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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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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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수와 여제자>란 연극이 화제더군요.

작품 내용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 남녀배우가 전라로 나온다고 해서 화제랍니다. 실한오라기 안 걸친 여배우의 모습을 보려고 3,40대의 남성관객들이 몰리는 통에 연장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는군요.

성불감증에 걸린 중년의 교수를 젊은 여제자가 치유하는 이야기라니 특별히 작품으로서 언급할 흥미는 안생기는군요. 단순한 스토리에 남녀의 애정행각을 보여주고 눈요기로 섹스신이나 나체가 등장하는 듯 합니다.

직접 보지 못한 작품이니 더이상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다만 그 제목으로부터 연상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남자선생과 여자제자 또는 여자선생과 남자제자 사이의 사랑이야기는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의 흔한 소재입니다.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이고, 주변의 방해와 반대도 많을테니 일반적인 사랑보다 극적 요소가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소재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가장 널리 알려진 교수와 제자의 사랑이야기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사랑이야기일 것입니다.

출처 : http://ignorams.egloos.com/3549391


아득한 중세의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수많은 서구의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사랑이야기입니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태어난 아벨라르(Abelard1079~1142)는 말 잘하고, 똑똑하고, 잘생기고, 글도 잘쓰는 스콜라 신학자이며 철학자였습니다.

당대의 신학과 철학의 대가들을 명석한 논리와 유창한 언변으로 꼼짝달싹 못하게 한 아벨라르는 35세에 노틀담 성당학교의 교수가 되어 신학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유명해졌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들으려 몰려들었다니 요즘으로 치면 인기 최고의 '스타 교수'였던 셈입니다.

그러던 
아벨라르에게 한 여성이 운명처럼 다가오게 됩니다.  

노틀담 수도회의 수사였던 퓔베르의 조카인 17세의 엘로이즈(Heloise1100~1163)였습니다. 아벨라르가 38세 때 그의 학식을 흠모하던 퓔베르의 부탁으로 그녀를 개인교습한 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아벨라르는 뛰어난 학식과 언변으로 엘로이즈를 매료시켰고, 엘로이즈는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아벨라르를 매혹시켰습니다. 교수와 여제자의 수업은 불타는 사랑으로 발전했고, 결국 책들이 흩어져 있는 방한가운데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게 됩니다.

장 비뇨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을 발견하는 퓔베르>.
출처 : http:// 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168633...


이를 눈치챈 퓔베르는 배신감에 가득 차서 아벨라르를 내쫓았지만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두 사람의 사랑을 막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결국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아이를 임신하게 됐고,아벨라르는 그녀를 자기 누이 집으로 보내 그곳에서 아들이 태어납니다.

미혼모로 살아갈 엘로이즈를 염려한 아벨라르는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성직자의 길을 가야하는 아벨라르가 결혼 때문에 장래를 망칠까 우려한 나머지 세상사람들에게 결혼 사실을 완강히 부인합니다.

이에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보호하기 위해 아르장퇴유에 있는 수도원에 보내 수녀로 지내게 하며 밀회를 나눕니다.  

그런데 엘로이즈가 수도원으로 사라지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분노한 퓔베르가 일을 내고 맙니다. 하인에게 돈을 주고 잠 자고 있는 아벨라르의 남성을 '거세'해 버리고 도망가게 한 겁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온 프랑스를 경악하게 했고, 아벨라르는 정신적 육체적 충격과 굴욕감 속에서 생드니 수도원에 은거하게 됩니다.

안젤리카 카우프만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별>
출처 :  http:// 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168633...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수도원에 머물면서 죽을 때까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초상화를 방에 걸어 놓고 늘 대화를 나누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신에 대한 사랑보다 아벨라르에 대한 사랑으로 온몸을 불살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 사이엔 사랑에 넘치는 수많은 편지들이 오고 갔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엘로이즈>
 출처 : http:// 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168633...

아벨라르는 책을 쓰고 많은 사람들과 논쟁을 하며 신학자로서의 명성을 회복했지만 끝내 이단자로 몰려 파문을 당했다가, 6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엘로이즈는 끈질긴 노력 끝에 그의 사면장을 얻어낸 뒤, 그녀 나이 역시 63세가 되는 해에 자신의 소망대로 아벨라르의 무덤 곁에 묻힙니다. 이들의 유해는 현재 파리의 라 세즈 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라 세즈 묘지.
출처 :
http:// 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168633...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이야기는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그 이후의 애절한 정신적 사랑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유럽의 수많은 소설가, 시인, 화가, 연극인, 영화인들이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여제자가 성불구 교수를 치료해 준다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교수와 여제자>의 연극과 비교해보니 더욱 그 사랑의 깊이가 대조되는군요.

그러나 한편으로 '세속적이며 육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저의 마음 속에도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그들은 중세의 신부와 수녀 관계였으니까 그럴 수 있다하더라도 요즘 시대에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나의 아내는 만약 내가 성적으로 불구가 된다면 정신적 관계만으로 죽을 때까지 나를 사랑해줄까? 

그런 의문이 든 이유는 사실 저와 아내도 '교사와 여제자'의 관계였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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