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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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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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정사회'란 단어가 화제입니다.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앞으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언급한 뒤, 곳곳에서 '공정사회'란 말이 횡행합니다. 총리-장관 후보자 3명의 낙마와 현직 외교장관의 경질 사건에도 공정사회란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공정'을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니 '공평하고 올바름'이라 설명되어 있고, 한영사전에는 'Justice' 또는 'Fairnes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What’s the Right Thing to Do?)」란 책의 열풍도 만만치가 않네요. 그 책은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꼽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학 강의를 발전시킨 책입니다.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으로 꼽히는 이 강의에서 학생들은 “정부는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진실을 말하는 게 잘못된 경우도 있는가?”, “살인이 도덕적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는가?”와 같은 까다로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 학생들은 신문에 보도되는 뉴스들이 정의에 대한 다양한 철학이나 사회학의 이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정한 사회'의 개념에 대해 지난 7일 청와대 대변인이 개념을 설명했더군요.

그에 따르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회,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사회적 책임을 지는 사회'였습니다. 또 공정한 사회가 이뤄지면 이명박 정부는 無 게이트 , 無 스캔들, 無 매너리즘 즉 ‘삼무(三無) 정권’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정사회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수사적입니다.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넘어 갈까요?

이 책에도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은 없습니다. 이 책의 목표는 미리 만들어진 해답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나 독자들에게 무책임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저자는 미국 사회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현상들에 대해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먼저 미국 사회의 가치를 규정해온 것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인데 저자는 공리주의와 자유주의가 다른 가치를 너무 압도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에 정의의 불균형이 생겼다고 지적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유시장 사회’로 변화했습니다. 따라서 시장이 요구하는 가치가 공정성과 정의에 바탕을 둔 여러 가치들을 압도했습니다.

이 때문에 상품화될 수 없는 가치나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가치들이 미국 사회에서 경시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또 미국 사회의 지나친 개인주의가 공동체 의식의 쇠퇴를 가져 오고, 그 때문에 개인과 국가와 공동체 사이에 불균형이 생긴 점도 비판합니다.
 
저자는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삶’과 ‘공동선’,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categorical imperative)’ 등을 동원합니다.

이 책의 미덕은 관념적이거나 수사적이지 않고 현실 사회에서 선택된 사례를 간결히 제시하고, 그 논점에 한해서 집중적으로 토론한다는 점입니다. 그 범위 또한 방대해서 소수집단 우대정책, 대리 출산, 낙태, 동성혼, 징집, 지원군 등 사회 전반에서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정의로운 사회'란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하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자, 다시 공정사회로 돌아가 볼까요?

그동안 MB 정부는 4대강사업, 언론악법, 고위 공직자의 부패, 전 정권 기관장들에 대한 강제 해고, 부자감세, 빈부격차의 심화, 공권력 집행과정에서의 인권침해, 과거사 바로잡기 외면, 천안함 의혹, 세종시 문제 등 수많은 이슈들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진 국민들과 첨예한 대립으로 일관했습니다.

이 모든 이슈들은 우리 사회의 불공정함에 대한 사례들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유주의 가치관이 몰고 온 부작용들입니다. 이 문제들에 대한 속시원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 대한 응급처방으로 '공정사회'란 개념을 꺼냈다면, 최소한 그 사회로 가기 위한 청사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청사진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듯이 최소한 국민들에게 질문을 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통한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 볼까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일반인 사이에서 정의와 공동선에 관련된 질문에 배고픔과 갈증이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양한 가치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이를 통해 공공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도덕적 분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번째 단계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정을 독점하려 들지 말고 무엇이 공정한 사회인지 서로 다른 의견들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 '도덕적 분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공정사회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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