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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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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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저주받은 시인들의 벗』이라는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시마(詩魔)’란 단어를 알고 계신 분은 별로 많지 않을 겁니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엔 몰랐던 단어니까요. 그런데 우리 옛 선비들에게는 아주 친근한 단어였더군요.

시마란 시인의 가슴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학적 열정, 시를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창조적 충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시마의 이웃으로 ‘기양(技癢 : 가려움증)’이 있는데,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내부에 숨어있는 제어할 수 없는 표현욕을 말합니다.

표현욕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시 쓰는 행위가 버릇이 되어 병 상태에 이르는데, 이것을 ‘시벽(詩癖)’이라고 합니다.

옛 시인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러한 현상을 “시마(詩魔)”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적절하고 멋있는 표현이라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고려 때의 대문호인 이규보는 「구시마문」(驅詩魔文 : 시마를 몰아내는 글)에서 시마로 인한 괴로움을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과 사물을 현혹시켜 아름다움을 꾸미거나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둘째, 신비를 염탐하고 천기를 누설시킨다. 이처럼 사물의 이치를 밝혀냄으로써 하늘의 미움을 받아 사람의 생활을 각박하게 한다.

셋째, 삼라만상을 보는 대로 형상화한다.

넷째,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가나 사회의 일에 간여하여 상벌을 마음대로 한다.

다섯째, 사람의 형용을 초췌하게 하고 정신을 소모시킨다.


이런 시마에게 시달리는 게 괴로우니 제발 자신에게서 떠나달라고 요구했다가 오히려 시마에게 설복 당해서 그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이 글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심참담하는 작가의 내면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명문장입니다.

예부터 많은 시인들이 이 병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율곡 이이도 시마와 싸우다가 이런 시 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언제나 바람과 달이 주는 괴로움으로
시구 찾느라 시마와 싸운 게 몇 번이던가


시마의 절친한 친구들로 옛시인들이 ‘주마(酒魔 : 술)’, ‘병마(病魔 : 질병)’, ‘궁귀(窮鬼 : 가난)’, ‘수마(睡魔 : 잠)’, ‘색마(色魔 : 이성관계)’를 꼽았다고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참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이런 증상이 어찌 시인에게만 있겠습니까?

표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과 표현하는 행위가 병과 같은 버릇이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마귀가 있습니다.


노래나 악기나 음향에 종사하는 예술가에게는 ‘음마(音魔)’, 춤과 몸짓 표현 예술가에게는 ‘무마(舞魔)’, 연기 표현 예술가에게는 ‘연마(演魔)’, 색과 빛의 표현 예술가에게는 ‘광마(光魔)’ -

이런 것들은 주로 예술가들에게 찾아 오는 마귀들이지만, 다른 분야 종사자들도 저마다 마귀가 있을 것입니다.

토목이나 나무 꽃 등 관련 종사자에게는 목마(木魔), 철도나 기계 등 관련자는 철마(鐵魔), 인터넷이나 전기 관련 종사자는 전마(電魔), 화마(火魔), 금마(金魔), 수마(水魔), 토마(土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종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마귀들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블러거들에게도 당연히 마귀가 있겠지요?

블로깅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과, 블로깅하는 행위가 '병과 같은 버릇'이 되어버린 수많은 블로거들에게는 병증의 배후에 갖가지 마귀가 있을 겁니다.

저는 이것을 ‘블마’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블마와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블로거들은 자신에게 블마가 찾아와 남다른 재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꿈꿀 겁니다. 그러나 정작 블마를 그의 몸 속에 받아들이는 블로거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원하지 않아도 밤마다 황송하게 찾아 주시어
잠자는 나에게 받아쓰게 하시고 혹은 영감을 주어
즉흥적인 시구를 쉽게 나오게 해주시는
나의 천상의 수호 여신이여


밀턴이 『실낙원』이라는 대서사시를 쓸 때 이런 기쁨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어디선가 신선이나 귀신이라도 나타나 글의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술술술~~' 글이 잘 풀려나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천 명, 수만 명,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여러분의 글을 읽고 감동받아 온세계 사람들이 앞다투어 들어오고, 광고가 폭주하고, 블로그에 담은 글들을 모아 책을 펴냈는데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을 다니고, 블로그스피어의 제왕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런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모든 블로거들의 바램인 블마가 찾아올까요? 저자인 김풍기 씨가 책의 마지막에 써 놓은 멋진 글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시마는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라 새로운 표현을 찾아 방랑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한 곳에 머무르는 순간 시마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사유 권력의 그물이 그의 온 생애를 덮칠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저주받았으되 행복한 사람, 오직 시만을 생각하고, 생애를 시에 의탁하는 사람, 생애 오직 한번의 절창을 위해 온힘으로 몰두하는 시마의 벗, 그 행복한 이름이 바로 시인이다.


우리 블로그스피어에도 ‘블마의 벗’들이 넘쳐나 서로 소통하고, 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빛나는 블로그 활동을 벌이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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