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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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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연극, 영화의 예술현장에서 배우로, 작가로, 연출로, CEO인 국립극장장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살아 온 제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만남의 공간입니다.
by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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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제3통신

세째 날인 7월 12일 일요일, 아침을 가볍게 먹은 우리 일행은 봉고에 몸을 싣고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어느 사진 갤러리에 들렀습니다. 3년 전부터 사진에 빠져 이번 여행 내내 무거운 사진 가방을 들쳐 메고 곳곳의 풍경을 찍어대던 친구가, 꼭 가 보고 싶은 곳이라고 하여 일정에 포함된 곳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놀라운 영혼을 가진 사진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두모악'.
 
한라산의 옛 이름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곳은 오로지 제주만을 사진에 담고, 제주에서 살다가, 제주 땅에 묻힌 사진작가 김영갑의 갤러리입니다. 


 

1957년에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에서 살면서 제주도를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제주의 하늘과 땅 그 모든 것에 매혹되어 1985년부터 제주에 정착했습니다.

그 뒤 그는 20년이 넘도록 바닷가, 중산간, 한라산, 마라도 등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제주의 자연을 사진에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사진에는 파노라마 사이즈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그는 거의 대부분의 사진을 파노라마 규격으로 찍었습니다.




오름. 바다, 들판, 구름. 억새 등 제주의 삶과 풍광 모든 것에 미쳐 오로지 사진만을 찍고 살았습니다.



그가 찍은 제주도의 사진들을 보고 여러 매체와 화랑에서 사진 청탁도 하고 판매도 권했지만, 그는 상업적인 요구들을 모두 뿌리쳤습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했습니다. 북제주군 대천동 산간마을의 농가에 세를 들어 살면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고, 친구나 사진예술계와의 접촉도 끊은 채, 그는 사진만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셋집에서 쫒겨나면 허름한 농가의 헛간을 세 내어 살기도 했고, 간첩으로 신고되어 경찰의 조사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제주의 땅과 하늘에 미친 그의 작업은 고난의 길을 가는 수도승처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제주에 미쳤을까요?

갤러리에서 산「눈, 비, 안개 그리고 환상곡」이란 사진첩에 쓰인 그의 글에 대답이 나와 있네요.

 

나에게는 옛날 옛적 탐라인들이 느꼈던 고요와 적막, 그리고 평화를 다시금 고스란히 보고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비밀화원이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웃고 울다가,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홀로 환호작약하다 잠들거나, 누워서 하늘을 보며 환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탐라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바람은 내게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 재미에 빠져 틈만 나면 그곳을 뒹굴고 기어다니며 오랜 세월을 머물렀습니다........(중략)

그곳에 있는 한 나는 정녕 자유로웠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에서도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시기, 질투, 다툼, 불평, 불만,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비밀의 화원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창고에 싸여 곰팡이가 피어가는 사진들을 위해 갤러리를 마련하겠다는 소망을 세운 뒤, 폐교로 버려진 삼달분교를 개조하여 갤러리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장으로 쓰던 앞마당은 명상과 휴식의 정원으로 꾸몄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셔터를 누르는 손이 떨렸고 이유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습니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미국의 야구선수 루게릭을 38세에 죽게했고,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휠체어에 앉힌, 근육이 위축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바로 그 병입니다.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년 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한없이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메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 김영갑「그 섬에 내가 있었네」중에서





그는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운동시키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갤러리 만들기에 혼신을 다바쳤습니다. 드디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은 점점 더 깊어져 그는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3년 뒤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자신이 가꾼 작은 천국인 두모악갤러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뼈는 갤러리 앞마당 감나무 아래에 뿌려졌습니다. 그는 별다른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 오로지 글과 사진만을 이승에 남기고 훌쩍 떠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어 일구어 낸 두모악에는 한평생 제주의 땅과 하늘 바람과 자연의 혼을 찍어 낸 한 외로운 작가의 영혼이 곳곳에 어려 있습니다.   

저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의 사진은 자연을 소재로 한 여타 사진들과 분명히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언지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하여 수많은 시간 동안 대상을 '응시'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슬프면서도 내적 기쁨에 가득 찬 응시.



그의 사진들에는 작가의 슬픈 눈동자가 숨어 있습니다. 숨어서 내밀하고도 조용하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나는 제주의 혼을 보았어요."라고요.



김영갑-그는 그가 사랑했던 제주의 땅과 하늘 어느 곳에나 영원히 살아 있는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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