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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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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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창'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5.23
    목은 꺾였어도 최고의 공력, 박봉술 명창 (6)
  2. 2010.04.22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박동진 명창 (24)
  3. 2009.12.06
    신명나고 웅장한 "광대의 노래" 공연했어요. (34)
  4. 2009.11.29
    전주세계소리축제 '광대의 노래' 이벤트 (39)
 '명인명창 이야기'는 네티즌들에게는 낯선 분들이 많고, 내용도 생소한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그래도 어디엔가 있을 '우리 문화 지킴이'들을 위하여 지금 아니면 언제 그 소중한 분들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스피어에 남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연재 중입니다. 오늘은 목은 껶였어도 소릿길을 빛낸 박봉술 명창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새벽 3,4시, 옆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는 어린 아들의 입에 아버지가 앵두사탕을 슬며시 넣어 주며 흔들어 깨웁니다.

“봉술아, 봉술아!”
“.....예!”
“잠이 깨냐?”
“예!”
“그럼 아버지 따라 해봐라. 둥둥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둥둥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소년은 어렴풋한 잠결에 앵두사탕을 빨아 먹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판소리를 부릅니다. 자신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차세대 명창으로 승승장구하던 아들 박봉래가  33세의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뜨자, 박만조씨는 이제 막 10살을 넘은 막내 아들 봉술에게 자신이 직접 판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21년에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중방리에서 박만조씨의 5형제 중 막내로 태어 난 박봉술 소년은 이렇듯 아버지의 판소리에 대한 집념 때문에 소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그의 부친은 오래 전부터 판소리에 심취해 있었는데, 특히 송만갑 명창과 교분이 두터워서 그에게 판소리를 직접 배우기도 하고, 큰아들인 박봉래를 그의 제자로 집어넣어 소리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 꿈이 꺾이자, 형에게 판소리를 배우던 막내아들에게 당신의 꿈을 걸어보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동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던 봉술 소년은 차츰 판소리에 재미를 붙여 낮에도 열심히 소리공부를 했습니다. 그 뒤 ‘꽃기운이 올라’ 소리에 힘도 생기고 소릿길에 눈이 뜨이자, 명창이 되어 일세를 울리려는 욕망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하여 16
살에 서울로 상경한 봉술 소년은 드디어 <조선성악연구회>에서 꿈에도 그리던 송만갑 명창을 만나 그에게 소리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송만갑 명창은 구한말과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이 나라 방방곡곡에 이름을 드날린 최고의 명창입니다. 박봉술 명창의 회고에 따르면 ‘송 명창 사진만 보아도 오갈이 들어서 소리 못하는 명창이 많을’ 정도로 뛰어난 명창이었습니다.

“우리 선생이 소리만 허시면 그 자그마한 몸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쇳소리 같은 '철성'이 몸으로 파고든단 말이여. 그러면 등골이 오싹오싹혀지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들 못허게 헌단 말여.
그리고 이 대목이 좋으면 저 대목이 좋고, 저 대목이 좋으면 이 대목이 좋고 해서 마디마디 소리가 좋고, 또 어떻게나 '상청'이 잘 나는지 상청을 질러대면 앵벌 날아가는 소리가 에--엥 에--엥 허고 나와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단 말여.
거그다 또 같은 노래를 헐 때마다 달리 혀. 말하자면 즉흥적으로 작곡도 허고 편곡도 허는 거지. 그런디 그것이 또 이렇게 불러도 좋고 저렇게 불러도 좋아. 수만 번을 불러서 소리를 뚜르르 꿰고 있으니 그런 재주가 나오는 거지. 우리 선생님이 그만큼 공력이 좋았어.”

박봉술은 “나는 평생에 우리 송선생님 한 분한테만 소리를 배웠다”고 말할 만큼 송만갑 명창의 소릿제를 많이 물려받은 명창입니다.

송만갑 명창(좌)과 박봉술 명창(우). 출처 : http://news.d.paran.com/snews/newsview2...r%3D2009

그렇듯 소년 명창으로서 귀여움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밤에는 ‘놀음’ 다녔습니다. 놀음이란 요샛말로 밤무대를 뛴다는 말인데 그때의 이름난 요정인 명월관, 식도원, 국일관과 같은 곳에 불려가서 판소리를 하면 어른 명창의 절반 값인 5원이 출연료인 ‘소리채’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목이 ‘괄리기’ 시작했습니다.

변성기가 되어 목이 잘 쉬고 고음이 나지 않고 소리가 탁해지는 것을 목이 괄린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소리를 잠시 쉬거나 성대를 보살펴가며 연습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고향으로 내려 와 지리산의 쌍계사에서 백일 공부를 혼자 시작한 것이 평생의 탈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무리한 나머지 안타깝게도 목이 ‘꺾이고’ 만 것입니다.

예전과 같은 맑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탁한 음색으로 변하고, 고음은 꽉 잠겨서 나오지 않으니 
그는 울적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왓습니다. 그 다음 해에 타고 난 목청과 애간장을 녹이는 목구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임방울 명창을 따라 일본 순회공연에 참가했지만, 목이 꺾인 그는 보잘 것 없는 단역을 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석 달쯤 순회공연을 한 뒤에 다시 고향에 돌아 오기도 하는 동안 해방이 되고 창극단들이 ‘비온 뒤 대나무 순 열리 듯’ 자꾸자꾸 생겨 이 단체 저 단체 따라 다니며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고 고생도 ‘직사하게’ 했습니다.

그럭저럭 결혼도 하고 전라남도 순천시로 이사해서 살게 되었는데,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여순반란사건’을 겪게 되었습니다. 

1948년 4월 3일에 제주도에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4·3사태가 확산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국군 제14연대를 급파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할 수 없다고 반발하며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단'과 '조국통일' 등의 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켜 일대 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반란군의 검문에 걸렸는데, 손을 내밀어보라고 해서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느닷없이 뺨을 때리면서 “이거 개놈의 새끼 아니냐?”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손이 하얗고 못이 안 박혀 있으니 일 안 하고 놀고먹는 반동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저, 저는 소리 허는 사람입니다“
“소리가 뭐냐?”
“창이요.”
“창? 창이 뭐냐?”
“노래요.”
“노래? 그럼 노래 한번 해봐라”
"(두 손을 하늘로 올린 채 벌벌 떨면서) 둥둥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오, 그게 소리구나. 너 그럼 이승만 찬양하고 김일성 나쁘다고 노래 안 했냐?”
“아뇨. 나는 춘향가, 흥보가 이런 노래만 부르요.”
“그럼 우리 김일성 수령 동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봐라.”
“나는 그런 거 부를 줄 모르요. 그저 옛날 선생님한테 배운 노래만 겨우 부를 줄 아요.”

그 말을 들은 반란군은 허허 웃더니 공중에다 대고 총을 한 발 쏜 다음 어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당원들이 수시로 찾아 와서 공산당에 가입해서 소리로 활약하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섭고 싫어서 못 마시는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게 취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은 편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도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취한 척 하며 드러누워 버리곤 했습니다. 그 '술' 덕분에 어지러운 시절을 죽지 않고 간신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순천에 국악원이 생기자 소리선생으로 지내면서 점차 술이 늘어갔습니다. 남모를 괴로움이 그를 점점 술꾼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소리를 안 알어줘. 바디는 좋고 공력은 있다고들 하지만 목이 꺾였응께 알어주는 사람이 드물어. 기껏 힘들여서 소리허고 나면 오천 원, 만 원씩 던져주니 오장이 상허고 울화가 나서 에잇 잡것, 나도 먹을 것이나 실컷 먹고 시간이나 때우자 허고 같이 앉어서 술을 먹어 버려”

이런 저런 울화가 쌓여 나중에는 ‘술이 봉 걸리 박’이란 별명까지 얻을 만큼 '술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때는 공부에 정진하려고 술을 끊어보기도 했습니다.

“한 삼 년 끊어 봤제. 그런디 술을 안 먹고 조심을 혀봐도 별것이 없어. 영양실조만 걸려”

그래서 차라리 ‘영양가 있는’ 안주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게 몸에도 좋고 정신에도 좋을 것 같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틈틈이 소리꾼으로서 활동을 하였지만 쟁쟁한 명창들의 그늘에 가려 그의 소리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러다가는 평생의 공부가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 '이를 갈고' 성공해보자고 결심한 끝에 1970년에 혼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열심히
제자를 가르치고 공연 활동도 활발하게 한 보람이 있어 드디어 52살 되던 해인 1973년에 판소리 「적벽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는 판소리에서 무엇보다 '공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창이었습니다.


'공력'이란 소리를 짜나가는 솜씨를 일컫는 말입니다. 목청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소리의 흐름과 가사 내용이 조화를 이루고, 가지고 나가는 소릿길에 무궁무진한 변화가 있고, 장단의 이음새가 자유자재하여 천변만화, 조화무궁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공력이 높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목청이 좋고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구사하여도, 변화가 없이 무미건조하게 소리를 하면 공력이 없다고하여 높이 쳐주질 않습니다.

“옛날 명창들 소리를 들으면 가지고 나가다가 느닷없이 신기허고 묘헌 소리가 나온단 말여. 헌디 요즘은 그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그것도 그럴 것이 요즘은 문화재 전수에 지나치게 많은 비중이 주어져서 스승에게 배운 그대로 하지 않고 가사 하나 장단 하나만 바꾸어도 큰일 나는 줄로 알고 있으니,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이 살아나지 않고 비슷비슷한 ‘복사 소리’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요즘 학자나 이론가들이 동편제니 서편제니 나누는디 나는 그런 거 안 따지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허고 서편제는 애원성이 많고 끝을 길게 끌고 허는 특징들이 있다고들 허지만, 그런 것들이 서로 오고가며 배우고 가르치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뚜렷하게 구별 지을 특성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괜스리 파벌만 생기고.
옛날에는 누구한테 배웠든지 간에 그 사람이 소리 잘 허먼 알아줬고 선생님한티 배운 것도 자기가 자꾸 고쳐감서 자기에 맞는 소리로 짰던 것이지 요새처럼 그렇게 빡빡허게 허들 안했어”

그의 소리를 처음 들어 보는 사람들은 안으로 꽉 잠겨서 탁한 음색이 나오고, 고음으로 올라갈 때는 가늘게 뽑는 가성인 ‘암성’으로 들릴 듯 말듯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왜 그를 명창이라고 하는지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자꾸 듣게 되면, 저음인 ‘하성’의 웅장함과 걸걸함, 그리고 소리를 질질 끌거나 잔 멋을 부리지 않고 곧 ‘소리에 꼬리를 달지 않고’ 씩씩하고 꿋꿋하고 거뜬거뜬하게 몰고 나가는 남성다운 소릿길, 그리고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하게 구사하는 장단의 변화, 들으면 들을수록 감칠맛이 나고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그의 소리에 점점 끌려 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의 소리가 나라에서 제일 공력이 많은 소리라고 감탄을 하게 됩니다.



비록 '목이 꺾여' 한세상을 울린 명창은 못 되고 말았지만 어느 명창보다 소리 연륜이 깊고 공력 높은 스승에게서 갈고 닦은 덕에 누구에게도 공력이 뒤떨어지지 않던 그는, 후학에 대한 안타까움을 남긴 채 1989년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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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송흥록 명창, 박초월 명창, 임방울 명창, 박녹주 명창 등 명인명창에 대한 이야기를  띄엄띄엄 올렸는데 앞으로는 좀더 자주 전에 제가 발표했던 명인명창에 대한 글들을 손질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그래서 '명인명창 이야기'라는 카테고리도 만들었습니다. 
아마 네티즌들에게는 생소한 분들이 많고, 내용도 그리 흥미롭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어디엔가 있을 미래의 '우리 문화 지킴이'들을 위하여 지금 아니면 언제 그 소중한 분들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 끝에 시작합니다. 첫번째 타자는 대중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으로 박동진 명창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아마 판소리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이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겁니다. 박동진이라는 노명창이 CF 광고에 나와서 한 대사지요. "또 제비 후리러 나간다~"하는 소리 대목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모두가 박동진 명창의 광고 속의 멘트가 히트한 결과 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처음부터 판소리계의 스타로 활동한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50세가 넘어서야 명창으로 이름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06/asp/ce...21203303

그 놀라운 집념과 열정의 이야기를 펼쳐 볼까 합니다. 
 
1968년에 국립국악원 강당에서 박동진이라는 소리꾼이 <흥보가>를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완창한다고 하자 국악계에서는 ‘참 별일이 났다’고 수군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동진이라는 소리꾼은 그때까지만 해도 김연수, 임방울, 김소희, 박초월과 같은 쟁쟁한 명창들의 그늘에 가려 별로 이름을 내밀지 못하던 소리꾼인데다가, 그런 소리꾼이 소리 한바탕을 완창으로 부른다는 것은 보통 무모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5시간을 쉬지 않고 불러 젖히는 데다가, 그 소리목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힘이 있고,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구사하였으며, 몸짓과 대사가 구성지고 익살맞고 재미있어서 5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리자 그 소리판을 구경한 관객들과 소리꾼들과 기자들이 모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이듬해에 <춘향가> 한바탕을 그 당시 명동에 있었던 국립극장에서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부르자 소리 솜씨는 제쳐 두고라도 어떻게 한 인간이 8시간이나 계속해서 소리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얘기로 온 장안이 시끌시끌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박동진이라는 소리꾼은 쟁쟁한 판소리 명창들의 대열에 끼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완창 소리꾼으로 이름이 높아졌습니다. 그 뒤 많은 소리꾼들이 그의 성공에 힘입어 완창 판소리 발표회를 가짐으로써 완창 발표가 마치 유행처럼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소리꾼들은 일생에 한두 번 하기도 어려운 완창 소리판을 그 뒤로도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씩 쉬지 않고 열었던 그의 정열과 집념은 무섭고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어려운 일을 이를 악물고 해낸 데에는 그의 실패와 좌절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1916년 7월 12일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무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대에 몇 백 석을 거두며 부유하게 살던 그의 집안은 이미 아버지 대에 가세가 기울어 그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 겪는 배고픔과 설움을 일찍부터 체험해야 했습니다.

여덟살이 될 때까지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익힌 그는 충남 대덕군 진잠면에 있는 진잠 보통학교를 4년 만에 어렵게 졸업한 뒤 대전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는 학비를 대기가 힘에 부쳤지만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뒤 면서기라도 해서 집안 살림을 도와줄 것을 기대한 그의 아버지는 꼬박꼬박 학비와 하숙비를 대주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닌 지 4년이 되어 졸업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그의 앞날을 확 바꿔 놓고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대전극장이 들어 선 자리에 <협률사>라는 단체가 들어와서 소리판을 연다기에 무심코 구경을 갔다가 그만 넋을 빼앗긴 것입니다.

조선 천지를 들썩이게 하던 이동백, 이화중선, 이중선, 장판개, 김창룡과 같은 최고의 명창들이 벌이는 소리판에서 넋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목석같은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소년 박동진은 온 몸이 달아오르고, 등에 소름이 끼치고, 귓전이 간질거리고, 오금이 저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린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펴놓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소년은 며칠 동안 학교 공부도 집어치우고 무대에 서서 소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다가 한숨을 쉬며 신세를 한탄한 끝에, 그예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소리를 배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마침 이동백 명창의 고수로 따라다니던 지동백씨가 연기군에 산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지동근은 판소리로 이름을 날릴 만할 때에 목이 나빠져서 판소리를 그만 두고 땅재주를 하거나 북을 치면서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지동근은 자기는 판소리를 가르칠 수 없다며 “청양군 정산면 백공리에 가면 손병두라는 사람이 있는데 바탕소리는 못하지만 토막소리는 맛있게 잘 한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집에 돌아 와 부모님께 자기의 결심을 여쭸습니다.

짐작한대로 아버지는 노발대발하고 매를 때리고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습니다. “몇 달 있으면 졸업인데 무슨 미친 병이 들어서 광대짓을 하려느냐”고 펄펄 뛰며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때가 18살 되던 해 여름이었습니다. 물어물어 손병두씨 집을 찾아가서 나무도 하고 꼴도 베어 주며 머슴살이를 하다시피 일 년을 지내며 소리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랑가'나 '옥중가' 같은 토막소리를 반 년쯤 배우고 나니 손병두씨도 가르칠 밑천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을 눈치 채고 선생 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손 선생의 부친인 손필모씨가 청양군 청장면에 있는 미륵당이라는 집에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집은 행세깨나 하는 양반 집안이었는데 인사를 마치고 술상이 들어온 뒤, 주인 영감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들, 손주, 며느리들이 저마다 가야금, 거문고, 피리, 젓대, 양금, 해금 등을 끼고 앉아 '풍류'를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풍류 가락에 넋을 잃고 연주가 끝났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앉아 있는데 손필모씨가 “이놈이 내 아들 제자인데 소질이 있는가 없는가 봐 주시요”하고 소개를 했습니다.

장구를 치던 주인 영감은 “어디 한 번 소리를 들어 보자”면서 북을 가지고 앉았습니다. 그래 겁을 바짝 내며 손병두에게 배운 소리를 하고나니 영감이 “네가 소질이 있기는 있는데 명창이 되려면 지금 선생으로는 안 된다. 이 집은 선배 대명창들이 한 번씩 다녀가셨던 집이다. 서울에 가면 정정렬 명창이 있는데 그 분이 <춘향가>는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러니 그 분한테 배우도록 해라”하며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길로 손병두 선생을 떠나 정정렬 명창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는데 일이 안 되려는지 도중에 서울 못 갈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터벅터벅 걸어서 유성까지 나왔을 때 마침 공주의 부자인 김 갑순이 궁술대회를 열고 기생들을 데리고 노는데, 저녁에 천막을 쳐 놓고 사당패들이 소리판을 벌이는 걸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구경꾼들 틈에 끼어 소리를 듣는데 이미 소릿길을 조금 안 그의 귀에 사당패의 장바닥 소리가 가소롭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자청해서 무대로 올라가 소리를 한 마디 했더니 “야, 그거 투가리보다 장맛이다”하며 “재청이요, 산청이요” 한 것이 오청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끝내고 잠을 자려는데 느닷없이 곱게 차려 입은 중년 여인이 찾아와서 “아까 소리한 학생이 누고? 니 우리 방에 온나”하지 않겠습니까? 그 여자를 따라 여관으로 가니 의젓한 중년 신사가 앉아 있다가 “내 김천 서 치과의사하는 사람인데 너 김천 가서 기생 선생할래?”하며 이 말 저 말 얘기를 했습니다. 들어보니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생겨 두말없이 그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올라가려다가 거꾸로 내려가게 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그는 중년 여인이 경영하는 진양옥이란 선술집에서 손님 앞에서 소리하며 하룻밤에 50전도 벌고 1원도 벌면서 몇 달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명월관이라는 요릿집에서 기생들 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하여 꽃같은 기생 스무 명쯤을 모아 놓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소리를 배우지도 못하고 토막 소리 몇 대목 가지고 밥벌이하면서 누구를 가르치는 일이 항시 마음에 걸리던 차에 공주 대제암에서 정정렬 명창이 소리를 가르친다는 얘기를 듣고 대번에 기차를 타고 절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스승 운이 없으려는지 조상선, 김여란, 김초앵과 같은 쟁쟁한 신인 명창 12명이 한 시간씩 꼬박 열두 시간 동안 선생님을 붙잡아 놓고 있는 통에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름이면 절간 아무데서나 잠을 자며 귀동냥이라도 할 텐데 엄동설한에 그럴 수도 없고 해서 다시 대구 봉산동에 와서 술집 기생들의 소리선생을 하며 지냈습니다.

얼굴도 “빤질빤질하게” 잘 생긴데다가 소리 잘 하고 멋이 있는 젊은 총각이 젊은 여자들 틈에서 지내다보니 “만사가 맨숭맨숭하기만 할 수는 없어서” 가끔씩 연애 사건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대두에서는 대구 경찰서 고등계 형사의 조카인 일본 여자 대학생과 연애를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모진 매를 맞고 갖은 협박을 당한 끝에 강제로 쫒겨나다시피 경주 권번으로 옮겼습니다. 또 경주에서는 얼굴 예쁘고 인기 있던 기생 김난윤의 짝사랑에 말려들어 호되게 곤경을 치루는 등, 여자들 등쌀에 시달렷습니다.

결국 그는 그 생활을 청산해야겠다는 결심 끝에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는 있었구만. 그런디 그것이 좋은 것이 아녀. 젊은 놈 신세 망치기 딱 좋은 것이라. 더욱이 소리 공부하는 사람은 여색을 조심해야 돼. 지동근씨가 나헌티 헌 말이 있네. 젊어서 여자를 알면 소리를 망치게 되니 여자 보기를 원수 보듯이 해야 한다고 하셨어. 성공만 하면 여자는 줄줄이 따라오는 법이니 성공할 때까지 절대 여자를 가까이 말라고 말이여. 그런디 한창 기운이 좋을 적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는가. 서울 와서도 맨 연애만 허고 다녔지”

22살에 서울에 와서 조선 성악 연구회에 다니며 꿈에 그리던 정정렬 명창에게 소리공부도 하고 명월관, 식도원 같은 요리집에서 소리를 하며 돈도 벌었습니다. 노명창들을 모시고 북만주, 신의주, 상해, 무창, 북경, 남경, 서주까지 공연을 다녔습니다. 또 김창진, 조학진 같은 명창에게 소리공부를 하며 몇 해를 보내는 동안 그의 앞에는 소리꾼으로서 밝은 미래와 성공이 열리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거침없이 돈도 쓰고 한껏 멋을 부리고 신식 여학생들과 뻔질나게 연애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5살이 되던 해에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목이 안 나와. 고음이 안 나오고, 숨이 짧아지고, 소리가 갈라지고, 허리도 아프고, 소리 기운이 싹 없어져 버렸어. 한약도 써 보고 목을 쑥으로 떠보기도 하며 별별 짓을 다 했지만 소용이 없어. 목이 그 지경이 되니 무대에 서면 집어치우라고 소리지르니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고, 무엇보다 내 인생이 이것으로 끝이구나 생각하니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나”

그러던 차에 고향 집에서 옥천에 사는 색시와 혼인을 하라는 전갈이 오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대뜸 혼인을 해버렸습니다. 실의에 잠긴 마음을 그렇게 해서라도 달래보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그에게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도리어 무거운 짐만 짊어지게 했습니다.

그는 그 짐에서 벗어나고 잃어버린 목도 찾을 겸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소리공부를 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가정을 돌보지 않게 되어 아내는 집을 떠나게 되고, 그 아내에게서 낳은 자식마저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불러들인 불행이지만 자신으로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 더욱 더 실의와 좌절 속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해방이 되고 그의 나이 30살이 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는 해방 뒤에 생긴 여성창극 단체인 <햇님국극단>에 들어 갔습니다.

그 단체에는 박초월, 김소희, 박귀희, 조금앵, 김경애와 같이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던 여자 명창들이 있었는데 그는 그 단체에서 고수도 하고, 무대감독도 하고, 작곡도 하며 그들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 뒤 김연수 명창이 이끄는 <우리 국악단>에서도 무대 뒷일을 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때의 쓰라린 경험과 명창들의 그늘에 가려 그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며 느꼈던 열등감, 무대감독을 하며 익힌 무대 경험들이 '재기'를 위한 밑거름이 될 줄이야 그 당시는 아무도, 그 스스로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기에는 숨은 공신이 있었습니다. 

함께 창극단의 스탭 일을 하던 중 사랑을 하게 되어 마지막까지 해로한 둘째부인 변기씨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없었던들 그의 재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1962년에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들어 간 그는 남들은 전성기를 지나서 활동을 마무리 짓는 나이에 골방에 틀어박혀 아침 여섯시부터 정오까지 꼼짝 않고 소리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부인은 그 뒷바라지를 지성스럽게 했을뿐더러 돈 못 벌어 온다고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또 소리공부하다가 절망에 빠진 그가 소리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극구 말리며 다른 생각 말고 소리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러한 아내의 내조 덕분에 그는 10여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로지 소리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만 52살이 된 1968년에 <흥보가> 5시간 완창 발표회를 갖고, 1969년에 <춘향가> 8시간 완창발표회를 한 다음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를 차례차례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뒤에 그는 계속해서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강를매화전>과 같이 가사와 곡을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진 노래들을 다시 가사를 찾고 곡을 붙여서 발표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된 그는 1970년에 주태익이라는 극작가가 판소리 사설체로 쓴 <예수전>에 곡을 붙여 5시간 동안 불렀고, 그 뒤 <팔려 간 요셉>이라는 노래도 창작해서 전국 교회를 돌며 신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또 1973년에는 <이순신전>을 불러 창작 판소리에 대한 국악계와 일반인들 사이에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407031

“십 년 동안 목숨을 걸어 놓고 공부를 헌 결과여. 내가 젊어서 못된 짓을 많이 혀서 목을 버려 놓았응게 목만 다시 찾으면 죽어도 원이 없다 허고 일심으로 공부를 허니까 목이 다시 찾아 와. 그래도 고음이 예전처럼 안 나와서 나 혼자 연구를 혔지. 처음에 '암성'으로 가늘게 내다가 점점 기운을 넣어서 '통성'으로 내는 거여. 옛날 임방울 명창도 이런 말씀을 허셨지. 소리를 많이 허면 가느다란 '실목'이 나오느니라. 그것을 많이 허면 그 목이 차차 굵어져서 통성이 되는디 그 단계가 어려운 것이니라. 허셨는디 내가 혀 보닝게 정말 어려워요. 실목을 통성으로 변화시키기가 소리공부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여. 그 단계를 통과혀야만 득음을 혔다고 헐 수가 있는거지”

그 어려운 단계를 통과한 명창에 대한 예우로 나라에서는 1973년에 판소리 <적벽가>의 인간문화재로 그를 지정했습니다.

그는 그 뒤 국립창극단의 단원이 되고, 1978년에는 단장이 되어 1981년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창극단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는 더 바빠져서 남들은 은퇴할 나이까지 각종 판소리 관련 교육이나 수없이 밀려오는 초청 공연, 방송 출연, 음반 취입, 게다가 광고 출연까지 젊은이 못지 않게 분주하게 보내다가 87세인 2003년에 세상을 떴습니다.

인생의 후반기인 50세에 재기해서 30년의 전성기를 보낸 그는 깊은 고난의 길을 걸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서운 집념과 미래에 대한 도전, 그리고 열정으로 충만한 노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뜬 '대기만성' 형의 명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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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세계소리측제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공연을 지난 금요일(12월 4일) 밤에 마쳤습니다. 행사 준비와 마무리, 뒷풀이로 이어지는 강행군에 녹초가 되었다가 이제야 기운을 차리고 블로그 앞에 앉았습니다.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2000석의 객석을 모두 채워주셨고, 공연 내내 뜨거운 박수와 추임새와 환성으로 출연진들과 하나가 되어 극장 안을 달구어 주셨습니다. 

공연이 끝나고도 많은 분들이 격려와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시니 그동안의 노고와 피로가 싹가겨지는군요. 특히 근래에 이렇게 최고의 명인명창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연한 건 처음있는 일이라 눈과 귀가 호강했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80세가 넘으신 이매방명인이나 김백봉 명인의 출연과, 93세의 이은관 명인의 공연에는 입을 쩍 벌리며 뜨거운 박수로 그 분들의 건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공연을 위해 몸을 바쳐 열심히 뛰어준 소리축제 직원들과 무대의 스탭과 예술가들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다른 공연 같으면 감상평을 써야 겠지만, 제가 공연 당사자인지라 저와 김태균씨가 공동으로 쓴 대본과 함께 공연 사진을 소개하는 것으로 공연 소개를 대신할까 합니다. 

이 대본에는 광대예술에 대한 저의 평소 생각이 녹아 들어 있답니다. 


 
2009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열림의식


전북도립무용단의 열림무용.

축문

해동조선 대한민국 빛나는 땅 온고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기축년 십이월 나흘 날, 천하광대 모두 모여 송년소리나눔 한판을 벌이는데, 바로 “광대의노래”라.

이 공연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 명인명창 온고을로 모이고, 온고을 사람들 이 자리에 모여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이는 판이니 그 아니 장관이랴.

소리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광대의 혼 길이 기려 광대의 길 밝히려 함이니 동리 신재효 선생의 “광대가” 뜻을 이어 오늘 천하광대의 역사가 살아있으니 그 정성 그 뜻 어찌 아니 고마운가.

그 뜻을 이어 받아 소리로 풍류를 나누고 소리로 생명을 나누고 사람의 뜻을 밝혀 세계로 통하는 민족의 혼을 일으켜 세우는 신광대판을 열어 보자 함이라.

소리는 하늘에서 나는 것. 하늘의 뜻을 받아 땅에서 자라는 생명과 같으니 온 고을 온 세상 그런 소리를 나누면 평화가 넘치는 판이 절로 이루어지나니

온 고을의 생명 넘치는 판을 위해 여기 모인 지극정성 모두 모아 평화와 상생 위한 큰 판으로, 세계를 울리는 천하의 판으로 펼쳐지기를 소원하옵고,

여기 오신 모든 분들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고, 새해에는 운수대통하고 만사형통하길 비옵고 또 비옵나이다.

무용단들과 함께 한 저의 축문 낭독 장면.

 

<서장> 부르자, 새생명 부활하는 광대의 노래를

<합창>

오 오라 천둥처럼
오 오라 벼락 치는 소리로
광대여 오라
광대여 오라
생명의 광대여 부활 광대여

앞산도 들썩 뒷산도 들썩인다
천하가 춤을 춘다.
천하강산 광대여 바람처럼 일어나
천둥소리로 오라.
벼락소리로 오라.

부르자, 새생명 부활하는 광대의 노래를
광대여 오라. 광대여 오라

여기는 소리가 생명으로 잉태하는 곳
여기는 소리가 세계를 살리는 판
산 광대 죽은 광대 모두 모여 살판을 만들어라

부르자, 광대의 노래를
온 고을에 퍼지는 온 세상의 소리
빛이 되어 퍼진다. 생명이 되어 퍼진다
대명천지 신명천지 광대판을 열어라

200여명이 넘는 경기도립국악단, 전북도립창극단, 익산 시립합창단, 대구그랜드에코오페라 합창단의 대합창 장면. 작곡 김대성님, 지휘 김재영님. 


<제1> 광대가

<사회>
우리 나라 광대 내력 풀어보면
단군 왕검 명을 받아 하늘의 뜻을 세상에 밝히고
국선 풍류 천하를 세우고 화랑정신 광대 정신으로 펼쳐지니
광대가를
들어보자
저 멀리 조선시대 전라북도 고창 사람 동리 신재효 선생
"광대가"
에서
말하기를

맛깔스러운 도창과 재담으로 공연을 재미있게 끌고 간 남상일 명창.

<합창>
인간의 부귀영화, 일장춘몽 가소롭다.
유유한 생사이별 뉘 아니 한탄하리.
거려천지(居廬天地) 우리 행락, 광대행세 좋을시고.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 그 다음은 득음(得音)이요,
다음은 너름새라.

<사회>
렇지 광대라 하는 것 인물,사설,득음,너름새라 하였으니 그 내력을 곰곰이 따져 보는데, 이러한 내력을 천하명창 송순섭 명창, 김일구 명창, 조상현 명창...아구메 떨리는 거...떡 하니 등장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더라 얼씨구 그 내력 한번 들어보자 얼씨구~

<송순섭 명창>
너름새라 하는 것은 구성지고 맵시있고, 경각에 천태만상,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 좌상의 풍류호걸
구경하는 남녀노소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이 구성 이 맵시가, 어찌 아니 어려우랴

                 송순섭 명창.

<김일구 명창>
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김일구 명창.

<조상현 명창>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
칠보단장 미부인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조상현 명창.

<합창>
인물은 천생이라 변통할 수 없거니와,
원원한 이 속판이, 소리 하는 법례로다

<판소리 합창>
영산초장(靈山初章) 다스름
은은한 청계수가
얼음
밑에 흐르
구슬러
내는 목이, 순풍에 배 노니는 듯,
차차로 돌리는 목, 봉회노전(峰回路轉) 기이하다.
도도와 올리는 목, 만장봉이 솟구듯,
툭툭 굴러 내리는 목, 폭포수가 솟치는듯,
장단고저 변화무궁, 이리 농락 저리 농락,
아니리 짜는 말이, 아리따운 제비말과 공교한 앵무소리,
중머리 중허리며, 허성(虛聲)이며 진양조를,
달아 두고 놓아두고, 거니다가 들치다가,
청청하게 도는 목이, 단산(丹山)에 봉의 울음
청원하게 뜨는 목이, 청천에 학의 울음
원성 흐르는 목, 황영(皇英)의 비파소리.
무수 농락변화(弄樂變化), 불시에 튀는 목이, 벽력이 부딪는 듯,
음아질타(音啞叱咤) 호령소리, 태산이 흔들흔들
어느덧 변화하여, 낙목한천 찬 바람이, 슬하게 부는 소리.
왕소군(王昭君)의 출새곡(出塞曲)과 척부인(戚夫人)의 황곡가(黃鵠歌)라.
좌상이 실색하고, 구경군이 낙루하니,
이러한 광대노릇, 그 아니 어려우랴.


<제2장> 오늘 광대, 광대 놀음

<사회>
이러한 광대노릇 그 아니 어려우랴 하였거늘, 세월을 탓하랴 세상을 탓하랴, 무심한 시절 탓에, 그 광대들 바람처럼 가버렸. 늙어늙어 가는 인생 어이타 부질없다 누구를 탓할소냐. 가고 오면 온다 기약 없이 무심한 세월 절로 가는구나 ~바람 바람 바람아 불어와라 신광대바람 들어와라 오늘 광대 여기 살아 새로운 길을 여니 어절씨구. 오늘광대 나가신다~ 광대 놀음 벌여보자~ 천하의 명인명창 다 모였으니 그 아니 별의 무대랴. 악기는 악기로 춤은 춤으로 소리는 소리로 놀아보니 산해진미 따로 없다. 장단 잡아 펼쳐 놓고 악기소리 졸졸졸 물처럼 흘러가고 즉흥 춤에 모아진 흥 바람타고 절로 난다. 좋~다.

즉흥에 즉흥이라 우리나라 최고의 명인모여 시나위 한자락 펼쳐보니 대금에 이생강 명인, 피리에 이종대 명인, 해금에 김영재 명인, 가야금에 임경주 명인, 거문고에 김무길 명인, 아쟁에 백대성 명인, 아이구 힘들어라 아이구 대단한 거...장고 허봉수 명인.징에 이호용 명인 대령이요.

시나위 명인들의 연주 장면.

아니 이번엔 무엇이뇨. 부채꽃이 피니 부채춤이로다. 한국 춤의 대모 김백봉 명무와 제자 안병현 명무의 부채춤이 펼쳐지는구나~
 
                 김백봉 명인의 부채춤.

다음은 승무인데 “얇은 사 하얀 고깔~ 고이 접어 나빌래라‘ 펼쳐지니 그 아니 아름다운 춤이라 하지 않으랴. 묵직한 대풍류에 얹어 승무 펼쳐지니 승무의 지존 이매방 명무와 최창덕 명무의 무대구나~

이매방 명인의 승무. 리허설 장면.


<합창>
소리로다 소리로다. 경기민요소리로다
소리로다 소리로다. 서도민요소리로다
민요란 무엇이냐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한과 신명의 소리
민요란 무엇이냐
픙자와 해학이 있는 일과 놀이의 소리
어절시구 흥이 난다.

<사회>
슬퍼도 좋고 기뻐도 좋은 소리 민요로 나가보니. 경서도 명창들의 소리 판이로다. 경기는 얼씨구, 서도는 절씨구하니 경기민요는 이춘희명창, 이호연 명창, 이선영 명창이고 서도민요는 이은관 명창에 박성현, 김영빈, 전옥희 명창이로구나. 자 왔구나 왔나 아니 무엇이 왔나 경서도 소리가 왔구나 왔소이다.

왼쪽부터 이선영, 이춘희, 이호연 명창의 경기민요 공연.  노래가락, 청춘가, 창부타령.


93세의 이은관 명창과 제자들의 서도민요 공연 장면. 배뱅이굿, 신방아타령,농사타령--

<합창>
경기 서도 지나 남도로다. 호남가 한자락에 절로 멋이 드니.
부채를 높이 들어 소리 한 자락 메겨보니 두둥실 소리세상 펼쳐진다.
남도라 풍류고장, 판소리 광대 모두 모여 남도민요로 흥을 낸다.
흥흥흥 남도 신명타령이요.

<사회>
남도민요에는 판소리 명창 박송희 명창 조순애 명창, 성우향명창, 김영자 명창, 정순임 명창 대령이요.얼씨구 절씨구! 

왼쪽부터 김영자, 성우향, 박송희, 조순애, 정순임 명창의 남도민요. 육자배기, 잦은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제3장> 신광대가 

<사회>
아따 뻑적지근 하구만 잉, 경기에 서도, 남도창에 춤까지 말여, 으메 그야말로 별일세 별이여, 별이 뜨니 세상도 밝아지고 우리 소리판도 밝아 지네요, 안 그럽니까? 자 그럼 옛 광대, 오늘 광대 보았으니 이제 신광대판 한판 벌여보니 바로 이렇더라

<합창>
옛 선생 이르기를
광대라 하는 것 그 아니 어려우랴하시거늘

광대란 하늘에서 나는 것
원원한 그 속판 타고 난대로
광대라 하는 것은 천지의 입이요
광대라 하는 것은 인간의 손발이라
광대소리는 사람으로 통하는 천지의 소리

찌그러지고 갈라진 세상
막히고 토라진 것들
갈아 업고 휘둘러치며
세상을 깨우친다.
그 광대 누구인가.

<사회>
자고로 광대는 소리로 사람을 살리고 소리로 세상을 개벽하는데, 세상을 살리는 소리. 그것이 광대의 소리인데. 풍류있고 사람과 생명을 위하고 민족을 일으켜 세우니 그것이 바로 바로 신광대. 신광대가 일어나 소리판을 펼쳐내면 세상이 뜰썩 들썩 얼씨구 신광대 내력 어디 한번 들어보자

<합창>
광대의 제일치레는 풍류. 천하를 조화하고 생동하게 하는 소리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어찌 아니 새로우랴

<독창>
풍류라 하는 것은
하늘의 명을 받아 소리로 천하의 뜻 받드는 것
소리로 풍류에 들면 천지가 요동치니
하늘처럼 풍요롭고 바람처럼 변화롭고
햇살처럼 따스하고 물처럼 여울진다
소리로 푸는 풍류,아니 새로우랴

<합창>
광대의 다음치레는 생명, 세상 살리고 보듬어 주는 자연의 소리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그 아니 새로우랴

<독창>
생명이라 하는 것은 자연의 뜻.
피고 지는 조화 속에 생명은 절로 피니
노래하라 생명을, 찬미하라 자연을
생명을 위하면 광대정신 절로 사니
소리로 푸는 생명, 그도 또한 어렵구나

<합창>
광대의 다음치레는 인간
생노병사 고달픈 인간의 삶을 풀어주는 소리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그 아니 새로우랴

<독창>
인간이라 하는 것은 천하의 중심이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풀어주는 소리
삶과 죽음, 병들고 지친 사람들의 고된 삶을 소리로 풀어주니
광대는 그런 것, 그도 또한 어렵구나

<합창>
광대의 다음치레는 소리, 민족의 혼을 일깨운다.
쇠망치소리로 일깨운다 그런 소리 어이 하리 광대 노릇 그 아니 새로우랴

<독창>
소리라 하는 것 광대의 기상이니 천생의 그 소리로 득음을 이루나니
소리가 제일이면 천하강산 휘잡는다. 호랑이 기상으로 민족혼을 소리하니
광대소리 절로 민족의 혼 일깨운다.
신광대가 일어난다. 세상이 절로 살고 이 민족 절로 산다

<사회>
그렇지 신광대란 
그런 것이여. 신광대 일어나면 천하가 움직이니 신광대여 놀아라 저 세상 끝자락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져라. 놀아라 광대여 얼씨구 새로운 생명 새로운 소리로 신광대판을 열어라


<종장> 광대여 일어나 천하를 움직여라

<합창>
놀아라 놀아 신광대여 헌 소리 주고 새소리 받아라
놀아라 놀아 신명나게 강강술래 강강술래
역사가 돌고 세계가 돈다 돌아라 돌아
우리 속에 세계가 있네. 우리 소리 민족의 소리 민족의 소리는 세계소리
열린다 열려 어서가자
광대여 일어나 천하를 움직여라
새로운 생명, 새로운 세상 동트게 하라
새로운 소리로 신광대판을 열어라
부르자, 새생명 부활하는 광대의 노래를
온세상을 소리로 연다
온 고을 빛나는 신광대판이로다
광대여 새날을 열어라 새소리를 열어라
역사의 숨결 몰아 거침없는 사자후로
민족의 혼을 깨워 세계를 호령하고
온누리 온세상 새소리로 누비어라


뒷풀이

모든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어울어져서 "진도 아리랑"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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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올해 행사는 신종플루 때문에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정성을 기울였던 개막공연을 잘 다듬어서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란 제목으로 공연합니다.

12월 4일(금) 7시에 전주에 있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막을 올리는데, 10명을 초청할까 합니다.

송년 이벤트가 되는 셈이네요. 

모시기 어려운 최고의 명인명창들이 대거 출연하는 무대라 다시 만나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제가 작시로 참여도 했고, 잠깐 무대에서 축문을 읽기도 한답니다. 

11월 30일(월) 밤 10시까지 신청된 분 중 선착순으로 10명을 선정해서 초대장을 메일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한 분이 동반자 포함해서 2장을 신청해도 좋습니다. 그날 오시는 분들께는 블로그 기자단 이름으로 6시 30분에 무대에서 진행되는 명인명창 사진 촬영에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꼭 '메일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서 비밀댓글이나 방명록으로 신청해 주세요.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한국 최고의 명인명창과 함께하는 따뜻한 국악무대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김명곤)가 2009년 한 해를 보내며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를 무대에 올립니다.

역사적 헌정의 무대

오늘 12월 4일 저녁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리는 이번 무대는 국내 최초이자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역사적인 헌정무대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인명창이 한 무대에 오르는 공연입니다. ‘광대’라는 두 글자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넓고도 큰마음으로 기쁨과 슬픔, 외로움 같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을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악기로, 때로는 춤으로 풀어내는 창조자’들이 바로 광대들이기 때문입니다.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이러한 ‘광대의 노래’를 주제로, 천하를 호령하는 광대들의 삶과 우리 전통예술의 숭고한 역사를 돌아보는 창작공연 무대입니다.

창과, 민요, 합창, 기악, 무용이 어우러지는 무대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국악의 전 장르가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국악공연 무대로, 대서사의 시작(詩作)에 웅장한 국악관현악과 서양합창, 판소리합창 그리고 판소리 천하명창과 젊은 명창이 한 무대에 오르는 초대형 작품입니다.

이번 무대에는 판소리 대서사합창 ‘광대의 노래’가 올려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판소리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가지고, 동리 신재효의 <광대가>를 모티브로 하여 신광대의 의미를 새로 묻습니다. 김명곤 위원장과 김태균이 작시를, 김대성이 작곡을 맡았으며, 국내최고의 국악관현악 지휘자 김재영과 박병도 연출가가 만나 본격적인 국악관현악과 합창앙상블을 연출합니다. 여기에 국립창극단 단원인 남상일 명창이 아니리 광대로 나와 맛과 흥을 더합니다.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용과 축문낭송으로 이어질 열림의식에 이어 서장 ‘오라, 새생명을 부활하는 신광대의 터로’는 이번 공연의 의미를 전하는 첫 합창곡으로 광대 즉 전통예술인들의 예술혼을 통해 온 세상에 빛과 생명이 깃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제1장 ‘광대가’는 동리 신재효 선생의 <광대가>의 광대내력을 합창과 함께 송순섭, 조상현, 김일구 명창의 소리로 표현합니다. 광대의 덕목인 너름새와 득음, 사설을 노래하며, 어렵고도 어려운 광대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제2장 ‘오늘 광대, 광대 놀음’은 오랜 세월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온 전통예술인 별들의 무대로, 악기는 악기로 춤은 춤으로 소리는 소리로 풍성한 한판이 벌어집니다.

이생강(대금), 박대성(아쟁), 김무길(거문고), 김영재(해금), 이종대(피리), 임경주(가야금), 이호용(징), 허봉수(장고) 등 명인들의 시나위 연주와 명무 이매방의 승무, 김백봉의 부채춤이 이어집니다. 이어, 백성들의 삶을 노래하는 신명나는 삼도민요가 뒤를 잇습니다. 경기민요에는 명창 이춘희, 이호연, 이선영, 서도민요에는 배뱅이굿 명창 이은관, 남도민요에는 명창 박송희, 조순애, 성우향의 구성진 소리가 흥겨운 무대를 장식합니다. 또한, 백인영(가야금) 명인을 중심으로 한 수성반주단이 민요의 멋을 돋웁니다.

제3장 ‘신광대가’는 신광대의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풍류와 인간, 생명과 민족을 위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깨우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광대를 상징하는 4인의 소리꾼이 각각 ‘풍류’, ‘생명’, ‘인간’, ‘민족’을 주제로 노래하며, 웅장한 합창으로 새로운 생명과 세상을 동트게하는 신광대판을 외칩니다.

종장 ‘광대여 일어나 천하를 움직여라’는 대단원의 문을 닫는 막으로 ‘새로운 광대판을 열어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의 숨결 몰아 거침없는 사자후로 민족의 혼을 깨워 세계를 호령하고 온누리 온세상 새소리로 누비어라’는 메시지를 통해, 광대의 소리가 온 세상에 퍼져 새 세상 열어가기를 기원하는 웅장한 무대로 꾸며집니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광대들이 한 자리에

이번 공연은 진정한 광대의 조건과 그들의 소리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무대인만큼,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인명창들이 한 무대에 오릅니다.

제1장 광대가의 독창부분에는 송순섭 명창, 조상현 명창, 김일구 명창이 차례로 무대에 오릅니다.

가왕 송흥록을 시조로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박봉술로 이어지는 송판 적벽가의 계승자 송순섭 명창은 드물게 동편제 소리를 고수해온 명창으로 남성미 물씬 풍기는 장쾌하고 시원한 소리가 일품입니다.

조상현 명창은 보성제 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의 완벽하게 조화된 연기와 타고난 성량으로,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기품있는 소리로 평가받는 보성제 소리의 진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김일구 명창은 남성 판소리 특유의 호방한 기개를 보여주면서도 미려한 성음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소리를 보여줍니다.

‘신광대가’에서는 염경애, 김경호, 이주은, 왕기철의 차세대 명창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릅니다.

시나위합주에 출연하는 명인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금에 이생강 명인, 아쟁에 박대성 명인, 거문고에 김무길 명인, 해금에 김영재 명인, 피리에 이종대 명인, 가야금에 임경주 명인, 징에 이호용 명인, 장고에 허봉수 명인 등 한분한분 모시기도 힘든 당대 최고의 기악명인들이 한 무대에 올라 시나위합주를 들려줍니다.

한국무용의 거장 이매방 명인은 힘 있고 선이 굵어 시원스런 느낌을 주는 승무를, 최승희 선생의 수제자로 잘 알려진 김백봉 명인은 그 자신이 창작해 이제는 한국의 대표춤이 된 부채춤을 보여줍니다.

흥겨운 경기민요와 서도민요, 남도민요도 무대에 오릅니다. 경기민요에는 이춘희, 이호연, 이선영 명창이, 서도민요에는 이은관 명창이, 남도민요에는 박송희, 조순애, 성우향 명창이 출연합니다. 백인영(가야금) 명인을 중심으로 한 수성반주단이 민요의 멋을 돋웁니다.

공연의 맥을 잡아줄 관현악과 합창에는 경기도립국악단과 전북도립창극단, 익산시립합창단, 대구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 전북도립무용단이 함께 웅장한 무대를 연출합니다.

김명곤 조직위원장은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신 여러분들과 우리국악을 사랑하시는 애호가 여러분들을 위해 마련한 무대로, 판소리와 민요, 합창, 기악, 무용 등 우리 국악의 여러 장르가 어우러져 천하를 호령하는 광대들의 삶과 우리전통예술의 숭고한 역사를 돌아보는 창작공연무대다”며, “오늘 무대로 우리 국악과 전주세계소리축제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을 달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무료공연으로,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063-232-8398)로 전화하셔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sorifestival.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공연은 7시부터입니다. 공연 시작 전 6시 30분에는 그날 공연하시는 명인명창 선생님들과 초청되시는 전국의 명인명창 선생님들 단체사진을 촬영할 예정입니다. 전국의 내로라는 명인명창 선생님들, 약 60여 분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입니다. 단체사진 촬영은 기자님들께만 개방되는 행사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사진 촬영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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