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블로그 이미지
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 2,617,543Total hit
  • 34Today hit
  • 86Yesterday hit

가을 공기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 아침, 문득 생각나는 분이 계십니다.

지난 8월 27일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 선생입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아주 오래 전인 199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생님은 어느 출판사에 편집인으로 계실 때, 무명 연극배우이며 무명 글쟁이인 저의 글들을 모아「꿈꾸는 퉁소쟁이」라는 수필집을 출간해주셨습니다. 

생애 첫 수필집을 만든 저자와 출판인으로 만난 우리는 판소리와 우리말과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저보다 다섯살이나 많은 선배셨지만, 동생처럼 허물없이 대하시며 술도 마시고 노래와 판소리도 부르며 종종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책이 나온 얼마 뒤 미시간 주립대학에 비교문학을 연구하러 가시는 통에 한동안 소식이 뜸했습니다. 그러다가 「서편제」가 개봉되고 그 열기가 미국까지 전해지자 선생님의 주선으로 미시간 주립대학의 한국학 대회 행사에 초청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그곳에서 저와 함께 지내며 겪었던 에피소드가 1999년에 펴내신「어른의 학교」란 수필집 중 <보아야 보이는 것들> 이란 글에 실려 있습니다. 돌아가신 뒤 다시 읽어보니 그분과의 추억에 눈시울이 붉어지는군요.

  

93년 여름, 서편제의 명배우 김명곤이 내가 머물고 있던 미국 중서부로 날아와 통일기원굿, 판소리, 민요판굿 등 아주 재미있는 공연을 보여준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글은 공연의 성공과 저에 대한 과분한 격려의 말들로 서두를 장식한 뒤, 우리의 여행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공연을 마친 뒤 선생님과 사모님, 아들 가람이, 딸 다희와 함께 봉고차를 타고 미시간에서 시카고, 뉴욕까지 이틀 동안 4천리나 되는 길을 여행했습니다. 비행기로 가면 간단했을텐데 굳이 모텔 방에서 잠까지 자면서 긴긴 자동차 여행을 한 이유에 대해 사실 저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때 저는 운전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굳이 그 길을 택한 이유를 선생님의 글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상당히 토종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의 체험에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어쩐지 막막한 느낌, 한 개인의 경험 속으로 쉽게 편입되지 않을 느낌 하나를 억지로 더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에게 새로운 느낌 하나를 더해 주려는 선생님의 깊은 배려로 막막한 미국 중서부 대평원을 '억지로', '신물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걸 '좋은 버릇'이라 칭찬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큰 스테이크를 준 어느 식당을 '장모집'이라고 이름 짓기도 하며 엉터리 영어로 웨이트리스와 얘기도 나누는 제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관찰하신 모양입니다. 

......그는 영어를 하기는 해도 유창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동안 50대의 웨이트리스를 친구 삼는 것은 물론, 배를 잡고 웃게 만들기까지 하는 걸 보니, 연기하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싶더군요.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원초적인 수단 같은 것을 깨치지 않은 바에 그러기 쉬운 것 아니지요......

정말 하루종일 가도가도 끝이 없는 평원을 달리는 차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저는 공연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탓에 조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채 조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깨어 있을 때는 선생님이나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 중 저는 잘 기억하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통해 멋지게 되살아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동차 안에서 내 아들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무대에서 절름발이 연기를 하자면 (다리를) 저는 사람을 잘 관찰하고, 절뚝절뚝 저는 시늉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저는 사람이 어디 흔하냐? 어느날 나는 저는 사람을 관찰할 생각으로 종로 2가에 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세상에.......저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도 많으냐?  종로 바닥이 저는 사람 천지로 보일 지경이더라. 큰 수 하나 배웠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게 되고 보니, 종로에 나가도 저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마음에서 멀어지니까 눈에서도 멀어진 것이다. 나는 큰 수를 또 하나 배웠다. 나는 연습 때마다 단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한다. 보아야 보인다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김명곤의 메시지는 명약관화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깨어 있자는 것이겠지요. 깨어 있어야 보인다는 것이겠지요.

김명곤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됩니다.

'.....소리를 하든, 연기를 하든, 연출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 아니다. 나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더라. 자기 하는 일에 깨어 있더라는 것이다. 저금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에게는 못 당한다는 옛말이 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조금씩 쌓아가는 전문성, 그걸 무슨 수로 당하겄냐....'

깨어 있는 상태에서 보아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보이는 것은 그 깨어 있는 상태에서 쌓아가야 한다....오하이오 주의 평원을 지나면서 그가 한 이 말이 그 뒤로도 우리 집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울리게 됩니다. 내 아들딸에게 김명곤의 말은 한동안 화두 노릇을 너끈하게 하더라구요.

출처 : http://songrea88.egloos.com/3081557
 
사실 저의 평범한 말들은 선생님의 생각과 글을 통해 멋지게 되살아났습니다. 

선생님은 글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생각을 실천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은 '깨어 있는 전문성'으로 번역과, 소설 창작과, 신화학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신 분이니 무슨 수로 당하겠습니까?
 
온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파안대소하며 흘러간 노래도 열창하고, 도저한 이야기의 강물 속으로 좌중을 익사시키시던 선생님의 달변과 흥과 신명이 그립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8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06)
예술이야기 (55)
세상이야기 (52)
나의 이야기 (57)
책이야기 (50)
신화이야기 (6)
문화이야기 (46)
명인명창이야기 (40)

CALENDAR

«   2018/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