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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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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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0.03.31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세는 여인의 이야기 (22)
  2. 2010.03.28
    봉은사 직영 파문과 명진스님의 사자후 (31)
  3. 2010.03.25
    손으로 쓴 어머니 편지 다시 보니 눈물난다 (28)
  4. 2010.03.22
    88만원 세대, 취업 위한 몸부림 안타깝다 (37)
  5. 2010.03.19
    법정 스님의 사자후 "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 (35)
  6. 2010.03.15
    'MB의 독도 발언' 이상한 침묵이 이상하다 (80)
  7. 2010.03.12
    대학 거부한 '고대 자퇴녀'의 외로운 싸움 (54)
  8. 2010.03.10
    필라델피아의 구두닦이 찰리를 아시나요? (15)
  9. 2010.03.07
    '아바타'는 환타지인 동시에 현실이다 (20)
  10. 2010.03.04
    TV드라마 사투리 사용, 어떻게 볼 것인가? (30)
  11. 2010.03.01
    3.1절 아침, 뉴욕에 '독도' 광고가 떴다 (62)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17세기 유명한 페르시아 시인인 '사이브 에 타브리지(saib-e-tabrizi)'가 카불에 대해 노래한 시에서 제목을 따온「천 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은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사람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마리암은 세 명의 부인을 둔 잘릴 한에게 겁탈당했던 하녀 나나의 딸입니다. 자신의 불행을 견디지 못한 채 딸을 사랑할 줄 모르는 어머니와 단둘이 오두막에서 사는 마리암의 소원은 단 한 가지, 부자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어느 날 마리암은 아버지에게 극장에서 <피노키오> 영화를 함께 보고 싶다고 부탁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지 않자 대문 앞에서 밤새 기다리며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암을 기다리는 것은 나무에 목을 매단 어머니의 시체. 그 후 마리암은 아버지와 부인들의 손에 이끌려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마흔 다섯 살의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갑니다.

강제 결혼이었지만 다정한 남편 덕에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가던 마리암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계속되는 유산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자 점점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남편의 구타로 그녀의 삶은 끔찍해집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구소련의 침공과 왕정 붕괴, 군벌들 간의 내전과 탈레반 정권,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폭격이 계속되던 어느 날, 옆집에 폭탄이 떨어져 열세 살짜리 소녀 한 명만 살아남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라일라. 진보적이며 이해심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전쟁으로 부모와 두 오빠를 잃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 타리크마저 잃었습니다.

라시드는 라일라를 구해주는 대신 그녀를 둘째부인으로 삼습니다.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연인의 아이 때문에 라시드와의 결혼을 받아들인 라일라는 아기를 라시드의 아이로 속인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마리암은 처음에 자신의 삶에 끼어든 라일라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아기 아지자가 태어나자 둘의 관계는 변합니다. 그들은 함께 아이를 돌보며 끔찍하고 비참한 생활을 견뎌나갑니다. 집 밖에서는 연일 포탄이 터지고 집 안에서는 언제 남편이 매질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두 여인은 서로를 위해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지만' 현실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반짝이는 달들, 찬란한 태양들이 그 곳에 있음을 믿고 살아갑니다.

어느 늦여름, 라시드의 가게는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고 그로 인해 가난에 시달리던 라시드는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아지자를 고아원에 버립니다. 그런 어느 날, 죽은 줄만 알았던 남자 친구 타리크가 살아 돌아오고 라일라가 그를 만나러 가자 격분한 라시드는 라일라를 폭행하고, 이를 만류하던 마리암이 뜻하지 않게 라시드를 죽이고 맙니다. 마리암은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라일라를 타리크에게 보낸 뒤 생을 마치게 됩니다. 

고향을 떠나 타리크와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탈레반이 퇴각하고 국제평화유지군이 파견된다는 소식을 듣자 카불로 돌아간 라일라는 마리암의 오두막을 홀로 찾습니다. 마침 마리암의 아버지 잘릴 한이 뒤 늦게 딸에게 용서를 빌며 사랑을 전한 편지와, 그토록 아버지와 함께 보고 싶어했던 <피노키오> 영화 테이프와, 그녀에게 남긴 유산을 건네받습니다. 라일라가 그 유산으로 한 때 아지자가 살았던 고아원을 학교로 개조해서 타리크와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이 기구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leoj/5yK3/24?docid=1EMVO|5yK3|24|20081020035417

왜곡된 속박과 부조리한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은 한 편의 소설이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실제 삶이기도 합니다. 

1965년 카불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하여 의대를 졸업한 뒤, 2003년에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로 미국 문단에 혜성처럼 데뷔한 할레드 호세이니는 현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과의 대화에서 이 책을 쓸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프간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으로 살고 있는 세계 곳곳의 여성들의 삶과 낯설지 않아 제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전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주변에 살았던 이 땅의 딸들과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과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가슴속에 고이고이 묻어두고 살았던 수많은 여인들. 그러나 그녀들은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삶의 질곡 속에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셀 수도 없는 지붕 위의 희미한 달들을 반짝이게 하기 위해서
셀 수도 없는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밝히기 위하여  

그녀들의 가슴속을 비추고 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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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입적 소식이 있던 날, 봉은사 관련 소식이 함께 떴을 때만 해도 그 일이 이토록 일파만파 커질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봉은사를 조계종에서 직영하겠다거나 그걸 반대하거나 하는 것은 불교계 내부의 일입니다. 그 일이 이토록 파문을 일으킨 데에는 정치권과의 연결 때문입니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조계종 한국불교 문화사업단 김영국 위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이들이 벌이는 진실게임 속에 불교계와 정치권과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불교계가 정치권과 음으로 양으로 얽혀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불교문화유산과 관련된 막대한 정부 지원금과, 불교계 내부의 권력 투쟁에 깊숙이 관여해 온 정치권력과의 유착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돈과 권력......

불경의 가르침대로라면 가장 경계해야되고 물들지 말아야할 이 두가지 세속적 욕망이 한국 불교계를 이끌어 오는 최대의 양축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하기야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종교지도자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의문이 갈만큼 종교가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이나 돈과의 관계가 만약 명진 스님의 주장대로 그토록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면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가 세속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그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거나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정도에서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조계종 총무원장이라는 불교계 최고의 지도자가 특정 정당의 원내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좌파 스님' 축출에 대한 언질을 듣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종회를 열어 봉은사의 직영을 결정했다면 '종교의 권력 시녀화' 자청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천주교나 기도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속적 권력이 약한 불교를 만만히 보고 정치인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스님은 '키우고', 입맛에 맞지 않는 스님은 '죽이는' 일이 자행된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암담할 것입니다. 

진실 공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명진 스님의 계속되는 사자후에 대해 자승 스님이나 안상수 원내대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묵언(默言) 수행'을 하느냐고 비꼬기도 하더군요. 묵언은 '진실을 찾기 위한' 수행의 한 방편이지 '진실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는 아닙니다. 

정치인은 거짓과 책략을 통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수도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종교의 지도자인 자승 총무원장은 입을 열어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정치와 달리 종교는 진실과 자비를 생명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가 사이비 종교가 아니고 한국불교의 지도자가 사이비 교주가 아닌 이상 이토록 스님들과 신도들과 일반인들의 의심이 난무하는 상황에 대해 책임있는 발언을 해야 합니다. 이러다가 한국불교의 신뢰가 추락하고 정치권의 노리개가 되면 어쩌려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단 말입니까? 

평생 '무소유' 가르치고 몸소 실천해 오신 법정 스님이 살아 계셨다면 한국 불교가 돈과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이토록 타락했느냐고 사자후를 토하며 눈을 감지 못하셨을 듯 합니다.    

저는 특정 종교의 교인은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불교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수행이 높으신 스님들의 법문을 듣거나 저서를 읽는 걸 좋아합니다. 제발 돈과 권력에 물든 스님들의 추태로 인해 수많은 청정 스님이나 보살님들의 수행과 서원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두손 모아 합장합니다. 

지난 3월 21일 봉은사 법회에서 명진 스님이 신도들에게 한 법문을 전문 소개합니다. 이 법문을 하면서 명진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법문은 불법을 말해야 하는데 오늘은 시비를 얘기하게 됐다. 신도와 사부대중에게 부덕한 소치다. 심려를 끼친데 진심으로 참회를 드린다. 봉은사 부처님께도 참회 올린다. 지난 일주일이 굉장히 길었다. 1년이 지난 것 같은 세월이었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결국은 솔직해지자, 솔직하게 모든 일을 신도님들에게 말씀 드리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19살에 해인사로 출가, 성철스님 문하에 1년 있었다. 군대 갔다와서 법주사로 다시 출가, 걸망을 지고 선방 돌아다니다 1986년 해인사 승려대회를 계기로 사회와 종단의 여러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지금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만났고, 인연이 남다르게 깊었다.  

94년 종단개혁 때는 봉암사 선방에 있다가 올라와 참여했다. 불교가 정법을 세우고 올바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라고 생각했다. 94년 개혁때 가사를 부처님전에 바치면서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산문을 떠나겠다고 했다. 형식적으로는 성공했다. 현 종헌종법도 개혁회의에서 입안했고, 지금 체계를 세웠다. 그 뒤로도 종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선방에서 남은 공부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방에 다녔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봉은사 주지로 왔다.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제의 받았을때 반대편에 선 나에게 준다는 것 맞지 않다면서 3번 거절했다. 그런데도 지관 스님은 명진 수좌가 아니면 봉은사를 누가 맡겠느냐고 했다. 큰 절 봉은사 주지로 잘 보냈구나 말듣도록 하겠다고 지관 스님에게 말하고 결정했다.  

94년 이루고자 했던 개혁을 봉은사에서 한번 해보자. 큰 틀에서의 개혁이 부처님법대로 간다면 종단에 파급되어 종단이 맑아지고 신심나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겠나. 1000일 기도 그래서 했다. 여기 신도님들은 믿지 않았다. 100일 지나도 안믿었고, 200일 지나도 안믿었다. 300일째 되니까 정말 기도 하는건가 생각했다. 500일째 되는날 신도님들에게 3배 올렸다. 혼자 기도했다면 벌써 그만 뒀을 것이다. 신도들이 기대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늦잠을 자고 싶기도 하고 빠지고 싶기도 한데 신도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 신도들이 부처님이요 호법신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으로 절 했다. 중노릇 나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거구나 느꼈다.  

봉은사 직영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지금 총무원장 자승 원장은 저하고는 남다른 사이다. 92년 봉암사에서 한 철 살고 와서 자승 스님이 앞으로 조계종은 (명진)스님이 책임져야 한다. 스님을 원장 만들겠다. 지금부터 만들겠다고 하더라. 웃고 말았다. 그후 반대 입장에도 서고 같은 입장에도 서고 오랜 세월 살아왔다. 그러다가 지난 선거때 자승 원장이 찾아와 "스님, 제가 총무원장 출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했다. 전에는 날 보고 총무원장하라고 책임지고 만든다고 하더니 그게 뭔소린가 하니까, 스님은 종정하셔야죠 하더라. 그래서 종정 되는 꿈만 꾸고 있었다. 내가 이러이러한 반대 뜻을 가진 스님들 합의해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진화스님이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도왔다. 기대와 희망 속에 추대 되다시피 33대 총무원장 당선됐다. 

취임식에서 소통과 화합으로 종단 운영하겠다는 법문을 했다. 젊은 원장이지만 우리 종단이 화합 분위기에서 출범했으니 희망 있겠구나 생각했다. 본인(총무원장)이 선거와중에 말하기를 반대한다 하더라도 봉은사 훌륭하게 신심으로 재정투명하게 하고 신도들이 지지 한다면 봉은사 주지 오래도록 하도록 하겠다고 하더라. 그 말이 고마웠다. 봉은사를 중심으로 한국불교를 바꾸자고 약속했다.  

선거 와중에 본인이 은정장학재단 건물에 거처, 봉은사에서 거주토록 요청했다. 지체없이 제가 쓰는 방 앞에 내주었다. 중앙종회의장까지 지낸 거물급 스님이 앞방에 있는 것 부담되지만 내주었다. 그 방에서 사람들 만났고, 총무원장이 됐다.

직영문제를 누구와 소통했나 묻고 싶다. 직영으로 해야겠다 사전에 한마디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무회의에서 봉은사 직영문제 지정하던 날 아침에 총무부장 영담스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봉은사는 이제 직영사찰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는 직영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 "알아서들 해"하고 말았다. 뭔지 몰랐다. 좀 있다가 부주지 진화스님이 봉은사 직영하겠단다고 왔다. 직영이 뭐냐고 물었다. 감을 못잡았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얼마전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법인 만드는 회의가 있었다. 당연직 이사장이 총무원장이 하고 제가 대표이사를 맡는 회의였다. 일찍 들어갔더니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도 있었다. 직영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님 뜻이 실린거냐"고 하니까 "내 뜻이 실리지 않고 어떻게 가결되겠는가"라고 했다. "당해사찰 주지에 한마디 없이 직영한다는 게 뭐냐. 나보고 나가란 소리네"하고 화를 내면서 나왔다. 그래도 회의는 했다.

이런 과정 거치면서 왜 직영할려고 할까. 참 궁금하기도 하고 사전 설명도 없고 이해 안되기 때문에 아무도 직영문제를 어떤 부장도 내가 거론했다는 사람이 없고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진화스님이 종회의원 설득해 종회에 안건 못올라오도록 총무분과위원회에서 논란끝에 4대5로 부결시켰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직영 계속 얘기되서 부당한 처사다. 안맞는 얘기다 한거다. 3월 9일 4시쯤 자승 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총무원장이 커피숍에서 기다린다기에 전화한다고 했다. 은정장학재단으로 갔다. "죄송하다. 입이 10개라도 할말이 없다."고 했다. "왜 하는거요? 누구 작품이요? 영담스님이 한거요, 원담스님이 한거요, 아니면 같이 한거요?" 하니까 "참회합니다."라고 했다. "기가 막힌다. 참회할 짓을 왜 해요? 압력 받은거 아니요? 강남 한복판에서 이명박 정권 비판하니까 정리하라는 것 아니냐?" 하니까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직영 귀신 씌었나."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직영귀신은 명자 세자와 주거를 밝혀달라.

진실을 알아야 한다. 11월 5일 취임식 있었다. 11월 20일경 김○○ 거사가 왔다. 스님 몇일전에 자승 원장하고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하고 같이 한 적이 있다. 11월 13일 프라자호텔이었다. 그 자리에서 스님 얘기 나왔다. 안상수 의원이 앉자마자 현 정권 비판적인 봉은사 주지 그냥 두면 되겠느냐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는 국회문광위 고흥길 위원장도 같이 있었던 걸로 들었다. 네사람 있었다. 자승 원장 대답하기를 임기가 보장 되어 있어 어떻게 할 수 없다. 임기가 얼마 안남았다. 그리고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1억원 전달한 것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하는데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 막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자승 원장이 봉은사는 재정이 공개돼 있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준 것을 원장이 뭐라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직영 문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김○○ 거사가 비판을 하더라도 좀 맞춰서 하셔야 합니다 하고 온거다. 자승 원장과 같이 만나는 배석했던 사람이다. 그 얘기를 듣고 싱거운 사람들 하고는 무심하게 흘렸다. 총무원장이나 되는 사람이 여당 원내대표 만나 할말이 그리 없었나 생각했다.

직영문제, 누구와 소통해야 하나. 신도들하고 해야한다. 그런데 안상수 의원과 소통 한 게 그게 소통인가? 밀통이다. 화합인가?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화합인가? 이것은 야합이다. 밀통과 야합을 통해 종단에 분란을, 봉은사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여기에 대해 자승 원장은 해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근거없는 얘기가 될 지도 모른다. 맘이 변해서 말을 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진실은 이긴다고 판단하면서 이 얘기를 한 것이다.

안상수 의원에게 한마디 하겠다. 시정잡배도 이런 짓 안한다. 만약에 제 말이 근거없는 허황된 말로 판명된다면 내 발로 봉은사 걸어 나갈 것이다. 내 손으로 총무원에 가서 승적부에서 제 이름 지워버리겠다. 안상수 의원은 자승 원장과 밀통한 것에 책임 지고 정계은퇴해야 한다.

조계종의 현실이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 맘대로 못한다. 총무원장에게 분담금 1억 더 내겠다고 제안했다. 세금 더 내겠다고 한 것과 똑같다. 내 재임 걸려 있으니까 뒷돈 주느니 분담금으로 더 내겠다고 했다. 앞으로 저는 봉은사 재정 좋아지면 종단 발전 위해서 분담금 더 내고 싶다.

10.27법난 보상금을 1000억원 정도 요청한 걸로 알고 있다. 기념관 건립을 1안으로 조계사 성역화에 쓰고, 2안으로 봉은사 주차장 부지에 한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 하다가 원장 된 다음에 청와대로부터 나에 대해 압박 안들어오나 물었다. 자승 원장의 말에서 좌파 주지가 돈 많은 절에 앉아 있다는 그 얘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원장이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던 거냐. (안상수) 그 녀석 먹던 물컵이라도 끼얹지.

얼마전 안상수 의원이 성폭력이 좌파 교육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다. 김길태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 교육 받았다. 좌파가 뭔가. 맘에 안들면 좌파인가. 박정희는 이후락을 평양 보내 7.4공동성명을 냈다. 남과 북이 화합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하고 합의한 것이다. 박정희가 좌파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다. 박근혜도 좌파냐?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평양을 방문했다. 좌파인가? 현정은 현대 회장이 금강산사업을 하고 있다. 현정은도 좌파인가?

이제 이 지긋지긋한 좌파 논쟁은 그만 두어야 할 때다. 종교의 입장에서 남북이 전쟁없이 평화통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류하기 위해 조계종 대표로 북한에 여러차례 다녀왔다. 잘 달래서 성질나쁜 동생 못된 짓 못하게 말리면서 공존하고 민족적 비극 막아야 되지 않으냐. 억지소리 하고 경우 안맞고 그런 일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 절단을 내고 굶겨죽여야 하나? 그건 아니다. 이런 것이 좌파인가?

안상수는 아무데나 좌파 갔다 붙이면 되는줄 아나보다. 아마도 자기 부인이 밥을 못해도 좌파 부인이라고 했을 것이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좌파 자식이라고 할 것이다. 지나가다가 개가 짖어도 좌파 개라고 할 것이다. 이 민족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안상수 대표는 정치 손 떼고 뒤로 물러나기를 권한다.

직영문제는 엄청난 반발 무릅쓰고 직영한 원인이 여당의 원내대표 부탁 아니면 협박, 지령을 받은 자승 원장이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이다. 직영사찰 구체적인 프로그램 어떻게 되나. 사전에도 준비가 없었고, 사후에도 준비가 없다. 총무원은 법정스님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말없이 대응 입장이라고 한다.

3월 12일, 종회에서 봉은사 직영 결정할 때 안건이 저 밑에 있었다. 법정스님 입적 소식 듣고 위에 있는 안건 다 없애고 직영건을 올려 목탁을 두들겼다. 다른 안건 없애면서 왜 봉은사 직영만 목탁을 쳤는가 나는 묻고 싶다.

종회의원들에게 묻겠다. 의장과 의원 누구하나 만나면 다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금요일 종회의장이 찾아왔다. "이제는 잘 얘기해서 시끄럽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 직영되더다도 주지 계속 하고." 했다. 나는 주지 환장한 사람 아니다. 신도들이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걸망메고 가겠다.

봉은사에서 폭력사태는 원하지 않는다. 88년에 주지한 스님이 나는 조직폭력배 천명 동원해 들어갔는데 돈 한푼 안들이고 들어간 명진이가 왜 이러느냐 이런 소리 한다. 이게 종단 현실이다.

한국불교 바꾸겠다는 원력으로 살고 있다. 신도님들도 잘 알 것이다. 지금 거칠게 말 안할라고 애를 쓴다.

도선사와 봉은사가 (직영지정) 같이 올라갔다. 도선사는 빠졌다. 왜 빠졌나. 설명도 없이 강남북 포교벨트 이어서 종단발전하겠다는게 원담스님의 공식 언급이다. 처음엔 교육분담금 올린다고 하다가 포교벨트 연결하겠다고 한다. 글쎄. 어떻게 만들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안을 내놔야 한다. 어떤 설명도 없이 대안도 없이 직영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에 합리적인 방법과 신도들과 소통하고 합의하고 원만한 방법을 갖고 직영한다면 모르지만, 이유없이 직영한다면 그것도 역시 제발로 총무원에 가서 제 법명 승적부에서 지우겠다. 40년 중노릇 걸고 단호하게 막겠다.

내가 폭력으로 들어오면 목숨걸겠다고 했는데, 폭력으로 들어오면은 쏙 빼고 내가 주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을 한 인터넷 언론은 도배를 했다.

제가 주지 자리에 연연한다고 생각하느냐. 마음 비웠는데 승적부에 있고 없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기느냐. 봉은사 주지 있고 없고를 생각할 거라고 보느냐. 총무원과 종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리합당하고 논리 있는 안이 나와서 직영한다면 수용하겠다. 신도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뜻과 상관없이 직영 한다면 저는 승려를 포기하겠다.

종단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불교 바뀌어야 한다. (신도 발언) 봉은사가 조계종에서 나가면 안되느냐.

저는 이러한 정치세력과의 야합속에서 이뤄진 직영문제는 확실하게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너무 정치적인 발언 많이 한다고 한다.

정치라는 것이 행위를 통해서 내가 이익을 보면 정치적일 수 있다. 거대한 권력앞에 굴하지 않고 옳은 소리 하는 사람 있어야 한다. 저한테 무슨 이익 있겠나. 정권에 굽신굽신하고 한국불교가 그렇게 살았다. 청와대서 부르면 무릎이 깨져라 달려가 밥한끼 먹고.

노무현 정권때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제의를 받았다. 한마디로 거절했다. 왜냐. 부처님 제자니까. 정치적이었다면 받았을 것이다. 가난한 국회의원한테 밥은 몇번 샀다. 내가 왜 정치적이냐. 안상수는 시정잡배와 같은 머리속에 좌파라는 낱말 밖에 모르는 무식한 국회의원이다. 이런 사람하고 만나서 밀통과 야합을 하는 사람이 정치승이지, 내가 왜 정치승이냐.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의 구절을 법정스님이 인용한 것에 박쥐승, 머리깍은 거사, 가사입은 도둑이 있는데, 앞으로는 밀통승, 야합중이라는 꾸지람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한국사회가 도덕적인가. 서로 믿고 신뢰하고 형성된 사회인가. 경제만 좋아지고 먹고사는 것만 좋아지면 좋은 세상인가. 이제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봐야할 때가 됐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 약속과 신의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람, 남의 논문 표절하고도 끄덕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냐.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 없이 그저 돈만 안다. 여당대표와 자승 원장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음주에 얘기하기로 하자.

*출처: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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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변 사람들하고 메일이나 핸드폰 메시지로 소식을 주고 받다보니 직접 펜을 들어 편지를 쓴지 까마득히 오래 되었네요.

그러다보니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아 볼 일도 거의 없어졌군요. 지난 주말 문득 손으로 쓴 편지들이 보고 싶어 오랫만에 먼지 쌓인 박스를 꺼내어 낡은 편지뭉치들을 훑어봤습니다. 

대학생 때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다보니 누이들에게 받은 편지들이 많았고, 특히 아버님은 사나흘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방학 때나 휴학을 하고 집으로 내려와 있을 때 친구들이 보낸 편지나 엽서도 많이 남아 있고, 아내하고 연애를 하거나 신혼 시절에 주고 받은 편지들도 한아름 쌓여 있더군요. 

청춘의 외로움과 즐거움과 불안을 함께 나눈 많은 사연들을 읽으며 한숨도 쉬었다가 울다가 웃다가 멍하니 추억에 잠겼다가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가신 어머님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딱 2통만 남아 있더군요.



첫번째 편지는 1971년 1월, 제가 대학 시험 보려고 서울 친척집에 올라와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그 무렵 우리 식구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경남 진해에 사는 이모집에 잠시 몸을 의탁하며 요양을 하고 계실 때입니다.

명곤이 보아라.

너의 편지 반가히 받았다.
며칠 전에 집으로 너에게와 아버지께 편지했는데 못 보고 서울에 왔구나.
사대를 지원한 것은 잘했다.
어디든지 너의 실력이 당할만한 데 보는 것이 좋은 일이다. 
이번 시험에 합격할만 해야지.
꼭 합격해야지.
시험 잘 보아라.
아버지께서도 편지가 와서 너는 형님네 집에 있을 줄 알고 그리 편지낼까 했었는데 외삼촌 집으로 갔구나.
아무래도 낯이 익으니까.
아이들도 너의 친동생과 같지.
살림이 망하니까 아이들(우리 누이와 형제들)도 불쌍하지. 딱하구나.
시험이 끝나면 형님 집에도 가보련.
시험 잘 보고 합격을 바란다. 
이곳 이모집도 다 편안하시고 아기도 참 귀여웁다. 
oo이(사촌동생)도 잘 뛰어 놀고.
난 오래 쉴까 생각했더니 우리집 가고파서 곧 내려가야겠다.
24일 경에나 가야겠다.
oo이(세째누이)도 26일날 간다고 했어.
아들 편지를 처음 받아보니 참 반갑구나.
다음 전주에서 만나자.

1.16 엄마씀


다음 편지는 1971. 3. 16이라고 봉투에 적혀 있는 걸로 봐서 입학 2달 뒤 첫 하숙집에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군요.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 와 아버님과 함께 동생들을 보살피며 지내고 계실 때입니다.

아들 보아라.

너의 편지 자세한 모든 것, 자세한 곤란과 모든 자질구레한 곤란을 다 이기고 나가겠다 하는 결심을 듣고 어머니는 한껏 마음이 놓인다.
그래야지.
아버지가 다녀오셔서 또 자세한 이야기는 들었다마는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라.
너의 생활이 퍽으나 유쾌하고 희망에 차 있고, 기대를 갖고 있는 너이니까 곤란을 이겨나가고 열심히 공부해라. 
너는 모든 곤란을 이기고 열심히 나가리라고 너를 믿는다. 
나의 몸은 항상 그만하다. 걱정말어라.
교복 입고 조그마한 사진 하나 찍어서 보내라. 
하숙집 음식이 너의 입맛이 잘 맞아서 잘 밥을 먹느냐. 
음식에 주의도 하고 학교에서 가까와서 점심도 와서 먹게 되겠다.
한 방에 있는 학생도 매우 착실하고 얌전하다면서. 참 잘했다.
나는 참 기쁘다.
벌써 아들이 커서 서울 가 공부를 하고 이렇게 편지를 쓰니 매우 즐거웁구나.
따뜻한 봄이 되면 서울에 가 보겠다.
oo이(여동생)도 학교를 넣든지 기술을 가르치든지 해야할텐데 그대로 있다. 
oo이(남동생)도 요새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다음에 미루고 이만 쓰겠다.
할 말은 많은데.....         



유일하게 남은 2통의 어머니 편지를 읽는 동안 마치 조용조용하고 잔잔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맞춤법이 맞지 않는 글자들마저도 어머니의 손길인 듯 다정하기만 했습니다. 집을 떠난 아들에게 난생 처음 편지를 쓰면서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고 가슴 설레이셨을까요?


전 이 편지들을 읽는 동안 어머니의 편지를 공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왜냐구요? 좀 더 자주 어머니에게 편지 쓰지 못한 불효가 뼈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아들 딸들에게 저처럼 후회하지 말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자주 육필로 편지를 쓰라고 권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형제, 자매, 친구, 선배, 스승 등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수십 년 뒤에  수많은 추억과 웃음과 눈물과 사랑을 전해 줄 편지를 자주 쓰라고 권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살아 숨쉬는 손길이 스며 든 편지로 좀더 자주, 좀더 많이 사랑을 나누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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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2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이 10%로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젊은이
10명 중 1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백수로 지낸다는 얘기지요.



MBC TV의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취직을 위해 새벽부터 뛰어다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습니다. 그 드라마는 취직에 시달리는 88세대의 애환을 황정음을 통해 보여줍니다.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그들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들이 중학생 때 겪은 ‘외환위기’는 부모의 직업을 위기에 빠뜨렸고, 대학생 때 겪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신들의 취업을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한때 ‘N세대(정보화 세대)’라고 불리며 게임과 인터넷과 핸드폰과 MP3의 주구매자였던 그들은 이제 20대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을 뜻하는 ‘88만원 세대’ 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그들의 가정은 불안하게 흔들렸고, 기업은 신규채용을 줄였고, 경제 양극화는 취업의 양극화를 심화시켰습니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좌우하던 시절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됐습니다.

요즘은 졸업장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습니다. ‘스펙’ 있어야 합니다. ‘학점 4.0 이상, 토익 900점 이상, 어학연수.....’

기업들이 자신의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듯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스팩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합니다.

스펙을 갖추려면 돈이 듭니다. ‘토익시험 응시료, 영어 학원이나 어학연수 수업료, 취업 잘되는 학과 복수전공을 위해 대학을 더 다닐 경우 추가등록금....’

그 많은 돈을 누가 내나요? 부모들의 등이 휩니다. 좋은 스펙 갖추도록 뒷받침할 경제력이 부모에게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비슷한 실력을 가진 젊은이 사이에서 취업의 성패가 갈립니다.

게다가 등록금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학자금 대출을 확대되는 통에 수많은 대졸자가 빚을 안고 사회에 나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비정규직이나 인턴이란 꼬리표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규직 취업 기회는 점점 멀어집니다.

개인은 ‘업그레이드’되고 사회 전체는 ‘다운그레이드’ 됐습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일자리를 줄이고, 실업은 점점 심화되고 확대될 것이며, 고용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것입니다. 게다가 직장인의 퇴직이 빨라진 탓에 ‘아직 젊은’,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실직 부모’들을 부양할 심적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부담과 힘겨운 경쟁체제에 자신을 잃은 젊은이 중 일부는 취업이나 승진에 대한 관심보다 취미와 패션 등 자기만족을 제공해주는 일에 몰두합니다. 어떤 분야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집착하는 ‘오타꾸’가 일본에 생겨나더니 점점 우리나라에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친구나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고립적이고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생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욕을 상실한 채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프리터’ 족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0255973

얼마 전,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양의 비통함이 가득한 글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벼 놓았습니다.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어려서부터 과외다 입시다 학점이다 혹독한 경쟁에 시달려 오다 10대 1이라는 무서운 취업의 관문 앞에 가로막힌 우리의 청년들에게 탈출구는 없을까요?

언제까지 우리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잃고 자본주의의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서 안타깝게 허덕여야 하나요?

세계를 향해 드높은 꿈을 펼치고 훨훨 날아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신나게 그 꿈을 펼칠 기회를 되찾기는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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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청빈한 삶의 실천가인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군요. 

그 분의 다비식은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않았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않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에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유언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출처 : http://www.ijejutoday.com/news/p..._655.jpg

그런데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은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한 유언의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군요.

출가 이후 생의 대부분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에서 홀로 수행하며 중생들을 위해 써내신 『산에는 꽃이 피네』,『오두막 편지』,『물소리 바람소리』, 『맑고 향기롭게』,『인도기행』,『무소유』,『영혼의 모음(母音)』,『홀로 사는 즐거움』,『말과 침묵』,『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참 좋은 이야기』,『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버리고 떠나기』등 주옥같은 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시간이 흘러도 항상 새로운 울림과 깨달음을 주는 글들,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현대인의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을 지닌 글들,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은 간소한 삶과 명상에서 우러나온 깊은 통찰이 배어 있는 그의 글들을 다시는 읽을 수 없는 걸까요?

저 역시 스님의 글을 못읽는 사태가 생길까 두려워 몇 권의 저서를 구입했습니다. 그 중『아름다운 마무리』는 가장 마지막에 출간된 책입니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듯  더욱 깊어진 사유와 맑아진 영혼의 소리를 담은 글들은 마치 그 분의 속삭임처럼 제게 다가왔습니다.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얼음을 깨어 차를 달이고, 채소 모종을 심고 가꾸는 스님의 단순소박한 일상으로부터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 월든 호숫가로 자연주의 사상가인 소로우의 삶을 찾아간 이야기, 내려놓음, 비움, 살아온 날들에 대한 찬사, 용서, 이해, 자비, 깨어 있음 등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스님의 지혜가 문장마다 진주처럼 빛납니다.

그런데 마치 산사의 은은한 풍경소리처럼 청정하고 은은한 울림을 주는 56편의 글들 중 유독 한편의 글이 세상을 향해 무서운 호통을 치고 있더군요. 스님이 이토록 직설적이며 분노의 외침이 묻어 있는 글을 쓴 것은 참으로 희귀한 일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

2008년 4월 무렵, 길상사 법회에서 대운하 사업의 부당함에 대해 법문을 통해 사자후를 토하셨다는데, 그 호통을 글로 정리하신 듯 합니다. 대운하를 반대하는 어느 분의 글보다 단순명료하며 날카롭고 격정적입니다. 조금 길더라도 그 분의 '마지막 사자후' 듣는 셈치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22/2008042200911.html

......(전략)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그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어울려 산다. 균형과 조화로써 생명의 연결고리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직한 재앙이다.

우리 국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우리의 몸이고 살이고 뼈이다. 이 땅에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임을 알아야 한다. 물류와 관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몇 푼어치 경제 논리에 의해 이 신성한 땅을 유린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망령된 생각이다...... 

운하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으로 치솟는 땅값에 관심이 있는 땅 투기꾼들이다. 그리고 건설공사에 관심이 있는 일부 건설업자들뿐이다.
 
강은, 살아있는 강은 굽이굽이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런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서 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채워놓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놓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강이 아니다.....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듯한 그림들로 지역 주민들을 속여 엉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발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다.

일찍이 없었던 이런 무모한 국책 사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우리 국토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이다. 

이런 무모한 구상과 계획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가 사전에 나서서 막아야 한다. 이는 신성한 우리의 의무이다. 이 문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사안임을 깊이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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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한 일이 이땅에서 일어나고 있군요.

지난 2008년 7월 일본 문부성이 중학교 사회과목의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의 영유권은 일본에 있다' 주장을 명기하는 것을 허락하자, 그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이 심하게 들끓었습니다.  

그 며칠 뒤인 7월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있었는데, 정상회담 보도 기사 중 요미우리 신문의 다음과 같은 기사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총리가 '다케시마(문제)를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알리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주면 좋겠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출처 : http://ttp://bbs2.agora.media.daum.net...%3D12549

그러자 청와대 대변인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고, 청와대의 신속하고 강력한 해명에 그 기사는 오보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분개한 1886명의 시민들이 '시민소송단'을 꾸려서 2009년 8월에 '요미우리는 국제정치적 목적을 가진 악위적 허위 보도로 한국인의 자존의식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요미우리는 서울 중앙지법에 다음과 같은 준비서면을 제출했습니다.  

“아사히 신문 역시 동일한 보도를 하였고... 피고의 보도가 취재 활동에 기초한 객관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피고가 신빙성 있는 사실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채 이 사건 보도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자료를 입수한 국민일보가 지난 3월 9일에 <요미우리 “MB ‘기다려달라’ 독도 발언은 사실”> 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네티즌들의 엄청난 반응이 '동해의 성난 물결'처럼 밀려들었습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만도 10만개를 육박하고 있고, 누리꾼들은 그 기사를 '성지'로 인정하고 '성지순례'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대통령의 발언이 '전혀 사실무근'이고 요미우리나 아사히 신문이 허위보도를 했다면 우리 정부는 왜 정정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요? 정부측의 해명이 없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민주당 등 야당은 '독도 발언이 사실이면 명백한 탄핵사유'라며 공세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당시 청와대가 사실무근이라고 명확한 입장을 밝혔고 일본 외무성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확실하게 부인했음에도 민주당은 이를 계속 쟁점화하려 한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네티즌의 정서를 자극하려는 정략적 계산이 독도문제에 큰 해악을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한 다음, "민주당은 오히려 요미우리 신문사의 논리에 이용당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나라당이나 청와대의 입장은 '시끄럽게 떠들면 일본의 독도 국제분쟁화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니 사실무근이라는 말을 믿고 조용히 넘어가자'는 것인 듯합니다. 

그런 우리 정부의 전략을 눈치챈 것일까요? 요미우리 신문은 자기들의 기사가 '취재 활동에 기초한 객관적 사실의 전달'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며 우리 대통령을 곤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일개 신문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일본 총리에게 한국의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주면 좋겠다"고 했다고 보도해 놓고 시민들이 허위보도라고 소송을 하자 '객관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사실무근'이란 말만 되풀이하며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이상한 일이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무근'이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사실과 다르다는 뜻일까요?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는 해명입니다. 후쿠다 전 총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무근'이 아닌 듯 하니 그럼 우리 대통령은 뭐라고 답변했을까요? 

만약 요미우리 신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는 엄청난 거짓말을 한 게 됩니다. 정말로 만약 그렇다면 영토를 수호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를 가진 대통령의 발언으로서 결코 가볍게 넘어 갈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설마 우리나라 대통령이 '지금은 국내 여론이 들끓어서 곤란하니 조금 기다렸다가 명기해달라' 라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그런 답변을 했을리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럼 왜 청와대는 대통령의 확실한 답변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일까요?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일입니다.

2006년판 공민교과서 화보 : 독도사진(아래)과 함께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지만 중국이 영유를 주장하고 있는 센카쿠제도 및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출처 :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24109§ion=sc3


또 한 가지 이상한 일은 국민일보와 몇몇 인터넷 매체를 제외하고 대다수 신문이나 방송들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일까요? 기사화할 가치가 없어서?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자고? 언론에서 이슈화하면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려는 일본 언론의 전략에 말려들테니 침묵 작전으로 가자고?

언론사들의 입장 표면이 없으니 역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부와 언론이 보조를 맞춰 침묵을 한다는 게 참으로 이상하군요.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독도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진위 여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게 언론의 역할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일본 언론의 무책임하고 방자하기 짝이 없는 기사와 준비서면에 대해 국민들에게 상세히 알리고 '취재 활동에 기초한 객관적 사실의 전달'을 하는 게 올바른 언론의 역할 아닐까요?

그런데 국민일보의 첫 보도가 나온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신문사들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이 문제를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난 네티즌들의 보도요청이 각 방송 3사 뉴스게시판을 통해 쇄도하고 있다는군요.


참으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미우리 소송’은 오는 17일이 마지막 재판인데, 기각당할 가능성이 크다는군요. 요미우리가 “시민소송단은 손해배상 청구권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손해배상 청구권자가 청와대는 될 수 있어도 일반 시민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미우리의 전략은 아마도 소송은 기각되고 사실보도를 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은 그대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인 듯합니다. 그들의 전략이 독도 영유권 분쟁에 어떻게 사용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독도 문제가 국제적 문제로 이슈화 되지 않도록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응하는 건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의 '독도 발언'이 일본의 언론에 이용되고 우롱되는 현실마저 참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넘어가는 게 '독도 수호' 위한 올바른 전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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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고려대 정경대학에 붙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양(24)의 '자퇴 선언 대자보'가 학생들과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군요.

출처 : http://productionschool.org/board/54524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이 글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찬성측의 의견은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자기 소신의 삶을 살 때 이뤄질 수 있다', '건승을 빈다', '마음 한쪽에 느끼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용감하게 말해 주었다',  '중요한 건 그가 우리에게 던진 문제의식이자 메시지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다', '많은 학생들이 경쟁중심 사회 전반의 문제에 고민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제 이 같은 현실을 우리가 나서서 변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쏟아졌네요.  

반대측 의견은 '지금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아름다운 대학생들이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전 학교 다니는게 즐겁고 행복해서 참 다행이네요', ‘일기장이 아닌 대자보에 공개한 이유가 뭐냐?’, '대학에 남아 확실한 꿈을 향해 노력하는 내가 쓸모있는 상품으로의 간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운동권이나 정치권 커리어 쌓기 위한 쇼 아닌가?'라는 의견도 쏟아졌네요.

출처 :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01&newsid...


김예슬양의 글을 읽는 동안, 제 청춘의 힘들었던 시절이 새삼 떠오르더군요.

저는 김예슬양과 30여년의 차이가 나는 197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저 역시 '청운의 꿈'을 품고 가족의 기대를 온 몸에 받으며 '명문대'에 입학했다가 다른 길을 선택했기에 수많은 밤을 잠 못이루며 뒤척였을 예슬양의 고뇌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대학을 거부할만한 '용기'가 없어 낙제를 면할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을 하긴 했지만 전공을 '배반'한 채 '취업이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연극의 길을 떠났고, 2년 간 직장 생활을 한 뒤로는 직장생활마저도 '거부'한 채 연극쟁이로 '적자인생'을 살며 '부모님께 죄송'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대에 대학생들이 겪었던 고뇌는 '88만원 세대'의 고뇌와는 차이가 납니다. 그 무렵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했던 유신독재에 대한 반대 시위로 학교가 휴교와 폐업을 거듭하고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제적을 당하거나 퇴교를 당하거나 감옥에 갔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판과 저항에 참여하거나 취업을 통해 현실세계에 참여했고,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환멸을 느낀 학생들 중 스스로 자퇴를 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예슬양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큰배움터'로서의 "대학大學"은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과 고뇌를 가슴에 담은 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대학을 거부한 치열한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예슬양과 동기뻘이 되는 대학 3학년의 딸과 후배뻘이 되는 대학 1학년의 아들을 가진 부모로서 걱정이 밀려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군요. 

'만약 나의 딸이나 아들이 그런 결단을 내린다면 나는 찬성하고 축하해 줄 것인가.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류할 것인가?'

두 질문 사이에서 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 딸이나 아들이 학교를 그만 두고도 자신의 미래를 펼쳐 나갈 계획과 재능을 충분히 가졌다고 믿는다면 찬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일시적 분노와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젊음의 성급함으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겠죠. 

전 예슬양의 조리정연하고 날카롭고 대담한 글을 볼 때, 성급함이나 무모함으로 충동적인 '대학 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녀는 '기업의 하청업자'가 된 대학의 좁은 우리를 벗어나 더욱 큰 인생 경영을 위한 '비상의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떠나는 예술양의 앞길에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고려대학교'라는 명문대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대학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한, 만만치 않은 현실과의 외로운 싸움을 각오해야 할 듯 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운동권 관련 행보라든가 자퇴서에 대한 진정성을 꼬집는 네티즌들의 글은 앞으로 지속될 그녀의 행보에 더욱 아픈 가시가 될 듯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거부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는 단단한 다짐을 볼 때, 예슬양은 어떠한 가시밭길이라도 헤치고 나갈 강한 열정과 투지를 가진 인재로 보입니다. 

부디 예술양의 '탈주'와 '저항'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취업을 위한 자격증이 없어도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경영할 수 있다는 비전을 성공적으로 가꾸어 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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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킹 관리 전문가이자 최고의 헤드헌터 기업의 대표인 밥 보딘이 쓴 「WHO(후)-내 안의 100명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100명의 존재가 있으며,  그 100명의 힘을 발견하는데 필요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 꿈을 지지해줄 ‘드리머’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내 꿈을 망쳐버릴 ‘드림킬러’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나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있는가? 등 지금까지 해왔던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을 뒤집고,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이 책의 내용 중 저를 감동시킨 사람의 이야기를 특별히 소개합니다. 저자는 아버지로부터 필라델피아 기차역에서 구두를 닦는 '흑인 구두닦이 찰리' 관한 이야기를 여러번 듣고, 필라델피아 출장을 가는 길에 기차역 로비 한구석에 있는 초라하고 작은 '찰리의 구둣방'을 찾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8장에서 찰리와의 만남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록을 해놨는데, 남을 격려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에피소드입니다. 찰리가 살아있다면 저도 언젠가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지더군요.  


찰리는 70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몸집이었고, 숱이 적은 은회색 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구둣방에는 한 가지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중략)

국회의원, 시장, 정부 고위 인사, CEO, 텔레비전 유명 인사까지 많은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찰리와 마주 앉아 3분을 보내기 위해 이렇게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했다. 드디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너무나 흥분되었다.

"안녕하시오, 젊은이. 이름이 뭐요?"

내가 앉자 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잔물결 하나 없는 연못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웠다.

"밥입니다."
"내 이름은 찰리라오. 내게 구두를 닦기로 결정을 내렸다니 영광이오. 고맙소."

그 말에 나는 마치 뭔가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당황했고, 그 어색함을 없애려고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정말 멋진 웃음을 가지고 있군."

그가 내 구두를 닦기 시작하면서 이야기했다. 

"자녀가 있소?"  
"네."

나는 우쭐하며 대답했다.

"예쁜 딸이 셋이나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소."

그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세 명 다 아주 특별한 아이들일 것 같소. 참 내가 말했던가? 아이들은 선물같은 존재라오. 내가 이렇게 구두를 정성스럽게 닦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정기적으로 자신이 그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오."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내가 구둣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 현관에 앉아서 아이들의 신발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젊은이가 주의를 기울여 당신의 구두를 관리한다면, 그 구두는 오랫동안 남아서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의 발을 지켜줄 거요. 내가 어떻게 구두에 구두약을 바르는지 한번 보시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이 주름진 두 손으로 구두를 빛나게 하는지도. 내가 구두를 다 닦고 나면 이 구두는 너무나 환하게 빛이 날 거요.  그렇게 되면 구두를 내려다볼 때마다 당신은 기분이 좋아져서 환하게 미소를 짓게 될 거요. 가족과 친구들도 이 구두와 같다오. 그들은 세상이 당신을 위해 마련한 선물이지. 당신이 그들을 빛나게 할 필요가 있소. 당신은 구두를 빛내는 정성을 담은 손이 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오. 그들이 다 닳아버리거나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지 않도록 말이오. "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올려다보고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오."

잠시 또 침묵이 이어졌다.

"새 친구가 되었으니 떠나기 전에 선물을 하나 드리지. 당신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하고 싶은데, 떠나는 길에 분명 좋은 선물이 될 거요. 내 선물을 받겠소?
"물론입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소. 그럼 시작하지."

찰리의 기도는 짧았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 기도를 하는 3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절대 잊지 못할 그 순간의 기억을 안고서 말이다.

이 특별한 남자에게는 전 세계 곳곳에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찰리와 마주보고 몇 분을 보내기 위해 필라델피아까지 여행을 오는 것이었다......(중략)
 
남을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찰리와 마주 보고  앉아 있던 잠깐 동안 나는 마치 <환상특급>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바쁜 현실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번잡한 30번가의 기차역 안에서 그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곧 나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인생을 좀더 나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각의 변화가 생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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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가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의 입장으로 한국 영화 최고 관객몰이에 성공했습니다. 

3D의 신기술로 전세계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아바타는 자원 개발을 향한 인간의 탐욕 앞에서 부족의 신성한 숲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나비족'의 투쟁이야기입니다. 




아마존이나 아메리카나 호주 등 세계 곳곳의 원주민과 백인들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투쟁들의 원형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투쟁이 여전히 현실세계의 여기저기에서 진행 중이군요.

그 중 '인도의 나비족'은 국제 사회의 관심 촉구를 위해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인도 동부 오리사주의 토착민인 돈구리아 곤드족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산을 지키기 위해 국제적 광산회사 베단타 리소시즈의 개발계획에 맞서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8,000여 명의 돈구리아 곤드족은 광산 개발로 인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길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china.naeil.com/news/news_view.asp?nnum=23915

돈구리아 곤드족을 돕는 영국 인권 단체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은 미 영화잡지 '버라이어티'에 "아바타는 판타지인 동시에 현실이다(Avatar' is fantasy...and real)"라는 제목으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도움을 청하는 광고를 실었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나비족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군요.

수도권에 있는 CGV 영화관에서 환경·시민단체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CJ그룹에 속한 씨앤아이 레저산업의 '굴업도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입니다. CGV는 CJ그룹의 상징적인 곳이라서 그곳을 시위장소로 택한 겁니다. 
 
골프장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굴업도 전경. 출처 : http://www.seoprise.com/board/vi...mem_list

그들은 왕은점표범나비, 검은머리물떼새 등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는 굴업도에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CJ그룹과 나비족을 몰살시키고 자원을 취하려는 영화 <아바타>는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하며 나비족 가면을 쓰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inbfs/15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나비족들은 ‘지리산댐 추진 백지화’를 주장하며 도보행진을 했군요.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429.html

지리산댐은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 일대에 저수량 9700만t 규모로 건설되는 댐으로 2001년에 추진되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는데, 최근 4대강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재추진되고 있습니다. 

댐 예정지는 지리산 칠선계곡과 백무동 뱀사골의 계곡이 합수되어 흐르는 곳으로 댐이 건설되면 천혜의 자연 경관이 파괴됩니다. 생활터전이 수몰되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 파괴와 안개일수 증가로 한봉, 사과 등 과수농사, 벼농사, 채소농사, 곶감농사에 심각한 피해도 예상됩니다. 

주민들은 "강은 하나의 생명으로서 흐르고, 그 강에 깃들여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도 하나다. 타당성 없는 댐건설에 우리 생존권을 내어줄 수 없다. 지리산 댐 계획을 완전 백지화하는 그날까지 고향을 지키고 살아온 우리 주민들은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지리산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용유담 계곡. 출처 : http://blog.chosun.com/blog.log....D4050642

영화 <아바타>는 나비족과 인간의 극한 대립 끝에 결국 나비족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현실세게의 결말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나비족이 판도라를 개발의 손길에서 보호한 것처럼,
굴업도나 지리산댐도 영원한 판도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개발 앞에 나비족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줄 것인지 그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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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전라남도가  '전라도 사투리를 바로 써달라'는 건의문을 한국방송작가협회 등 전국 사회·문화 단체에 보냈더군요.
 

사투리는 그 지역만이 간직한 독특한 고유언어로써 지방의 넋이 밴 정서와 문화와 뼈와 살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요즘 영화, 방송 드라마 상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는 웃음거리 수단으로 자주 악용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대중들에게 이야기꺼리가 되며 트렌드이자,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표본이 된다.....
폭력배와 사기꾼 등 삐뚤어지고 그릇된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전라도 사투리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
다른 지역 분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악한 자들로 기억하는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달라.....

시청자단체나 지역시민단체가 해야 어울릴 듯한 일을 왜 관공서가 앞장서서 했을까요?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라도 사투리 쓰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달라는 지역민들의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여론이 들끓었을까요? 

시청률 정상을 달리는 KBS2 드라마 <추노> 에 나오는 '땡초'의 험악한 전라도 사투리나
지난해 말 시청률 20%대를 올리며 끝난 SBS 드라마 <천사의 유혹>에서 여주인공의 작은 엄마와 아버지가 탐욕스러운 전라도 출신 사기꾼 부부로 나온 사례 등이 전라도 지역민들의 감정을 자극했다고 합니다. 

지역민들의 여론을 보면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악역에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 나오는 게 요즈음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랍니다.

1970년대에서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정권 시절에는 깡패, 가정부, 거지 등 하류층 배역은 전라도 사람이 도맡아 할 정도였고,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은 비리, 부정, 범죄, 아첨, 비양심의 표본으로 자주 등장하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는 가상의 창작품이기 때문에 악역이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지역 이미지가 훼손되지는 않을 거라는 주장을 폅니다. 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깡패도 있고,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사기꾼도 있는데, 단지 악역이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로 전라도 사람들만이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쪽의 주장이 옳을까요?


최근 몇 년 간 방송과 영화에서 사기꾼이나 조폭과 같은 악역에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사투리가 각각 얼마나 사용됐는지에 대한 통계와 그러한 영화나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각 지역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자료가 있다면 판단의 근거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자료를 아직 보지 못했으니 어느 한쪽의 주장에 손을 들 수가 없겠군요.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면 그것이 다만 영화나 드라마의 사투리 사용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서 구수하고 흥겹고 재치있고 입담 좋고 인심 좋은 긍적적 인물형을 표현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악역이 그 지역의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당장 그 지역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질 거라는 우려도 지나친 기우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 지역의 민심이 들끓고 한 지역을 대표하는 관공서에서 공식적인 의견을 낼만큼 그 지역의 사투리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면, 그에 대해 작가나 연출가 등 창작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거라고 봅니다.

지역 사투리는 연극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것들은 캐릭터와 작품의 표현력을 풍성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니 작품에 사투리를 쓰려면 작가나 연출가의 개인적인 선입견으로 마구잡이로 쓰는 것 보다 기왕이면 지역의 문화와 전통이 풍성하게 표현되도록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것은 '표현의 자유'와는 다른 차원인 '표현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인 듯 합니다. 
 

사투리는 그 지역만이 간직한 독특한 고유언어로써 지방의 넋이 밴 정서와 문화와 뼈와 살이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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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3.1절, 촉촉한 봄비만큼이나 상큼한 소식이 있군요.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의 CNN뉴스 광고판에 독도관련 영상광고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3113335

낱말맞추기
형식으로 '하와이는 미국땅, 시칠리아는 이탈리아땅, 발리는 인도네시아땅,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차례차례 찾아간 후, 동해(East Sea)가 표기된 한국과 일본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독도는 한국땅', '이것들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한 후 '아름다운 섬 독도를 방문하세요!'라고 맺고 있습니다.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3/01/3639694.html?cloc=olink|article|default

이번 광고는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가 기획 제작하고, 비용은 가수 김장훈씨가 전액 후원했다고 합니다.  


타임스퀘어는 뉴욕 맨해튼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삼성·LG·현대자동차가 1년 내내 기업광고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 광장에서 기업이 아닌 국가 이미지 광고가 방영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면서 아쉬웠던 건 처음에 이 광고를 제안 받은 기업들이 난색을 표해서 김장훈씨가 전액 후원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부천사' 김장훈씨는 '독도의 수호천사'이기도 할만큼 독도 문제에 아낌없이 돈과 열정을 쏟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일을 성사시킨 서경덕 교수와 김장훈씨의 노력에는 아낌없는 찬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김장훈씨와 뉴욕타임즈 독도 광고. 이미지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

그러나 한편으로 비감한 생각이 몰려 오는 건 왜일까요?

그야말로 국가의 영토 분쟁과 관련된 홍보를 정부도 아니고 기업도 아닌 개인들이 이토록 힘들고 외롭게 이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의 감정을 자극하면 기업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것이니 기업들이 선뜻 후원하지 못하리라는 건 이해가 갑니다. 또 일본 정부를 자극하지 않고 외교적으로 풀어 가야 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의 지자체나 기업이나 정부가 가끔씩 우리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면서까지 끈질지게 독도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비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너무도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영토 분쟁은 국제 사회에 대한 홍보와 외교적인 설득이 체계적이고 치밀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데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 대한 우리의 전략이나 노력이나 예산 투입은 너무도 빈약한 실정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prkorea.com/news1/ind...%3D17r02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3.1절을 기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대일 관련 문제들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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