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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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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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2.16
    동네북이 된 사법부와 검찰 (2)
  2. 2012.02.04
    ‘취업’과 ‘창업’ 사이 (11)
사법부와 검찰이 잇단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법부를 향해 화살을 쏘자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재조명되면서 불신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그런 와중에 이 사건의 항소심 주심이었던 이모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당시 재판부는 애초에 만장일치로 김 전 교수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는 쪽으로 합의했으나, 이후 김 전 교수 주장에 모순점이 발견되어 패소로 판결하게 됐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대법원은 이 판사에 대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석방 판결로 인한 몸살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화성인 판결'이니 뭐니 하며 재판부를 비판했고, 보수 단체 회원들은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집을 향해 계란을 집어 던져 불만을 표출했다. 사법부만 몸살을 앓는 게 아니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는 악역으로 묘사된 검사가 나온다.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악의 무리'인 조폭들을 잡아들였던 검사들은 자신들을 조폭보다 더 악질적으로 그린 영화에 대해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판사, 검찰, 경찰 등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직업군이다. 그런데 그 동안 권력의 높다란 성채에 싸여 있던 이들의 권위가 여지없이 깨어지고 조롱 받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에도 재판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나뉘는 집단들이 그들의 권위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떠나 대규모로 불만을 터뜨린 경우는 많지 않았던 듯하다. 그리고 사법부 내부에서 서로 분열된 목소리를 내거나, 검찰이 사법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참다 못한 대법원은 1월 27일 '최근 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발표했다. 먼저 영화 '부러진 화살'은 "기본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라고 규정한 뒤, 최근의 사태들에 대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법관들 역시 "건전한 비평을 넘어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법부과 검경 조직에 대한 불신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 불신의 씨앗은 그들 스스로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부와 검경 조직이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정권과 독재정권을 지내오는 동안 권력의 편에서 법의 잣대를 휘둘러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수많은 시국사건과 인권 관련 재판에서 정의와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판결들로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해 온 것은 아직까지 사법부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데 법률가에 대한 불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인 듯하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법이란 것은 불치의 병처럼 유전되어 가지. 시대에서 시대로 승계되며,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동안에 합리가 불합리로 바뀌고, 어진 정치가 변하여 폭정이 되기도 한다"고 조롱했고, 셰익스피어는 <헨리6세>의 2부 4막 2장에서 "모든 법률가는 죽여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류의 조롱과 불신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최근 국민들이 사법부나 검경 조직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법률적 결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률가들 스스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거나 유감스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도전하는지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법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정성'이란 원칙에서 벗어나 그 동안 자신들이 범해 온 잘못된 관행과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 엄격한 칼을 들이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더욱 깊어가는 조롱과 불신의 늪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2월 1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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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가 넘어서도 결혼을 안 하거나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취업이 어려우니 결혼은 엄두도 안 나는데,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다. 청년백수들이 일가친척이나 지인들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취직했니?'와 '결혼 언제 하니?’이며, 미혼의 여성들 사이에서는 시집 대신 돈 잘 버는 남편을 만나 취업한다는 뜻의 '취집'이란 단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지상파 DMB 업체인 QB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한해 시청자들이 가장 보고 싶은 뉴스는 '청년실업 해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2011년 3분기 기준 6.7%인데, 이는 '실질실업자'인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가 빠진 수치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15.4%로 늘어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작년 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실업자는 32만4000명이지만 '실질실업자'는 110만1000명이다. 100만이 넘는 청년실업자의 울분과 불안은 우리 사회에 어둡고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나꼼수’ 류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요즘 여야 할 것 없이 청년 인재를 영입하려 애쓰는 것도 이 기세와 무관하지 않다. 4월 총선에서 2030세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얄팍한 ‘꼼수’로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을 하고 싶은 청년들의 분노 어린 외침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1월 30일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는데, 그 회의에서도 청년실업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 정상들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 친화적 재정건전화’ 성명을 채택하고, 기업이나 노조 등과 협력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교육이나 직업 훈련을 제공하거나 창업을 돕는 방안을 추진하고, 10인 이하 영세기업에 대해 세금감면과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몇 년 전부터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고, 청년실업자는 너무도 쉽게 늘고 있다. 이를 타개할 길은 기존의 비좁은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한 모델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이 교육과 코칭과 사무실 임대와 최대 1억 원의 사업비 지원까지 패키지 형태로 묶어 지난해 3월에 문을 연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들 수 있다. 올해부터는 기존의 경기도 안산시 외에 전라남도 광주와 경상남도 경산·창원에도 설립한다는데 문제는 졸업 후의 창업 성공에 있다. 241명의 1기생들 중에서 창업의 성공 모델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가 사관학교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듯하다. 창업 정책의 성공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현재 한국의 청년들 사이에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나 교사 등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깊어지는 현상을 들 수 있다. 그런 청년들에게 위험과 모험에 가득 찬 창업에 인생을 걸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청년들의 부모나 주변에서도 창업보다는 취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훨씬 우세하다.

지난 해 말에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과 소규모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동안 한국 경제는 소수의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는 점을 취약점으로 지적했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인력과 자본이 모두 대기업에만 집중돼선 곤란하며 혁신적인 소규모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 더 많은 상상력, 더 큰 세계화이며 미래의 유망산업을 발굴하고, 이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에만 목매달지 말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창업에도 도전하기를 바라는 건 무망한 일인가? 취업과 창업 사이의 엄청난 간극은 언제나 좁혀질 것인가?

(*이 글은 2월 3일자 한국일보 '김명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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