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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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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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도 사랑하는 시인을 소개합니다.

도연명, 그는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쯤 중국의 동진이란 나라에 살았습니다. 하급 귀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글을 좋아했습니다. 입신출세하려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급제를 못한 채 29살 무렵에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지방의 하급관리로 벼슬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출처 : http://pppfc.tistory.com/391


그후 13년 간 5번이나 집을 떠나 떠돌면서 지방의 벼슬살이를 했지만 부패하고 어지러운 관리 생활이 전혀 그의 기질에 맞지 않았습니다. 평택이란 현의 현령을 할 때 군에서 행정시찰차 지방 관리가 내려오자, 고을 관리들이 관복을 차려 입고 그를 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5두미의 봉급 때문에 몸을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고 하며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때가 41살 때입니다. 결국 그는 몸에 맞지 않는 관리 생활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기쁨을 노래한 시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입니다.


<귀거래사>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고 있는데 어찌 아니 돌아갈소냐.
지금껏 내 마음은 내 몸을 위해 함께 했었는데,
무엇때문에 혼자서 고민하고 슬퍼하는가?
......
......
혼자서 좋은 계절 즐겨 보며,
지팡이 꽂아 놓고 풀뽑기 하고,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어 보기도 하고,
맑은 시냇물 대하고 시를 읊기도 하네.
자연에 순응하며 살다보면 목숨 다할텐데,
나의 삶, 주어진 운명을 즐김에 의심할 게 무언가!

이 시에 그려진 자연은 청아하고 선명합니다. 짧으면서도 구성과 표현이 정연한 걸작으로 후세의 시인들에게 절창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고향의 전원 생활을 즐기는 댓가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걸식>

배고픔이 나를 내몰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
가다보니 어느 마을에 이르러
한 집 문 앞에서 어색한 말투로 말을 건넨다.
그 집주인 나의 말뜻 알아듣고,
먹을 것을 내주니 헛걸음은 아닐세.
얘기하다 서로 뜻이 맞아 저녁 무렵까지 보내니,
술 주는 대로 잔 기울이네
.....


그는 술을 무척 좋아하였고 30대 후반에는 술을 끊으려 결심하기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평생 술과 함께 했습니다. 가난하여 술을 살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세속의 욕망을 멀리 하고 자연과 더불어 고매한 정절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음주>

사람들의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움막을 지었더니,
시끄럽게 수레나 말을 타고 찾아 오는 이 없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러할 수가 있는가?
마음이 먼 경지에 있으니 사는 땅도 자연 편벽되게 되네.
동녘 울타리 아래 국화 꺾어 들고
어엿이 남산을 바라보노라면
산 기운은 날 저물며 아름답기만 한데
나는 새들은 어울리어 둥지로 돌아가고 있네.
이런 가운데 참된 뜻 있으니
이를 설명하려다가도 문득 할 말을 잊네.


이러한 그도 자식들에 대해서는 학문을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아들들이 학문에 게으른 것을 탄식하며 수없이 편지를 보내어 경계했으니 제아무리 훌륭한 시인도 자녀를 향한 마음은 범인과 다를 게 없나 봅니다.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으로 글을 읽으니 참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자식을 책망함> 

백발은 양 귀밑머리 뒤덮고
살갗도 다시 실하지 못하네.

비록 아들 다섯 있어도
모두 종이 붓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서(舒)는 벌써 열여섯이지만
게으르기 짝이 없고,

선(宣)은 열다섯이 되지만
학문을 좋아하지 않네.

옹(雍)과 단(端)은 열세 살인데
여섯 일곱을 알지 못하며,

통(通)은 아홉 살이 되지만
배(梨)와 밤(栗)을 찾기만 하네.

하늘이 내린 운세 실로 이러하니
또다시 술이나 들이킨다오.


부모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녀들을 볼 때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하늘의 운세를 빗대어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고민하지 않는 넉넉함이 보입니다. 현실적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실패한 관리요, 무능한 가장이요, 무책임한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현실에 대해 분노하거나 자책하지 않습니다. 가난으로 인한 현실적 고통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순응하며 몸을 맡기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무릉도원'이라는 이상향을 그려냈습니다.
 

<도화원기>  

진나라 태원 연간에 무릉의 한 어부가 시냇물을 따라 길을 가다가 어디로 얼마나 왔는지 길을 잃었다. 갑자기 복숭아나무 숲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양편 언덕을 끼고 수백 보 넓이의 땅에 잡목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다운 위에 떨어지는 꽃잎들이 어지러웠다. 
......
집들이 멋지게 늘어섰고, 좋은 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뽕나무와 대나무 같은 것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사방으로 길이 뻗어 있고 닭소리 개소리가 들렸으며, 그 속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씨뿌리고 일하는 남녀들의 입은 옷들은 모두가 외계 사람들 같았다. 노인과 아이들도 모두가 즐거운 듯 함께 즐기고 있었다......  


술과 시와 자연을 사랑하며 살았던 그는 나이 6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살았을 때는 명성을 날리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해서 그의 시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송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던 소동파는 '고금독보(古今獨步)의 시인'이라는 말로 그를 찬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가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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