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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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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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12.10.16
    제2, 제3의 '강남스타일'을 위하여 (11)
  2. 2012.07.31
    런던올림픽과 '경이로운 영국의 꿈' (2)
  3. 2012.07.11
    '나는 딴따라다' 위해 날라리를 불고 싶다 (5)
  4. 2012.03.08
    K팝 열풍, 언제까지 불까? (8)
  5. 2012.01.12
    뚝심과 치열함의 승리 '남극의 눈물' (1)
  6. 2010.08.15
    내팽개친 국사 교육, 어디서 배워야 하나? (42)
  7. 2010.07.05
    이문열 작가의 인터넷 '집단사기' 발언을 보고 (229)
  8. 2010.06.26
    이 시대 문화예술인들의 화두, 김제동 (35)
  9. 2010.03.28
    봉은사 직영 파문과 명진스님의 사자후 (31)
  10. 2010.03.12
    대학 거부한 '고대 자퇴녀'의 외로운 싸움 (54)
  11. 2010.03.01
    3.1절 아침, 뉴욕에 '독도' 광고가 떴다 (62)
  12. 2010.02.13
    경인년 '백호'의 표효와 부활을 꿈꾸며 (22)
  13. 2010.01.19
    '무릎 꿇고 있는 나무'와 '발칸의 장미' (22)
  14. 2010.01.01
    2010년 새해 첫날을 맞이하며 (44)
  15. 2009.12.31
    블로그와 함께 한 2009년을 보내며... (32)
  16. 2009.12.10
    '미안해', '사랑해' 이 말을 못했습니다. (42)
  17. 2009.12.03
    '친일인명 리스트'의 후폭풍, 심상치 않다. (59)
  18. 2009.12.02
    심각한 '외모 비하', 범죄일까 아닐까? (56)
  19. 2009.11.29
    전주세계소리축제 '광대의 노래' 이벤트 (39)
  20. 2009.11.20
    현대판 외모전쟁과 '루저의 난'. (32)
  21. 2009.11.17
    '루저대란' 통해 본 방송과 여대생의 현주소. (85)
  22. 2009.11.14
    막걸리 열풍, 세계인 취하게 할 수 있을까?(2) (54)
  23. 2009.11.07
    마음속 두 마리 늑대, 어떤 늑대가 이기나? (44)
  24. 2009.10.31
    600년 은행나무와 함께 한 시간여행. (30)
  25. 2009.10.21
    불법체류자 미누의 구속과 용광로 지수 (56)
  26. 2009.10.18
    중국의 민족주의는 불타고 있는가? (37)
  27. 2009.10.07
    '엔젤트럼펫'의 향기 가득한 '덕유산 휴게소' (34)
  28. 2009.10.05
    블로그 스킨을 고치며 '수파리'를 생각하다. (54)
  29. 2009.09.08
    마법처럼 타오르는 블로그 열정 (49)
  30. 2009.09.06
    막걸리 열풍, 세계인을 취하게 할 수 있을까? (52)

요즘 문화 관련 뉴스를 보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한 찬사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한국 가수가 세계 음반 시장을 석권하고 놀라운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것은 정말 축하해야 할 일이다.  싸이는 뛰어난 창의력과 무서운 집념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실패와 좌절에 굴하지 않고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 성공의 이면에는 오로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만 돌리기에는 부족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문화산업 생태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생태계 변화 중에는 모바일 산업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모바일 기기와 서비스, 콘텐츠 기업 간의 협력을 통해 문화산업 생태계 전반이 확장되고 있다. 유튜브와 앱이 없었으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쓸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강남스타일’의 제작 자본 문제다. 문화산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이다. 예술가와 스태프, 기획자, 제작자 등 모든 것이 사람이 직접 하는 분야이다. 이 문화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사람, 즉 문화산업 종사자들 간의 관계이다. 그들의 꿈, 열정, 재능, 경쟁심, 우정 등을 통해 작품이 생산되고 성공과 실패가 교차된다. 그 뮤직비디오는 순수한 민간 자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투자에 대한 결정은 수익성에만 맞춰진 것이 아니었다. 예술가끼리 맺어진 우정이나 가수의 꿈에 대한 공감 등이 투자를 결정짓는 주요한 동기 중의 하나였다.
  뒤늦게 '강남스타일'에 스폰서를 하려는 기업이나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관계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동기로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예술가 또는 예술단체는 개인이나 정부 또는 민간의 자본을 유치해 작품을 생산한다. 자본은 일반적으로 투자와 수익이라는 관계에 따라 이동이 된다. 하지만 수익이 발생되지 않는다고 해서 투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산업과 달리 문화예술 산업은 자본 외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경제학에서 말하는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 대비 수익에 대한 부분은 ‘유형의 수익’과 ‘무형의 수익’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특히 무형의 수익에 대한 계량화 작업은 심도 깊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그 무형의 가치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자원은 사람 곧 창작자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한 투자는 바로 싸이라는 창작자가 가진 무형의 가치에 대해 공감하는 투자자를 만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요즘 ‘강남스타일’의 성과에 정부와 기업까지 덩달아 흥분하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싸이의 공연을 유치하기 위해 벌이는 졸속 행정이나 대통령 후보들이 자신들의 홍보에 ‘강남스타일’을 이용하는 서투른 몸짓을 보면 씁쓰레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싸이의 성과를 이용하려 하지 말고 앞으로 제2, 제3의 싸이가 나오기 위한 정책 마련에 힘을 써야 한다. 민간이 잘하고 있는 대중문화 부분은 직접 지원보다 창작의 환경을 개선하는 간접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고, 창작 환경이 열악한 순수예술이나 전통예술에 대한 직접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문화산업과 정부의 정책이 가장 성공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로 영국을 들 수 있다. 영국은 블레어 총리 시절부터 ‘창조산업’의 기치를 내걸고 창작자에 대한 연구 및 혁신지원, 자금 및 성장 지원, 지적재산 장려 및 보호, 창조클러스터 지원, 글로벌 창조 허브 구축 등의 과제를 추진함으로써 창조산업에 대한 중앙정부, 지방조직, 비정부공공기관, 민간기업 등과의 협력 네트워킹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전 세계에 창의력과 상상력, 지속가능성, 정의와 공정성이 미래 핵심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미래형 인재, 인간 중심의 기술, 협력과 지속가능성을 핵심요소로 하는 정책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향후 문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창의성, 융합, 인간중심의 하이컨셉 등의 가치가 적절한 투자와 협찬, 국가의 지원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제2, 제3의 ‘강남스타일’이 탄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12년 10월 1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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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여러 면에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비교된다. 둘 다 자기 나라가 배출한 세계적 영화감독이 연출했을 뿐 아니라 주제면에서도 비슷하게 짜여졌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이었던 장이머우는 중국의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꽃 피웠던 시대인 '당나라'의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주제를 장엄한 연출력으로 표현하여 세계인의 시선을 붙잡았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인 대니 보일은 '경이로운 영국'이라는 주제 속에 영국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섬세한 연출력으로 표현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푸름과 유쾌함', '악마의 맷돌', '미래를 향해' 등 3막으로 구성된 개막식은 영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중문화와 접목시켜 친근함과 화려함을 자랑했다. 개막식의 시작은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로 활약 중인 다니엘 크레이그와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열었다. 전통적인 섬 마을 주민들의 일상들이 평화롭게 이어지는 장면에 이어 연극배우이자 영화감독 겸 배우이기도 한 캐네스 브레너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캘러반의 대사 중 '경이로운 섬'에 대한 찬가를 낭송했다. 영국 동화 속에 나오는 악당들이 어린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때 하늘에서 날아 온 어린이들의 유모 메리 포핀스들이 악당을 물리치고,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엔 롤링이 <피터팬>의 첫 구절을 낭송했다. 또 영화 '미스터 빈'으로 널리 알려진 희극배우 로완 애킨슨이 영국 육상 선수의 실화를 그린 영화 '불의 전차'의 주제곡을 연주하는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 옆에 앉아 재치 있고 익살 넘치는 연기를 했다. 피날레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등장해 '헤이 주드'를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트레인스포팅'과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 대니 보일은 480억원의 예산으로 1만5,000여명의 배우와 무용수, 7,500여명 자원봉사자와 함께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문화자산을 총동원해 개막식을 연출했다. 현대적인 영상 기법 속에 영국적인 감성을 잘 녹여내고, 웅장한 가운데서도 위트를 잊지 않은 연출력은 역시 대니 보일다웠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자국의 문화 역량을 전 세계에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따라서 영국인인 대니 보일이 개막식을 통해 자국의 문화를 최대한 뽐낸 걸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중국인인 장이머우가 중국의 문화를 한껏 뽐낸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소수민족 어린이(그 속에 조선족 어린이도 있었다)들의 떠받듦 속에 오만하게 올라가던 오성홍기 속에서 꿈틀대는 중화제국주의의 꿈에 대해 경계심을 피력했다. 과연 지금의 중국은 소수민족들을 통제하고 주변국을 핍박하는 패권국가로 바뀌고 있다.


4년 전 장이머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당(盛唐) 문화는 중화 문화의 최고봉이다. 성당은 군사적으로도 세계 최고였다. 곧 중화의 문명이 성당처럼 불끈 일어나 세계인의 긍지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니 보일은 공식 인터뷰에서 "영국이 산업사회의 시발점이었다는 점과 산업화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점을 알리려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공장의 굴뚝이 우람하게 솟아나는 산업화의 현장 묘사와 함께 굴뚝에서 솟아올라 공중에 높이 떠오른 5개의 원형 형체가 오륜기로 만들어지는 퍼포먼스로 구체화됐다. 정치적인 관점은 배제했다고 본인은 강조했지만 나는 그런 장면 속에서 꿈틀대는 대영제국의 정치적 꿈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 과연 영국인인 대니 보일이 보여 준 '경이로운 영국'의 꿈은 무엇일까? "두려워하지 마라. 섬 전체가 즐거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캘리번의 대사를 곧이곧대로 들어 줄 수 있을까. 그 강력한 문화콘텐츠의 '즐거운 소음'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경이로운 영국의 꿈'에 대해 나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8월 1일 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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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방송 '나는 딴따라다'가 아이튠즈의 인기 오디오 팟캐스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나는 딴따라다'는 영화감독 김조광수, 공연기획자 탁현민, 개그우먼 곽현화씨가 출연하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1회의 '마초 vs 섹시컨셉 여성 vs 동성애'에 이어 2회 '황상민의 '쑈'인가? 김연아의 '쑈'인가?', 3회 '정치인의 스타일, 대선 후보의 패션 감각', 4회 '성희롱 없는 섹쉬한 민주주의'로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네티즌들의 뜨거운 인기가 계속될 지 두고 봐야 알겠지만, 나는 방송의 내용보다 '딴따라'라는 말을 방송의 제목으로 내세운 그들의 의도에 주목하고 싶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딴따라'는 연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영어의 나팔소리를 뜻하는 의성어인 'tantara'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곡마단 등의 공연을 할 때 관중을 끌기 위해 단원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홍보를 했다. 그 때 행렬의 앞에서는 나팔을 불고 중간에는 단원들이 깃발을 들거나 북을 치기도 했다. 딴따라는 그 때 불던 나팔소리를 본딴 의성어이다.

 

딴따라와 비슷한 말로 '날라리'가 있다. '날라리'는 본디 우리의 전통 악기인 태평소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 시대의 광대 무리인 남사당패는 날라리를 불면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국을 떠돌았다. 남사당패는 천민이었기 때문에 날라리를 부는 사람을 깔보며 하찮게 여기다보니 그 악기 이름 자체가 사람을 깔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국어대사전에는 '날라리'라는 악기에 대한 해설과 함께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식자층에서는 연예인들을 '딴따라'나 '날라리'로 낮추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한류 스타나 연예인들의 성공에 대한 얘기가 우연히 나왔는데 나이 드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그런 현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발언을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연예인에 대한 관념은 어려서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 놀기나 좋아하고 여자들은 패션이나 화장에만 관심이 있던 '날라리'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딴따라'가 되려면 기획사 사장이나 피디들에게 몸을 바치는 등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 그러다 인기 좀 얻으면 술과 마약에 찌들어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그런 '날라리'들이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영웅이 되고 공인이 되어 설치는 세태에 대해 개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 그러한 '딴따라' 연예인들이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들은 연예인들이 대중을 지도할 만한 정치적 식견이나 철학이 없는데도 단순히 인기가 있다고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했다. 아마 대다수의 상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연예인에 대해 선망하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그러한 거부감이 깔려 있을 것이다.

 

'나는 딴따라다'는 그러한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방송이다. 요즘은 연예인들이 천대 받는 시대도 아니고, 그들의 지성이나 인격이 무시당할만큼 일반인보다 뒤떨어진다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요즘은 창의력과 지성이 뛰어난 젊은 인재들이 엄청난 경쟁을 치르면서 연예계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또한 연예인 역시 한명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소신과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시대이다.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분야에 그들은 서슴없이 참여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들의 참여 방식도 다양해져서 정치적인 성향을 띤 '폴리테이너'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셜테이너'를 구분하기도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직업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게 당연하듯 연예인에 대한 편견 역시 변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옛시대의 편견에 사로잡혀 연예인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용감하게 도전장을 낸 '나는 딴따라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딴따라'나 '날라리'라는 단어를 제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응원의 '날라리'를 불고 싶다.

 

(*이 글은 7월11일자 한국일보 김명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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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문화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단연 ‘K팝’이다.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의 소녀시대, 미국 아이튠즈 차트 7위로 입성한 빅뱅 등 세계 각국을 누비는 아이돌 가수들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K팝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 패션, 음식, 성형수술, 관광 등 한국에서 제공되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이제 K팝을 비롯한 TV드라마나 영화 등의 한류열풍은 단순히 문화 현상의 의미를 넘어 국가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에서 유럽의 한류열풍을 집중 보도하면서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대기업, 재벌에서 대중가요, 영화 등 문화 중심의 한류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한류열풍에 도전하는 역풍도 만만치 않게 불고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의 일방적인 문화수출을 경계하는 여론과 함께 ‘반한류’ 또는 ‘염한류’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각국의 민족주의자나 극우세력과 결합돼 심각한 도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며칠 전부터 K팝 문화에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비판하는 글이 해외 인터넷에 올라 전 세계로 논란이 번지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불만도 높아져서 인기자체에도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 난 기획사들이 완성도가 떨어지는 K팝 공연을 무리하게 공급하면서 신뢰도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K팝과 한류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금의 K팝 열풍은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돌 가수 외에 폭넓은 연령층의 가수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한복, 한식, 국악 등 전통 문화와의 접목을 통해 다양성을 확대하고 문학, 동양철학, 클래식 등 순수문화와의 연계도 필요하다. 그와 함께 일방적 돈벌이의 수단으로 대상국의 팬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세계시민의 넓은 안목으로 한류를 통해 그들의 삶과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확고히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창의적 인재 양성’을 꼽고 싶다.

한류가 대변하는 문화산업은 창조력을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되는 미래 성장산업이다. 미국은 헐리우드와 디즈니와 팝송 등의 세계적 스타들을 앞세워 지구촌 문화산업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영국은 블레어 총리 시절에 주창된 ‘창조산업’이란 문화정책으로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 문명 중심국가’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일본 또한 아시아 문화의 주도권 싸움에서 중국에 뒤질세라 창조적 콘텐츠 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자신들의 문화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뭐니뭐니 해도 창조적 환경 제공과 인재 양성이다.

우리나라도 뒤늦게나마 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반적 인식은 ‘한류가 얼마나 돈을 벌었는가?’ 하는 경제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산업과 한류를 일으키는 기초 원동력인 창조력의 개발에 대해서는 지원도 투자도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도시와 창조계급>의 저자인 미국의 리쳐드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의 경제성장과 창조적 인재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헤미안 지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화가, 작가, 음악가, 연극인, 영화인, 디자이너와 같은 보헤미안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도시가 발전한다는 그의 이론은 창조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조력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공통의 관심 속에서 정성을 다해 꾸준히 숙성시킬 때 제조되는 포도주와 같은 것이다. 한류열풍을 지속시키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갈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창조적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이 글은 3월 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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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물 시리즈’의 애청자다.

‘북극의 눈물’로 시작해 ‘아마존의 눈물’을 거쳐 ‘아프리카의 눈물’을 넘어서 남극까지 온 이 자연다큐 시리즈는 눈물과 감동의 대하드라마다. 단순히 추운 극 지대나 대륙의 오지를 필름에 담았다고 감동을 받은 게 아니다. 아마존의 오지에서 독충에 물려 다리가 부어오르고, 남극의 추위로 뺨에 동상이 걸리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황폐해져 가는 지구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제작진의 목숨을 건 뚝심과 치열함이 없다면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방영되는 ‘남극의 눈물’(연출 김진만 김재영) 편 또한 1년여 동안 남극의 얼음 위에서 목숨을 건 촬영으로 남극동물들의 생태를 담았기에 또 한 번 감동의 폭풍에 휩싸일 수 있었다. 그런데 호사다마인가. 12월 23일의 프롤로그 방송부터 당혹스러운 논란이 일었다.

일본 쇼와기지의 남극 출항 과정을 소개하면서 ‘욱일승천기’를 보여준 게 발단이었다. 욱일승천기는 1889년 일본 해군의 군함기로 지정된 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 된 깃발이다. 그 깃발이 나온 화면과 함께 “패전의 아픔 속에 일본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남극에 진출했다”는 내레이션 부분도 논란이 됐다.
 

방송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남극의 눈물’이 아니라 ‘일본의 눈물’을 방송하나?”, “위안부 할머니가 보시면 기절할 패전의 아픔” 등과 같은 비난 글이 쇄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제작진은 MBC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이 해상자위대 깃발(일명 욱일승천기)을 단 군함을 남극에 보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현재적으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일본이 국가적으로 남극대륙을 향해 가진 강한 집념과 의도를 상징한다. 저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의미에서 방송에서 등장을 시켰고 이 질문에 대해서는 4부 ‘인간, 그리고 최후의 얼음대륙’ 편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고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왜 우리가 과거의 잘못도 반성하지 않는 나라에 패전의 아픔까지 동감해야 하는 건가?”, “사과는 절대 안 하고 자신들이 옳다고만 주장한다” 등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는 글들을 올렸다. 아무리 분이 나더라도 아직 4부가 방영되지 않았으니 이 문제는 4부를 본 다음에 따지는 게 옳을 듯싶다.
 

그런 논란 가운데 1월 6일 밤 11시에 1부 ‘얼음대륙의 황제’ 편이 방송됐다.



황제펭귄의 짝짓기부터 새끼를 키워내는 경이로운 과정과 새끼를 향한 황제펭귄의 놀라운 부성애,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허들링 등 자연다큐라기보다 휴먼다큐와 같은 감동으로 수많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당혹스러운 상황이 생겼다.

KBS 1TV가 6일 밤 10시에 BBC의 ‘프로즌 플래닛’(Frozen Planet)을 방영한 것이다. BBC의 ‘플래닛’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지구자연 다큐멘터리다. KBS 측은 “공영방송 간의 콘텐츠 교류로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며 6일 방송은 연초 시청자 서비스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방영 후 ‘남극의 눈물’ 시청률은 11.4%, ‘프로즌 플래닛’ 시청률은 12.8%로 KBS ‘프로즌 플래닛’의 1차 승리로 끝났다.
 

MBC로서는 참으로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일 듯하다. 만약 KBS가 ‘남극의 눈물’ 방영 때마다 1시간 전에 같은 소재를 다룬 남의 나라 다큐를 방영한다면 “‘남극의 눈물’에 대한 인기를 줄이려는 꼼수 의혹을 넘어 상도덕을 어긴 경우”라는 MBC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누가 봐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러한 편성은 지구 환경의 심각성이 아니라 치졸한 시청률 싸움에 몰두하는 방송 환경의 심각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난으로 번지지 않겠는가.

(*이 글은 1월 11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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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역사 문제를 풀어봅시다.

1. 신라가 우산국을 정복한 이후 울릉도와 함께 우리나라의 땅이 되었음에도 일본이 자신의 섬이라고 주장하는 울릉도의 부속 섬은 무엇인가?
2.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3. 우리나라 왕조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1번은 어느 고등학교 2학년 '한국 근현대사' 기말고사 문제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정답률이 50%가 안되고, 독도 대신 제주도, 마라도, 심지어 대마도까지 쓴 답안이 많았습니다. 2번과 3번 문제는 서울시내 중상위권 고교 3학년 2개 학급을 대상으로 냈는데, 오답률이 무려 68%였습니다. 

출처 : http://dokdo.kcg.go.kr/sub01/img_pop.as...5B5%25B5

지난 8월5일에 방영된 MBC <후플러스> 「국사, 안 배워도 그만?」편에서 취재 보도한 내용입니다. 

<후플러스>의 취재 내용은 참으로 심각하더군요. 많은 고3 학생들이 국사를 선택하지 않았고,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에서는 문과 입시생 중에 3명만 국사를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몇몇 반을 샘플로 하여 중학교 수준의 국사문제를 고3학생들에게 내주었더니 정답률이 무척 낮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관심도 없고, 기억도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형편없는 국사 실력,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역시 입시 교육을 주범으로 꼽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현재 수험생들은 사회탐구 11과목 중 4과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무적으로 국사를 선택하게끔 제도화한 서울대 지망생을 빼고는 모두 윤리나 사회문화 같은 비교적 부담이 적은 과목들을 선택하는 실정입니다.

이과생들은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 국사과목이 문과생들로부터도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며, 교사들조차도 이를 묵인하는 현실이 고등학교 교실의 현재 풍경인 것입니다.

수많은 대학교 중 서울대만 국사 시험을 보니 서울대 지망생들만 국사 공부를 합니다. 역사교육에 대한 서울대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학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년부터 고등학교 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바뀌게 되니 역사를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2009년 교육 개정과 관련해서 교과부는 모든 과목의 선택과목화를 추진하면서 국사과목도 학생들의 자율권에 맡기는 원칙을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국사만을 표적으로 개정한 것이 아니라 공통 기본 교육 과정을 1년 줄이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상황이란 얘기입니다.

이런 원칙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없어도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입시에 필요한 '국영수' 위주의 수업으로 재편되면서 학생들이 기피하는 국사 과목은 축소될 것이 뻔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도라도 결과적으로 국사 교육은 축소될 게 불을 보듯 뻔한데, 교과부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모양입니다.

「국사, 안 배워도 그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른 나라 역사교육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근래 몇 년 간 일본은 한일 관계의 역사를 왜곡하는 새 교과서 만들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도 관련 분쟁 및 군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역사 교육 현실과 우리와의 마찰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중화주의 사상 강화에 따라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주 국가가 아닌 중국 변방의 식민지로 강등시키기는 동북공정 문제가 우리와의 역사 갈등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MBC가 이 문제를 취재한 이유는 이와 같이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문제들이 심각한 상황에서 고등학교 국사 과목마저 선택으로 돌리면, 점점 우리의 젊은이들이 자기나라 역사에 무지한 인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시작된 듯합니다.

그 우려와 함께 독일 20%, 프랑스 15.5%, 일본 10.1%, 중국 9.4% 등 세계 주요국들의 역사교육 비율에 비해 5.4%로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의 역사 수업 비율을 비교해서 소개했습니다. 국사 수업 비중도 적을 뿐만 아니라 교육 내용도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사 교육을 선택으로 돌리고도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정부의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이성적인 역사교육 정책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나라를 잃고 식민지 노릇을 한 후유증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날입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gOpen%3D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광복절이 일 년에 한 번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다면, 국사 교육은 평생 동안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국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아는 문제입니다. 세계화를 향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 민족이 생존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바른 국사 교육을 통해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합니다.

지금같은 국사 교육의 부실이 심화되다 보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걸 노래방에서나 배우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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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작가의 중앙일보 7월 3일자 인터뷰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군요.

그 기사 중 특히 인터넷에 대해 언급한 말들이 네티즌들의 거센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 문제를 언급하던 중에 이런 말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출처 : http://akdong2k.tistory.com/242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쌍방성’에 대해 집단적 오해가 있는 것 같다........쌍방성을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다수는 일방적인 선전 선동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그 극소수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소수, 메커니즘을 잘 이용하는 소수다.......흔히 인터넷이 집단지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오히려 집단최면이다. 심하게 말하면 집단사기, 집단선동이다.”

그러한 집단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들이) 부메랑을 맞게 될 때 정화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흥기와 패퇴는 상당 부분 인터넷 때문이다. 그가 죽은 이유도 인터넷 때문이라고 본다. 신문 시대였다면 그렇게까지 안 됐다고 본다. 부메랑에 맞은 거라고 생각한다.”

노전대통령의 사망이 인터넷의 부메랑을 맞았기 때문이고, 모두들 그 부메랑을 당해봐야 정화가 될 것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그렇게 정화되기를 기다려 왔는데 아직 정화되지 않고 있으니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인터넷에 적용되는 모욕죄, 명예훼손죄 등은 만들어질 때의 상황이 지금과 전혀 다르다.......내 경우 인터넷으로 명예가 훼손됐을 때 매번 고소했다면 19번쯤 됐을 거다. 하지만 변호사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소송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소송을 통해 받아낼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송을 하고 싶지만 소송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대한 그의 원망은 계속됩니다.

“적대감이 상승하면 적 개념이 확대된다. 예전에는 나하고 직접 치고받은 사람만 적이었다면, 나중에는 내 편에서 함께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던 사람도 적이 된다.”

이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보면 그는 네티즌들을 집단사기나 집단최면에 능한 몇몇 극소수의 농간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군중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게 놀아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적이며, 자기가 당한 만큼 복수를 해서라도 정화시키고 싶은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가 왜 이처럼 인터넷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가진 걸까요?

그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 지성인이자 인기소설을 쓰던 소설가로서 오랫동안 최고 문인의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7, 80년대의 젊은이들은 그가 썼던 수많은 소설들에 열광하고 그 저자를 찬미했습니다. 7,80년대 문인 사이의 진보와 보수 논쟁이 있었지만 그것은 지식인들끼리의 문학적 논쟁이니 그에게 깊은 상처나 증오심을 심어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애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책 장례식' 사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하루아침에 독자들에게 외면 받으며 자신의 책이 불 태워지는 충격적인 사건은 존경받는 소설가였던 그에게는 너무도 견디기 힘든 상처였을 겁니다.

실제로 그는 2004년도에 <신들메를 고쳐매며>란 산문집의 출간을 다룬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책을 불태운 놈들은 사람도 산채로 땅에 묻을 수 있다”고까지 증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오늘날의 일부 지식인들을 ‘하류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로 규정하고, 인터넷을 ‘타락한 광장’으로 비유했습니다. 그 ‘타락의 광장’을 조종하고 있는 사람들을 '탈레반'에 견주기도 했습니다.

이번의 인터뷰 발언은 그가 여전히 네티즌들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극도의 증오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인의 책이 불태워지는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그런 감정에 휩쓸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만을 토대로 인터넷 문화 전체를 집단사기나 집단선동으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도 비이성적 발언입니다. 자신의 아픔과 분노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내가 당했다고 모든 네티즌들이 극소수 선동분자들에게 놀아나는 어리석은 군중들이며, 이성적이지 않은 집단최면에 걸린 무리이며, 그들을 끌고 가는 것은 사기꾼들 아니면 선동꾼들이라는 표현은 지나칩니다.

물론 인터넷은 완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스펨메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사생활 침해, 인격모독, 명예훼손, 해킹, 온라인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메일, 인터넷 뱅킹, 전자상거래, 블로그, 포털, 메신저, 트위터, 페이스북 등 현대 생활에 필수불가능한 기능과 새로운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보화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전세계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입니다.

인터넷은 개방성이 생명입니다. 소수 언론의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대중들이 이제는 수많은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정보를 얻고, 판단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네티즌들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기만 하는 어리석은 군중이 아닙니다. 

독자적으로 정보를 검색하거나 분석하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토론도 하고, 댓글을 달기도 하고, 글이나 동영상을 퍼나르기도 하며 참여를 하는 것이 인터넷 세대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누구의 선동에 끌려 다니는 최면 걸린 군중이 아닙니다.

저도 최근에 인터넷의 세계에 뛰어들어 블로그도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하면서 수많은 네티즌들과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제가 느낀 것은 너무도 많은 네티즌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너무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발견이었습니다.

그들은 극소수의 선전에 놀아나는 우매한 '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지식과 전문성을 가지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통해서 삶을 풍성하게 가꾸고 자신의 사회적·문화적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개인'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새로운 소통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들 중에는 저와 의견이 다른 분들도 있었고, 때로는 욕설과 과도한 표현으로 저를 화나게 한 분도 있었지만 그 경험 또한 저의 생각을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네티즌들 중 이문열씨의 생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 과도한 표현으로 님에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의견이 맞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타락한 광장’의 전체주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인터넷 문화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입니다.

권유하건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풍부한 감성과 지성인의 성찰로 디지털 문화를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네티즌들과 직접 소통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전히 님을 괴롭히고 있는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 이 시대의 문인으로서 독자들의 사랑을 되찾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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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제가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 노제 총감독을 맡았을 때 김제동씨는 사회자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유서의 내용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아름다운’ 말들로 사회 멘트를 장식해서 '김제동 어록' 유행시켰습니다. 1년이 지난 뒤, 그는 1주기 추모식의 사회자로 다시 참여했고 그 여파로 Mnet의 쇼MC에서 사퇴하게 되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아름다운’ 말로 애도를 표한 개그맨이 정치적 문제로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출처 : http://h21.hani.co.kr/section-021013000...027.html

김제동이라는 연예인이 이 시대의 정치권력과 겪는 갈등을 보면서, 그의 선배라 할 수 있는 옛 시대 광대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연산군 때 ‘공길’이라는 광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연산군의 황음무도함을 풍자하는 놀이를 자주 벌였는데, 그 일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옥에 갇힌 뒤부터 단식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연산군에게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했습니다.
 

논어에 이르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는데,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비록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 들
내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름다운’ 말에 분노한 연산군에 의해 공길은 처참하게 매를 맞고 유배를 당했습니다. 그의 이 짤막한 에피소드는 재능 있는 작가와 감독에 의해 연극 <이(爾)>와 영화 <왕의 남자>로 재탄생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러시아에 ‘블라디미르 레이니도비치 두로프’라는 광대가 있었습니다. 그 또한 공길이처럼 러시아를 지배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를 풍자하는 놀이를 벌인 죄목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도 감옥에 가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릿광대의 왕이다.
하지만 결코 왕의 어릿광대는 아니다.
우리는 지고한 대중의 어릿광대다.

구한말에 활약했던 몇몇 기생·광대들의 다음과 같은 일화도 무척 시사적입니다. 먼저 일제 침략에 항거해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유학자 황현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나오는 이야기. 

진주 기생 ‘산홍’이가 검무를 잘 춘다는 소문을 듣고, 내무대신 이시홍이 천금을 주고 산홍이를 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산홍이는 그 제안을 일거에 거절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했습니다.

내 비록 천한 기생의 몸이지만,
일본에 나라를 판 오적의 두목에게
몸을 팔지 않겠다.

이 말에 크게 노한 이시홍은 그녀를 잡아다 무자비하게 때렸다고 합니다.

판소리 <서편제>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소리 광대 '박유전'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무과 벼슬까지 하고 그의 사랑채에 수시로 출입했습니다. 그러다가 민비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대원군이 중국으로 망명하자, 민비파의 보복을 피해 전라도에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대원군이 다시 권력을 잡자 한양으로 올라갔습니다. 얼마 뒤, 대원군이 죽고 한일 합방이 되자 그는 나라 잃은 가객이 노래 부를 수 없다며 전라도 어느 땅에 칩거하다가 한겨울에 굶어 죽었습니다.

같은 시절에 '정가소'라는 ‘재담 광대’(요즘으로 치면 개그맨)가 있었습니다. 그는 북촌의 양반집 사랑방을 돌아다니며 정치나 시사 문제를 풍자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장기는 '흥인군 곳간 점고'였습니다.

흥인군은 대원군의 형으로 동생의 권력을 빙자하여 뇌물 받기를 좋아해서 엄청난 치부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흥인군은 집안에 아홉 개의 곳간을 지어놓고 공물들을 가득 쌓아놓았는데, 정가소는 이른 아침마다 곳간 문을 열고 공물을 헤아리는 흥인군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하여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같은 시기에 '정동'이라는 재담 광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모든 권력과 금력을 장악한 안동 김씨의 비리와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등을 풍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김씨 일파가 보낸 하수인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위에 예로 든 기생·광대 즉 옛시대의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했던 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토록 권위적이며 봉건적인 시대에, 사회적 약자였던 그들이 그토록 저항적이며 진취적인 소신을 가지고 활동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문화예술인들과 정치권력의 갈등은 한일합방과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항적’이며 ‘진취적’인 문화예술인들은 철저히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해방 이후 좌·우익의 이념 대립은 그들에게 분명한 정치적 선택을 강요했기 때문에 문화예술인들은 어쩔 수 없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문화예술인들은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정치권력을 따르게 되었고, 남한의 문화예술인들은 자유민주주의로 무장한 정치권력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남한의 역대 정치권력은 그들을 ‘관리’하고 ‘통제’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일부’ ‘불온한’ 문화예술인들은 군사정부의 독재적이고 폭압적인 권력에 거세게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민주와 통일과 인권과 평등의 기치를 드높이 내걸고 저항적이고 진보적인 문화예술운동을 펼쳤습니다. ‘90년대 말에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탄생되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관리와 통제 정책은 지원과 육성 정책으로 변했습니다. 검열 제도가 사라지고, 표현의 자유와 자율성이 신장되었습니다. 문화예술가들은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표현을 하고, 소신껏 발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현재, 그 결과는 다시 참담해졌습니다.

문화예술계의 좌파·우파 편가르기는 무자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기관장 인사 파동, 방송 장악 시도, 표현의 자유 위축 등도 급속도로 심화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비판적 문화예술인들의 ‘목줄조이기’라는 구시대적 작태까지 등장한 것입니다. 이제 연예인들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은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에게 적당히 이용당하며 살아 온 옛 시절로 돌아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시 한 번 정치적 각성이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지고한 대중’의 삶 속에 뛰어 들어, ‘저항적’이고 ‘진취적’으로 살다 간 옛 시대 광대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문화예술인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김제동은 어느새 이 시대 문화예술계의 ‘화두(話頭)’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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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입적 소식이 있던 날, 봉은사 관련 소식이 함께 떴을 때만 해도 그 일이 이토록 일파만파 커질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봉은사를 조계종에서 직영하겠다거나 그걸 반대하거나 하는 것은 불교계 내부의 일입니다. 그 일이 이토록 파문을 일으킨 데에는 정치권과의 연결 때문입니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조계종 한국불교 문화사업단 김영국 위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이들이 벌이는 진실게임 속에 불교계와 정치권과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불교계가 정치권과 음으로 양으로 얽혀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불교문화유산과 관련된 막대한 정부 지원금과, 불교계 내부의 권력 투쟁에 깊숙이 관여해 온 정치권력과의 유착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돈과 권력......

불경의 가르침대로라면 가장 경계해야되고 물들지 말아야할 이 두가지 세속적 욕망이 한국 불교계를 이끌어 오는 최대의 양축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하기야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종교지도자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의문이 갈만큼 종교가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이나 돈과의 관계가 만약 명진 스님의 주장대로 그토록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면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가 세속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그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거나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정도에서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조계종 총무원장이라는 불교계 최고의 지도자가 특정 정당의 원내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좌파 스님' 축출에 대한 언질을 듣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종회를 열어 봉은사의 직영을 결정했다면 '종교의 권력 시녀화' 자청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천주교나 기도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속적 권력이 약한 불교를 만만히 보고 정치인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스님은 '키우고', 입맛에 맞지 않는 스님은 '죽이는' 일이 자행된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암담할 것입니다. 

진실 공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명진 스님의 계속되는 사자후에 대해 자승 스님이나 안상수 원내대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묵언(默言) 수행'을 하느냐고 비꼬기도 하더군요. 묵언은 '진실을 찾기 위한' 수행의 한 방편이지 '진실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는 아닙니다. 

정치인은 거짓과 책략을 통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수도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종교의 지도자인 자승 총무원장은 입을 열어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정치와 달리 종교는 진실과 자비를 생명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가 사이비 종교가 아니고 한국불교의 지도자가 사이비 교주가 아닌 이상 이토록 스님들과 신도들과 일반인들의 의심이 난무하는 상황에 대해 책임있는 발언을 해야 합니다. 이러다가 한국불교의 신뢰가 추락하고 정치권의 노리개가 되면 어쩌려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단 말입니까? 

평생 '무소유' 가르치고 몸소 실천해 오신 법정 스님이 살아 계셨다면 한국 불교가 돈과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이토록 타락했느냐고 사자후를 토하며 눈을 감지 못하셨을 듯 합니다.    

저는 특정 종교의 교인은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불교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수행이 높으신 스님들의 법문을 듣거나 저서를 읽는 걸 좋아합니다. 제발 돈과 권력에 물든 스님들의 추태로 인해 수많은 청정 스님이나 보살님들의 수행과 서원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두손 모아 합장합니다. 

지난 3월 21일 봉은사 법회에서 명진 스님이 신도들에게 한 법문을 전문 소개합니다. 이 법문을 하면서 명진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법문은 불법을 말해야 하는데 오늘은 시비를 얘기하게 됐다. 신도와 사부대중에게 부덕한 소치다. 심려를 끼친데 진심으로 참회를 드린다. 봉은사 부처님께도 참회 올린다. 지난 일주일이 굉장히 길었다. 1년이 지난 것 같은 세월이었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결국은 솔직해지자, 솔직하게 모든 일을 신도님들에게 말씀 드리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19살에 해인사로 출가, 성철스님 문하에 1년 있었다. 군대 갔다와서 법주사로 다시 출가, 걸망을 지고 선방 돌아다니다 1986년 해인사 승려대회를 계기로 사회와 종단의 여러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지금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만났고, 인연이 남다르게 깊었다.  

94년 종단개혁 때는 봉암사 선방에 있다가 올라와 참여했다. 불교가 정법을 세우고 올바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라고 생각했다. 94년 개혁때 가사를 부처님전에 바치면서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산문을 떠나겠다고 했다. 형식적으로는 성공했다. 현 종헌종법도 개혁회의에서 입안했고, 지금 체계를 세웠다. 그 뒤로도 종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선방에서 남은 공부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방에 다녔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봉은사 주지로 왔다.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제의 받았을때 반대편에 선 나에게 준다는 것 맞지 않다면서 3번 거절했다. 그런데도 지관 스님은 명진 수좌가 아니면 봉은사를 누가 맡겠느냐고 했다. 큰 절 봉은사 주지로 잘 보냈구나 말듣도록 하겠다고 지관 스님에게 말하고 결정했다.  

94년 이루고자 했던 개혁을 봉은사에서 한번 해보자. 큰 틀에서의 개혁이 부처님법대로 간다면 종단에 파급되어 종단이 맑아지고 신심나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겠나. 1000일 기도 그래서 했다. 여기 신도님들은 믿지 않았다. 100일 지나도 안믿었고, 200일 지나도 안믿었다. 300일째 되니까 정말 기도 하는건가 생각했다. 500일째 되는날 신도님들에게 3배 올렸다. 혼자 기도했다면 벌써 그만 뒀을 것이다. 신도들이 기대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늦잠을 자고 싶기도 하고 빠지고 싶기도 한데 신도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 신도들이 부처님이요 호법신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으로 절 했다. 중노릇 나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거구나 느꼈다.  

봉은사 직영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지금 총무원장 자승 원장은 저하고는 남다른 사이다. 92년 봉암사에서 한 철 살고 와서 자승 스님이 앞으로 조계종은 (명진)스님이 책임져야 한다. 스님을 원장 만들겠다. 지금부터 만들겠다고 하더라. 웃고 말았다. 그후 반대 입장에도 서고 같은 입장에도 서고 오랜 세월 살아왔다. 그러다가 지난 선거때 자승 원장이 찾아와 "스님, 제가 총무원장 출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했다. 전에는 날 보고 총무원장하라고 책임지고 만든다고 하더니 그게 뭔소린가 하니까, 스님은 종정하셔야죠 하더라. 그래서 종정 되는 꿈만 꾸고 있었다. 내가 이러이러한 반대 뜻을 가진 스님들 합의해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진화스님이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도왔다. 기대와 희망 속에 추대 되다시피 33대 총무원장 당선됐다. 

취임식에서 소통과 화합으로 종단 운영하겠다는 법문을 했다. 젊은 원장이지만 우리 종단이 화합 분위기에서 출범했으니 희망 있겠구나 생각했다. 본인(총무원장)이 선거와중에 말하기를 반대한다 하더라도 봉은사 훌륭하게 신심으로 재정투명하게 하고 신도들이 지지 한다면 봉은사 주지 오래도록 하도록 하겠다고 하더라. 그 말이 고마웠다. 봉은사를 중심으로 한국불교를 바꾸자고 약속했다.  

선거 와중에 본인이 은정장학재단 건물에 거처, 봉은사에서 거주토록 요청했다. 지체없이 제가 쓰는 방 앞에 내주었다. 중앙종회의장까지 지낸 거물급 스님이 앞방에 있는 것 부담되지만 내주었다. 그 방에서 사람들 만났고, 총무원장이 됐다.

직영문제를 누구와 소통했나 묻고 싶다. 직영으로 해야겠다 사전에 한마디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무회의에서 봉은사 직영문제 지정하던 날 아침에 총무부장 영담스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봉은사는 이제 직영사찰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는 직영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 "알아서들 해"하고 말았다. 뭔지 몰랐다. 좀 있다가 부주지 진화스님이 봉은사 직영하겠단다고 왔다. 직영이 뭐냐고 물었다. 감을 못잡았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얼마전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법인 만드는 회의가 있었다. 당연직 이사장이 총무원장이 하고 제가 대표이사를 맡는 회의였다. 일찍 들어갔더니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도 있었다. 직영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님 뜻이 실린거냐"고 하니까 "내 뜻이 실리지 않고 어떻게 가결되겠는가"라고 했다. "당해사찰 주지에 한마디 없이 직영한다는 게 뭐냐. 나보고 나가란 소리네"하고 화를 내면서 나왔다. 그래도 회의는 했다.

이런 과정 거치면서 왜 직영할려고 할까. 참 궁금하기도 하고 사전 설명도 없고 이해 안되기 때문에 아무도 직영문제를 어떤 부장도 내가 거론했다는 사람이 없고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진화스님이 종회의원 설득해 종회에 안건 못올라오도록 총무분과위원회에서 논란끝에 4대5로 부결시켰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직영 계속 얘기되서 부당한 처사다. 안맞는 얘기다 한거다. 3월 9일 4시쯤 자승 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총무원장이 커피숍에서 기다린다기에 전화한다고 했다. 은정장학재단으로 갔다. "죄송하다. 입이 10개라도 할말이 없다."고 했다. "왜 하는거요? 누구 작품이요? 영담스님이 한거요, 원담스님이 한거요, 아니면 같이 한거요?" 하니까 "참회합니다."라고 했다. "기가 막힌다. 참회할 짓을 왜 해요? 압력 받은거 아니요? 강남 한복판에서 이명박 정권 비판하니까 정리하라는 것 아니냐?" 하니까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직영 귀신 씌었나."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직영귀신은 명자 세자와 주거를 밝혀달라.

진실을 알아야 한다. 11월 5일 취임식 있었다. 11월 20일경 김○○ 거사가 왔다. 스님 몇일전에 자승 원장하고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하고 같이 한 적이 있다. 11월 13일 프라자호텔이었다. 그 자리에서 스님 얘기 나왔다. 안상수 의원이 앉자마자 현 정권 비판적인 봉은사 주지 그냥 두면 되겠느냐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는 국회문광위 고흥길 위원장도 같이 있었던 걸로 들었다. 네사람 있었다. 자승 원장 대답하기를 임기가 보장 되어 있어 어떻게 할 수 없다. 임기가 얼마 안남았다. 그리고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1억원 전달한 것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하는데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 막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자승 원장이 봉은사는 재정이 공개돼 있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준 것을 원장이 뭐라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직영 문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김○○ 거사가 비판을 하더라도 좀 맞춰서 하셔야 합니다 하고 온거다. 자승 원장과 같이 만나는 배석했던 사람이다. 그 얘기를 듣고 싱거운 사람들 하고는 무심하게 흘렸다. 총무원장이나 되는 사람이 여당 원내대표 만나 할말이 그리 없었나 생각했다.

직영문제, 누구와 소통해야 하나. 신도들하고 해야한다. 그런데 안상수 의원과 소통 한 게 그게 소통인가? 밀통이다. 화합인가?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화합인가? 이것은 야합이다. 밀통과 야합을 통해 종단에 분란을, 봉은사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여기에 대해 자승 원장은 해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근거없는 얘기가 될 지도 모른다. 맘이 변해서 말을 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진실은 이긴다고 판단하면서 이 얘기를 한 것이다.

안상수 의원에게 한마디 하겠다. 시정잡배도 이런 짓 안한다. 만약에 제 말이 근거없는 허황된 말로 판명된다면 내 발로 봉은사 걸어 나갈 것이다. 내 손으로 총무원에 가서 승적부에서 제 이름 지워버리겠다. 안상수 의원은 자승 원장과 밀통한 것에 책임 지고 정계은퇴해야 한다.

조계종의 현실이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 맘대로 못한다. 총무원장에게 분담금 1억 더 내겠다고 제안했다. 세금 더 내겠다고 한 것과 똑같다. 내 재임 걸려 있으니까 뒷돈 주느니 분담금으로 더 내겠다고 했다. 앞으로 저는 봉은사 재정 좋아지면 종단 발전 위해서 분담금 더 내고 싶다.

10.27법난 보상금을 1000억원 정도 요청한 걸로 알고 있다. 기념관 건립을 1안으로 조계사 성역화에 쓰고, 2안으로 봉은사 주차장 부지에 한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 하다가 원장 된 다음에 청와대로부터 나에 대해 압박 안들어오나 물었다. 자승 원장의 말에서 좌파 주지가 돈 많은 절에 앉아 있다는 그 얘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원장이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던 거냐. (안상수) 그 녀석 먹던 물컵이라도 끼얹지.

얼마전 안상수 의원이 성폭력이 좌파 교육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다. 김길태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 교육 받았다. 좌파가 뭔가. 맘에 안들면 좌파인가. 박정희는 이후락을 평양 보내 7.4공동성명을 냈다. 남과 북이 화합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하고 합의한 것이다. 박정희가 좌파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다. 박근혜도 좌파냐?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평양을 방문했다. 좌파인가? 현정은 현대 회장이 금강산사업을 하고 있다. 현정은도 좌파인가?

이제 이 지긋지긋한 좌파 논쟁은 그만 두어야 할 때다. 종교의 입장에서 남북이 전쟁없이 평화통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류하기 위해 조계종 대표로 북한에 여러차례 다녀왔다. 잘 달래서 성질나쁜 동생 못된 짓 못하게 말리면서 공존하고 민족적 비극 막아야 되지 않으냐. 억지소리 하고 경우 안맞고 그런 일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 절단을 내고 굶겨죽여야 하나? 그건 아니다. 이런 것이 좌파인가?

안상수는 아무데나 좌파 갔다 붙이면 되는줄 아나보다. 아마도 자기 부인이 밥을 못해도 좌파 부인이라고 했을 것이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좌파 자식이라고 할 것이다. 지나가다가 개가 짖어도 좌파 개라고 할 것이다. 이 민족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안상수 대표는 정치 손 떼고 뒤로 물러나기를 권한다.

직영문제는 엄청난 반발 무릅쓰고 직영한 원인이 여당의 원내대표 부탁 아니면 협박, 지령을 받은 자승 원장이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이다. 직영사찰 구체적인 프로그램 어떻게 되나. 사전에도 준비가 없었고, 사후에도 준비가 없다. 총무원은 법정스님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말없이 대응 입장이라고 한다.

3월 12일, 종회에서 봉은사 직영 결정할 때 안건이 저 밑에 있었다. 법정스님 입적 소식 듣고 위에 있는 안건 다 없애고 직영건을 올려 목탁을 두들겼다. 다른 안건 없애면서 왜 봉은사 직영만 목탁을 쳤는가 나는 묻고 싶다.

종회의원들에게 묻겠다. 의장과 의원 누구하나 만나면 다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금요일 종회의장이 찾아왔다. "이제는 잘 얘기해서 시끄럽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 직영되더다도 주지 계속 하고." 했다. 나는 주지 환장한 사람 아니다. 신도들이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걸망메고 가겠다.

봉은사에서 폭력사태는 원하지 않는다. 88년에 주지한 스님이 나는 조직폭력배 천명 동원해 들어갔는데 돈 한푼 안들이고 들어간 명진이가 왜 이러느냐 이런 소리 한다. 이게 종단 현실이다.

한국불교 바꾸겠다는 원력으로 살고 있다. 신도님들도 잘 알 것이다. 지금 거칠게 말 안할라고 애를 쓴다.

도선사와 봉은사가 (직영지정) 같이 올라갔다. 도선사는 빠졌다. 왜 빠졌나. 설명도 없이 강남북 포교벨트 이어서 종단발전하겠다는게 원담스님의 공식 언급이다. 처음엔 교육분담금 올린다고 하다가 포교벨트 연결하겠다고 한다. 글쎄. 어떻게 만들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안을 내놔야 한다. 어떤 설명도 없이 대안도 없이 직영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에 합리적인 방법과 신도들과 소통하고 합의하고 원만한 방법을 갖고 직영한다면 모르지만, 이유없이 직영한다면 그것도 역시 제발로 총무원에 가서 제 법명 승적부에서 지우겠다. 40년 중노릇 걸고 단호하게 막겠다.

내가 폭력으로 들어오면 목숨걸겠다고 했는데, 폭력으로 들어오면은 쏙 빼고 내가 주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을 한 인터넷 언론은 도배를 했다.

제가 주지 자리에 연연한다고 생각하느냐. 마음 비웠는데 승적부에 있고 없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기느냐. 봉은사 주지 있고 없고를 생각할 거라고 보느냐. 총무원과 종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리합당하고 논리 있는 안이 나와서 직영한다면 수용하겠다. 신도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뜻과 상관없이 직영 한다면 저는 승려를 포기하겠다.

종단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불교 바뀌어야 한다. (신도 발언) 봉은사가 조계종에서 나가면 안되느냐.

저는 이러한 정치세력과의 야합속에서 이뤄진 직영문제는 확실하게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너무 정치적인 발언 많이 한다고 한다.

정치라는 것이 행위를 통해서 내가 이익을 보면 정치적일 수 있다. 거대한 권력앞에 굴하지 않고 옳은 소리 하는 사람 있어야 한다. 저한테 무슨 이익 있겠나. 정권에 굽신굽신하고 한국불교가 그렇게 살았다. 청와대서 부르면 무릎이 깨져라 달려가 밥한끼 먹고.

노무현 정권때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제의를 받았다. 한마디로 거절했다. 왜냐. 부처님 제자니까. 정치적이었다면 받았을 것이다. 가난한 국회의원한테 밥은 몇번 샀다. 내가 왜 정치적이냐. 안상수는 시정잡배와 같은 머리속에 좌파라는 낱말 밖에 모르는 무식한 국회의원이다. 이런 사람하고 만나서 밀통과 야합을 하는 사람이 정치승이지, 내가 왜 정치승이냐.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의 구절을 법정스님이 인용한 것에 박쥐승, 머리깍은 거사, 가사입은 도둑이 있는데, 앞으로는 밀통승, 야합중이라는 꾸지람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한국사회가 도덕적인가. 서로 믿고 신뢰하고 형성된 사회인가. 경제만 좋아지고 먹고사는 것만 좋아지면 좋은 세상인가. 이제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봐야할 때가 됐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 약속과 신의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람, 남의 논문 표절하고도 끄덕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냐.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 없이 그저 돈만 안다. 여당대표와 자승 원장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음주에 얘기하기로 하자.

*출처: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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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고려대 정경대학에 붙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양(24)의 '자퇴 선언 대자보'가 학생들과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군요.

출처 : http://productionschool.org/board/54524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이 글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찬성측의 의견은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자기 소신의 삶을 살 때 이뤄질 수 있다', '건승을 빈다', '마음 한쪽에 느끼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용감하게 말해 주었다',  '중요한 건 그가 우리에게 던진 문제의식이자 메시지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다', '많은 학생들이 경쟁중심 사회 전반의 문제에 고민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제 이 같은 현실을 우리가 나서서 변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쏟아졌네요.  

반대측 의견은 '지금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아름다운 대학생들이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전 학교 다니는게 즐겁고 행복해서 참 다행이네요', ‘일기장이 아닌 대자보에 공개한 이유가 뭐냐?’, '대학에 남아 확실한 꿈을 향해 노력하는 내가 쓸모있는 상품으로의 간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운동권이나 정치권 커리어 쌓기 위한 쇼 아닌가?'라는 의견도 쏟아졌네요.

출처 :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01&newsid...


김예슬양의 글을 읽는 동안, 제 청춘의 힘들었던 시절이 새삼 떠오르더군요.

저는 김예슬양과 30여년의 차이가 나는 197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저 역시 '청운의 꿈'을 품고 가족의 기대를 온 몸에 받으며 '명문대'에 입학했다가 다른 길을 선택했기에 수많은 밤을 잠 못이루며 뒤척였을 예슬양의 고뇌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대학을 거부할만한 '용기'가 없어 낙제를 면할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을 하긴 했지만 전공을 '배반'한 채 '취업이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연극의 길을 떠났고, 2년 간 직장 생활을 한 뒤로는 직장생활마저도 '거부'한 채 연극쟁이로 '적자인생'을 살며 '부모님께 죄송'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대에 대학생들이 겪었던 고뇌는 '88만원 세대'의 고뇌와는 차이가 납니다. 그 무렵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했던 유신독재에 대한 반대 시위로 학교가 휴교와 폐업을 거듭하고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제적을 당하거나 퇴교를 당하거나 감옥에 갔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판과 저항에 참여하거나 취업을 통해 현실세계에 참여했고,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환멸을 느낀 학생들 중 스스로 자퇴를 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예슬양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큰배움터'로서의 "대학大學"은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과 고뇌를 가슴에 담은 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대학을 거부한 치열한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예슬양과 동기뻘이 되는 대학 3학년의 딸과 후배뻘이 되는 대학 1학년의 아들을 가진 부모로서 걱정이 밀려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군요. 

'만약 나의 딸이나 아들이 그런 결단을 내린다면 나는 찬성하고 축하해 줄 것인가.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류할 것인가?'

두 질문 사이에서 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 딸이나 아들이 학교를 그만 두고도 자신의 미래를 펼쳐 나갈 계획과 재능을 충분히 가졌다고 믿는다면 찬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일시적 분노와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젊음의 성급함으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겠죠. 

전 예슬양의 조리정연하고 날카롭고 대담한 글을 볼 때, 성급함이나 무모함으로 충동적인 '대학 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녀는 '기업의 하청업자'가 된 대학의 좁은 우리를 벗어나 더욱 큰 인생 경영을 위한 '비상의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떠나는 예술양의 앞길에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고려대학교'라는 명문대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대학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한, 만만치 않은 현실과의 외로운 싸움을 각오해야 할 듯 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운동권 관련 행보라든가 자퇴서에 대한 진정성을 꼬집는 네티즌들의 글은 앞으로 지속될 그녀의 행보에 더욱 아픈 가시가 될 듯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거부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는 단단한 다짐을 볼 때, 예슬양은 어떠한 가시밭길이라도 헤치고 나갈 강한 열정과 투지를 가진 인재로 보입니다. 

부디 예술양의 '탈주'와 '저항'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취업을 위한 자격증이 없어도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경영할 수 있다는 비전을 성공적으로 가꾸어 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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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3.1절, 촉촉한 봄비만큼이나 상큼한 소식이 있군요.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의 CNN뉴스 광고판에 독도관련 영상광고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3113335

낱말맞추기
형식으로 '하와이는 미국땅, 시칠리아는 이탈리아땅, 발리는 인도네시아땅,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차례차례 찾아간 후, 동해(East Sea)가 표기된 한국과 일본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독도는 한국땅', '이것들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한 후 '아름다운 섬 독도를 방문하세요!'라고 맺고 있습니다.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3/01/3639694.html?cloc=olink|article|default

이번 광고는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가 기획 제작하고, 비용은 가수 김장훈씨가 전액 후원했다고 합니다.  


타임스퀘어는 뉴욕 맨해튼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삼성·LG·현대자동차가 1년 내내 기업광고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 광장에서 기업이 아닌 국가 이미지 광고가 방영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면서 아쉬웠던 건 처음에 이 광고를 제안 받은 기업들이 난색을 표해서 김장훈씨가 전액 후원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부천사' 김장훈씨는 '독도의 수호천사'이기도 할만큼 독도 문제에 아낌없이 돈과 열정을 쏟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일을 성사시킨 서경덕 교수와 김장훈씨의 노력에는 아낌없는 찬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김장훈씨와 뉴욕타임즈 독도 광고. 이미지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

그러나 한편으로 비감한 생각이 몰려 오는 건 왜일까요?

그야말로 국가의 영토 분쟁과 관련된 홍보를 정부도 아니고 기업도 아닌 개인들이 이토록 힘들고 외롭게 이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의 감정을 자극하면 기업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것이니 기업들이 선뜻 후원하지 못하리라는 건 이해가 갑니다. 또 일본 정부를 자극하지 않고 외교적으로 풀어 가야 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의 지자체나 기업이나 정부가 가끔씩 우리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면서까지 끈질지게 독도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비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너무도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영토 분쟁은 국제 사회에 대한 홍보와 외교적인 설득이 체계적이고 치밀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데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 대한 우리의 전략이나 노력이나 예산 투입은 너무도 빈약한 실정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prkorea.com/news1/ind...%3D17r02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3.1절을 기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대일 관련 문제들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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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백두산 여행을 갔을 때 연변에 사는 친구로부터 '호랑이 연고(Tiger Balm)'를 선물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산은 가짜가 많다는 말을 듣고 믿음이 가지 않아 쓰지 않다가 손이 삐어 아프길래 발라봤더니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더군요


저는 처음에 그 연고를 호랑이 기름이나 호랑이 뼈로 만드는 줄 알고 멸종 위기의 호랑이를 생각하며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호랑이 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군요. 

'장뇌(樟腦, camphor)' '박하유(薄荷油, peppermint oil)' 등이 주원료로 쓰이는데 자세한 성분은 1급 비밀이라 알 수가 없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비롯해 세계 6개국에서 생산되고 7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중국여행 선물 목록 1위라고 하는 그
연고는 약효보다 '호랑이 연고'라는 이름과 '호랑이 그림' 그려진 상표 덕에 성공을 거둔 제품인 듯 합니다. 똑같은 제품을 '장뇌 연고'나 '박하유'라고 이름 지었더라면 그토록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동남아시아 민족들은 유난히 호랑이를 신성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속담이나 민담이나 민화나 문학작품 등에는 호랑이가 무수히 등장하며 호랑이와 관련된 민속도 엄청 많습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_blog/tagAr...59D%25B4

정초에는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거나 부적에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출처 : http://www.designdb.com/zine/200...4_12.asp 

조정에서는 정초에 쑥으로 만든 범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무관의 관복에 용맹의 상징으로 호랑이 흉배를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출처 :
http://k.daum.net/qna/view.html%...%3D3BVmr

선비들도 필통이나 베개 등에 즐겨 호랑이를 새겨넣었고, 기가 약한 사람에게 호랑이 뼈를 갈아 먹이는 민간요법도 전해 오고, 자식이 크게 출세하라고 산모의 방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출처 :
http://dwban22.egloos.com/4981438

그런가 하면 호랑이의 가죽과 수염도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어서 호신물로 차고 다녔고, 여인들의 장신구나 장식품에도 호랑이를 새겨넣기도 했습니다. 장가갈 때 새 신랑은 주머니에 호랑이 발톱을 달거나 허리에 찼습니다. 호랑이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 준다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출처 :
http://www.shopofkorea.com/shop_...%3D11441

또 돌아가신 분을 위해 무덤 주위에까지 호랑이 돌비석을 세워 영혼의 수호를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D7084711

그런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88 서울 올림픽 때는 '호돌이' '호순이'가 마스코트로 등장해서 대한민국의 상징 동물로 인기를 톡톡히 누렸지요. 

출처 :
http://kimearth.egloos.com/tag/%...0/page/1

올 초에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가 2010년도 신제품으로 '12지신 콜렉션'을 출시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D3954950 

그 중 특히 '두 눈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18K 아기호랑이 목걸이' 인기 폭발이라는군요.

출처 :
http://blog.joins.com/liberum/11287609
 
이 제품을 디자인한 사람이 피카소의 딸인 '팔로마 피카소'라는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그들은 이 제품을 위하여 동양의 12지신에 대한 음양오행의 철학과 민속과 자료들을 철저히 연구했다는군요. 물론 동양 고객들의 취향을 고려한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경인년 '백호(白虎)'의 해입니다.
 
동양의 신화에 나오는
청룡·백호·주작·현무의 '4신(四神)' 중에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은 호랑이가 유일하고, 그 중에서도 백호는  특히 신령스러운 영물로 여겨집니다.

<4신도(四神圖)> 중 백호. 출처 : http://coreai84.egloos.com/7578170

그러나 우리의 산천을 누비며 표효하던 '백호' '백두산호랑이'는 이 땅에서 사라진지 오래됐습니다. 우리는 이제 사진속에서나 영상속에서나 동물원에서 말고는 그리운 호랑이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마음속에서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상징하는 신성한 영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호랑이마저 남들의 상술로 이용되어 정기를 잃기 전에 우리도 서둘러 호랑이를 우리의 삶속에서 우렁차게 표효할 수 있도록 '부활'시켜야겠습니다.

그와 함께 '자(子:쥐), 축(丑:소), 인(寅:호랑이),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 오(午:말), 미(未:양), 신(申: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의 오묘한 '12지' '음양오행'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하고 콘텐츠화하여 세계적 상품으로 재창조하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니 12지신들이 총출동해서 모든 분들에게 복을 선사하는군요.

서은애 작 <복(福)-12지신도> 출처 :
http://besunnyblog.tistory.com/114

백호의 우렁찬 표효와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흥!

출처 : http://gigglehd.com/zbxe/%3Fmid%...D3495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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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있는 나무

로키산맥 해발 3천미터 높이의 수목한계선 지대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묘한 형상의 나무가 자랍니다.
 
그 곳은 생명을 위협하는 칼바람이 워낙 매섭게 불기 때문에 나무들이 곱게 자랄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낮게 몸을 굽히며 자라다보니 무릎 꿇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명품 바이올린이 된다고 합니다. 

일년 사시사철 바람과 찬서리를 맞으며 자연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나무만큼 풍부한 울림과 아름다운 음향을 내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지요.
 

발칸의 장미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비누는 '발칸 산맥의 장미'로 만든 비누라고 합니다.

맑고 차가운 공기를 먹고 자라는 발칸 산맥의 장미는 어느 지대에서 자라는 장미보다 향기가 진하고 깊은데, 그 장미 중에서도 반드시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딴 장미잎으로 만들어야 가장 향기로운 비누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

수도 없이 자신의 몸에 부딪쳐오는 폭풍과 눈서리에 굽어지고 뒤틀어진 나무, 남들이 다 곤하게 자는 시간에 홀로 깨어 향기를 풍기는 장미........ 
 
그 나무에게 가장 아름다운 울림을 주고, 그 장미에게 가장 진한 향기를 준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시련'이며 '고통'입니다. 

시련은 인생에 향기를 줍니다. 고통은 인생을 윤기있게 하고 생동감 넘치게 하며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 줍니다.
 
삶의 혹독한 시련에 떨고 있는 사람, 고통에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람, 세상의 희망을 모두 잃고 절망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모두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 '발칸의 장미' 담겨 있는 비밀스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불경의 <보왕삼매론>에 그 비밀을 삶의 지혜로 풀어 낸 귀절이 있군요.   
 
보왕 삼매론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貪慾 )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 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장애속에서 해탈을 얻으라>하셨느니라.

4. 수행하는 데 마(魔)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하셨느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하셨느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하셨느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園林)을 삼으라>하셨느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 베푸는 것을 헌신 버리듯 하라>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겨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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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군요.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찰스 슐츠의 만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찰리, 너도 알다시피 인생이란 유람선 갑판 위의 휴대용 접이의자 같은 거야.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의자를 놓지.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온 길을 볼 수 있게 의자의 방향을 돌리기도 해.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의자를 놓기도 한다고.

여러분은 어떤 방향을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까? 과거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도 있고, 현재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과거나 현재를 바라보며 살던 사람도 새해가 시작되는 이 무렵에는 누구나 한동안 미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새해의 목표를 세우고, 수첩을 꺼내어 새해의 계획과 할 일을 적고, 의욕과 열정에 차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201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과거의 바다 위로 날려버리고, 밝아오는 새해의 태양과 함께 미래의 희망과 축복을 바라보며 힘차게 뜁시다.

올해는 경인년 호랑이해, 그 중에서도 상서로운 영물이라는 백호의 해입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던 <잡아함경 용왕게연> 중에 호랑이가 나오는 부분을
12월 4일 전주세계소리축제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에 출연하신 아름다운 선녀들과 함께 낭송하면서 호랑이처럼 용맹한 기상으로 한 해를 시작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며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용맹하라

새해 아침, 뜨거운 태양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새해를 엽시다.

출처 : http://cafe.chosun.com/club.menu.album.print.sc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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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기축년이 저물어 갑니다. 

출처 : http://: pleasedontstare.wordpress.com/.../

올해는 저에게 '블로그스피어'라는 새로운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으로 행복한 한 해가 되었습니다.

겨우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문서작성이나 하고 메일이나 교환하던 수준의 컴맹이었던 제가 파워블로거인 '탐진강'님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5월 3일 첫 블로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블로그과의 인연이 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웃블로거들과의 소통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열심히 쓰다보니 자격도 부족한 사람이 블로그 관련 강연도 하게 되고, 연말이 되면서 '티스토리 우수 블로거'로 선정되기도 하고, '다음 우수 블로거 심사위원장' 맡아서 심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블로그 세계에 한 발 다가 선 느낌이었습니다만, 초보 블로거치고는 참으로 과분한 격려가 쏟아진 듯 합니다.
 
제가 처음 '블로깅의 즐거움' 대한 글을 썼을 때 몇몇 분이 '블로깅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한동안은 그 말이 잘 들어오지 않더니 이제 그 말의 깊은 뜻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블로깅에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 희망과 좌절....등등 인생의 쓴맛과 단맛과 신맛과 짠맛과 매운맛이 다 들어 있더군요. 

때로는 무척 고독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정신과 육체의 에너지를 심하게 소진시키기도 하는 이 블로깅을 꾸준히 하는 힘은 오로지 블로깅에 대한 '믿음' '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블로거들에게 밤늦게 글을 쓰게 하고, 사진을 찍게 하고, 하루종일 무엇을 쓸지 머리를 쉬지 못하게 만들고, 열정으로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이 있더군요.
 
바로 이웃 블로거들과의 소통, 격려, 감사, 사랑, 우정....그것들이 있기에 수많은 블로거들이 꾸준히 블로깅을 하고 계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블로거 이웃들이 보내주신 관심과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저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새해 행복과 희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다음 우수 블로거 심사위원장의 인사말' 중 블로그스피어에 대한 저의 소망을 담은 부분을 올해의 마지막 인사로 대신합니다.  


(중략)

.......그런 토론을 통해 저는 블로그스피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묵직한 무게감이 많은 블로거가 주목을 받다가, 전문성이 돋보이는 블로거가 주목을 받는 흐름에서 좀 더 삶에 밀착되고 대중적인 블로거가 주목 받는 흐름을 보이더군요.

이런 흐름을 타고 미래에는 또 어떤 블로거들이 주목을 받게 될지 흥미로운 숙제가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제 바램은 미래에는 대중성이 떨어지는 분야들도 좀 더 주목 받는 블로그스피어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각 분야에서 인기가 있거나 대중성이 높은 종목에 지나치게 많은 블로거가 분포해 있고,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적은 분야는 블로거의 수도 적고 내용도 아직 풍성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조회수나 인기도에서 뒤질 수 밖에 없는 문화분야와 대중성이 높은 연예분야를 한 카테고리에 넣고 단순 비교하는 것에 대해 분리를 고려해 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콘텐츠로서의 중요성에 비해 비상업적이고 비대중적이라는 이유로 기존의 매체에서 소외된 창작, 학술, 예술, 전통과 같은 분야에 좀 더 많은 블로거들이 참여하고 이들의 블로그가 사랑 받고 높이 평가 받는 흐름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블로그스피어가 얼마나 풍성해지겠습니까?

당선되신 모든 블로거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이들 한 분 한 분은 정말 소중한 콘텐츠를 가꾸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당선되지 못하신 블로거들, 또 후보에 오르지 못하셨더라도 성실하게 자신의 블로그를 가꾸어 가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사랑과 격려를 보냅니다.

블로거 여러분과 Daum View의 운영진 여러분, 2010년에는 더욱 발전하시고 하시는 일들, 꿈꾸시는 모든 일들에 희망과 축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출처 : http:// tourtalker.joins.com/Myfriday/qna_view.asp?Q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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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친구가 메일로 좋은 글들을 보내주는데, 
얼마전에 보내 준 이 글이 제 가슴을 오랫동안 울리는군요.
친구도 출처를 모르고 어디선가 퍼 온 글이라고 합니다.
실화같기도 하고 꾸며낸 이야기 같기도 한데,
너무도 절절한 부부사랑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혼자 읽고 버리기 너무 아까워 올립니다. 
혹 출처를 아는 분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미안해, 사랑해, 이 말을 못했습니다.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빔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 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 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 집 가, 나는 우리 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더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어디 코스모스 많이 피어 있는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 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옮긴 글. 작자 미상-

출처 : http://kr.blog.yahoo.com/kim19600216/1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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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 리스트 발표가 몰고 온 후폭풍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 효창공원 백범 묘소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그동안에도 숱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보고회마저 예정됐던 숙명아트센터의 대관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급히 장소를 옮겨서 치룰만큼 힘들게 얻어진 성과입니다.

이어서 11월 27일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친일인사 명단을 공개하고 해산했습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

이에 대해 한국사연구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등 6개 역사학술단체는 "(해방 후 만들어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빈민특위)' 와해된 지 60년 만에 이뤄졌지만, 식민 지배를 경험한 민족으로서 일제의 잔재와 협력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정리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즉각 사설을 통해 부정적인 평가와 함께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조선일보> 11월 28일 자 사설의 내용을 간추려 봅니다. 

....유진오 백낙준 김활란 고황경 이숙종 등 교육계 인사, 김동인 김기창 서정주 유치진 노기남 등 문화·종교계 인사, 방응모 김성수 등 언론계 인사, 백선엽 신현준 등 군 원로들을 추가로 포함시켰다....

그들 이마에 친일 부역자의 도장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광복 후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그리고 백낙준은 고려대학과 연세대학 총장으로 두 대학을 세계의 대학으로 키우는 기틀을 만들었고,

김활란 고황경은 이화여대와 서울여대의 오늘을 일궜으며,

백선엽은 북한의 6·25 침략으로 낙동강변까지 밀려났던 전세를 다부동 전투의 선두에 서서 뒤엎어 대한민국을 지켜냈고,

신현준은 해병대를 이끌어 북한군을 몰아내고 9·28 서울 수복 후 중앙청을 탈환했으며,

소설가 김동인, 화가 김기창, 시인 서정주, 극작가 유치진 등은 모두 20세기 한국 예술의 밑거름을 뿌렸고,

김성수와 방응모는 자신의 전 인생과 전 재산을 민족언론, 민족학교의 건립에 쏟아부었다...



<동아일보> 11월 28일 자 사설 내용도 간추려 봅니다.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세우고 키운 전 부통령 김성수,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응모,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총장을 각각 지낸 유진오 백낙준 김활란,
초대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이응준,
6·25전쟁 때 공훈을 세웠던 군 장성 백선엽,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주교 노기남,
시인 서정주, 화가 김기창 등이 포함됐다....

김성수 선생은 일제강점기 교육 언론 기업 부문에서 큰 공적을 세운 인물이라는 폭넓은 평가를 받아왔다. 고려대 중앙고 등 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인재를 양성했으며 경성방직이라는 민족기업을 육성했다. 규명위는 인촌의 이런 공로에는 눈을 감았다...

그가 창간한 동아일보는 1940년 강제 폐간 때까지 20년 동안 정간 4회, 발매금지 2000회 이상, 신문 압수 89회의 고난을 겪으며 민족의 표현기관 역할을 했고 어느 의미에선 국가를 대신했다....

이 세상을 떠나 자기변호를 할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친일 너울을 들씌운 행위야말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인촌기념회도 ‘인촌은 민족지도자였지 친일인사가 아니었다’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인촌기념회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법적 대응도 추진한다고 합니다. 

또 대한민국건국단체총연합회도 “광기 어린 편견과 무지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과 건국 원훈들을 친일파로 단정한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성명서를 발표하며, “이상한 사관으로 건국 주역을 매도한 데 대해 앞으로 대대적인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나라의 국회를 대표하는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제는 정말 과거를 갖고 물고 늘어지는 행태는 그만둬야 한다. 과거와의 전쟁은 끝을 내고 세계적 전쟁 속에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이 아쉽다”며 부정적인 느낌이 나는 발언을 했습니다.

출처 : http://blog.ohmynews.com/.../archive/200911?page=7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친일인명 리스트 중 논란이 되는 인사의 대부분은 '건국의 주역'이었으며 교육, 언론, 문화예술, 종교, 군, 법조계  등 우리 사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의 '지도력'에 힘입어 오늘에 이른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들의 강력한 리더쉽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들의 후손뿐만 아니라 동료, 후배, 제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업적을 이어 받아 각계각층에서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게 거짓없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사설의 내용을 꼼꼼히 보십시요. 우리 사회 어느 한 곳 그들의 '지도력'에서 자유로운 곳이 있을까요?   

지난 정부의 '역사 바로잡기' 노력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시작한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친일인명 리스트를 책으로 발간하고, 공개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위입니다. 그 일을 주도한 주역들에게 앞으로 어떤 위해가 가해질 지 걱정되는군요.  

2010년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내년 광복절엔 한국과 일본의 100여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시민실천대회'가 예정돼 있다고 합니다. 법정 공방이 시작되면 관련 단체들의 대립도 격화되겠군요.

내년 한국 사회는 친일 문제로 또다시 거센 격랑에 휩싸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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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일 저녁 9시 경, 술에 취한 박모(31세)씨는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옆에 서 있는 검은 얼굴의 외국인을 보자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는 "아랍사람들은 더럽다", "냄새난다" 등의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외국인이 박씨를 고소했고, 이 사건을 심리한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 2부는 박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피고인이 특정 종교나 국적의 외국인을 혐오하는듯한 발언을 해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 점이 인정된다.

박씨가 '형법 상 모욕죄'를 범했다는 판결의 요지입니다. 국내 사법 사상 외국인이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기소를 한 것도 처음이고, 유죄판결을 내린 것도 처음있는 일입니다. 

보노짓 후세인씨. 출처 : http:// 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

소송을 한 보노짓 후세인(28세)씨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을 왜 번거롭게 법원까지 가지고 갔을까요? 기사에 따르면 아랍이 아닌 인도에서 온 그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그 비슷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다고 합니다.

지하철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곁에 앉기 꺼려했고, 버스에서 깜빡 졸아 종점까지 갔을 때 버스기사가 발로 차서 그를 깨운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사회의 인종차별적 풍토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법의 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성공회대학교의 연구교수입니다. 인도 뉴델리의 델리 대학에서 현대사를 전공한 그는 인도에서는 성공한 엘리트이며, 국내에서는 어엿한 교수입니다. 그런데도 외모만으로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에 억울한 일을 수도 없이 당한 겁니다. 

이 판결이 전례가 되어 앞으로는 외국인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면 유죄판결을 받게 될 공산이 큽니다. 이번은 벌금형이었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구속을 당할 수도 있는 범죄행위가 된 겁니다.

외국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태도는 정말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온 백인들에게 그런 모욕적인 언행을 한 사례는 거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지나친 친절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는 많이 봤습니다.

실제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친절도에 대해 서구인들은 70% 이상이 친절하다고 답한 반면, 아시아인들은 40% 대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올까요?

저는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보다도, 그보다 더한 '외모차별'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봅니다. 

하얀 피부와 검은 피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너무도 극심한 편견과 차별에 가득 차 있습니다. 노르스름한 피부의 황인종인 우리는 피부가 새하얗고 늘씬하게 쭉쭉 뻗은 백인들의 외모를 선망하며 자랍니다. 

모든 남자와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서구식 미남미녀의 기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이 방송 츨연자 입에서 서슴없이 나올만큼 광법위하게 '외모지상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키가 크고, 아름답고, 몸매가 쭉 빠진 사람을 선호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인간의 본성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하거나 부당한 차별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풍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 현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게 개그프로그램들입니다. 

웃음을 위해 외모를 활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위험 수위까지 도달했다고 보여집니다. 뚱뚱한 여자, 마른 남자, 키 작은 남자, 여성스러운 남자들이 조롱과 비웃음의 소재로 너무도 흔하게 사용됩니다.

출처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0...

KBS 2TV <개그콘서트>'그냥 내비둬'에서는 뚱뚱한 여성과 근육질 남성이 데이트하는 장면을 보던 두 남자가 뚱뚱한 여자를 향해 "얼굴에 악성 코드가 걸렸어", "침 뱉고 싶겠지".... 와 같은 말을 합니다.

'달인'에서는 개그맨과 진행자 사이에 "네 다리는 족발", "네가 먹는 건 돼지 사료" 같은 식의 농담을 대수롭지 않게 주고 받습니다. '봉숭아학당'에선 유난히 마른 몸매를 지닌 개그맨을 자주 시체나 해골, 난민에 비유합니다.

지난 9월에 종영한 MBC TV의 <개그야> 역시 외모 비하로 끊임없이 억지웃음을 유발하다 외면당했습니다. SBS TV의 <웃찾사>에서는 지난 8월에 "못생긴 여자는 없애야 한다"는 대사를 방송해서 문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측은 "지난 3~4월 지상파 방송 3사 코미디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외모 비하가 지나쳐 '의견 제시' 형식으로 행정 지도를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며 "방송에서 성형수술을 해야만 여자가 예뻐질 수 있다는 식으로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건 큰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방송에서는 비하 받는 당사자가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런 연기를 통해 돈을 벌고 인기를 얻으니 당사자끼리는 문제될 게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말이나 표현이 공중파를 타고 끊임없이 시청자의 안방에 파고 들기 때문에, 시청자들 또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게 된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외모에 대해 번지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은 '큰 문제'가 아니라 '매우 심각한 문제'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모욕과 차별에 대한 분노를 참아야만 합니다.

이걸 '그냥 내비둬'야 할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듣고 상대방을 고소하면 어떤 판결이 나올까요?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피고인이 특정 신체나 외모의 소유자를 혐오하는듯한 발언을 해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 점이 인정된다.

이런 판결문으로 벌금형이나 구속형이 언도될 때가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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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올해 행사는 신종플루 때문에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정성을 기울였던 개막공연을 잘 다듬어서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란 제목으로 공연합니다.

12월 4일(금) 7시에 전주에 있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막을 올리는데, 10명을 초청할까 합니다.

송년 이벤트가 되는 셈이네요. 

모시기 어려운 최고의 명인명창들이 대거 출연하는 무대라 다시 만나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제가 작시로 참여도 했고, 잠깐 무대에서 축문을 읽기도 한답니다. 

11월 30일(월) 밤 10시까지 신청된 분 중 선착순으로 10명을 선정해서 초대장을 메일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한 분이 동반자 포함해서 2장을 신청해도 좋습니다. 그날 오시는 분들께는 블로그 기자단 이름으로 6시 30분에 무대에서 진행되는 명인명창 사진 촬영에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꼭 '메일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서 비밀댓글이나 방명록으로 신청해 주세요.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한국 최고의 명인명창과 함께하는 따뜻한 국악무대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김명곤)가 2009년 한 해를 보내며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를 무대에 올립니다.

역사적 헌정의 무대

오늘 12월 4일 저녁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리는 이번 무대는 국내 최초이자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역사적인 헌정무대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인명창이 한 무대에 오르는 공연입니다. ‘광대’라는 두 글자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넓고도 큰마음으로 기쁨과 슬픔, 외로움 같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을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악기로, 때로는 춤으로 풀어내는 창조자’들이 바로 광대들이기 때문입니다.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이러한 ‘광대의 노래’를 주제로, 천하를 호령하는 광대들의 삶과 우리 전통예술의 숭고한 역사를 돌아보는 창작공연 무대입니다.

창과, 민요, 합창, 기악, 무용이 어우러지는 무대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국악의 전 장르가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국악공연 무대로, 대서사의 시작(詩作)에 웅장한 국악관현악과 서양합창, 판소리합창 그리고 판소리 천하명창과 젊은 명창이 한 무대에 오르는 초대형 작품입니다.

이번 무대에는 판소리 대서사합창 ‘광대의 노래’가 올려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판소리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가지고, 동리 신재효의 <광대가>를 모티브로 하여 신광대의 의미를 새로 묻습니다. 김명곤 위원장과 김태균이 작시를, 김대성이 작곡을 맡았으며, 국내최고의 국악관현악 지휘자 김재영과 박병도 연출가가 만나 본격적인 국악관현악과 합창앙상블을 연출합니다. 여기에 국립창극단 단원인 남상일 명창이 아니리 광대로 나와 맛과 흥을 더합니다.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용과 축문낭송으로 이어질 열림의식에 이어 서장 ‘오라, 새생명을 부활하는 신광대의 터로’는 이번 공연의 의미를 전하는 첫 합창곡으로 광대 즉 전통예술인들의 예술혼을 통해 온 세상에 빛과 생명이 깃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제1장 ‘광대가’는 동리 신재효 선생의 <광대가>의 광대내력을 합창과 함께 송순섭, 조상현, 김일구 명창의 소리로 표현합니다. 광대의 덕목인 너름새와 득음, 사설을 노래하며, 어렵고도 어려운 광대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제2장 ‘오늘 광대, 광대 놀음’은 오랜 세월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온 전통예술인 별들의 무대로, 악기는 악기로 춤은 춤으로 소리는 소리로 풍성한 한판이 벌어집니다.

이생강(대금), 박대성(아쟁), 김무길(거문고), 김영재(해금), 이종대(피리), 임경주(가야금), 이호용(징), 허봉수(장고) 등 명인들의 시나위 연주와 명무 이매방의 승무, 김백봉의 부채춤이 이어집니다. 이어, 백성들의 삶을 노래하는 신명나는 삼도민요가 뒤를 잇습니다. 경기민요에는 명창 이춘희, 이호연, 이선영, 서도민요에는 배뱅이굿 명창 이은관, 남도민요에는 명창 박송희, 조순애, 성우향의 구성진 소리가 흥겨운 무대를 장식합니다. 또한, 백인영(가야금) 명인을 중심으로 한 수성반주단이 민요의 멋을 돋웁니다.

제3장 ‘신광대가’는 신광대의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풍류와 인간, 생명과 민족을 위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깨우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광대를 상징하는 4인의 소리꾼이 각각 ‘풍류’, ‘생명’, ‘인간’, ‘민족’을 주제로 노래하며, 웅장한 합창으로 새로운 생명과 세상을 동트게하는 신광대판을 외칩니다.

종장 ‘광대여 일어나 천하를 움직여라’는 대단원의 문을 닫는 막으로 ‘새로운 광대판을 열어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의 숨결 몰아 거침없는 사자후로 민족의 혼을 깨워 세계를 호령하고 온누리 온세상 새소리로 누비어라’는 메시지를 통해, 광대의 소리가 온 세상에 퍼져 새 세상 열어가기를 기원하는 웅장한 무대로 꾸며집니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광대들이 한 자리에

이번 공연은 진정한 광대의 조건과 그들의 소리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무대인만큼,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인명창들이 한 무대에 오릅니다.

제1장 광대가의 독창부분에는 송순섭 명창, 조상현 명창, 김일구 명창이 차례로 무대에 오릅니다.

가왕 송흥록을 시조로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박봉술로 이어지는 송판 적벽가의 계승자 송순섭 명창은 드물게 동편제 소리를 고수해온 명창으로 남성미 물씬 풍기는 장쾌하고 시원한 소리가 일품입니다.

조상현 명창은 보성제 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의 완벽하게 조화된 연기와 타고난 성량으로,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기품있는 소리로 평가받는 보성제 소리의 진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김일구 명창은 남성 판소리 특유의 호방한 기개를 보여주면서도 미려한 성음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소리를 보여줍니다.

‘신광대가’에서는 염경애, 김경호, 이주은, 왕기철의 차세대 명창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릅니다.

시나위합주에 출연하는 명인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금에 이생강 명인, 아쟁에 박대성 명인, 거문고에 김무길 명인, 해금에 김영재 명인, 피리에 이종대 명인, 가야금에 임경주 명인, 징에 이호용 명인, 장고에 허봉수 명인 등 한분한분 모시기도 힘든 당대 최고의 기악명인들이 한 무대에 올라 시나위합주를 들려줍니다.

한국무용의 거장 이매방 명인은 힘 있고 선이 굵어 시원스런 느낌을 주는 승무를, 최승희 선생의 수제자로 잘 알려진 김백봉 명인은 그 자신이 창작해 이제는 한국의 대표춤이 된 부채춤을 보여줍니다.

흥겨운 경기민요와 서도민요, 남도민요도 무대에 오릅니다. 경기민요에는 이춘희, 이호연, 이선영 명창이, 서도민요에는 이은관 명창이, 남도민요에는 박송희, 조순애, 성우향 명창이 출연합니다. 백인영(가야금) 명인을 중심으로 한 수성반주단이 민요의 멋을 돋웁니다.

공연의 맥을 잡아줄 관현악과 합창에는 경기도립국악단과 전북도립창극단, 익산시립합창단, 대구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 전북도립무용단이 함께 웅장한 무대를 연출합니다.

김명곤 조직위원장은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신 여러분들과 우리국악을 사랑하시는 애호가 여러분들을 위해 마련한 무대로, 판소리와 민요, 합창, 기악, 무용 등 우리 국악의 여러 장르가 어우러져 천하를 호령하는 광대들의 삶과 우리전통예술의 숭고한 역사를 돌아보는 창작공연무대다”며, “오늘 무대로 우리 국악과 전주세계소리축제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을 달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송년소리나눔, 광대의 노래’는 무료공연으로,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063-232-8398)로 전화하셔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sorifestival.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공연은 7시부터입니다. 공연 시작 전 6시 30분에는 그날 공연하시는 명인명창 선생님들과 초청되시는 전국의 명인명창 선생님들 단체사진을 촬영할 예정입니다. 전국의 내로라는 명인명창 선생님들, 약 60여 분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입니다. 단체사진 촬영은 기자님들께만 개방되는 행사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사진 촬영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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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옷차림이나 외모가꾸는 데에 둔감한 편입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도 가끔 주민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니 동네 슈퍼를 갈 때에도 옷차림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더군요. 한 번은 집 근처 카페에 후배가 찾아 왔는데, 급히 나가느라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갔습니다. 한참 얘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 후배가 조심스럽게 귀뜸을 하더군요.

"젊은애들이 많이 오는 카페에 맨발에 슬리퍼로 오시면 쫒겨날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에 어느 스님한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옛날 인도에서 수행이 깊은 스님 한 분이 대갓집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성대한 잔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안에 들어가려고 하자 문지기가 스님의 옷차림이 남루한 것을 보고 못들어가게 했습니다.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좋은 옷 한 벌을 빌려 입고 다시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스님을 안으로 모셨습니다.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잔치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상 위의 음식들을 먹고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음식을 먹지 않고 자신의 옷에 음식을 계속 문질러댔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음식을 옷에다 문지르십니까?"
"하하하...내가 누더기 옷을 입고 이곳을 찾았을 때는 문지기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들어올 수가 없었다오. 좋은 옷을 빌려 입고 나서야 이곳에 들어 올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이 옷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하하하..."


사람의 내면보다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는 천년 전의 인도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수많은 고전이나 경전이나 철학서는 외모보다 인간의 내면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있지요. 외모는
번지르르 하지만 내면은 형편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빛 좋은 개살구'가 '진짜 살구'보다 더 좋은 값으로 팔린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리저널 이코노미스트' 2005년 4월호에 <외모와 임금간의 상관관계>에 관한 보고서가 실렸는데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은 평범한 얼굴을 가진 사람에 비해 임금이 9% 적었고, 반대로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5% 많은 봉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비만으로 분류된 여성은 평균 체중의 여성보다 17%나 임금이 적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출처 : http://strawvote.tistory.com/40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도 이 보고서의 내용과 비슷한 현상이 생겨나고 있군요. 

채용전문기업 '코리아 리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70.1%가 ‘외모도 직무에 따라 탄력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답했고, ‘외모도 지원자 평가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23.6%였습니다. 반면에 ‘반드시 능력으로만 평가해야 한다’는 답변은 6.3%에 불과했습니다.

'고운세상 네트워크 마케팅연구소'가 20-30대 여성 네티즌 111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본인보다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겪어본 일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80%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고, ‘외모가 봉급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64.9%에 달했습니다. 

출처 : http://rinyart.egloos.com/tag/외모/page/1

'빛 좋은 개살구' 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거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이 우세를 차지한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잘 입은 스님이 시주도 잘 받는다’ 는 속담이 생길 법도 한 세태입니다. 

외모가 연애나 결혼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취업이나 승진 같은 사회 생활까지 좌우한다는 믿음 때문에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처럼 내면에 중점을 두고 외모를 무시하는 것도 시대에 맞지 않고, 극단적인 외모지상주의도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고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네티즌들을 떠들썩하게 만든 '루저의 난'은 극단적 외모지상주의를 반영하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고난 외모나 키로 인해 소외나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루저(실패자)'라는 말이 잠재된 불안과 분노를 터뜨리는 뇌관의 역할을 한 셈이지요. '루저' 발언이 이토록 큰 파문을 일으킨 걸 보면 '외모가 경쟁력'이란 말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깊이 스며 들어왔나 봅니다.

성형수술, 다이어트, 패션, 화장, 면접술, 화술. 처세술.....

가혹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수록 치열해지는 현대판 '외모 전쟁'.

과연 외모가 능력이나 실력이나 내면의 충실함보다 더 우선할까요?
제가 만약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갔다가 카페에서 쫒겨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누더기 옷 때문에 문지기에게 쫒겨났던 스님이 오늘에 살아계시다면 그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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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여대생들의 발언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군요. 

여대생들의 연애관, 사랑관, 결혼관을 알아 본다는 취지로 만든  ‘미녀, 여대생을 만나다’라는  이 특집에서 ‘키 작은 남자와 사귈 수 있나?’라는 질문에 이모 여대생이 "키작은 남자는 루저(loser : 패배자)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양은 또 ‘조건이 맞으면 사랑 없이도 결혼할 수 있나?’는 질문에 "월세 방에서 라면 먹으면서 장동건과 앉아있는 것보다는 좋은 집에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는게 낫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한 여대생은 "아무리 모든 조건을 갖췄어도 키 작으면 오만정이 떨어진다."고 했고, 최모양은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한다"고 했습니다.

이 발언들이 편집 없이 그대로 방영되자 엄청난 파장이 일었습니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쏟아내는 비난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습니다. 그 비난은 특히 '루저' 발언을 한 이양에게 집중되어 그녀의 인적사항은 물론이고 방송 출연 경력과 그녀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까지 낱낱이 공개됐고, 그녀가 재학 중인 대학의 교직원과 학생들까지 덩달아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루저대란'이 일어난 겁니다.

게다가  네티즌들이 만들어 낸 패러디물 ‘루저의 난’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톰 크루즈는 ‘톰크 루저’로, 키 작은 루이 14세는 '루저 14세'로, 영화 <반지 원정대>는 ‘루저 원정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패러디의 주인공들은 모두 키가 180cm 이하의 유명 인사들로 심지어 이건희 전 회장, 박정희 전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 축구선수 웨인 루니 등도 포함됐습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7&aid=0000232558

논란이 일자 이양은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제작진이 준 대본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파문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키작은 남자를 '실패자'라고 하든 데이트할 때 돈 안내는 남자를 '무능력자'라고 하든 얼마든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돈많고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토록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젊은 남성이 자신은 돈많은 여자나 키큰 여자를 좋아하고, 가슴 사이즈나 허리 사이즈가 얼마가 안되는 여자는 '루저'라고 한다고 해서 비난 받을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공개적인 지면이나 수많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 발설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녀들의 수다>라는 제목에서 보듯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프로그램에서 쏟아낸 그녀의 발언은 경제력과 외모에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있는 수많은 남성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도 이양의 기준에 따르면 루저에 속하는 남자인지라 웃으며 넘기기엔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더군요. 

젊은 여성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제 주위 많은 '루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부분 냉소적이거나, 이양을 모욕하거나, 요즘 젊은 여성들의 행태에 대해 분개하는 발언들을 쏟아내더군요.

저는 그런 발언이 이양 개인의 특수한 남자 취향에서 나온 거라면 개의치 않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대부분의 여대생들이나 미혼 여성들이 상대 남자의 외모나 경제력에 대해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준은 현재 한국남성들의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극소수 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 기준에 미달되는 수많은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녀의 사랑이나 결혼관에서 서로의 애정이나 장래성이나 미래에 대한 꿈보다,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타고난 외모나 부모로부터 지원 받는 경제력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게 널리 퍼진다면 장래 그들이 만들어 갈 가정이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가치관에 의해 어지럽게 흔들릴 위험한 징조로 보입니다.   

그 발언으로 촉발된 뭇 남성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양의 사생활과 개인 신상까지 파헤치는 인신공격은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줘 회복 불가능 상태를 만들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게 마땅합니다.  이양은 지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가벼운 발언이 이처럼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니 그녀 개인에 대한 공격은 이쯤에서 멈추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사실, 이 사태에 대해 제일 먼저 책임을 져야 할 곳은 KBS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KBS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시청자의 건강한 대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유모씨(30)가 "키 작은 남자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1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청구한 데 이어, 10여 건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가 접수되고 있습니다.

또 저신장 장애인들의 모임인 `한국작은키모임`은 성명서를 내고 KBS 측에 공식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이들은 "저신장 장애인들의 삶과 명예를 실추시키고, 인간 존엄의 근간을 우롱한 KBS방송국을 규탄하며, 자라나는 저신장 장애 아동들은 물론, 지금도 재활 자립을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는 저신장 장애인들과 전 국민 앞에 공개 사과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미수다` 제작진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미녀들의 수다 제작진 입장>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미수다'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한 체험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11월 9일(월) 방송분에서는 외국인 여성과 한국 여대생간의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를 알아보고자 토론 형식으로 프로그램 녹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표현과 관련해 MC를 비롯해서 출연자, 제작진 모두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길 의도는 전혀 없었고, 출연자들의 솔직한 의견을 들어봄으로써 요즘 신세대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부분만을 떼어놓고 볼 때,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부 시청자에게는 오해와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점에 대해서 그분들께 유감과 함께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미수다'는 통상 녹화 이전에 모든 출연자들과 이메일 및 전화 인터뷰, 또는 직접 면담을 통해 토론할 주제에 대한 출연자의 의견을 듣고 정리해서 대본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본은 토론 진행상 참고 자료로 쓰일뿐, 강요되는 것은 아닙니다.

방송후 특정 출연 학생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심지어는 학생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까지 인터넷에 노출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게합니다. 특정 학생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미수다'에 출연하여 솔직하게 토론에 참여한 그 누구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향후 '미수다' 제작진은 외국인을 통해서 우리의 자화상을 엿보고 세계인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고자 했던 기획의도를 살리는데 더욱 세심하고 사려깊은 자세로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사과문을 보니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출연자에게 책임전가하는 인상을 주고 있군요. 물론 통상적으로 출연자의 의견을 듣고 정리한 대본은 진행상 참고 자료로 쓰일 뿐, 그대로 낭독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대본에 적힌대로 말했다는 이양의 발언에 대한 제작진의 반박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설령 이양이 평소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고 하더라도, 그 발언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책임은 전적으로 제작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편집권을 사용하기는커녕, 전체적으로 그런 발언들을 이용해 좀더 자극적인 효과를 내도록 여대생 출연진들을 부추긴 혐의가 짙어 보입니다.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비난에 대해 방패막이용 사과문을 띄워 놓고 진지한 반성은 보여주지 않는 행태에 대해
논란이 더욱 거세어지자 KBS는 13일 밤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교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분노는 아직까지 수그러들지 않는군요.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이 사태의 제1차 책임은 '캠퍼스 퀸'이라는 젊은 여대생들을 모아 놓고 자극적인 대화로 시청률을 노렸던 미수다의 제작진이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미수다뿐만 아니라 그런 류의 방송프로그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부도덕한 표현들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 제작진도 출연자들도 시청자들도 점점 무감각해져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러다 어느 순간 어느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문제가 터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 사태에서 보듯 도덕적 기준도, 공공성도, 사회적 책임감도 사라져버린 우리나라 방송의 비참한 현주소를 일깨우고 있는 것은 건강한 양식을 가진 시청자들입니다. 오로지 시청자들의 건강한 양식과 대응만이 방송의 미래를 지켜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칭찬받는 여학생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대 1학년 학생인 황모양입니다. 프로그램 내내 한 번도 발언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대부분의 여대생들이 명품 가방의 필요성을 강변하자 남희석씨가 갑자기 황양에게 명품가방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당황한 황양은 그런 것 없고 명품가방을 원하지도 않으며, 워낙 책이 많으니까 백팩에도 다 안들어가서 손에 들고다닌다고 대답했습니다.
 

출처 : http://v.daum.net/link/4733138

그런데 이 학생이 학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목: 황혜진입니다.

우선 죄송합니다.
제가
저희 학교 범생이 이미지를 고착화 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우선 저는 이 방송이 캠퍼스 퀸들의
특집인 걸 모르고 방송에 나갔어요. 설정으로 나가게 된 거는 아니예요.

제 친구가 원래 나올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제가 대신 나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출연섭외 당일 라섹수술을 해서 사전 인터뷰에서 제외가 되었어요.
출연당일 얼굴을 보신 작가님들도 많이 당황하셨을 거예요.

더 예쁘고 말 잘하시는 언니들도 많은데
신입생의 자격으로 그런 곳에 나가서
학교 망신이나 시키지 않을까 찍고나서 걱정 많이 했구요.

스누라이프에서 묻힐 수 있다는 룸메이트 말에
싸이까지 닫고 지냈어요.

작가님들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을 위주로 대사를 만들어서 말하는 순서를
주시는데 저는 해당사항이 별로 없어서
말을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멍때리고 있는 제가 이상했는지 남희석MC님이 말을 거셨는데
그부분이 하필 명품가방 부분이었어요.

대사에 없는 부분이라 그냥 말은 했지만

제가 했던 말때문에
기분나쁘신 분들도 있다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이름에 먹칠될까 더 조바심냈던 것은

일주일간 잠도 제대로 못잤던 저와 어머니셨어요.

부디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아직 어려서 방송에 모르고 그랬구나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체로 일반인들의 서울대생에 대한 인식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건방지다, 잘난 체 한다, 이기적이다, 똑똑하지만 밥맛 없다.....특히 남성들은 공부 잘하고 똑똑한 서울대 여학생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의 사과문은 그런 인식을 말끔히 씻어주는군요.

일주일 간 잠도 못 잔채 썼다는 글과 사진으로 본 황양의 인상은 성실하고, 속 깊게 남을 배려하고,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총명한 느낌이었습니다.

황양이 방송에 나가서 서울대의 범생이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사과문까지 쓴 걸 보면, 그 방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착실한 범생이였던 황양은 말할 기회도 없이 주눅 들고 소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아마 녹화가 끝나고나서 황양은 방송에 나간 걸 후회하고, 방송이 나가면 바보같은 답변으로 학교망신시켰다고 친구나 선배들이 자신을 질책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번 황양의 발언과 글을 칭찬한 분들이 많은 걸 보면, 이번 일로 오히려 범생이들의 미덕이 한껏 돋보인 듯합니다. 

요즘 여대생들이 돈많고 잘생기고 키큰 남자만 좋아하고, 허영에 가득하고, 사치스럽고,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 외모나 몸매 가꾸기에만 혈안이 된 게 아니냐는 일반인들의 우려 속에서 그렇지 않은 여대생들도 많다는 걸 알게 해 준 소중한 발언과 글이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여대생들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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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자에  '막걸리 열풍, 세계인을 취하게 할 수 있을까? http://dreamnet21.tistory.com/161라는 글에서 일본에서 불고 있는 막걸리 열풍에 대해 썼습니다. 그런데 요즘 막걸리에 관한 뉴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군요.    
먼저 막걸리 열풍에 찬물을 끼얹은 소식을 전합니다. 

일본의 주류업체인 '청풍'이 지난해 11월 쯤 일본 특허청에 `포천 막걸리`, `포천 일동 막걸리`, `일동 막걸리` 를 상표 등록했다는 뉴스가 있군요.  앞으로
포천 막걸리 업체의 일본 수출이 큰 타격을 받게 생겼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지리적표시제(GI)`에 대한 우리 정부와 업체의 인식 부족 때문입니다. 지리적표시제란 지역 특산품의 원산지를 표시하는 제도로 지역명을 상표권처럼 보호해 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입니다.

국내법상 '지명(地名)'이 들어간 경우에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기 때문에 '포천' 막걸리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지리적표시제에 등록하면, 포천 막걸리도 상표권과 동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지리적표시제가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국제 거래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통주 업체들은 인식 부족으로 등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등록을 한 것은 '진도 홍주'와 '고창 복분자주' 뿐입니다. '안동 소주', '한산 소곡주', '경기 문배주', '전주 이강주' 등 대부분의 전통주가 지리적표시제에 등록이 안 돼 있다는 점에서 포천 막걸리와 비슷한 사례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같은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죠. 정부와 업체 모두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ontentsView.d...

찬물을 끼얹는 소식과 함께 반가운 소식도 있군요.

프랑스 와인인 '보졸레 누보'에 맞서 햅쌀 막걸리인 '막걸리 누보'가 나왔는데, 프랑스 와인의 인기를 넘어서고 있다는군요.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12&aid=0002049468
 

보졸레 누보는 'nouveau(새로운)'란 이름 그대로 그 해에 난 햇포도로 만든 프랑스산 와인으로,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올해는 19일-에  전 세계에서 동시 판매를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와인 매니아들이 이 날을 기다려 포도주를 삽니다. 특히 우리나라 판매량이 엄청나서 프랑스 와인 업체들은 한국 시장을 아주 중요한 판촉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판촉행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햅쌀로 만든 막걸리 누보를 보졸레 누보 출시 시기에 맞춰 선보인 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4&aid=0000106295

롯데·현대 등 주요 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 간의 막걸리 누보 예약 주문 판매량이 보졸레 누보 판매량보다 2배~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격은 일반 막걸리에 비해 2배가량 비싼데도 입맛이 까다로운 20대 여성들이 특히 많이 구입한다는군요. 

막걸리 누보는 수입 쌀이나 밀을 원료로 한 일반 막걸리와는 달리 국산쌀이나 유기농 햅쌀을 원료로 사용했습니다. 또 제조에 사용한 쌀과 생산자에 대한 이력을 자세히 표시해서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용기도 페트병이 아니라 고급스런 유리병을 사용했고, 포장의 디자인도 훨씬 고급화했습니다.

계속 새로운 전략으로 더욱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면 좋겠네요.

또 반가운 소식이 있군요.

지난해부터 일본 대형 마트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는 한 막걸리 업체가 일본서 첫째로 꼽히는 백화점인 다카시마야 전 점포에서 쌀 막걸리와 배 막걸리를 판매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술들의 판매량까지 넘어서면 좋겠네요. 

게다가 막걸리를 주인공으로 한 ‘막걸리 엑스포’까지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는데, 막걸리를 주제로 박람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군요.

출처 : http://pyodogi.com/110073628162

애기만 들어도 취하는 즐거운 소식들이군요. 이 새로운 막걸리 열풍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주류법을 개정하고,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고, 재료를 고급화하고 차별화해 맛과 품질이 좋아진 결과입니다.

점점 거세어지는 막걸리 열풍, 과연 세계인을 취하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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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인생의 경구를 담은 메일을 보내는 친지들이 몇 분 계시는데, 그 중에는 감동적인 내용의 글도 종종 눈에 띕니다. 아래의 글은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던 '공항에서 생긴 일'이란 글인데, 묵혀두기엔 너무 아까운 글이라 소개합니다. 아쉬운 점은 이 글의 출처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혹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공항에서 생긴 일

어느 여인이 곧 이륙할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 한 권과 과자 한 봉지를 구입한 후, 역시 탑승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앉아 있는 탁자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여인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팔을 뻗어 탁자 한 가운데 있는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하나 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곁눈질로 보니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자신의 과자를 하나 집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렇게 뻔뻔한 남자가 있다니!"
 
그녀는 계속 책을 읽는 척하면서 과자를 또 하나 집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도 과자를 하나 더 집었습니다. 여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의 과자에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스럽게 손을 댄단 말인가!"

이런 상황은 과자가 마지막 하나 남을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여인이 그 마지막 과자를 집기 전에 남자는 과자를 가져다가 반으로 쪼개더니 한 쪽을 여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여인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어쩜 이런 남자가 다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남자는 탑승시간이 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여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는 여자에게 '즐거운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는 돌아섰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여인은 남자를 쫓아가서 왜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를 먹었는지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가 탈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여인은 화를 누르고 뒤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읽고 있던 책을 넣기 위해 가방을 여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에 손을 댄 사람은 옆자리 남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뻔뻔하다고 욕하고 어이없어한 행동을 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이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둘 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과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한 두 사람의 마음가짐은 너무 달랐습니다.

여인은 자기 것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먹는 상대가 뻔뻔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겉으로는 안그런 척 했지만 여인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그 마음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반면에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인사까지 건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여인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여러분이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떤 마음을 가졌을 까요?

이 질문과 관련해서 체로키 인디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쳤다. 꽃과 나무, 강물, 바위,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모든 사물을 손자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 했다. 어느 날 손자는 늑대 한 마리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할아버지 뒤로 얼른 숨었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얘야, 늑대도 대자연이 키우는 귀한 생명이란다. 결코 너를 함부로 해치지 않을테니 걱정 말아라."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마음 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단다. 한 마리는 사랑과 평화의 늑대이고, 또 한 마리는 욕심과 미움의 늑대란다.그래서 두 마리 늑대는 늘 싸움을 하지."

그러자 어린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둘이 싸우면 어느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네가 날마다 먹이를 주고 키우는 늑대가 이길 것이다."

잠시 침묵한 뒤에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손자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자연이 모든 생명을 선하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키우듯이 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도 그렇게 키워야 한단다."                

『인디언 설화』중에서


여러분은 마음속에 어떤 늑대를 키우고 계시나요?

출처 : http://bluejazz54.egloos.com/tag/착한늑대/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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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집 근처를 산책하는 중이었습니다.

아파트 옆길을 걸어가는데 멀리 빌딩 사이로 무성한 은행나무 가지가 보였습니다. 근처에 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기는 했지만, 그 나무는 유난히 높고 무성해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주변에 비석과 안내석 등으로 정성스레 가꾸어 놓은 '보호수'더군요.


나이 560년, 높이 20미터,  나무 둘레 4.84미터의 우람한 은행나무의 자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600년 된 은행나무가 집 근처에 있었는데도 3년 가까이 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무심함을 자책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1440년 무렵에 지금의 '대치(大峙)'인 '한티고개'에 심어졌던 나무인 모양입니다.



큰 고개란 뜻으로 보아 이 마을이 상당히 높은 언덕배기에 자리잡았던 듯 합니다.



지금은 사방이 주택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그때는 숲으로 둘러싸인 높은 고갯마루였겠지요.

멀리 동쪽으로는 한강의 지류인 '탄천(炭川)'이 흐르고, 점점이 하얀 학이 나르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을 겁니다.

탄천의 풍경. 출처 : http://www.bsymca.org/bsymca/bbs/board.php?bo_table=...

한티 고개의 북쪽에 펼쳐진 '압구정(鴨鷗亭 : 현재의 압구정동)'에서는 오리와 갈매기가 날아 오르고, '청담(淸潭' : 현재의 청담동)에서는 맑은 호숫가 정자에서 시인묵객들이 시를 읊었겠지요. 아름다운 여인의 시조와 가야금 한 곡조가 곁들어지기도 했겠네요.

압구정의 풍경을 그린 산수화. 출처 : http:// blog.daum.net/_blog/photoList.do?blogid=08RVN

남쪽의 은마 아파트 너머로 펼쳐진 '개포나루'(開浦 : 현재의 개포동)에서는 고깃배들이 오고 갔겠지요. 고기 잡는 어부들의 구성진 뱃노래도 들려 오지 않았을까요?

개포동 쪽에서 바라 본 아파트촌. 출처 : http://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715927...

서쪽에 펼쳐진 '도곡(道谷 : 현재의 도곡동)에서는 깊은 골짜기에 은거하는 도사들이 약초를 캤을 터이구요.

아파트 골짜기로 변한 도곡동. 출처 :  http://ask.nate.com/qna/view.html?n=6313941

지금과 같은 가을날엔 낙엽이 빨갛게 불타 오르고, 은행나무의 노란잎사귀도 환상적인 정취를  더해 주었겠지요. 괴나리 봇짐을 등에 메고 고갯길을 오르던 나그네는 고갯마루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닦기도 했을 터구요.


비록 지금은 주택과 아파트에 둘러싸여 옹색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나무가 지닌 600여년의 숨결은 저를 한동안 상상의 세계에 빠지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나무의 숨결을 쐬며 잠시 황홀한 시간여행을 즐겼습니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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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0월 8일, 네팔인 노동자 미누(미노드 목탄, 38세) 씨가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체포됐습니다. 

한국에 온지 18년째인 미누씨는 식당, 봉제소, 미싱소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11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추방 정책에 항의하는 성공회성당 농성단에 참여했습니다. 그가 리더로 활동한 ‘스탑크랙다운’ 밴드는 이때 결성됐고, 이후 그들은 메이데이, 반전 집회, 한-미FTA 반대 집회, 촛불 집회 등에서 공연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이후 미누 씨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문화 강사’로 여러 토론회와 강연회에 참여했습니다. 또 이주노동자 방송에서 이주노동자 삶의 현장을 취재하고 영상을 만들어서 알리는 활동을 해왔고, ‘이주노동자 영화제’를 직접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이주노동자 미누씨. 출처 : 반군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estevanold/150071715303

현재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되어 강제출국의 위기에 놓여있는 그를 위해 가계 각층에서 구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조합은 10월 9일 성명을 통해 “이주노동자 문화 활동가 미누를 석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등의 회원 30여명은 미누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진보신당은 성명을 통해 “지금 당장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집중단속을 중지하고, 수감된 미누에 대한 강제퇴거 절차 진행을 중지할 것과 조속한 석방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가수 강산에는 23일 인권콘서트 프로젝트 '휴먼'(Human)의 콘서트에서 미누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이주노동자들은 공포에 떱니다. 

법무부가 10월 12일부터 12월까지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주로 이 무렵에 집중단속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2008년부터 올해 5월까지 약 4만200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추방됐습니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단속된 이주노동자들의 절반 가량이 ‘사복 차림의 단속반’에게 무작정 잡혀갔고, 약 40%는 단속반이 신분증 제시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앰네스티 인권보고서에서도 단속 과정에서의 폭력, 인권 침해 문제가 지적되는 등 국내 미등록이주노동자 인권 문제는 갈수록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최근 수 년간 집중 단속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서만 입국과 취업이 가능한 상황인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직장 변경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임금 체불이나 직장 내 폭력 등 불가피한 사유로 직장을 옮겼을 경우,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이주노동자, 곧 불법체류자의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불법체류자는 단속시에 자국으로 이송되는게 맞습니다. 모두가 지키는 법에 예외가 생긴다면,  법으로서 기능을 상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둔 채 수많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것이 옳은 법인가에 대한 질문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 http://www.kggoodnews.co.kr/sub_view.html?page=3...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며 살아 온 외국인들이 그 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게 현실이라면 한국말을 할 줄 알고 이미 한국 사회에 적응된 외국인들을 내보내는 것처럼 비생산적인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고용허가제를 넘어서 이민의 문제와 연결해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민제도 없이 노동력만을 위해 외국인들을 잠시 고용해서 쓰고 내보내는 것은, 노동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해 온 일본에서도 작년에 새로운 방안이 제시되었습니다. 2008년 6월, 당시의 집권당인 자민당은 1000만명의 이민자를 수입하는 이민정책을 실시할 것과 ‘이민청’을 만들 것을 총리에게 제안했습니다. 일본의 경제를 이끄는 기업인들의 단체인 '경단련'은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정주이민'을 적극 수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새로 집권한 민주당은 외국인들에게 선거권을 주는 제도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그동안 외국에 나가서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 고국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이민을 가서 새로운 삶을 가꾸어 왔습니다.

일본, 중국, 소련,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그러한 과정에서 차별과 불법체류와 강제추방의 문제로 겪어 온 슬픔과 아픔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제일교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오랜 차별에 대해 분노하고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 왔습니다.

그랬던 우리 사회가 낡은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외국인에 대한 차별 정책을 거리낌없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에 대해 그토록 폐쇄적이고 차별적 정책을 써 온 일본이 이토록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책으로 변하고 있는 이때 말입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은 고향과 가족을 뒤로 한 채, 멀고 먼 한국 땅에서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를 그저 '돈 벌러 온 못 사는 나라 사람' 쯤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속에서 그들은 슬픔과 아픔을 간직한 채 버림 받고 있으며, 그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농촌에 가면 한국 남성들과 결혼한 수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끊임없이 그들에 관한 가정폭력과 혼혈아 차별의 문제, 사기 결혼 등 부정적인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쓴 「도시와 창조계급」이란 책에 '용광로지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자는 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기술', '인재', '관용'을 꼽았는데, 그 중 '관용도'를 측정하기 위해서 용광로지수를 창안한 겁니다. 그는 미국 내 여러 도시들의 각종 통계를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도시의 경제 발전과 그 도시에 사는 외국인들의 숫자가 정비례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경제적, 문화적으로 발전한 도시일수록 외국인들에 대해 관용적이고 포용적이며, 그들의 문화를 잘 수용하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용광로지수'가 높다는 얘기입니다.

그 지수를 우리 사회에 도입한다면, 과연 우리 사회의 용광로지수는 몇 점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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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은 우리에게는 '국군의 날'이지만, 중국에게는 '건국 6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이날 우리의 국군의 날 행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졌습니다.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20만명이 참가하는 군사 열병식과, 군중 퍼레이드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경축행사와, 다양한 기념행사를 통해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한 모습을 세계 만방에 과시한 하루였습니다.
 



저는 예전에 중국 하면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흑묘백묘(黑猫白猫)'라는 2개의 단어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감출 도(韜), 빛 광(光), 기를 양(養), 그믐 회(晦). 빛을 감춰 외부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1980년대부터 개혁개방정책의 기조로 삼은 단어이지요. '흑묘백묘'(黑猫白猫)는 등소평이 택한 개방경제정책으로 고양이가 희건 검건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국민을 잘 살게 하면 뭐든지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제 '흑묘백묘'는 사라지고 '녹묘(綠猫 : 녹색고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려옵니다. 인민이 잘 살 수 있게만 해준다면 환경오염 업종이든 노동집약 업종이든 가리지 않던 중국이, 몇 년 전부터 깨끗하고 세련된 '녹색고양이'로 상징되는 첨단산업과 친환경산업만 받아주겠는 정책으로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요즘에 더 자주 들리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바로 ‘허셰'(和諧 : 조화)입니다. 올해 건국 60주년의 공식 구호이기도 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공연의 주제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예산의 투입과 치밀한 준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세계적 연출가인 장이머우와 1만 명이 넘는 출연자와 스태프들이 수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베이징올림픽 개막공연을 본 현장의 관객이나 전세계의 시청자들은 장엄하고 화려한 중국 문화의 진수에 감탄하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공연을 보는 내내 불편한 심정을 추스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장엄, 화려, 최첨단 영상으로 포장된 공연에서 국민통합을 통해 ‘대국으로 우뚝 서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수민족 복장을 입은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오성홍기’를 받쳐 들고 걸어가서 ‘인민해방군’에 건네주는 장면은 독립과 분열 행위를 그만두고 국민 모두의 운명을 국가에 맡기자는 중국 정부의 전체주의적 의지가 여과 없이 읽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사회 통합을 위해 중화민족주의를 고취하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불태우려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중화주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 정부가 택한 것은 신화, 역사, 공자 사상, 전통예술 등 문화입니다. 하상주 단대공정, 중화문명 탐원 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남공정, 동북공정 등의 대규모 국가적 프로젝트는 중화 민족주의의 정립을 위해 문화를 총동원하고 있는 사례들입니다.

그러나 경제개방 이후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실업자 양산, 부패로 인한 공직사회 불신, 지난해 발생한 티베트 유혈시위사태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유혈사태를 통해서 나타난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움직임, ‘주사기테러'에 대한 우루무치 한족들의 대규모 시위 등으로 ‘하나의 중국'과 ‘민족대단결'이라는 ‘허셰사회론'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신장위구르의 시위를 진압하는 중국군. (출처 : 한국경제 2009.7.17일자 기사)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과정에서 벌어졌던 중국인들의 서울 한복판에서의 폭력사태는 우리에게 큰 걱정을 안겨 주었지요.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도중 중국의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자에게 분노한 중국유학생들.

정하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주요 외신들도 중국의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기사를 보도했지요.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기 얼마 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중국의 민족주의는 불타고 있는 정도를 넘어 증오와 적의마저 품고 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영국의 유력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5월 3일자에는 표지에 '성난 중국(Angry China)'이라는 제목과 함께 붉은 용의 머리가 그려져 발간되었습니다.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 민족주의는 인터넷에서도 뜨겁게 불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네티즌들이 '우마오(五毛)'와 '왕터(網特)'로 나뉘어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우마오는 정부를 대변하는데, 글 한편을 올릴 때마다 5마오(약 한화 70원)를 받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반대로 왕터는 '인터넷 특무'라는 뜻으로 중국의 재야 운동권입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옹호하고 중국 정부를 비판합니다. 그런데 많은 중국의 네티즌들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우마오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하네요. 

베이징올림픽과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보듯 중국정부는 자국의 경제적 성과와 정치적 이념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중화문명의 찬란한 영광과 중화민족의 위대함을 알리려고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건국60주년 행사는 현대 중국의 정치적 이념을 구현한 거대한 선전물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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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국가가 주최하는 체육행사나 국가적 행사에서 문화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은 진정한 의미의 ‘조화’와 ‘어울림’과 ‘화합’의 지혜입니다.

문화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속에 모든 사람들을 통합시키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세계, 하나하나의 꿈’을 공존시키는 매개체로서 작용해야 합니다.

문화가 민족주의, 제국주의, 애국주의, 전체주의 세계관과 섞이게 될 때, 그 문화는 다른 민족의 정신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망가뜨리는 치명적인 독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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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난 월요일, 아내와 경상남도 함양에 갈 일이 생겨서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한참을 달리다가, 덕유산IC를 지나 '덕유산 휴게소'에서 잠깐 차를 멈췄습니다.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멋진 산자락이 펼쳐져 있더군요. 



화장실을 다녀 오는데, 아내가 부지런히 손짓을 하며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제가 얼마전까지 블로그 스킨에 사용했던 '카라'의 꽃잎과 비슷하게 생긴 꽃들이 커다란 화분에 담겨서 휴게소 앞을 장식하고 있더군요. 



안내푯말을 보니 '엔젤트럼펫(천사의 나팔)'이더군요.



브라질 원산지로 물과 비료만 주면 엄청 잘 자라고, 1년 사철 꽃이 피고, 해가 지면서부터 아침까지 향기가 풍기는 꽃이라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흰색, 노랑색, 분홍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휴게소 앞에 줄지어 늘어서 있길래 얼른 차에서 카메라를 가져와 찍었습니다.



화분 안에는 맨드라미나 여러 화초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고, 휴게소 옆으로 돌아드니  처음보는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나나도 있고, 하늘을 향해 솟아나듯이 자라고 있는 하늘고추도 있더군요.



그때 갑자기 아내가 "계란나무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영락없이 계란 모양의 열매가 달린 식물이 있었습니다.  푯말을 보니 '화초가지'라고 씌여 있는데, 안내문에는 '계란가지'라고 씌어 있어서 햇갈리더군요.



 "이게 화초가지야, 계란가지야?" 하고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옆 화분에서 뭔가를 만지작거리던 중년의 아저씨가 "둘 다 맞는데 계란가지라고 많이들 하지요." 하고 대꾸를 하더군요.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편한 와이셔츠를 입은 모습이 정원사나 휴게소 직원일 듯 싶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습니다.

"아니, 휴게소에 웬 화초들이 이렇게 많아요?"
"다 기른 거지요."
"이걸 누가 다 길러요?"
"화초 좋아하는 사람이 기르지요."
"그 사람이 누구예요?"
"저예요."
"야, 아저씨 정말 실력 좋으시다. 화초들이 정말 탐스럽고 윤기가 흐르네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고 좋아하십니다."
"소장님이 시키신 건가요?"
"제가 소장입니다."
"예?"

깜짝 놀란 우리는 소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무영 소장님은 휴게소를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발령을 받아 3년 전에 오셨는데, 화초 가꾸기를 너무도 좋아하다보니 발령 받은 해부터 화초들을 직접 가꾸었다고 합니다. 화초 사랑하는 마음이 널리 전파되기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 거랍니다.

그는 휴게소에 들른 손님들이 화초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커다란 보람이라고 합니다. 또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꽃을 사랑하는 직원들도 함께 가꾸기 시작했는데, 꽃을 가꾸면서 직원들의 근무 환경도 훨씬 좋아졌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업무이다보니 직원들의 마음이 날카로워지고 스트레스가 많아요. 그런데 꽃을 가꾸면서부터 점점 부드러워지더군요."

소장님은 내년에 선보일 여러 화초 돌볼 계획에 분주하시더군요. 휴게소 바깥 주변에는 사과나무나 배나무와 같은 과일나무를 많이 심었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멋진 말을 하시더군요.

"과일나무는 5년 뒤나 10년 뒤에 열매가 맺겠지요. 그때 되면 저는 여기 없을 거구요. 그래도 10년 뒤 20년 뒤에 이 휴게소에 찾아 오시는 손님들은 마음껏 사과도 따 드시고, 배도 따 드실 수 있지 않겠어요?"
 
이렇게 넉넉한 철학을 가지신 소장님은 손님들이 하늘고추나 계란가지를 한 두개씩 가지고 가는 것은 눈 감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초를 키우고 싶어서 꺽꽂이를 분양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접수만 하면, 매년 봄부터 가을 사이에  누구나 분양을 해준다고 합니다.

소장님과 헤어진 우리는 안내소에 들러 접수를 했습니다. 엔젤트럼펫과 계란가지 그리고 하늘고추의 분양을 신청했습니다. 때가 되면 안내소에서 우리에게 전화를 할 거라는군요. 소장님의 정성으로 보아 그 약속은 꼭 지켜질 것 같군요. 내년에 있을 분양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입니다. 



꽃가꾸는 소장님이 좀더 오래오래 계셔서 덕유산 휴게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속도로 휴게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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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쓰던 제 블로그 스킨은 카라 꽃잎 이미지를 주로 한 노란색의 스킨이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니 꽃잎 이미지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해서, 어제 새벽 내내 끙끙 대며 스킨을 바꿨습니다. 찬바람 솔솔 불어오는 서재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보니, 문득 '수파리'란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지킬 수(守), 깨뜨릴 파(破), 떠날 리(離).


주로 검도(劍道)나 무도(武道)를 하는 사람들이 쓰는 용어입니다. 원래는 불교 용어인데, 일본으로 건너가 무도 수행의 단계를 표현하는 말로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http://kdaq.empas.com/qna/view.html?n=6134236

‘수(守)’는 가르침을 지키는 단계. 

정해진 원칙과 기본을 충실히 몸에 익히는 단계를 말합니다. '정석'을 몸에 익히는 단계지요.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을 드러내지 않고, 스승에게 배운 대로 따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저의 블로그 스승이신 탐진강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티스토리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모델 중에서 골라 썼습니다. 그리고 제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스킨의 사용법과 정해진 원칙을 충실히 반복해서 익혔습니다.

‘파(破)’는 원칙과 기본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틀을 깨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단계. 

정석을 익힌 후에는 정석을 깨뜨리고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 나가야지요. 하지만 기본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개성만 발휘해보려 해도 안됩니다. 충실한 '수'의 기간을 거치며, '파'를 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번 스킨을 만들면서 스킨위자드를 활용해서 배경과 타이틀과 글자의 폭과 크기 등을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수정해 봤습니다. 실력 있는 분들은 아무 것도 아닌 초보적 시도이지만, 저에게는 무척 두렵고 흥분되고 재미있는 과정이었습니다.

수없이 지웠다 만들었다 해보는 동안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한 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색감이나 디자인, 글자체, 제목의 크기, 여러 악세서리의 배치 등에 대한 느낌들이 희미하게나마 제 가슴속에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티스토리가 제공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시도일 뿐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저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저의 기술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離)'는 모든 유파를 떠나 독창적인 자신의 기술을 창조해 나가는 단계.

따라서 '이(離)' 단계에서는자신의 개성을 창조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요구됩니다. 
장기적으로 보는 구조적 사고방식도 필요합니다. 그 사고방식이 철학으로까지 승화되어야 합니다.  

'이'를 스킨에 적용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스킨을 마음대로 창조해낼 수 있는 단계에 해당되겠지요. 요즘 저는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 들어갔을 때, 개성과 창의력이 담뿍 담긴 스킨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 블로그에서는 주인장의 색감이나 디자인의 취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삶의 향기가 풍겨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주인장의 철학과 인생관까지 보여지기도 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블로그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려면 멀고 먼 수련의 단계를 거쳐야 할 겁니다.



어디 블로그 스킨뿐이겠습니까?

개인의 자기개발에도, 예술가의 작품 창작에도, 기업의 경영에도, 사업의 마케팅에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수(守), 파(破), 리(離)'의 3단계를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원칙과 정석을 배우며 기본을 지키고, 그 후에 그 기본을 깨뜨려 한 단계 도약하며, 결국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

지킬 수(守), 깨뜨릴 파(破), 떠날 리(離).

우리 블로그 가족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지키고 깨뜨리고 떠나는 단계를 거쳐, 완성의 '도'에 이르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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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연기할 때 사용하는 기법 중에 ‘마법의 만일(Magic If)’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가 만일 햄릿이라면? 내가 만일 춘향이라면? 내가 만일 사랑했던 여자와 헤어진다면?’

이런 수많은 가상의 상황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인물의 내면세계를 탐구해 가는 과정이 연기의 핵심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마법의 만일’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대통령이라면? 만일 내가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다면? 만일 내가 새 차를 산다면?'

이 '만일의
마법'을 성공시키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열정'입니다. 앤서니 라빈스는 『무한능력』이란 책의 한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을 밤늦도록 안 재우고, 이른 아침 깨우는 것도 열정이다.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결핍을 느끼고, 이를 더 구하게 만드는 것도 열정이다.
열정은 인생에 힘과 진액, 그리고 의미를 준다.
운동선수, 예술가, 과학자, 사업가 중 그 누구도 불타는 열정없이는 성공해서 위대해 질 수 없다.


이 글을 블로거들을 위한 글로 바꿔봤습니다. 

블로거들을 밤늦도록 안 재우고, 이른 아침 깨우는 것도 열정이다.
블로거들이 인간관계에 결핍을 느끼고, 이를 더 구하게 만드는 것도 열정이다.
열정은 블로거들의 인생에 힘과 진액, 그리고 의미를 준다.
파워블로거, 프로블로거, 베스트블로거, 블로그마스터(블마 : 필자가 만든 신조어)가 되려는 블로거 그 누구도 불타는 열정 없이는 성공한 블로거, 위대한 블로거가 될 수 없다.


제가 블로그를 통해서 만난 수많은 블로거들은 모두 열정에 사로잡힌 분들이더군요. 열정 없이는 블로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분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전 그분들의 열정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블로그의 세계에 빠져 들고 있는 중입니다.

게임도 못하고, 채팅도 못하고, 사진 올리기도 못하던 제가 블로깅을 시작한지 어느덧 4달이 되어 가는군요. 전 그 분들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초보이지만, 제게도 '초보' 블로거’로서의 열정은 남못지 않답니다.

제가 전에 '블로깅의 즐거움'에 대해 쓴 글에 대해, 어떤 분이 언젠가는 '블로깅의 괴로움'도 알게 될 것이라고 충고를 하더군요.

언젠가 그 괴로움이 찾아와 블로깅을 쉬거나 포기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시간들은 저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행복을 주기 때문에 열정에 넘쳐 있습니다.

전 이 열정에 대해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설명하며 블로그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더군요.

쉽지 않은 꿈이지만 불꽃처럼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열정'의 에너지, 그 '마법'의 힘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에너지가 모아져서 우리 블로그스피어가 새롭게 도약하길 꿈꾸어 봅니다.

출처: http://min.kr/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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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는 제게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습니다. 

찌그러진 양철주전자를 들고 동네 가게에 가면, 바가지를 손에 쥔 주인아저씨가 가게 안마당에 묻어 놓은 커다란 막걸리 옹기독을 휘휘 저어 주전자에 담아줍니다.

주전자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들고 집에 오는 동안, 저는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막걸리를 몇모금씩 훔쳐마시곤 했습니다. 그 달작지근하고 시원한 막걸리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막걸리를 사랑하신 아버님의 영향으로, 저는 어렸을 때 술이라고 하면 소주 한 잔보다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술을 마시게 되면서부터 막걸리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소주나 맥주나 양주나 와인 등의 각종 주류를 섭렵하는 동안, 저의 주류 메뉴에서 막걸리나 동동주나 약주나 민속주는 특별한 경우에나 마시는 술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요즘 다시 막걸리의 맛에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막걸리를 마시면 트림이 나고 속이 거북하고 머리가 아픈 증상이 간혹 있었는데, 요즘 막걸리는 그런 증상이 전혀없이 시원하고 제 입맛을 바짝 당기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친구나 선후배들 사이에서 막걸리 예찬론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걸 보니, '막걸리 열풍'이 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음식점이나 술집에서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골프장이나 고급 한정식 집에서도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학가에 '막걸리 칵테일 주점'이 속속 들어서고, 유리병에 담긴 막걸리를 즐기는 20대 여성도 늘어나고 있고, 일본에선 한국산 막걸리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막걸리 판매나 수출도 계속 늘어나, 올 상반기에만 작년의 같은 기간보다 13% 늘어난 213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중 89%가 일본에서 팔리긴 했지만, 앞으로는 막걸리를 사가는 나라들도 늘어날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막걸리 열풍'이 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막걸리는 수천 년 동안 우리 국민들과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술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술 소비량의 80%를 차지하던 국민주였습니다. 그런데 60년대 중반에 쌀 대신 밀가루를 사용하게 되고, 카바이트를 넣어 강제로 숙성시킨 저질 막걸리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런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트림도 자주 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막걸리를 멀리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1965년 이후 25년 동안 막걸리의 원료로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하여, 품질이 날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쌀로 만들 수 있도록 규제가 풀리면서 막걸리는 차츰 본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막걸리에 대해 최근 들어 애호가들이 늘어난 원인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비싼 안주 없이 마실 수 있는 싸고 부담 없는 술이라는 점이 많이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 건강과 관련해서 막걸리가 가진 장점이 널리 알려지게 된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걸리에는 다양한 유산균과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들어있고, 생막걸리에는 살아있는 효모와 젖산균과 비타민까지 들어있습니다. 막걸리가 암과 간의 손상을 막고,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지게미'가 고혈압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또 도수가 낮기 때문에 과도한 알코올 섭취로 인한 피해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잇점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웰빙주로서 막걸리를 좋아하는 주당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어, 세계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처럼 불붙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막걸리처럼 쌀을 원료로 한 술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의 '사케'와 중국의 '황주'에 대한 품질관리 제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줍니다.

일본 청주인 사케는 품질표시기준법에 의해 60% 이하로 도정한 쌀을 사용하면 '음양주', 70% 이하로 도정한 쌀을 사용하면 '혼합청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특히 품질이 우수한 '원산지명칭 보호주'는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물의 사용은 물론이고, 첨가물이나 효소제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쌀로 빚은 발효주인 중국의 황주 중에서도 소흥 지방에서 빚어내는 '소흥주(紹興酒)'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술로, 사실상 중국을 대표하는 술입니다.

소흥주는 찹쌀을 보리누룩으로 발효시켜 감호(鑒湖)의 물을 이용해 담그는데, 15도~20도 정도로 갈색을 띠고 있고, 오래 묵은 것일수록 좋고, 진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담아 3년 이상 숙성해야 ‘소흥주’란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자기 나라 전통술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원료의 종류와 사용량, 제조방법을 표준화하고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와인이 세계적 명주가 된 까닭은 수백년에 걸친 엄격한 품질관리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동안 우리도 막걸리의 품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습니다. 그 결과 막걸리 용기의 재료나 디자인도 개량하고, 페트병 일색이던 포장도 캔이나 유리병이나 종이팩으로 다양해졌습니다. 저온 살균을 통해 유효기한을 1년까지 연장시킨 살균 탁주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원료의 종류나 사용량이나 제조방법의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막걸리의 품질은 좋은 원료와 누룩의 품질, 그리고 발효조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막걸리는 전통주도 아니고, 원료의 종류나 사용량이나 제조방법에 대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밖에 양조장과 유통시설을 현대화하고, 품질 좋은 원료와 누룩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계약재배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소비자들이 신선한 상태로 안심하고 막걸리를 즐길 수 있도록, 냉장유통 시스템의 확보도 중요합니다. 

또한 세계의 명주와 겨룰 수 있는 최고급 막걸리부터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저렴한 막걸리까지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나 이태리 요리와 함께 마시는 와인, 일본의 스시와 함께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사케처럼 막걸리와 어울리는 식사와 안주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막걸리 거리인 전주시 삼천동 막걸리 타운.

막걸리 한주전자 1만원에 딸려 나오는 푸짐한 공짜안주로 사람들을 놀래키는 전주 막걸리집.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막걸리는 와인이나 사케처럼 세계인을 취하게 만들 수 있는 대한민국 명품브랜드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막걸리도 술은 술입니다. 막걸리 열풍에 휩쓸려 지나친 과음은 삼가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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