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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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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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물 시리즈’의 애청자다.

‘북극의 눈물’로 시작해 ‘아마존의 눈물’을 거쳐 ‘아프리카의 눈물’을 넘어서 남극까지 온 이 자연다큐 시리즈는 눈물과 감동의 대하드라마다. 단순히 추운 극 지대나 대륙의 오지를 필름에 담았다고 감동을 받은 게 아니다. 아마존의 오지에서 독충에 물려 다리가 부어오르고, 남극의 추위로 뺨에 동상이 걸리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황폐해져 가는 지구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제작진의 목숨을 건 뚝심과 치열함이 없다면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방영되는 ‘남극의 눈물’(연출 김진만 김재영) 편 또한 1년여 동안 남극의 얼음 위에서 목숨을 건 촬영으로 남극동물들의 생태를 담았기에 또 한 번 감동의 폭풍에 휩싸일 수 있었다. 그런데 호사다마인가. 12월 23일의 프롤로그 방송부터 당혹스러운 논란이 일었다.

일본 쇼와기지의 남극 출항 과정을 소개하면서 ‘욱일승천기’를 보여준 게 발단이었다. 욱일승천기는 1889년 일본 해군의 군함기로 지정된 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 된 깃발이다. 그 깃발이 나온 화면과 함께 “패전의 아픔 속에 일본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남극에 진출했다”는 내레이션 부분도 논란이 됐다.
 

방송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남극의 눈물’이 아니라 ‘일본의 눈물’을 방송하나?”, “위안부 할머니가 보시면 기절할 패전의 아픔” 등과 같은 비난 글이 쇄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제작진은 MBC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이 해상자위대 깃발(일명 욱일승천기)을 단 군함을 남극에 보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현재적으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일본이 국가적으로 남극대륙을 향해 가진 강한 집념과 의도를 상징한다. 저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의미에서 방송에서 등장을 시켰고 이 질문에 대해서는 4부 ‘인간, 그리고 최후의 얼음대륙’ 편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고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왜 우리가 과거의 잘못도 반성하지 않는 나라에 패전의 아픔까지 동감해야 하는 건가?”, “사과는 절대 안 하고 자신들이 옳다고만 주장한다” 등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는 글들을 올렸다. 아무리 분이 나더라도 아직 4부가 방영되지 않았으니 이 문제는 4부를 본 다음에 따지는 게 옳을 듯싶다.
 

그런 논란 가운데 1월 6일 밤 11시에 1부 ‘얼음대륙의 황제’ 편이 방송됐다.



황제펭귄의 짝짓기부터 새끼를 키워내는 경이로운 과정과 새끼를 향한 황제펭귄의 놀라운 부성애,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허들링 등 자연다큐라기보다 휴먼다큐와 같은 감동으로 수많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당혹스러운 상황이 생겼다.

KBS 1TV가 6일 밤 10시에 BBC의 ‘프로즌 플래닛’(Frozen Planet)을 방영한 것이다. BBC의 ‘플래닛’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지구자연 다큐멘터리다. KBS 측은 “공영방송 간의 콘텐츠 교류로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며 6일 방송은 연초 시청자 서비스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방영 후 ‘남극의 눈물’ 시청률은 11.4%, ‘프로즌 플래닛’ 시청률은 12.8%로 KBS ‘프로즌 플래닛’의 1차 승리로 끝났다.
 

MBC로서는 참으로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일 듯하다. 만약 KBS가 ‘남극의 눈물’ 방영 때마다 1시간 전에 같은 소재를 다룬 남의 나라 다큐를 방영한다면 “‘남극의 눈물’에 대한 인기를 줄이려는 꼼수 의혹을 넘어 상도덕을 어긴 경우”라는 MBC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누가 봐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러한 편성은 지구 환경의 심각성이 아니라 치졸한 시청률 싸움에 몰두하는 방송 환경의 심각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난으로 번지지 않겠는가.

(*이 글은 1월 11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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