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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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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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고려대 정경대학에 붙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양(24)의 '자퇴 선언 대자보'가 학생들과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군요.

출처 : http://productionschool.org/board/54524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이 글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찬성측의 의견은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자기 소신의 삶을 살 때 이뤄질 수 있다', '건승을 빈다', '마음 한쪽에 느끼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용감하게 말해 주었다',  '중요한 건 그가 우리에게 던진 문제의식이자 메시지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다', '많은 학생들이 경쟁중심 사회 전반의 문제에 고민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제 이 같은 현실을 우리가 나서서 변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쏟아졌네요.  

반대측 의견은 '지금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아름다운 대학생들이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전 학교 다니는게 즐겁고 행복해서 참 다행이네요', ‘일기장이 아닌 대자보에 공개한 이유가 뭐냐?’, '대학에 남아 확실한 꿈을 향해 노력하는 내가 쓸모있는 상품으로의 간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운동권이나 정치권 커리어 쌓기 위한 쇼 아닌가?'라는 의견도 쏟아졌네요.

출처 :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01&newsid...


김예슬양의 글을 읽는 동안, 제 청춘의 힘들었던 시절이 새삼 떠오르더군요.

저는 김예슬양과 30여년의 차이가 나는 197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저 역시 '청운의 꿈'을 품고 가족의 기대를 온 몸에 받으며 '명문대'에 입학했다가 다른 길을 선택했기에 수많은 밤을 잠 못이루며 뒤척였을 예슬양의 고뇌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대학을 거부할만한 '용기'가 없어 낙제를 면할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을 하긴 했지만 전공을 '배반'한 채 '취업이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연극의 길을 떠났고, 2년 간 직장 생활을 한 뒤로는 직장생활마저도 '거부'한 채 연극쟁이로 '적자인생'을 살며 '부모님께 죄송'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대에 대학생들이 겪었던 고뇌는 '88만원 세대'의 고뇌와는 차이가 납니다. 그 무렵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했던 유신독재에 대한 반대 시위로 학교가 휴교와 폐업을 거듭하고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제적을 당하거나 퇴교를 당하거나 감옥에 갔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판과 저항에 참여하거나 취업을 통해 현실세계에 참여했고,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환멸을 느낀 학생들 중 스스로 자퇴를 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예슬양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큰배움터'로서의 "대학大學"은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과 고뇌를 가슴에 담은 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대학을 거부한 치열한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예슬양과 동기뻘이 되는 대학 3학년의 딸과 후배뻘이 되는 대학 1학년의 아들을 가진 부모로서 걱정이 밀려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군요. 

'만약 나의 딸이나 아들이 그런 결단을 내린다면 나는 찬성하고 축하해 줄 것인가.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류할 것인가?'

두 질문 사이에서 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 딸이나 아들이 학교를 그만 두고도 자신의 미래를 펼쳐 나갈 계획과 재능을 충분히 가졌다고 믿는다면 찬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일시적 분노와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젊음의 성급함으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겠죠. 

전 예슬양의 조리정연하고 날카롭고 대담한 글을 볼 때, 성급함이나 무모함으로 충동적인 '대학 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녀는 '기업의 하청업자'가 된 대학의 좁은 우리를 벗어나 더욱 큰 인생 경영을 위한 '비상의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떠나는 예술양의 앞길에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고려대학교'라는 명문대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대학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한, 만만치 않은 현실과의 외로운 싸움을 각오해야 할 듯 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운동권 관련 행보라든가 자퇴서에 대한 진정성을 꼬집는 네티즌들의 글은 앞으로 지속될 그녀의 행보에 더욱 아픈 가시가 될 듯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거부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는 단단한 다짐을 볼 때, 예슬양은 어떠한 가시밭길이라도 헤치고 나갈 강한 열정과 투지를 가진 인재로 보입니다. 

부디 예술양의 '탈주'와 '저항'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취업을 위한 자격증이 없어도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경영할 수 있다는 비전을 성공적으로 가꾸어 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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