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블로그 이미지
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 2,090,599Total hit
  • 36Today hit
  • 246Yesterday hit

지난 주에 대만의 고산족 마을과 인도 뉴델리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초청 공연을 위한 사전 답사 여행이었습니다. '대만편'에 이어 '인도편'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인도!
나의 성씨인 김해김씨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태어난 곳!
신라승 혜초가 1300년 전 4년 동안 외로운 구도의 여행을 한 뒤 <왕 오천축국전(往 五天竺國傳)>이란 불후의 여행기를 남긴 곳! 
성경의 15배나 되는 인류 최고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라마야나>가 이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해 내려 오는 곳!
젊은 시절부터 너무도 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뒤늦게 인연이 닿아 중년의 황혼기에 찾게 된 곳!
수많은 시인들과 철학자들과 예술가들과 명상가들에게 영감의 젖줄을 제공해 주는 곳!
 
오래 전부터 인도의 신화와 음악과 예술에 심취되어 있던 저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타이페이 공항에서 델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타이페이에서 홍콩을 경유, 델리 공항까지 거의 10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 갇혀 있다가 공항밖으로 나오니 무더운 열대의 공기가 확 밀려 들더군요. 하지만 건기라서 그런지 후덥지근하지 않아 오히려 따끈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도착했기 때문에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잠을 잤습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호텔 방 밖으로 뉴델리의 나즈막한 시내 풍경이 이국적으로 펼쳐지더군요.
 


둘째날은 하루 종일 뉴델리 시내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문화탐방을 했습니다. 먼저 뉴델리를 방문한 사람들은 반드시 둘러보고 간다는 '인디아 게이트'로 향했습니다. 2차 대전 때의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 놓았다는 인디아 게이트는 한창 보수 공사 중이더군요.


주변에 널찍한 공원이 펼쳐져 있는 인디아 게이트에서 직선으로 연결된 도로 끝에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사당과 정부 청사등 여러 관공서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저는 권위적인 그 건물들보다도 공원 여기저기에서 물건도 팔고 구경도 하는 남루한 서민들의 모습에 눈길이 가더군요.



현대와 전통, 가난과 부유함, 흙먼지와 최첨단 산업 등 극과 극이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는 오늘날의 인도는 거센 변화의 용트림을 틀고 있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장터에서도 볼 수 있었던 '신기료 장수'가 앉아 있는 골목 바로 뒤에 멋진 현대식 디자인으로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이 서 있었습니다. 마침 수백 년 전의 전통 민화에서 근현대 작가의 작품들까지 한 눈에 펼쳐 놓은 '인도 회화의 흐름전'이 전시되고 있더군요. 한 작품 한 작품이 매우 독특하고 처음 보는 작품들이어서 오랫만에 눈이 호강을 했습니다.   



점심으로 아담한 인도식 식당에서 북인도식 전통 음식을 먹었습니다. 의외로 음식이 맛깔스럽고 소스도 우리 입맛에 잘 맞더군요. 식당 안의 손님들이 모두 음식을 손으로 먹길래 우리도 문화 체험을 위해 손가락으로 먹어 보았는데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옛날 우리 엄마들이 김치 가닥을 손으로 쭉쭉 찢어 밥에 얹어 먹던 맛이 바로 이런 맛 아닐까요?



혼잡한 시간에 자동차로 시내를 오고가다보니 인도의 차도는 차선이 거의 지켜지지 않더군요. 사람과 자전거와 모바일차와 자동차가 서로 엉켜서 다니는 통에 끼어들기는 보통이고, 차선 외의 길로도 사정없이 비켜 가고, 심지어 어떤 차는 반대 차선을 넘어 역주행도 서슴치 않더군요. 처음에는 가슴이 덜컹거리며 겁이 났지만, 그게 인도의 자동차 문화라니 빨리 적응하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을 듯해서 될 수 있으면 창밖을 보지 않고 얘기를 나누며 <국립 연극원>에 당도했습니다.



외국인들까지 포함해서 전국에서 모여 든 학생들이 거의 국비와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졸업생들이 대부분 유명한 배우나 연출가로 활동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다는군요. 방학 중인데도 학교 교정 한쪽에서 땀흘리며 연습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방학도 미팅도 데이트도 없이 연극에 미쳐 보낸 제 대학 시절이 그리워지더군요.  



국립 연극원과 바로 한 건물처럼 이어져 있는 <국립 까탁 무용원>을 둘러봤습니다.



마침 안내 겸 통역을 해주시는 김은정씨가 그 무용원에서 10여년 간 인도의 전통 춤을 공부하고 계시는 분이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가 초청하려는 예술가들이 바로 '까탁 춤'의 대가들이기 때문에 사전 조사 차원에서 대단히 유익했습니다.

‘까탁Kathak’은  ‘까타’라고도 하는데 ‘이야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인도의 전통 무용 중에서 독특하게도 이야기와 무용이 함께 어울어져서 즉흥적으로 연희되는 춤입니다.
먼 옛날 힌두사원에서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와 같은 힌두신들의 서사시를 소리꾼이 옆에서 노래를 하며 이야기를 낭송하면 음악가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무용가는 그 내용에 맞는 몸짓으로 그 긴 이야기를 표현했는데, 수천 년 내려오는 동안 그 몸짓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고 상징적으로 다듬어져서 몸으로 이야기가 가능한 상태까지 된 것입니다.



고목이 늘어 서 있는 까탁 무용원의 교정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남녀 무용수들의 모습이 무척 정겹게 보였습니다. 



김은정씨의 안내로 저녁에는 <젊은 무용수의 밤(A Young Dancer's Festival)> 공연을 봤습니다.



몇몇 유파의 무용 명인에게 배운 제자 중 가장 뛰어 난 젊은 제자들에게 발표 기회를 주고, 앞으로의 대성을 위헤 마련한 공연인 듯 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도의 모든 극장은 '무조건 무료'라는 겁니다. 티켓을 살 필요도 없고, 예매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극장에 가서 아무데나 앉아서 보고 오면 된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이나 돈이 많이 드는 공연도 일종의 공연진흥센터 같은 데서 지원을 해서 무료로 공연한다니, 인도의 경제력을 볼 때 그 예산의 규모와 지원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매우 흥미롭더군요. 나중에 차분히 알아 볼 생각입니다.



게다가 공연 전에 관계자가 나와서 인사말을 한다든지, 공연 중에 사진을 맘대로 찍을 수 있다든지, 우리의 공연 질서와는 너무도 다른 극장 문화에 놀랐습니다. 마치 예전 우리 시골의 가설무대 분위기였습니다. 그동안 세계 여러나라의 극장을 다녀보고 공연도 봤지만 정식 극장에서 그토록 자유분방하게 관람하는 문화는 처음이었습니다. 실제로 공연 중에 사진을 찍는 건 물론이고, 도중에 일어나서 나가는 관객 때문에 공연  분위기가 산만해지더군요. 관객에게는 너무도 편안한 문화지만, 공연자들에게는 매우 힘든 관람 문화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다음날, 드디어 올해 <전주 세계 소리축제> 인도 초청공연을 후원하는 <인도국제교류센터(ICCR)> 사무실에서 ‘까탁’ 춤의 대가인 판딧 비르주 마하라즈 명인을 만났습니다.



장난끼 많은 얼굴에 아담한 키의 마하라즈 명인은 대대로 내려오는 까탁 춤의 명인 집안에서 음악과 무용을 배웠고, 스스로 다양한 창작도 해 오신 대가입니다. 이미 칠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을 하시니 전통 예술가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계시다고 합니다.

제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마하라즈 명인의 제자이며 안무가인 샤스와티 센 명인이 자신이 이끄는 20여명의 무용단이 펼칠 공연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더군요. 두 분 다 한국 공연이 처음이라 잔뜩 흥분해 있고, 기대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하라즈 명인은 대화에 깊이 끼어들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가끔 웃기나 하고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뭔가를 끄적거리기도 하더군요. 샤스와티와 우리가 아주 기분 좋게 이야기를 마치니 마하라즈 선생이 종이를 쓱 내미는데 저와 소리축제 기획자 한지영씨의 얼굴을 스케치한 그림이었습니다. 종이 뒤편에는 방금 적은 즉흥시를 썼다는데 내용이 뭔지 물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이토록 그림과 시와 음악과 무용 모든 부분에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감각을 아직도 잃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머와 위트가 번뜩여서 공연할 때 사람들을 즐겁게 웃기는 걸 좋아하는 매우 순수한 영혼을 가진 예술가였습니다. 두 분은 우리를 무척 좋아한다는 표현을 멋진 몸짓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10월 1일 전에 전주에서 만나 연습할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한 번 가면 반드시 또 가게 된다는 인도. 하지만 언제 다시 밟게 될 줄 모르는 인도의 땅을 아쉽게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2 AND COMMENT 18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06)
예술이야기 (55)
세상이야기 (52)
나의 이야기 (57)
책이야기 (50)
신화이야기 (6)
문화이야기 (46)
명인명창이야기 (40)

CALENDAR

«   2013/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