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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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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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2.12.27
    페르시아를 찬미하라 (괴테의 '서동시집') (4)
  2. 2011.06.22
    분노하라! (13)
  3. 2010.12.27
    '인디언의 복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며 (13)
  4. 2010.11.25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14)
  5. 2010.11.08
    술과 시와 자연을 사랑한 시인, 도연명 (20)
  6. 2010.11.03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 (19)
  7. 2010.10.29
    법정스님이 산속에서 ‘사철가’를 불렀다니 (12)
  8. 2010.10.25
    <스웨이>, 사람의 마음은 왜 자꾸 흔들릴까? (23)
  9. 2010.09.16
    '일하며 도통하자'는 어느 백정의 가르침 (10)
  10. 2010.09.13
    이윤기 선생과 미국 대평원 여행에서 본 것 (8)
  11. 2010.09.10
    공정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14)
  12. 2010.09.06
    천둥 같은 목소리로 '우르릉천둥이 말하다' (6)
  13. 2010.09.02
    신비하고 강렬한 불멸의 '그녀', 동굴의 여왕 (11)
  14. 2010.08.27
    4대강을 위한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연설' (14)
  15. 2010.08.24
    '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 뭘까? (16)
  16. 2010.08.21
    퇴계와 두향의 사랑, 사실일까 허구일까? (11)
  17. 2010.08.09
    죽음의 사막을 '기적의 숲'으로 만든 여인 (12)
  18. 2010.07.17
    19세기 조선 유부녀의 위험한 불꽃 사랑 (13)
  19. 2010.06.18
    '집단 사고의 덫'에 빠진 지성의 추락이여 (23)
  20. 2010.05.28
    너무도 아름다운 비련의 주인공, 무희 '이진' (11)
  21. 2010.04.30
    조폭보다 더 무서운 '불멸의 신성가족' (18)
  22. 2010.03.31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세는 여인의 이야기 (22)
  23. 2010.03.19
    법정 스님의 사자후 "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 (35)
  24. 2010.03.10
    필라델피아의 구두닦이 찰리를 아시나요? (15)
  25. 2010.02.26
    상상력의 보물창고 '한단고기' (27)
  26. 2010.02.24
    미래사회 성공 인재의 6가지 능력 (14)
  27. 2010.02.02
    왜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가? (35)
  28. 2010.01.26
    공존지수 'NQ'를 높이는 17가지 인생 전략 (33)
  29. 2009.12.23
    거문고로 15만 대군을 물리친 제갈공명 (20)
  30. 2009.12.17
    유태인의 세계지배 음모 <시온의 칙훈서> (40)

14세기의 페르시아에 하피스라는 위대한 시인이 있었다.

 

그가 죽은 지 420년쯤 뒤 국수적 민족주의로 인한 유럽의 극심한 분열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고향으로 가던 예순다섯 살 괴테의 손에는 동양학자 하머가 번역한 하피스의 시집이 들려 있었다. 괴테는 동방의 신비스러운 지혜와 삶의 건강함이 가득찬 시들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피스여, 그대와, 오로지 그대와/나 겨루어 보련다/신명도 고통도/우리 둘, 쌍둥이처럼, 나누자!"

 

하피스의 영혼과 쌍둥이라 부르는데서 드러나듯 괴테는 그와 시인으로서 경쟁하고 싶은 강한 의욕을 느낀다.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온 괴테는 그의 친지인 은행가 빌레머의 약혼녀 마리아네와 사랑에 빠지고 하피스의 시집을 함께 읽으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자 괴테에게서 아름다운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코 당신을 잃지 않겠어요/사랑은 사랑에게 힘을 주지요/당신은 내 젊음을 장식해 주세요/세찬 열정으로/ 아! 어찌 내 충동을 부추기는지요." (‘줄라이카의 서’ 중)

 

1814년에 나온 ‘서동시집’은 그 사랑의 결실이다. 가인의 서(書), 하피스의 서, 사랑의 서, 성찰의 서, 불만의 서, 잠언의 서, 티무르의 서, 줄라이카의 서, 주막시동의 서, 비유의 서, 배화교도의 서, 낙원의 서 등 12권으로 나뉜 이 시집에는 사랑의 정신적인 교감과 승화, 삶의 지혜, 동방문화에 대한 동경,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애정 등이 담뿍 담겨 있다.

 

그 시들과 함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라는 산문을 통해 괴테는 페르시아의 역사와 문화, 페르시아 시문학, 기독교 구약성서와 배화교 등에 대한 연구를 논술했다. 유럽의 동방 연구는 대개 유럽 중심적 시각으로 이뤄져왔는데, 괴테는 마르코 폴로를 비롯하여 하피스의 시를 번역한 하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동방 수용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동방 문화에 대한 대문호의 이러한 애정은 유대 출신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유대인과 아랍인 청소년 연주자들을 반반씩 선발하여 1998년에 창설한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라고 지은 데에서 알 수 있듯 동서 분쟁이 격화되어 가는 오늘날 깊은 시사성을 지닌다.

 

"북과 서와 남이 쪼개진다/왕좌들이 파열한다/제국들이 흔들린다/그대 피하라/순수한 동방에서/족장의 공기를 맛보러 가라('에쥐르(헤지라)' 중)"

 

시집의 첫머리를 여는 이 시의 내용처럼 ‘서동시집’은 이질적인 타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어떻게 보편적인 문명적 교감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그 전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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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7개월 만에 2백만 부를 돌파하며 프랑스와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레지스탕스 출신의 인권·환경 운동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가 화제다.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 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국가의 최고 영역까지 금권의 충복들이 장악한 사회, 금권이 전에 없이 거대하고 오만해진 사회, 은행의 주주와 경영진이 고액 배당과 연봉에나 신경 쓸 뿐 일반 대중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회,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역사상 가장 크게 벌어진 사회,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극도로 부추기는 사회….”
 



권력에 영혼 판 일부 언론에도 분노해야
그가 분노하라고 외치는 프랑스 사회의 병폐들은 우리 사회의 병폐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거기에 덧붙여 최근 우리 대학생들의 최대 현안인 대학등록금과 청년실업, 열악한 보육환경, 고령화에 따른 노년 복지,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 대북정책, 도덕적 해이를 넘어 불법과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금융 사태가 그것이다.

또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공무원들의 부패와 비리, 재벌광고주와 권력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일부 언론 등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갖가지 이슈들에 대한 분노가 전국 도처에서 들끓고 있다.
분명 이 책은 공정 사회를 향한 ‘정의’의 열망에 휩싸인 우리에게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무엇’에 대해 ‘어떻게’ 분노할 지 가장 중요한 화두를 적절한 시기에 던져 주었다.

최근 프랑소와 피용 프랑스 총리는 이 책에 대해 저자가 말하는 분노는 ‘분개를 위한 분개’라고 평가절하하며 선동성을 띤 책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사회에도 이 책을 그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 정권과 유착된 일부 보수 언론이나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방송에서는 이 책에 대해 교묘하고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저자가 얘기하는 분노가 우리 사회의 잠재된 폭력성을 유발시키지 않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이나 그 질서로부터 수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분노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또 다른 시각으로 분노하고 증오하고 적개심을 품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폭력을 부추기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저자는 “폭력을 멈추게 하는 좀 더 확실한 수단”인 비폭력을 통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그것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얘기한 분노란 저항을 품은 분노, 생산적인 분노, 창조적인 분노이다. 따라서 불의에 저항하는 분노란 불의의 대상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사회서 분노해야할 것 선명하게 제시
이처럼 민주주의의 가치와 비폭력 투쟁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2011년의 한국 사회에서 왜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을까?
아마도 분노의 표적을 잃은 채 혼란스러운 증오에 휩싸여 있는 우리에게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얘기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 언론 매체들이 제때에 제대로 분노해 주었더라면 바뀌었을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94세의 외국인 노투사가 진지하고도 뜨거운 글로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대안매체를 뜨겁게 달구던 수많은 이슈들에 대해 침묵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던 기존 언론매체를 대신해서 간단명료한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분노해봤자 바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대상황이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지 않는 저자의 낙관성은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을 준다. 과연 “분노하라, 그러면 바뀔 것이다”라는 희망은 유효한 것일까?

(*2011년 6월 22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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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해를 보내는 송년 선물로 「인디언의 복음」이란 책에 소개된 '인디언 12계명' 가운데 마지막 계명을 보내 드립니다.

네 인생을 사랑하고 완성하라.
네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라.
너의 힘과 아름다움을 기뻐하라.

이 아름다운 '복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은 「시튼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1860년∼1946년)입니다. 



그는 뛰어난 화가였으며, 소설가였고, 동물연구가였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시튼은 그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해 온타리오에 자리를 잡자, 어려서부터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혹되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동물소설인 「늑대왕 로보의 전설」은 그가 추격한 전설적인 늑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튼은 늑대를 가장 영리하고 숭고한 창조물로 생각한 끝에 자신의 별명을 '검은 늑대'라고 지은 뒤,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물연구와 인디언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 문명은 실패작이다.
논리적으로 결론을 어떻게 내리든지 그 문명은 한 사람의 백만장자와 백만 명의 거지를 만든다.
그 문명의 재앙 아래 완전한 만족은 없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여태 보아온 것 중에 가장 영웅적이고, 가장 신체적으로 완벽하며, 가장 영적인 문명을 지닌 사람들을 대표하여 말한다.
우리는 백인들에게 인디언의 메시지, 즉 인간됨의 교리를 내어놓는다.

이처럼 과격한(?) 관점에서 씌여진「인디언의 복음」은 백인들이 야만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한 인디언들의 삶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가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인디언들은 자연의 영들과 교감하며 지극히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교의 신을 섬기는 백인 선교사들에게 배타적이지 않았습니다. 한 백인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난 인디언 추장 ‘붉은저고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형제여, 우리는 당신네 종교가 당신들의 선조들에게 주어졌고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해졌다고 들었다. 우리 또한 우리의 선조들에게 주어져서 그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전해진 종교가 있다. 우리는 그 방식대로 예배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받은 모든 은총에 감사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가 되라고 가르치며, 종교를 두고 다투지 말라고 가르친다. --중략--
형제여,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말살하거나 그것을 빼앗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를 원할 따름이다.

그러나 추장의 답변을 듣고난 선교사가 했다는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종교와 마귀의 역사 사이에는 어떠한 교제도 있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손도 잡을 수 없다.

선교사의 눈에 비친 인디언은 우상과 마귀 숭배에 물든 미개한 원시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디언이 지상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임을 이해했던 시튼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인디언의 전설, 민담, 노래 등 방대한 자료를 동원했습니다. 그가 소개하는 인디언들의 영적 생활은 무척 고결하고 이타적입니다. 시튼은 ‘이들의 종교는 신학보다 더 건전했고, 이들의 정치는 정치학보다 더 성숙했다’고 탄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디언들의 삶의 철학과 태도입니다.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여긴 인디언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자기 몸의 일부이자 형제자매였습니다.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자연을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심지어는 사냥감에게도 형제애를 지녔습니다. 자신이 사냥한 들소나 사슴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의 노래는 참으로 진실하고 경건합니다.

작은 형제여, 너를 죽여야만 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네 고기가 필요하단다. 내 아이들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고 울고 있단다. 작은 형제여, 용서해다오. 너의 용기와 힘 그리고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마.

한편 시튼은 인디언의 용맹성도 최고로 꼽았는데, 그가 쓴 위대한 전사와 추장들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검은 매', '미친 말', '앉은 소', '제로니모'.....이 영웅적 전사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험난한 황야를 달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신성한 영혼과 대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시튼은 이 책에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백인의 문명은 실패다.
명명백백하게 돈에 대한 광기가 그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는 이같은 것이 인디언들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튼의 말과는 달리 인디언의 문명은 자취를 감췄고, 그들을 정복했던 백인의 문명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튼의 경고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는 것은 그가 백인 문명을 향해 던졌던 질문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인디언을 정복하기 위해 사용한 탐욕과 배타와 파괴의 어두운 이념들이 아직도 우리의 삶 곳곳에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둠에 대해 사랑과 용서의 밝은 메시지를 전하는 '인디언의 복음'이 아직도 우리 가슴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위대한 영이여,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의 음성과 인도를 느끼게 하옵소서.
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제가 바른 사람이 되게 하시고,
언제나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저의 적이 약하고 비틀거리면 그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소서.
그가 항복하면 그를 약하고 곤궁한 형제로 도와줄 마음이 들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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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Hellen Nearing)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을 읽었습니다.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미국 뉴저지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예술을 사랑하고 신비주의 성향을 지닌 부모 슬하에서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음악과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헬렌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을 안고 열여섯 살에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젊은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 무르티와 만나게 된 헬렌은 그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유럽과 인도, 호주를 오가면서 6년 동안 이어진 그들의 열렬하면서도 정신적인 사랑은 크리슈나의 동생이 죽은 뒤 서서히 빛을 잃게 됩니다. 그 뒤 크리슈나 무르티는 '세계의 영적 교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고, 헬렌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다가 스물네 살인 1928년, 운명의 남자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을 만납니다.

스코트 니어링은 부유한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반전과 사회주의 운동의 기수로서 당시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지식인이었습니다. 대학교수였던 그는 대학에서 거듭 해직되고, 가정적으로도 부인과 이혼하기 직전이었고, 스물한 살이나 나이가 많은 중년의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완벽한 이상형을 발견한 것입니다.
 

군중보다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면 지도자가 된다. 두 발짝 앞서면 방해꾼이 된다. 세 발짝 나가면 미친 사람으로 의심을 받는다.-스코트 니어링 



군중보다 세 발짝 쯤 앞에 나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고립되었던 스코트는 헬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1932년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한 뒤,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낡은 농가로 이주하여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돌집을 짓는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이며, 교육자이자 생태주의자인 스코트는 스스로의 생각을 삶으로 실천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은 헬렌이 본 스코트의 모습입니다.

그이는 여러 면을 지니고 있었으며, 상반되는 자질로 가득 찼다. 그이는 이상주의자였으나 강인하고 실천하는 일꾼, 곧 실천하는 이상주의자였다. 또 타고난 종교인이었으나, 어떤 교회의 구성원도 아니었고 어떤 종교집단에도 소속 되지 않았다. 학식 있는 사람이었으나 땅벌레 같은 농사꾼이었고, 공적인 인물이었으나 은둔자로서 행복해 했고, 명망 있고 우렁찬 웅변가였으나 일상의 대화에서는 말수가 적었다. 그이는 음악을 이해하거나 느끼는 데는 무디었지만 언제나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연주하는 내 뒤에 있었다. 학문적인 주제에 관해 간결하고 사실에 바탕을 둔 글을 썼으나, 일상생활에서는 웃음을 머금게 하는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이는 위대하고 포용력이 있는 영혼이었다.-헬렌 니어링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했고 겨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는 여행을 떠나고 강연을 하고 저술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엘리트였지만 문명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고, 사회에 대한 비판과 인생에 대한 성찰 등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데도 충실한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중 최소한의 시간만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명상과 여행 등 자신의 내면을 가꾸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을 이용해 일을 했으며, 게으름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식사 또한 통밀빵과 생과일, 소금을 안 친 팝콘처럼 가능한 조리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고, 육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방식은 건강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반세기 동안 병없이 건강하게 생활한 그들의 몸 자체가 증거가 되었습니다. 

삶의 매 순간을 명료한 의식과 치열한 각성 속에서 살아갔던 그들의 사랑은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화로운 삶'을 평생 실천한 그들의 삶은 전세계적으로 귀농과 채식 붐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루어 낸 업적보다도 삶을 대하는 그들의 진지성, 그 태도에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스코트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 되던 해에,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곡기를 끊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헬렌 니어링은 스코트의 침상에 앉아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그이에게 중얼거렸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구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마치 동양 어느 고승의 죽음과도 같은 모습으로 남편이 떠난 뒤, 헬렌은 하늘에 있는 스코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스코트,
우리는 50년 동안 사랑과 동지애 속에서 같이 살아왔습니다. 결혼 생활은 결코 그 사랑의 본질이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관심과 목표와 행동이 일치하는 두 사람으로서 함께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면서 또한 함께 해온 많은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지적이고 훈련된 당신의 소양은 나보다 훨씬 위였고, 기술은 더 뛰어났으며, 경험도 더 넓었지만, 우리는 만나서 당신이 나의 부족한 능력을 뛰어넘도록 이끌어준 이해와 협력의 바탕 위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비로운 작용으로 평등하게 되었고, 우리로 하나의 삶을 살았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영원히 당신에게 최상의 찬사를 보냅니다.


헬렌은 이 책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몇 년 후인 87세 무렵에 썼는데, 그들이 쓴 다른 책들과 달리 평생을 함께 한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녀의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글들은 그들의 사랑을 한층 아름답고 숭고하게 만들어줍니다. 그 사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둘 중 누구도 상대방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마주 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쳐다 보는 데에 있다"고 말한 생텍쥐베리의 말을 이들은 평생에 걸쳐 실천했습니다.



헬렌 니어링은 남편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지만, 불행히도 그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92세가 된 1995년 9월 17일, 차 사고로 인해 그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명예와 돈과 권력과 수많은 욕망을 쫓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의 삶은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산업주의 체계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스코트와 헬렌이 평생을 함께 한 ‘땅에 뿌리박은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 그들이 실천한 삶의 방식과 죽음에 대한 태도, 남녀의 경계를 뛰어 넘은 동반자적 사랑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이 문명의 산소호흡기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금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채식주의, 명상, 자연, 노동 등의 단어는 제가 참으로 좋아하고 꿈꾸는 말들이지만 막상 몸으로 실천하기에 너무나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이 책은 제가 얼마나 많은 현대 문명의 이기들과 욕망과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채찍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헬렌 특유의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따뜻함과 명랑함으로 저의 몸과 영혼을 어루만져 줍니다.

저는 이 책을 닫으며 죽어가는 스코트의 머리맡에서 헬렌이 불러 주었다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옛노래를 소리내어 읊조리는 것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대해 경의를 표했습니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하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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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도 사랑하는 시인을 소개합니다.

도연명, 그는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쯤 중국의 동진이란 나라에 살았습니다. 하급 귀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글을 좋아했습니다. 입신출세하려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급제를 못한 채 29살 무렵에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지방의 하급관리로 벼슬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출처 : http://pppfc.tistory.com/391


그후 13년 간 5번이나 집을 떠나 떠돌면서 지방의 벼슬살이를 했지만 부패하고 어지러운 관리 생활이 전혀 그의 기질에 맞지 않았습니다. 평택이란 현의 현령을 할 때 군에서 행정시찰차 지방 관리가 내려오자, 고을 관리들이 관복을 차려 입고 그를 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5두미의 봉급 때문에 몸을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고 하며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때가 41살 때입니다. 결국 그는 몸에 맞지 않는 관리 생활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기쁨을 노래한 시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입니다.


<귀거래사>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고 있는데 어찌 아니 돌아갈소냐.
지금껏 내 마음은 내 몸을 위해 함께 했었는데,
무엇때문에 혼자서 고민하고 슬퍼하는가?
......
......
혼자서 좋은 계절 즐겨 보며,
지팡이 꽂아 놓고 풀뽑기 하고,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어 보기도 하고,
맑은 시냇물 대하고 시를 읊기도 하네.
자연에 순응하며 살다보면 목숨 다할텐데,
나의 삶, 주어진 운명을 즐김에 의심할 게 무언가!

이 시에 그려진 자연은 청아하고 선명합니다. 짧으면서도 구성과 표현이 정연한 걸작으로 후세의 시인들에게 절창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고향의 전원 생활을 즐기는 댓가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걸식>

배고픔이 나를 내몰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
가다보니 어느 마을에 이르러
한 집 문 앞에서 어색한 말투로 말을 건넨다.
그 집주인 나의 말뜻 알아듣고,
먹을 것을 내주니 헛걸음은 아닐세.
얘기하다 서로 뜻이 맞아 저녁 무렵까지 보내니,
술 주는 대로 잔 기울이네
.....


그는 술을 무척 좋아하였고 30대 후반에는 술을 끊으려 결심하기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평생 술과 함께 했습니다. 가난하여 술을 살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세속의 욕망을 멀리 하고 자연과 더불어 고매한 정절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음주>

사람들의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움막을 지었더니,
시끄럽게 수레나 말을 타고 찾아 오는 이 없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러할 수가 있는가?
마음이 먼 경지에 있으니 사는 땅도 자연 편벽되게 되네.
동녘 울타리 아래 국화 꺾어 들고
어엿이 남산을 바라보노라면
산 기운은 날 저물며 아름답기만 한데
나는 새들은 어울리어 둥지로 돌아가고 있네.
이런 가운데 참된 뜻 있으니
이를 설명하려다가도 문득 할 말을 잊네.


이러한 그도 자식들에 대해서는 학문을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아들들이 학문에 게으른 것을 탄식하며 수없이 편지를 보내어 경계했으니 제아무리 훌륭한 시인도 자녀를 향한 마음은 범인과 다를 게 없나 봅니다.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으로 글을 읽으니 참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자식을 책망함> 

백발은 양 귀밑머리 뒤덮고
살갗도 다시 실하지 못하네.

비록 아들 다섯 있어도
모두 종이 붓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서(舒)는 벌써 열여섯이지만
게으르기 짝이 없고,

선(宣)은 열다섯이 되지만
학문을 좋아하지 않네.

옹(雍)과 단(端)은 열세 살인데
여섯 일곱을 알지 못하며,

통(通)은 아홉 살이 되지만
배(梨)와 밤(栗)을 찾기만 하네.

하늘이 내린 운세 실로 이러하니
또다시 술이나 들이킨다오.


부모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녀들을 볼 때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하늘의 운세를 빗대어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고민하지 않는 넉넉함이 보입니다. 현실적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실패한 관리요, 무능한 가장이요, 무책임한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현실에 대해 분노하거나 자책하지 않습니다. 가난으로 인한 현실적 고통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순응하며 몸을 맡기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무릉도원'이라는 이상향을 그려냈습니다.
 

<도화원기>  

진나라 태원 연간에 무릉의 한 어부가 시냇물을 따라 길을 가다가 어디로 얼마나 왔는지 길을 잃었다. 갑자기 복숭아나무 숲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양편 언덕을 끼고 수백 보 넓이의 땅에 잡목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다운 위에 떨어지는 꽃잎들이 어지러웠다. 
......
집들이 멋지게 늘어섰고, 좋은 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뽕나무와 대나무 같은 것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사방으로 길이 뻗어 있고 닭소리 개소리가 들렸으며, 그 속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씨뿌리고 일하는 남녀들의 입은 옷들은 모두가 외계 사람들 같았다. 노인과 아이들도 모두가 즐거운 듯 함께 즐기고 있었다......  


술과 시와 자연을 사랑하며 살았던 그는 나이 6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살았을 때는 명성을 날리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해서 그의 시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송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던 소동파는 '고금독보(古今獨步)의 시인'이라는 말로 그를 찬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가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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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최윤희씨의 자살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행복에 관해 책을 쓰고 매스컴과 수많은 강연을 통해 행복을 설파하던 행복전도사, 온갖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은 듯한 환한 웃음으로 희망을 나누어 주던 분이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남편과의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이의 글과 말을 통해 행복의 희망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실망과 당혹감을 느꼈을 겁니다.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행복, 마침내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병마가 괴롭히자 어느새 목숨을 앗아간 채 저 멀리 달아나버리는 행복. 인간은 정말 행복해지기 어려운 존재일까요?

언젠가 한 방송에서 <당신은 얼마가 있으면 행복 하겠습니까>라는 주제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신생아들의 머리 위에 움직이는 모빌을 처음에는 1개를 달아놓은 후, 다음에는 2개, 그 다음에는 3개를 보여줍니다.

모빌의 수가 늘어날 때마다 아이들은 방긋방긋 웃으며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3개의 모빌을 보여준 후 다시 1개만 보여주자 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만족하는 모빌은 3개가 됐기 때문에, 1개는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너무 부족해진 것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이 세상에 절대적인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냥 행복하고 싶다면 그 소원은 쉽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남보다 '더' 행복하고 싶다면 그건 쉽지 않은 문제가 됩니다.

하이코 에른스트의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한가?」는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행복에 대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공식, 논문, 심포지엄, 자기계발서, 갖가지 종교까지 두루 동원해 가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그 처방들이란 것이 신기할 만큼 하나같이 어디서 많이 보던 것들이다.
단순소박한 사람의 행복, 세련된 향유의 기술, 수천 년 전부터 있어온 실용철학과 처세술이 우리 앞에 등장한다.
거기에 덧붙여 호르몬이니, 감정이니, 뇌의학이니 하는 과학적인 행복 관리, 즉 행복 테크놀로지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마치 행복 이데올로기의 빅 브라더처럼, 어딜 가나 우리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달라이 라마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머리말


돈 많은 부자들은 모두 행복한가요? 권세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행복한가요? 인기있고 유명한 사람들은 행복한가요? 행복과 성공에 대해 책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행복한가요? 쾌락주의에 빠져 향락을 찾는 사람들은 행복한가요? 

이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성공한 사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고통에 빠지고 마약에 의지하는 사례들을 매스컴에서 접할 때마다 우리는 회의에 빠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회의와 절망을 느낍니다. 게다가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잃은 사람,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은 더욱 늘어만 갑니다. 수많은 인류의 스승들이 행복에 대해 설파했지만 공허하게 들리기만 합니다. 
 

프로이트는 행복의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았고, 오히려 인간이 불행해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정신과 마음의 뒤틀린 모습들에 집착했다.
루소는 “행복이란 두둑한 지갑이며, 솜씨 좋은 요리사이고, 굉장한 소화력을 지닌 것”이라고 정의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너무 뻔하게 들린다. “행복한 사람의 세계는 불행한 사람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압권은 영국 철학자 A. J. 에이어다. “행복이란 꾸준히 만족스러운 만족이다. 더 나은 설명이 있다면 여러분이 찾아보시오!”
볼테르는 심지어 잔뜩 비꼬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확실한 것을 알고 싶다면 철학자들에게 물어라!”


저자는 심리학, 사회학, 철학, 역사를 두루 섭렵하며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행복의 법칙이 얼마나 위험한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줍니다. 그와 함께 저자의 깊은 통찰력으로 행복을 얻기 위한 쉽고도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합니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와 방법, 자신의 인생을 한 편의 이야기로 바라보고 서술하는 법, 가정이나 일터에서 스트레스와 정보의 함정으로부터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타인과의 관계 맺기와 용서하고 화해하는 법 등 단순한 ‘행복’을 뛰어넘어 진짜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행복은 살벌한 세상에 맞서는 처방전이나 해독제 같은 것이 아니다. 행복이란 인생의 마땅한 목적지이지만 오직 순탄하고 곧은길만 걸어서는 도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행복은 하나의 프로젝트라기보다는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 같은 것, 이를테면 잘 산 인생의 잉여물 같은 것이다. 행복이란, 인생 전체에 퍼져 있는 행복한 순간들을 단순히 합산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대인에게 행복의 가치와 기준은 너무도 다양해서 주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불안과 의심은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행복’입니다. 영국의 런던타임즈가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조사했는데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더군요.
 

1위, 바닷가에서 멋진 모래성을 완성한 어린이
2위, 아기를 목욕시킨후 아기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어머니
3위, 멋진 공예품을 완성하고 손을 터는 예술가
4위, 죽어가는 생명을 수술로 살려 낸 의사


행복은 어쩌면 신기루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의 결과처럼 행복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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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방에 다닐 일이 많다보니 고속도로 휴게실의 할인서점에서 4,000원이나 5,000원에 좋은 책을 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얼마 전에도 법정스님의 산문집 <오두막 편지>를 발견하곤 얼른 샀습니다. 하얀 책 표지에 까만 글씨, 붓선으로만 그려진 조촐한 공양 그릇 하나, 마치 스님의 편지 한묶음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 전기도 들지 않는 깊은 오두막에서 스님은 개울물을 길어다 밥을 해먹고 장작을 패서 불을 지피고 차를 달입니다. 그리고 예불하고 참선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세상을 향해 편지를 썼습니다. 단순하고 충만한 삶을 산 스님이 순수한 정신과 영혼의 언어로 쓴 편지들은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두막의 일상을 그릴 때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우리 사회에 쓴소리를 던질 때는 열정적이고 서슬이 퍼렇고 패기가 넘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어조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예불을 마치고 뜰에 나가 새벽달을 바라보았다. 중천에 떠있는 열여드레 달이 둘레에 무수한 별들을 거느리고 있다. 잎이 져버린 돌배나무 그림자가 수묵으로 그린 그림처럼 뜰 가에 번진다. 달빛이 그려 놓은 그림이라 나뭇가지들이 실체보다도 부드럽고 푸근하다.



스님은 이처럼 아름답고 소박한 오두막 생활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킵니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속에 발을 담고 살아가는 우리의 눈을 자연과 우주로 넓혀 줍니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스승의 모습이 글 속에 오롯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님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노래 부르는 스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별밤 아래서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를 불렀다. 곁에 들을 사람이 없으니 마음 놓고 18번, 19번을 죄다 쏟아 놓았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즉흥적으로 작사, 작곡을 해서 부른다. 그날 있었던 일을 오페라 가수처럼 노래로 부르고 있으면 아주 즐거워진다. 반주는 시냇물 소리가 알아서 해준다......<뜰에 해바라기가 피었네> 중


이어서 스님이 ‘오두막이 들썩거리도록’ 창을 부르곤 했다는 대목에선 추임새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나서 한때는 입버릇처럼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불렀다. 한참을 부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퍼져서 목소리가 촉촉이 젖을 때도 있었다......



별빛 쏟아지는 산속의 암자에서 독경이나 염불이 아닌 유행가나 창을 목이 터져라 불러대며,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저는 너무도 스님이 그리워졌습니다. 이런 줄 진작 알았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불원천리 찾아가서라도 스님과 마주 앉아 밤새도록 판소리를 부르다 올 걸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아직도 법정스님의 글을 그리워 할까요? 바로 이런 스님의 인간적인 빛과 향기가 우리를 감동시키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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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건대 해롤드 켈리 교수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합니다.

경제학 수업을 듣는 MIT 공대생들에게 조교가 들어와 교수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신입강사가 수업을 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강사소개서를 주며 수업 후에 평가서를 작성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을 몰래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강사소개서를 주었습니다.

1. "OOO씨는 MIT 경제사회과학과의 대학원생이다. 그는 다른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심리학을 가르쳐본 적이 있으나 경제학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6세로 군대를 제대했으며 기혼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마음이 따뜻하고 성실하며 비판적이고 실무에 밝으면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2. "OOO씨는 MIT 경제사회과학과의 대학원생이다. 그는 다른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심리학을 가르쳐본 적이 있으나 경제학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6세로 군대를 제대했으며 기혼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마음이 차갑고 성실하며 비판적이고 실무에 밝으면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두 강사소개서의 차이는 '따뜻하고'와 '차갑고' 단 하나의 단어였습니다. 수업이 끝난뒤 학생들로부터 강사평가서를 받았는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강사를 '따뜻한'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은 대부분 그를 마음에 들어했고 '친절하다, 타인을 배려한다, 격의 없다, 사교적이다, 인기 있다, 유머감각이 있다, 인간적이다' 등의 단어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차가운'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은 대부분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자기중심적이다, 딱딱하다, 붙임성이 없다, 화를 잘 낸다, 유머감각이 없다' 등의 단어로 묘사했습니다.

단어 하나에도 생각이 흔들릴 수 있는 이런 심리적 취약성에 대해 심리학자 프란츠 엡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진단적 안경'(diagnostic glasses)'을 낀다.

학생들은 소개서를 읽자마자 강사에 대한 진단을 했고, 그 후에는 자신이 쓴 '안경'에 맞지 않는 사실들은 아예 보지도 못한 겁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선입견이나 이미지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스웨이(Sway)’- '동요하다, 흔들리다, 지배하다, 권력을 휘두르다' 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심리적인 힘에 흔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바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입니다.



이 책에서는 '스웨이'를 일으키는 여덟가지의 심리적 유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손실회피'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손실을 봤을 때 따르는 고통을 훨씬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그 경험을 피하려 한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집착'입니다. 한번 판단이 내려지면 거기에 강하게 집착하는 일명 '똥고집'을 말합니다. 이 집착은 개인의 선택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과 같은 국가 단위의 의사결정에서도 작용합니다.

세번째와 네번째는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가치귀착'과 '진단편향'입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취향이 객관적 사실보다 우선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남성들에게 설문을 한 결과, 예쁜 여성 사진을 본 남성 참가자들은 '붙임성 있고 침착하며 유머 감각이 있고 사교적 수완이 있는 여성'이리라 진단했습니다. 그보다 인물이 떨어지는 여성의 사진을 본 남성 참가자들은 '내성적이고 대화를 어색해하며 지나치게 진지하고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일 거라고 진단했습니다. 남성 참가자들은 일단 선입관을 굳힌 다음에는 그 여성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다섯번째는 '피그말리온 이팩트'로 더 자주 불리는 '카멜레온 효과'. 이 단락의 부재는 "가슴이 뛰어서 사랑인가, 사랑이라서 가슴이 뛰는가"입니다. 보통은 사랑에 빠지면 가슴이 뛰지만, 가슴을 뛰게 만드는 상황을 먼저 만든 다음 대상을 만나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인드 콘트롤과 같은 자기 암시를 통해 긍정적 자기 계발을 하는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여섯번째는 '절차적 정의'. 사람들이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정의와 공정성에 큰 비중을 둔다는 것입니다. 정의에 관해선 제 블로그에서도 얼마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일곱번째는 '이타중추'와 '쾌감중추'의 줄타기. 조건 없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발적 봉사를 요청하는 것과, 거기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연계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집단동조'. 집단이 의사 결정을 할 때 반대자가 없으면 나서지 않고 동조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집단에는 아이디어를 내고 분위기를 이끄는 '주도자(initiator)'와, 부정적 의견을 내는 '차단자(blocker)'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집단은 차단자를 싫어하지만, 그 차단자가 주도자의 의견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나 집단동조되어 의견이 한쪽으로 편중되는 것을 막아주는 긍정적 역할도 한다는 겁니다.

이 책의 저자인 오리 브래프먼과 론 브래프먼 형제는 순간순간 인간이 선택하는 많은 것에는 이러한 심리적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분석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을 흔들어대는 '스웨이'의 힘은 개인은 물론이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 정치 상황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는 최고의 전략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존재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진단적 안경'으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차분히 ‘대기 시간’을 갖는 것,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결정을 내리거나 선택을 할 때 ‘당사자를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 또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 못지않게 ‘반대자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쉴 새 없이 마음이 흔들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에 그 선택이 '스웨이'에 이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다면, 잘못된 흔들림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와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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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者)」<양생주> 편에 어느 백정과 문혜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백정이 문혜왕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 그의 손이 닿자마자 어깨를 기대거나 무릎으로 누르는 곳에서 살과 뼈가 발라져 그대로 후두둑 떨어졌다. 칼질이 얼마나 절묘한지 어느 것 하나 음률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고, 몸짓 또한 멋진 춤과 같았다.

문혜왕이 감탄하며 “아아, 훌륭하다. 어찌 재주가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묻자 백정이 칼을 놓고 대답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서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을 때는 보이는 게 죄다 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자 소만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요즘 저는 마음으로 소를 만나지 눈으로 보질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춰버리고, 마음이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일 따름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큰 틈을 쪼개고 큰 구멍에 칼을 찌릅니다. 소의 본디 결에 따라 칼을 쓰므로 힘줄이나 질긴 근육에 부닥뜨리는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에 칼이 부딪치는 일이 있겠습니까?

훌륭한 백정은 1년에 한번 칼을 바꾸는데, 이는 살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백정들은 한달에 한번씩 칼을 바꾸는데, 그들의 칼은 뼈에 닿기 때문입죠. 지금 제 칼은 19년 됐고,그 동안 제가 잡은 소는 수천 마리가 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제 칼날은 숫돌에 막 갈아 내온 것 같지 않습니까? 소 뼈마디엔 커다란 틈이 있고 칼날은 얇습니다. 두께가 없는 얇은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칼을 아무리 휘둘러도 언제나 반드시 여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19년이 지났지만 이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갈아놓은 것과 같은 겁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뼈와 살이 엉긴 곳을 만날 때면 저도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면 조심조심 경계하면서 눈은 그곳을 노려보며, 동작을 늦추고,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이지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후두둑 뼈와 살이 떨어져 마치 흙이 땅에 쌓이듯 수북하게 쌓입니다. 그러면 칼을 들고 서서 만족스럽게 주위를 한번 둘러본 다음, 칼을 깨끗하게 닦아 잘 간수해 둡니다.”

“오, 훌륭하구나!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서 양생(養生), 즉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했노라.” 문혜왕이 말했다.

장자가 백정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훌륭한 백정은 1년에 한 번, 보통 백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아니 수십 번씩 마음의 칼을 갈아야 할 만큼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별것 아닌 '문제(소)'를 앞에 두고도, 이럴까 저럴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는 것이 범속한 인간의 세상살이 아니겠습니까?

백정은 칼쓰기를 마음에 맡기고 그 자연스러운 운행에 자기 자신을 맡겨 도를 체득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마음 한 자락을 자연의 운행에 맡기고 하루를 살기도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도를 체득한 백정도 살과 뼈가 엉긴 곳에서는 경계하며 미세한 곳까지 마음을 쓴다고 했지만, 정작 도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 주제에 욕망에 눈이 어두워 무리하게 허둥대고 덤벙대다가 일이 엉기고 꼬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길러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養生主)', 쉬운 듯하지만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장자의 글은 어떤 일이든 혼신의 힘을 쏟아 지극정성을 다해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일에 몸과 마음의 눈이 열려 도통하는 경지에 다다른다는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도통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이고, 일반 직업을 가진 생활인과는 거리가 먼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장자는 '일 따로 도 따로' 아니라는 걸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모든 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마음이 투영되게 되어 있고, 그 마음을 바르게 기르면 도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일하며 도통하자!

일하는 것과 도 닦는 것을 하나로 여기며 자신의 일과 직업에 지극정성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삶의 주인이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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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공기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 아침, 문득 생각나는 분이 계십니다.

지난 8월 27일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 선생입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아주 오래 전인 199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생님은 어느 출판사에 편집인으로 계실 때, 무명 연극배우이며 무명 글쟁이인 저의 글들을 모아「꿈꾸는 퉁소쟁이」라는 수필집을 출간해주셨습니다. 

생애 첫 수필집을 만든 저자와 출판인으로 만난 우리는 판소리와 우리말과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저보다 다섯살이나 많은 선배셨지만, 동생처럼 허물없이 대하시며 술도 마시고 노래와 판소리도 부르며 종종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책이 나온 얼마 뒤 미시간 주립대학에 비교문학을 연구하러 가시는 통에 한동안 소식이 뜸했습니다. 그러다가 「서편제」가 개봉되고 그 열기가 미국까지 전해지자 선생님의 주선으로 미시간 주립대학의 한국학 대회 행사에 초청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그곳에서 저와 함께 지내며 겪었던 에피소드가 1999년에 펴내신「어른의 학교」란 수필집 중 <보아야 보이는 것들> 이란 글에 실려 있습니다. 돌아가신 뒤 다시 읽어보니 그분과의 추억에 눈시울이 붉어지는군요.

  

93년 여름, 서편제의 명배우 김명곤이 내가 머물고 있던 미국 중서부로 날아와 통일기원굿, 판소리, 민요판굿 등 아주 재미있는 공연을 보여준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글은 공연의 성공과 저에 대한 과분한 격려의 말들로 서두를 장식한 뒤, 우리의 여행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공연을 마친 뒤 선생님과 사모님, 아들 가람이, 딸 다희와 함께 봉고차를 타고 미시간에서 시카고, 뉴욕까지 이틀 동안 4천리나 되는 길을 여행했습니다. 비행기로 가면 간단했을텐데 굳이 모텔 방에서 잠까지 자면서 긴긴 자동차 여행을 한 이유에 대해 사실 저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때 저는 운전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굳이 그 길을 택한 이유를 선생님의 글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상당히 토종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의 체험에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어쩐지 막막한 느낌, 한 개인의 경험 속으로 쉽게 편입되지 않을 느낌 하나를 억지로 더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에게 새로운 느낌 하나를 더해 주려는 선생님의 깊은 배려로 막막한 미국 중서부 대평원을 '억지로', '신물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걸 '좋은 버릇'이라 칭찬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큰 스테이크를 준 어느 식당을 '장모집'이라고 이름 짓기도 하며 엉터리 영어로 웨이트리스와 얘기도 나누는 제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관찰하신 모양입니다. 

......그는 영어를 하기는 해도 유창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동안 50대의 웨이트리스를 친구 삼는 것은 물론, 배를 잡고 웃게 만들기까지 하는 걸 보니, 연기하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싶더군요.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원초적인 수단 같은 것을 깨치지 않은 바에 그러기 쉬운 것 아니지요......

정말 하루종일 가도가도 끝이 없는 평원을 달리는 차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저는 공연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탓에 조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채 조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깨어 있을 때는 선생님이나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 중 저는 잘 기억하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통해 멋지게 되살아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동차 안에서 내 아들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무대에서 절름발이 연기를 하자면 (다리를) 저는 사람을 잘 관찰하고, 절뚝절뚝 저는 시늉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저는 사람이 어디 흔하냐? 어느날 나는 저는 사람을 관찰할 생각으로 종로 2가에 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세상에.......저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도 많으냐?  종로 바닥이 저는 사람 천지로 보일 지경이더라. 큰 수 하나 배웠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게 되고 보니, 종로에 나가도 저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마음에서 멀어지니까 눈에서도 멀어진 것이다. 나는 큰 수를 또 하나 배웠다. 나는 연습 때마다 단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한다. 보아야 보인다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김명곤의 메시지는 명약관화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깨어 있자는 것이겠지요. 깨어 있어야 보인다는 것이겠지요.

김명곤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됩니다.

'.....소리를 하든, 연기를 하든, 연출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 아니다. 나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더라. 자기 하는 일에 깨어 있더라는 것이다. 저금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에게는 못 당한다는 옛말이 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조금씩 쌓아가는 전문성, 그걸 무슨 수로 당하겄냐....'

깨어 있는 상태에서 보아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보이는 것은 그 깨어 있는 상태에서 쌓아가야 한다....오하이오 주의 평원을 지나면서 그가 한 이 말이 그 뒤로도 우리 집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울리게 됩니다. 내 아들딸에게 김명곤의 말은 한동안 화두 노릇을 너끈하게 하더라구요.

출처 : http://songrea88.egloos.com/3081557
 
사실 저의 평범한 말들은 선생님의 생각과 글을 통해 멋지게 되살아났습니다. 

선생님은 글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생각을 실천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은 '깨어 있는 전문성'으로 번역과, 소설 창작과, 신화학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신 분이니 무슨 수로 당하겠습니까?
 
온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파안대소하며 흘러간 노래도 열창하고, 도저한 이야기의 강물 속으로 좌중을 익사시키시던 선생님의 달변과 흥과 신명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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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정사회'란 단어가 화제입니다.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앞으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언급한 뒤, 곳곳에서 '공정사회'란 말이 횡행합니다. 총리-장관 후보자 3명의 낙마와 현직 외교장관의 경질 사건에도 공정사회란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공정'을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니 '공평하고 올바름'이라 설명되어 있고, 한영사전에는 'Justice' 또는 'Fairnes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What’s the Right Thing to Do?)」란 책의 열풍도 만만치가 않네요. 그 책은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꼽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학 강의를 발전시킨 책입니다.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으로 꼽히는 이 강의에서 학생들은 “정부는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진실을 말하는 게 잘못된 경우도 있는가?”, “살인이 도덕적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는가?”와 같은 까다로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 학생들은 신문에 보도되는 뉴스들이 정의에 대한 다양한 철학이나 사회학의 이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정한 사회'의 개념에 대해 지난 7일 청와대 대변인이 개념을 설명했더군요.

그에 따르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회,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사회적 책임을 지는 사회'였습니다. 또 공정한 사회가 이뤄지면 이명박 정부는 無 게이트 , 無 스캔들, 無 매너리즘 즉 ‘삼무(三無) 정권’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정사회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수사적입니다.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넘어 갈까요?

이 책에도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은 없습니다. 이 책의 목표는 미리 만들어진 해답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나 독자들에게 무책임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저자는 미국 사회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현상들에 대해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먼저 미국 사회의 가치를 규정해온 것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인데 저자는 공리주의와 자유주의가 다른 가치를 너무 압도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에 정의의 불균형이 생겼다고 지적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유시장 사회’로 변화했습니다. 따라서 시장이 요구하는 가치가 공정성과 정의에 바탕을 둔 여러 가치들을 압도했습니다.

이 때문에 상품화될 수 없는 가치나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가치들이 미국 사회에서 경시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또 미국 사회의 지나친 개인주의가 공동체 의식의 쇠퇴를 가져 오고, 그 때문에 개인과 국가와 공동체 사이에 불균형이 생긴 점도 비판합니다.
 
저자는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삶’과 ‘공동선’,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categorical imperative)’ 등을 동원합니다.

이 책의 미덕은 관념적이거나 수사적이지 않고 현실 사회에서 선택된 사례를 간결히 제시하고, 그 논점에 한해서 집중적으로 토론한다는 점입니다. 그 범위 또한 방대해서 소수집단 우대정책, 대리 출산, 낙태, 동성혼, 징집, 지원군 등 사회 전반에서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정의로운 사회'란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하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자, 다시 공정사회로 돌아가 볼까요?

그동안 MB 정부는 4대강사업, 언론악법, 고위 공직자의 부패, 전 정권 기관장들에 대한 강제 해고, 부자감세, 빈부격차의 심화, 공권력 집행과정에서의 인권침해, 과거사 바로잡기 외면, 천안함 의혹, 세종시 문제 등 수많은 이슈들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진 국민들과 첨예한 대립으로 일관했습니다.

이 모든 이슈들은 우리 사회의 불공정함에 대한 사례들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유주의 가치관이 몰고 온 부작용들입니다. 이 문제들에 대한 속시원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 대한 응급처방으로 '공정사회'란 개념을 꺼냈다면, 최소한 그 사회로 가기 위한 청사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청사진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듯이 최소한 국민들에게 질문을 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통한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 볼까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일반인 사이에서 정의와 공동선에 관련된 질문에 배고픔과 갈증이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양한 가치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이를 통해 공공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도덕적 분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번째 단계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정을 독점하려 들지 말고 무엇이 공정한 사회인지 서로 다른 의견들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 '도덕적 분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공정사회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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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곤파스’는 강풍으로 우리를 떨게 하더니 ‘말로’는 천둥과 번개로 떨게 하네요.

마침 「우르릉 천둥이 말하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어 천둥소리 들으며 읽었습니다.


늑대와 함께 춤을, 주먹 쥐고 일어서, 수다쟁이, 푸른천둥, 곰이 노래해, 까만물고기, 꼬리의 뿌리, 붉은매, 빗속을 걷다, 흰사슴, 까마귀왕, 미친곰, 푸른늑대, 어디로 갈지 몰라, 겁 안나, 독수리 날개를 펴는 자, 우르릉천둥.....

이름 짓기에는 세계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인디언입니다. 하기야 제 이름 '명곤(明坤)'도 풀어 쓰면 ‘밝은 땅’이니 우리 이름도 인디언식으로 풀어 쓰면 재미있는 이름이 많을 듯 합니다.

'우르릉천둥(Rolling Stone)' 평생을 인디언 치유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인디언 치유자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힘과 인디언 부족의 비밀을 전수하는 주술사이자 의사이며 영적 스승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치유자가 되기 위해 걸었던 길, 기도로 악령을 막는 법, 약초요법, 인디언들의 역사, 업보에 관한 이야기, 인디언들이 겪어야 했던 정치적 현실과 미래에 대한 예언 등 그의 영적인 삶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우르릉천둥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함께 살아가고 함께 일하고 함께 노래하며 '어머니 지구'와 '아버지 태양'과 '할머니 달'을 모시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인디언 말살 행위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인디언 문화파괴에 의해 인디언 문화는 죽어가고 인디언 정신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르릉천둥은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 어떻게 환경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 평화, 단순한 삶, 자유, 조화와 균형, 어머니 대지....이것은 우르릉천둥을 포함한 모든 인디언들의 독특한 세계관이자 우주관입니다.

이러한 인디언들의 영적인 삶은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미국의 히피 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전, 반권력, 반공해, 반체제, 자연보호, 생태 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으며, 그런 분위기를 타고 우르릉천둥은 영적인 스승으로서 미국의 젊은이들 특히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영화배우 존 보이트,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전 세계 히피들에게 영향을 끼친 록 그룹 '고마운 죽음(Greateful Dead)' 등이 우르릉 천둥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특히 록 음악의 대부 격이었던 밥 딜런은 우르릉천둥을 만난 후, 히피들의 대부이자 시인인 알렌 긴스버그나 존 바에즈 등과 함께 2년에 걸쳐 '우르릉천둥 리뷰(Roolling Stones Review' 콘서트 투어를 미국 전역에서 가지기도 했습니다. 비틀즈에 맞선 전설적인 팝 그룹 '롤링 스토운즈(Rolling Stones)'도 우르릉천둥을 정신적으로 숭배했다고 합니다.

'백인의 자식들이 인디언 옷을 입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긴 머리를 하고, 구슬을 달고, 머리띠를 할 것이다. 인디언들은 처음으로 진정한 백인 친구를 얻게 될 것이다' 라는 호피족의 예언처럼 히피 운동 이후 인디언과 백인들과의 영적 만남이 활발해졌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구르는천둥」이라는 제목으로 동일인에 대한 책이 나왔더군요. 칼 메닝거 재단의 연구원인 더글라스 보이드가 1971년 캔자스 주의 작은 숲 모임에서 구르는천둥을 처음 만나 그의 놀라운 치유의 힘과 깊은 영성에 감동 받아 쓴 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르는천둥’ 보다 ‘우르릉천둥’이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드네요.

인간이 한 장소를 더럽히면 그 더러움은 전체로 퍼진다.
마치 암세포가 온몸으로 번지는 것과 같다.
대지는 지금 병들어 있다.
인간들이 대지를 너무도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큰 자연 재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현상은 대지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대지 위에 세워진 많은 것들은 대지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체에 침투한 병균처럼 대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이물질들이다.
당신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대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로 크게 몸을 뒤흔들 것이다.

개발론자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 합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와 균형은 무너지고, 오늘날의 지구는 온갖 환경 재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들은 개발이라는 '욕망의 문명'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입니다.

우르릉천둥의 예언에 따르면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자연 재앙이 일어나고, 현대 사회는 붕괴될 것입니다.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곡물은 자라지 않을 것이며, 기아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 예언의 징후들은 지금 지구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르릉천둥의 예언은 사람들이 이기심을 극복하고 모든 생명체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렇게 바뀝니다.

사람들은 마음과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 지구 위에서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아지면 그때는 평화가 올 것이다.
영적인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사물들을 올바른 질서 속으로 되돌려놓으면 그때 예언은 바뀔 수 있다.

우르릉천둥의 모습. 출처 :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40500026

우르릉천둥은 1997년 1월 영혼들의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그의 40년 동반자였던 사랑스런 아내 ‘얼룩새끼사슴’이 저 세상으로 떠나자 그는 슬픔을 못이겨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술은 그의 당뇨병과 심장병을 악화시켰습니다. 그의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얻고자 그가 살고 있던 오두막으로 찾아왔습니다.

그중에 우르릉천둥이 죽기 전까지 몇 년 동안, 그의 아내로서 동반자로서 함께 한 ‘카르멘 해뜨는 포프’가 수년 동안 그의 구술을 받아 펴낸 책이 바로 「우르릉천둥이 말하다」입니다. 이 책은 천둥 같은 목소리로 진정한 삶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인디언의 영혼과 그의 삶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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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헨리 라이더 해거드의 「그녀」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줄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L. 호레이스 홀리는 길다란 팔에 기형적이고 추한 외모에 돈도 가족도 없이 사람들에게 따돌림받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내입니다.

고생 끝에 대학을 마치고 연구원 자리를 얻어 평생 책 속에나 파묻혀 살려는 그에게 유일한 친구인 빈시 노인이 찾아와 이상한 제안을 합니다. 자신의 어린 아들을 맡아 기른 뒤, 스물다섯 살이 되면 집안의 비밀이 들어있는 철궤를 보여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빈시는 덜컥 죽어버리고, 엉겹결에 그의 아들 레오를 떠맡은 홀리는 정성을 다해 기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물다섯이 된 레오와 함께 철궤를 열자, 그속에는 놀랍게도 레오의 선조와 아프리카 늪지대 어딘가에 숨어있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신비의 여왕에 대한 글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레오의 선조는 칼리크라테스라는 그리스 혈통의 남자로 이천여 년 전 이집트 이시스 여신의 사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순결의 의무를 어기고, 자신을 사랑하는 이집트 왕녀 아메나르타스와 함께 달아납니다.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서 폭풍을 만나 난파한 두 연인은 어느 바닷가에 도착해 그곳을 지배하는 여왕의 구원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하지만 그 여왕이 칼리크라테스를 사랑하게 되어 비극이 싹틉니다. 여왕은 아무리 유혹해도 아내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칼리크라테스를 죽이고 맙니다.

아메나르타스는 간신히 그곳을 탈출해 그리스로 건너가 아기를 낳습니다. 칼리크라테스와 아메나르타스의 후손은 그 후 복수를 꿈꾸며 유럽일대를 떠돌다 마침내 영국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겁니다.

호기심이 동한 레오는 선조의 흔적을 찾아 탐험을 떠나자고 홀리를 설득한 끝에 선조가 조난 당했던 아프리카 동부 바닷가에 표착합니다.

그들은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가 토인 아마하가 족의 환대를 받습니다. 그들은 추장 빌라리로부터 '만물의 복종을 받는 여인'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토인들과 며칠 지내는 사이 레오는 토인처녀 우스텐의 구애를 받고, 레오도 아름다운 우스텐에게 마음을 엽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은 며칠 뒤에 깊은 동굴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무려 이천 년 동안 젊음을 유지한 채 살고 있는 '그녀'를 만납니다.

그녀는 바로 선조를 사랑했던 그 여왕이었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든 얼굴을 보기만 해도 사랑에 빠질만큼 아름다운 '그녀'는 불로불사의 몸과 수천 년의 지혜를 가지고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칼리크라테스의 환생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기다리던 존재가 바로 레오였음이 밝혀지고, 여왕은 레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노라 제안하며 그의 사랑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여왕은 신비한 불길에 휩싸여 쭈글쭈글한 원숭이의 모습으로 죽게 됩니다.

출처 : http://sc2.ygosu.com/starlife/%3Fm2%3Dm...best%3DY

1886년에 출간되었으니 120년을 훌쩍 넘은 옛날 책이지만, 이렇듯 한 번 손에 들면 놓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작가 H.라이더 해거드는 1856년 6월에 변호사였던 윌리엄 해거드와 아마추어 작가였던 엘라 해거드의 10남매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신기한 이야기와 문학에 심취하며 청년으로 성장한 해거드는 1875년에 아프리카 나탈의 부총독인 헨리 벌러 경의 휘하로 들어갑니다. 그 무렵에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원주민들의 풍습을 체험하고, 원주민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물섬」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을 쓰겠다는 각오로 쓴「솔로몬의 동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통에 그는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그후 구체적인 구상도 없이 불멸의 사랑을 간직한 불멸의 여인만을 생각하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최면에 걸린 듯한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이 소설을 써나갔다고 하는데 스토리의 초점은 칼리크라테스와의 못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천 년을 동굴에 은거하며 기다려 온 '그녀'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아샤'라는 이름의 그녀는 아름답고 재치있고 명석하며 지혜롭습니다. 한 남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한 채 자아도취, 엄청난 학식과 지혜, 자연의 힘을 부리는 절대적 능력을 한몸에 갖춘 신비의 여인 아샤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매혹과 공포의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영원히 젊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평범한 여성들이 누구나 꿈꾸면서도 이룰 수 없는 욕망이 그녀에게서 거침없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여인이 되고 싶다고 꿈꿀 수도 없고, 남성들은 무의식적 욕망 속에서 그런 여성을 원하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이 소설은 특히 강력한 여성 지배자에 대한 남성들의 무의식적 욕망을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백인 중심, 남성 중심, 유럽 중심의 문명 세계에 들어가 그 질서를 파괴하고 절대적 권위를 갖는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그녀」라는 원래 제목보다「동굴의 여왕」이라는 우리식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각색되어 연극무대에 올랐습니다. 

또 1899년 멜리에스 감독이 「불의 기둥」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한 이래 여러 다른 버전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속에 들어 있는 풍부한 상징성 때문에 프로이트와 융에 의해서 재평가되기도 했습니다. 또 C.S. 루이스, J.R.R. 톨킨, 헨리 밀러, 조셉 콘래드, D.H. 로렌스 등의 뛰어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작가 스스로도 소설 속에 담긴 거대한 비유의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이 소설은 신비하고 강렬한 불멸의 사랑과 아름답지만 두렵고 무서운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잠재된 무의식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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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디언 지도자로 세알트(Sealth 1786년~ 1866년), 일명 '시애틀'이란 이름의 추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용감한 전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두와미시 족과 스콰미쉬 족의 연합 대추장으로서 크게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세알트 추장의 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_blog/rss/rssList....Page%3D4

1854년, 미국대통령 피어스에 의해 파견된 백인 대표자들이 그에게 15만 불에 6천만 평에 달하는 땅의 권리를 넘기는 조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물론 서명을 안 하면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태세였습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수많은 동족이 희생될 것을 염려한 그는 몇날 밤을 고민한 끝에 조약서에 서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명하기 전에 그는 백인들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을 두와미시 족의 언어를 배운 헨리 A. 스미스라는 백인의사가 기록했습니다. 그 연설문은 오랫동안 원문이 공개되지 않은 채 부분 부분 공개되다가, 1976년의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한 '고문서 비밀해제'로 120년 만에 햇볕을 보게 됩니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연설문은 그동안 녹색평론, 법정 스님, 류시화 시인 등에 의해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명문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마치 요즘의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천둥과 같은 외침으로 들려옵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zephyrakim/22

나와 함께 온,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이 사람들은 나의 부족이며 나는 그들의 추장이다.

우리는 왜 이곳에 왔는가? 연어떼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올해의 첫 연어떼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연어는 우리의 주된 식량이기 때문에 연어떼가 일찌감치 큰 무리를 지어 강의 위쪽으로 거슬러오는 걸 보는 일만큼 우리에게 즐거운 건 없다.

그 숫자를 보고서 우리는 다가오는 겨울에 식량이 풍부할 것인가를 미리 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더없이 기쁜 까닭은 그 때문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어떼가 햇살에 반짝이며 춤추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이 우리를 찾아올 것을 짐작한다.

우리가 무리를 이루어 몰려왔다고 해서 전투를 벌이려고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 나는 당신들이 우리의 땅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당신들과 우리는 모두가 이 대지의 아들들이며, 어느 한 사람 뜻 없이 만들어진 사람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

'워싱턴의 대추장(미국대통령 피어스를 말함)'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냈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그의 부족은 숫자가 많다. 그들은 초원을 뒤덮은 풀과 같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적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에 드문드문 서 있는 들판의 나무들과 같다.

백인 대추장은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는 제의를 하며 우리에게는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따사로움을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인디언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인디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안개가 달아나듯이 인디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들은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백인들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들은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 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인디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인디언은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 연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인디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인디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 주는 온갖 생명과 신령스러운 기운을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들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대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들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 만이 시작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 있어서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나날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있지도 않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이 땅에 살았거나 숲 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 살아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 가는 존재이다. 자기네 하나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인디언에게나 백인에게나 똑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인디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그대들은 불태워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들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차고, 풀이 우거진 언덕이 '말하는 쇠줄'(전화선)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숲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인디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연어떼를 보았으니 이제 나와 나의 부족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꿈인지 모른다. 당신들 백인들에게 밀려, 살아남기 위해 고통 받아야 할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연어떼의 반짝이는 춤을 나의 부족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출처 : http://seerdeborah.blogspot.com/2010/08..._17.html

당시 피어스 대통령은 인디언들의 마음을 달래는 제스츄어였는지 그 지역을 세알트 추장의 이름을 백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고친 '시애틀Seattl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으로 우리에게도 친근한 시애틀은 이렇듯 신성한 땅과 부족의 몰락을 앞두고 '잠못 이뤘던' 세알트 추장과, 정든 고향을 떠나 보호지역으로 들어가게 된 인디언들의 슬픔이 담겨져 있는 도시입니다.

시애틀에 있는 세알트 추장의 동상. 출처 : http://www.necrosant.net/zbxe/25349

세알트의 연설문은 원본이 환경론자들에 의해 여러번 개작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고, 그가 백인에게 이용당한 지도자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 의혹이나 평가에도 불구하고, 연설문의 내용 자체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세알트 추장이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 대지, 강, 연어, 새, 사슴들 모두 지금의 시애틀에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시애틀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인디언들의 땅과 삶은 철저히 수탈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이렇듯 백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무시 당했던 그의 연설문은 지금도 여전히 지구촌 곳곳의 수많은 개발론자과 건설론자들의 손에 의해 무참히 갈기갈기 찢기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그가 강과 물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강바닥을 파헤치는 덤프트럭과 크레인의 굉음에 묻혀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어머니 대지 위를 흐르는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제들의 외침은 철저히 무시되고 짓밟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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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앞둔 딸아이에게 선물하면 좋을 듯해서 산 책인데, 오히려 제가 더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What I wish I knew when I was 20)」이라..."나는 스무살 때 어떤 일을 하고 있었나? 내가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을까? 내가 스무살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등등 다양한 생각을 하며 제 청춘을 되새김하게 만들어준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 티나 실리그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인기리에 진행한 '기업가 정신과 혁신'이라는 강의를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은 특히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시점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 줄 듯합니다. 수많은 경영 사례와 대학 강의 중 창의적으로 과제를 풀어내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합니다.

이 책은 먼저 진부하고 평범한 학교 교육을 매섭게 비판합니다.

학교에서는 대개 학생을 개인별로 평가하고, 상대평가에 따라 성적을 매긴다. 다시 말해 누군가 승자가 되면 누군가는 패자가 된다. 이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조직이 돌아가는 방식과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나 원칙이 실제로 사회에서 먹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인생을 시작할 때 많은 스트레스와 혼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학교에서는 선다형 시험으로 정답을 하나만 요구하지만, 사회에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여럿일 경우가 많습니다.   

또 무엇무엇을  하면 안되고 규칙을 어기면 안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곳이 학교인데 인생에서는 ‘규칙을 깨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여러 가능성을 지나쳐버리고,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자기 자신을 제한시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저자는 원래부터 '안전지대'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자기 앞에 전개될 수 많은 길을 향해 걸어가라고 권합니다.

안전지대에서 나오는 것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고정관념에 도전한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도전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실패’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씁니다. 대부분 실패는 우리가 피해 가야 할 장애물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실패는 자산이다.’ 라고 강조합니다. 실패를 해보아야 또 다시 그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여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실패가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도 쉬운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확신하건대, 제가 애플에서 잘리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애플에서의 퇴출경험은 정말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인생은 당신의 뒤통수를 세게 치는 법입니다"
- 2005,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 중에서

이 책의 결론은 마지막 장에 나와 있듯이 '당신 스스로를 허락하라' 입니다.

고정관념에 의문을 품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나아갈 길을 스스로 설계하고, 능력의 한계를 믿지 말고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해도 좋다고 당신 스스로에게 허락을 내리라는 뜻이다. 

스무살에서 30년이 훨신 지난 지금, 전 이 책을 통하여 오히려 20대가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면,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면,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회를 붙잡으면,
당신 눈앞에 무한한 가능성이 나타날 것이다.

책의 제목은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지만 그 내용은 치열한 현실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모든 세대를 위한 책인 듯 합니다. 지금 무언가에 도전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잡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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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천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일 정도로 우리 국민 들이 성인처럼 존경하는 학자입니다.

출처 : http://ask.nate.com/qna/view.html%3Fn%3D5881801

그의 초상화나 글들은 매우 엄격하고 진지하고 학문에 몰두한 선비의 기풍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퇴계의 전혀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바로  단양 신선봉 아래 '두향묘' 전해 오는 퇴계와 두향과의 사랑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퇴계는 평생 두 번 결혼을 했습니다. 21세 때 김해 허씨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세 아들을 낳은 후 결혼 6년 만에 산후풍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번째 아내 권씨와 재혼했지만, 그녀 역시 퇴계가 46세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두 아내를 잃고 홀아비가 된 퇴계는 1548년 1월 단양군수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둘째 아들 채(寀)가 또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48세였던 퇴계는 계속되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명기 두향과 만나게 됩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두향은 어려서 일찍 부모을 잃고 단양고을 퇴기인 수양모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녀는 열세 살 에 '기적(妓籍)'에 올려졌으며, 열여섯 살에 황초시란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석 달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어쩔 수 없이 다시 기생이 되어 단양 관기로 활동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녀는 용모가 빼어나고, 거문고를 잘 탔고, 시와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왔을 때 이팔청춘 16세에 남편과 사별한 미모의 기생과, 두 아내와 사별한 채 아들까지 잃어 슬픔에 젖어 있던 48세의 홀아비가 만난 것입니다.

소설가 정비석 씨가 쓴「명기열전(名妓列傳)」에는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적 상상을 덧붙여 애절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슬픔과 비탄에 젖은 채 묵묵히 시를 쓰고 글을 읽는 퇴계를 두향은 마음속으로 사모하게 됩니다. 두향은 사랑의 정표로 여러 가지 선물을 드렸으나 퇴계는 번번히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두향은 포기하지 않고 선생께서 무엇을 가장 좋아하시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매화를 무척 사랑해서 매화를 읊은 시가 수십 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전국을 수소문해서 희다 못해 푸른 빛이 나는 최상품의 백매화를 구했습니다. 그 매화를 선생께 드리니, 선생께서도 "매화야 못 받을 것 없지." 하시며 동헌 뜰 앞에 심고 즐겼습니다.

그후 퇴계는 두향의 재능을 어여삐 여겨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의 정은 점점 깊어지고, 마침내 사랑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매화를 통해 맺어진 두 사람의 사랑은 각별하였습니다. 

출처 : http://blog.ohmynews.com/songpoet/150126

두향과 퇴계는 경치가 빼어난 강선대를 즐겨 유람했습니다. 총명하고 거문고와 시와 그림에 조예가 있던 두향은 퇴계와의 교분을 통해 그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고매한 영혼의 소유자로 성숙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열 달도 안되어 끝나고 맙니다. 넷째 형인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형제가 같은 도에서 근무하는 것을 피하는 제도 때문에 퇴계가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된 것입니다.

두향으로서는 청천의 벽력이었습니다. 짧은 사랑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말없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구나.”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 한 수를 썼습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그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습니다.

퇴계가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 한 개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퇴계는 평생 동안 그 매화를 가까이 두고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습니다.

1570년 퇴계가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도 자신의 죽음보다 매화의 목마름을 염려할 정도로 매화 사랑이 깊었습니다. 제자 이덕홍은 이렇게 전합니다.

"초여드렛날 아침, 선생은 일어나자마자 제자들에게 `매화에 물을 주라'고 말씀하였다. 오후가 되자 맑은 날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흰눈이 수북이 내렸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일으켜 앉히자 선생은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곧 구름이 걷히고 눈도 그쳤다."

한편 퇴계가 단양을 떠나자, 두향은 ‘퇴적계(退籍屆)’를 제출했습니다. 신임 사또에게 ‘이황을 사모하는 몸으로 기생을 계속할 수 없다’며 기적에서 이름을 없애달라고 간청해 기생을 면했습니다.

그 뒤 두향은 퇴계와 자주 갔던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강 언덕에 초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며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퇴계의 죽음 소식을 들은 두향은 도산서원까지 달려가 멀리서 절을 한 후 돌아왔습니다. 그후 두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이렇게 유언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무덤을 강선대 위에 만들어주오. 내가 퇴계선생을 모시고 자주 시문을 논하던 곳이라오."

너무도 일찍 생을 마감한 그녀는 강선대 가까이에 묻혔고, 그로부터 단양 기생들은 강선대에 오르면 반드시 두향의 무덤에 술 한 잔을 올리고 놀았다고 전합니다.

퇴계와 두향의 추억이 어린 강선대는 충주댐을 만들 때 수몰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두향묘'는 그녀를 기리는 사람들에 의해 1984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장됐습니다.
 

두향의 무덤. 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6page%3D

그런데 과연 이 사랑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조선 후기 문장가인 이광려가 두향묘의 정경을 읊은 한시에 그녀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두향은 실존인물로 보입니다. 

외로운 무덤 길가에 누웠는데
물가 모래밭에 붉은 꽃 그림자 어리어 있으라
두향의 이름 잊혀 질 때라야 강선대 바위도 없어지겠지

하지만 퇴계와 두향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밝힌 문헌은 아직까지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1977년 단양군이 펴낸 「단양군지」는 강선대를 소개하면서 '명기 두향의 묘가 있다'고 했을 뿐입니다.

퇴계와 두향의 관계가 처음 언급된 것은 위에 소개한대로 1970년대 후반에 씌여진 정비석의 소설 「명기열전」이었습니다. 정씨는 퇴계 문중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두향편'을 엮었다고 합니다.

그후 퇴계학연구원이 1980년에 낸 「퇴계일화선」에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는 다름 아닌 정비석 씨였습니다.

문헌을 통해 퇴계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퇴계가 두향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 이유로 다음의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듭니다.

첫째, 퇴계가 단양군수로 갔던 1548년은 퇴계 생애 중 정치적으로 위험한 시기였다는 겁니다. 그보다 3년 전에 일어난 을사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한 퇴계가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들을 피해 지방으로 피한 때라는 겁니다.

둘째, 퇴계가 단양에 도착한 다음 달에 둘째 아들이 죽고, 고을의 행정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텐데 그런 한가한 사랑을 할 여유가 있었겠느냐는 겁니다.

셋째, 퇴계가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근거로 듭니다. 1541년 관서 지방에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 평양에 머물렀을 때, 평안도 관찰사가 유명한 기생을 시켜 접대하려 했는데도 끝내 거부했다는 기록이 전해 올 정도로 여색에 대해 담백했던 퇴계가 그리 쉽게 사랑에 빠졌겠느냐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퇴계와 두향의 러브스토리는 오로지 소설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비석 씨가 어떤 증언을 토대로 소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어도, 두향이 실존인물이고 퇴계와 단양에서 만났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위험하고 아들의 죽음까지 겹쳤다면 퇴계는 정신적으로 무척 불안하고 외로웠을 겁니다. 슬픔에 지치고 세파에 시달린 중년 선비의 외로운 모습은 젊은 여인의 가슴 속에 모성애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켰을 겁니다.

또 다른 고을 수령들처럼 여색을 탐하지도 않고, 기생이라고 하여 함부로 대하거나 성희롱을 하지도 않고, 정성을 다해 민정을 살피고 학문에 정진하는 그의 모습은 그녀의 마음 속에 존경과 사랑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을 겁니다. 

그리하여 두향이 먼저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시했을 것이고, 매화를 통해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던 퇴계도 두향에게 깊은 정을 느꼈을 겁니다. 두향과 헤어진 후 평생 홀로 살며 벼슬과 학문에만 몰두한 퇴계의 행적을 볼 때, 퇴계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글을 통해 노출시킬 수 없었고 매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아무리 성인처럼 추앙 받는 학자나 성직자라 할지라도 정신적 교감을 기초로 한 이성과의 사랑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런 위인의 인간적인 체취를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단양군 단성면에서는 1979년부터 매년 <두향제>를 열고 있습니다. 두향제를 주관하는 쪽에서는 퇴계와 두향의 사랑이야기는 단양에서 있었던 실제 역사가 분명하다는 입장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사실인지 허구인지는 두향의 무덤 아래 출렁이는 충주호 물결만이 알고 있을 테지만, 저는 외로운 두향의 무덤에 술 한 잔 올리며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을 기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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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읽고서 책꽂이에 꽂아 놓은 뒤, 힘든 일로 마음이 시달릴 때면 꺼내어 읽곤 하는 감동의 책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이면 더 생각 나는 그 책에는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가, 한 인간의, 아니 한 여인의 의지와 용기가 세상을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사막을 기적의 숲으로 만든 여인 인위쩐(殷玉珍)의 이야기 「사막에 숲이 있다」입니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황무지에 참나무를 심어 세상에 없던 풍요로운 마을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인위쩐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마오우쑤(毛烏素) 사막의 징베이탕(井背唐)은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입니다.

먼 옛날에는 푸르고 비옥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지만,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양떼와 무자비한 벌목이 사막화를 초래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징베이탕 지역은 황사의 발원지로 우물도 없고, 새도 나르지 않고, 풀 한 포기 없고 , 사람의 발자국도 없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에 한 젊은 여인의 노력으로 기적의 숲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는 1985년, 인위쩐이 스무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아가 된 친구 아들 바이완샹이 사는 사막의 토굴 앞에 딸을 내려놓고 떠난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울며 애원하는 딸을 남겨 둔 채, 아버지는 "얘야, 이제 여기가 네 집이다"라는 말만 남긴 채 노새와 함께 돌아갔습니다.

출처 : http://leo.isloco.com/312

신혼집인 토굴의 풍경도 참담했습니다.

금방 주저앉을 것 같은 천장, 한숨 한 번만 크게 내쉬어도 흙이 우수수 떨어지는 벽, 다리가 부러진 식탁, 홀아비 냄새에 찌든 이불 한 채, 깨진 거울, 이 빠진 그릇만 있고 성한 냄비 하나 없는 부엌.....
 (본문 중에서)

처음에는 사막에서 헤매다 죽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바이완샹의 순한 눈망울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1주일 뒤, 가난하지만 착한 남편과 토굴 속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인위쩐은 바이완샹에게 자신들이 사는 곳에 꽃을 심어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자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10년 안에 눈앞의 모든 모래 언덕을 숲으로 만들겠노라고 야무진 꿈을 다지며 분연히 일어섭니다.

인위쩐은 친척들이 준 양 한 마리를 팔아 나무 600그루를 사는 것으로 나무심기를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일한 품삯으로 묘목을 받아 심기를 반복합니다.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온통 사막과의 처절한 싸움에 바쳐졌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막의 악령에게 아기를 잃기도 했습니다.

1988년 3월 29일, 잊을 수 없는 그날도 아침 일찍 양수 묘목을 등에 업고 징베이탕 남쪽의 큰 모래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었다. 현기증이 나면서 갑자기 쨍한 햇살이 눈을 찔렀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리려는 순간, 그만 허방다리를 짚어 언덕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등에 진 나뭇가지가 온몸을 찔러 댔다. 그게 사단이었다. 엄마 뱃속에서 9개월간 살았을 뿐 세상 구경도 해 보지 못한 아이는 황량한 모래 언덕에 묻혔다. 인위쩐이 정신을 차렸을 때, 남편 바이완샹은 피 묻은 모래를 움켜쥔 채 울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인위쩐은 첫째 아이를 조산하고, 둘째 아이를 사막에게 잃으면서도 나무심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밥보다 모래를 많이 먹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월을 보내면서 나무와 사막의 생리를 하나하나 터득해 가는 동안, 그녀는 사막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을 펑펑 흘리던 스무 살 어린 신부 인위쩐은 이제 무쇠처럼 강하고 튼튼한 세 남매의 엄마가 됐습니다. 시련이 클수록 그녀는 질기고 강해졌습니다. 그 힘으로 죽음의 사막을 생명의 숲으로 바꿨습니다. 그녀는 이제 1400만 평의 사막에서 자라는 온갖 생명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울창한 숲과, 갖가지 채소가 익어 가는 밭과, 가로수가 늘어선 길은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놀라운 기적은 지금 환경운동가들과 지구를 살리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한 희망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gOpen%3D

인위쩐은 어느덧 중국의 사막 생태 복원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에 알려진 뒤 농업계 고등학교 학생들, 산둥 성의 군인들, 허베이 성의 정부 관리들, 산시 성의 농부와 유목민들이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버려졌던 땅에 숲이 생기고, 길이 뚫리고, 우물이 생기고,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본 친척들도 하나 둘 사막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람은커녕 풀조차 살기 힘들던 땅이 이제 옥수수, 참마, 메밀, 녹두 등의 곡식을 수확하는 풍요로운 땅이 되었습니다.

그 땅에 지금껏 다녀간 사람만도 수천 명이 넘고, 세계의 수많은 언론이 그녀를 소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식목일에 KBS 1TV '수요기획'에서 <숲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삶을 소개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유명인사이며 비옥한 숲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나무에 물을 주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에 풀씨를 뿌리러 갑니다. 그녀의 놀라운 집념과 강인함은 사막뿐 아니라, 고통과 좌절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그녀는 불모의 사막에 생명을 창조한 살아 있는 전설입니다.

출처 : http://kkhsoft.egloos.com/3321181


두 사람이 종일 일을 하고 얻은 것은 손가락 굵기의 백양나무 묘목 서른 그루였다. 많지도 않은 묘목이지만 그것을 실어 나를만한 수레도 없었으므로 부부는 묘목의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밑동을 꽁꽁 싼 뒤 아이처럼 등에 업고 집으로 향했다. 나무를 등에 업고 돌아오는 길은 왠지 모르게 멀지 않았다. 모래 언덕이 그새 한 자는 낮아진 듯했고, 빈손으로 갈 때보다 오히려 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아마 등에 업은 것이 그저 깡마른 묘목이 아니라 두 사람의 희망이며 꿈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또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업고 온 묘목을 토굴 앞에 내려놓고 인위쩐은 그 길로 삽을 들었다. 어린 시절에 나무를 심어 보았기 때문에 두렵진 않았지만, 그때는 흙이었고 지금은 모래라는 차이가 있는 데다 뿌리가 흠뻑 젖도록 줄 물이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지. 너희가 못 살면 나도 못 산다."

그녀는 나무의 자생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바람길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줄 맞춰 묘목을 심고 웅덩이에 찔끔찔끔 고이는 물을 몇 번씩 길어 날랐다. 그리고는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옆으로 새지 않도록 손으로 모래를 쓸어 올려 둥그렇게 둑을 만드는 것이 나무를 위해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살고 죽는 문제는 전적으로 나무한테 달려 있었다. 반만이라도, 아니 열에 하나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적어도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졌다. 기적처럼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녀가 나무 서른 그루를 다 심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그녀가 간절히 기다린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정수리에 불을 붙일 것처럼 이글대는 태양 아래 물기 하나 없는 모래 위, 사실 어린 나무들에게 무작정 살아남아 달라기에는 염치없는 환경이었다. 나무에게도 생존을 위한 조건이 있기 마련인데, 이건 해도 너무한 악조건이 아닌가? 더욱이 나무를 심은 날로부터 며칠 뒤에는 미운 모래바람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정신을 쏙 빼놓고, 금이야 옥이야 업어다 심은 나무들을 무차별 습격했다. 드센 모래 장막의 행렬 끝에서 그녀가 본 것은 허리가 동강 나거나 모래를 무덤 삼아 죽은 나무들이었다. 그야말로 전멸이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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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점에 들렀다가 참으로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19세기 서울의 사랑- 절화기담, 포의교집(도서출판 여이연)』이란 책입니다. 이 책에는 19세기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애정소설 <절화기담(折花奇談)><포의교집(布衣交集)>이 실려 있는데, 둘 다 작자 미상의 한문 소설로 길이는 중편 소설 정도입니다.



<절화기담>은 이생이라는 선비와 순매라는 유부녀의 아슬아슬한 상봉기이고, <포의교집>은 이생이라는 선비와 초옥이라는 유부녀의 연애담인데 이 글에서는 <포의교집>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한 유부녀의 격정적이고 위험한 불꽃같은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초옥이지만, 소설의 초두는 이생의 사연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생은 명목만 양반인 충청도 출신의 사십줄에 들어 선 선비로 말솜씨는 있으나 글솜씨도 별로 없고, 친구나 선후배 사이에서도 별로 인정 받지 못하는 위인입니다.

고향집에는 젊은 아내가 있지만, 친구 따라 서울 와서 친구가 머무는 장진사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과거 공부 한답시고 가끔 친구들과 시문을 논하기도 하는, 그렇고 그런 중년의 사내입니다.

장진사 집은 중문 밖에 우물이 하나 있어 행랑 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곤 했는데, 초옥이란 여자가 물을 길러 왔을 때 이생이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고 맙니다.

초옥은 나이 열일곱 살의 유부녀입니다. 

어려서 남영위궁의 시녀로 지낼 때 글을 배웠는데, 총명하고 글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여류 시인인 허난설헌의 글을 흠모하고, 글을 아는 남성과 시를 주고 받으며 흉금을 터놓고 문학과 인생을 얘기하는 '포의(布衣)'의 관계, 즉 대등하고 인격적인 관계맺기를 꿈꾸던 미모와 열정과 재능을 고루 갖춘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신분상의 제약으로 장진사 행랑에 세들어 살다가 이생을 만났을 때는 원하지 않는 남자와 혼인을 한 지 일 년쯤 지난 뒤였습니다. 남편과는 일종의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라 애정이라고는 없이 그저 형식적인 아내 노릇을 하며 살고 있던 초옥은 오다가다 눈여겨 본 이생을 마음에 담아둡니다.

한편 초옥에게 반한 이생은 그녀가 물을 긷거나 바느질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마음을 졸입니다. 그러나 한동안 속으로만 애를 태우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초옥에게 물을 한 그릇 떠 오라고 청합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초옥은 이생과 밤새도록 문학과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날 밤 이생이 그녀에게 육체적인 접근을 하지 않자, 그녀는 이생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그와 ‘지기’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생이 육체적인 접근 없이 밤을 보낸 것은, 이런저런 현실적인 걱정과 함께 초옥의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초옥의 열렬한 사랑 앞에 이생은 번번이 어정쩡하게 몸을 사립니다.

원컨대 낭군께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셔서 가슴에 깊은 응어리를 만들지 마셔요.
정이 있는데 토해내지 못하면 반드시 병이 나고, 병이 생기고 나면 애초에 몰랐던 것보다 못하지요.
그림자 속의 그리움, 그림 속의 사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낭군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피하지 않을 터인데, 한 동이 술을 어찌 마다하겠어요.

이생과 첫 잠자리를 갖기 직전에 초옥이 한 말입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사랑의 결합을 촉구한 초옥은 육체를 초월한 어떤 지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이끌어 갑니다. 초옥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 주저하거나 회의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어려운 처지의 남자를 만나 그를 뒷바라지하고자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꿈꾸던 삶을 펼쳐 나갑니다.

이생과의 관계를 눈치 챈 남편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칼부림도 당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얼떨떨해질 지경으로 불륜 사실을 숨기려 들지 않습니다.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공표하며 죽음을 선택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눈에도 잘했다고 보기 어려운 불륜을 저질러 놓고, 초옥은 '곧은 행동(貞行)'이었다고 선언합니다. 죽음으로 사랑을 관철시키는 초옥의 기세에 눌린 시아버지는 이생과의 관계를 모른 척 용인하기에 이릅니다.

반면 이생은 고향집의 아내도 있고, 초옥과 살림을 차릴 만큼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합니다. 게다가 초옥의 진심마저 의심합니다. 저토록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니 자기보다 잘난 사내가 나타나면 그리로 가버리라 믿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그 반대로 초옥은 자신의 전부를 바쳐 이생을 사랑합니다. 인물도 볼품없고, 나이도 많고, 유부남이고, 학문도 부족한 선비를 사랑하는 초옥의 불같은 열정은 현실의 모든 조건을 초월하는 사랑의 화신인양 보여집니다.

초옥은 애초에 변변찮은 이생을 멋진 남성으로 오해한 것이 아닙니다. 초옥은 오로지 이생을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남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초옥은 이생과 인격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맺은 것이며, 이 관계를 승화시키고자 현실과 싸운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생에 대한 초옥의 열정은 강렬합니다.

이생과 한동안 헤어져 있을 때 이생의 친구인 장사선이 자신을 소유하고자 몸부림치는 부유하고 젊은 장중약과 맺어주려고 권유하자, 초옥은 이렇게 말하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제 마음은 금석보다 굳어서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을 것이요, 불에 던져도 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더 말씀하지 마세요.
만약 이 낭군이 장 낭군처럼 부유하고 젊었다면 전 돌아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지금 이 세상의 번화한 도시에는 벼슬아치와 귀공자, 부유한 상인과 호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저는 이 모두 원치 않고 오로지 이 낭군만을 택했으니, 쇤네의 마음을 아시겠지요?

요즘 남성들이 들으면 참으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명대사 아닙니까?

그런데도 헤어져 있는 동안 이런 사랑을 까마득히 모르고 초옥의 정절을 의심하기만 하던 이생은 어리석고 경솔하게도 장중약의 욕망을 초옥에게 전달하는 뚜쟁이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결정적 실수였습니다. 초옥의 사랑에 대한 기본적 예의조차 배반한 사건이었지요. 초옥은 이생의 말을 듣는 순간, 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낭군과 비록 혼인한 사이는 아니나, 사귀는 정이 혼인한 사이보다 나았던 것은 그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말씀하시는 것이 어찌 이리 망령되고 경솔하신지요?

자신이 이생에게 하찮은 여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천근처럼 무거운 이 말 끝에 초옥은 자신의 사랑을 거두어들입니다.

그 후 초옥의 “산 같던 정은 눈이 녹고 구름이 흩어지듯 사라지고, 금석 같던 약속은 바람에 우박이 날리듯 사라져” 다시는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 오랜 이별의 시간 끝에 민비의 가례를 앞두고, 궁중 잔치의 시중을 드는 '여령(女伶)'으로 차출돼 가는 초옥과 이생이 재회하게 됩니다. 이생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초옥을 명단에서 빼주고, 영산홍 가지 하나를 꺾어 주며 옛정을 되살리려 이런 말을 합니다.

“이 꽃은 전날 봉선화에 비교하면 어떠하냐?”
“정말… 그 꽃이로군요.”
“너와 내가 이 꽃과 같이 활짝 피어나면 어떻겠느냐?”
“낭군께서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이 꽃과 더불어 활짝 피어나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끝났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이미 ‘지기’가 아닌 옛사랑에 대해 초옥은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미모와 지성에 열정까지 갖춘 그녀는 한 남성과의 진정한 ‘지기’ 관계를 꿈꿨지만, 봉건적 윤리나 남성중심주의 등의 장애에 부딪혀 상처 받았습니다.

남녀가 만나 서로 반하고,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순간 이별하고 사랑이 끝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수없이 널려있습니다. 초옥의 슬픈 비극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이 끝났다고 울고불고 하지도 않았고, 구차하게 미련을 두지도 않았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열정을 바쳤던 사랑의 대상이 그녀가 꿈꾸던 이상형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자유로와졌으며, 사랑이 끝난 뒤에도 그녀의 자유로운 인생은 지속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과 이생 사이를 망가뜨렸던 장중약이란 사내와 교제를 지속한 것으로 회고됩니다.

그 후 중약과 영필에게서 들으니 양파(초옥)와 중약은 비록 정을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 서로 만나면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양파가 본 남편을 버리고 어디 떨어져 사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러한지?

그녀의 후일담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인생의 한 순간에 선택한 위험하고 불꽃 같은 사랑을 위해 신분이나 제도나 사회의 통념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목숨까지 던지며 살다 간 초옥이란 여인이 우리 고전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초옥의 사랑은 남성을 위한 정절과 순결과 희생으로 범벅이 된 '춘향'이나 '운영'이나 '숙향'의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녀의 사랑은 현대 어느 여성의 사랑보다도 자주적이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입니다.

<포의교집>은 일반적인 애정소설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문제를 남성이 아닌 여성의 주체적인 행동 위주로 끌어감으로써, 아직도 봉건적 가치관에 찌들어 있는 우리 남성들의 일방적인 욕망을 교란시키고 단절시키는 혁명적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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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강 사업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점점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수경 스님의 홀연한 잠적, 천주교 사제들의 삭발, 천주교 주교회의의 대규모 미사 집전, 전문가와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업 중단 요구.....

그렇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정운찬 총리도 6·2 지방선거의 패배를 4대 강 사업에 대한 심판으로 보지 않으며, 규모를 줄이거나 속도를 조정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변했습니다.

또 정 총리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도 '역사의식'과 '애국심'이 있으면 정략적으로 만든 세종시 원안을 지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을 유엔안보리 이사국에 발송한 문제에 대해서도 정 총리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국내 논의에 그치지 않고 국제기구에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결과 천안함 피격 사건은 명명백백히 북한의 도발로 밝혀지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며, "근거 없는 의혹에 근거해 정부 입장에 반하는 서한을 보내는 것은 국익에 반할 뿐 아니라 건전한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난했습니다.

저는 이런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한 총리의 발언을 보면서 참으로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권력자나 정치인들이나 보수집단들은 이미 '집단사고'에 단련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화가 날뿐 슬픈 감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때 뛰어난 경제학자이며 서울대 총장으로서 지성인의 표상처럼 존경 받던 정 총리마저 ‘집단사고의 덫’ 갇힌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 사회 지성의 추락 현장을 여실히 보는 듯하여 슬픔이 밀려 온 것입니다. 

'집단사고의 덫'이란 결집력이 강한 구성원들이 자기들 생각에 맞는 의견만 받아들이고, 자기들 생각과 다른 의견이나 증거들은 무시하거나 외면해 버리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자기들의 생각은 틀릴 수 없다는 '무오류의 환상', 자기들이 그렇게 결정한 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는 자기합리화, 그리고 다른 의견은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에 빠져 태연하게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사고의 덫'을 말합니다.

매사추세츠 대학 아이젠버그 경영대학원의 토머스 키다 (Thomas Kida) 교수는 그의 저서 「생각의 오류」에서 이런 '사고의 6가지 덫'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1. 과학적 수치보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더 솔깃해 한다. 이야기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대상도 쉽게 신봉하게 된다. 그러한 믿음은 중요한 결정을 실패와 절망의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2. 자기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든다. 자기 믿음과 기대를 확인시켜주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상충되는 쪽은 무시하거나 편리하게 재해석하는 습관을 유지할 경우, 머릿속 깊이 박혀 있는 편견이나 오해를 평생 풀 수 없게 된다.

3. 이 세상에는 운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있음을 간과한다. 주식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유명 잡지에서 특정 펀드를 초우량이라고 선전할 경우, 많은 이들이 의심 없이 그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우연한 의견일 뿐이다.

4.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잘못 인식한다. 기대와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보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해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정보와 사건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흘러가고 있는데, 시간과 노력을 줄인다는 목표 아래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정작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 있다.

6. 인간의 기억은 이따금 부정확하다. 특정 부분만 지나치게 확대해 남아 있기도 하고, 선택에 의해 지워지기도 한다. 또한 세월에 따라 그 옷을 달리 입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억에 의존할 때는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이 내용들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사람들이 '생각의 오류'를 저지르는 이유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심리'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생각의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철저한 회의주의자'가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회의주의만이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름길임을 강조합니다. 철저한 회의를 거치지 않은 믿음은 광신이나 맹신에 그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원하는 이유는 삶에서 확실성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아주 복합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흑백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편이 더 편해도,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는 편이 더 마음 편해도, 우리가 모르는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중략)
무언가를 믿을 때는 엄격해야 한다.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믿음을 유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본문 중에서

한 개인도 물론이지만, 한 국가가 생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도자들이 집단사고의 덫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는' 덫에 빠지면,  국가의 운명을 가름하는 정책의 결정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오류로부터 벗어나거나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권력 집단 안에 '철저한 회의주의자'가 있어야 합니다.

집단사고의 덫에서 벗어나 사소한 문제까지 꼼꼼하게 의심하고 분석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정책이 옳다고 믿기 전에 그 믿음의 근거를 살펴보고, 객관적 증거를 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4대 강 사업, 세종시 사업, 천안함 사건......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중대 사안에 대해 권력 집단이 획일화된 집단사고로 오판을 할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그 오판의 위험성 때문에 자기 목숨을 희생하기도 하고, 항의를 하기도 하고, 국제 사회에 정부와 다른 의견을 보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권력 안의 사람들은  자기들 의견과 다른 행동을 하면 무조건 국익을 해치는 행위로 치부해버리는 집단사고의 덫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들의 결정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옳다고 하는 '애국적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사람은 확신과 신념에 찬 권력 집단의 대변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철저한 회의주의자'입니다.

그리고 그 회의주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지성적 포용력'입니다.
저는 정 총리와 같은 지성인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너무도 쉽게 집단사고의 덫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역사의식', '애국심', '국가 안보', '국익'이라는 단어들 속에서 고통과 절망의 지난 역사가 헐떡이고 있는 것 같아 슬픈 것입니다. 

국가의 미래를 가름할 현재의 중대한 사안들에 대해 집단 사고의 덫에서 벗어난 '철저한 회의주의자'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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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너무도 아름다운 이유로 비련의 주인공인 된 궁중무희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진(Li-Tsin)'. 그녀의 빼어난 미모와 우아한 무용에 반한 젊은 프랑스 외교관이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 데서부터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신경숙의 소설 <리진>에 실린 김동성 화백의 리진 초상.
출처 :
http://likecho.tistory.com/entry/%25EC%...580%2599

그녀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 외교관(3대 공사인 빅토르 콜랭 드 프랑시로 밝혀 짐)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진과 사랑에 빠진 3대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프랑시(1853~1922).
출처 :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3D12999

"나는 그녀와 결혼할 겁니다. 이진의 마음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이 이단(異端)의 나라에서 그녀는 한 여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녀는 천사로서 대우받을 권리를 가질 것입니다."

이렇듯 이진에게 사정없이 매혹 당한 그는 본국에서 소환 명령이 오자, 고종에게 자신의 사랑을 얘기하고 그녀를 '기증' 받아 프랑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정교사를 들여 프랑스 말을 가르치고, 프랑스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놀라운 재능으로 새로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외로운 외국 생활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에 빠졌고, 몸이 쇠약해져갔습니다. 

김동성 화백의 삽화. 출처 : http://likecho.tistory.com/entry/%25EC%...580%2599

"서양의 습한 안개가 동양의 따뜻한 햇볕에 그을은 그녀의 이마에 검은 빛을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자, 옛날의 생활로 돌아 간 빅토르 콜랭은 '여신'처럼 숭배하고 '천사'처럼 떠받들던 이진에게 소홀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한국의 규방을 복원해 줄 정도로 관심을 잃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다시 한국에 파견되어 이진과 함께 조선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오자마자 이진에게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어느 고관이 궁중에 소속된 노비인 그녀의 신분을 앞세워 기생들의 조직인 '교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펼쳐진 무희로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얇은 금조각을 삼키고" 스스로 생명을 끊어버렸습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거의 10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05년 무렵에 2대 프랑스 공사로 조선에서 근무했던 끌라르 보띠에(Madame Claire Vautier)와 이뽀리트 프랑땡(Hippolyte Frandin) 두 사람이 쓴 「한국에서(En Coree)」 라는 수필집을 프랑스 리옹3대학의 이진명 교수가 번역해서 재불한인 잡지인 <한인>에 1979년 4월호에 소개했고, 그 책을 다시 불문학자인 김상희 부산대 교수와 국문학자인 김성언 서울대 교수가 번역해서「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 」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 무렵에 출간했습니다. 


49장으로 나눠서 여러가지 한국의 풍물을 소개한 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 중 <35장 궁중의 기생들과 한 한국 여인의 비극>이라는 짧막한 글에 위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글에서는 이진의 빛나고 깊은 눈을 '영혼의 꽃(Fleur d'Ame)'이라고 부를 만큼 그녀를 찬미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5년에 부산대학교에 강연을 갔다가 번역자인 김상희 교수에게서 그 책을 선물로 받고, 오랫동안 이 이야기에 심취했습니다. 

프랑스 공사와 결혼한 조선의 궁중무희, 그녀의 프랑스 생활, 귀환, 자살.......오페라 「나비부인」과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뭔가 다르고, 일제시대도 아닌 구한말에 예술가적 영혼을 지닌 한 여인이 프랑스 파리에서 겪었을 많은 사건과 혼란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몇 가지 의문점도 발견되었습니다.

첫째, 이진이라는 궁중무희의 존재를 증명해 줄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천민 계급인 기생이니 호적도 있을리가 없겠지만 프랑스 공사와 결혼을 했다면 당시 궁중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을 것이고, '이왕직 아악부'나 '교방부' 등 음악이나 무용을 담당했던 궁내의 광대나 기생에 대한 기록도 있을 법한데 아직까지 그녀에 대한 국내의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그녀와 결혼했다는 프랑스 공사의 이름과 그의 출생지나 외교관으로서의 근무 기록은 어느 정도 밝혀졌는데, 그녀와의 결혼 여부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이진은 그와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요? 애인? 동거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세째, 그녀가 귀국한 뒤 다시 궁안으로 들어갈 때, 왜 그 빅토르 콜랭은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 책에 씌인대로 '사악한 제도에 한 번 저항해보지도 않고 비겁하게도 그녀를 포기'해 버린 것인가? 그녀는 버림 받은 슬픔 때문에 자결한 것인가? 아니면 신분의 족쇄에 얽혀 비참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항거로 생을 끊은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비밀스러운 안개에 싸여 있는 아름다운 무희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런 의문점 때문에 저에게 더욱 흥미진진한 상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을 하며 지내고 있던 중, 놀랍게도 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이 나오더군요.

김탁환씨의 「리심(파리의 조선 궁녀)」와 신경숙씨의 「리진」이 거의 동시에 출간된 것입니다.
 


두 분 소설가도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이야기는 이미 뛰어 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품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그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과연 똑 같은 자료를 가지고 씌어졌지만, 두 소설의 구성이나 스토리나 분위기는 너무도 다르더군요. 또 제가 구상했던 이야기와도 너무도 달랐습니다.  

짤막하지만 흥미롭고 상상을 자극하는 '춤 추는 여인'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진. 출생도 알 수 없고 생존 여부도 확인되지 않지만, 수많은 남성들의 찬미 속에 비극적으로 죽어 간 여인. 그녀의 삶은 여전히 저에게 한없는 상상의 날개를 달아줍니다. 저는 여전히 '영혼의 꽃' 이진에게 매료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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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건설업자 정씨가 25년간 100명이 넘는 검사들과 '영감님', '형', '아우'로 절친하게 지내면서 향응과 성접대를 해왔습니다. 

사장님이 권력자와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접대'를 한 것입니다. 그가 모신 검사들도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이라고 생각하고 고급 일식집이나 요정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양주 폭탄을 마시고, 3차로 젊은 아가씨들과 호텔이나 모텔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서 '사회 정의' 위해 범죄자들을 심문하고 법정에서 매서운 법의 칼날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또다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정씨가 비리 사건으로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절친하게 지냈던 형, 아우 검사들이 모른 채 하자 그는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동안 꼼꼼하게 적어놨던 '접대기록'을  MBC <PD수첩>에 제공했고, 그 내용이  <검사와 스폰서>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어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박기준 부산지검 검사장은 사표를 냈고, 검찰은 부랴부랴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검찰 개혁을 하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습니다.

출처 :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0421095150774


법조비리가 폭로된 것은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99년 대전 법조비리, 2006년 법조브로커 김흥수 사건, 2007년 브로커 윤상림 사건, 2005년 안기부 X파일 의혹과 2007년 '삼성 떡값' 의혹, 박연차 리스트,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스폰서 파문......줄줄이 이어져 왔습니다. 검사와 스폰서 문제는 특정지역이나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 온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왜 이 문제가 근절되지 않고 되풀이되는 걸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이 있습니다.  「헌법의 풍경」의 저자인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두식 교수와 김종철 변호사 등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팀'이 판사, 검사, 변호사, 브로커, 법원 공무원, 경찰, 기자, 마담뚜까지 법원 안팎의 23명을 심층 면접하여 집필한  「불멸의 신성가족」이란 책입니다. 스스로 검사 출신이면서 법조계에서는 ‘또라이’라고 불렸다는 김두식 교수는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우리나라 사법부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해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법조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한명의 '사법 패밀리'가 되는 걸까요?

공부 잘하는 '수재 패밀리' 한 젊은이가 바늘구멍 같은 사법시험을 뚫고 합격되면 결혼소개업자인 마담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자 집안의 재력과 외모로 평가되는
결혼시장에서 거래를 마치고 연수원에 들어가면 '연수원 패밀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연수원에서 만난 교수, 동기들과 끈끈한 형, 아우 관계를 형성합니다. 좁은 법조계에서 언제 어디에서 어떤 관계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모나지 않는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행동 수칙을 익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개성이 너무 '튀거나', 권위에 도전하거나 기존 질서에 적응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도태되고 ‘원만한’ 사람들이 살아남습니다. 

그 뒤 크고 작은 돈으로 실핏줄처럼 연결된 '사법 페밀리'의 흐름 속에 투입됩니다. 

한 검사의 일화입니다. 부장검사, 차장검사와 평검사들이 회식을 하는 자리에 동석한 변호사가 3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돌렸습니다. 변호사는 현 부장 검사가 차장 검사 시절에 모셨던 부장검사 출신이었습니다. 그때 한 평검사가 받을 수 없다고 거절을 하자 뭘 모르는 우스운 사람으로 매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화를 들려준 검사도 마음으로는 불편했지만 부장 검사도 받는 마당에 거절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도되는 분위기여서 나서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일반인들은 돈을 거절한 평검사를 청렴하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좁은 법조계 안에서는 ‘또라이’ 찍힐 확률이 높습니다. 이처럼
자기 평판을 관리해 ‘사법 패밀리’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법조인들의 의식이 돈과 청탁으로 얽힌 '스폰서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이런 갖가지 역정을 거쳐 퇴직을 하면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됩니다. 판검사 출신의 개업 변호사인 ‘전관 패밀리’들은 하나같이 ‘전관 예우’를 받게 됩니다. 사건의 수임과 판결에서 한 동안 특별 대우를 받는 겁니다. 그 댓가로 그들은 후배 판검사들에게 술과 골프, 식사 등의 ‘접대’를 합니다. 이런 접대를 통해 부장판사 정도를 마친 변호사는 1년에 수억 정도를 쉽게 벌 수 있는 '부패 패밀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깊이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기업과 사법부의 패밀리 커넥션, 사법 패밀리 내의 학연 지연 혈연의 문제도 심각한 부패 사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슬들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것은 사법 패밀리라는 특수 엘리트 계층의 관계망이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행이란 밖에서 볼 땐 아주 이상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막상 그 안에 몸 담게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답습하게 됩니다. 

스폰서 문제가 터지면 대개 사직을 하거나 해임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윤리 문제가 아니라 뇌물죄를 적용해 형사 처벌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만일 경찰이나 하급공무원이 똑같은 일을 했다면 검찰은 당연히 구속수사를 했을 겁니다.

박기준 검사장은 사직했지만 나중에 잠잠해지면 변호사 개업하면 됩니다. 아마 '전관 예우'를 통해서 수억원의 돈을 금방 벌 수 있을 겁니다. 진상조사단이 활동을 한다지만 민간 조사위원들은 수사지휘권이 없으니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 리 없습니다. '상설특검'을 설치해서 부패 사슬을 끊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야 모두 상설특검을 꺼리니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희망은 없는 걸까요?

저자는 마무리 글을 통해 그래도 희망을 갖자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법조계 현실의 최대 피해자인 시민들이 나서서 판검사, 변호사와 의사소통을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합니다. 판검사에게 실제로 전달되는지도 알 수 없는 돈을 변호사에게 쏟아붓느니, 차라리 시민 자신이 나서서 직접 편지를 쓰고 사례를 모아 전달하는 게 훨씬 판결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각성만 필요한 게 아니라 법조계 내부의 각성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법조계 내부에서 스스로를 옥죄는 부패 사슬을 해체하고, 작은 촌지나 선물이나 골프접대 등을 거부할 수 있는 양심을 바로 세우고, 상하의 계급 관계로 꽉 막힌 의사 소통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판검사, 변호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법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시민들의 힘으로 검사, 판사, 변호사와 소통이 될까요? 끈끈한 부패 사슬에 너무도 깊숙이 얽혀있는 법조계에 그의 말이 통할까요? 겉으로는 누구나 찬성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물정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비웃지나 않을까요?  왜 제 귀에 그의 주장은 희미하게 들릴까요? 

아, 정말 희망은 없는 걸까요? 이 시대 사법 패밀리들에게 '정의'는 사라진 걸까요? 우리 법조인들은 정말 조폭보다 더 무서운 '불멸의 신성 가족'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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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17세기 유명한 페르시아 시인인 '사이브 에 타브리지(saib-e-tabrizi)'가 카불에 대해 노래한 시에서 제목을 따온「천 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은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사람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마리암은 세 명의 부인을 둔 잘릴 한에게 겁탈당했던 하녀 나나의 딸입니다. 자신의 불행을 견디지 못한 채 딸을 사랑할 줄 모르는 어머니와 단둘이 오두막에서 사는 마리암의 소원은 단 한 가지, 부자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어느 날 마리암은 아버지에게 극장에서 <피노키오> 영화를 함께 보고 싶다고 부탁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지 않자 대문 앞에서 밤새 기다리며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암을 기다리는 것은 나무에 목을 매단 어머니의 시체. 그 후 마리암은 아버지와 부인들의 손에 이끌려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마흔 다섯 살의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갑니다.

강제 결혼이었지만 다정한 남편 덕에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가던 마리암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계속되는 유산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자 점점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남편의 구타로 그녀의 삶은 끔찍해집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구소련의 침공과 왕정 붕괴, 군벌들 간의 내전과 탈레반 정권,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폭격이 계속되던 어느 날, 옆집에 폭탄이 떨어져 열세 살짜리 소녀 한 명만 살아남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라일라. 진보적이며 이해심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전쟁으로 부모와 두 오빠를 잃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 타리크마저 잃었습니다.

라시드는 라일라를 구해주는 대신 그녀를 둘째부인으로 삼습니다.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연인의 아이 때문에 라시드와의 결혼을 받아들인 라일라는 아기를 라시드의 아이로 속인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마리암은 처음에 자신의 삶에 끼어든 라일라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아기 아지자가 태어나자 둘의 관계는 변합니다. 그들은 함께 아이를 돌보며 끔찍하고 비참한 생활을 견뎌나갑니다. 집 밖에서는 연일 포탄이 터지고 집 안에서는 언제 남편이 매질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두 여인은 서로를 위해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지만' 현실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반짝이는 달들, 찬란한 태양들이 그 곳에 있음을 믿고 살아갑니다.

어느 늦여름, 라시드의 가게는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고 그로 인해 가난에 시달리던 라시드는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아지자를 고아원에 버립니다. 그런 어느 날, 죽은 줄만 알았던 남자 친구 타리크가 살아 돌아오고 라일라가 그를 만나러 가자 격분한 라시드는 라일라를 폭행하고, 이를 만류하던 마리암이 뜻하지 않게 라시드를 죽이고 맙니다. 마리암은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라일라를 타리크에게 보낸 뒤 생을 마치게 됩니다. 

고향을 떠나 타리크와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탈레반이 퇴각하고 국제평화유지군이 파견된다는 소식을 듣자 카불로 돌아간 라일라는 마리암의 오두막을 홀로 찾습니다. 마침 마리암의 아버지 잘릴 한이 뒤 늦게 딸에게 용서를 빌며 사랑을 전한 편지와, 그토록 아버지와 함께 보고 싶어했던 <피노키오> 영화 테이프와, 그녀에게 남긴 유산을 건네받습니다. 라일라가 그 유산으로 한 때 아지자가 살았던 고아원을 학교로 개조해서 타리크와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이 기구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leoj/5yK3/24?docid=1EMVO|5yK3|24|20081020035417

왜곡된 속박과 부조리한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은 한 편의 소설이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실제 삶이기도 합니다. 

1965년 카불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하여 의대를 졸업한 뒤, 2003년에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로 미국 문단에 혜성처럼 데뷔한 할레드 호세이니는 현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과의 대화에서 이 책을 쓸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프간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으로 살고 있는 세계 곳곳의 여성들의 삶과 낯설지 않아 제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전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주변에 살았던 이 땅의 딸들과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과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가슴속에 고이고이 묻어두고 살았던 수많은 여인들. 그러나 그녀들은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삶의 질곡 속에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셀 수도 없는 지붕 위의 희미한 달들을 반짝이게 하기 위해서
셀 수도 없는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밝히기 위하여  

그녀들의 가슴속을 비추고 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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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청빈한 삶의 실천가인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군요. 

그 분의 다비식은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않았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않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에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유언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출처 : http://www.ijejutoday.com/news/p..._655.jpg

그런데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은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한 유언의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군요.

출가 이후 생의 대부분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에서 홀로 수행하며 중생들을 위해 써내신 『산에는 꽃이 피네』,『오두막 편지』,『물소리 바람소리』, 『맑고 향기롭게』,『인도기행』,『무소유』,『영혼의 모음(母音)』,『홀로 사는 즐거움』,『말과 침묵』,『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참 좋은 이야기』,『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버리고 떠나기』등 주옥같은 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시간이 흘러도 항상 새로운 울림과 깨달음을 주는 글들,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현대인의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을 지닌 글들,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은 간소한 삶과 명상에서 우러나온 깊은 통찰이 배어 있는 그의 글들을 다시는 읽을 수 없는 걸까요?

저 역시 스님의 글을 못읽는 사태가 생길까 두려워 몇 권의 저서를 구입했습니다. 그 중『아름다운 마무리』는 가장 마지막에 출간된 책입니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듯  더욱 깊어진 사유와 맑아진 영혼의 소리를 담은 글들은 마치 그 분의 속삭임처럼 제게 다가왔습니다.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얼음을 깨어 차를 달이고, 채소 모종을 심고 가꾸는 스님의 단순소박한 일상으로부터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 월든 호숫가로 자연주의 사상가인 소로우의 삶을 찾아간 이야기, 내려놓음, 비움, 살아온 날들에 대한 찬사, 용서, 이해, 자비, 깨어 있음 등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스님의 지혜가 문장마다 진주처럼 빛납니다.

그런데 마치 산사의 은은한 풍경소리처럼 청정하고 은은한 울림을 주는 56편의 글들 중 유독 한편의 글이 세상을 향해 무서운 호통을 치고 있더군요. 스님이 이토록 직설적이며 분노의 외침이 묻어 있는 글을 쓴 것은 참으로 희귀한 일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

2008년 4월 무렵, 길상사 법회에서 대운하 사업의 부당함에 대해 법문을 통해 사자후를 토하셨다는데, 그 호통을 글로 정리하신 듯 합니다. 대운하를 반대하는 어느 분의 글보다 단순명료하며 날카롭고 격정적입니다. 조금 길더라도 그 분의 '마지막 사자후' 듣는 셈치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22/2008042200911.html

......(전략)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그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어울려 산다. 균형과 조화로써 생명의 연결고리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직한 재앙이다.

우리 국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우리의 몸이고 살이고 뼈이다. 이 땅에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임을 알아야 한다. 물류와 관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몇 푼어치 경제 논리에 의해 이 신성한 땅을 유린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망령된 생각이다...... 

운하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으로 치솟는 땅값에 관심이 있는 땅 투기꾼들이다. 그리고 건설공사에 관심이 있는 일부 건설업자들뿐이다.
 
강은, 살아있는 강은 굽이굽이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런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서 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채워놓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놓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강이 아니다.....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듯한 그림들로 지역 주민들을 속여 엉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발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다.

일찍이 없었던 이런 무모한 국책 사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우리 국토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이다. 

이런 무모한 구상과 계획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가 사전에 나서서 막아야 한다. 이는 신성한 우리의 의무이다. 이 문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사안임을 깊이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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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킹 관리 전문가이자 최고의 헤드헌터 기업의 대표인 밥 보딘이 쓴 「WHO(후)-내 안의 100명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100명의 존재가 있으며,  그 100명의 힘을 발견하는데 필요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 꿈을 지지해줄 ‘드리머’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내 꿈을 망쳐버릴 ‘드림킬러’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나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있는가? 등 지금까지 해왔던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을 뒤집고,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이 책의 내용 중 저를 감동시킨 사람의 이야기를 특별히 소개합니다. 저자는 아버지로부터 필라델피아 기차역에서 구두를 닦는 '흑인 구두닦이 찰리' 관한 이야기를 여러번 듣고, 필라델피아 출장을 가는 길에 기차역 로비 한구석에 있는 초라하고 작은 '찰리의 구둣방'을 찾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8장에서 찰리와의 만남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록을 해놨는데, 남을 격려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에피소드입니다. 찰리가 살아있다면 저도 언젠가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지더군요.  


찰리는 70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몸집이었고, 숱이 적은 은회색 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구둣방에는 한 가지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중략)

국회의원, 시장, 정부 고위 인사, CEO, 텔레비전 유명 인사까지 많은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찰리와 마주 앉아 3분을 보내기 위해 이렇게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했다. 드디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너무나 흥분되었다.

"안녕하시오, 젊은이. 이름이 뭐요?"

내가 앉자 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잔물결 하나 없는 연못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웠다.

"밥입니다."
"내 이름은 찰리라오. 내게 구두를 닦기로 결정을 내렸다니 영광이오. 고맙소."

그 말에 나는 마치 뭔가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당황했고, 그 어색함을 없애려고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정말 멋진 웃음을 가지고 있군."

그가 내 구두를 닦기 시작하면서 이야기했다. 

"자녀가 있소?"  
"네."

나는 우쭐하며 대답했다.

"예쁜 딸이 셋이나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소."

그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세 명 다 아주 특별한 아이들일 것 같소. 참 내가 말했던가? 아이들은 선물같은 존재라오. 내가 이렇게 구두를 정성스럽게 닦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정기적으로 자신이 그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오."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내가 구둣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 현관에 앉아서 아이들의 신발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젊은이가 주의를 기울여 당신의 구두를 관리한다면, 그 구두는 오랫동안 남아서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의 발을 지켜줄 거요. 내가 어떻게 구두에 구두약을 바르는지 한번 보시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이 주름진 두 손으로 구두를 빛나게 하는지도. 내가 구두를 다 닦고 나면 이 구두는 너무나 환하게 빛이 날 거요.  그렇게 되면 구두를 내려다볼 때마다 당신은 기분이 좋아져서 환하게 미소를 짓게 될 거요. 가족과 친구들도 이 구두와 같다오. 그들은 세상이 당신을 위해 마련한 선물이지. 당신이 그들을 빛나게 할 필요가 있소. 당신은 구두를 빛내는 정성을 담은 손이 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오. 그들이 다 닳아버리거나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지 않도록 말이오. "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올려다보고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오."

잠시 또 침묵이 이어졌다.

"새 친구가 되었으니 떠나기 전에 선물을 하나 드리지. 당신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하고 싶은데, 떠나는 길에 분명 좋은 선물이 될 거요. 내 선물을 받겠소?
"물론입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소. 그럼 시작하지."

찰리의 기도는 짧았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 기도를 하는 3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절대 잊지 못할 그 순간의 기억을 안고서 말이다.

이 특별한 남자에게는 전 세계 곳곳에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찰리와 마주보고 몇 분을 보내기 위해 필라델피아까지 여행을 오는 것이었다......(중략)
 
남을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찰리와 마주 보고  앉아 있던 잠깐 동안 나는 마치 <환상특급>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바쁜 현실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번잡한 30번가의 기차역 안에서 그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곧 나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인생을 좀더 나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각의 변화가 생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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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桓檀古記)」는 수천년 전의 한국 고대 역사를 서술한 책입니다.

최초 편찬자로 알려진 계연수(?~1920년)가 1911년에 독립운동가였던 홍범도와 오동진의 자금지원을 받고 한학자인 이기가 감수해서 30부를 간행했다는데, 아쉽게도 그때 출간된 책은 한 권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계연수가 사망한 뒤 그의 제자인 이유립(1907년~1986년)이「한단고기」 원본을 건네받아 보관해 오다가 1979년 11월에 이유립의 제자 오형기가 필사한 한문본이 출간되었습니다.

그후 1982년에 일본의 재야역사가인 가지마 노보루에 의해 일본어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1983년에 이유립 자신이 교정을 본 한문본이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그뒤 1985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첫 한글 번역본이 출간되고 몇 개의 출판사에서 계속 번역본을 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한단고기」는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각기 다른 역사서들을 한데 모아 엮은 책입니다.


<삼성기>는 신라의 승려인 안함로와 행적이 확실치 않은 원동중이 쓴 것을 상·하권으로 나누어 합쳤다는 책으로 '환국시대' 1대 안파견 환인으로 부터 7대 단인까지의 역사와, '신시배달국'시대 1대 거발한 환웅으로부터 18대 단웅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권에는 '신시역대기'가 덧붙여 있습니다.

<단군세기>는 고려시대에 행촌 이암이 전했다는 책으로, 1대 단군 왕검으로부터 47대 단군 고열까지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기록했습니다.

<북부여기>는 고려말의 학자인 범장이 전했다는 책으로 1대 해모수로부터 6대 고무서까지와 가섭원부여의 역사입니다.

<태백일사>는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인 이맥이 전했다는 책으로, '신오제본기', '한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소도경전본훈',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본기'가 담겨 있습니다.

<삼성기> 상권은 계연수의 집안에 전해왔다 하고, <삼성기> 하권과 <단군세기>는 태천의 진사 백관묵으로부터 얻었으며, <단군세기>와 <북부여기>는 <단군세기합편>이라는 제목으로 진사 이형무에게서 얻었고, <태백일사>는 이기가 간직했던 것인데 그 책들을 모두 합편하여 간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원본이 모두 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주장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한단고기」에는 신화적 인물로만 여겨져 왔던 환인, 환웅, 단군 등이 한사람을 호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임금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등장합니다. 그와 함께 고대 국가의 건국과 각 시대에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 정부의 형태, 교육이나 문화와 관련된 여러 제도와 풍습, 부여의 건국과 역사, 고주몽의 계보, 발해의 건국비화 등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상상하기 위해 역대 임금들의 이름만 소개해볼까요? 책을 읽지 않은 분은 아마 처음 들어보는 재미있는 이름들일 겁니다.
  
환국(桓國)시대
('桓'은 본래 '환'으로 읽히는 한자지만 책의 제목은 번역자의 뜻을 존중해서 '한단고기'로 표기하지만 '환국', '환인', '환웅' 등은 환으로 표기합니다.)

1대 안파견 환인/2대 혁서 환인/3대 고시리 환인/4대 주우양 환인/5대 석제임 환인/6대 구을리 환인/7대 지위리 환인 또는 단인

신시(神市)시대
1대 거발한 환웅/2대 거불리 환웅/3대 우야고 환웅/4대 모사라 환웅/5대 태우의 환웅/6대 다의발 환웅/7대 거련 환웅/8대 안부련 환웅/9대 양운 환웅/10대 갈고 환웅 또는 독로한 환웅/11대 거야발 환웅/12대 주무신 환웅/13대 사와라 환웅/14대 자오지 환웅, 치우천왕/15대 치액특 환웅/16대 축다리 환웅/17대 혁다세 환웅/18대 거불단 환웅 혹은 단웅

단군시대
1대 왕검 단군/2대 부루 단군/3대 가륵 단군/4대 오사구 단군/5대 구을 단군/6대 달문/ 7대 한율 단군/8대 우서한 혹은 오사함 단군/9대 아술 단군/10대 노을 단군/11대 도해 단군/12대 아한 단군/13대 흘달 혹은 대음달 단군/14대 고불 단군/15대 대음 혹은 후흘달 단군/16대 위나 단군/17대 여을 단군/18대 동엄 단군/19대 구모소 단군/20대 고홀 단군/21대 소태 단군/22대 색불루 단군/23대 아홀 단군/24대 연나 단군/25대 솔나 단군/26대 추로 단군/27대 두밀 단군/28대 해모 단군/29대 마휴 단군/30대 나휴 단군31대 등올 단군/32대 추밀 단군/33대 감물 단군/34대 오루문 단군/35대 사벌 단군/36대 매륵 단군/37대 마물 단군/38대 다물 단군/39대 두홀 단군/40대 달음 단군/41대 음차 단군/42대 을우지 단군/43대 물리 단군/44대 구물 단군/45대 여루 단군/46대 보을 단군/47대 고열가 단군

이 책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라는 의견이 일반적입니다. 

1911년에 출간 되었다는데 1979년이 되어서야 공개된 이유가 불분명하고, 원본이 제시되지 않는 점이 역사서로서의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는 겁니다.

또 책에 나오는 지명인 사백력(시베리아), 파나류산(파미르고원), 수밀이(수메르), 지백특(티베트)까지 진출한 거대한 제국으로서의 유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광대한 환국과 신시배달국, 고조선의 기록 등은 근거가 없고 과장된 역사이며,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남녀평등, 부권, 상춘, 세계만방, 문화, 고려, 몽고, 흑수, 영고탑, 산동 등 실제 사용 시기가 맞지 않는 용어나 지명이나 학설이 반영되어 있는 점도 위작으로 판단되는 이유입니다.

고조선을 실재했던 왕조로 인정하고 있는 북한의 역사학계 역시 위작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록들이 문헌적 근거가 없고 당시의 역사 발전·문화 발전 단계에도 부합되지 않고 객관적인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2006년의 남북한 공동 연구 논문을 통해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한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근대 용어 등 후세에 일부 가필되었더라도 내용 전부가 위작된 것은 아니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상고사의 복원을 위한 중요한 사료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학이나 서지학이나 고고학 등의 연구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증명하려는 시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천문학을 이용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연구도 있습니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와 표준 연구원 천문대의 라대일 박사는 천문학 방법론으로 검증한 결과 이 책에 기록된 천문 현상의 상당 부분이 당시의 실제 상황과 일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는 일식 현상에 대한 기록이 모두 10군데, 목성과 화성과 토성과 금성과 수성 등 다섯 별이 한자리에 모인 '오행성 결집 현상(五星聚婁)'이 1군데, 큰 썰물 현상이 1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슈퍼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연구한 결과가 2002년에 「하늘에 새겨진 우리역사」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현재는 이 연구도 오성취루나 일식범위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지만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재반박한 논문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중국 홍산 지역에 기원전 5~6천년 전의 옥으로 된 유물들이 수만점 출토되었고 , 우하량 유적에서 나온 천단, 제단, 분묘 등이 황하문명이 시작하기 최소한 1천년 전 이상의 유물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재야사학자 중에 고대 환국과 배달국의 유물로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 역사학계에서는 그 유물들을 「한단고기」와 관련지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 책이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 줄 최고(最古)의 역사서인지, 과대망상에 빠진 민족주의자의 위서인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책이 위서라면 누가 썼을까요? 계연수와 이유립이 용의선상에 가장 근접해 있습니다만 과연 어느 한 사람이 이 책의 내용을 다 조작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한단고기」를 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작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책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고대 역사에 대해 역사학자 이상의 방대한 자료 축적과 철저한 분석, 민속학과 언어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소설가를 뛰어넘는 엄청난 상상력과 창작력을 발휘하여야 가능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부경'이나 '삼일신고'처럼 고대의 종교나 철학사상를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내용들도 담겨져 있으므로, 분명히 오랜 기간에 걸친 탐구와 집필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역사책으로 보기보다 누군가의 저작에 의한 '신화서(神話書)'라고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이 책에는 무궁무진한 작품의 소재가 들어 있기 때문이죠.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뛰어 넘어 수천 년 전 대륙을 누비며 활동하는 고대국가들의 흥망성쇠와 전쟁과 종교와 예술과 삶의 흔적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예술가들은 이 책의 내용들을 소재로 하여 수많은 소설과 그림과 만화와 게임과 음악과 연극과 뮤지컬과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책을 소재로 한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 같은 만화나, 신시시대의 14대 왕으로 등장하는 '치우천왕'을 소재로 한 만화나 소설들이 발표되었지만 아직 전반적인 예술작품의 소재로 활발하게 애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kyjet.tistory.com/tag/Rainism

전 개인적으로 언젠가 <천국의 신화>나 치우천왕 이야기를 뮤지컬이나 영화로 만들고 싶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한단고기」는 제게 '상상력의 보물창고'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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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 』는 미래사회에서 성공할 인재의 조건을 제시한 책입니다.


차세대 미래학자이며 작년에 열린 '2009 글로벌 서울포럼'에도 참석했던 다니엘 핑크(Daniel Pink)가 지은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 ‘하이컨셉, 하이터치 시대(개념과 감성의 시대)’라는 개념과 ‘미래 인재의 6가지 능력’ 입니다. 

저자는
 몇몇 선진국에서 눈에 띄지 않게 진행 중인 사회변화가  ‘풍요’, ‘아시아’, ‘자동화’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금껏 인류를 이끌어 온 것은 주로 논리와 이성을 주도하는 좌뇌의 역할이었고, 감성과 정서를 주도하는 우뇌는 좌뇌를 보조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사회 변화와 함께 지식과 정보와 기술 중심의 좌뇌형 직업들은 아웃소싱을 통해서 저임금과 고기술을 가진 아시아의 여러나라들로 이전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와 함께 식량과 물자의 풍요나 기술의 발전과 자동화 등이 인간을 좌뇌형 노동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사회는 좌뇌 중심의 지식정보화시대에서 창조와 공감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우뇌 중심의 하이컨셉, 하이터치 시대로 옮겨 가고 있다는 것입
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phplove...65084551

이러한 미래
시대에 성공할 인재의 조건으로 저자는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의 6가지 능력을 꼽고 있습니다.

하이컨셉에는 예술적.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능력, 트렌드와 기회를 감지하는 능력, 훌륭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 언뜻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들을 결합해 뛰어난 발명품으로 만들어내는 능력 등과 관련 있다.
하이터치는 마음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능력,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 어떤 사람의 개성에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를 도출해 내는 능력, 평범한 일에서 목표와 의미를 이끌어 내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저자는 이러한 6가지 능력이 읽기나 쓰기처럼 앞으로는 누구나 익혀야 할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디자인(Design)'입니다.

디자인은 아웃소싱하거나 자동화하기 어려운 하이컨셉의 핵심 능력입니다.
저자는 디자인이 개인적 만족과 직업적 성공에 긴요한 재능으로 떠오른 이유로 다음의 3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물질적 번영과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보다 좋은 디자인을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 이를 통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디자인에서 얻는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디자인은 차별화 수단이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현대 비즈니스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셋째, 좀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 감수성을 개발하면서 점점 더 궁극적인 목적(세상의 변화)을 위해 디자인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책의 내용 중에 미국에서는 MBA 보다 'MFA (미술학 석사학위Master of Fine Arts)'가 더 높은 대우를 받는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에도 예술 대학 졸업장이 경제학부나 법대의 졸업장보다 우대 받는 사회가 언제 올지 흥미로운 기대를 갖게 해주더군요.

 
둘째는 '스토리(Story)'입니다. 

우리 주변은 정보와 데이터로 넘쳐나고 있기에 '팩트(fact)'들을 거의 무료로 그것도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지식정보의 가치를 급속하게 떨어뜨리고, 컴퓨터와 외국에 있는 우수한 근로자들에게 좌뇌형 업무가 넘어가게 됨에 따라 스토리를 구현하는 능력이 더욱 중시되고 있습니다.

스토리는 정식 의사결정 방법으로는 다루지 못하는 요소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데 적절한 능력을 갖고 있다.
논리는 일반화를 시도하고, 특정 문맥으로부터 판단을 내리지 않으며,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한다.
반면 스토리는 문맥과 감정을 포착한다.
스토리는 중요한 인식작용이다.
스토리는 정보, 지식, 문맥, 감정 등을 하나의 치밀한 패키지로 압축한다. 

스토리는 디자인과 더불어 차별화와 경쟁우위를 창출할 것입니다.
 


셋째는 '조화(Symphony)'입니다.

오늘날 가장 흔히 사용되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접두사는 아마도 '멀티(multy)일 것입니다.
 
오늘날 직장에서는 '멀티테스킹(다중업무 수행능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멀티컬쳐(다중문화)'다. 우리가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또한 '멀티미디어'다.
과거에는 한 분야의 상세한 지식만 보유하고 있어도 성공이 보장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보상이 돌아간다.

그에 따라 교향악을 쓰는 작곡가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패턴을 잡아내고 이를 '큰 그림'으로 통합시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조화로운 능력'이 점점 더 가치를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큰 그림을 보는 능력’
은 아웃소싱하기 어렵고 자동화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추출해 내고 미래에 대한 전략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넷째는 '공감(Empathy)'입니다.

공감하는 능력은 디자인, 조화, 스토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감은 디자인의 필수 요소다. 왜냐하면 훌륭한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디자인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하게 될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감은 조화와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공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주변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토리의 재능 또한 공감과 관련되어 있다. ....스토리는 공감을 이루기 위한 관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느낄 줄 알고,  또한 내가 공감한 것을 표현하여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또 다른 차별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성과 공감이 서로 동조하는 가운데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크게 성공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다섯째는 '놀이(Play)'입니다.

놀이는 일이나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개인적으로 충만한 삶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저자는 놀이의 중요성이 '게임, 유머, 즐거움'의 3가지 측면에서 명백해져 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게임, 특히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은 고객들에게 양쪽 뇌를 모두 사용하는 새로운 사고 방식을 가르치고 영향력 있는 산업으로 떠올랐으며, 
유머는 그 자체로 관리의 효율성, 감성지수, 그리고 우뇌의 특징적인 사고 방식의 정확한 지표가 되고 있다.
즐거움은 무조건적인 웃음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를 좀더 생산적이고 충만하게 만드는 힘을 보이고 있다. 

놀이를 통해 길러지는 이 능력들은 창의성과 생산성, 그리고 협동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큰 힘을 지녔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미(Meaning)'입니다.

의미의 추구는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자, 미래 사회에 어울리는 요체입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 5명 중 3명 이상은 정신적인 면이 고취되면 작업능률이 향상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싱크탱크인 로피파크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0%가 좀더 의미 있는 직장 생활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 역시 하이컨셉 시대에 필요한 재능입니다.
 

출처 : http://anyxp.net/18

마지막으로 저자는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나 개인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1. 해외에 있는 사람이 이 일을 더 싸게 할 수 있는가?
2. 컴퓨터가 이 일을 더 빨리 할 수 있는가?
3. 풍요의 시대에 비물질적이며 초월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미국사람인 탓인지 다분히 미국적인 입장, 즉 선진국의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주장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 좌뇌와 우뇌의 기능과 직업적 역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도 너무 단순화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쯤 정보화시대에서 하이컨셉-하이터치의 시대로 바뀔지, 6가지 능력을 갖춘 인재가 우리 사회를 끌어가는 때가 언제쯤 찾아 올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가 예술과 창의력을 통해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이 전혀 엉뚱한 얘기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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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까 가끔 아내와 농담처럼 주고 받는 말이 생겼습니다.

'나 먼저 죽으면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 가.'

아내는 자기가 먼저 죽을 것 같으니 그런 걱정 말고 장가 가서 잘 살라고 웃으며 대꾸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내보다 나이도 많고, 여러 데이터나 일반적인 사례로 볼 때 남자들이 여자보다 10년 정도 일찍 죽는다니 제가 아내보다 먼저 죽을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작년 12월 9일에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생명표 작성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우리나라 아이들은 앞으로 80.1세까지 살 것이고, 남자아이는 76.5세까지, 여자아이는 83.3세까지 살 거랍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6.8년 빨리 죽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왜 그럴까요?


「왜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가Why Men Die First.?」는 이 질문에 대해 의학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 마리안 J. 레가토(Marianne J. Legato)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의대 교수이며 매년 선정하는 미국 내 최고 명의(名醫) 중 한 사람인 내과의사로, '성 인지의학' 분야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 인지의학 (gender-specific medicine) 질병에 대응하는 과정과 경험이 생물학적 성(性)의 기능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알아보는 학문 분야로, 컬럼비아대학 내에 연구센터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찍 죽을 수 밖에 없도록 타고난 남자의 신체조건이나 사회적 조건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칩니다. 

그는 남자의 수명을 줄이는 위험 요소들은 잉태됐을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줄곧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함께 남자들의 사회적 역할과 그 수행 방법이 잘못된 탓이기도 하답니다.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여자보다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인데도 강하고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존재로 키워지면서 일찍 죽게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짝짓기 능력은 다른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외에도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버는 능력까지 포함되지요. 이런 일은 당연히 가족을 부양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지거나 체력이 저하되고,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먼저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죽는 이유에 대해 알아볼까요?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 10가지 이유

1. 남자는 선천적으로 유전적 결함이 있다

여자의 성염색체는 'XX'형으로 X 유전자가 두 개이지만, 남자는 'XY'형으로 X 유전자와 Y 유전자가 각각 하나씩입니다.여자는 유전자가 손상되면 다른 X의 지원을 받아 보완할 수 있지만 남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Y는 X보다 크기도 반 정도 작고, 유전자의 변이도 Y가 X에 비해 3~6배 더 많습니다.

또 복제 과정에서 Y염색체들은 손상을 입으면 자신과 닮은 부분을 이용해서 U턴을 만들어 스스로 교정하려 합니다. Y염색체의 이런 기질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보수, 관리, 교정을 하느라 에너지를 손상시키는 남자들의 성향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유전적인 결함이 남성들을 유산이나 감염이나 선천적 결손이나 암 등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2. 자궁 자체가 남자 아이들에게 불리한 구조다.

일단 자궁에서부터 남자 태아들은 불리합니다. 여자 태아보다 면역체계가 덜 잡혔고 모체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확률도 높답니다. 그래서
남자 아이는 사산될 확율이 여자 아이보다 1.5~2배 더 높습니다.

취약한 면역 시스템, 폐의 더딘 발달, 불충분한 혈류 공급, 산모 스트레스에 따른 취약성 등이 그 원인입니다. 뇌 출혈, 선천적 기형, 폐렴, 요로감염 등도 여아보다 남자 신생아에게 흔한 질병입니다. 임신 16∼17주에 유산되는 남녀 태아의 비율은 248:100으로 남자아이가 2배 반이나 높습니다. 어린 아기의 생존율도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보다 훨씬 낮습니다.

3. 남자 아이는 발달장애 위험이 높다

읽기 능력이 늦게 발달하거나, 눈이나 귀가 멀거나, 자폐증, 간질 발작,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장애(ADHD), 통제 불능, 말더듬, 의지와 상관없이 눈을 깜박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낸다거나 말을 따라 하는 뚜레장애 등 발달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여자 아이보다 남자 아이들에게 3, 4배 더 많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 자폐증의 한 유형인 아스퍼거 장애는 남자 아이가 10배나 더 많다고 합니다.
 
4. 남자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위험행동을 하는 경향이 높다

사춘기에 접어든 많은 소년들이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사망률을 높입니다. 뇌과학자들은 소년들의 뇌를 보면 '신중한 의사 결정' 관장하는 부분이 소녀들보다 덜 발달했다고 지적합니다.

사회적 요인도 영향을 줍니다. 남자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남자다움'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랍니다. 게다가 언어사용 능력이 더 뛰어난 또래 여자아이들이 성과를 거두면 위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의사 결정이나 판단 능력과 관련된 뇌의 발달이 남자가 여자보다 더디기 때문에 사고로 인한 사망률도 높습니다. 미 국가안전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총기류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82%가 남자이고, 자전거 관련 사고 사망자의 87%가 남자입니다. 2006년에는 음주 운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일어나는 충돌 사고의 81%가 남자가 저지른 사고였습니다.

5. 우울증이 남자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남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가장 큰 원인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성인이 된 남자는 자살을 부르는 우울증을 만나게 되는데, 이 복병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어떤 고통이든 혼자 견디고 이겨내라'고 교육받아 과도한 책임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남자는 자신의 고민을 남과 나누는 것을 주저합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을 말하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려고 합니다. 마음속 응어리를 혼자 삭이는 남자들의 폐쇄적인 행위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온갖 치명적인 질병과 자살로 이어집니다. 자살 시도를 더 많이 하는 것은 여자지만, 실제 자살을 하는 사람은 남자가 여자에 비해 4배 더 많습니다. 20~24세 남자의 사망 원인 중 15%가 자살입니다.

자살로부터 벗어난 남자들은 우울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질병들에 시달립니다.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뇌졸중, 각종 감염 등을 앓고 있는 남자들 대부분이 상당한 우울 증세를 보입니다.

6. 남자들은 위험한 직업에 더 많이 참여한다

선원, 소방관, 경찰관, 건설 노동자, 농부들의 대부분은 남자입니다. 2005년 미국 내에서 직업과 관련된 사망자 5734명 중 남자가 5328명이었습니다.

7. 심장 질환이 남자들을 일찍 죽게 한다 

중년 이상 남자들을 가차 없는 죽음으로 몰아가는 주요 원인으로 심장병과 암이 선두를 다툽니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estrogen)' 여성이 중년이 될 때까지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만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성에게 심장질환이 처음 나타나는 때는 평균 35세로 여성들보다 훨씬 빠릅니다.

또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콜레스테롤'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 원래 적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갑작스러운 심장 질환의 70~89%가 남자에게서 발생합니다. 또한 심장동맥 질환으로 사망하는 비율도 남자가 3배 더 높습니다.

이렇듯 호르몬 체계상 남자가 심장질환에 취약한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격한 운동을 지나치게 해서 심장에 부담을 줍니다.

8. 과다한 흡연과 음주가 남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잘못된 식생활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음주와 흡연이 잦은 남성들이 많으므로 직장암, 폐암 등 치명적인 질환에 취약합니다.

암은 45세에서 54세 사이의 남자들에게 두 번째로 가장 높은 사망 원인으로, 모든 죽음의 23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치명적입니다. 더구나 55세에서 74세 사이의 남자들에게는 암이 33.4퍼센트로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됩니다. 

9. 비만이 생명 단축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심혈관질환, 당뇨병, 전립선암 등은 뚱뚱한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비만은 성기능 장애와 관련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질환이 성적 문제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10. 노년의 무력감이 죽음을 앞당긴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신체기능의 점진적 상실에 대해 근심하고 슬퍼합니다.

보고 듣는 능력의 상실, 냄새를 맡고 맛을 볼 수 있는 능력의 감퇴, 균형감 상실, 뼈와 근육의 쇠퇴는 모두 길어진 수명에 첨가된 징벌과도 같습니다. 고립, 체력저하, 만성병 등은 남성들로 하여금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런 열패감이 그를 점점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자,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남자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대책 마련을 해야겠지요? 

남자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10가지 방법

1. 하루 30분 이상 유산소운동을 하라.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충고합니다. 20대부터 심혈관 질환에 대한 검사를 꾸준히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2. 의사와 가깝게 지내라


남자들이 우울, 슬픔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남자들에게 이런 단어는 속으로 삭이거나 무시해야만 하는 단어였습니다.

저자는 "남자들은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통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모든 문제를 속으로 삭이거나 무시하는 데 길들어 있다"며 "사소한 질병이라도 의사를 찾아 상의하라"고 조언합니다.

3. 무모한 행동을 남자답다고 착각하지 마라.

쓸데없이 공격적으로 운전하는 것, 안전을 위한 규칙이나 절차를 무시하는 것, 흥분된 상태에서 일하는 것보다 하나하나 챙기고, 안전한 방법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4. 흡연은 장수를 가로막는 최고의 적이다. 

미국 암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35세에 담배를 끊는 사람은 계속 피우는 사람에 비해 평균수명이 8.5년 늘어납니다.

5.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라.

전립선암 검사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암 조직을 발견하기 때문에 효능에 있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비해, 직장 검사는 심각한 암을 발견하는 데 유용합니다. 하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검사법은 아닙니다. 그래도 악성 종양이 몸에 있다거나 항암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견딜 만하니 정기적으로 장 검사 할 것을 권합니다.

머리 부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주저 없이 의사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CT 촬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미약한 뇌진탕도 방치하면 기억 장애, 수면 장애, 성격 변화 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설명이 필요없는 건강 상식이니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한 사항입니다.

6. 비만을 예방하라.  
7.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피해가 크다.
8. 스트레스는 그때그때 해소하라.
9. 노년의 무력감에서 벗어나라.
10. 나만은 예외라는 생각을 버려라.


저자는 왜 남자가 더 많이 병 들고 더 빨리 죽는지 이 문제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진지한 고민과 통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고민과 통찰이 없이는 점점 고령화되는 이 시대에 남녀 성비가 불균형하게 되어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정든 짝이 먼저 떠나는 가정의 비극을 예방하고,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저 세상으로 떠나는 행복을 위해서도 이 책은 저희 부부에게는 물론이고 수많은 남성들과 그 짝을 사랑하는 여성들에게 퍽 유용한 지침서가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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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부부들과 함께 일본의 규슈 지방 여행을 다녀오느라 며칠 동안 블로그 이웃들과 적조했습니다.
여행이야기는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여행 때 꼭 가지고 가야할 필수품을 가르쳐 준 책을 소개합니다.
그 필수품은 'NQ(Network Quotient)'입니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들은 모두 NQ가 높은 사람들이다보니 정말 즐겁고 화기애애한 여행이 되더군요. 


IQ가 '지능지수'이고, EQ가 '감성지수'란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NQ는 무슨 지수일까요?

동국대 김무곤 교수의 <NQ로 살아라>는 Network Quotient 즉 '공존 지수'에 대한 책입니다. 



공존지수란 우리 모두가 잘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공존의 능력을 일컫는 말입니다. NQ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보는 잣대이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교수와 절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NQ가 높은 사람인지 잘 압니다. 그의 주위에는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종교계는 물론 인사동 식당 아줌마와 청계천 고서점 주인까지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본업인 학문연구에 몰두하면서도 다양한 영역에서 방대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가 독자들에게 'NQ를 높이기 위한 17가지 인생전략'을 정리했는데, 가슴에 콕콕 들어오더군요. 이 전략들은 여러 사람과 어울려 여행을 할 때 특히 유용하더군요.  

NQ를 높이기 위한 17가지 인생전략

 

1.꺼진불도 다시 보자.

지금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나중에 큰 코 다칠 수 있다.

2.평소에 잘하라.

평소에 쌓아둔 공덕은 위기 때 빛을 발한다.

3.네 밥값은 네가 내고 남의 밥값도 네가 내라.

기본적으로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는 것이다.
남이 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라.

4.고마우면 '고맙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큰소리로 말해라.

입은 말하라고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사가 아니다.
당신의 속마음까지 읽을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다.

5.남을 도울 때는 화끈하게 도와줘라.

처음에 도와주다가 나중에 흐지부지하거나 조건을 달지 마라.
괜히 품만 팔고 욕만 먹는다.

6.남의 험담을 하지 마라.

그럴 시간 있으면 팔굽혀 펴기나 해라.
험담은 일상의 부메랑이다.

7.회사 바깥 사람들도 많이 사귀어라.

자기 회사  사람하고만 놀면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그리고 회사가 당신을 버리면 고아가 된다.

8.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마라.

회사는 학교나 학술 단체가 아니다.

9.회사 돈이라고 함부로 쓰지 마라.

사실은 모두가 다 보고 있다.
당신이 잘 나갈 때는 그냥 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이유로 짤린다.

10.남의 기획을 비판하지 마라.

당신이 쓴 기획서나 보고서를 떠올려 봐라.

11.가능한 옷을 잘 입어라.

외모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12.조의금은 많이 내라.

부모를 잃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이다.
사람이 슬프면 조그만 일에도 예민해 진다.
2~3만원 아끼지 마라. 나중에 다 돌아온다.

13.수입의 1% 이상은 기부해라.

마음이 넉넉해지고 얼굴이 핀다.

14.수위 아저씨,청소부 아줌마에게 잘 해라.

정보의 발신지이자 소문의 근원일뿐더러, 당신 부모의 다른 모습이다.

15.옛 친구들을 챙겨라.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느라 지금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을 소흘히 하지 마라.
정말 힘들 때 누구에게 가서, 누구의 품에서 울겠는가.

16.당신 자신을 발견해라.

다른 사람들 생각하느라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지 마라.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라.

17.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나중에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추억이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음껏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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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일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인생을 관조해야 할 나이에 쓸데없는 야망이나 권모술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말일 것입니다. 그만큼 「삼국지」에는 세속의 모든 욕망들이 집결되어 첨예하게 드러납니다.

「삼국지」에서 가장 저의 눈길을 끄는 인물은 제갈공명입니다. 그의 지략과 충정은 삼국지 전편의 핵을 이룹니다. 그 중 저의 눈길을 끄는 인상 깊은 전투가 있습니다.

제갈공명과 사마의의 '서성(西城) 전투'입니다.

위나라의 장수 사마의가 '가정 전투'에서 마속의 군사를 쳐부수고, 15만의 대군과 함께 밤을 도와 달려옵니다. 저멀리 필생의 라이벌인 제갈공명이 지키는 서성이 보이자 사마의는 군사들을 독려합니다. 

게임 <삼국지>의 이미지. 출처 : http://ask.nate.com/knowhow/view.html?num=121354

한편, 변변한 장수 하나 남지 않은 채 2500여명의 병졸들이 지키고 있는 서성에서는 온 백성과 군사들이 하얗게 질린 낯으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제 서성의 함락은 시간 문제인 듯 보입니다. 제갈공명은 망루에 올라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질풍같이 말을 몰아 성 앞에 당도한 사마의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마치 자신을 환영하듯 활짝 열어젖힌 성문, 바닥을 쓸고 물을 뿌리며 태연한 백성들....
 
그때 어디선가 은은한 거문고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성 위의 망루를 바라보니 하얀 학창의를 입고 윤건을 쓴 제갈공명이 지그시 미소를 띠며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위나라 병사들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화 <적벽대전> 중 제갈공명으로 분한 금성무. 출처 : http://chany1995.tistory.com/192

한동안 생각에 잠긴 사마의는 틀림없이 성안에 함정이나 계교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 끝에 전군에 철수령을 내리고 회군을 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석 자 거문고로 대군을 이겼도다
제갈량이 서성에서 적군을 물리칠 때
십오만 군사가 말머리를 돌리던 곳
후인들이 가리키며 아직도 의심하네

절대절명의 순간에 제갈공명이 보여 준 계략은 절묘합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 계략이 '거문고'라는 예술적 기재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거문고를 타는 제갈공명에게서 '문화적 혜안'을 읽습니다.

사마의가 돌아간 후 제갈공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마의는 내가 평생에 위험한 짓을 통해 희롱한 적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복병이 있을까봐 의심하여 퇴각한 것이다. 내 하도 곤핍하여 부득이 이 계책을 썼도다.

그 시대에는 아무리 음모와 술수가 횡행했더라도 그 사람의 평소 인품으로 행위의 진위를 판단했던가 봅니다. 제갈공명이 평소 계략을 남발하고 잔꾀를 부리는 사람이었다면 그 계략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도 많은 계략들이 남발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런 계략들로 인해 인간적 신뢰가 가벼워지고 결국 그 화가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직 '나이가 들지 않은' 저에게「삼국지」는 오늘의 현실을 대입해 보고 숙제를 풀어보게 하는 재미있는 문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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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책의 내용은 진실일까요?

「시온의 칙훈서」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

아무리 읽어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제목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책을 읽었습니다.



세계의 금권과 권력을 장악해 온 유태인들이 미래에 세워질 세계정부의 통치자가 되기 위한 모든 전략을 서술한 충격적인 책입니다. 

로마에 의해 멸망 당한 유태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온갖 핍박과 학살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전염병이 돌아도 유태인에게 덮어 씌어 학살하고, 십자군 때도 학살했으며, 2차대전 당시 나찌는 600만명이 넘는 유태인을 학살했습니다.

그러한 온갖 고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유태인들은 뛰어난 머리와 상술로 유럽의 금융과 산업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동안 당했던 설움에 복수의 칼날을 세워가며, 이스라엘 회복뿐만 아니라 세계를 정복해 모든 사람을 유태인의 노예로 만들자는 논의를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문서의 기원에 대해서는 15세기경부터 유태인들 사이에서 전해오던 지침을 '의정서' 또는 '칙훈서'라는 이름으로 1800년대에 시온 지도장로 회의에서 총 정리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시온 (Zion) : 이스라엘 지역으로 유태인의 고향을 말하며, 성스러운 곳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시를 Sion 또는 Zion으로 표기하고, 유태인에게는 유토피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단어의 차이점은 Sion은 장소적 의미가 강하고, Zion은 시온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의미가 강합니다.

이 원본을 1884년 '프리메이슨'이라는 기독교 비밀결사조직에 속해 있던 미즈라임 라지가 돈을 받고 러시아 정보원에게 2,500 프랑에 팔았는데 그 책이1897년에 러시아에서 출판되었고, 1920년에 러시아 통신원으로 있던 영국인 마스덴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유태인들이 보면 펄쩍 뛰며 분개할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아마도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일반 유태인들은 이 책의 내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세계의 금권과 언론과 권력을 좌우하고 있는 유태인들도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책에 담겨 있는 세계지배의 음모와 술수와 악마적인 야욕이 현재 세계곳곳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많은 부분 그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 책의 내용은 유태인의 음모라기 보다 수많은 거짓 권력자, 정치인의 음모처럼 읽힙니다. 그들의 속성을 꿰뚫어보기에 이 책처럼 유용한 내용을 지금까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총 2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각 장에 나오는 내용 중 몇 귀절씩 발췌해서 소개합니다. 

1장. 힘은 곧 정의요 진정한 권력이다.

인간은 본래 악하므로 학술적 논리보다는 폭력과 테러와 완력을 이용해 다스려야 한다.
자유란 이상적인 것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나라의 권력을 맡기게 되면 얼마 안 가 난장판이 되는데, 우리는 계급과 당파 간의 싸움을 조장하고, 권력자들의 힘을 약화시켜 망하게 만든다.
정치와 도덕은 별개의 문제로, 윤리적으로 일하려는 사람은 유능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교활해야 하며, 사람들이 그의 거짓을 믿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치에서 솔직하고 정직한 것은 금물이다.


2장. 경제전쟁으로 독재 지상정부를 준비한다.

전쟁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며, 우리의 경제적 위치를 확실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은 필연코 우리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하게 되고, 전쟁하는 양측의 운명은 우리 '아젠투어'의 자비심에 달려 있어 결과적으로 우리는 수억의 인간을 어떠한 제재도 없이 감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아젠투어 (Agentur) : 세계를 지배하는 유태인 금융재벌을 포함한 특권 엘리트 집단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국제 은행의 경영자, 국제기구의 운영자, 유럽 귀족, 다국적 기업의 총수 등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시온 의정서'를 저술한 자신들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3장. 가난은 우리의 무기다.

우리는 일부러 경제공황을 조장해 세계를 정복한다.
이렇게 되면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들은 '고이'들을 심판대에 올려 놓고 단죄하려 할 것이다.
바로 이 때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자유주의를 섬멸하도록 한다.
혼란기에 주권을 쥔 통치자는 서민들이 부르짖던 자유를 제재하게 될 것이다.

고이 (Goy) : 부패한 정치 지도자로 유태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5장. 우리는 거짓으로 대중을 이끈다.

고금을 통해 어느 민족이나 개인이나 한결 같이 흥행거리 쇼를 보고 흡족하면 그 안에서 하는 말을 믿게 되며, 내용의 이치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귀하다.
쇼를 하는 흥행사업(영화, 음악)은 대단히 중요하며, 우리는 그 사업을 육성시켜 우리가 원하는 바를 미화하고 대중이 받아들이도록 한다.


6장. 각국의 자급자족 능력을 말살한다.

노동자들을 불복종, 무질서, 과음주 등에 처하게 해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계속 만들고 산업을 황폐하게 해 고이들의 세력을 세상에서 완전히 박멸한다.
적당한 시기가 되어 단칼을 내리치기 전까지는 우리는 노동자 계급을 위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우리가 만든 경제학이 경제의 기본원리라고 선전하여 모두가 거짓을 진실로 믿도록 해야 한다.


7장. 군사력을 강화하고, 언론을 조작해 전쟁을 일으켜 이득을 본다.

군비확장과 경찰력의 증강은 우리 계획을 완료하는 기본과정이다.
우리는 각 국가에 우리에게 충성하는 재벌, 경찰, 군인 등을 심는다.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분규와 적의를 조장하는 일을 꾸미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만약 마음에 안 드는 정부가 있다면 내란을 통해 권좌를 뒤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둘째, 국제적인 외교 관계에 정책, 통상, 부채 관계 등으로 개입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성실히 풀어 주면 그들은 우리를 구세주로 여기고, 다음부터는 어떤 거짓말도 분별 없이 그대로 믿게 된다.


8장. 전문가를 양성해 우리에게 유리한 법 조항을 만든다.

법을 제정할 때 우리의 계획에 부합하는 유리한 방향으로 교묘히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일을 수행하는 조직에는 우리 사람으로 채워야 하는데, 법조계 실무가, 홍보 담당자, 법률가, 행정가, 정치가, 외교관, 법률 교육가 등을 양성해야 한다.
우리는 전세계에 경제 전문가를 심어 놓는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목이 경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진영에는 은행가, 산업가, 자본가, 자산가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모든 문제를 계산으로 해결한다.
우리 유대인의 안전을 위해 세계 각 국에 우리의 말에 절대 복종하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 일할 사람을 골라 주요 위치에 배치하고, 이들이 한 치라도 거역하면 형벌을 주거나 없애 버리는 본보기를 보여 주면서 통솔해야 한다.


9장. 각국의 국민들을 프리메이슨적 의식구조로 교육시킨다.

우리가 가는 길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지상정부(Super Goverment)'는 아주 강력한 독재적인 법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는 법을 만든 장본인으로 군대 총 사령관처럼 우리 마음대로 재판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우리 의지대로 힘의 통치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없는 증오와 원한을 풀기 위해 우리 손에 쥐어진 무기로 무자비한 복수를 끊임 없이 진행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 것이다.


10장. 약점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내세워 꼭두각시처럼 조종한다.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조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검은 내막(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지명하여 내 세운다.
이들은 대통령의 명예와 특권을 누리면서 자신의 검은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충성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법을 변경시키는 권리를 꼭두각시 대통령에게 부여하도록 한다.
또한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으로 전쟁을 선언할 수 있도록 공작하는데, 대통령이 헌법상 군대의 통수권자로서 안보를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 대통령 재량으로 군대의 출동을 명할 수 있게 한다.


11장. 대통령에게 법을 만들게 하라.

우리에게 도전하는 소리나 행동은 가차 없이 분쇄해야 하며, 우리 권력이 분리되거나 약화됨 없이 일사천리로 거사를 치루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모든 현상에 눈을 감고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는 순응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다.
고이들은 우리가 뺏은 자유를 갈망하게 될텐데, 우리는 적들을 소탕하고 반대파를 길들이면 자유를 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하면 그들은 눈을 감고 때를 기다릴 것이다.
한 가지, 고이에게 자유를 찾는 때가 언제라는 것은 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12장. 언론을 통제하고 자유언론을 말살하라.

언론은 우리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점화시켜 국민들을 흥분하게 만들어야 하며, 그렇게 인도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다만 당파의 이기적인 이용물이 되는 것뿐이다.
언론이란 알맹이도 없고, 정의롭지도 못하며, 솔직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대중은 이러한 언론의 진상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는 단 한줄의 기사도 대중에게 접하게 해서는 안된다.
전 세계에 통신망을 펴고 있는 주요 통신사들은 모두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조직이므로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고이들은 우리가 색칠해 놓은 색안경을 통해서만 사물을 쳐다 보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
문학과 언론은 중요한 교육적 세력이므로, 우리는 대부분의 언론기관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와 상관 없는 다른 개인에게 10개의 언론사 면허를 주었다면, 우리는 30개의 언론사를 소유해야 한다.
우리 소유의 언론은 우리를 비판하는 것처럼 꾸며, 우리를 대항하는 세력에게 신임을 얻게 하여, 그 세력을 파악해 우리에게 알려 줘, 우리가 사전에 조취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언론은 대중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정치적인 문제가 야기될 때 대중의 심리를 흥분하게 할 수도 있고, 몽롱하게 할 수도 있으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혼동되게 하며, 어떤 때는 진실을 알려주지만, 어떤 때는 거짓을 알려 주거나, 사실과 반대되는 정보도 알려 주어 대중의 심리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우리의 반대파들은 의사를 표현할 길이 없어, 진지한 논쟁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논리를 묵살할 수 있다.
모든 언론기관들은 직업적으로 서로 결속하며, 비밀을 지켜야 한다.
만약 우리와의 신의를 저 버리는 자가 있다면 즉시 공개하여 매장시켜야 한다.


13장. 대중을 스포츠, 연예, 오락에 심취하게 해 사고능력을 상실하게 한다.

우리를 향한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흥행거리, 오락, 장난, 소일거리 등을 마련하고, 언론을 통해 운동경기, 예술 콩쿠르 대회 등을 계속 내보내 정신이 팔리도록 한다.
대중은 점차 스스로 창안하거나 비평할 사고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점차 우리 공작에 장단을 맞추는 생각과 말을 하게 되고, 그들은 우리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14장. 세계정부에서는 유대교만 허용하고 기독교는 말살하라.

세계의 모든 민족은 우리 민족에게 종속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안정되고 완전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우리가 신비스러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홍보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새로운 법과 과거의 법을 비교하는 출판물을 간행해야 한다.
비록 수백년의 불화 끝에 억지로 얻어진 평온이지만, 그 평온의 축복은 우리가 지적하려는 심오한 안도의 경지로 인도한다.


15장. 세계정부는 법 적용을 엄격히 하고, 반항자는 가혹히 처벌한다.

'프리메이슨 라지(Lodge, 비밀조직의 집회장소)'는 가능한 한 전 세계 각국에 많이 늘려야 한다.
프리메이슨에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가입시킨다.
이 조직은 우리의 주된 정보실로 사용하여 세력을 확대하거나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모든 라지들은 중앙 통제 하에 두며, 중앙 통제기관의 요원은 우리의 지도장로로만 구성한다.
이 내용은 우리만 알고 절대 누설해서는 안된다.
라지에는 대표자가 있어 메이슨 통제기관의 통제를 받으며, 주제나 프로그램을 결정해 하달한다.
라지의 회원 중에는 반드시 국제 경찰이나 국내 경찰을 포함해야 한다.
비밀조직에 가장 먼저 참여할 계층은 세상 물정을 잘 아는 부류, 전문직을 갖고 있는 부류, 사고가 깊지 않은 일반 시민이다.
세계가 혼란기에 들어가면 국민들이 단결하게 되고, 그 단결을 분쇄하는데 프리메이슨 조직을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음모 중에 반대 세력이 일어난다면 반대 세력의 두목은 다름 아닌 우리 요원이 될 것이다.
메이슨 조직은 우리가 통솔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만이 어느 방향으로 그들을 인도해야 하는지, 모든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자유주의 사상이란 것을 뿌리채 뽑아 없애 버리고, 주요 부서에서 종사할 일꾼을 훈련시켜 배치한다.
중요한 요직은 우리가 훈련시켜 행정규율을 잘 아는 사람들로 채우도록 한다.


16장. 역사를 조작하고, 새로운 철학으로 교육한다.

법률을 가르칠 때에는 정치적인 내용은 제외한다.
이런 문제는 선택된 사람들 중 탁월한 재능이 있는 수십명의 소수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대학에서 헌법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를 금한다.
우리는 각자 임의로 가르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박탈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기관을 통해 동아리처럼 회집하는 권리는 인정한다,
집회에서 선생은 인간관계, 법의 필요성,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태어난 천부적인 인생행로의 한계점, 아직 공표되지 않은 새로운 철학을 가르친다.


17장. 인간을 개조하고 서로 고발하게 해 완벽한 독제체제를 구축한다.

우리 프로그램에 의해 교육 받게 되면 냉정하고, 잔인하고, 고집이 세고, 인정이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 된다.
그들은 수동적인 생각만 하게 되고 완전히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희생을 불구하고 싸우게 되고, 사소한 법률적 문제를 가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게 된다.
우리는 사회의 상류계층 뿐만이 아니라 하류계층에도 침투하는데 흥행업계, 신문잡지업계, 출판업계, 인쇄업계, 서점업계, 사무계통, 판매계통, 노동자, 운전사, 막노동꾼 등에서 해당분야를 살피는 활동을 한다.
시민은 누구든지 정치문제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것을 보거나 들으면 보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은닉죄로 입건하여 처벌한다.


18장. 공포에 의한 정부를 세우고, 우리 통치자는 신비로운 존재로 부각시킨다.

우리의 통치자는 매우 엄중하게 정사를 다룬다는 표상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또는 가문의 치부를 위한 권력이 아니고 다만 국가 복리를 위해서만 권력을 사용하며 그 모범을 증거로 국민에게 보여줌으로써 그의 권위는 추앙받게 된다.
국민은 그의 보호를 받아 안도감을 가지며 복지를 누리고 있다고 실감하게 되고 천민의 생활에도 보살핌을 받고 고마움을 느낄 때 그의 권위는 신적인 존경을 받게 된다.
 

19장. 국민에게 철권정치의 위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비평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민의 건의와 관계 없이 우리의 계획을 완료함으로써 우리가 옳았음을 보여주고, 그들의 근시안적인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밝혀주어야 한다.
반정부 정치활동으로 영웅이 되려는 사람을 몰락시키려면 절도 등 오만가지 파렴치하고 추잡한 죄목을 씌워 재판을 하도록 한다.
그러면 국민들은 영웅의 추잡한 인간상에 실망하여 혼동하고 정치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땅으로 추락하여 모두 똑같은 무리로 취급하게 된다.


20장. 정부를 빚으로 옭아매고, 국민을 경제적 노예로 전락시킨다.

경제시책은 우리 과제 중 가장 어려운 문제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과감한 결단을 요하는 일이다.
우리 왕국이 실현될 때 독재정권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과중한 세금을 부과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혁명의 씨를 만드는 위험한 일이다.
반대로 자본가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개인이 속한 부가 커지는 것을 막는 일이다.
자본의 축적에 비례해 높은 세율을 적용해 중과세 하는 일은 단순한 세금제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안겨다 준다.
국가 안보 보장과 국정운영 등을 명목으로 자본가에게 그들 수입의 일부를 국가에게 바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를 만듦으로써 가난한 사람의 부자에 대한 증오감을 줄일 수 있다.
정부가 처음 예산을 잘못 책정하면 다음 해에도 계속 빚이 누적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미리 알고 예산의 허점을 지적해 다음 절차를 밟는다.
고이들의 조심성 없는 행정 덕분으로 우리는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그 결과 국고가 비워지는 것이다.
융자기간이 끝나 만기가 되면 시중의 돈은 우리가 이미 다 삼켜 버렸기 때문에 고이 정부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빚을 지는 것은 천장에 실로 매달은 큰 칼을 머리 위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위태로워져 국민에게는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게 되고, 결국 우리에게는 사정을 봐 달라고 싹싹 빌게 될 것이다.
외국에 빚을 진다는 것은 마치 거머리가 몸에 붙은 것 같아서 한 번 붙으면 억지로 잡아 떼기 전에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
그런데 고이정부는 거머리를 떼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자진하여 피를 빨아 먹게 하고, 피가 다 없어져 죽게 한다.


21장. 내국채로 정부를 파산시킨다.

우리는 우리는 고이 정치가들의 부패하고 게으른 습성을 이용하여 그들 국가에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빌려줘 두배, 세배 이상의 돈을 벌어 왔다.
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면 필요한 자금을 공표하고, 이자를 포함한 채권을 공매한다.
공채의 액면은 국민들이 구입할 수 있도록 작게 하며, 기간 내에 사는 사람에겐 할인 혜택을 준다.
그러나 공채를 팔아 들어온 돈은 무거운 짐으로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또다른 융자를 해야하고, 부채는 점점 늘어갈 것이다.
국가의 신용도가 하락하면 정부는 빚을 갚기 위해 새로운 세금을 신설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해 왕좌를 차지하면 우리 과업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경제관리 문제와 금융시장까지 없애 버릴 것이다.
금융시장이란 것은 우리 과업을 저울질하는 매체가 되고, 우리 권좌의 특권을 흔드는 요인이 됨으로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대신 정부가 법으로 적정가를 책정하며 그 값은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게 한다.
우리는 금융시장을 거대한 정부관할 신용기구로 대체할 것이다.


22장.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돈이다.

오늘 우리 손에는 가장 위대한 힘인 돈이 있다.
우리 돈으로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로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 정부는 찬란하고 영예로운 정권이 될 것이다.
우리 왕은 전능의 권한으로 통치할 것이며, 무식한 허풍쟁이인 고이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권 아래 만민은 행복할 것이며, 우리 정권의 밝은 빛에 만민은 황공히 엎드려 숭배할 것이다.


23장. 세계정부는 사치를 금하고, 절대적인 전체주의 사회를 구성한다.

모든 민족이 우리에게 복종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검소의 미를 강조한다.
사치품의 생산을 줄여 떨어진 사회도덕을 회복한다.
개인 생산업자들이 사회의 기본을 이루도록 산업구조를 개편한다.
생산업체의 단위가 거대해지면 반정부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상을 소구모화하면 실업이 줄고, 엄격한 당국의 통제 하에 당면한 과제에만 몰두하게 하면 그들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24장. 다윗의 후손 중 왕을 선출하여 비밀지식을 전수한 후 권좌에 앉힌다.

다윗의 후손 중 왕과 왕의 후계자를 선출한다.
선택은 혈통보다는 탁월한 능력을 우선하고, 정치세계의 가장 신비한 비밀과 치국론을 가르쳐 주도록 한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지식은 선택 받은 몇 사람 이외에는 없도록 한다.
교육의 이유는 비밀스러운 정치의 도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에게 권좌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된 사람에게는 여러 나라에 적용했던 예를 들어가면서 우리의 과제에 대한 정치와 경제적 시책을 차근차근 가르친다.
비록 잔인한 성격을 갖고 있어도 강력한 통치를 할 수 있는 카리스마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만 지도장로에게서 왕위를 받게 된다.


그야말로 섬뜩한 내용 아닙니까? 

소설로 보기에는 너무나 무서우리만큼 사실적이며, 꾸며낸 이야기로 보기에는 역사와 사회와 정치권력의 비밀스러운 원동력에 대하여 너무나 날카롭고 현실적인 깊이를 보여줍니다.

편저자인 이리유카바 최는 1937년에 중국 장춘에서 태어난 후 한국에서 살다가 캐나다로 이주한 뒤 「그림자 정부」,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등의 저서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와 정치 경제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음모와 거짓을 파헤치는데 평생을 바치고 있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100여 년 전에 발견된 「시온의 칙훈서」가 세계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어떻게 적용되고 실행되고 있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민영화 조치 모두 자급자족 능력을 없애고 세상 모든 이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절대 권력자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려는 세계지배 프로그램이라는 겁니다.

또한 북한 문제에 대한 6자 회담도 미국이나 일본은 애초부터 북한과 협상할 의사가 없었고 북한과 전쟁을 일으킬 때를 기다리는 연극에 불과하며, 같은 사건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는 언론들의 편파적 보도나, 대중들이 책을 멀리하게 되고 스포츠나 영화가 큰 인기를 끄는 것도 모두 이 '칙훈서'에 따른 우민화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서를 현실에 적용하는 그의 해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칙훈서의 내용을 근거로 한 번 꼼꼼히 따져 볼 흥미는 생기더군요.

전 아직까지 이 책의 내용이 정말 유태인들의 세계정복 음모인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하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을 모함하기 위한 최대의 위서라는 주장도 있다고 하니 그런 문제에 대한 검증은 학자들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에 씌여진 내용들은 우리의 현실을 꿰뚫어보게 하는 창과 같은 날카로운 충격을 우리에게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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