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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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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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방송 '나는 딴따라다'가 아이튠즈의 인기 오디오 팟캐스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나는 딴따라다'는 영화감독 김조광수, 공연기획자 탁현민, 개그우먼 곽현화씨가 출연하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1회의 '마초 vs 섹시컨셉 여성 vs 동성애'에 이어 2회 '황상민의 '쑈'인가? 김연아의 '쑈'인가?', 3회 '정치인의 스타일, 대선 후보의 패션 감각', 4회 '성희롱 없는 섹쉬한 민주주의'로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네티즌들의 뜨거운 인기가 계속될 지 두고 봐야 알겠지만, 나는 방송의 내용보다 '딴따라'라는 말을 방송의 제목으로 내세운 그들의 의도에 주목하고 싶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딴따라'는 연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영어의 나팔소리를 뜻하는 의성어인 'tantara'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곡마단 등의 공연을 할 때 관중을 끌기 위해 단원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홍보를 했다. 그 때 행렬의 앞에서는 나팔을 불고 중간에는 단원들이 깃발을 들거나 북을 치기도 했다. 딴따라는 그 때 불던 나팔소리를 본딴 의성어이다.

 

딴따라와 비슷한 말로 '날라리'가 있다. '날라리'는 본디 우리의 전통 악기인 태평소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 시대의 광대 무리인 남사당패는 날라리를 불면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국을 떠돌았다. 남사당패는 천민이었기 때문에 날라리를 부는 사람을 깔보며 하찮게 여기다보니 그 악기 이름 자체가 사람을 깔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국어대사전에는 '날라리'라는 악기에 대한 해설과 함께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식자층에서는 연예인들을 '딴따라'나 '날라리'로 낮추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한류 스타나 연예인들의 성공에 대한 얘기가 우연히 나왔는데 나이 드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그런 현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발언을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연예인에 대한 관념은 어려서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 놀기나 좋아하고 여자들은 패션이나 화장에만 관심이 있던 '날라리'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딴따라'가 되려면 기획사 사장이나 피디들에게 몸을 바치는 등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 그러다 인기 좀 얻으면 술과 마약에 찌들어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그런 '날라리'들이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영웅이 되고 공인이 되어 설치는 세태에 대해 개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 그러한 '딴따라' 연예인들이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들은 연예인들이 대중을 지도할 만한 정치적 식견이나 철학이 없는데도 단순히 인기가 있다고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했다. 아마 대다수의 상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연예인에 대해 선망하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그러한 거부감이 깔려 있을 것이다.

 

'나는 딴따라다'는 그러한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방송이다. 요즘은 연예인들이 천대 받는 시대도 아니고, 그들의 지성이나 인격이 무시당할만큼 일반인보다 뒤떨어진다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요즘은 창의력과 지성이 뛰어난 젊은 인재들이 엄청난 경쟁을 치르면서 연예계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또한 연예인 역시 한명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소신과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시대이다.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분야에 그들은 서슴없이 참여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들의 참여 방식도 다양해져서 정치적인 성향을 띤 '폴리테이너'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셜테이너'를 구분하기도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직업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게 당연하듯 연예인에 대한 편견 역시 변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옛시대의 편견에 사로잡혀 연예인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용감하게 도전장을 낸 '나는 딴따라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딴따라'나 '날라리'라는 단어를 제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응원의 '날라리'를 불고 싶다.

 

(*이 글은 7월11일자 한국일보 김명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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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중에 '효자'가 있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를 효자라고 칭송한다. 그는 결혼한 뒤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부모님 댁 가까운 곳에 살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성실하게 살아 온 그는 직장에 다닐 때에도 퇴근하면 부모님 댁에 먼저 들렸다가 자기 집에 가곤 했다. 퇴직 후에는 집 근처에서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며 매일 부모님 댁에 들러 집안일도 돌보고,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오곤 한다.

그런데 요즘 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숨도 차고 걸음 걷는 것도 힘들어 하시고 치매끼도 생기셨다고 한다. 그게 걱정스러운 그는 더욱 자주 들르고 더욱 오래 부모님 댁에 머무른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씩도 들른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계속해 온 일과이기 때문에 그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부모님 댁에 가는 것을 당연한 일과로 삼아 지내고 있다. 친구들은 요즘 누구도 그렇게 극진하게 부모님을 모시는 아들이 없다며 칭송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은 효자 자격도 없고,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겸손해한다.

그런 그가 남모르는 고민을 나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부모님 댁에 매일 가는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퇴직하고 나서는 그게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은 자기 가족들로부터 점점 '왕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주며 효자를 왕따시키는 가족들이 나쁘다고 비난했더니 뜻밖에도 아내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 편을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친구들 중 '효자 남편'하고 사는 부인들은 시부모 특히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엄청 시달린다는 얘기를 여러 사례와 함께 들려주었다. 어떤 부인은 남편하고 별거하고, 어떤 부인은 홧병으로 시달리고, 어떤 부인은 스트레스로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결혼 전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내는 시부모와의 갈등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런 아내에게 그럼 만약 우리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내가 친구처럼 부모를 매일 찾아 뵙는다면 어쩔 거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 시부모 댁에 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내들이 수두룩한데, 매일 가는 남편을 둔 아내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느냐는 것이다. 함께 안 가더라도 아내의 심적인 부담은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반문을 했다. 그럼 만약 우리 아들이 결혼해서 일주일에 한 번도 안 오고 한 달에 한 번쯤 우리를 보러 온다면 어쩔 거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한 달에 한 번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우리 아들이 엄마한테 매일 문안을 와서 며느리와 가족들에게 미움 받고 왕따 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요즘 그런 아들이 어디 있으며, 기대하는 엄마도 정상이 아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우리 딸의 남편이 될 사위는 자신의 부모님을 얼마나 자주 찾아 뵙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참 어려운 문제"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마 나와 아내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남편과 아내들은 이런 이중적인 가치관 속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아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가정 안에서 점점 병립할 수 없는 갈등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효자'와 '마마보이'라는 호칭의 차이도 애매모호해졌다.

예전에는 사회구성원의 가장 높은 덕목으로 칭송 받던 '효'가 지금은 골치 아픈 문제꺼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효의 기준도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 노인 문제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기대하는 효의 기준과 자식들이 제공하는 효의 기준이 다른 데서 생긴다. 내 친구는 현대의 효자로서 칭송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마마보이로 왕따가 되어야 하는가. 참으로 '효자' 되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 글은 2012년 6월20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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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공동 창립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23일 대전에서 열린 이노비즈 글로벌 포럼에서 '기술 환경에서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방법'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10대 시절에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립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암호 풀기, 복잡한 코드 해독 등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다. 잡스는 워즈니악보다 컴퓨터에 조예가 깊지 않았지만 사업적으로 성공시킬 아이템을 가려내는 탁월한 안목과 고객들이 그 제품을 열망하게 만드는 마케팅의 천재였다. 그런데 대중들은 잡스를 편애했다. 혁신적인 기술을 창조한 워즈니악보다 그 기술을 상품화한 잡스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잡스에게는 '카리스마·혁신·창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애플이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대중들은 오로지 그의 말과 제스추어에 열광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묵묵히 기술혁신에 몰두한 워즈니악은 대중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가 워즈니악이 1980년대 말에 애플을 떠나자 수많은 루머들이 양산됐다. 두 사람의 스티브가 애플의 성공신화를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성격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빚다가 결별하고 원수지간이 됐다는 스토리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워즈니악은 몇 년 전에 펴낸 자서전 <아이워즈>(IWOZ)에서 자신이 애플을 세우고도 말단 엔지니어로 일한 것이나 새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 애플을 나온 것이 잡스와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뒤늦게 '괴짜 천재' 워즈니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중들의 관심도 그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이번 초청도 그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가 강연에서 언급한 몇 가지 문제가 평소 나의 관심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매우 흥미로웠다. 먼저 그는 기술혁신을 예술에 비유하며 "일상에서 얻어지는 예술적 요소, 경험, 수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혁신이며 이런 과정은 일종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 견해와 관련해 창조적 성취를 위해 가져야 할 자세로 그는 자서전에서 '그레이 스케일'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멋진 것을 만들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설정해 놓은 인위적인 틀에서 벗어나 흰색과 검정색 사이에 있는 회색 영역인 그레이 스케일 세상에 살아야 한다"고 한 그의 말은 기술혁신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해 아직 깊은 성찰에 이르지 못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울림을 준다.

 

그는 이어서 혁신을 위한 창의력교육의 관계에 대해 역설했다. 창의적 인재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은 창의력을 계발하는 법을 잃었다는 점"이라 비판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아이디어를 짜낸 교육체계만이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창의력을 길러준다"며 교육체계 혁신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는 애플을 나온 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만큼 인재교육에 대단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미래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자서전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박애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며 수많은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 괴짜 천재 백만장자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권 소송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삼성전자를 상대로 디자인 등록, 사용자환경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삼성전자는 애플이 3G 통신 특허를 침해했다고 맞서고 있다. 삼성과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의 소송에는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쓰이고, 그 비용은 결국 제품 값에 얹어져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특허권은 창의성의 대가로 보호할 가치가 있지만 너무 남용되면 오히려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독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술혁신에서 소홀히 취급되는 예술의 역할, 창의성을 잃어가는 교육제도, 지적 재산권의 남용에 대한 스티브 위즈니악의 의미 있는 경고는 현재 한국 사회의 창의성과 혁신을 위해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글은 5월 30일 자 한국일보 오피니언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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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러쉬'란 말이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이 쓴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라는 책에 나오는 단어다. 전세계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지칠 줄 모르고 예술계로 뛰어드는 현상이 마치 금광을 찾아 몰려드는 '골드러쉬'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만든 말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왜 가난한 것일까? 그것은 예술계가 오로지 1등만이 존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토마토를 100박스 담은 사람은 99박스를 담은 사람보다 1%의 돈을 더 많이 받지만, 육상선수 A가 B보다 1% 빠르면 A는 1%만큼 상금을 받는 게 아니라 모든 상금을 혼자 독차지한다. 이러한 승자독식 현상과 함께 예술가들이 가난한 이유로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선입견, 비금전적인 보상 추구, 위험감수 성향, 자만심과 자기기만 등을 들고 있다. 또 예술가 공급과잉 현상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한다. 승자독식이 가져오는 장밋빛 환상에 이끌려서 젊은 예술가들이 과잉공급되고, 그 결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대거 배출된다. 예술지망생들은 자신이 앞으로 돈을 얼마나 벌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화려한 행운만을 믿으며 발을 디디게 된다. 이러한 예술지망생들을 부추기는 예술학교의 설립과 국가의 지원은 예술가 과잉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메세나라는 부호가 있었다. 그는 막대한 재산으로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오늘날 예술을 후원하는 많은 정부와 기업들이 이러한 메세나의 정신을 이어 받아 예술가들을 후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후원의 혜택은 극소수의 선택 받은 예술가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계의 승자독식을 심화시킨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 더 이상 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예술가들의 경쟁을 왜곡시키며 예술계의 빈곤현상을 심화시킨다.

그렇다면 정부의 지원을 중단해야 할까? 과연 예술이 국민의 세금인 국고를 통해 지원해야 할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또 그 지원은 과연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많은 논란거리를 담고 있다.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의 견해도 다르고, 예술애호가와 예술에 관심이 없는 대중들의 견해가 다르고, 정부의 정책도 미국의 정책과 유럽의 정책과 우리나라의 정책이 서로 너무 다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늘려왔다. 그러나 MB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지원이 줄어들거나 중지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4대강 사업 때문에 문화쪽 예산은 대폭 줄었다. 예술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반갑지 않은 흐름이다.

이 흐름에 대해 예술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예술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예술가가 시장에 적응해 자신의 작품들을 다변화해서 수입의 구조를 다양화시킬 수 있다면,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술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거라는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저자의 결론은 무책임하고 희망은 일방적이다. 시장에 맡겨 살아남는 예술도 있지만 살아남지 못할 예술도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장에 맡겨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시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 수명이 다한 예술로 취급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 중에는 우리가 꼭 간직해야할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지닌 것들도 많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소수민족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데, 사용자가 없거나 줄어들고 있는 언어는 사라지게 내버려둬야 할까? 자, 예술이 스스로 밥 먹고 살 게 시장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과, 예술을 후원하고 지원해 예술을 키워내야 한다는 주장, 어느 쪽이 옳을까? 정답은 없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나 기업이나 정부나 개인들의 선택에 따라 그 추가 좌우로 이동할 뿐이다.
(이 글은 4월 18일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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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번안한 연극 '아버지' 연출을 하느라 매일 대학로의 연습장에서 산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은 이순재, 전무송 선생을 비롯해 40, 50대의 중년 배우들과 20,30대의 젊은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다보니 연습장에서 마치 대가족의 일상과 같은 풍경이 가끔 벌어진다. 젊은 배우들은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싶은데 어른들이 계시니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또 어른들이 연습 시간보다 30, 40분 일찍 와서 대본을 보고 준비를 하시니 모두들 연습실에 일찍 오는 경쟁이 벌어진다.

 



어쩌다 이야기판이 벌어져서 두 분의 젊은 시절 얘기가 나오면 모두들 빙 둘러 앉아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 얘기들이 젊은 배우들에게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다. 60년대나 70년대가 주무대이니 겨우 40, 50년 전의 일인데도 그 시절의 연극 풍경에 대해 너무도 신기해하고 낯설어한다. 그 중 젊은 배우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배고픔'에 대한 얘기다. 차비가 없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터벅터벅 걸어서 연습장에 갔다는 얘기, 안주 사먹을 돈이 없어 '카바이트 깡소주'를 마셨던 얘기, 흥행이 안 된 공연을 끝낸 뒤 출연료를 한 푼도 못 받고 울었던 얘기 등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얘기다. 어느 날 두 분과 비슷한 시기에 연극을 했던 원로 연극인이 오셔서 '호랑이 담배 먹던' 얘기를 한참 하시다가 그토록 힘겨운 환경 속에서 연극의 열정을 불태운 원동력이 '외로움'이었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모두들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왜 연극을 하는지 저마다 사연이 다르고 굶주림에 대한 느낌도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지만 '외로움'이란 단어는 세대를 뛰어 넘어 공감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그런데 이 외롭고 배고픈 연극인들이 대학로의 주인공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젊은 배우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가난한 연극쟁이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그때 대학로의 주인공은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고 마로니에 공원이나 소극장 근처에서 밤새워 예술을 논하던 열정에 가득 찬 연극인들과 그들을 사랑하던 관객들이었다. 그런데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의 대학로 주인공은 상가와 음식점과 카페의 주인들과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손님들인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해가는 대학로의 화려함 속에서 연극인들은 소외감과 초라함을 느끼며 연습실과 극장을 들락거린다. 소극장을 운영하는 연극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학로를 떠나 임대료가 조금 싼 성대 입구나 혜화동이나 성북동 쪽으로 옮긴다. 그래서 요즘은 그쪽으로 소극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극장이 들어선 곳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뒤따르게 되는 법이니 몇 십 년 뒤에는 그쪽도 번화한 상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또 임대료가 오를 것이고 가난한 연극인들은 싼 곳을 찾아 그 곳을 떠날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파리의 몽마르뜨 거리나 뉴욕의 소호에서도 벌어졌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거나 연극을 하는 곳에 관객들이 몰리면 상가가 형성되고, 그 거리가 번화해지면 가난한 예술가는 떠난다. 이 현상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토론토대 비즈니스 및 창조학과 교수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와 창조계급>이란 책에서 도시의 경제 발전과 화가, 연극인, 시인, 음악가, 디자이너, 영화인, 연예인 등 보헤미안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보헤미안 지수'라고 명명했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 140인 중에 들 정도로 왕성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는 그의 연구는 가난한 보헤미안인 연극인들에게도 희망을 던져준다. 자신들의 예술 활동이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잘 살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자긍심도 선사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말의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과연 60, 70년대 선배 연극인들의 외로움과 배고픔이 오늘의 대학로를 만든 원동력일까. 아직도 대학로의 주인공은 연극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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