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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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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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의 페르시아에 하피스라는 위대한 시인이 있었다.

 

그가 죽은 지 420년쯤 뒤 국수적 민족주의로 인한 유럽의 극심한 분열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고향으로 가던 예순다섯 살 괴테의 손에는 동양학자 하머가 번역한 하피스의 시집이 들려 있었다. 괴테는 동방의 신비스러운 지혜와 삶의 건강함이 가득찬 시들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피스여, 그대와, 오로지 그대와/나 겨루어 보련다/신명도 고통도/우리 둘, 쌍둥이처럼, 나누자!"

 

하피스의 영혼과 쌍둥이라 부르는데서 드러나듯 괴테는 그와 시인으로서 경쟁하고 싶은 강한 의욕을 느낀다.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온 괴테는 그의 친지인 은행가 빌레머의 약혼녀 마리아네와 사랑에 빠지고 하피스의 시집을 함께 읽으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자 괴테에게서 아름다운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코 당신을 잃지 않겠어요/사랑은 사랑에게 힘을 주지요/당신은 내 젊음을 장식해 주세요/세찬 열정으로/ 아! 어찌 내 충동을 부추기는지요." (‘줄라이카의 서’ 중)

 

1814년에 나온 ‘서동시집’은 그 사랑의 결실이다. 가인의 서(書), 하피스의 서, 사랑의 서, 성찰의 서, 불만의 서, 잠언의 서, 티무르의 서, 줄라이카의 서, 주막시동의 서, 비유의 서, 배화교도의 서, 낙원의 서 등 12권으로 나뉜 이 시집에는 사랑의 정신적인 교감과 승화, 삶의 지혜, 동방문화에 대한 동경,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애정 등이 담뿍 담겨 있다.

 

그 시들과 함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라는 산문을 통해 괴테는 페르시아의 역사와 문화, 페르시아 시문학, 기독교 구약성서와 배화교 등에 대한 연구를 논술했다. 유럽의 동방 연구는 대개 유럽 중심적 시각으로 이뤄져왔는데, 괴테는 마르코 폴로를 비롯하여 하피스의 시를 번역한 하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동방 수용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동방 문화에 대한 대문호의 이러한 애정은 유대 출신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유대인과 아랍인 청소년 연주자들을 반반씩 선발하여 1998년에 창설한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라고 지은 데에서 알 수 있듯 동서 분쟁이 격화되어 가는 오늘날 깊은 시사성을 지닌다.

 

"북과 서와 남이 쪼개진다/왕좌들이 파열한다/제국들이 흔들린다/그대 피하라/순수한 동방에서/족장의 공기를 맛보러 가라('에쥐르(헤지라)' 중)"

 

시집의 첫머리를 여는 이 시의 내용처럼 ‘서동시집’은 이질적인 타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어떻게 보편적인 문명적 교감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그 전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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