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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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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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31일에 폐암으로 작고하신 이청준 선생님의 1주기가 다가오는군요.  

이청준(李淸俊, 1939-2008) 님은 전남 장흥 출생으로, 1960년 광주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1966년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셨습니다.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퇴원(退院)' 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셨지요. 그후 <사상계>,  <여원> 등 출판계에 종사하다가 그만둔 후 전업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하셨고,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셨으며. 이후 <이어도>, <잔인한 도시>, <살아 있는 늪> 등으로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창작집으로는 <별을 보여드립니다>(1971), <소문의 벽>(1972), <조율사>(1973), <가면의 꿈>(1975), <자서전들 쓰십시다>(1977), <예언자>(1977), <남도 사람>(1978), <살아있는 늪>(1980),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1981), <시간의 문>(1982), <비화밀교>(1985), <따뜻한 강>(1986) 등이 있고 장편으로는 <당신들의 천국>(1976), <춤추는 사제>(1979), <자유의 문>(1989), <인간인>(1991) 등이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문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선생님을 그리며, 1년 전에 <세계일보>에 기고했던 추모의 글을 손질해서 올립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92년 7월 말, 임권택 감독님으로부터「서편제」의 각색과 출연 제의를 받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됐지요.

그날부터 저는「남도사람」이라는 연작소설집 속에 실린「서편제」,「소리의 빛」,「선학동 나그네」등의 단편들을 꼼꼼히 읽고, 각색을 위해 선생님과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한 세대를 풍미한 작가로서의 선생님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각색자와 원작자와의 만남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작자의 문학적 명성이 크고 높을수록 각색자는 더 큰 짐을 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술자리에서 각색에 대한 저의 고민을 얘기 듣고 나서, 선생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니 김 선생이 하고 싶은 대로 각색하시오. 그 대신 우리 막걸리나 자주 마십시다.”

그 후로 선생님의 고향인 장흥에도 함께 방문하여 치매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님을 뵙기도 하고, 편하게 술잔을 나누는 자리도 여러 번 있었지만, 선생님은 단 한 번도 각색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에 있는 이청준님의 고향집.

저는 은발을 쓸어 올리고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은근하게 좌중을 유도하시는 선생님의 인품에 반했습니다. 또 가느다란 담배가 입에서 떠나지 않고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멋진 은발과 어울려 묘한 매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얀 연기가 선생님의 수명을 앗아간 원흉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생님의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식견은 저를 능가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도 독문학을 전공했다는 걸 알고 “우째 이런 일이!”하고 놀라며, 판소리와 독문학으로 이어진 우리의 인연을 신기해하고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그 뒤 저하고는「조만득씨」라는 중편소설을 각색, 연출한「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그 연극을 할 때도 선생님은 즉석에서 허락하시고, 각색에 대해 저에게 무조건 일임하시고, 공연을 보시고 진심으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게다가「서편제」는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저에게 안겨 주더니,「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는 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었으니 선생님과의 인연은 저의 인생에 영광의 빛을 더해 주었습니다.



「서편제」 이전에도 몇 작품이 영화화되었지만, 「서편제」 이후에 선생님의 소설들은 더욱 활발하게 영화화되었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축제」.



「서편제」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천년학」.



「벌레이야기」란 원작 소설을 소재로 한 「밀양」.



그밖에도 수많은 감독과 연출가, 작가들에게 영감과 명예를 안겨 주신 선생님.

그러나 그런 화려한 빛의 그늘에 침잠하여 '창작의 고통은 천형'이라고 하신 선생님의 그 웅숭깊은 부끄러움, 고통, 죄의식, 낯설음은 우리를 엄숙한 내면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한 번 읽으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우리 영혼의 주위를 맴도는 선생님 작품의 마력은 바로 그 깊은 내면의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것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작품집인「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서문에서 "이런 자리 마련한 것이 부끄럽고, 소설을 욕심낸 것이 부끄럽고, 내 몸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해 부끄럽고, 이웃에 대해 부끄럽다."고 하셨지요.

그 말씀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자신에 대해 너무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너무도 이웃친지들의 소중함을 모르며 살고 있는 제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질책이셨습니다.

또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의 인터뷰에서 신화와 영혼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도 하셨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와 소치 허유가 어우러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남겨 놓으신 문학의 화두는 과연 누가 짊어지고 갈까요?

어느 누가 선생님이 차지했던 한국문학의 별자리를 이어갈까요? 어느 누가 선생님이 목숨을 걸고 사랑한 우리말의 순교자가 될까요?

소설보다 힘들게 암과 싸우다가 돌아가신 선생님, '당신의 천국'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1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을 추모하며 선생님이 「서편제」에서 제일 좋아하셨던 <이 산 저 산>의 가사를 바칩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구나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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