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블로그 이미지
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 2,090,561Total hit
  • 244Today hit
  • 210Yesterday hit

지난 주에 대만의 고산족 마을과 인도 뉴델리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초청 공연을 위한 사전 답사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총감독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소리축제 개막공연 <천년의 사랑 여행(가제)> 중 2부에서 중국 소주 곤극단, 캄보디아 왕실 예술단, 인도 전통 무용단, 대만 고산족의 민요 등이 우리 출연자들과 함께 출연하고, 특별 공연으로 각 나라들의 개별 공연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협의할 사항들이 많아서 가게 된 것입니다. 우선 '대만편'을 올리고, 다음에 '인도편'을 올리겠습니다.

대만 여행에는 경희대학교의 호텔관광 경영학과 교수인 윌리엄 헌터씨 부부가 안내 및 통역으로 동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헌터의 아내인 브루산 바사젠느씨가 바로 대만 고산족 중의 한 부족인 '루카이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번 공연과 관련되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인 헌터 교수가 대만 대학 재직 중에 서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제주 대학으로 옮긴 남편을 따라 제주 생활 4년, 서울 생활 1년을 보내고 있던 터에 저희와 인연이 닿아 공연 초청을 위해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오전에 타이페이 공항에 내려 고속열차를 타고 카우슝에 도착, 거기서 임대 봉고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첩첩산중 '우타이' 마을에 도착하니 거의 저녁이 다 되더군요.



해발 1천 미터 이상의 깊은 산골에 사는 고산족 원주민은 대만 전체에 14개 종족 20만 명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400년 전쯤 중국 본토에서 '한족'과 '하카족'이 건너오면서부터 이 땅의 지배자에서 피지배자로 밀려난 그들은 산골에 뿔뿔이 흩어 살며 그들의 독특한 언어와 풍습을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루카이족은 약 1만 명쯤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우타이(霧台)' 마을에는 3천 명쯤이 살고 있고 이웃 산골에도 3천 명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오지 탐험 프로그램에나 나올듯한 원시적인 마을을 상상했는데, 아주 멋스러운 전통 가옥과 현대식 가옥이 함께 어울어진 마을의 풍경에 놀랐습니다.



마을 건너 산에는 선녀가 내려 와서 목욕할 것 같은 길다란 폭포가 걸려 있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마을 아래 펼쳐져 있더군요.



예전에는 산 아래로 내려가는 산길을 머리나 등에 짐을 이고지고 하루종일 걸어 다니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는데, 10여 년 전부터 찻길이 뚫려 봉고나 승용차가 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산길이 좁고 위험해서 버스는 다닐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후 변화 때문인지 2005년도부터 태풍 피해가 갑자기 심해져서 길이 파손되고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기도 하는 대형 재해가 매년 발생했답니다. 그래서 한 해 20만 명이 넘게 찾아오던 관광객이 뚝 끊어지는 통에 주민들의 걱정이 태산이라는군요.

산사태로 여기저기 무너진 산의 모습.

헌터 교수 부부의 만남과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와 대만 원주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마을 구경을 한 다음, 그들이 방학 때마다 몇 개월 씩 10년 동안 직접 돌과 흙을 져 나르며 지었다는 집도 살펴보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시아에 심취해서 캐나다의 고향을 떠나 아시아 여러 나라를 떠돌며 미술과 조각과 여행과 연구와 강의로 살아가는 헌터의 내력이 궁금해 자세히 물어봤더니 그에게도 캐나다 인디언 원주민의 피가 섞여 있다더군요.

산골 고향에 오자 생기가 돌아 연신 자기 마을의 곳곳을 안내해주고 기뻐하는 브루산의 모습을 보니 두 사람 다 이 높고 높은 땅과 전생의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브루산이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부족의 전통 의상과 자수를 전수해 온 명인입니다. 그녀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브루산 자신까지 3대에 걸쳐서 그 솜씨를 이어오고 있답니다.



브루산의 어머니가 만든 옷입니다.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솜씨가 정말 인간문화재급이더군요.



마을에 여관이 없어서 민박을 준비했다며 안내한 민박집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집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기자기한 정원이며 집안 곳곳에 놓여 있는 조각상들이 예사롭지 않아서 물어 봤더니 역시 그 집의 주인이 석공예와 목공예의 명인이랍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문짝에 새겨진 조각이 우리 장승을 보는 듯 무척 정겹습니다. 다른 집에도 이런 문이 있는 걸로 봐서 문에 조각을 하는 것은 이 부족의 전통인 듯 합니다. 문짝 하나, 전등갓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주인의 예술적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더군요.



사냥꾼의 전통과 삶의 이야기를 갖가지 그림과 조각과 공예품으로 전수해 오고 있는 장인의 집에 누우니 마치  먼 옛날 사냥꾼의 집에 하룻밤 묵어 가는 나그네와 같은 심정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꿈에서도 사슴과 왕뱀들이 저를 둘러싸며 놀았답니다.



새벽에 잠이 깨니 새끼 도룡뇽과 개미들과 이름 모를 산새들이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아열대 기후라서 겨울에도 눈이 안 내리고 난방이 없어도 충분히 지낼 수 있다는군요.

마침 오전에 이 마을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다고 해서 잠깐 들렀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통틀어 역 30여명쯤 되는 졸업생들과 학부형들이 산이 훤히 보이는 마을 회관에 모여 교장 선생님과 읍장 등 유지들의 말씀을 듣고 있더군요. 물론 지루한 어른들의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민속박물관에 딸린 회관에 이번 공연에 참가할 민요 가수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저를 환영하는 안내장을 붙여 놓은 회관에 들어가니 10여명이 넘는 출연진들이 전통의상과 머리에 쓰는 꽃관을 쓰고 30분 정도 시연회를 했습니다.


베틀을 놓고 일을 하는 여인들의 노래, 백합화를 머리에 꽂고 사랑 노래를 부르는 여인들의 삼중창,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축하하며 흥겹게 부르는 기쁨의 노래 등이 이 세상에서 만 명만이 사용하고 있는 루카이족의 언어에 실려 흘러 나왔습니다.

그들은 전문 가수도 아니고 일하면서 틈틈이 옛노래를 배워 온 주민들이었지만, 저는 그들의 소박하면서도 단순하고 진솔하고 아름다운 노래에 취했습니다. 

저는 개막공연의 내용을 설명하고, 그들과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며 여러 준비 사항들에 대해 합의했습니다. 모두들 한국에 처음 가는 분들이라 흥분과 설레임에 가득 찬 눈빛이었습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점심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 뒤, 그들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환송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10월 1일 개막공연 전에 전주에서 만나 연습하기로 약속을 한 뒤 산을 내려 오는 우리 일행을 민속박물관 위에 세워 놓은 조각상들이 전송하고 있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트랙백 1 AND COMMENT 17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06)
예술이야기 (55)
세상이야기 (52)
나의 이야기 (57)
책이야기 (50)
신화이야기 (6)
문화이야기 (46)
명인명창이야기 (40)

CALENDAR

«   2013/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