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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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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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한 남자를 그리며 밤마다 꿈을 꿉니다. 

몽혼(夢魂)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나요
사창에 달이 뜨니 한만 서려요
꿈 속에 오고간 길 흔적이 난다면
그대 문 앞 돌길은 모래가 되겠네요

근래안부문여하(近來安否問如何)
월도사창첩한다(月到紗窓妾恨多)

약사몽혼행유적(若使夢魂行有跡)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沙)

그 꿈길에 흔적이 남는다면 남자집 문 앞의 돌길이 모래가 되었을 거라는, 이토록 애절하고 이토록 격렬하고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쓴 여인은 누구일까요?

블로그 <나무야>님의 서각 <몽혼> : http://cafe.naver.com/CafeTagArticleList.nhn?search....

이옥봉(李玉峰)은 누구인가? 


전주 이씨. 본명 숙원. 조선중기 16세기 후반 선조대왕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충북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 옥봉은 그녀의 호입니다.

비록 첩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고위관리였고 집안은 왕족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글과 시를 배웠는데 너무도 글재주가 뛰어나 그녀가 지은 시는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 신분 때문에 첩살이밖에 할 수 없음을 알자, 옥봉은 결혼할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가서
 내노라하는 시인묵객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옥봉의 시는 재기발랄하고 참신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원이라는 젊은 선비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옥봉의 사랑을 알게 된 아버지 이봉은 조원을 찾아가 딸을 첩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미 결혼한 몸인 조원은 거절했습니다. 딸을 너무도 사랑했던 이봉은 체면을 따지지 않고 조원의 장인인 이준민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결국 이준민의 주선으로 옥봉은 소원을 이룹니다.

자기 딸을 첩으로 들여달라고 사위 될 사람의 장인에게 청을 하고, 장인은 자기 딸의 시앗이 될지도 모르는 여인을 첩으로 추천하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선 사대부들의 행태이지만, 어쨌든
옥봉은 결혼 후 다른 사대부의 첩들과  시를 주고 받기도 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쓴 시 한편으로 불행한 '필화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집 아낙네가 옥봉을 찾아와 산지기인 남편이 소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잡혀갔는데, 조원이 편지 한 장 써 주면 풀려날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낙을 불쌍히 여긴 옥봉은 남편 대신
시를 한 수 지어 주었습니다.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참빗에 바를 물로 기름 삼아 쓰옵니다
첩의 신세가 직녀가 아닐진대 
어찌 낭군께서 견우가 되리까

너무도 가난하고 청렴하게 살지만 견우가 아닌 남편이 어찌 소를 훔쳤겠느냐고 멋지게 항변하는 이 시를 본 관리들은 아낙의 남편을 석방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알게 된 조원은 뜻밖의 행동을 합니다. 

옥봉을 내친 것입니다! 

조원하고 함께 산지 20년쯤 되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여인을 조원은 어찌 그리 매정하게 단칼에 내쳤을까요?

처음 첩으로 들였을 때 시를 짓지 말기로 한 언약을 깨뜨려서 내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지만 믿기 어렵습니다. 결혼을 하고서도 그녀가 간간이 시를 지은 흔적이 있는데다가, 시와 철천지원한을 맺지도 않은 선비가 부인이 시를 썼다고 이혼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공적인 판결에 벼슬아치의 부인이 끼어들어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된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서일까요? 조원의 꽁한 선비 기질로 보건데 타당한 이유일 듯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판결을 크게 어지럽힌 것도 아니고 탄원서를 시로 써준 정도에 지나지 않는 데, 그걸 이유로 이혼을 하다니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도 그런 남편을 이옥봉은 밤마다 꿈속에서 그리워 합니다.  

꿈 속에 오고간 길 흔적이 난다면
그대 문 앞 돌길은 모래가 되겠네요.

조원이란 남자의 졸렬한 행동은 이런 사랑을 받을 가치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데도 이옥봉은 우리가 모르는 조원의 또다른 매력에 사로잡혀 있었나 봅니다. 그에게 버림받은 뒤 한강변 뚝섬의 오두막에서 미친 듯 울며 밤마다 시를 쓰는 여인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사랑시는 간절하고, 정열적이고, 슬픔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밤, 우리 이별 너무 아쉬워
달은 멀리 저 물결 속으로 지고
묻고 싶어요, 이 밤 어디서 주무시는지
구름 속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 소리에 잠 못 이루시리

냉정하기 짝이 없는 조원에게 바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저 시들을 이옥봉은 아낌없이 쏟아놓고 세상을 떴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난리통에 죽었으려니 짐작할 뿐, 정확한 생사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옥봉에 대한 기이한 후일담이 <지봉유설>에 전해 옵니다. 

그녀가 죽은 지 40년쯤 뒤,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의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조원을 아느냐?"는 원로대신의 질문에 부친이라고 대답하니,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보여주었는데「이옥봉 시집」이라 씌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첩으로 생사를 모른 지 벌써 40여 년이 된 옥봉의 시집이 어찌하여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는지 조희일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원로대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도 기이하고 놀라웠습니다.

 

약 40년 전, 중국 동해안에 괴이한 시체가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나 흉측한 몰골이라 아무도 건지려 하지 않아서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로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사람을 시켜 건져 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한 겹 두 겹 벗겨내니, 바깥쪽 종이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으나 안쪽 종이에는 빽빽하게 뭔가가 적혀 있었다.
시였다.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는 이름도 보였다.
시를 읽어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이라, 내가 거두어 책을 만들었다.


온몸을 자신의 시로 감고 죽다니....
그 시로 몸을 감고 바다에 뛰어들다니....

왜 이런 후일담이 전해 올까요?
조원에 대한 미움과 분노에 시로 몸을 감고 바다에 뛰어 든 걸까요? 
여성을 천시하고 인간으로 대하지 않은 봉건적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한 걸까요?
결국은 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침묵으로 웅변한 걸까요?

출처 : http://cafe216.daum.net

이옥봉은 대답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남긴 시들로 그 대답을 대신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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