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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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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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와 검찰이 잇단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법부를 향해 화살을 쏘자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재조명되면서 불신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그런 와중에 이 사건의 항소심 주심이었던 이모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당시 재판부는 애초에 만장일치로 김 전 교수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는 쪽으로 합의했으나, 이후 김 전 교수 주장에 모순점이 발견되어 패소로 판결하게 됐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대법원은 이 판사에 대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석방 판결로 인한 몸살도 만만치 않다. 검찰은 '화성인 판결'이니 뭐니 하며 재판부를 비판했고, 보수 단체 회원들은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집을 향해 계란을 집어 던져 불만을 표출했다. 사법부만 몸살을 앓는 게 아니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는 악역으로 묘사된 검사가 나온다.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악의 무리'인 조폭들을 잡아들였던 검사들은 자신들을 조폭보다 더 악질적으로 그린 영화에 대해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판사, 검찰, 경찰 등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직업군이다. 그런데 그 동안 권력의 높다란 성채에 싸여 있던 이들의 권위가 여지없이 깨어지고 조롱 받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에도 재판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나뉘는 집단들이 그들의 권위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떠나 대규모로 불만을 터뜨린 경우는 많지 않았던 듯하다. 그리고 사법부 내부에서 서로 분열된 목소리를 내거나, 검찰이 사법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참다 못한 대법원은 1월 27일 '최근 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발표했다. 먼저 영화 '부러진 화살'은 "기본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라고 규정한 뒤, 최근의 사태들에 대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법관들 역시 "건전한 비평을 넘어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법부과 검경 조직에 대한 불신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 불신의 씨앗은 그들 스스로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부와 검경 조직이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정권과 독재정권을 지내오는 동안 권력의 편에서 법의 잣대를 휘둘러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수많은 시국사건과 인권 관련 재판에서 정의와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판결들로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해 온 것은 아직까지 사법부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데 법률가에 대한 불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인 듯하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법이란 것은 불치의 병처럼 유전되어 가지. 시대에서 시대로 승계되며,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동안에 합리가 불합리로 바뀌고, 어진 정치가 변하여 폭정이 되기도 한다"고 조롱했고, 셰익스피어는 <헨리6세>의 2부 4막 2장에서 "모든 법률가는 죽여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류의 조롱과 불신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최근 국민들이 사법부나 검경 조직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법률적 결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률가들 스스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거나 유감스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도전하는지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법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정성'이란 원칙에서 벗어나 그 동안 자신들이 범해 온 잘못된 관행과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 엄격한 칼을 들이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더욱 깊어가는 조롱과 불신의 늪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2월 17일자 한국일보 '김명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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