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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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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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3.27
    대학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8)
  2. 2012.03.08
    K팝 열풍, 언제까지 불까? (8)

요즘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번안한 연극 '아버지' 연출을 하느라 매일 대학로의 연습장에서 산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은 이순재, 전무송 선생을 비롯해 40, 50대의 중년 배우들과 20,30대의 젊은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다보니 연습장에서 마치 대가족의 일상과 같은 풍경이 가끔 벌어진다. 젊은 배우들은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싶은데 어른들이 계시니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또 어른들이 연습 시간보다 30, 40분 일찍 와서 대본을 보고 준비를 하시니 모두들 연습실에 일찍 오는 경쟁이 벌어진다.

 



어쩌다 이야기판이 벌어져서 두 분의 젊은 시절 얘기가 나오면 모두들 빙 둘러 앉아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 얘기들이 젊은 배우들에게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다. 60년대나 70년대가 주무대이니 겨우 40, 50년 전의 일인데도 그 시절의 연극 풍경에 대해 너무도 신기해하고 낯설어한다. 그 중 젊은 배우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배고픔'에 대한 얘기다. 차비가 없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터벅터벅 걸어서 연습장에 갔다는 얘기, 안주 사먹을 돈이 없어 '카바이트 깡소주'를 마셨던 얘기, 흥행이 안 된 공연을 끝낸 뒤 출연료를 한 푼도 못 받고 울었던 얘기 등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얘기다. 어느 날 두 분과 비슷한 시기에 연극을 했던 원로 연극인이 오셔서 '호랑이 담배 먹던' 얘기를 한참 하시다가 그토록 힘겨운 환경 속에서 연극의 열정을 불태운 원동력이 '외로움'이었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모두들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왜 연극을 하는지 저마다 사연이 다르고 굶주림에 대한 느낌도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지만 '외로움'이란 단어는 세대를 뛰어 넘어 공감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그런데 이 외롭고 배고픈 연극인들이 대학로의 주인공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젊은 배우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가난한 연극쟁이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그때 대학로의 주인공은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고 마로니에 공원이나 소극장 근처에서 밤새워 예술을 논하던 열정에 가득 찬 연극인들과 그들을 사랑하던 관객들이었다. 그런데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의 대학로 주인공은 상가와 음식점과 카페의 주인들과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손님들인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해가는 대학로의 화려함 속에서 연극인들은 소외감과 초라함을 느끼며 연습실과 극장을 들락거린다. 소극장을 운영하는 연극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학로를 떠나 임대료가 조금 싼 성대 입구나 혜화동이나 성북동 쪽으로 옮긴다. 그래서 요즘은 그쪽으로 소극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극장이 들어선 곳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뒤따르게 되는 법이니 몇 십 년 뒤에는 그쪽도 번화한 상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또 임대료가 오를 것이고 가난한 연극인들은 싼 곳을 찾아 그 곳을 떠날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파리의 몽마르뜨 거리나 뉴욕의 소호에서도 벌어졌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거나 연극을 하는 곳에 관객들이 몰리면 상가가 형성되고, 그 거리가 번화해지면 가난한 예술가는 떠난다. 이 현상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토론토대 비즈니스 및 창조학과 교수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와 창조계급>이란 책에서 도시의 경제 발전과 화가, 연극인, 시인, 음악가, 디자이너, 영화인, 연예인 등 보헤미안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보헤미안 지수'라고 명명했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 140인 중에 들 정도로 왕성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는 그의 연구는 가난한 보헤미안인 연극인들에게도 희망을 던져준다. 자신들의 예술 활동이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잘 살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자긍심도 선사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말의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과연 60, 70년대 선배 연극인들의 외로움과 배고픔이 오늘의 대학로를 만든 원동력일까. 아직도 대학로의 주인공은 연극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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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문화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단연 ‘K팝’이다.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의 소녀시대, 미국 아이튠즈 차트 7위로 입성한 빅뱅 등 세계 각국을 누비는 아이돌 가수들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K팝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 패션, 음식, 성형수술, 관광 등 한국에서 제공되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이제 K팝을 비롯한 TV드라마나 영화 등의 한류열풍은 단순히 문화 현상의 의미를 넘어 국가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에서 유럽의 한류열풍을 집중 보도하면서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대기업, 재벌에서 대중가요, 영화 등 문화 중심의 한류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한류열풍에 도전하는 역풍도 만만치 않게 불고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의 일방적인 문화수출을 경계하는 여론과 함께 ‘반한류’ 또는 ‘염한류’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각국의 민족주의자나 극우세력과 결합돼 심각한 도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며칠 전부터 K팝 문화에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비판하는 글이 해외 인터넷에 올라 전 세계로 논란이 번지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불만도 높아져서 인기자체에도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 난 기획사들이 완성도가 떨어지는 K팝 공연을 무리하게 공급하면서 신뢰도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K팝과 한류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금의 K팝 열풍은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돌 가수 외에 폭넓은 연령층의 가수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한복, 한식, 국악 등 전통 문화와의 접목을 통해 다양성을 확대하고 문학, 동양철학, 클래식 등 순수문화와의 연계도 필요하다. 그와 함께 일방적 돈벌이의 수단으로 대상국의 팬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세계시민의 넓은 안목으로 한류를 통해 그들의 삶과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확고히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창의적 인재 양성’을 꼽고 싶다.

한류가 대변하는 문화산업은 창조력을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되는 미래 성장산업이다. 미국은 헐리우드와 디즈니와 팝송 등의 세계적 스타들을 앞세워 지구촌 문화산업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영국은 블레어 총리 시절에 주창된 ‘창조산업’이란 문화정책으로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 문명 중심국가’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일본 또한 아시아 문화의 주도권 싸움에서 중국에 뒤질세라 창조적 콘텐츠 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자신들의 문화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뭐니뭐니 해도 창조적 환경 제공과 인재 양성이다.

우리나라도 뒤늦게나마 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반적 인식은 ‘한류가 얼마나 돈을 벌었는가?’ 하는 경제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산업과 한류를 일으키는 기초 원동력인 창조력의 개발에 대해서는 지원도 투자도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도시와 창조계급>의 저자인 미국의 리쳐드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의 경제성장과 창조적 인재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헤미안 지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화가, 작가, 음악가, 연극인, 영화인, 디자이너와 같은 보헤미안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도시가 발전한다는 그의 이론은 창조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조력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공통의 관심 속에서 정성을 다해 꾸준히 숙성시킬 때 제조되는 포도주와 같은 것이다. 한류열풍을 지속시키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갈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창조적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이 글은 3월 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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