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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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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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여러 면에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비교된다. 둘 다 자기 나라가 배출한 세계적 영화감독이 연출했을 뿐 아니라 주제면에서도 비슷하게 짜여졌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이었던 장이머우는 중국의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꽃 피웠던 시대인 '당나라'의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주제를 장엄한 연출력으로 표현하여 세계인의 시선을 붙잡았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인 대니 보일은 '경이로운 영국'이라는 주제 속에 영국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섬세한 연출력으로 표현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푸름과 유쾌함', '악마의 맷돌', '미래를 향해' 등 3막으로 구성된 개막식은 영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중문화와 접목시켜 친근함과 화려함을 자랑했다. 개막식의 시작은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로 활약 중인 다니엘 크레이그와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열었다. 전통적인 섬 마을 주민들의 일상들이 평화롭게 이어지는 장면에 이어 연극배우이자 영화감독 겸 배우이기도 한 캐네스 브레너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캘러반의 대사 중 '경이로운 섬'에 대한 찬가를 낭송했다. 영국 동화 속에 나오는 악당들이 어린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때 하늘에서 날아 온 어린이들의 유모 메리 포핀스들이 악당을 물리치고,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엔 롤링이 <피터팬>의 첫 구절을 낭송했다. 또 영화 '미스터 빈'으로 널리 알려진 희극배우 로완 애킨슨이 영국 육상 선수의 실화를 그린 영화 '불의 전차'의 주제곡을 연주하는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 옆에 앉아 재치 있고 익살 넘치는 연기를 했다. 피날레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등장해 '헤이 주드'를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트레인스포팅'과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 대니 보일은 480억원의 예산으로 1만5,000여명의 배우와 무용수, 7,500여명 자원봉사자와 함께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문화자산을 총동원해 개막식을 연출했다. 현대적인 영상 기법 속에 영국적인 감성을 잘 녹여내고, 웅장한 가운데서도 위트를 잊지 않은 연출력은 역시 대니 보일다웠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자국의 문화 역량을 전 세계에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따라서 영국인인 대니 보일이 개막식을 통해 자국의 문화를 최대한 뽐낸 걸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중국인인 장이머우가 중국의 문화를 한껏 뽐낸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소수민족 어린이(그 속에 조선족 어린이도 있었다)들의 떠받듦 속에 오만하게 올라가던 오성홍기 속에서 꿈틀대는 중화제국주의의 꿈에 대해 경계심을 피력했다. 과연 지금의 중국은 소수민족들을 통제하고 주변국을 핍박하는 패권국가로 바뀌고 있다.


4년 전 장이머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당(盛唐) 문화는 중화 문화의 최고봉이다. 성당은 군사적으로도 세계 최고였다. 곧 중화의 문명이 성당처럼 불끈 일어나 세계인의 긍지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니 보일은 공식 인터뷰에서 "영국이 산업사회의 시발점이었다는 점과 산업화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점을 알리려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공장의 굴뚝이 우람하게 솟아나는 산업화의 현장 묘사와 함께 굴뚝에서 솟아올라 공중에 높이 떠오른 5개의 원형 형체가 오륜기로 만들어지는 퍼포먼스로 구체화됐다. 정치적인 관점은 배제했다고 본인은 강조했지만 나는 그런 장면 속에서 꿈틀대는 대영제국의 정치적 꿈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 과연 영국인인 대니 보일이 보여 준 '경이로운 영국'의 꿈은 무엇일까? "두려워하지 마라. 섬 전체가 즐거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캘리번의 대사를 곧이곧대로 들어 줄 수 있을까. 그 강력한 문화콘텐츠의 '즐거운 소음'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경이로운 영국의 꿈'에 대해 나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8월 1일 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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