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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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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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2.26
    청춘의 고독 가르쳐 준 아버지, 나의 아버지! (30)
  2. 2009.06.13
    맹수처럼 아름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 (18)
  3. 2009.05.23
    솔개의 장수 비결을 아십니까? (12)
  4. 2009.05.12
    죽은 여배우의 사회와 윤심덕의 사의 찬미 (26)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기일입니다.
매년 형제들과 함께 저희집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 준비를 하며 아버지의 사진과 편지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몇 가지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라 블로그에 올립니다. 


총각 시절의 아버지.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성악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특히 러시아의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이며 러시아 민요는 그보다 더 잘 부르는 사람이 없다는 평을 받는 성악가 표도르 샬리아핀의 팬이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식견과 지식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술이 거나해지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의 누이들과 남동생도 모두 피아노나 키타를 치거나, 합창반이나 성가대를 하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어떤 날은 때 아닌 가족 노래자랑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잔잔한 바다 위로/ 저 배는 떠나가며/ 노래를 부르니/ 나폴리라네----”로 시작하는 이태리 가곡 <먼 산타루치아>나 우리 가곡 <나물 캐는 처녀>를 자주 부르셨습니다.

푸른 잔디 길 위에 봄바람은 불고
아지랑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나물 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나니 어여쁘다 그 손목
소 먹이던 목동이 손목 잡았네
새빨개진 얼굴로 뿌리치고 가노니
그의 굳은 마음 변함없다네
어여쁘다 그 처녀

평상시의 퉁명스럽고 거친 목소리가 노래를 부를 때면 아버지답지 않게 가늘게 떨리고 부드러운 가성으로 흘러나오는 게 신기해서, 저는 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사에 나오는 '나물 캐는 처녀'가 아버지와 굉장히 친했던 어떤 여자인 것만 같은 상상에 빠지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알듯 말듯 미소를 짓고 눈을 가늘게 뜨고 ‘처녀’니 ‘어여쁘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오직 그 노래를 부를 때뿐이어서 특별하고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나면 아버지는 다시 무뚝뚝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와 함께 저의 즐거움도, 상상 속의 여자도 사라져버리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회상할 때마다 저는 이렇듯 두 가지의 상반되는 기억들, 부드러움과 거칠음, 밝은 미소와 침울한 표정, 상냥함과 무뚝뚝함, 따뜻함과 차가움, 침묵과 고함 속에서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버지를 닮아가는 저의 기질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 혼란은 더욱 더 커지기만 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세계가 있는 법이겠지만, 아버지의 기질과 사고는 남다른 것이어서 어린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출생과 어린 시절의 성장에 얽힌 불우한 환경이 큰 원인이 아닐까 짐작은 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렸을 때의 아버지는 칭찬에 무척 인색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반장이었고,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학생이었는데 유독 아버지한테는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반장으로서 통솔력이 부족한 점, 내성적이고 대범하지 못한 성격에 대해 비판하시고 그걸 고치도록 엄격하게 요구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어쩌다 칭찬을 하더라도 그 말씀이 매우 간단하고 무뚝뚝해서 칭찬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런 태도는 그 당시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가진 가부장적인 태도였지만 어린 저는 참으로 서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서운함을 모두 가시게 해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입니다. 밤늦게까지 다음날 아침 자습시간에 제출할 산수 숙제를 하다가 피곤에 지쳐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호랑이 같은 분으로 학생들이 거의 매일 매를 맞고 지낼 때인지라, 저는 매 맞는 꿈에 가위 눌리다가 벌떡 일어나 부랴부랴 학교에 갔습니다. 숙제 검사를 할 때 비참한 심정으로 공책을 펼치는데, 세상에......뜻밖에 산수 숙제가 고스란히 풀어져 있는 게 아닙니까?
 
독특한 필체 때문에 아버지께서 밤에 대신 풀어놓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고, 저에게 깊은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 다니러 집을 떠나 있을 동안에는 아버지와 수시로 편지를 교환했습니다. 편지에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자상한 관심,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의 철학을 전수해 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배려가 담뿍 실려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지금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의타심 없이 자기 창의력에 충실할 것)

청년은 고독하다

고독이야말로 오늘날 청년에게 주어진
유일하고 가능한 상태인 것이다.(특권)
고독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투쟁인 것이다.
소신대로, 솔직하게, 생각한대로 해보는 것이다.
청년이란 것은 해보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고쳐 시작하고, 무한히 투쟁할 수 있다.
다시 고쳐 또 해도 기성인과는 달라서 흉이 없고,
오히려 칭찬 받는 시기이다.
자기에게 성실하고 대담함이 있어라.
교활하고 비굴함은 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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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에서 다큐멘터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남극-북극의 오지 탐험이나, 정글 원주민들의 생활이나, 역사 유적지 탐방이나, 수중 탐사 같은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자주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내용 자체의 재미도 재미지만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제작진이 겪었을 엄청난 땀과 열정이 저를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야생 동물 특히 맹수를 다룬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는데 맹수들의 움직임이 언제나 저를 감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유연한 몸놀림, 먹이를 노리는 강렬한 눈빛, 고도의 집중력을 무기로 삼아 종족 보존과 생존을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하는 맹수의 삶은
저를 숨막히게 합니다.



저는 또 중국 무협 영화나 서부극이나 특수부대원의 활약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도 좋아하는데 그 작품의 주인공들은 어딘지 맹수를 닮아 있습니다.

고독, 집중력, 치열한 자기 수련, 적과의 목숨을 건 싸움, 난관을 헤쳐 나가는 강인한 의지, 이런 개성을 가진 인물은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끌어올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제가 판소리에 매혹 당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무살 무렵 어느 판소리 명창의 <춘향가>를 세 시간 듣는 동안 저는 인간의 성악적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명창의 피끓는 소리에 압도당했습니다.



그 뒤 오랫동안의 무대 생활을 통해 저는 관객들은 무대 위의 예술가에게 뭔가 특별한 에너지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을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무엇, 초인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관객을 집으로부터 극장으로 또는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힘입니다.

그 힘에 대한 갈증이 수많은 예술지망생을 만들어 내고 예술가들을 괴롭힙니다. 누구나 이 계통에 처음 뛰어 들었을 때는 자신의 온 몸을 던져서 훈련을 하고 목숨을 건 자세로 준비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가 축적되고, 그 에너지가 눈빛이나 몸짓에 배어 나게 됩니다. 비록 서툴지라도 온 몸을 다 바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예술가에게서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氣)가 방출됩니다.



그 기를 갈고 다듬는 데는 오랜 인고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가 어느정도 성숙한 뒤에 예술가에게 찾아오는 것은 기의 소진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잡다한 일상이 기의 집중을 방해합니다.

이때 그의 예술은 더 이상 빛을 발하고 못하고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많은 무대 예술가들이 경륜이 쌓일수록 무대에 서는 일이 무서워진다는 말을 하는데 바로 잃어 가는 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맹수들에게도 기의 쇠퇴는 찾아오게 마련이지만 그들은 최후까지 치열하게 싸우다가 고독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 모습은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저도 마지막까지 기의 상실과 싸우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영혼을 도취시켜 주는 “맹수처럼 아름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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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선물> 세 번째 이야기.

"솔개"라는 새가 있습니다.

 솔개는 어떤 새?

흔한 나그네새이자 겨울새이고, 11월 초순부터 남하해 4월 초순까지 머뭅니다. 일본·중국 등지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티베트와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합니다.

솔개는 새 중에서 가장 장수하는 새로서 70세쯤까지 산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40세쯤 되었을 때 매우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

40세쯤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잡아 챌 수 없게 되고,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힘들어집니다.

이제 솔개에게는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아주 높은 산의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합니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서, 낡고 딱딱한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납니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새 부리와 발톱으로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깃털이 빠지면서 연한 새로운 깃털이 나옵니다. 반 년쯤 지나 새 깃털을 갖게 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70세까지 장수를 누리게 됩니다.


세경 테크놀러지 대표인 정광호 님이 「매일경제」의 <우화경영>에 쓴 “솔개의 장수 비법”이란 이 우화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시사를 던져 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도 젊은 시절을 지나 사십이 가까워지면 솔개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도 요즘 생각도 둔해지고, 아이디어도 고갈되고, 새로운 활기와 창의력...이런 것들이 줄어드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우리 모두 70세까지 또는 80세까지 장수하면서 원하는 일을 하려면 저 하늘을 나는 솔개처럼 낡은 부리도 깨뜨리고, 딱딱한 발톱도 뽑고, 덥수룩한 깃털도 뽑아버려야 되겠지요. 

자신의 삶 속에서 정신과 육체를 수시로 리모델링한다는 것, 고통스럽고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 아닐까요?


솔개
                                         가월 작

하늘 까마득히 올랐다
무엇이 너를 위로 솟게 하는가
위로 올라가야 먹이를 찾는 것인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주시하다
순식간에 내리 꽂아
먹이를 낚아챈 솜씨는 추종자가 없다
언제나 비상은 고독하다
날렵한 삶의 지탱은 높이로만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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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여배우들의 자살이 늘고 있습니다. 이은주, 최진실, 정다빈, 장자연, 우승연....뛰어난 재능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사랑스러운 여배우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외국에서도 여배우나 여가수의 자살이 종종 뉴스를 장식합니다. 마리린 먼로의 자살로 전 세계의 충격을 준 이후 최근에는 영국의 여배우 스테파니 파커가 세상을 떴고, 대만의 여배우 첸잉, 대만의 여가수 리추닝, 일본의 여가수 오카다 유키코 등도 아까운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계의 연인이었던 마릴린 먼로(1926~1962)

<사의 찬미>로 유명했던 여가수 윤심덕(1897~1926)은 소설가 김우진과의 사랑에 좌절한 나머지 현해탄 바닷물에 함께 뛰어 들어 자신이 부른 노래의 가사를 더욱 유명하게 했습니다.

사의 찬미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괴롬이다 
웃는 꽃과 우는 새가
그 운명이 모두 같으니
생의 열중(熱中)인 가련한 인생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이다 
허영에 빠져서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근본 세상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뒤에도 세상은 없도다 
잘 살고 못 되고 찰나의 것이니
흉흉한 암초는 가까워 오도다
이래도 일생 저래도 한 세상
돈도 명예도 내 님도 다 싫다 
살수록 괴롭고 갈수록 험하니
한갓 바람은 평화한 나의 주검
내가 세상에 이 몸을 감출 때
괴로움도 쓰림도 사라져 버린다


판소리 명창 중에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성이 있습니다.
천재적인 소리 기량과 뛰어난 미모로 70년대 판소리와 창극을 휩쓸었던 안향련 명창은 비련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습니다.  

천재적 소리기량과 미모를 한 몸에 지녔던 안향련 명창



사회적 영향력이 큰 예술가나 연예인
들의 자살은 일반인의 자살보다 훨씬 큰 파장을 불러 옵니다.

그래서 신인 여배우들의 자살을 '베르테르 효과'에 따른 '모방자살' 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베르테르 효과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 자살을 한다. 이 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유럽 여러 도시에서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했다.
이 현상을  토대로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학설을 발표했는데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한 여배우들의 자살은 단순히 모방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예전의 자살은 삶에 대한 비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처 등 고통을 이기지 못한 개인적인 문제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진실이나 장자연의 자살을 몰고 온 원인은 그것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경제적 문제, 직업에 대한 불안감, 에이전시와의 계약 문제, 성접대, 출연과 관련된 성적 비즈니스의 문제, 게다가 최근에 새로운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는 악플의 문제까지 대단히 복잡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힘들고 고단한 삶을 인내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걸 이기지 못한 나약한 성격이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부족한 점들을 지적하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자연 사건이 대변하고 있듯이 여배우들의 현실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랑이나 고독의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적 억압과 성적 착취의 문제가 광범위하게 여배우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 장자연(1980~2009)씨의 영정 사진

장자연 사건은 신인 여배우의 연예 활동을 미끼로 하여 성접대의 수준으로까지 진행된 기획사의 구조적 모순의 마각 드러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장자연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관대한 도덕적 기준을 들이댔습니다. 

의혹이 제기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내사중지나 내사종결, 또는 불기소의견 송치로 아예 사법처리 대상에서 빠졌는데 그 이유가 '사실 관계가 정확하지 않고, 혐의의 정도가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입건된 9명 중 5명에게 적용된 강요죄나 공범혐의도 피해자가 없는 이상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이번 수사는 알맹이 없는 수사라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배우들의 고통을 외면한 법적 처리가 진행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여배우들은 감독, 기획사 사장, 매니저, 언론인들, 선배나 동료 배우, 후원자, 팬들과의 성적인 문제를 처리하느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 스트레스는 장차 우울증으로 발전해서 자살로 이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살자는 사랑도 낭만도 인생의 허무도 없는 그야말로 추악한 연예비즈니스의 안타까운 희생양으로서 기억될 것입니다.

연예비즈니스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 간 데에는 에이전시와의 부당한 계약, 부와 인기를 미끼로 한 불공정한 관행, 성적 타락을 부추기는 문화, 도덕적 불감증, 여배우를 성적 노리게 정도로 인식하는 돈과 권력을 가진 지도층들의 천박한 인식도 함께 작용합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연예계의 계약과 관련된 불공정 사례에 대해 엄격한 법적 규제가 있어야 합니다. 인권 침해, 성상납 등의 부도덕한 행위를 한 자들은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연예비즈니스의 구조적 고질병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2, 제3의 장자연이 나올 것입니다. 
 

이승을 하직한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영전에 정호승 시인의 향기로운
시 한편을 바칩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
'자살'이란 단어를 거꾸로  쓰면 '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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