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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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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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도청의혹 사건’이 증거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결정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사건의 발단은 KBS의 수신료 인상안이었다. 한나라당의 인상안에 합의해 줬던 민주당이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합의를 뒤집자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 한선교 의원이 민주당 최고위원회 ‘녹취록’을 공개했고, 그에 대해 도청 공세가 이어졌다.

민주당은 KBS 장모 기자를 도청 용의자로 지목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그러나 장 기자는 민주당의 문제제기가 나온 직후인 6월 27일의 회식에서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분실했다고 진술했고, 그 후 3차례의 소환 조사에서도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한 의원도 국회 회기 중이라는 이유로 계속 소환에 불응하다가 “처음 보는 사람이 문건을 건넸고 지금은 갖고 있지 않다”는 서면 답변으로 혐의를 부인했다.

누가 봐도 증거인멸 혐의가 짙은 분실이고, 앞뒤가 안 맞는 황당한 답변이었지만 그들의 진술은 인정되었다. 경찰은 “장 기자의 자백이나 도청 목격자, 녹음기 등 직접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한 의원에게 (민주당 비공개회의 녹취록이) 전달된 경로도 입증하지 못했다”며 수사 종결을 발표했다.
 
참으로 어이없고 무성의한 수사결과다. 촛불집회나 노동자 시위 등 시국사건에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참가자들을 잡아내는 ‘유능한’ 경찰이 이 사건에서는 늑장 수사와 증거확보 실패의 ‘무능한’ 경찰로 변신했다. 애당초 수사의지만 있었다면 증거확보도 가능했고, 관련자들의 조사를 통해 진실을 쉽게 밝혀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이 미궁에 빠진 것은 정치권력이나 언론권력과 관련된 경찰의 눈치보기가 드러난 결과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KBS 사측은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KBS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불법행위에 관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KBS 직원들은 의미심장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 7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자체 조사에서도 ‘회사 쪽의 입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응답이 96%에 이르렀다. 여론은 더 싸늘하다.

언론들은 경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하고 있다. 11월 2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는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초유의 국회 도청의혹 사건은 의혹만 키워놓은 채 또 하나의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고 했다. 동아일보 역시 3일 ‘기자의 눈’에서 “분명 누군가가 도청을 해 문건까지 만들었는데 도청한 사람은 없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는 3일 성명에서 “이제 남은 방법은 국회에서 특별검사를 임명해 도청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민주당은 7일 ‘국회 민주당 당 대표실 불법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동안 민주당은 이 사건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해왔지만 행동은 말만큼 강경하지 못했다. 수신료 인상안에 합의했다가 번복하는 과정부터 떳떳하지 못하더니 진실 규명을 위해 거대 언론인 KBS와 싸우는 것에 부담을 느껴 눈치를 본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 특검법안의 관철과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의혹에서 벗어나 신뢰를 쌓는 길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도 특검법 발의에 지체 없이 응해야 한다. 자기 당 의원이 관련되어 있다고 해서 특검을 가로막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불신과 비판을 받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잠시 가릴 수는 있지만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 미국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거짓말하는 권력에 분노하여 끈질기게 의혹을 파헤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 같은 ‘진실의 수호자’가 지금 우리 사회의 어디엔가에서 끈질기게 ‘국회 도청의혹’을 파헤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11월 8일자 기자협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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