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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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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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방에 다닐 일이 많다보니 고속도로 휴게실의 할인서점에서 4,000원이나 5,000원에 좋은 책을 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얼마 전에도 법정스님의 산문집 <오두막 편지>를 발견하곤 얼른 샀습니다. 하얀 책 표지에 까만 글씨, 붓선으로만 그려진 조촐한 공양 그릇 하나, 마치 스님의 편지 한묶음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 전기도 들지 않는 깊은 오두막에서 스님은 개울물을 길어다 밥을 해먹고 장작을 패서 불을 지피고 차를 달입니다. 그리고 예불하고 참선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세상을 향해 편지를 썼습니다. 단순하고 충만한 삶을 산 스님이 순수한 정신과 영혼의 언어로 쓴 편지들은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두막의 일상을 그릴 때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우리 사회에 쓴소리를 던질 때는 열정적이고 서슬이 퍼렇고 패기가 넘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어조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예불을 마치고 뜰에 나가 새벽달을 바라보았다. 중천에 떠있는 열여드레 달이 둘레에 무수한 별들을 거느리고 있다. 잎이 져버린 돌배나무 그림자가 수묵으로 그린 그림처럼 뜰 가에 번진다. 달빛이 그려 놓은 그림이라 나뭇가지들이 실체보다도 부드럽고 푸근하다.



스님은 이처럼 아름답고 소박한 오두막 생활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킵니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속에 발을 담고 살아가는 우리의 눈을 자연과 우주로 넓혀 줍니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스승의 모습이 글 속에 오롯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님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노래 부르는 스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별밤 아래서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노래를 불렀다. 곁에 들을 사람이 없으니 마음 놓고 18번, 19번을 죄다 쏟아 놓았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즉흥적으로 작사, 작곡을 해서 부른다. 그날 있었던 일을 오페라 가수처럼 노래로 부르고 있으면 아주 즐거워진다. 반주는 시냇물 소리가 알아서 해준다......<뜰에 해바라기가 피었네> 중


이어서 스님이 ‘오두막이 들썩거리도록’ 창을 부르곤 했다는 대목에선 추임새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나서 한때는 입버릇처럼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불렀다. 한참을 부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퍼져서 목소리가 촉촉이 젖을 때도 있었다......



별빛 쏟아지는 산속의 암자에서 독경이나 염불이 아닌 유행가나 창을 목이 터져라 불러대며,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저는 너무도 스님이 그리워졌습니다. 이런 줄 진작 알았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불원천리 찾아가서라도 스님과 마주 앉아 밤새도록 판소리를 부르다 올 걸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아직도 법정스님의 글을 그리워 할까요? 바로 이런 스님의 인간적인 빛과 향기가 우리를 감동시키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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