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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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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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0.21
    ‘나는 꼼수다’는 이 시대의 광대다 (7)
  2. 2011.10.12
    죽음의 균과 함께 보낸 15년 청춘 (11)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돌풍이 거세다.

지난 4월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엄청난 반향이 일고 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찬양 일색이다. 이런 인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바로 대중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예리한 독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 미디어들이 주저하며 건드리지 못하는 문제들을 시원하고 통쾌하게 긁어주고 있는 ‘나꼼수’는 대안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실 정치풍자는 그동안 케이블이나 라디오에서 종종 다뤄왔다. 하지만 ‘나꼼수’는 다루는 주제부터 형식까지 이전 방송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BBK, 무상급식, 청계재단, 반값 등록금, 인천공항 매각, 삼화저축은행, 곽노현 등 현 정권과 관련된 어두운 사건들을 최대한 자신들의 개성을 살려 거침없이 까발린다. 언론에 기사화된 내용들은 물론이고 사건 뒤에 숨겨져 있는 실상이나 그 후의 진행 상황을 파헤쳐서 정치에 관심이 없던 청취자들까지 빠져들게 한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등장하는 광대처럼 낄낄거리고 비틀면서 정치를 비꼬고 풍자한다. 리어왕은 “금년은 바보가 손해 보는 해/지혜 있는 사람이 바보가 되어/지혜를 쓰는 법도 잊어버려서/그들의 태도가 이상해졌네./금년은 바보가 손해 보는 해”라고 비꼬는 광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바보처럼 딸들을 믿었다가 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팟캐스트 국내 정치부문 1위에 이어 세계 정치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계속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나꼼수’는 이 시대 ‘정치 광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렇게 정치 광대의 인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죽이려 드는 권력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연산군 때 공길이라는 광대는 임금의 황음무도함을 풍자하는 놀이를 자주 벌였는데, 그 일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옥에 갇힌 뒤부터 단식을 하는 이유를 묻는 연산군에게 그는 “논어에 이르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며/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는데,/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비록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 들/내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꾸했다. 그 말에 분노한 연산군에 의해 공길은 처참하게 매를 맞고 죽임을 당했다. 그의 이 짤막한 에피소드는 재능 있는 작가와 감독에 의해 연극 「이(爾)」와 영화 「왕의 남자」로 재탄생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정치가 죽을지 광대가 죽을지 지나봐야 알 일이지만 이번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보면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모 한나라당 의원이 '나는 꼼수다'의 거친 표현에 문제가 있다면서 제재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방통위는 “딴지라디오와 관련해서 민원접수나 신고는 없었다”며 추후에 민원접수 하게 되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마치 누군가에게 빨리 민원 신고를 해야 ‘나꼼수’를 재제할 근거가 생긴다고 힌트를 주는 것 같다. 게다가 앱스토어나 팝캐스트의 심의도 검토하고 있는 게 확실한 듯 하니 리어왕의 광대가 들으면 “지혜를 쓰는 법도 잊어버려서” 그들의 태도가 이상해져 버렸다고 또 한 번 비꼴 듯 싶다. 바보라는 놀림을 받지 않고 현명한 정치를 하려면 ‘나꼼수’ 광대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텐데 눈 멀고 귀 막힌 정치인들이 과연 그렇게 할지 심히 걱정스럽다.

(10월 19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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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많은 19살, 나는 최고의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서울사대 독어과의 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나의 꿈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표류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학비와 숙식을 해결하느라 서울의 최하층 유랑민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으로 얼굴 아는 친구나 선후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간제 그룹지도도 하고, 개인 지도도 하고, 입주해서 먹고 자며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2학년 봄에 우연히 연극반 연습실에 놀러 갔다가 배우 한 사람이 안 나와 대본 대신 읽어준 게 계기가 되어 사대연극반원이 되고 말았다. 그 뒤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연극반의 분위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나의 열정은 참으로 무모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밤을 새운 연습과 공연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이었고, 그 외의 모든 것은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생활은 무질서하고 방탕해졌다. 매일같이 술에 절어 지내면서 예술적 영감에 가득 찬 천재인 양 행세하고, 세속적인 모든 것을 경멸하고, 교만과 자만심에 가득 찬 허세 덩어리가 되어 갔다.
 
그러다가 3학년 말에 덜컥 병에 걸리고 말았다. ‘활동성 중등증’ 즉 2기 결핵이었다. 주사약과 약병으로 가득 찬 방에서 나는 날개 꺾인 새처럼 외로웠다. 결핵과 싸우는 동안 나는 양의의 치료에 의지하지 않고, 여러 한의사와 돌팔이 도사와 무면허 약사들의 치료를 받았다. 양약을 먹으면 토하고 구역질이 나고 몸이 견디질 못할 정도로 거부반응이 있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장남이 병에 시달리니 내 병은 온 가족의 걱정거리였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누이들도 결핵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들을 챙겨주느라 무척 마음을 썼다.

나는 단전호흡도 해보고, 침과 뜸과 한약과 홍삼 등 수많은 치료법을 내 몸에 직접 실험했다. 조금씩의 효험은 봤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투병하며 지내다보니 웬만한 의사는 우습게 아는 골치 아픈 환자였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닐 때도 가슴에 품은 죽음의 균을 의식해야 하는 우울한 청춘이었다. 미열과 식은땀, 각혈은 내 청춘의 동반자였다. 이렇듯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나는 결핵과의 싸움으로 몸과 영혼이 엄청 시달렸다. 그런 몸으로 연극을 하고 영화를 하고 판소리를 했으니 뭐 하나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체력이 약해서 공연을 하고 나면 꼼짝 못하고 쉬어야 했고, 호흡기가 약하니 판소리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다. 배우나 작가나 연출가로 활동하고 싶은 예술적 욕망은 갈수록 높아졌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니 가슴속의 울화만 쌓여갔다.

그렇게 15년을 끌어오던 결핵이 결혼 2년 만에 말끔히 나아버린 일은 내 인생을 새롭게 전환시킨 사건이었다. 결혼한 다음날부터 아내는 양의와 한의 모두를 찾아다니며 몸에 좋다는 약과 음식은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서 먹이고, 효험이 있다는 곳은 어디든 나를 끌고 다녔다. 심지어는 예수의 은총으로 병을 낫게 해준다는 기도사에게도 끌고 갔다. 나 역시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도 낳으려면 병을 고쳐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양약과 한약도 함께 먹고 기도원에도 다녔다.

그런지 2년쯤 지난 어느 날, 예약된 날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와 균 검사를 했다. 그런데 오호라! 놀랍게도 완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병원 앞에서 끌어안았다. 결핵이 낫고 난 뒤에는 간염에 걸려 2년간 투병을 했고, 항생제 복용의 후유증으로 위염과 장염으로도 한동안 고생했으나 모두 ‘격퇴’했다. 지금 나는 아내의 헌신적인 간호와 사랑 덕에 건강하고 활기 있는 중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병마와의 싸움으로 힘겹게 보낸 청춘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건강하고 활기 찬 청춘을 보낼 수만 있다면, 나는 젊음의 타오르는 열정 따위는 얼마든지 절제하며 살 수 있을 듯싶다.

(*경향신문 10월 11자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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