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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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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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우리 집안 족보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김해김씨 삼현파(金海金氏 三賢派)' 72대손이니 김수로왕(金首露王)으로부터 이어진 왕손이라는 겁니다. 어린 저는 '그럼 수백만 명의 김해김씨가 다 왕손이냐'고 철없이 아버지에게 따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우리 씨족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삼현파의 시조이며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돌아가신 대학자 김일손 할아버지에 대해 대단한 존경과 자부심을 가지고 수시로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김수로왕의 이미지. 출처 : http://edumr.culturecontent.com/sub01/03.asp

특히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許皇后) 얘기를 해주시면서 '너는 절대 허씨 성을 가진 여성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못을 박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수로왕과 허황후에 대해 마치 저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인 것처럼 친근한 느낌을 가지며 자랐습니다. 

김수로왕의 탄생과 결혼은 대부분 알고 계시는 너무도 유명한 설화입니다. 
 

아홉 명의 부족장이 백성을 다스리고 있던 시절, 경상남도 김해에 있는 '구지봉'에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구지가(龜旨歌)>를 합창했습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을 테다


수백 명이 모여 노래를 하고 춤을 추자 하늘로부터 끈이 내려왔는데, 그 끈에는 붉은 천에 쌓인 황금의 상자가 달려 있었습니다. 상자를 열어 보니 황금알 6개가 담겨 있었습니다. 

구지봉 고인돌. 출처 : http:// korean.visitkorea.or.kr/kor/ti/everywhere_sig...

며칠 후에 그 알에서 귀여운 아기들이 나왔는데 제일 먼저 나온 아이가 수로왕이요, 나머지 다섯 명도 각각 왕이 되었으니 이 분들이 6가야의 시조입니다. 수로왕은 키가 9척이요, 8자 눈썹에, 얼굴은 용과 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척의 배가 남해 바다에서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기를 휘날리면서 다가왔습니다.

수로왕은 신하들을 보내어 배에 탄 사람들을 모셔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배 안에 타고 있던 아름다운 공주는 “나는 너희들을 모르기 때문에 경솔히 따라 갈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로왕은 대궐 아래에 장막을 치고 공주를 기다렸습니다. 공주도 별포 나룻터에 배를 대고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입고 있던 비단바지를 벗어서 산신에게 바친 후 수로왕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허황후가 가지고 왔다는 파사석탑. 출처 : http://kr.blog.yahoo.com/isis21kr/1168.html?p=1&t=2

공주가 여러 사람들과 보화를 가지고 다가오니 왕은 그녀를 맞이하여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주가 자신이 가락국에 오게 된 사연을 수로왕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라고 합니다.
본국에 있을 때 부모님들께서 꿈에서 상제님을 보았는데 상제께서 ‘가락국왕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보내 왕위에 오르게 했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라’ 라고 하셔서 저를 가락국으로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를 따고 떠났는데, 수신(水神)이 노해 갈 수 없게 되어 다시 돌아가 석탑을 배에 싣고 무사히 여기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왕과 공주는 장막에서 두 밤 한나절을 지낸 후 대궐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허황후는 1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로왕과 다정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허황후 영존 출처 : http:// kr.ks.yahoo.com/service/ques_reply/ques_view....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저에게 너무도 많은 의문을 던져 주었습니다.

-<구지가>를 부른 때가 후한 건무 18년이고, 신라 유리왕 19년이라고 하는데 그때 과연 알에서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아유타국 왕의 꿈에 김수로왕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아유타국 왕은 어떻게 자신의 꿈만 믿고 가보지도 못한 가락국에 공주를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뱃사공들은 과연 가락국을 어떻게 알고 항해를 했을까?
-아유타국 공주의 이름이 왜 허황옥일까? 
-공주와 처음 만난 수로왕은 가락국말로 대화를 했을까, 아니면 아유타국말로 했을까, 아니면 통역이 있었을까?
-공주가 살았다는 아유타국은 과연 어디였을까? 
 일본에 있던 가락국의 분국이라는 설도 있고, 기원전 1세기 무렵 인도에 있었던 '아요디아' 왕국이라는 설도 있고, 태국의 '아유티야' 또는 '아요디아'에서 중국 사천성 보주 지역으로 집단 이주해 살던 허씨족이 이주해 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낙랑지역에서 내려 온 유이민 혹은 상인이었다는 설도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사실일까?


이 많은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 줄 해답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만남과 사랑이야기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바다 건너 이민족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흔적을 알려주는 신화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시조할머니인 허황후는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눈이 흑진주처럼 빛나고 얼굴에 비단 너울을 쓴 태국의 공주일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태국에 가서 나의 할머니가 살았던 아유디아란 나라의 흔적을 찾아 보리라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저는 우리나라에 시집와서 사는 수많은 필리핀 여성이나 태국 여성들의 모습 속에서 허황후 할머니의 그림자를 보곤 합니다. 그 그림자는 바로 이 마지막 의문에서 출발한 겁니다.

만약 허황후가 인도나 태국쪽의 여인이었다면, 우리 김해김씨는 바로 '다문화 씨족' 이며 나는 그 후손 아닌가?


국립무용단 춤극 <가야> 중 허황후 장면. 출처 : http://www.peridot.or.kr/bbs/zboard.php?id=photo7&no=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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