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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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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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문화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단연 ‘K팝’이다.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의 소녀시대, 미국 아이튠즈 차트 7위로 입성한 빅뱅 등 세계 각국을 누비는 아이돌 가수들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K팝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 패션, 음식, 성형수술, 관광 등 한국에서 제공되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이제 K팝을 비롯한 TV드라마나 영화 등의 한류열풍은 단순히 문화 현상의 의미를 넘어 국가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에서 유럽의 한류열풍을 집중 보도하면서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대기업, 재벌에서 대중가요, 영화 등 문화 중심의 한류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한류열풍에 도전하는 역풍도 만만치 않게 불고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의 일방적인 문화수출을 경계하는 여론과 함께 ‘반한류’ 또는 ‘염한류’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각국의 민족주의자나 극우세력과 결합돼 심각한 도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며칠 전부터 K팝 문화에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비판하는 글이 해외 인터넷에 올라 전 세계로 논란이 번지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불만도 높아져서 인기자체에도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 난 기획사들이 완성도가 떨어지는 K팝 공연을 무리하게 공급하면서 신뢰도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K팝과 한류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금의 K팝 열풍은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돌 가수 외에 폭넓은 연령층의 가수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한복, 한식, 국악 등 전통 문화와의 접목을 통해 다양성을 확대하고 문학, 동양철학, 클래식 등 순수문화와의 연계도 필요하다. 그와 함께 일방적 돈벌이의 수단으로 대상국의 팬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세계시민의 넓은 안목으로 한류를 통해 그들의 삶과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확고히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창의적 인재 양성’을 꼽고 싶다.

한류가 대변하는 문화산업은 창조력을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되는 미래 성장산업이다. 미국은 헐리우드와 디즈니와 팝송 등의 세계적 스타들을 앞세워 지구촌 문화산업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영국은 블레어 총리 시절에 주창된 ‘창조산업’이란 문화정책으로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 문명 중심국가’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일본 또한 아시아 문화의 주도권 싸움에서 중국에 뒤질세라 창조적 콘텐츠 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자신들의 문화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뭐니뭐니 해도 창조적 환경 제공과 인재 양성이다.

우리나라도 뒤늦게나마 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반적 인식은 ‘한류가 얼마나 돈을 벌었는가?’ 하는 경제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산업과 한류를 일으키는 기초 원동력인 창조력의 개발에 대해서는 지원도 투자도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도시와 창조계급>의 저자인 미국의 리쳐드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의 경제성장과 창조적 인재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헤미안 지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화가, 작가, 음악가, 연극인, 영화인, 디자이너와 같은 보헤미안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도시가 발전한다는 그의 이론은 창조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조력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공통의 관심 속에서 정성을 다해 꾸준히 숙성시킬 때 제조되는 포도주와 같은 것이다. 한류열풍을 지속시키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갈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창조적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이 글은 3월 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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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와 검찰이 잇단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법부를 향해 화살을 쏘자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재조명되면서 불신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그런 와중에 이 사건의 항소심 주심이었던 이모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당시 재판부는 애초에 만장일치로 김 전 교수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는 쪽으로 합의했으나, 이후 김 전 교수 주장에 모순점이 발견되어 패소로 판결하게 됐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대법원은 이 판사에 대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석방 판결로 인한 몸살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화성인 판결'이니 뭐니 하며 재판부를 비판했고, 보수 단체 회원들은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집을 향해 계란을 집어 던져 불만을 표출했다. 사법부만 몸살을 앓는 게 아니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는 악역으로 묘사된 검사가 나온다.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악의 무리'인 조폭들을 잡아들였던 검사들은 자신들을 조폭보다 더 악질적으로 그린 영화에 대해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판사, 검찰, 경찰 등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직업군이다. 그런데 그 동안 권력의 높다란 성채에 싸여 있던 이들의 권위가 여지없이 깨어지고 조롱 받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에도 재판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나뉘는 집단들이 그들의 권위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떠나 대규모로 불만을 터뜨린 경우는 많지 않았던 듯하다. 그리고 사법부 내부에서 서로 분열된 목소리를 내거나, 검찰이 사법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참다 못한 대법원은 1월 27일 '최근 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발표했다. 먼저 영화 '부러진 화살'은 "기본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라고 규정한 뒤, 최근의 사태들에 대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법관들 역시 "건전한 비평을 넘어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법부과 검경 조직에 대한 불신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 불신의 씨앗은 그들 스스로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부와 검경 조직이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정권과 독재정권을 지내오는 동안 권력의 편에서 법의 잣대를 휘둘러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수많은 시국사건과 인권 관련 재판에서 정의와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판결들로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해 온 것은 아직까지 사법부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데 법률가에 대한 불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인 듯하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법이란 것은 불치의 병처럼 유전되어 가지. 시대에서 시대로 승계되며,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동안에 합리가 불합리로 바뀌고, 어진 정치가 변하여 폭정이 되기도 한다"고 조롱했고, 셰익스피어는 <헨리6세>의 2부 4막 2장에서 "모든 법률가는 죽여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류의 조롱과 불신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최근 국민들이 사법부나 검경 조직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법률적 결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률가들 스스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거나 유감스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도전하는지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법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정성'이란 원칙에서 벗어나 그 동안 자신들이 범해 온 잘못된 관행과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 엄격한 칼을 들이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더욱 깊어가는 조롱과 불신의 늪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2월 1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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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가 넘어서도 결혼을 안 하거나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취업이 어려우니 결혼은 엄두도 안 나는데,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다. 청년백수들이 일가친척이나 지인들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취직했니?'와 '결혼 언제 하니?’이며, 미혼의 여성들 사이에서는 시집 대신 돈 잘 버는 남편을 만나 취업한다는 뜻의 '취집'이란 단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지상파 DMB 업체인 QB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한해 시청자들이 가장 보고 싶은 뉴스는 '청년실업 해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2011년 3분기 기준 6.7%인데, 이는 '실질실업자'인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가 빠진 수치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15.4%로 늘어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작년 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실업자는 32만4000명이지만 '실질실업자'는 110만1000명이다. 100만이 넘는 청년실업자의 울분과 불안은 우리 사회에 어둡고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나꼼수’ 류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요즘 여야 할 것 없이 청년 인재를 영입하려 애쓰는 것도 이 기세와 무관하지 않다. 4월 총선에서 2030세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얄팍한 ‘꼼수’로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을 하고 싶은 청년들의 분노 어린 외침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1월 30일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는데, 그 회의에서도 청년실업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 정상들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 친화적 재정건전화’ 성명을 채택하고, 기업이나 노조 등과 협력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교육이나 직업 훈련을 제공하거나 창업을 돕는 방안을 추진하고, 10인 이하 영세기업에 대해 세금감면과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몇 년 전부터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고, 청년실업자는 너무도 쉽게 늘고 있다. 이를 타개할 길은 기존의 비좁은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한 모델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이 교육과 코칭과 사무실 임대와 최대 1억 원의 사업비 지원까지 패키지 형태로 묶어 지난해 3월에 문을 연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들 수 있다. 올해부터는 기존의 경기도 안산시 외에 전라남도 광주와 경상남도 경산·창원에도 설립한다는데 문제는 졸업 후의 창업 성공에 있다. 241명의 1기생들 중에서 창업의 성공 모델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가 사관학교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듯하다. 창업 정책의 성공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현재 한국의 청년들 사이에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나 교사 등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깊어지는 현상을 들 수 있다. 그런 청년들에게 위험과 모험에 가득 찬 창업에 인생을 걸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청년들의 부모나 주변에서도 창업보다는 취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훨씬 우세하다.

지난 해 말에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과 소규모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동안 한국 경제는 소수의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는 점을 취약점으로 지적했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인력과 자본이 모두 대기업에만 집중돼선 곤란하며 혁신적인 소규모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 더 많은 상상력, 더 큰 세계화이며 미래의 유망산업을 발굴하고, 이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에만 목매달지 말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창업에도 도전하기를 바라는 건 무망한 일인가? 취업과 창업 사이의 엄청난 간극은 언제나 좁혀질 것인가?

(*이 글은 2월 3일자 한국일보 '김명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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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퇴직자가 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선배나 친구들이 퇴직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후배들의 퇴직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퇴직자들과 술자리가 잦아지다보니 '퇴직증후군'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 증후군 중 공통된 증상 하나가 '출퇴근강박증'이었다.

나 역시 장관직을 그만두고 출퇴근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주변에서 퇴직자 취급을 했다. 하지만 나는 본시 출퇴근을 하지 않는 예술가의 생활에 익숙해 있어서 심각한 증세를 느끼지 못하고 가볍게 지나왔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직장생활만을 해 온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그 증상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퇴직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평균 수명은 갈수록 높아지니 앞으로 우리 사회에 출퇴근강박증 환자는 엄청 늘어날 것이다.


그 증상은 먼저 가족과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1식님 2식씨 3식놈'이란 우스갯소리가 우습게만 들리지 않을 만큼 퇴직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부인이나 가족들에게도 힘겨운 일들이 밀어닥친다. 주변의 지인들이 지나가면서 던지는 "요즘 뭐하세요"라는 질문도 그들을 한없이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는 뭐니뭐니해도 '출퇴근'이다. 그래서 모두들 출퇴근하는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허겁지겁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도 하고, 스스로 사무실을 차려 새로운 직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보다 몇 년 더 출퇴근이 연장되었다고 해도 그뿐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직장을 잃고 출퇴근강박증의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우울증이나 좌절감이나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린다. 직장에서 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는 이차적인 문제다. 내 이름 앞에 내세울 직장이 없다는 것, 아침을 먹고 집을 나가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 그를 이 사회의 낙오자로 몰고 가는 것이다.

미국의 극작가인 아더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희곡에서 해고당한 아버지가 자동차사고를 위장해 실직자인 백수 아들에게 보험금을 물려주고 죽어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그 연극은 1940년대의 미국을 강타하고 지금까지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직장을 잃은 아버지들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도 넘쳐나고 있다. 아더 밀러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해 통렬한 수술용 칼을 들이댔다. 그 칼은 신자본주의가 넘쳐나는 2012년의 한국사회에도 유효하다. 신자본주의의 꽃인 직장인으로 훌륭하게 살아 온 이 사회의 수많은 가장들에게 퇴직 후의 탈출구는 죽음 밖에 없는 것일까.



이 가슴 아픈 고민이 요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지인의 초청으로 지리산 부근을 여행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행에서 만난 몇몇 분이 그 고민의 해법을 보여주었다. 한 분은 대기업의 임원에서 퇴직한 분으로 수천 점의 옹기를 수집한 취미를 살려 야산에 옹기박물관을 짓고 있었다. 내가 묵은 지리산 산자락의 아담한 펜션에서는 서울시의 공무원이었던 분이 부인과 함께 손님을 맞으며 소박한 산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목각과 서예의 취미를 살리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섬진강 부근의 화개장터에서는 도시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친이 운영하던 양조장을 이어받아 최고의 막걸리를 만들려는 꿈에 불타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신의 '직업'을 일군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만족해했고, 여전히 꿈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 해법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에 있었다. 그 직업이 옹기점 주인이면 어떻고 양조장 주인이면 어떤가. "직장이냐 직업이냐, 이것이 문제로다"하면서 햄릿처럼 회의하고 주저하다가는 출퇴근강박증에 걸려 죽음처럼 불행한 노후를 보내게 될지 모른다.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찬양 받고 이 사회의 꽃이 되는 날을 꿈꾸어 본다.

(이 글은 1월 20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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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물 시리즈’의 애청자다.

‘북극의 눈물’로 시작해 ‘아마존의 눈물’을 거쳐 ‘아프리카의 눈물’을 넘어서 남극까지 온 이 자연다큐 시리즈는 눈물과 감동의 대하드라마다. 단순히 추운 극 지대나 대륙의 오지를 필름에 담았다고 감동을 받은 게 아니다. 아마존의 오지에서 독충에 물려 다리가 부어오르고, 남극의 추위로 뺨에 동상이 걸리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황폐해져 가는 지구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제작진의 목숨을 건 뚝심과 치열함이 없다면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방영되는 ‘남극의 눈물’(연출 김진만 김재영) 편 또한 1년여 동안 남극의 얼음 위에서 목숨을 건 촬영으로 남극동물들의 생태를 담았기에 또 한 번 감동의 폭풍에 휩싸일 수 있었다. 그런데 호사다마인가. 12월 23일의 프롤로그 방송부터 당혹스러운 논란이 일었다.

일본 쇼와기지의 남극 출항 과정을 소개하면서 ‘욱일승천기’를 보여준 게 발단이었다. 욱일승천기는 1889년 일본 해군의 군함기로 지정된 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 된 깃발이다. 그 깃발이 나온 화면과 함께 “패전의 아픔 속에 일본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남극에 진출했다”는 내레이션 부분도 논란이 됐다.
 

방송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남극의 눈물’이 아니라 ‘일본의 눈물’을 방송하나?”, “위안부 할머니가 보시면 기절할 패전의 아픔” 등과 같은 비난 글이 쇄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제작진은 MBC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이 해상자위대 깃발(일명 욱일승천기)을 단 군함을 남극에 보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현재적으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일본이 국가적으로 남극대륙을 향해 가진 강한 집념과 의도를 상징한다. 저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의미에서 방송에서 등장을 시켰고 이 질문에 대해서는 4부 ‘인간, 그리고 최후의 얼음대륙’ 편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고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왜 우리가 과거의 잘못도 반성하지 않는 나라에 패전의 아픔까지 동감해야 하는 건가?”, “사과는 절대 안 하고 자신들이 옳다고만 주장한다” 등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는 글들을 올렸다. 아무리 분이 나더라도 아직 4부가 방영되지 않았으니 이 문제는 4부를 본 다음에 따지는 게 옳을 듯싶다.
 

그런 논란 가운데 1월 6일 밤 11시에 1부 ‘얼음대륙의 황제’ 편이 방송됐다.



황제펭귄의 짝짓기부터 새끼를 키워내는 경이로운 과정과 새끼를 향한 황제펭귄의 놀라운 부성애,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허들링 등 자연다큐라기보다 휴먼다큐와 같은 감동으로 수많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당혹스러운 상황이 생겼다.

KBS 1TV가 6일 밤 10시에 BBC의 ‘프로즌 플래닛’(Frozen Planet)을 방영한 것이다. BBC의 ‘플래닛’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지구자연 다큐멘터리다. KBS 측은 “공영방송 간의 콘텐츠 교류로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며 6일 방송은 연초 시청자 서비스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방영 후 ‘남극의 눈물’ 시청률은 11.4%, ‘프로즌 플래닛’ 시청률은 12.8%로 KBS ‘프로즌 플래닛’의 1차 승리로 끝났다.
 

MBC로서는 참으로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일 듯하다. 만약 KBS가 ‘남극의 눈물’ 방영 때마다 1시간 전에 같은 소재를 다룬 남의 나라 다큐를 방영한다면 “‘남극의 눈물’에 대한 인기를 줄이려는 꼼수 의혹을 넘어 상도덕을 어긴 경우”라는 MBC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누가 봐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러한 편성은 지구 환경의 심각성이 아니라 치졸한 시청률 싸움에 몰두하는 방송 환경의 심각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난으로 번지지 않겠는가.

(*이 글은 1월 11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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