해결책은 해외명품 못지 않은 국내명품을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명품이란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해외명품들은 대개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뛰어난 장인들의 손에 의해 갈고 닦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 장인들의 명품을 수입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몇 안되는 장인들이 그들과 단순 경쟁해서 이기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들과 예술가 덕분에 우리의 제품들도 세계적 수준으로 나아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또 국내명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도 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119498...

양주와 와인과 사케의 명품 선호 바람을 제치고 막걸리 열풍이 부는 것이 그 한 징조입니다. 제가 막걸리 바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막걸리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 삶과 정서와 너무도 깊이 연결된 술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 www.codimate.co.kr/bbs/board.php?bo_table=B04...

그동안 싸구려 국산품이라는 냉대 속에서 돈 없는 서민이나 농부들이 마시는 술로 치부되었던 막걸리가 당당하게 해외 수출을 하고 백화점에 진열되고 대학가의 애주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현상 속에서 저는 우리 국산명품들의 미래와 희망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해외명품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의 제품들을 사랑하는 건강한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징조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사랑하는 전통예술과 창작예술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희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자, 이제 국산명품 바람을 일으킬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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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을 관람했습니다. 전 책을읽고 독후감은 즐겨 써도, 공연이나 영화평은 잘 쓰지 않는 편입니다.

저 자신이 끊임없이 평을 받는 일을 하다보니 남의 작품 비평하기가 무척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본 뒤, 뭔가 글을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도전한 이 작품의 작가나 작곡가나 연출이나 안무가...그들의 창작정신에 전폭적인 공감을 느꼈고, 작품의 제작과정도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1891년에 발표된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깨어나는 봄 Frühlings Erwachen : 영어 이름 Spring Awakening>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베데킨트는 19세기 독일의 부르주아나 종교인같은 지배층의 위선과 욕망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던 작가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지나치게 경직된 사회질서와 교육제도, 위선적인 종교, 부모와 자식간의 보수적인 관계에 대해 무자비한 비판을 가합니다.

그러면서 10대 중반의 청소년들이 사회와 학교와 교회와 부모에게 저항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섹스와 임신과 동성애에 빠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독일 사회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켜 1906년에야 처음 공연이 되었고, 첫 영어버전이 1917년에 뉴욕에서 공연되었을 때도 거센 여론에 밀려 한 차례 공연하고 문을 닫아야 했을만큼 문제가 됐던 작품으로 근래에는 거의 공연되지 못하고 묻혀 있었습니다. 

 



실험극을 주로 쓰던 희곡작가 스티븐 세이터는 1999년에 록 뮤지션인 던컨 시크에게 10대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베데킨트의 희곡을 소개했고, 시크는 즉시 이 작품에 매료되었습니다.

한편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는 세이터를 우연히 만났다가, 시크와 함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구상 중이라는 말을 듣고 즉시 합류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투자를 끌어내고 제작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 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톰 헐스입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네 사람은 몇 년 동안 수차례의 워크숍을 거치며 이 작품을 다듬어갔습니다


실험극을 쓰던 작가, 뮤지컬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작곡가, 브로드웨이 진출을 반대했던 연출가, 현대무용 전공의 안무가, 배우 출신의 제작자...

아무도 모르는 희곡을 바탕으로, 아무도 모르는 창작팀이, 아무도 모르는 배우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 브로드웨이를 강타하며 성공을 거둔 뒤에는 이처럼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만남이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기존의 상업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형식미와 독특한 표현기법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탓에 소규모로 제작된 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2006년 5월에 오프 브로드웨이 165석의 애틀랜틱 극장에서 처음 막을 올렸습니다.

그뒤 평단과 대중들의 극찬 속에 그해 12월 브로드웨이로 옮겨 공연되었고, 이듬해인 2007년 제61회 토니상 8개 부문을 수상한데 이어, 제 50회 그래미상 베스트 앨범상을 수상했습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100여년 전의 희곡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는데도, 요즘의 관객들과 공감을 나눌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19세기 말 독일 고교의 10대들이 겪는 뼈저린 성장통-사적인 욕망과 희망 그리고 존재에 대한 고뇌와, 상처받은 젊음이란 소재는 시대와 관계 없이 유효한 관심사인가 봅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불까요?

아름다운 소녀 벤틀리는 점점 성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몸과 아이의 탄생에 대한 의문을 엄마에게 묻지만, 당황한 엄마는 벤들리의 호기심을 나무란다.

악몽에 시달리는 내성적인 소년 모리츠는 은행가 아버지와 엄격한 선생님 모두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다.

총명하고 자립심 강한 소년 멜키어는 “우리의 수치심은 전부 교육 때문이다”라는 급진적인 생각을 설파한다.

어느 오후, 숲속 깊은 곳의 오두막에서 멜키어와 벤틀리는 우연히 만나게 되고, 격정에 사로잡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몸을 맡기게 된다. 
  
시험에 낙제한 모리츠는 학교에서 쫒겨나 자살하고, 멜키어 역시 학교에서 쫒겨나 방황하고, 벤들리는 멜키어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들은 세상과, 어른들과 힘겨운 싸움을 한다.



 

<사춘기>, <하이스쿨 뮤지컬>, <가십걸>, <그리스>, <토요일밤의 열기>....모두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입니다. 그런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남다른 차별성을 지닙니다. 

베데킨트의 무거운 주제의식과 표현주의극이 지닌 연극적인 톤, 서사극적인 무대연출, 그리고 록으로 채워진 음악들이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무대 양 옆에 놓여진 객석에서 배우들과 함께 앉아 공연을 지켜봅니다. 이런 연출 기법은 관객들이 무대에 몰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서사적 효과를 위해서 도입된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일상적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특별한 장면에서 의상에 숨겨 놨던 마이크를 꺼내어 부르거나, 무대 위에 설치된 마이크에서 노래하게 만든 기법도 서사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도입된 것입니다. 순간, 그 노래는 작품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할보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비밀스런 통로가 됩니다.

대사는 고전적이며 지적입니다. 노랫말은 솔직하고 거칠기도 하지만 때로는 문학적이기 때문에 무척 주의깊게 귀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대중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음악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펑크의 저항성을 담으면서 아름다운 선율과 달콤한 화음을 곁들여 배치한 뛰어난 음악의 흡인력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독특한 안무도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연출가 메이어는 브로드웨이 출신 안무가가 아니라 실험적인 현대무용 안무가를 선택했습니다. 빌 T. 존스의 안무는 10대 주인공의 억압된 육체적 충동에 생명력을 주는 몸짓입니다. 온몸을 베베꼬듯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속박에서 벗어나고픈 몸짓에는 극이 말하고 싶은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의 한국 공연은 <쓰릴 미>, <김종욱 찾기!>, <스위니 토드> 등을 제작한 뮤지컬헤븐이 책임을 맡았습니다. 

제작자는 처음부터 ‘복제(replica) 프로덕션’으로 기획했다고 합니다. 오리지널 뮤지컬의 작가와 작곡가와 연출가가 의도한 바를 한국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복제하듯 똑같이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연출자를 비롯한 한국측 스탭들이 미국과 영국쪽 워크숍에 직접 참여했고, 미국의 안무팀이 한국 공연팀의 크리에이터 역할을 담당하며 진행시켰습니다.

배우 선정 과정도 까다로웠고, 수많은 후보 중에서 걸러진 배우들은 또다시 기나긴 워크숍 과정을 거치며 최종 오디션을 거쳤다고 합니다. 뮤지컬계의 스타인 김무열과 조정석과 벤들라 역의 신인 김유영 등도 그렇게 정식 오디션과 워크숍을 거쳐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호연을 펼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외국 작가의 작품을 '복제'하는 공연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창작품을 제외하고 제가 했던 몇 개의 외국원작 작품은 쉐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각색한 <우루왕>, 칼 비트링거의 <은하수를 아시나요>를 각색한 <밀키웨이>처럼 철저하게 한국화시킨 작품들입니다.  

그러니 이 작품의 복제 의도에 대해서는 시비를 가릴 입장이 못됩니다. 다만 원작의 시대 배경을 그대로 옮겨 왔을 때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진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인공들이 라틴어 수업 시간에 공부하는 베르질리우스의 <아에네이스> 시가 가진 영웅담의 억압적 상징이라든지, 동성애자가 되는 한센과 에른스트가 호모의 <일리어드> 중 동성애자인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레스'를 함께 읽자고 하는 장면이라든지, 한센이 자위행위를 하면서 그리스 신화에서 쥬피터가 이오를 강간하는 장면을 그린 코레지오의 <쥬피터와 이오>란 그림을 보면서 오델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이기 전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대사를 읊조리는 장면들은 그 문화적 배경을 알고 본다면 훨씬 현실감 있게 다가 올 수 있는 멋진 장면들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관객들이 그런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으로서 몇몇 장면이나 인물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에 불편함이 생긴 것은 원작을 복제한데에서 생긴 문제라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부분인 듯 합니다.  
 
그에 비해서 한국에서 공연되기 전부터 10대 소년소녀의 섹스 장면과 여자배우의 젖가슴이나 남자배우의 엉덩이 노출이 언론에 크게 부각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노출 장면이 강조될 성격의 극이 아닙니다. 10대 청소년의 충격적인 정신질환 사건을 다룬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라는 연극에서도 주인공 소년소녀의 도발적인 섹스신이나 소년의 전라 연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 장면에 화제가 집중되지 않는 이유는 그 장면의 목표가 벌거벗은 몸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벌거벗은 몸으로 울부짓는 주인공의 아픔을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공연에서 이 장면은 그렇게 충격적이지도 않고 선정적이지도 않게 묘사되었습니다. 서투르면서도 열정에 가득한 몸짓 표현으로 적절하게 조절된 수위라고 생각합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부서지기 쉬운 영혼을 가진 10대들, 혹은 그런 10대였던 이들의 외침을 들려줍니다.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억눌려 있고 잠들어 있던 10대 시절의 아픔을 깊게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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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은 동양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런데 이 글자를 뒤집으면 ‘접대’라는 단어가 됩니다.

접대비는 영어로 ‘오락비(entertainment expenses)’로 번역된다고 하니, 술이든 골프든 오락을 통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닌 듯 합니다.

다만 우리 기업들의 접대가 사회문제화 되는 이유는 엄청난 오락비용과 2차, 3차로 이어지는 '타락한 접대문화' 때문일 것입니다.



유럽의 기업가들은 동양을 가리켜 ‘부패가 문화인 나라들'이라며 비꼰다고 합니다. 대규모 접대비를 회사 예산으로 짜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하니, 동양의 아름다운 '접대' 전통이 현대에 와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행히도 요즘 들어 기업의 ‘접대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두개의 단어를 바꾼 ‘문화접대’가 각광을 받는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기업들이 문화접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공연 협찬이 세금 감면 대상이 되는 이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술이나 골프나 고급 음식을 대접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품격 있는 대접’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문화에 대한 일반 국민의 높아진 관심이나, 부부와 가족 중심 생활패턴의 확산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문화접대는 기업에는 문화적이고 품격 있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심을 기회를 주고, 문화계에는 든든한 후원을 제공해주고 , 접대 받는 사람들에게는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거삼득(一擧三得)’의 아주 바람직한 손님 대접입니다.

그런데 문화접대의 대상으로 선택되는 공연들은 주로 예술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서구의 대형 수입 뮤지컬이나 오페라나 발레 작품들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업인들과 문화접대를 받는 분들이 이런 작품들을 통해 문화적 품격을 향상시키고, 예술적 안목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제 가슴 한쪽이 이렇게 답답해 오는 걸까요?

마침 저의 마음을 대변해 줄 글이 연암 박지원의 글 가운데 있어 잠깐 소개합니다.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길을 가다가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너는 왜 우는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도달할 수 있었다.

애국계몽기에 간행된 ‘담총’이란 글에서는 이 글을 인용한 후, 신세계에 눈을 떴으나 미처 적응하지 못한 우리 민중을 눈을 뜬 소경으로 보고, 도로 눈을 감으라는 것은 구시대에 안주하라는 뜻이라고 연암 선생을 비판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이 글을 달리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 글의 요지는 ‘왜 눈을 뜬 소경이 집으로 가는 길을 잃었을까?’ 하는 의문에 있습니다. 자기 집 안에서 눈을 떴으면 괜찮았을 텐데 밖에 나와 눈을 뜬 것이 탈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잠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삶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집을 찾게 되면, 그 이후는 눈을 뜨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겠지요.

'나를 확고히 세우지 않으면 밖의 것이 나를 길 잃게 만든다.'는 연암 선생의 이 인상적인 가르침을 문화를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제 것을 모른다면 좋아만 보이는 서구의 화려한 예술들이 나를 길 잃게 하고, 눈 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낡고 어렵다며 멀리 하지만, 전통예술은 보물창고입니다. 지금 우리가 찾고자 하는 수많은 보물들은 오래 전에 옛사람들이 저장해 놓은 창고 속에도 잔뜩 들어 있습니다. 

저에게 전통은 '삶의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예술의 영감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제 영혼의 보물창고' 입니다.

우리 기업들의 문화접대 명단에 우리 소리도, 우리 몸짓도, 우리 연극도 포함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연암 선생의 글을 빌어 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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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 장관 직을 그만 둔지도 어느 덧 2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TV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연기자로, 연극 <밀키웨이>에서는 극작과 연출가로, 최근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위원장으로서 즐겁고 바쁘게 살고 있다.
 

내가「대왕 세종」에 출연하고 있을 때, 모 일간지에 동정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한동안 여기저기서 화제가 됐다.


김명곤 씨 “장관 껍데기 훌훌~ 다시 광대로”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 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김명곤(55·사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KBS 1TV 사극 ‘대왕 세종’(극본 윤선주·연출 김성근)에서 배우로 복귀한다. 1999년 자신이 연출한 연극 ‘유랑의 노래’에 출연한 지 8년 만이다.

그는 그동안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연기와 멀어졌다.김 전 장관은 ‘대왕 세종’에서 고려 황실의 후예로 조선 왕조의 전복을 꿈꾸는 옥환 역을 맡았다. 옥환은 어린 세종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로 초반 30회까지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가 대하 사극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일보 2007년 10월 6일자 기사 중 일부)

나는 대학교 다닐 때만해도 광대라고 하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코에 빨간 공을 붙인 서양의 삐에로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줄타기하는 광대를 처음 보았는데 그 광대가 줄에 올라서서 “이 줄타기가 옛날에는 화랑의 기예였소!.” 하길래 깜짝 놀랐다. "화랑이라면 신라 시대의 무사 집단인데 줄타기를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광대에 관한 기록을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그윽하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며 유교, 불교, 도교의 3교를 포함한 것으로 민중을 교화하는 것이다.

신라 시대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쓴 글이다. 이 글을 바탕으로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는 이렇게 썼다.
 

선가(仙家)는 신라의 국선 곧 '화랑'으로 보며, 그 시원은 삼한의 소도(蘇塗)의 제관으로 고구려의 '조의선인(鳥衣仙人)'이다.

이런 글들을 보니 고대사회에서 예술가들은 하늘에 국가적 제사를 지낼 때는 제관으로서 활동했고, 그들의 신분은 왕족이나 귀족에 속하는 상류계급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화랑들과 함께 예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천민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광대”라는 말은 고려시대에 서역에서 들어 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인데, 예술가를 지칭하는 단어인 광대가 화랭이, 재인 등의 용어와 뒤섞이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광대들은 기생, 무당, 중, 백정 등과 함께 천민계급으로 살아야 했다. 이들은 사대부나 평민들과 한 동네에서 살지도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자기들끼리 기예를 전수하면서,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를 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광대들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런 상소문을 썼다.

광대가 봄·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과 겨울이면 추수를 바라고 농촌으로 쏠리는데, 특히 창촌에서는 사당, 창기, 주파, 화랑, 악공들의 잡류들을 엄금해야 합니다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왕의 남자>는 이 무렵의 떠돌이 남사당 광대패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실학사상이 일어나고 평민 가사, 탈춤, 판소리 등의 가치를 양반들 중의 몇몇이 언급하게 되면서 광대들의 가치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고종과 대원군이 권력을 쥐었던 무렵에는 광대들이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잔치에 초대받고, 심지어 명인, 명창, 국창 등의 이름으로 궁궐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기예를 선보이며 많은 돈을 벌고 신분의 상승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후 광대들은 또 다시 천대받게 된다. 그 상황은 일제시대의 학자인 육당 최남선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조의 재인, 광대들은 적극적으로 특별한 권장을 입지 못하고, '무식무기력한 예인'들이 사회 최하층적 지위에서 구차히 존재하다 보니까 거기 쇠잔이 있을 뿐이지 발달이 없으며 저락이 거듭될 뿐이지 향상을 볼 수 없음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조건 하에 있다 보니까 '수 천 년을 하루같이' '몸을 놀리는 기술'과 '우스개 놀이'쯤에 그치고 드디어 다른 데 만한 순희곡적 생장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명 풍화에는 조금도 유익한 바가 없으니 이는 연희를 실시하는 자가 학문이 없어 '동양의 부패한 풍습'만 알 뿐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했던 <서편제>는 이 무렵의 떠돌이 판소리 광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나는 대학시절에 오페라나 이태리 민요나 가곡이나 뮤지컬이나 비틀즈 등의 서구음악의 열광적 팬이었고, 괴테나 세익스피어나 입센이나 도스토에프스키 등의 서구문학(독문학)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우연히 판소리를 알게 된 후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고향인 전주를 무지 싫어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흔적이 너무나 짙은 그 곳을 어서 떠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진학공부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한국을 빨리 떠나 독일로 유학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인간문화재인 박초월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전라도 말이 그렇게 다양한 표현과 영롱한 문학적 향기가 있는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핏줄에 대한 애정 곧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조상과 조국에 대한 사랑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전통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이 아니다. 전통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았던 삶의 내용과 형식 곧 그 분들의 삶의 자취이고 향기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세월이 지나면 전통의 계승자가 될 것이며, 언젠가는 전통 그 자체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나에게 전통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또 창조의 열정에 불타게 하는 소중한 원천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무식무기력’한 광대들에게서 내 예술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나는 ‘수천 년을 하루같이’ ‘동양의 부패한 풍습'을 몸으로 전해 온 그들의 예술에 매혹 당하고 심취하고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들의 ‘몸을 놀리는 기술’ 속에서 삶의 깊은 애환과 감동을 보았고, 그들의 ‘우스개 놀이’ 속에서 예술적 창조의 편린을 보았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애인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 종족의 일원이 되고자 ‘광대’라는 말을 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연기, 연출, 극작, 경영, 행정에다가 연극, 영화, 국악, 방송 등 여러 분야에 간여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당신의 정체는 뭔가? 아마도 이게 그들의 질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나는 그 모든 것을 추구하는 광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럼 당신은 어떤 광대가 되고 싶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책에 나오는 발렌친 카그다예프라는 브리야트 족의 샤먼과 저자와의 대화로 대신하고자 한다.

질문 : 당신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답변 : 훌륭한, 혹은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좋은 샤먼이 되고 싶고,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샤먼이 지녀야 할 미덕이다.

반면 모든 악과 문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남을,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베풀어 주는 것이 사랑의 첩경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현자와 성자들이 설파했던 조화와 사랑, 이것의 실천자로서의 샤먼 곧 ‘무당’의 역할에 대한 바이칼 샤먼의 지혜로운 말이 ‘광대정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광대란 '넓은 광(廣), 큰 대(大)'라는 말 뜻 그대로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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