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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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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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중국 정부가 일본 '731부대' 유적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731부대 이야기를 작품으로 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이미 잊혀진 역사의 한 조각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문제를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추진한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놀란 것입니다. 중국이 그 일을 추진하는 이유는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731부대가 저질렀던 만행을 세계에 알리려는 의도 때문이지요.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정운찬 국무총리께서 대정부질문 중 731부대를 아느냐는 물음에 '독립군 부대 아니냐?'고 답변했다가 누리꾼들로부터 대망신을 당했던 바로 그 부대이기도 합니다. 

731부대는 중국 상해 근처인 하얼빈의 남쪽 인적없는 황야에 뇌물수수로 예편 당한 의학박사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군의중장이 1933년에 창설한 '일본 관동군 소속 비밀특수부대'입니다.

731부대 전경사진. 출처 :
http:// www.pulug.com/news/news_view.html?n_ctgr=6...

1945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극비리에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조선인 등의 항일 포로 3,000여명을 대상으로 세균전을 위한 생체 해부와 생체 냉동 실험 등 비인간적 생체 실험을 자행한 천인공노할 '악마의 부대'입니다.  

그들은 '마루타' 만주 관동군이 장악한 지역 전역에서 공급 받아 실험에 이용했습니다. 마루타는 일본말로 '통나무'란 의미를 가진 생체 실험 대상 '인간재료'를 말합니다.  

생체실험 중인 731부대원. 출처 : http://www.anti-yasukuni.org/upload/boa...05/2.jpg

그러다가 1945년 8월 9일에 소련군의 만주 공격이 시작되자 731부대의 지휘관들은 시설물을 폭파시키고 일본 본토로 퇴각합니다.

이시이 시로는 퇴각하는 부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엄수 명령을 내립니다.

 
-군인이었음을 숨길 것
-731 부대원이었음을 절대 누설하지 말 것
-일체의 공직에 취임하지 말 것
-대원 상호간의 연락을 엄금한다

그런데 전후 하바로프스크 군사재판에서 몇몇 포로들에 의해 731부대의 존재가 드러나자 소련은 미점령사령부에 관계자들의 재판과 처벌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시이 시로는 미점령사령부와 비밀 협상을 벌입니다. 그 협상을 통해 미국에 731부대의 연구자료를 제공하고, 그 댓가로 관련자 전원이 전범재판에 기소되지 않게 됩니다. 미국은 소련 측에 "731부대의 실체는 대수롭지 않다"고 답하며 관련자료 일체를 가져갑니다. 이후 그 자료는 미군의 생화학전과 세균전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게 됩니다. 

전범재판에서 제외된 뒤로 731부대의 이름은 역사에서 희미한 흔적만 남게 되었습니다. 전후 일본은 줄곧 731부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이 영원히 묻혀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731부대의 실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악마의 포식>이 1981년에 발간된 것입니다. 그것도 <고층의 사각>이란 추리소설로 권위있는 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고 수많은 인기추리소설을 쓴 추리작가에 의해서 말입니다. <악마의 포식>이 330만부가 팔리며 일본인들 자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잔인함과 광기가 샅샅이 드러나게 되자 일본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입니다. 

 
 
이 책의 저자 모리무라 세이이찌는 <죽음의 그릇>이란 추리소설을 신문에 연재하던 중, 생존한 731부대원의 제보로 부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는 재미있는 소설의 소재 정도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증언과 광범위한 자료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전쟁이 몰고 온 악마와도 같은 잔인하고 참혹한 실상에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 사회에 다시는 그런 광기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인간의 증명>이란 소설과 함께 다큐멘터리 <악마의 포식>을 쓴 것입니다. 

그 책이 출간되자 그 내용에 충격을 받은 몇몇 양식있는 음악인들이 1984년에 <악마의 포식>이란 합창곡을 창작했습니다.


'악마의 포식' 공연 장면.


이케베 신이치로가 작곡하고 고베 시청센터합창단이 공연한 이 작품은 일본 사회가 우경화되면서 오랫동안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공연은 10년 뒤인 1990년 일·중우호협회 창립 40돌 기념행사 때에야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일본 패전 50돌인 1995년부터 저자가 직접 민간 합창단을 조직하여 <악마의 포식> 전국순회콘서트가 시작된 뒤, 해마다 2차례 일본 공연과 2년에 한 차례 해외 공연을 해왔습니다.

드디어 작년 7월에는 한국을 찾아 서울과 청주에서 공연했습니다. 1부 9.11 미국뉴욕테러사건을 다른 혼성합창곡, 2부 북패 ‘와다츠미’의 북 연주, 3부 이야기 마당, 4부 악마의 포식으로 구성된 이 공연은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지 못했지만 뜻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의미있는 공연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노근리에서 함창을 하는 '악마의 포식' 합창단. 출처 :
http:// 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
 
 
2차례의 무대 공연을 마친 165명의 합창단들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 당한 현장인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희생자 합동위령제' 찾아 반전과 평화를 노래했습니다.

7순을 훨씬 넘긴 모리무라 세이치(76) 씨는 그 자리에서 "전쟁은 한 나라의 국토, 역사, 문화 뿐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악마와도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그는 "일본과 한국 사이의 여러 좋지 못한 과거의 사건에 대해 정부 뿐 아니라 민간차원의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공무원, 주부, 의사, 교사 등 일반시민들이 사비를 들여 노근리 찾은 것은 이같은 차원이며 앞으로 세계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반세기 전 역사의 참상을 바로 알리고 사죄하느라 바쁘고, 중국은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만행으로 발생한 자신들의 비극을 알리려고 바쁩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신대 문제, 독도 문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신사참배 문제, 천왕의 방한 문제 등 우리에게도 바쁘게 움직일 일들이 많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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